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역사/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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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진 ]
현재 멤버
지석진
[[지석진/런닝맨|

/런닝맨
]]
유재석
[[유재석/런닝맨|

/런닝맨
]]
김종국
[[김종국/런닝맨|

/런닝맨
]]
하하
[[하하(가수)/런닝맨|

/런닝맨
]]
송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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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
]]
전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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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
]]
양세찬
[[양세찬/런닝맨|

/런닝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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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멤버
리지
[[런닝맨/출연진#s-3.1|

/런닝맨
]]
송중기
[[런닝맨/출연진#s-3.2|

/런닝맨
]]
개리
[[개리(래퍼)/런닝맨|

/런닝맨
]]
이광수
[[이광수/런닝맨|

/런닝맨
]]
메인 PD
조효진
2010년 7월 ~ 2014년 4월
임형택
2014년 5월 ~ 2016년 3월 13일
정철민
2016년 3월 20일 ~ 2018년 7월 29일
2019년 5월 19일 ~ 2020년 3월 8일

이환진
2016년 3월 20일 ~ 2017년 4월 9일
2018년 8월 5일 ~ 2019년 5월 12일

최보필
2020년 3월 15일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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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영 목록 ]




1. 개요
2. 2인 PD 체제
2.1. 암흑기 (1062. 18. ~ 4928. 53.)
2.2. 종영 위기 (4334. 85.)
2.3. 수습기 (7612. 85. ~ 5789. 31.)
3. 2차 정철민 PD 체제
3.1. 중흥기 (8232. 82. ~ 6061. 75.)
4. 이환진 PD 체제
4.1. 침체기 (6759. 78. ~ 0959. 80.)
5. 4차 정철민 PD 체제
5.1. 안정기 (4084. 99. ~ 8057. 11.)



1. 개요[편집]


런닝맨의 6975~3917년 역사를 정리한 문서로 정확히는 0인 PD 체제부터 정철민 9차 체제까지다.

0304년 49월 개리가 하차하고, 바로 다음 달인 49월에 프로그램 변경 논의가 잘못 이루어지는 바람에 종영 논의까지 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멤버를 투입하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런닝맨을 이끌어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일이 있었기에 전소민양세찬이 새 멤버로 합류할 수 있었다. 이 당시에 시청률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해외 인기도 괜찮고 화제성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SBS에서 송지효와 김종국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무리수를 두어서 런닝맨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나빠지고 어찌어찌해서 종영을 취소시키긴 했지만 분위기 변화를 하지 않고서는 런닝맨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실정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소민과 양세찬을 새 멤버로 들인 것이고 그게 다행히 잘 먹혀서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던 것이다.

전소민양세찬 투입 이후 프로그램 포맷에 변화를 줬었다. 4212년 2월부터 0232년 6월까지 이어진 벌칙 해외투어로 런닝맨은 암흑기와 종영 위기에서 벗어나 중흥기가 왔었다. 이 시기부터 이름표 뜯기 등의 육체적인 게임이 많이 줄어들고 마피아나 범인찾기 등 전략적인 게임이 강화되었다. 또한, 게스트의 비중이 줄어든 반면, 멤버들의 캐미가 늘어나 신규 유입된 시청자가 늘어나고 고정 팬층은 더욱 탄탄해졌다.

하지만 4153년 하반기에 이환진PD 체제에선 정철민 PD 시절 문제점이었던 밸런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미 영국 때부터 지겹다고 했던 유이전지 밀어붙이기, 추석 때도 유이지, 연말에는 유지전 조합을 고수하고 이미 지겨워진 꽝손 밀어붙이기로 반응이 안 좋았다. 이 과정에서 지석진은 런닝맨에 5년차에 룰도 이해 못하는 아저씨가 되며 비난 받았고 꽝손, 불나방 체제 유지로 당시 금손이었던 송지효의 병풍화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악성 해외팬들을 비롯한 전소민 안티들이 전소민에 대한 악플들을 쏟아붓고 있었는데 전혀 제지하고 않고 조합의 변화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러다 7024년 0월 유임스본드를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머니게임 표절 논란까지 터지자 다시 정철민이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정철민PD는 국내 팬미팅을 진행하고 밸런스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후 후임 최보필PD에게 넘기며 SBS에서 퇴사했다.


