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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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존슨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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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RI_2001_WSChampion.gif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2001

파일:1990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1993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1994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1995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1997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1999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2000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1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2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4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90
1993
1994
1995
1997
1999
2000
2001
2002
2004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Johnson.png
랜디 존슨
헌액 연도
2015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7.3% (1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데이비드 콘
(캔자스시티 로열스)

랜디 존슨
(시애틀 매리너스)


팻 헨트겐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9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톰 글래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에리크 가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페드로 마르티네스
(보스턴 레드삭스, 1999년)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2년)


요한 산타나
(미네소타 트윈스, 2006년)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스티브 온티베로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랜디 존슨
(시애틀 매리너스)


후안 구즈만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그렉 매덕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케빈 브라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1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케빈 브라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제이슨 슈미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2년 ~ 199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왕
로저 클레멘스
(보스턴 레드삭스)

랜디 존슨
(시애틀 매리너스)


로저 클레멘스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9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탈삼진왕
커트 실링
(필라델피아 필리스)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케리 우드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탈삼진왕
케리 우드
(시카고 컵스)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제이크 피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파일:MLB 로고.svg 1999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워렌 스판 상

초대 수상자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앤디 페티트
(뉴욕 양키스)


파일:MLB 로고.svg 2001년 메이저 리그 베이브 루스 상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랜디 존슨 & 커트 실링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트로이 글로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보유 기록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20개
통산 최다 시즌 300탈삼진
6회[1]
최다 연속 사이 영 상 수상
4회[2]
최다 연속 워렌 스판 상 수상
4회
워렌 스판 상 최다 수상
4회[3]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번호 57번
래리 랜드레스
(1988)

랜디 존슨
(1988)


존 웨틀랜드
(1992~1994)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번호 51번
랜디 세인트 클레어
(1984~1988)

랜디 존슨
(1988~1989)


멜 로하스
(1990~1996)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51번
레이 퀴노네스
(1986~1989)

랜디 존슨
(1989~1998)


스즈키 이치로
(2001~2012, 2018~2019)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15번
스캇 뱅크헤드
(1987~1991)

랜디 존슨
(1992)


데이브 슈미트
(1992)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34번
브렛 분
(1992)

랜디 존슨
(1993)


에릭 플래텐버그
(1993)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51번
호세 카브레라
(1997~1998)

랜디 존슨
(1998)


호세 카브레라
(1999~200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번호 51번
마이크 로버트슨
(1998)

랜디 존슨
(1999~2004)


결번
뉴욕 양키스 등번호 41번
미겔 카이로
(2004)

랜디 존슨
(2005~2006)


미겔 카이로
(2004)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번호 51번
결번

랜디 존슨
2007~2008)


영구결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51번
노아 로리
(2004~2007)

랜디 존슨
(2009)


저스틴 크리스티안
(2011~2012)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No. 51
랜디 존슨
Randy Johnson

본명
랜돌 데이비드 존슨
Randall David "Randy" Johnson
출생
1963년 9월 10일 (60세)
캘리포니아 주 월넛 크릭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학력
리버모어 고등학교 -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체
208cm | 102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좌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89번, ATL)
1985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36번, MON)
소속팀
몬트리올 엑스포스 (1988~1989)
시애틀 매리너스 (1989~1998)
휴스턴 애스트로스 (1998)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9~2004)

뉴욕 양키스 (2005~2006)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7~2008)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09)
기록
퍼펙트 게임 (2004. 05. 18.)
노히트 노런 (1990. 06. 02.)

등장곡
Guns N’ Roses - 《Welcome to the Jungle
종교
개신교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선수 경력
3. 기록의 사나이
6. 은퇴 이후
7. 피칭 스타일 및 평가
8. 수상 내역
9. 비둘기 폭파 사건
10. 여담
11. 연도별 성적
12. 관련 문서
1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미국의 前 야구 선수, 現 사진가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대표 & CEO 특별보좌. 선수 시절 포지션은 투수.

MLB 역사상 2,5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K/9 10.5개를 넘긴 유이한 선수이자[1] 2001년 K/9 13.41개을 기록하며 단일 시즌 K/9 13개를 넘긴 3명의 선발투수 중 한 명이며[2]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함께 1990년대 전체 누적으로 K/9 10을 넘긴 2명뿐인 투수다.[3] 1990년대에 2,538K로 가장 많은 삼진을 잡아냈고, 2000년대에도 2,182K로 가장 많은 삼진을 잡아냈다. 또한, 역대 좌완투수 중 가장 많은 삼진을 잡아냈다. 4시즌 연속 250K's를 잡은 4명 중 1명이기도 하다.[4]

커리어 통산 4135.1이닝, 303승[5] 166패, 평균자책점 3.29, 4,875K/1,497BB, ERA+ 135, ERA- 75, bWAR 103.5, fWAR 110.4.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고등학교 졸업 후 1982년 드래프트에 참가한 존슨은 4라운드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지명을 받았다. 이때 애틀랜타는 당시 기준으로 4라운드 지명자에게는 매우 파격적인 계약금인 5만 달러를 제시했는데, 존슨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제안을 거절하고 USC에 진학하게 된다. 당시 팀 동료이자 투타 겸업을 하던 마크 맥과이어는 존슨의 피칭을 보고 아, 저런 사람만이 투수를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어 타자로 완전히 전업하였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6]


2.2. 몬트리올 엑스포스[편집]



파일:external/mlbreports.files.wordpress.com/randy-johnson-expos.jpg

[7]

2년 후인 1985년, 존슨은 동 해 드래프티 중 전체 4순위 유망주로 평가받았었지만 하필 당해에 성적이 부진한 나머지 순위가 많이 밀려 2라운드에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받았고 몬트리올과의 입단 계약을 맺었다.

208cm라는 NBA 평균 신장보다 큰 키와[8] 무시무시한 강속구로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프로에 와서는 무슨 소년야구만화의 주인공처럼 제구 불안에 시달리는 그렇고 그런 유망주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 당시에는 오버핸드였다. 리키 핸더슨은 존슨과의 첫 대결에서 4타석, 4볼넷, 5도루, 4득점을 따내며 존슨을 아주 가지고 놀았을 정도. 유망주로서는 비교적 많은 나이와 제구불안 때문에 엑스포스는 1989년 시즌 도중 그를 마크 랭스턴과 트레이드시켜 시애틀 매리너스로 보내버린다.[9]


2.3. 시애틀 매리너스[편집]



파일:external/espngrantland.files.wordpress.com/randy-johnson-mariners-tri.jpg


그러나 시애틀 이적 이후 1990시즌부터 10승 이상과 3점대 평균자책점을 꾸준히 찍어주는 준수한 투수가 되었다. 1990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기도 했고 당대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교타자 웨이드 보그스를 상대로 단일 경기에서 3K를 잡아낸 최초의 좌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구불안은 여전해서 1990~1992 3시즌 연속 볼넷왕이라는 영 좋지 않은 타이틀을 가져가는 등 여전히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상태였다.

1992년 7월에 8연패라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자 경기 전 상대팀의 한 투수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게 바로 놀란 라이언이었다. 라이언은 상대팀 선수인 그를 성심성의껏 도와주었고, 라이언과 전담코치의 노력 끝에 제구력을 안정시키게 된다.[10]

놀란 라이언의 교육이 효과를 봤는지, 랜디 존슨은 이후 두 달 조금 넘는 남은 시즌 동안 3.30 ERA를 찍었고, 9월 27일 놀란 라이언과의 맞대결 경기에서는 MLB 최후의 160구 경기를 치르며 8이닝 18K 경기를 치렀다.[11] 1992년 시즌이 끝났을 때, 존슨은 만 29세의 나이로 일반적인 에이징 커브에 따르면 최전성기가 지나는 시점이었고 [12] 이때까지 커리어를 살펴봐도 49승 48패 평균자책점 3.73에 BB/9가 5가 넘는 구위는 좋은데 제구가 불안한 투수의 전형이었다.[13] 그러나...

1992년까지 5~7개 수준의 BB/9을 기록하던 존슨은 1993년부터 커리어가 끝날 때까지 BB/9이 4개 이상인 시즌이 없다. 제구가 잡힌 파워피쳐가 얼마나 무시무시해지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것.[14]

라이언을 만나고나서 존슨은 제구가 안정되었지만 그해 12월 개인 훈련을 하느라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자책감에 빠진 존슨은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듣고(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MLB 역사에 남을 대투수로 성장하게 된다.

