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서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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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서튼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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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BO 리그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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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BO 리그 타점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5 KBO 리그 장타율왕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번호 22번
존 누날리
(1995~1997)

래리 서튼
(1997~1999)


브래드 릭비
(200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28번
윌 클락
(2000)

래리 서튼
(2000~2001)


빌 오르테가
(200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19번
마크 거스리
(2001)

래리 서튼
(2002)


마르코 스쿠타로
(2005~2007)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29번
아르만도 알만자
(2003)

래리 서튼
(2004)


자크 존스
(2008)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3번
신동민
(2004)

서튼
(2005~2006)


캘러웨이
(2007)
KIA 타이거즈 등번호 49번
주창훈
(2006)

서튼
(2007~2007. 5. 19.)


로드리게스
(2007. 5. 20.~200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0번
공필성
(2019)

서튼
(2020~2023)


결번




파일:2023롯데서튼.png

래리 서튼
Larry Sutton

본명
래리 제임스 서튼
Larry James Sutton
출생
1970년 5월 14일 (53세)
캘리포니아 주 웨스트 코비나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학력
마터 데이 고등학교 - UIUC
신체
180cm / 79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2년 드래프트 21라운드 (전체 582번, KC)
소속팀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7~199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0~200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2)
플로리다 말린스 (2004)
현대 유니콘스 (2005~2006)
KIA 타이거즈 (2007)
지도자
캔자스시티 로열스 마이너 타격코치 (2008~2011)
피츠버그 파이리츠 도미니카 베이스볼 아카데미 디렉터 (2012~2013)
피츠버그 파이리츠 마이너 타격 코디네이터 (2014~2018)
윌밍턴 블루 락스 타격코치 (2019)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타격코치 (2020~2021)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21~2023)[1][2]
종교
개신교

1. 개요
2. 선수 경력
4. 연도별 주요 성적
4.1. 수상 내역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 국적의 前 롯데 자이언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KBO 시절에는 현대 유니콘스KIA 타이거즈에서 활약한 바 있다.

제리 로이스터 이후 롯데 자이언츠 구단 역사상 2번째 외국인 감독이자 역대 최초 KBO 리그 외국인 선수(소위 말하는 용병) 출신 감독이다.[3][4]


2. 선수 경력[편집]



2.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편집]


일리노이 대학교를 졸업했고, 1992년 드래프트에서 21라운드 582번째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입단 첫 해인 1992년에 A 마이너에서 OPS 1.026을 찍으며, 급성장하면서 싱글A로 승격됐고, 1994년에는 A+ 1995년에는 AA, 1997년에는 AAA까지 승격되어서, OPS 0.921을 찍었는데 캔자스시티의 유망주로 이미 낙점된 상태.

그 결과 1997년에 첫 콜업이 되었고, 주로 백업으로 출장을 했으며, 1998년에 시범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메이저리그에 25인 로스터에 무난히 들어갔으나, 5홈런 42타점 .245 .311 .352 .663이라는 성적을 보여주며, 전형적인 AAAA리거의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1999년엔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했고, 중간중간 콜업이 되었으나, 백업으로나 쓸 만 했으니, 결국 시즌이 끝나고 200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했으며, 여기서도 콜업됐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2001 시즌 중에 핸리 프리아스를 상대로 미네소타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역시나 미네소타에서도, 눈에 띌 성적은 보여주지 못 하고, 마이너리그에서만 활동하다가 방출되었고, 2002년에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했으나, 또 다시 방출, 2003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했지만 부상까지 입으며, 아예 시즌 아웃. 결국 개막 당일 또 방출되었고, 2004년 플로리다 말린스와 계약을 하고, 21홈런 73타점 .373 .475 .692 1.166이라는 성적을 찍으며, 콜업까지 됐지만, 백업으로 나왔던 데다,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지명할당되고 나서 팀을 찾고 있었고, 외국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KBO 리그에서 오퍼가 들어왔다.