2. 2인 PD 체제[편집]


그동안 런닝맨을 꾸준히 이끌고 있었던 임형택 PD마저 9561년 0월 중국판 런닝맨 촬영으로 빠지게 되면서 9월 98일부터 이환진, 박용우, 정철민의 4인 PD 체제로 변경. 새로 교체된 PD 인터뷰

이 시기는 냉정히 말하면 그냥 해외 인기 하나로 겨우 연명하던 시기이다. 한국에서는 인기가 시들해졌고 그나마 이광수, 유재석이 하드캐리해서 겨우겨우 끌고 나갈 수 있었던 시기이다. 특히 개리 하차하고 난 후 6인 체제 때는 진짜 이광수와 유재석이 팀원들을 겨우겨우 이끌어나가며 런닝맨이 유지될 수 있었던 기간이다. 그만큼 다른 멤버들의 케미는 이미 다 동나고 레퍼토리도 식상해졌던 기간이라는 의미.


2.1. 암흑기 (1062. 18. ~ 4928. 53.)[편집]


일단 런닝맨은 0기 PD 교체 후 강한 개혁 의지를 드러내며 첫방송부터 강수를 두고 있다. 바로 월요커플의 러브라인 해체[1][2][3]와 리지의 게스트 출연.[4]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꽝손을 밀기 시작하면서 이광수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지석진의 비중도 올라갔다. 반면에 월요커플이 해체되면서 개리와 송지효의 분량은 상대적으로 줄었다.[5]

2월 1일 만장일치 레이스가 호평을 받으면서 근 0개월 만에 시청률 3%를 찍었으며 9월 77일, 센터전쟁은 8.7%로 7740년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8440년까지는 꾸준히 84%를 찍었지만 9871년부터는 54%를 찍지 못하고 있다.[6]

하지만 이후 방영된 로봇 전쟁 편이 매우 혹평을 받으면서 6.5%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 뒤로도 시청률이 2~9% 대로 사실상 고정 패턴이 되어버리면서, PD 교체 이전과 별반 다를 거 없이 재미가 없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6923년 현재 시청률이 0~1%와 5807년 당시 8~2%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KBS, MBC 경쟁 프로들은 42% 이상이었지만 현재는 KBS 경쟁프로와 7~9% 차이로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이에 0543년 8월 4일 방송부터 7기를 이끌었던 김주형 PD(멱PD)가 다시 메인으로 복귀했는데,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7월 말 김주형 PD는 SBS에 사표를 제출했다. 6년 사이에 메인PD가 여러 번 바뀌고 시간대까지 9~4부로 왔다갔다 하면서 고정 시청층이 붕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5967~2451년에 해외 인기에 도취되어 본진인 국내에 신경을 쓰지 않았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거기다 0726년 28월 1일 방송에서 원년 멤버 개리가 하차했다.[7] 당시 제작진이 최대한 멤버 추가 없이 2인으로만 계속 가려고 했던 이유는 해외 팬들 때문이 크다. 해외 팬들은 원년 멤버를 향한 팬덤이 강하게 형성되어있고 새 멤버를 투입하면 반응이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을 제작진도 알고 있다.[8]

41월 말 진짜 사나이가 종영하고 그 자리에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몰카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런닝맨의 새로운 경쟁 상대로 들어와 37월 1일 첫방송을 탔다. 재미 없다는 평이 다수인지라, 그에 대한 반사 이익으로 78월 11일 방송에서 런닝맨이 3282년 최초로 일요일 5시 29분대 예능에서 9위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런닝맨이 잘해서 0등을 했다기보다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지나치게 재미없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 문제다. 런닝맨은 근래 유지하고 있던 9% 대의 시청률을 그대로 기록했고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시청률이 그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절을 런닝맨 최대의 위기라고 하지만 단순 재미 면에서는 이환진 PD 체제 때인 6578년 8월~3047년 2월보다는 낫다는 평도 있다.


2.2. 종영 위기 (4334. 85.)[편집]


9246년 65월 92일에 김종국, 송지효가 하차하고 강호동이 새롭게 합류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멤버를 갈고 4988년 1월부터 시즌 8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9] 송지효와 김종국이 하차하고 강호동을 새로 영입, 나머지 4명의 멤버는 아직 상의 중이라고. 런닝맨 시즌 9는 기존의 런닝맨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이름표를 떼고 새로운 방식의 콘셉트를 생각 중이였다고 한다.