1993년에 255⅓이닝을 던지며 308K, 99BB,[15] 19승 8패, 3.24 ERA을 찍더니, 1994년에는 파업에도 불구하고 172이닝 동안 204K를 잡아 13승, 6패, 3.19 ERA로 사이영 투표 3위에 올랐다.[16][17] 이 시즌 4월 25일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로저 클레멘스를 상대로 2실점 완투승을 거뒀다.[18]

여담으로 1993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존슨은 당시 최강팀이였던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 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당시 토론토의 GM 팻 길릭은 데드라인때 토론토의 전력을 어떻게든 상승시키기 위해 안전빵으로 두개의 별도 대형 트레이드 시나리오를 동시에 진행했는데, 그 대상 중 하나는 시애틀의 존슨이였고, 다른 하나는 오클랜드의 리키 헨더슨 이였다. 길릭은 오클랜드의 GM과 먼저 대화를 하여 트레이드에 구두합의를 하였지만, 당시 헨더슨은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어서 일단 그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였다. 헨더슨이 거부할 가능성이 꽤 크다고 봤던 길릭은 안전빵으로 시애틀과도 존슨을 대상으로 네고를 하였고, 결국 시애틀과도 사실상 트레이드에 합의한 상태였다. 근데 데드라인이 되기 불과 몇시간 전에 헨더슨이 의외로 트레이드에 동의하자, 길릭은 사실 원했다면 여전히 존슨을 대신 선택할 수 있었지만 먼저 네고를 한 오클랜드 GM과의 의리를 생각하여 결국 핸더슨을 대상으로 트레이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헨더슨이 토론토에서 그리 큰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팀이 결국엔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던 것을 보면, 만약 존슨이 이 때 토론토로 갔다면 그의 커리어 첫 우승은 2001년보다 훨씬 전인 1993년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19]


1995년에는 파업 여파가 이어지며 시즌이 단축되었음에도 214⅓이닝 동안 294K[20]를 잡는 활약으로 18승, 2패,[21] 2.48 ERA를 찍고 커리어 첫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한다. 더 뜻깊은 것은 이 해 시애틀은 창단 첫 지구우승을 달성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 과정이 정말 극적인 것이, 이 때 시애틀은 8월 말까지 당시 지구 선두였던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게 10게임이나 뒤져있었다. 그러나 팀의 막판 스퍼트로 동률을 달성했고, 지구우승을 놓고 벌인 원게임 플레이오프에 3일 휴식 후 등판한 존슨은 완투승을 거두었다.

다만 이 때문에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등판하지 못했고 시애틀은 뉴욕 양키스에게 1,2차전을 모두 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리 3일 휴식만을 취한 존슨은 3차전에서 선발승을 따내며 팀을 탈락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단 하루 쉬고 5차전 9회 동점 무사 1,2루 위기에서 등판해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결국 3이닝, 1실점, 6K 구원승을 거두는 괴물같은 활약으로 팀을 챔피언시리즈까지 진출시켰다. 다음 상대는 당대 최고의 핵타선이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는데 존슨은 인디언스를 상대로 3차전에서 비록 8회에 나온 수비에러로 인한 비자책점으로 선발승을 따내진 못하지만 8이닝, 2실점(자책1점)으로 승리에 기여했다. 그리고 2승 3패로 탈락위기에 몰린 팀을 위해 6차전 또다시 3일 휴식 후 등판하지만 타선의 침묵과 수비진의 지원을 받지 못해 7회까지 비자책 1실점만을 허용했음에도 팀은 0:1로 끌려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8회에도 등판한 존슨은 결국 시즌 말미 계속된 피로가 쌓였던 탓인지 3점을 내주게 되고 매리너스는 그대로 완봉패하며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탈락하게 된다. 하지만 양키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매리너스가 명승부를 펼치면서 당시 인기 저조로 연고지 이전 논란까지 있던 시애틀에 야구 열기를 불지폈고 이는 오히려 새구장 건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해당 문단 참조.

1996년에는 허리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아웃이 됐지만 1년 만에 회복하고 이듬해에 복귀, 1997년에 213이닝 291K 20승 4패 2.28 ERA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런데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에서 전부 2위라는 트리플 라운을 기록. 다승과 탈삼진에서 하나 차이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저 클레멘스에게 사이 영 상을 내준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ALDS 1차전에서 5이닝 5실점 7피안타 3K/4BB로 망하면서 7이닝 2실점 9K/0BB의 마이크 무시나에게 패했고, 4차전에서는 8이닝 3실점 7피안타 13K/2BB로 분전했으나 7이닝 1실점 7K/3BB의 마이크 무시나에게 또 패하면서 팀도 탈락했다.


2.4. 휴스턴 애스트로스[편집]



파일:external/cdn3.sbnation.com/randy-johnson-astros-getty.jpg


이듬해에는 재계약과 트레이드[22]가 무산된 시애틀에서 9승 10패 4.33 ERA라는 영 좋지 않은 태업성 플레이를 펼치다가 시즌 중반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 후 10승, 1패, 평균자책점 1.28, 시즌 탈삼진 329K[23]로 진정한 괴수로 거듭나게 된다.[24][25] 아직까지도 2004년의 카를로스 벨트란과 함께 반년 렌탈의 레전설로 꼽힌다. 샌디에이고와의 1998 NLDS에서도 1차전 8이닝 2실점/4차전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1차전에서는 8이닝 0실점의 케빈 브라운에게 밀리고 4차전에서는 6이닝 1실점의 스털링 히치콕에게 밀리면서 2번 다 패배하며 팀도 탈락했다.


2.5.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편집]



1998 시즌이 끝나고 그해 겨울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치열한 영입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디백스의 4년 5,340만 달러 제안을 택하게 된다.[26]

활약상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MLB.COM 선정 역대 최고의 FA 계약 1위. FA 기간 동안 존슨은 4년 연속 사이 영 상워렌 스판 상을 석권하고, 2001 월드 시리즈 MVP에 올랐다. 야구선수의 나이가 만으로 35세면 기량이 떨어져서 신인들에게 자리를 위협받거나 벤치신세가 될 수 있는데, 이 양반은 그 나이에 약물을 했건 안 했건 당대 최고 에이스들과 슬러거들이 즐비했음에도 상대 팀타선을 초토화시켜버렸다. 게다가 애리조나의 홈구장 뱅크원 볼파크(현 체이스 필드)는 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 친화 구장이다. 그런데 그런 구장에서 이런 사람같지 않은 성적을 올린 원투펀치 덕분에 당시의 라이트팬들에겐 타자친화 구장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쓸어담은 1999~2002년의 성적을 간단히 살펴보면

1999년, 17승, 9패, 271.2이닝, 2.48 ERA, 364 탈삼진, 12완투, 2완봉승 fwar 9.5 bwar 9.1
2000년, 19승, 7패, 248.2이닝, 2.64 ERA, 347 탈삼진, 8완투, 3완봉승 fwar 9.6 bwar 8.1
2001년, 21승, 6패, 249.2이닝, 2.49 ERA, 372 탈삼진,[* k/9이 무려 13.41이다.] 3완투, 2완봉승 + 월드 시리즈 공동 MVP fwar 10.5 bwar 10.1
2002년, 24승, 5패, 260.0이닝, 2.32 ERA, 334 탈삼진, 8완투, 4완봉승 + 트리플 크라운[27] fwar 8.1 bwar 10.7

4년간 81승, 27패, 1030이닝, ERA 2.48, 1417 탈삼진
연평균 20승, 7패, 258이닝, ERA 2.48, 354 탈삼진[28]

참고로 클레이튼 커쇼가 2008년 데뷔 후 2014년까지 잡아낸 삼진 개수가 1445개로, 존슨은 커쇼가 7년 동안 잡아낸 삼진과 비슷한 개수의 삼진을 4시즌만에 잡아버린 셈이다. 동시기 옆동네에서 리그를 초토화시키던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함께 인간계를 아득히 초월한 성적을 찍었다. 이 4년간 케빈 브라운, 톰 글래빈과 정말 많이 붙었다.

2003년에 부상으로 잠깐 고생했지만 2004 시즌에 부활, 부실한 팀 타선과 수비 때문에 승수는 16승밖에(?) 못 찍었지만 만40세 역대 최고령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는 등 여전히 리그 최고의 투수임을 증명하는 성적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승수가 아쉬웠던 탓에 1997년에 이어 또다시 휴스턴 애스트로스로저 클레멘스에게 사이영상을 내주고 만다. 하지만 약켓이 트리플크라운으로 랜디 존슨을 확실히 제압한 1997년과 달리 이번엔 현지는 물론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었다.[29]


물론 디백스 시절하면 가장 유명한 건 역시 2001시즌 원투펀치 파트너였던 커트 실링과 함께 엄청난 활약으로 팀을 우승시킨 것. 뉴욕 메츠와의 1999 NLDS 1차전에서 8.1이닝 7실점으로 거하게 망했던 랜디는 2년 후 월드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상대하면서 2차전 완봉을 하고서 6차전을 선발 등판하고 바로 다음날 끝장 승부에서 7차전 구원등판하는 위력을 보였다. 하긴 마무리 김병현이 두 게임이나 무너져버려서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긴 했다. 2001년의 활약으로 플레이오프에 약하다는 이미지는 깨끗이 날아갔다. 커트 실링과 함께 2001 월드 시리즈 공동 MVP 선정. 자세한 사항은 2001 월드 시리즈 항목 참조.

그러나 이어지는 세인트루이스와의 2002 NLDS 1차전에서는 6이닝 6실점 10피안타(2피홈런)로 난타당했고 팀도 0:3으로 탈락했다.

이 시기 존슨은 페드로와 함께 최고의 투수였고 동시에 투타 합쳐서 배리 본즈 다음가는 2위로 페드로와 함께 언급되었으며, 매덕스/클레멘스를 포함한[30] 다른 투수들과는 어느 정도 다른 레벨에 있음이 수치상 명백했다. 워낙 엄청난 피칭을 했던지라 메이저리그 역사상 페드로의 전성기와 비교가 성립하는 몇 안되는 투수였다.