2.2. 현대 유니콘스[편집]



파일:external/1.bp.blogspot.com/123.jpg


파일:external/image3.inews24.com/1156063060_1.jpg

▲ 당시 캘러웨이와 같이 찍었던 사진.

클리프 브룸바와 재계약을 포기한 현대 유니콘스가 총액 25만 달러에 영입하면서, KBO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시절에 같이 뛰었던 선수가 미키 캘러웨이.[5]

시즌 초반에는 적응을 못 하며, 퇴출 1순위로 거론되는가 싶더니, 5월부터 타격이 살아나면서 맹활약했다. 35홈런 102타점 76득점 타출장 .292 .411 .592 OPS 1.003 등의 뛰어난 성적으로 외국인 좌타 최초로 홈런왕을 먹고,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까지 거머쥐었다. 현대 유니콘스 강타자는 2003 심정수, 2004 브룸바, 2005 서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당시, 송지만, 이숭용과 함께 막강 클린업트리오를 구축했으나 다만, 2005년은 현대 유니콘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시즌으로 7위를 랭크한 시즌이다. 암울했던 시즌에 캘러웨이와 함께 투타에서 분전했으니. 말그대로 서튼과 캘러웨이에게는 잊을 수 없는 시즌이었다.

외국인으로서는 KBO 리그 첫 좌타 홈런왕이었고, 만 35세로 외국인 선수 중에서 2017 시즌이 끝난 지금에서도 최고령 홈런왕이다. 이런 나이에 그 성적을 기록했으니... 더군다나 지난해에 비해 경기 수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1개 더 많은 홈런을 때려냈다. 홈런&타점&장타율 3관왕을 차지하고 볼넷도 86개나 얻어냈음에도 삼진은 101개에 병살타는 단 3개만 친 강타자였다.

2005 시즌이 끝나고, 원래 늘 같이 동계훈련을 하던 마이크 스위니 외에 2001년에 자신과 한솥밥을 먹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강타자인 알버트 푸홀스와도 함께 훈련하며 그의 타격폼을 익히겠답시고 자신의 타격폼을 고쳤는데, 이게 독이 되어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성적이 하락했다. 여기에 무릎부상이 겹치며 93경기에 나서는데 그쳤고 주력이 감소해 병살타도 급증했다. 결국 타율 .266 18홈런 61타점이라는 평범한 성적을 남기고 현대와의 재계약에 실패했다.

하지만 세부 기록을 보면 이 시즌 서튼의 기록은 절대로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기록이었다. 클래식 스탯만 보면 별볼일 없어보이지만 비율스탯을 다 따져보면 타출장 .266/.378/.489 OPS .868 wRC+ 155.2로, 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잦아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펠릭스 호세 바로 다음가는 수준의 타격 지표를 나타냈다. 2005년에 한껏 높인 기대치+극심한 투고타저로 인한 클래식 스탯 부족+부상으로 인한 누적 스탯 부족+세이버매트릭스 스탯에 대한 가치 인식 부재가 전반적으로 겹쳐서 저평가를 받은거지 투고타저가 극심하던 2006년 KBO에서 서튼의 성적은 분명 훌륭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가 재계약하지 않은 것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는데, 2006 시즌 종료 시점 기준 36세였던 서튼은 이미 2005년에 비해 하락한 성적으로 노쇠화의 기미를 보였고, 여기에 부상으로 인해 나선 경기 수 자체가 부족했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에이징 커브에 따른 노쇠화에 부상 여파가 겹치면 내년에는 성적이 더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고, 이 때문에 현대는 서튼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2.3. KIA 타이거즈[편집]



파일:news1174380552_60842_1_m.jpg


하지만 부상만 없었다면 2006년의 성적 역시 훌륭한 성적이었고, 그래서 2005년의 기대치가 아직 남아있었던 터라, 서튼을 믿고 손을 내민 구단이 있었으니 바로 KIA 타이거즈였다.