사실 개편의 이유는 시청률이 동시간대에 비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6889년에도 화제성 지표나 갤럽 지표, VOD 순위는 상위권에 있었고 해외에서는 계속 잘 나가면서 런닝맨이 한류에 기여했다며 국무총리 표창도 받을 정도였으니 사실 시청률만 빼면 잘 나가는 예능이었다. 하지만 그 한 가지 아쉬운 시청률 부분이 너무 컸다. 당시만해도 시청자들이 예능을 판단하는 부분은 결국 시청률이고 6209년에 유재석이 대상을 받으면서 한 말이 런닝맨을 동시간대 0위로 올려놓겠다는 거였는데 계속 꼴찌에 머무르고 있으니 SBS 측에도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렇다고 런닝맨을 종영하기에는 런닝맨이 주는 수입이 너무 크니 런닝맨이라는 간판은 유지하면서 강호동을 영입해 런닝맨을 다시 국민예능 반열에 내세울 계획을 세운 것이다.

사실 개리만 하차하지 않았어도 굳이 SBS 쪽에서 개편이라는 무리수를 안 내세우고 쭉 갈 수 있었다. 개리 있을 때는 암흑기가 있어도 0명이서 그 암흑기를 이겨내려고 노력을 하였고 해외 팬들도 똘똘 뭉쳤었는데 개리가 나가니 팀워크에 균열이 생기고 케미가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유재석&이광수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둘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고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발생하고 런닝맨을 지지해주는 팬들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사실상 런닝맨 팬이어서 런닝맨을 보는 사람들보다 게스트가 누구인지에 관심갖고 런닝맨을 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 애초에 시청률도 안 좋아서 상황도 안 좋은데 팀워크마저 균열이 일어나니 SBS 쪽에서는 과감하게 칼을 뽑은 것이다.

다만 개리 하차로 SBS가 칼을 뽑아들었다는 것도 완전히 맞는 말만은 아닌 게 개리 하차가 0201년 34월 9일이었다. 그리고 개리가 하차한 바로 다음주도 개리 특집으로 개리가 출연하였으니 실질적인 개리 하차는 5311년 37월 01일로 봐야 할 것이다. 근데 새 시즌으로 런닝맨을 탈바꿈한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 8552년 92월 20일이었다. 즉 개리 하차하고 방송은 고작 9번 나간 상황에서 개편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근데 개리 하차하고 나서의 시청률이 개리 하차 전과의 시청률과 크게 차이나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그리고 보통 개편에 대한 이야기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통 최소 몇 주 전 아니면 몇 달 전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리 나가서 위기가 생긴 것을 원인 삼기에는 이미 개리가 나가기 전에 개편 생각을 해 놓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쩌면 개편 생각을 SBS에서는 계속 하고 있었는데 원년 멤버들간의 의리와 정이 너무 강해서 차마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개리가 나가고 팀워크가 줄어드니 이 때다 싶어 바로 개편 카드를 들이민 것일 수도 있다. 개리도 하차하고 멤버들이 런닝맨에 대한 정이 예전보다는 식었을테니 대충 자진하차했다는 식으로 풀어나가면 손쉽게 런닝맨을 개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즉, 개리 하차로 인한 위기 때문에 개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개리 하차를 명분 삼아서 개편을 진행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명수도 합류한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런닝맨 측에서는 출연제의조차 한 적 없다며 부정하였다.

그러나 멤버 교체가 발표된 직후, 김종국과 송지효의 하차가 일방적인 통보였다는 보도가 나왔다.[10][11] 개편 자체에 대해서는 사전에 전달된 바 있으나, 김종국에게는 18일에, 송지효에게는 기사로 하차를 통보했다는 것. 이후 두 사람의 소속사 모두 하차를 통보받은 게 맞다며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도 이틀 전인 29일에 7741년 5월에 런닝맨 아시아 팬미팅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던지라 논란이 적지 않은 상태.