랜디 존슨의 디백스 시절은 라이브볼 역대 최고의 투수 전성기 다섯 손가락 안에 그 어떠한 이견조차 없이 반드시 들어간다. 또한 역대 좌완투수 전성기 목록에서 클레이튼 커쇼나 샌디 코팩스도 가볍게 압살하는 성적이며, 다른 선수의 경우엔 진지하게 이걸 5년만 하더라도 충분히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성적이다.

2.6. 뉴욕 양키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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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시즌 종료 후, 연봉부담 때문에 디백스는 랜디 존슨의 트레이드를 시도했고, 2000년 이후 번번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뉴욕 양키스가 슈퍼에이스의 역할을 기대하며 그를 데려온다. 등번호는 41번[31] 그렇지만 뉴욕 언론들은 엄청난 관심을 보임과 동시에 간섭과 감시도 함께 했는데 이는 조용한 성격의 랜디에게 심리적으로 엄청난 압박이 되었다. 실제로 자꾸 귀찮게 구는 카메라를 거칠게 밀쳐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아무리 최강의 에이스라고 해도 어느덧 만 41세 노장이 되었는데 전성기가 지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그 우려는 어느정도 맞아떨어지며 2005시즌에는 17승 8패에 3.79의 ERA로 평균이상의 성적을 냈지만 기대했던 압도적인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여기에 2006시즌에는 타선의 도움으로 2년 연속 17승을 기록했지만 처음으로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고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1경기 5.2이닝 5실점으로 부진, 체면을 심히 구기며 팀의 광탈에도 일조하고 만다.[32]

2005년 지하철 시리즈 당시, 뉴욕 메츠에서 뛰던 구대성에게 '충격적인' 2루타를 허용하고, 뒤이은 구대성의 폭발적인 홈 대쉬[33]로 점수까지 헌납한 사건은 한국 팬들에게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2.7.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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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7시즌을 앞두고 형이 세상을 떠나자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며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에게 디백스로의 트레이드를 요청, 다시 피닉스로 돌아와서 2007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몇 경기 못 나오지만 2008년 44세라는 야구선수로는 환갑 수준의 나이에도 11승10패 184.0이닝 평균자책점 3.91를 기록하며 선전했고, 시즌 최종전에서는 통산 100번째이자 마지막 완투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또 2008~2009시즌, 리그에서 2번째로 나이가 많은 선수였다.


2.8.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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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시즌 종료 후 디백스는 고령의 그를 더 안고갈 뜻이 없었고[34], 300승과 5000탈삼진, 조금 무리하자면 놀란 라이언 추월까지 목표로 하던 랜디 존슨은 다른 팀을 찾아야 했는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그의 새로운 팀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 6월 5일, 워싱턴 내셔널스 원정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메이저리그 역대 24번째 300승에 성공한다. 300승 이후 처음으로 체이스 필드 원정경기에 등판하던 날에는 디백스 팬들도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줬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불펜으로 강등된 끝에 2010년 1월 5일 결국 은퇴를 선언, 역사적인 커리어를 마감했다.

MLB 네트워크에서 선정한 그의 커리어 명장면 9개 The best of the Big Unit


3. 기록의 사나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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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 영 상을 4년 연속[35] 포함 5회 수상으로 역대 2위[36], 그리고 양대리그에서 수상[37]

  • 통산 4875개의 탈삼진으로 역대 2위,[38] 9번의 탈삼진왕, 통산 6회 300K 시즌.[39] 특히 2001년에 달성한 372K는 라이브볼 시대 한정 단일시즌 3위의 기록이다.[40][41] 또한 2002년에 달성한 334K는 2015년 클레이튼 커쇼가 301K를 달성하기 전까지 마지막 300K 기록이었다. 무려 12년간 300K 투수가 없었던 셈.

  • 2010년대 이전 투수 중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함께 단 둘 뿐인 통산 9이닝당 탈삼진 10개 이상 기록 보유자이다.

  • 한 경기 무사사구 20K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위엄 한경기 20K는 1962년 톰 체니(16이닝 21K), 1986년 로저 클레멘스(9이닝 20K), 1996년 로저 클레멘스(9이닝 20K), 1998년 케리 우드(9이닝 20K), 2001년 랜디 존슨(9이닝 20K), 2016년 맥스 슈어저(9이닝 20K)가 기록했다. 하지만 무사사구 20K는 랜디 존슨이 유일. 다만 이 기록의 달성 과정에서 경기가 연장전에 돌입하는 바람에 정규이닝 20K 기록으로 카운트되지는 않았으나 사무국에서 뒤집어 정식기록으로 인정되었다. 해당 경기 게임 로그; 10회초부턴 김병현이 등판한다.[42]

  • 그가 29세 이후부터 기록한 254승은 명예의 전당 투수필 니크로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또한 300승 달성은 통산 24번째이자 현존 마지막 기록인데 달성 시점의 나이(45세 265일)가 필 니크로(46세 188일) 다음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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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양대리그 노히트 달성자

  • 양대리그 노히트[43] 달성자이며, 그 중에서 퍼펙트게임은 역대 최고령이며 이날 잡아냈던 13개의 탈삼진은 역대 2위다.[44]


  • 통산 좌타자 피안타율이 0.199에 달한다. 가히 역대 최고의 좌타자 킬러.

  • 유일하게 투구로 비둘기를 맞힌 경험이 있다.[45] 이런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대략 190억 분의 1이라고 한다.

  • 명예의 전당 투표 역대 좌투수 득표율 1위

  • 통산 100완투.[46] 현재까지 명예의 전당 입성자 중 마지막 100완투 투수이며, 현대 야구의 트렌드 상 불멸의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다.[47][48]

그야말로 리그 MVP를 제외한 투수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는 다 누렸다.[49] 올스타전 10회 출전은 덤.

4. 그의 전성기와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랜디 존슨/전성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명예의 전당 통계[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랜디 존슨
99
280
331
65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9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랜디 존슨
102.1
62.0
82.0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6. 은퇴 이후[편집]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파일:external/cdn.bleacherreport.net/98417605_display_image.jpg

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 홈개막전에서 시구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시구하기도 했다.

201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10주년 기념으로 함께 역대 최고의 원투펀치 파트너였던 커트 실링과 함께 시구를 했다. 아쉽게도 김병현은 참가하지 않았다. 사실 2001년 월드시리즈 멤버 중 아직 현역으로 뛰는 선수는 미겔 바티스타와 함께 몇 안된다. 그나마 라일 오버베이가 나오긴 했지만 얘는 당시에 대타로 몇 번 뛰었던 정도고 게다가 마침 애리조나 선수라서 부르기 쉬웠던 것.

2012년 1월에는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아무래도 매리너스 모자를 씌워서 명예의 전당에 보내려는 계획이 암암리에 진행 중인듯 하다. 물론 이 다음에 디백스가 영구결번을 단행한다면 또 모른다만.

트위터를 하면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또한 rj51photos.com을 운영하며 전공(포토저널리즘)을 살려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올리고 있다. (엠엘비파크 글) 2013년 1월 오랜만에 공을 던져봤는데 89.4마일(=143.8km)이 나왔다는 글을 올려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한동안 트위터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며 팬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였으나, 근래에는 전부 비공개로 돌린상태.

파일:external/sports.cbsimg.net/USATSI_7919400-Randy-Johnson-Hall-of-Fame.jpg

2014년 5월 18일 디백스와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퍼펙트게임 10주년 기념 시구를 하였다. 영상 포수는 당시 배터리를 이루었던 로비 해먹인데 10년 전처럼 시구를 받고 기뻐서 뛰는 모습을 재연하였다. 한편, 디백스의 홈임에도 원정 유니폼을 입은 이유는 당시 퍼펙트게임 경기가 애틀랜타 원정이었기 때문.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50세를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팔로만 집어던진 공이 레이저처럼 포수 미트로 빨려들어간다. "그 날로부터 모두 열 살을 더 먹었습니다. 당신만 빼고요."라는 해설자의 반응이 압권.

2014년 11월달에는 한국을 방문했다. 마리아노 리베라에 이어 또 다른 메이저리그 전설이 같은 해, 같은 달에 한국을 찾은 근래 보기 드문 사례. 방문지 중에는 해군사관학교와 미군기지가 있다. 거북선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개인 행사인 리베라와 달리 랜디 존슨은 미군에서 초청한거라 한국 팬들과 쉽게 만나기는 힘들지도.

2022년 10월에 알려진 바로는 NFL의 사진기자로 활동 중이라 한다.

2015년 명예의 전당 투표를 앞두고 몇몇 기레기들이 다른 아쉬운 선수들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이유를 들며 랜디와 페드로를 뺀 투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지만, 결국 1월 6일 페드로 마르티네즈, 존 스몰츠와 함께 입후보 첫해 입성에 성공했다. 97.3% (534/549)의 득표율은 매덕스를 0.1% 앞선 역대 10위 기록[50]이며 투수로 한정할 경우 마리아노 리베라(100%), 톰 시버(98.84%)와 놀란 라이언(98.79%)에 이은 4위이자 좌완 투수 역대 1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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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명예의 전당 공식 입회식 사진.[51] 키 큰 사람이 랜디 존슨.

