라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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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경찰참수리.svg
대한민국 경찰
라희봉
羅熙捧


파일:라희봉 경감.jpg

출생
1928년 1월 25일
전라북도 진안군
사망
1952년 11월 23일 (향년 24세)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1]
묘소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양신리 삼양마을 뒷산
7용사의 묘
학력
부귀공립보통학교 (졸업)
최종보직
순창경찰서 쌍치지서장(1951)
최종계급
경감[2]


1. 개요
2. 생애
3. 사후



1. 개요[편집]


대한민국경찰관. 6.25전쟁 참전 용사.


2. 생애[편집]


1928년 1월 25일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39년 부귀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9년 7월 10일 전라북도 경찰공무원에 입직해 순경으로 근무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이후 경위로 진급하였다. 1950년 9월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 패잔병과 공비들이 덕유산지리산 등지에 숨어 후방지역을 교란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였고 라희봉 경위가 소속된 전북 경찰도 합동작전에 참여하였다.

1951년 1월 순창경찰서 쌍치지서장으로 부임하였으며, 같은 해 7월 10일 의용경찰대원 45명을 지휘하여 공비 100여명이 은거 중이던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 국사봉 일대에 대한 토벌작전을 감행해 무장공비 9명을 사살했다. 그해 10월 2일에는 의용경찰대원 40명을 인솔하여, 구림면 금창리에서 매복 작전을 실시해 공비 2명을 사살하고 소총 3정을 노획하는 등의 전공을 세웠다.

1952년 11월 20일 쌍치면 용전리 뒷산 오두봉고지에 공비가 침투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의용경찰대 병력 300여명을 직접 지휘해 수색작전을 펼치던 도중 '항미연대'와 '외팔이부대'[3]등으로 불리던 공비 약 700여명의 대규모 병력과 마주쳐 전투를 벌이게 된다. 라 경위는 이 전투에서 적이 투척한 수류탄에 중상을 입고 긴급히 후송됐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한 채 사흘 만에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 라 경위와 의용경찰대원 7명이 전사했다.


3. 사후[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전공을 기려 경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순창군 쌍치면 주민들은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쌍치면 용전리 뒷산 오두봉을 '라희봉고지'라고 부르고 있다. 라 경감과 함께 전사한 7용사의 묘는 순창군 쌍치면 양신리 삼양마을 뒷산에 마련되었는데, 이를 7용사의 묘라고 부른다.

전쟁기념관은, 2020년 11월의 호국인물로 라희봉 경감을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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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투 중 중상으로 후송됐지만 치료 중 전사하였다.[2] 사후 추서, 생전 최종계급은 경위[3] 남조선노동당의 전라남도 지부에서 활동하는 부안군당에 소속된 공비들. 함경도 출신이자 실제로도 외팔이인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군당 책임자가 되면서 부안군당을 외팔이 부대라 칭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