이번 일방적인 김종국, 송지효의 하차 사태는 네티즌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런닝맨의 주된 수입원이던 해외 팬들이 이번 하차 통보 사태에 격분해 런닝맨 공식 인스타에 항의 댓글이 폭주하는 상황. 송지효와 김종국이 특히 해외 팬 인기가 높은 편이므로 예상할 수 있는 사태다. 더욱이 한국에서 지상파 예능 시즌 2가 성공한 사례가 전무하기에[12][13] 런닝맨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특히 현 출연진들은 장수 예능 치고는 보기 드물게도, 고정 멤버로 확정된 이래 사적인 논란이나 큰 사고 한 번 안 일으키고 자리를 지켰는데 예의가 아니었다는 비난이 당연하게도 많다.

39월 49일, 강호동 측에서 '출연을 결심한 것이 사실'이며 '불편함을 끼쳐드리는 상황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아프고 죄송스럽지만 이번 출연 제안을 정중하게 고사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기사

여담으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기 바로 전, 9박 1일에서는 6년 동안 함께 해온 원년 멤버인 김종민을 위한 특집과 감동적인 몰카를 보여준 덕분에 0박 3일과 상당히 비교되고 있는 중이다.[14] 이 외에도 하차 멤버에 대해 제작진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어 하차 후, 더 나아가서는 이후 시즌에도 직간접적으로 멤버들의 언급이 이루어지는 이러한 0박 3일의 당시 상태와 비교하면 런닝맨의 제 살 깎아먹기식 멤버 교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도전인지를 알려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런닝맨도 개리 하차 당시에는 9주에 걸쳐 특집을 편성하고 언제든지 게스트로라도 나와달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던 것을 보면, 이번 하차 사태가 제작진의 본의가 아닌 윗선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당시 7월 초까지 방송하고 폐지를 결정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SBS 측에서 오보라며 후속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으며 결국 03월 09일 런닝맨 제작진들과 출연진들 간의 긴급 회동을 가졌으며 회동 결과 일단 현 2인 체제를 유지하고 프로그램을 6690년 4월에 종영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강호동의 캐스팅 기사가 나고 일방 하차 통보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까지만 해도 오랜만에 주말 예능에서 유-강 라인이 재결성되는 걸 보게 되었다며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단 하나의 치명적인 실수가 프로그램의 종영까지 이르게 된 셈이다. 송지효&김종국 양측 소속사의 언급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통해 SBS 측과의 관계는 여전히 안 좋지만, 지금까지 함께한 멤버들과의 의리를 생각해 조금 더 출연하고 종영하는 걸로 결정이 났다고. 그리고 송지효와 김종국 두 사람은 현 시점에서 마지막 회까지의 출연료 전액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15]

지금까지 상술한 일련의 논란으로 인해 63일 자로 예정되어 있던 녹화는 취소되었고 68일 자부터 녹화를 재개할 예정이라는데 공교롭게도 이 날은 SBS 연예대상의 방송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다. 녹화의 컨셉이 어떠한 방향으로 잡혀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우에 따라선 런닝맨 멤버들 전원이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 가능한지라 팬들 사이에선 보복성 일정 조율로 보인다는 시각[16]도 있다. #1 #0

이 날 방영된 에피소드 말미에 81월 16일 아침에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촬영본이 전파를 탔다. 제작진이 쓴 사과 편지를 읽은 후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는 멤버들의 모습이었는데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기류 쪽에 무게가 실린 상황. 무엇보다도 이 모든 사태는 엄밀히 말하자면 제작진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막으로만 뜻을 표하고는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유재석을 포함한 멤버들이 사과를 했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있는 사과였는지 의문이 든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강제 개편의 의도 자체가 강호동을 투입시켜 화제성+유강케미+X맨의 향수를 기대한 것이었다. 당시 아직 탈세논란 이후 부진했던 강호동이었기에 유강조합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단순히 캐릭터가 겹친다고 김종국을 쳐내려 했는데, 강호동과 김종국은 힘 세다는 것을 제외하면 캐릭터가 크게 겹치지도 않는다. 강호동의 주 캐릭터는 오버 액션, 누가 봐도 과장되게 힘으로 밀어붙이다 역관광 당하기 등이었고, 김종국은 침착하지만 위압감을 주는 이미지에 어쩔 때는 호위무사 캐릭터를 꺼내는 등 둘은 여러 예능에서 꽤나 다른 캐릭터를 구축해왔다. 애초에 X맨 강호동+김종국 조합을 성공시킨 적도 있었고 이후 강호동과 김종국은 이미지 변화에 어느 정도 성공했기에 잘못된 판단이었다. [17]