기자회견장에서 명예의 전당 유니폼 단추를 매던 중 스몰츠가 의자 위에 올라가 자신의 머리 위에 모자를 씌어주는가하면 단추를 잘못 끼워 기자들을 폭소케 하기도 했다. 빅 유닛 챙겨주는 스몰츠 한편 존슨은 27%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신 에드가 마르티네즈도 명전에 헌액되어야한다는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디백스 측에서는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정되던 날 존슨을 대표 겸 CEO 특별보좌에 임명하고 그의 등번호 5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존슨은 디백스의 팜에 있는 어린 투수 유망주들에게 멘토로서의 역할을 주로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존슨 본인 또한 너무나 큰 키 등 신체적 특징이 남달라 프로 커리어 초반에는 제구력 문제 등을 보였고, 본인에게 맞는 투구동작과 패턴을 익히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어린 유망주 투수들에게 해줄 말이 많을 것 같다고. 덧붙여, 명예의 전당에 새겨질 동판에 디백스의 모자를 새기기로 결정하였다.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등록된 그의 주요 팀(primary team)은 시애틀 매리너스이나, 세간에 널리 인식되는 건 동판에 새겨지는 모자 로고이니 사실상 그를 대표하는 팀은 애리조나인 셈.[52]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음에도 시애틀 매리너스의 영구결번은 아직 받지 못했는데, 명전에 애리조나 모자를 쓰고 간 것도 있지만 시애틀의 51번은 존슨 말고도 스즈키 이치로가 있어서 양키스의 빌 디키/요기 베라를 공동 영구결번한 사례처럼 이치로가 명예의 전당에 간 후에 존슨/이치로 공동 영구결번 처리를 하지 않겠냐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7. 피칭 스타일 및 평가[편집]


파일:빅유닛 투구폼.gif
97mph(156km/h) 패스트볼

파일:빅유닛 패스트볼.gif
98mph(157km/h) 패스트볼

파일:본즈vs빅유닛.gif 파일:본즈vs빅유닛2.gif
당시 최전성기를 맞았던 2001년의 배리 본즈를 99마일(159.3km/h) 패스트볼로 잡아내는 모습
파일:랜디존슨101.gif
101mph(162.5km/h) 패스트볼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의 대표격 인물. 존슨 이후 나오게 되는 좌완 쓰리쿼터 파이어볼러가 나올 때마다[53] 그가 언급된다.

208cm(6' 10")에 육박하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큰 축에 들어가는 신장[54]에서 뿌리는 패스트볼은 그 자체로도 위력적인데 평균구속이 94~96마일(151~155km), 최고 구속은 102마일(164km)[55]이 찍혔다.[56][57] 일반인은 130km만 돼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프로선수들도 160km의 공은 투구 패턴을 파악하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못 친다.[58]여기에 긴 팔로 사이드스로에 가깝게 던지는 투구폼과 큰 키에서 나오는 공 궤적으로 인한 디셉션 효과로 타이밍 잡기도 어려운데다 엄청난 익스텐션으로 인해 원래도 빠른 구속 이상으로 체감구속이 빠른 공을 던져댔으니... 더욱 대단한 건 경기 후반에도 구속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떨어져봤자 150km/h대 중반을 유지했다. 만 40살 때 퍼펙트 게임 경기에서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은 공이 무려 117구째 98마일 패스트볼이었다. 2000년대만 해도 메이저리그 선발 평속이 90마일(145km/h) 남짓이었는데 이 선수는 20대였던 시애틀 시절 평균 96마일을(155km/h) 던졌다. 이정도 구속은 구속혁명으로 평균구속이 급격히 상승하여 93마일(150km/h)에 이르는 2020년대 기준으로도 매우 빠른 축에 들어가며 특히 좌완 선발투수를 기준점으로 하면 독보적으로 빠른 수준. 물론 30대 중후반으로 접어들던 평균구속이 94마일 정도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100마일을 던질 수 있었다.

랜디 존슨의 구속이 정말로 대단한 것은 현재는 상상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이닝 수와 요즘같은 투구수 관리가 없던 시절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커리어 22시즌 평균이 200이닝에 가깝고 통산 완투가 100회다. 커리어 초반에 적게 던진게 아니라는 것. 게다가 선발투수의 투구 수를 많아도 100개 내외로 끊는 현재와 달리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선발투수가 120구 가까이 던지는 경기가 종종 있었고, 완봉이라도 가시권에 들어오면 140구 이상도 던지던 시절이었다.[59] 비록 존슨도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다소 구속이 감소하긴 했으나 현재 기준 혹사라는 표현을 아득히 뛰어넘은 이닝과 경기당 투구수에도 평균구속 94마일에 여전히 100마일을 던질 수 있었고 이 시기 사이영 4연패를 이뤄내며 최전성기를 누린다. 4년간 포스트시즌 포함 한시즌 평균 271이닝, 특히 2001시즌은 포스트시즌 포함 무려 291이닝을 던지면서도 여전히 리그 최고의 강속구를 뿌려댔다.

엄청난 이닝 소화와 투구수에도 그정도로 구속을 유지한 것도 대단한데 30대 중반부터 40대 초 시기에 오히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최전성기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 자체가 상식을 뛰어넘는 피지컬임을 알게 해준다. 주무기였던 슬라이더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알려진것 과는 달리 변화구가 아닌 패스트볼도 구속이 빠를수록 투수의 팔, 특히 팔꿈치에 매우 무리를 주는 구질이라서 강속구 투수들의 경우 부상이 잦고 부상 이후 구속이 감소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아저씨의 경우 커리어 동안 팔 관련 부상은 없었다. 팔 관련이 아닌 무릎과 허리 부상으로 몇번 드러누운적이 있긴 한데 무릎의 경우 프로선수뿐 아니라 일반인도 키가 크면 나이와 상관없이 부상 또는 관련 질환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아저씨는 나이들어서 부상이 왔고 젊어서는 쌩쌩했다. 허리는 선수생활 초기와 말년에 한시즌씩 말썽을 부렸을 뿐 선수생활 대부분은 문제가 없었다.

이런 존슨의 내구성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 사이의 주요 의견도 자신에게 맞고 밸런스 잡힌, 그리고 회전을 이용해 던지는 투구폼을 지닌 것이 롱런에 영향을 끼쳤다는 원론적인 내용 뿐이다. 사실 아무리 밸런스가 좋다고 해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신체를 쥐어 짜내도 단기간도 발휘하기 어려운 퍼포먼스가 남들보다 훨씬 긴 선수생활을 할 정도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타고났다는 말 외에 설명할 수가 없다.[60] 그냥 신의 축복으로 이해하자.

선수생활 초기에는 키킹이 높고 전반적으로 투구폼이 크고 상체가 흔들려 제구가 좋지 못했으나 끊임없는 연구와 놀란 라이언의 조언으로 키킹을 줄이고 디딤발 딛는 위치를 교정하는 등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폼을 찾은 덕분에 최고의 구위와 제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었다. 키가 너무 크다보니 뭔가 어색해 보이는 투구폼이긴 했지만 중심이동이 매우 깔끔했다. 거기다 긴 팔과[61] 사이드암에 가까운 쓰리쿼터 투구폼이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투구판의 1루 쪽 끝을 밟고 긴 왼팔을 옆으로 뻗었으니 1루쪽으로 한참 치우쳐있고, 스트라이드가 신장 대비 짧아 상체가 비교적 높은데 키까지 크다보니 팔각도는 낮아도 공의 실제 위치는 높다보니 유니크한 궤적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일종의 디셉션 효과를 냈는데 특히 좌타자들 눈에 슬라이더는 그야말로 뒤통수에서 날아와 헤드샷을 맞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또 낮은 쓰리쿼터 폼은 투구 메커니즘 이론상 익스텐션을 가장 길게 가져갈 수 있는데 팔까지 길다보니 릴리스포인트가 매우 앞으로 전진하여 형성되기 때문에 원래도 빠른 공에 체감구속의 상승효과까지 더해진 것이다. 저 위의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뜩이나 광속구인데 초창기 제구력이 별로 안 좋았을때는 좌타자 입장에선 헬 오브 지옥. 말년에 많이 까먹었음에도 통산 좌타자 상대 타출장이 199/.278/.294이니 뭐... 그래서 존슨 등판 예고일 전날 밤 타자들(특히 좌타자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랜디 존슨의 투구가 그 무시무시함을 보여줬던 예로, 1993년 올스타전에서 존 크럭(John Kruk, 당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주전 1루수 겸 3번타자, 현 ESPN MLB 해설자)이 존슨의 손에서 빠진 공이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가자 여기에 쫄아서 홈플레이트 멀찌감치 떨어져 섰다든지,[62] 1997년 올스타전에서 래리 워커도 존 크럭이 당했던 것처럼 당하다 결국 우타석에 들어서 헬멧을 거꾸로 쓴 개그를 선보인 등의 사례가 있다. 좌타자들이 잠을 설쳤다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선수를 진짜 괴물로 만들어준 건 바로 슬라이더이다.[63] 대부분의 선수들이 80마일 초반대[64]의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비해 랜디 존슨의 슬라이더는 무려 90마일[65] 언저리까지 찍히는 등 엄청났다. 변화각도 좌타자 기준 얼굴로 날아오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가는 수준이라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에릭 캐로스에 따르면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던질 때의 습관 차이[66]를 타자 누구나 다 알고 있었지만 알고도 못 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이야기인가.[67]

파일:랜디옹투구구사.png
흔히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투피치만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디백스 입성 후 패스트볼 중에서도 투심의 비중을 높이고 이후 스플리터를 추가했다. 물론 이 두 구종의 비율이 크게 높았던 것은 맞다.