그러나 현대의 판단이 맞아떨어지며 서튼의 성적은 더욱 하락했다. 눈야구는 됐지만 장타력이 예전같지 않아 기대에 걸맞지 않게 똑딱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거기에 2006년에는 부상 여파로 지명타자로만 나섰지만, 기아에서는 이재주의 존재로 좌익수로 다시 옮겼고 그 결과 나지완에 버금가는 최악의 수비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득점권 상황에서 부진했던 점도 한 몫 했다. 결국 최희섭의 합류로 좌타 거포 수요가 충족되자, 서튼은 팀에서 방출되었다.

최종 성적은 34경기에 나와 타출장 .274/.398/.425 OPS .823 3홈런 10타점 14득점을 기록했다. 장타력의 격감으로 4할대에 턱걸이하는 간당간당한 장타율과 노쇠화로 기량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좋은 선구안으로 OPS 8할대를 기록했다.

서튼은 이후 인터뷰에서 KIA 시절에는 본인의 몸 상태가 좋지 못했던 데다가 부인의 출산이 임박해 있어 급하게 한국을 떠났어야 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KIA와의 인연 덕분인지 2008년 시즌이 끝나고, 자신을 데려갈 팀을 찾고 있던 아킬리노 로페즈는 서튼의 추천으로 한국 땅을 밟았으며, KIA 타이거즈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로페즈는 알다시피, 대폭발하면서 V10을 달성하게 된다. 당연히 타이거즈 팬들은 서튼을 대인배라고 칭송해줬다.

그리고, KBO 리그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로페즈는 헥터 노에시를 추천해줬다. 그리고 헥터는 알다시피 양현종과 함께 타이거즈 역사상 최고의 원투펀치로 꼽혔고, V11을 달성하게 된다. 타이거즈가 해태에서 KIA로 바뀐 이후 차지한 두번의 우승에서 숨은 공로자였던 셈.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래리 서튼/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7
KC
27
.290
16
2
0
2
8
9
0
5
0
12
.338
.406
.744
1998
111
.245
55
14
2
5
42
29
3
29
3
46
.311
.352
.663
1999
43
.225
15
6
0
2
15
14
1
13
0
17
.308
.343
.65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0
STL
23
.320
7
0
0
1
6
5
0
5
0
7
.406
.440
.846
2001
33
.119
3
1
0
1
3
3
0
1
0
10
.140
.214
.354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2
OAK
7
.105
2
1
0
0
1
3
3
1
0
8
.150
.263
.413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4
FLA
8
.200
1
1
0
0
0
1
0
0
1
2
.333
.200
.533
MLB 통산
(7시즌)
252
.236
98
23
2
12
78
63
4
55
3
102
.302
.346
.64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5
현대
119
.292
124
18
2
35
(1위)
102
(1위)
76
0
86
4
101
.411
.592
(1위)
1.003
2006
93
.266
88
18
1
18
61
50
0
59
2
72
.378
.489
.86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7
KIA
34
.274
29
7
0
3
10
14
0
21
1
25
.398
.425
.823
KBO 통산
(3시즌)
246
.280
241
43
3
56
173
140
0
166
7
198
.397
.532
.929


4.1. 수상 내역[편집]


수상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5)
홈런 1위 (2005)
타점 1위 (2005)
장타율 1위 (2005)


5. 여담[편집]


  • 마구마구 초창기 2005 시즌 카드[6]가 베이직 스페셜카드임에도 불구하고 파워가 83이나 되어 기본팀을 현대로 고르는 유저들이 많았다. 베이직카드로 엘리트를 지급하는 현재는 사용빈도가 적어졌지만 현대 올스타에서 여전히 순속 대타로 많이 쓰인다. 성명권 문제로 인해 이름은 '래리.S'로 나온다.

  • 컴투스 프로야구 for 매니저에서 라이선스를 받지 못해 가명으로 되어 있는 유일한 외국인 용병 선수이다. 2020년 롯데 2군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유저들이 사진 추가를 기대했지만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는 상황.