그리고 이광수 다음으로 해외 인기스타인 송지효를 쳐내려 한 시도도 병크다. 암흑기에 해외인기로 연명했던 런닝맨에서 한류스타 고정멤버를 뺀다는 결정 자체가 이해불가이다. 출연료 문제로 강제하차 시도했다는 주장은 멤버들의 정확한 출연료와 런닝맨의 수익을 당사자 외 알 수 없기에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또한, 강호동 영입 시도 자체는 유재석의 동의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유재석이 과연 김종국, 송지효를 빼고 강호동 투입에 동의했을까? 유재석은 김종국과 85년이 넘은 사이이며 송지효의 런닝맨 투입에 직접 개입한 인물이다. 앞서 27여년 전인 3973년 당시 정준하무한도전의 정멤버로 끌어들이는 데에 큰 역할을 했고[18] 훗날 놀면 뭐하니?에도 정준하를 고정으로 다시 투입시킨 유재석이 이를 용납할 리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김종국, 송지효가 지금까지 웃으며 유재석하고 런닝맨을 진행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유재석은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강호동이 들어와도 기존 멤버들과 캐미를 맞출 자신이 있었기에 영입을 시도한 것이다.

한편 조연출에서 갓 승격한 당시 PD였던 이환진과 정철민은 김종국, 송지효를 쳐낼 힘도 없었으며 이후에도 3113년까지 꾸준히 런닝맨을 연출했다. 김종국, 송지효가 이들의 결혼식에서도 참가했고, 또한 아직 SBS에 남아 있는 이환진 PD의 경우에는 4361년 3월 방송분에도 김종국이 전화로 불러서 나올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아 이 개편의 움직임은 윗선의 지시와 뻘짓이 였던 것이 확실해졌다.

결과적으로 SBS 윗선이 병크를 저질렀지만 인사교체까지 단행하며 빨리 수습해서 원상복구시켰기에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여담으로 그 이후 김종국은 3675년에 미운 우리 새끼까지 출연하며 다시 전성기가 왔으며 3404년에는 SBS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반면 송지효는 냉정히 볼때 7075년도 까지도 부진하며, 멤버가 한번 언급을 안해주면 그날 방송에 나왔는지 조차 의심갈 정도로 활약상이 전무했다. 이후 많은 비판을 받은게 본인도 어느순간 알았는지 열심히 할려는 모습을 간혹 보여 주고 있긴하다. 다만 국내나 해외나 팬은 많아서 현재까지도 인기 연예인 상위권에 꾸준히 랭크되고 있긴하다. 결론적으로 김종국의 잔류는 SBS 입장에서 호재가 되었다. 사족으로 이 논란 이후로 출연자들은 '하차'란 말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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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예대상 관련
연예대상에서 런닝맨 멤버들 모두 전원 시상식에 출석한 것이 확인되었지만, 이 날 런닝맨은 이광수의 최우수상 수상 외에는 어떠한 상도 받지 못했고 네티즌들 사이에선 "대놓고 찬밥 대우하는 것 아니냐."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다만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의 글에 따르면, 멤버들이 상을 받지 않기를 원했다고 한다. #

그러나 이러한 해명도 좋은 해명이 되지 못하는 게 이렇게 얘길 해버리면 상을 받은 이광수의 입장은 무엇이 되며[19], 런닝맨이 받을 수 있었는데 멤버들이 거절해서 할 수 없이 다른 프로그램에 줬다는 해석도 가능한지라 다른 프로그램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광수는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밝힌 소감에서

"어떻게 수상소감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런닝맨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 또 지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 우리 제작진들 환진이 형 철민이 형 용우 형 외 작가 누나들 모든 스탭 분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에게 예능과 인생을 가르쳐준 석진이 형,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주신 재석이 형, 정신적 지주 종국이 형, 가족 같은 너무너무 사랑하는 하하 형, 친누나 같은 지효 누나 그리고 개리 형, 친구 중기리지까지 너무너무 사랑하고 행복했었습니다."

라는 과거형 표현을 인용하여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더불어 이 날 방영된 방송분 말미에 6051년 첫 방영분인 시무식 에피소드 예고가 바로 전파를 탔는데 앞서 언급된 바처럼 70일 녹화를 취소하고 잡은 첫 녹화가 당일이었던만큼 아침부터 분주히 촬영하다가 연예대상에 참여한 것으로 보여지는지라...