파일:랜디옹스플.gif
현역시절 스플리터.

이미 로저 클레멘스, 그렉 매덕스,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함께 1980년대~2000년대 최고의 투수이자 20세기 후반 최고의 좌투수로 평가받았지만[68] 동시대의 약물복용 의혹자들이 드러나면서 더더욱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던 로저 클레멘스가 약물복용자라는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면서, 안 그래도 놀라운 커리어인데 약물없이 약쟁이 타자들을 그것도 투수의 로망인 불꽃 강속구로 다 제압하면서 리그를 평정했으니 그의 명예가 더 높아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약물러 로저 클레멘스를 제외하면 통산 bWAR 기준 역대 9위/좌완 역대 2위, fWAR 기준 역대 4위/좌완 역대 1위로 역사상 최고의 좌완투수로 꼽힌다.[69]

MLB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Prime 9에서는 그를 '역대 최고의 좌완' 2위[70], 그의 슬라이더 또한 '역대 최고의 슬라이더 2위'[71]에 선정했다.

8. 수상 내역[편집]


수상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1995)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4회 (1999~2002)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내셔널 리그 트리플 크라운 (2002)
올스타 10회 (1990, 1993~1995, 1997, 1999~2002, 2004)
월드 시리즈 우승 (2001)
윌리 메이스 상 (2001)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1위 (1995)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 1위 (1999, 2001, 2002)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내셔널 리그 다승왕 (2002)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 1위 4회 (1992~1995)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내셔널 리그 탈삼진 1위 5회 (1999~2002, 2004)

9. 비둘기 폭파 사건[편집]



2001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 도중에 발생한 사건으로 그가 던진 공에 지나가던 비둘기가 머리를 맞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전설의 비둘기 폭파 사건[72]
랜디 존슨의 구위를 설명할 때 주로 첨부되는 영상이다. 시범경기라 공식 영상이 없으며 팬이 촬영한 비디오라서 화질이 좋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공에 맞은 후에도 날개를 퍼덕이는 걸 볼 수 있다. 전광판엔 95 mph(153 km/h)가 찍혔다.

당연히 비둘기는 뼈도 못추리고 즉사, 사체는 깃털이 몽땅 빠져나간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고 한다. 공에 맞자마자 깃털이 날리는 모습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시체 자체가 폭발하듯이 분해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공이 맞고 난 뒤를 잘 보면 털이 다 빠진 비둘기 몸통이 왼쪽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이후 새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다 160 km/h에 가까운 물체에 부딪힐 확률을 내봤더니 190억 분의 1[73]이라는 확률이 나왔는데, 이는 한국 로또는 물론이거니와[74], 미국 본토의 파워볼[75], 메가밀리언[76]보다도 더 답이 안나오는 수준의 확률이 나온 것이다. 미국의 한 프로그램은 이 사건이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진짜 새 대신 생닭을 수십, 수백, 수천 번 쏘아대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전혀 맞추질 못했다.[77] 주심은 해당 투구를 노카운트로 처리했다.

현재 야구 규정에는 '타구'가 아닌 투구가 새에 맞는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볼로 처리하는 것도 애매하다. 시범경기에 벌어진 게 천만 다행이라면 다행. 랜디 존슨 자신도 인상 깊었는지 자기 홈페이지 로딩 화면이나 로고가 새가 깃털 휘날리며 기절한 모습이다. 랜디 존슨의 홈페이지

파일:external/l.yimg.com/jeffkentbirdsurvivor062112.jpg
그리고 제프 켄트는 비둘기 사체를 집고 실실 웃는 사진을 남겼다.

당시 PETA에서 그를 고소하기도 했는데 농담이 아닌 정말로 진지한 고소라서 랜디 존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까지 선임해야 했다. 이 일화는 현재도 극단적 동물 보호 단체를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될 정도로 유명한 사례이다. 기사1(현재는 삭제됨), 기사 2.

네이버 웹툰 더 복서 74화에서 아주 극단적인 확률을 설명할때 묘사되었다.

그런데 이 극단적인 확률의 일이 2023년 애리조나에서 뛰는 후배 에이스 투수에게 또 발생하는 진기명기한 일이 일어났다. 다만 이 쪽은 연습 투구 도중 발생한 일이기에 여전히 존슨의 이 케이스는 공식 경기중 발생한 유일무이한 진기록으로 남아있다. 잭 갤런의 새 폭파 영상.


10. 여담[편집]



  • 1994년작 야구영화 Little Big League에서 시에틀 매리너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와일드카드 시리즈 결정전에서 시에틀이 1점을 앞서고 있는 10회말 2아웃 1루에서 마지막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미네소타 트윈스의 감독인 주인공 소년 빌리 헤이워드의 어머니와 연인 관계인 4번타자 루 콜린스를 상대한다. 루의 타구가 외야를 향해 뻗어가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의 슈퍼캐치에 공이 잡히고 경기가 시에틀의 승리로 끝난다.

  • 내셔널리그에서도 활동했던 선수라 타석에도 들어섰는데, 대부분의 왼손잡이들이 좌타자인 반면 랜디 존슨은 우타석에 들어서서 좌투우타라는 괴랄한 투타형태를 띠게 되었다. 원래 야구가 공격할 땐 좌타자가 유리하고 수비할 땐 오른손잡이가 유리한지라[78] 우투좌타는 드글드글하지만 좌투우타는 공수의 유리함을 다 포기하는 형태라서 거의 없다...지만 이 아저씨는 투수라서 상관 없다.[79] 공을 던지는 왼팔을 보호하기 위해 좌투우타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는 타격 메커니즘 상 스윙을 할 때 위로 잡은 팔에 힘이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80] 참고로 타격 실력은 매우 형편없었다. 통산 타격 WAR는 -2.5. 참고로 WAR 0이 일반적인 최저연봉 타자 정도다. 도저히 잘 칠 만한 체격조건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다.[81]

  • 디시 야갤 초창기 때 '푸졸스가 맞아요. 아니면 랜디 혼슨인가요?'라는 뻘플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다.[82] 따지자면 스웨덴계 미국인이므로 스웨덴어로 읽은 본래 성씨는 Jonsson(욘손)이나 Johansson(요한손)으로 추정된다.

  • 2005년 5월 22일 뉴욕 양키스 시절, 당시 뉴욕 메츠 소속이었던 구대성메이저리그의 유일한 안타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것도 단타가 아닌 2루타 여기에 구대성은 호세 레예스의 희생번트에서 3루에 멈출 줄 알았더니 과감하게 홈으로 파고 들어서 득점까지 올리고 뉴욕 메츠 선수들에게 빅웃음을 안겨주었지만 정작 본인은 슬라이딩 할 때 점퍼 속에 들어있던 야구공 때문에 부상을 입었다. 실제로 구슬을 가져다닌 것은 맞지만, 해당 점퍼에는 구슬이 없었고 그냥 슬라이딩 하다가 어깨를 다친 것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투병중이었던 롯데 자이언츠임수혁 선수 돕기 행사(2002년)에서 랜디 존슨이 행사를 돕기 위해 'Big Unit'이 새겨진 모자를 경품에 내놓았던 적이 있었다.# 이 때 당시 랜디 존슨 뿐만 아니라 임수혁 선수 돕기 행사에 애장품을 경품으로 내놓았던 선수로 후루타 아츠야(저 기사에는 오타가 났다), 카네모토 토모아키, 박찬호 등의 야구선수 외에도 홍명보, 최경주, 그리고 김동성 등이 있었다.

파일:external/90feetofperfection.files.wordpress.com/randy_johnson-on-the-simpsons.jpg
  • 심슨 가족에도 출연했다!! S17 E14에 나온다. 플랜더스 지못미



  • 일본 방송에 한두번도 아닌 꽤 여러 번 출연한 경험이 있다. 자동차 창문 사이로 투구한다든지, 마이클 조던자유투 사례처럼 눈 감고 스트라이크존으로 투구하는 등 어려운 미션들도 척척 성공해냈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과묵한 인상과 달리 일본인 출연자 및 제작진들과 유쾌하게 소통하며 분위기에 즐겁게 융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 2012년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하고 있던 다르빗슈를 평가한 적이 있다. 일본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르빗슈의 투구 영상을 들고 찾아와서 평을 부탁했고 이에 응한 것.

랜디옹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르빗슈는 분명 좋은 공을 가지고 있지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낯설어 할만한 뭔가는 없다. 자막에는 메이저리거들과 같은 결정구가 없다고 나왔지만 자막이 틀렸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본 적 없을 특별함이 없다는 것. 정확한 근거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다르빗슈의 투구 스타일, 즉 빠른 패스트볼에 브레이킹볼을 결정구로 삼는 우완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도 많기 때문에 타자들이 쉽게 적응할지도 모른다는 뜻으로 저런 조언을 한 것 같다. 또한 일본보다 빡빡한 경기일정을 치르다 보면 몸의 컨디션이 항상 좋을 수 없으므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결정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신도 다르빗슈에게 기대하는게 많으니 이전보다 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훈훈한 덕담을 덧붙였다. 인터뷰를 끝내며 다르빗슈의 첫 시즌 승수를 예측해서 야구공에 적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16'이란 숫자를 적었는데 다르빗슈는 정말로 데뷔 시즌에 귀신같이 16승을 거두며 랜디옹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작두까지 타시는 사진작가

  • 한손에 야구공을 7개나 들어올리는 엄청난 손 크기와 악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2016년 커쇼가 기록한 6개보다 더 많은 것이다. 야구공 7개 쥐기 기록은 존슨 외에도 쟈니 벤치등이 가지고 있다.[83]
파일:external_B6uIUPbCAAEc4hm.jpg

  • 록 음악(특히 하드록)과 메탈을 매우 좋아하며, 특히 러시의 광팬이다. 실제로 러시 40주년 공연 무대 뒤에서 포토그래퍼로 활약했으며, 드러머 닐 피어트에게 드럼셋을 선물로 받는 등 밴드원들과의 관계 역시 친밀한 편.[84] 실제로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가보면 거의 날마다 여러 밴드의 고퀄 공연사진이 하나 이상은 꼭 달려있다.