  • 다른 팀의 감독들과 달리 감동님 드립에서 유래한 별명은 없는데, 일부에서는 이름이 으로 끝난다는 이유로 이름 서튼과 튼동님을 합쳐서 서튼동님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반면 못하는 경우엔 돌을 붙여서 돌튼 혹은 석(石)튼, 그리고 서툴다는 뜻으로 래리 서툰 감독이라는 멸칭도 있다. 투수를 혹사할 때는 서이콘, 답이 없는 경기 운영을 할 때는 백시진이라고도 불린다.

  • 민초단이다. 전담 통역사에 따르면 디저트의 90%는 아이스크림이며, 배스킨라빈스에 가면 30번 중 29번은 민트 초콜릿 칩을 선택한다고 한다. 최근에도 배스킨라빈스에서 민트 초콜릿 칩을 먹는 장면이 포착되었다.#[7]

  • 아내가 도미니카 출신이다. 그래서 미국이 아닌 도미니카 공화국에 거주한다고 한다.


  • 지도자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농군바지 패션을 고집한다.[8]

  • 감독 스타일 중 하나로 유망주들의 중용을 고집하고 양아들 운용이 있다는 평이 있지만 알고보면 의외로 상당히 혹독하게 유망주들을 조련시키는 스타일이다. 유망주들에게 처음엔 널널한 상황에서 기용를 하고 잘 한다면 타이트한 상황에서 중용하고 설령 그때 실패하더라도 몇 경기를 더 투입시켜준다. 하지만 계속 실패한다면 가차없이 2군으로 내치고 다른 이들을 중용한다.[9] 간단히 말하면 기회 줄 때 잘 하라는 스타일. 장점으로는 유망주들이 이렇게 혹독한 생존 경쟁에서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1군 자원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는 걸 뜻하는 것이지만 단점으로는 이거 하나 때문에 경기가 불필요하게 타이트하게 흘러가면서 패배로 이어지는 점이 많았다는 점. 특히 부임 초기 이런 운용을 하다가 내주는 경기가 많았다.

  • 부임 이후 내내 원 팀(One team)을 강조한다. 승리할 때도 원 팀을, 패배할 때도 원 팀을 강조한다.

  • 북한 천리마-1 발사 사건 때 서울시가 발령한 경계경보를 받았다. 문자를 파파고로 번역해서 서울을 탈출하라는 내용을 읽고 다시 잤다고 한다. #

6. 관련 문서[편집]


[1] 2021년 5월 11일 허문회 감독이 경질된 직후 즉시 후임 감독에 선임됐고, 2023년 8월 28일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2] 2021년 6월 28일, 가족들의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를 하게 되며 잠깐 동안 최현 수석코치에게 감독직을 맡겼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돌아온 후 다시 감독직을 맡았다. 2022년 5월 11일에도 컨디션 저하로 하루 쉬어가면서 문규현 수석코치에게 감독직을 맡겼다.[3] KBO 리그 선수 출신의 외국 국적 감독으로는 2014년 두산 베어스송일수 감독이 있었으나 송일수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 한국인 출신이고,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내국인과 동일한 신분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래리 서튼을 최초로 간주한다.[4] 국내 타 프로 종목으로 넓혀 보자면 K리그1 대구 FC 감독을 역임했던 안드레 감독이 있다. 과거 안양 LG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선수 은퇴 이후 브라질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해 한국에서 코치 - 수석코치 - 감독까지 올라온 인물이었다. 2020년 사우디 리그 팀의 감독으로 이직했다.[5] 둘다 은퇴 이후 프로야구팀 감독을 맡게 되는데, 캘러웨이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뉴욕 메츠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으며, 서튼은 2023년 시점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있다.[6] 여담이지만, 현재는 05년도 엘리트 카드도 나왔다![7] 여기에 한 꼴갤러는 알바가 오른손으로 퍼주면 왼손으로 먹을 것이란 말을 남겼다.[8] 조동화도 그런 케이스다.[9] 2021년 정우준, 송재영, 박재민, 최민재, 이호연과 2022년 초 최건이강준이 기용되었다 실패하였다. 김진욱, 김도규, 김유영은 이런 기회를 잘 잡고 1군에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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