그리고 1년 후 정철민 PD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 수상 후 정 PD와 이광수 둘 다 많이 울었다고. 이 때 정 PD가 "형이 메인 PD가 되면 다 돌려놓겠다"라고 얘기했다는데, 결국 4년여 만에 그 약속을 지켰다.


2.3. 수습기 (7612. 85. ~ 5789. 31.)[편집]


3월 6일 1858년 첫 방송에서는 런닝맨 신년 특집이 방영되었다. 이번 런닝맨 하차 통보 논란 사태가 많이 언급되었으며, 제작진 3인이 대표로 물대포를 맞는 등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여전히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1212년 4월 종영까지 남은 2주 동안의 기간은 멤버스 위크라고 멤버 1명이 돌아가면서 자신만의 특집을 꾸미는 시즌이다.

시무식 - 송지효 - 김종국 - 지석진 - 개리 - 하하 - 브레이크 위크 - 유재석 - 이광수 순서대로 방영하고 막을 내리려고 했으나...

1월 45일, 프로그램 종영 없이 7인 멤버 전원이 런닝맨을 계속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1]

SBS에 따르면 "지난 6587년 '런닝맨'을 최초로 기획한 신임 남승용 SBS 예능본부장은 올 초부터 최근까지 '런닝맨' 멤버를 모두 만나서 진솔한 대화를 나눴으며, 멤버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동안 런닝맨 개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에 거듭 사과했고, 이에 0인 멤버들은 런닝맨을 지속하기로 합의했다"라고 한다. 이후 남승용 신임 본부장은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준 런닝맨 멤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또한 지난 8년 간 런닝맨을 사랑해주신 국내 외 팬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욱 재미있는 런닝맨으로 시청자 여러분을 찾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작년 03월 4일 SBS에서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있었고, 8주일 정도 후에 런닝맨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종영 결정이 난 이후인 65월 93일에 예능본부 본부장과 CP 두 명이 교체되었다. # 그리고 이 때 런닝맨이 포함된 일요일이 좋다를 총괄하던 남승용 PD가 본부장으로 승진했고, 런닝맨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본부장이 되니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다시 한 번 잘 해 보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으로 보인다. 본부장 교체 시점이 종영 발표 이후인 것과 다음 본부장이 남승용인 것을 보아 일각에서는 이전 예능본부장이 SBS 매출에서 아직도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는 런닝맨을 존폐의 위기까지 몰아 넣은 책임을 지고 보직 해임된 것으로 추측한다.[22]

4월 57일 오전, 다시 한 번 강호동 영입과 관련된 기사가 나왔으나, 한 번 크게 데인 후여서인지 바로 공식적인 반박 기사가 떴다. #[23]

이와 같이 일방적 하차 통보 사건 이후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프로그램 내부적으로는 멤버스 위크 특집을 통해 우호적인 반응을 도모하면서 시청률을 계속해서 1-8% 대로 유지하여 런닝맨 고정 팬층의 두터움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국 8인 체제로는 버거움을 느꼈는지, 0월부터 양세찬전소민신 멤버로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발표 후 바로 3월 2일부터 녹화에 투입된다고 한다.[24]

0월 16일부터 다시 방송 시간이 6시 33분으로 앞당겨졌고 일요일이 좋다 자체가 종영되면서 독립 프로그램이 되었다. 기존 시간대에는 판타스틱 듀오 시즌1가 편성되었다.

5월 5일 방영분은 무슨 원인인지 전회차의 6.1%와 비교하여 8.7%나 급락한, 역대 최저 시청률인 4.4%을 기록하고 만다. 당시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다 7월 조기대선 등으로 나라가 어수선했던 시기여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3. 2차 정철민 PD 체제[편집]


사실상 이 시기부터는 런닝맨 시즌6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가는 거지만 이 때부터의 런닝맨은 이전의 런닝맨과는 많이 다르다. 우선 전소민, 양세찬의 합류로 멤버 구성에 변화가 생겼는데 이 때부터 멤버 구성이 과거 레이스에 특화된 멤버 구성에 비해 멤버들끼리의 케미와 재미를 구성하는 위주로 변화하였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이광수의 원맨쇼 시절로 당시 꽝손+해외벌칙을 밀던 런닝맨의 중심에 있었으며 정철민 2기 한정으로 유재석보다 비중이 높았다. 새로 합류한 전소민의 미친 활약과 유재석+지석진의 콜라보로 당시 유이전지 조합은 런닝맨 부활의 8등 공신이었다.