  • 포스트시즌에서는 좋은 성적을 보이지는 못했다. 통산 성적 7승 9패 3.50으로 통상적으로 강속구 투수가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보인다는 속설에 어긋나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나 그 사람이랑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면 딱이다. 다만 성적을 찾아보면 특이한게, 디비전 시리즈에만 유독 약했다. 휴스턴,애리조나때 NLDS의 통산성적은 5전 전패 36.1이닝 평균자책점 4.46이고, 시애틀,뉴욕 양키스때 ALDS의 통산성적은 2승 3패 36이닝 평균자책점 5.25이다. 이정도면 빼박 새가슴 같은데 그건 또 아닌게, 시애틀 시절 ALCS의 통산 성적은 1패 15.1이닝 평균자책점 2.35, 디비전 시리즈를 뚫고 올라온 NLCS때는 2경기 2승 16이닝 2자책 평균자책점 1.12, 월드시리즈에서는 3승 17.1이닝 2자책 평균자책점 1.04였다. 통산 NLDS 5패를 2001년 NLCS,월드시리즈 5전 전승으로 다 메꾼 케이스다.

  • 김광현랜디 존슨우리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팬이며, 랜디 존슨 때문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좋아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김광현은 랜디 존슨처럼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좌완 투수기도 하다.[85] 아마 시애틀이나 애리조나로 갔으면 성덕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했다.


  • 랜디 존슨의 두번째 부인에게서 난 둘째딸 윌로우(Willow)가 배구선수로 활약 중이다. 윌로우는 아버지와 똑같이 왼손잡이로, 오리건 대학교에서 아포짓(라이트) 포지션에서 뛰었다. 2020-21 시즌 V-리그 여자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 신청했었다고 했는데 정작 크게 얘기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 V-리그 외국인선수 드래프트가 열리던 시점에 이미 터키 아로마리그의 닐루페르 벨레디예스포르(Nilufer Belediyespor)와 계약된 상태였다. 1998년 생으로 아직 나이가 어린 편이라 V-리그 팀의 추파를 받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후 2022-23 V-리그 여자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 신청했지만 # 아쉽게도 뽑히지는 못했다. 한 시즌 후인 2023-2024 시즌 트라이아웃에 다시 신청했다.

  • 2022년부턴 NFL의 공식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고 있다.

11.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랜디 존슨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8
MON
4
3
0
0
0
26
2.42
23
3
7
0
25
1.154
151
0.4
0.7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9
MON/SEA
29
7
13
0
0
160⅔
4.82
147
13
96
3
130
1.512
82
1.6
-0.6
1990
SEA
33
14
11
0
0
219⅔
3.65
174
26
120
5
194
1.338
108
2.0
2.2
1991
33
13
10
0
0
201⅓
3.98
151
15
152
12
228
1.505
103
2.6
3.0
1992
31
12
14
0
0
210⅓
3.77
154
13
144
18
241
1.417
105
3.4
2.4
1993
35
19
8
1
0
255⅓
3.24
185
22
99
16
308
1.112
135
7.0
6.6
1994
23
13
6
0
0
172
3.19
132
14
72
6
204
1.186
152
5.2
5.5
1995
30
18
2
0
0
214
2.48
159
12
65
6
294
1.045
193
9.5
8.6
1996
14
5
0
1
0
61⅓
3.67
48
8
25
2
85
1.190
136
1.6
1.2
1997
30
20
4
0
0
213
2.28
147
20
77
10
291
1.052
197
7.0
8.0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8
SEA/HOU
34
19
11
0
0
244⅓
3.28
203
23
86
14
329
1.183
135
7.6
5.7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9
ARI
35
17
9
0
0
271⅔
2.48
207
30
70
9
364
1.020
184
9.5
9.1
2000
35
19
7
0
0
248⅔
2.64
202
23
76
6
347
1.118
181
9.6
8.1
2001
35
21
6
0
0
249⅔
2.49
181
19
71
18
372
1.009
188
10.4
10.1
2002
35
24
5
0
0
260
2.32
197
26
71
13
334
1.031
195
8.1
10.7
2003
18
6
8
0
0
114
4.26
125
16
27
8
125
1.333
110
2.4
1.6
2004
35
16
14
0
0
245⅔
2.60
177
18
44
10
290
0.900
176
9.6
8.4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5
NYY
34
17
8
0
0
225⅔
3.79
207
32
47
12
211
1.126
112
4.1
5.8
2006
33
17
11
0
0
205
5.00
194
28
60
10
172
1.239
90
3.2
1.7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7
ARI
10
4
3
0
0
56⅔
3.81
52
7
13
4
72
1.147
125
1.6
1.4
2008
30
11
10
0
0
184
3.91
184
24
44
6
173
1.239
118
3.6
3.2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9
SF
22
8
6
0
0
96
4.88
97
19
31
2
86
1.333
87
0.3
0.3
MLB 통산
(22시즌)
618
303
166
2
0
4135⅓
3.29
3346
411
1497
190
4875
1.171
135
110.5
103.5


12. 관련 문서[편집]



13. 둘러보기[편집]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0년 6월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이 달의 투수 상
바비 티그펜
(시카고 화이트삭스)

랜디 존슨
(시애틀 매리너스)


척 핀리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바비 위트
(텍사스 레인저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7년 6월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이 달의 투수 상
로저 클레멘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랜디 존슨
(시애틀 매리너스)


척 핀리
(애너하임 에인절스)
브래드 래드키
(미네소타 트윈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8년 8월 ~ 9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투수 상
박찬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랜디 존슨
(휴스턴 애스트로스)


존 스몰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9년 7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투수 상
알 라이터
(뉴욕 메츠)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그렉 매덕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0년 4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투수 상
데니 네이글
(신시내티 레즈)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개럿 스티븐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2년 4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투수 상
우디 윌리엄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커트 실링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2년 9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투수 상
로이 오스왈트
(휴스턴 애스트로스)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숀 차콘
(콜로라도 로키스)
[1] 나머지 한명은 맥스 슈어저. 하지만 슈어저는 기준을 갓 넘는 2600이닝을 소화했으므로, 4000이닝을 넘게 소화하면서 동일한 기록을 달성한 랜디 존슨과 동일 선상에 두기엔 무리가 있다.[2] 나머지 두 명은 1999년 페드로 마르티네스, 2019년 게릿 콜[3] 400이닝 이상. 페드로= 10.15 랜디= 11.03[4] 퍼기 젠킨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 맥스 슈어저.[5] 최후의 300승 투수. 벌써부터 달성 가능성이 언급되는 선수들이 몇 있는 3000안타와는 다르게 현재 리그의 추세를 감안하면 새로운 300승 투수가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 그나마 저스틴 벌랜더가 40대 중반까지 건강하다는 가정 하에 겨우 가능할 정도이지만 이마저도 희박한 상황이다.[6] 물론 이는 존슨에게 해주는 립서비스일 확률이 높다.[7] 이 사진은 말년의 사진이 아닌, 20대 시절이다.[8] 실제로 USC(남가주대학) 시절까지 농구선수를 겸업하기도 했다.[9] 여담으로 맞트레이드의 당사자인 랜디 존슨과 마크 랭스턴은 6년 뒤인 1995 시즌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우승팀 결정 원게임 플레이오프에 각각 시애틀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선발 투수로 맞대결 했다. 결과는 랜디 존슨의 승.[10] 정작 라이언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투수들 중 제구력이 최하위권이였던 건 함정.[11] 이 경기는 라이언 역시 감명을 받았는지, 훗날 랜디가 300승을 달성한 뒤 AT&T 파크에서 가진 기념식에 참석해서 연설을 하며 그날 경기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12] 일부를 제외하면 랜디 존슨 정도의 고령에 더 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동 시대를 풍미했던 그렉 매덕스, 페드로 마르티네스도 만 29세 이후 성적은 그 이전과 확연하게 차이가 났을 정도이며 클레이튼 커쇼는 아예 이닝 이팅 능력이 사라지고 유리몸이 되었다. 배리 본즈로저 클레멘스 같은 금지약물 복용 선수들을 빼고 보면 30대 기록이 20대보다 훨씬 좋은 선수는 거의 없다.[13] 동 나이대 그렉 매덕스는 152승 평균자책점 3.18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132승 평균자책점 2.65 클레이튼 커쇼는 144승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하고 사이영 상을 모두 3회 수상한 상태.[14] 1993년 이후 2004년까지 랜디 존슨은 부상 시즌(1996, 2003)과 태업을 의심 받은 1998년을 제외하곤, 모조리 사이 영 투표 3위안에 드는 기염을 토한다. 이 기간 동안 사이 영 투표 순위는 1위 5번, 2위 3번, 3위 1번. 2위를 한 시즌 중 2번은 약쟁이 로저 클레멘스에게 사이 영을 빼앗겼고, 1998년 휴스턴으로 트레이드 된 이후의 존슨은 리그 최고의 피칭을 펼쳤으므로 부상을 제외하곤 적수가 없었던 셈[15] 이전에는 140~150개의 볼넷을 내주며 240~250개의 탈삼진을 잡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1993시즌의 기록은 존슨이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는 매우 고무적인 성적이었다.[16] 이 해 AL 사이영 상 수상자는 데이비드 콘이었다. NL 사이영 상은 그렉 매덕스의 차지. 이 시즌에 매덕스는 본인 커리어 최저 ERA인 1.56을 기록했다.[17] 이 시즌 4월 11일 토론토를 상대로 2.1이닝 11실점을 했는데 이는 본인의 1경기 최다 실점 기록이다.[18] 로저는 7이닝 3실점.[19]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이 선택은 토론토에게 큰 패착이 됐는데, 이 당시 존슨은 계약기간이 상당히 남아있었지만 헨더슨은 시즌 직후 바로 FA로 풀렸기 때문. 시즌 후 헨더슨은 토론토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클랜드로 돌아갔고, 토론토는 1994년 시즌부터 선발진이 크게 흔들려 장기간 암흑기에 들어가게 된다.[20] 이 해 성적 덕분에 존슨은 놀란 라이언 이래 최초의 탈삼진왕 4연패를 달성하게 된다.[21] NL의 그렉 매덕스(19승 2패)와 함께 역대 최초로 200이닝 이상 승률 9할 시즌을 만들어냈다.[22] 당시 1997년 ALDS에서 시애틀에 패한 뉴욕 양키스가 랜디에게 반해 그를 영입하려 했는데 시애틀 측에서는 반대급부로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를 요구했다고.[23] 시즌 종합 244⅓이닝 동안 19승 11패 3.28 ERA.[24] 삼진 개수로만 따지면 랜디 존슨이 전체 1위가 맞다. 단지 시즌 중간에 AL에서 NL로 옮겼기 때문에 기록이 나눠지면서(AL에서 213K, NL에서 116K) 어느 쪽에서도 수상을 못 한 것일 뿐이다. 당시 AL의 탈삼진 1위는 271K의 로저 클레멘스, NL은 300K의 커트 실링이었다.[25] 비슷한 경우로, 1997년의 마크 맥과이어가 시즌 중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58개(오클랜드에서 34개, 세인트루이스에서 24개)로 양리그 합쳐 최다 홈런을 치고도 홈런왕은 각각 AL은 56개의 켄 그리피 주니어, NL은 49개의 래리 워커가 가져가고 맥과이어는 낙동강 오리알이 된 바 있다.[26] 랜디 존슨의 집은 피닉스이고, 가족들도 양키스 시절부터 피닉스에 살았다. 피닉스는 애리조나의 주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디백스의 홈구장인 체이스 필드가 피닉스에 있다.[27] 좌완투수로는 스티브 칼튼 이래 최초. 9년후 클레이튼 커쇼가 이어 받는다.[28] 2022년 기준 한 시즌 25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는 2011년 저스틴 벌랜더가 마지막이고, 350K 이상 잡아낸 투수는 존슨 이후 전무하다. 선발 투수의 평균 투구 이닝이 점점 줄어드는 현 추세를 봤을때, 상술된 존슨의 4년은 불멸의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다.[29] 당시 두 사람의 성적을 비교하면 로켓 18-4 214⅓이닝 2.98 218K. 빅 유닛 16-14 245⅔이닝 2.60 290K. 이때 클레멘스의 수상은 바톨로 콜론 수상과 함께 투승타타가 어느 정도 유효하던 지표였던 거의 마지막 사례로 여겨진다. 이후 랜디 존슨 사례 때문인지 2006년에 16승을 거둔 브랜든 웹이 논란 속에 NL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2010년 AL 사이영 투표에서 vs CC의 대결에서 킹이 사이영상을 탔다. 또한 클레멘스의 추악한 모습이 밝혀진 이후로는 랜디 존슨은 피해자로 평가받는데, 클레멘스의 1990년대 후반기는 스플리터 장착이 그의 성공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하는 반박 여론도 존재하지만, 2000년대는 이미 약빨을 받을 대로 받은 뒤로 여겨진다.[30] 1999~2003의 기록을 보면 랜디와 페드로가 각각 40.0-41.3의 fWAR을 기록했는데 3위인 마이크 무시나가 30.1에 불과했고, 매덕스와 클레멘스는 26.6-21.3의 fWAR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평균자책점로 봐도 페드로(2.10)와 랜디(2.66)만 2점대였고 매덕스(3.24)/클레멘스(3.99) 등 나머지는 다 3점대였다.[31] 주로 51번을 달았지만 양키스에서는 버니 윌리엄스가 주인이었다. 은퇴후 영구결번[32] 이는 존슨의 마지막 포스트시즌 등판이었다. 8년 동안 통산 19경기(16선발) 7승9패 121.0이닝 평균자책점 3.50, 132k[33] 사실 슬로우 카메라로 보면 포수 호르헤 포사다의 태그가 조금 더 빨랐기에 아웃이 맞다. 하지만, 허슬 플레이에 관대한 판정을 내주는 분위기상 세이프가 선언되었고, 상대팀에서도 딱히 항의하지 않아 그대로 인정되었다.[34] 랜디 존슨은 팀에 남기 위해 기꺼이 연봉 50%를 삭감할 용의를 내비쳤지만 재정난에 빠진 디백스는 그것도 비싸다고 더 후려치는 바람에 존슨은 결국 팀을 떠나고 만다. 하지만 존슨이 떠난 뒤, 디백스는 랜디 존슨에게 제시한 금액보다 거의 두 배가 더 많은 액수로 선발 투수 존 갈랜드를 영입하였고, 존슨은 이에 대해 대단히 섭섭해했다. [35] 그렉 매덕스에 이은 역대 2번째이며 2022년 현재까지 마지막 기록이다. 이 둘을 제외하면 3년 연속 수상한 선수조차 없다.[36] 1위는 로저 클레멘스의 7회. 논란이 많은 2004년 사이 영 상의 결과가 랜디 존슨으로서는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37] 존슨과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1999년 수상으로 각각 역대 두 번째와 세 번째(NL의 사이영상 발표가 며칠 더 빨랐다.) 양대리그 수상자가 된다. 참고로 2023년 기준으로 양대리그 수상자 명단은 일곱 명으로 게일로드 페리, 존슨, 페드로, 로저 클레멘스, 로이 할러데이, 맥스 슈어저, 블레이크 스넬.[38] 좌완투수 중에는 1위. 전체 1위는 5714개를 기록한 놀란 라이언.[39] 놀란 라이언과 타이 기록이지만 5시즌 연속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40] 1974년 놀란 라이언 383K, 1965년 샌디 코팩스 382K[41] 비율로 보면 더욱 충격적인게, 놀란 라이언은 326 이닝, 샌디 쿠팩스는 335.2 이닝을 던지고 나온 기록이지만, 랜디 존슨은 불과 249.2 이닝을 던지고 나온 기록이다.[42] 참고로 이 아저씨는 시애틀 시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19K를 잡아낸 적이 있다.[43] 의외로 사이 영, 짐 버닝, 놀란 라이언, 노모 히데오까지 포함하여 MLB 역사상 단 5명만 기록했을 정도의 진기록이기도 하다(바로 위 사진의 테드 브레이튼스테인의 경우 AL, NL 양대리그가 창설되는 중간에 존재했던 AA(American Association)리그에서 달성한 기록이 포함되어 논외로 취급된다).[44] 1위는 샌디 코팩스맷 케인의 14개.[45] 영상[46] 완투하면 생각나는 투수 중 한명인 그렉 매덕스의 통산 완투 기록이 109번인데, 존슨과 9개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다(그마저도 매덕스의 커리어가 1년 더 많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워낙 압도적인 탈삼진 기록에 묻혀서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존슨은 현역 시절 리그 최정상급의 이닝이터이기도 했다.[47] 앞서 말한 매덕스의 경우 존슨보다 1년 먼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48] 완투 현역 1위는 28회를 기록한 아담 웨인라이트로, 존슨의 기록의 4분의 1 수준이다.[49] 랜디 존슨의 최전성기였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진 약물에 기댄 장타로 명성을 날리던 타자들이 리그를 지배했던 지독한 타고투저 시대였다. 가장 뛰어난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 상의 존재와 엄청난 성적을 올린 야수들이 넘쳐났다는 리그 상황에 더하여 가장 가치있는 선수는 일년에 선발이면 35경기 남짓, 불펜이라도 아무리 많이 나와봤자 80~90경기 내외 출전하는 투수가 아닌 매 경기 출전하는 Everyday Player여야 한다는 기자들의 보수적인 투표성향이 합쳐져 1992년 아메리칸리그 MVP 데니스 에커슬리를 마지막으로 2011년 아메리칸리그 MVP 저스틴 벌랜더가 나오기 전까지 19년간 양대리그 MVP는 야수들이 독식한다. 투고타저 시대로 접어든 2010년대 이후에도 투수가 MVP를 타려면 투수 성적도 뛰어나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딱히 MVP를 줄만한 야수가 없어야 한다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오타니 쇼헤이 같은 투타겸업 선수들을 제외하면 투수가 MVP를 타기는 쉽지 않다. 2022년 기준 투타겸업을 제외한 마지막 투수 MVP는 2014년의 클레이튼 커쇼이다.[50] 1위부터 마리아노 리베라 - 켄 그리피 주니어 - 톰 시버 - 놀란 라이언 - 칼 립켄 주니어 - 타이 콥 - 조지 브렛 - 행크 애런 - 토니 그윈 - 랜디 존슨[51] 왼쪽부터 크레이그 비지오, 존 스몰츠,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52] 'Primary Team'과는 달리 동판에 새겨지는 모자 로고는 선수의 의중도 어느 정도 반영된 거기 때문에, 랜디 존슨이 애리조나 로고를 새기기로 결정했다는 거에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첨언을 하자면 모자 로고 결정에 선수의 의견을 참고한다고 하여 이를 모두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웨이드 보그스가 대표 사례.[53] 크리스 세일, 개럿 크로셰, 조시 헤이더 등... 다만 키는 랜디 존슨보다 다들 더 작다. 크리스 세일, 개럿 크로셰는 10cm 더 작고, 조시 헤이더는 거의 20cm 가까이 더 작다. 하지만, 조시 헤이더의 키가 메이저리그 평균 투수 키이자 일반인 중 압도적 최상위권에 속하는 키인 190cm임을 감안하면...[54] 그런데 MLB 기록은 디백스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한 존 라우시가 6' 11"로 넘어섰다. 라우시는 하이 쓰리쿼터 딜리버리를 구사하는 선수였기에 상대팀들은 랜디가 한참 던지다가 라우시가 등판하면 벌벌 떨기도 했다고.[55] 참고로 공식 최고구속(102마일)을 기록할 때 무려 만 41세 생일 3일 전이었다. #.[56] 존슨의 전성기 시절 구속은 방송사나 구장 자체 스피드건으로 측정한 구속인데 현재의 트랙맨 측정방식으로는 릴리스포인트에 더 가까이서 측정하기 때문에 평균 1~2마일 정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좌완 선발 투수 중 직구 평균구속이 이 정도인 선수는 전체 투수 평균 구속이 대폭 증가한 2020년대에도 가장 빠른 셰인 매클래너한 정도가 보여주는 구속이다.[57] 한국 야구로 치면 전성기 박찬호에 버금가는 구속을 가진 선발투수가 2020년대가 되어서야 안우진 한 명이 나오는 것과 유사하다.[58] 물론 스프츠 과학이 점차 발전하면서 2020년대 최근에는 MLB 한정으로 99~100마일의 공도 홈런으로 연결하는 타자들을 꽤 볼 수 있다.[59] 존슨은 160구 완봉승 기록도 있다. 커리어 초반인 1992시즌에 나온 기록으로 메이저리그 마지막 160구 경기.[60] 원래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른 자질을 타고 나듯이 내구성 역시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크다. 놀란 라이언의 경우가 좋은 예시인데, 이 양반은 40대 중반 은퇴할 때까지 강속구로 엄청난 이닝을 소화했다. 46세에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공은 158km였다. 그가 45살때 인터뷰에서 어떻게 당신 나이에 95마일을 던질 수 있죠? 라는 질문에 웃으며 "비결 같은 건 없어요 저도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역시 뭐든지 타고나야 하는 것이었다.[61] 패트릭 유잉과의 사진을 보면 유잉보다 약간 짧은 정도.#, 참고로 유잉의 윙스팬은 243cm#. 골격 등의 차이를 감안해도 랜디의 윙스팬은 약 230cm 정도로 추정된다.[62] 그리고 크럭은 그 경기에서 "그런 상황에서 산 것만으로도 다행이네요." 라면서 존슨의 투구에 대한 감상을 남겼다.[63] 프라임 9에서는 존슨의 슬라이더를 역대 2위로 선정했다.[64] 130km/h대.[65] 140km/h대 중반으로, 평범한 KBO 투수들의 패스트볼 구속이랑 비슷하다. 또한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는 김광현의 슬라이더 최고 구속이 92마일이다. 존슨의 슬라이더는 평균 구속이 그에 육박한다.[66] 일본식 용어로 쿠세. 글러브를 오므리면 직구, 벌리면 슬라이더였다고 한다.[67] 물론 선수생활 내내 읽혔다는 말은 당연 아니다. 존슨도 어느 순간 타자들이 노림수를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글러브가 벌어지는 게 눈에 띄지 않도록 검정색 천을 덧대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애리조나 시절엔 양키스의 감독 조 토레가 글러브 색깔과 다른 천이 타자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다며 태클을 걸기도 해 경기 중에 글러브를 교체한 적도 있었다.[68] 사실 저 넷 중에는 약켓의 평가가 제일 높았다. 물론 넷 모두 첫턴 명전급이라고 평가되긴 했지만 약켓은 올타임 넘버원 급이라는 평가였었다. 물론 이후 약물 복용이 밝혀진 후에는 급추락하긴 했지만. 실제로 넷 중 약켓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모두 명전 투표 첫 턴에 90%가 넘는 득표율로 당당히 입성했다.[69] 역대 최고 좌완 투수로 꼽히는 선수들은 보통 레프티 그로브, 랜디 존슨, 스티브 칼튼, 샌디 쿠팩스 등이 있는데 레프티 그로브는 2차 대전 이전에 활동했던 선수라 직접적 비교가 어려우며,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현대 야구에서 그로브와 비견되는 업적을 쌓은 존슨을 위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스티브 칼튼은 조정평균자책점 등 각종 세부지표가 존슨에 비해 떨어진다. 샌디 쿠팩스는 화려한 전성기에 비해 커리어가 짧고 상술한 바와 같이 전성기 또한 존슨이 밀리지 않는다.[70] 1위부터 레프티 그로브-랜디 존슨-워렌 스판-칼 허벨-스티브 칼튼-화이티 포드-톰 글래빈-샌디 코팩스-에디 플랭크[71] 1위부터 론 기드리-랜디 존슨-스티브 칼튼-스파키 라일-밥 깁슨-데이비드 스티엡-밥 레몬-K로드-짐 버닝[72] 참고로 당시 상대 타자는 켈빈 머레이라는 선수로 18년 뒤에 MLBNFL 모두 1라운드로 지명되는 한국계 미국인인 카일러 머리의 삼촌이다.[73] 1/19000000000[74] 8,145,060분의 1[75] 1/292,201,338(2억 9,220만 1,338분의 1)[76] 1/302,575,350(3억 257만 5,350분의 1)[77] 사실 미국에서 야구장에 새가 난입하는 일 자체는 흔하다.# 그냥 야구장에 돌아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폭파당한 비둘기를 따라하고 싶은 것마냥 투수와 타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날아다니는 광경도 제법 목격된다. 하지만 정말로 야구공에 얻어맞은 새는 이 비둘기가 유일하다.[78] 좌타자는 우투수에 강하고 우타자는 좌투수에 강한데, 우투수가 좌투수보다 훨씬 많으므로 타석에서는 좌타자가 유리하다. 반면 수비 시에는 좌투가 갈 수 있는 포지션이 사실상 외야 3자리와 1루수밖에 없을 정도로 대접이 좋지 않다. 왼손잡이 내야수의 경우 1루로 공을 던지기 매우 불리하기 때문에 내야수는 거의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이고, 포수의 경우에도 우타자가 훨씬 많다는 특성상 2루 송구에 방해를 받으며 무엇보다 투수가 오른손 포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좌완 포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79] 좌투우타인 유명한 야수로는 리키 헨더슨이 있다. 랜디 존슨과 같이 좌투우타인 투수로는 류현진마이크 햄튼이 있다. [80] 다만 오히려 좋지 않을 수도 있다. 2009년 7월 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상대 투수는 로이 오스왈트) 타석에서 헛스윙을 하다 왼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부상 이유가 헛스윙할때 오른손을 너무 일찍 떼버리는 바람에 충격을 분산시키지 못해 어깨 근육이 파열된 것이라고.[81] 몸이 엄청나게 큰 만큼 스트라이크 존도 넓어 타자일때 삼진을 많이 당했다.[82] Pujols 를 '푸홀스'로 표기해야 하는지 '푸졸스'로 표기해야 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병림픽에서 '푸졸스'를 미는 한 갤러가 한 말이었는데 나중에 뻘플화 되어 전혀 상관 없는 게시물에도 달렸다. 덤으로 그 뻘플에 대한 야갤의 응답은 그럼 Jang Moonsuk이 '항문석'이지 '장문석'이냐?[83] 남자 키가 2미터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에 따라 완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랜디 존슨은 거의 210cm에 가까운 거인이므로 그에 걸맞는 힘을 보여준 것이다.[84] 여담으로 러시의 베이시스트이자 보컬인 게디 리토론토 블루제이스 경기에 관객으로 자주 등장하는가 하면 니그로리그 선수들의 사인볼을 MLB 사무국에 기증하는 등 캐나다의 대표적인 야빠로 유명하다.[85] 다만 투구폼은 좀 다르다. 랜디 존슨은 약간 낮은 스리쿼터 스로로 던지지만, 김광현은 높은 오버핸드 스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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