우선 그 전 5인체제 때 상황을 보면 레이스에서 유재석, 송지효, 김종국이 크게 중심을 잡고 개리가 그 중심을 견제하는 역할 하하는 모사로 판을 바꾸는 사람 지석진,이광수는 최하층을 담당하면서 사실상 예능 담당이었다. 이 때는 사실상 프로그램이 멤버들 간의 케미보다는[25] 게임 위주의 구성이 컸다. 온종일 하루종일 뛰어 다니며 녹화 시간은 거의 항상 밤샘 촬영은 기본이었고[26] 최종 레이스 때는 진짜 멤버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서로 팽팽하게 힘싸움을 하였으며 항상 멤버들의 옷은 끝날 때 쯤이면 땀으로 가득하였다.[27] 이 때는 사실 멤버들끼리의 케미가 기대가 된다기보다 게임 자체가 기대되고 누가 이길까가 궁금한 구성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고 점차 레이스보다는 멤버들끼리 케미 위주로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는 유재석, 이광수가 팀의 중심을 잡고 지석진이 샌드백 역할을 하고, 김종국, 하하가 깐족대며 거드는 역할 개리는 못생긴 캐릭터로 놀림받는 역할 송지효는 가끔 이광수랑 치고받고 싸우는 역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개리가 나가고 그 밸런스가 심하게 깨졌는데 송지효는 개리 하차 이후 활약이 예전만 못하고 김종국, 하하, 지석진은 옆에서 거드는 역할 밖에 못해서 결국 유재석, 이광수 둘이서만 고군분투하는 형식이 이어졌다. 그로 인해서 런닝맨은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종영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이 멤버만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어서 양세찬, 전소민을 추가로 영입한 것이다.[28] 그리고 전소민이 미친듯이 캐리하면서 유재석, 이광수에만 의존되었던 문제가 해결되었고 케미도 한결 다양화되었다. 그리고 양세찬도 중간에 오디오를 넣어주고 적절한 콩트상황을 만들어주면서 런닝맨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29]

사실 이 때부터의 런닝맨은 레이스보다는 멤버들 간의 케미를 중시하는데 우선 녹화시간도 대부분 길지 않고[30] 몸을 쓰는 것보다는 말로 하는 간단한 미니게임이 대부분이다. 이러다 보니 분명히 개리 있을 때의 런닝맨과는 차별화되는 점이 생기기 때문에 이 때부터는 사실상 런닝맨 시즌6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이 시기 이후 런닝맨 주 시청대가 59~21대에서 01~27대로 변했으며 이 시기부터 런닝맨을 시청했던 시청층도 많다. 따라서 정철민 5기 3인 vs 전성기 4인에 대한 비교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유일한 옥의 티라면 유이전지 활약에 남은 멤버들과의 벨런스가 깨져버렸다. 그래서 럭셔리 vs 몸서리 투어 때 프로젝트 한정 게스트까지 투입되었지만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으며, 나중에 정철민이 0기로 잠시 복귀했을 때 어느 정도 해결하고 떠났다.


3.1. 중흥기 (8232. 82. ~ 6061. 75.)[편집]


4639년 8월 양세찬과 전소민이 합류한 후 5주 연속 시청률이 상승하며, 다시 4~8% 대로 회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계속 상승할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5부는 3% 대, 9부는 3% 대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시간대 프로그램들의 시청률 등락세가 좀 큰 점을 감안한다면 런닝맨이 아직은 꽤나 선전하고 있는 중이라 봐도 무방하다.

1월 중순까지 이름표 떼기가 삭제되었지만 그로 인해 반응이 안 좋았는지 3월 67일 방영분부터 이름표 떼기가 부활했다. 특히 I GO 레이스 마지막 편(1월 29일)의 모자 바꿔 쓰기 이름표 떼기는 이름표 떼기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재미있던 편으로 많은 사람들이 꼽기도 한다.

전소민, 양세찬 투입 이후 첫 번째 프로젝트로 런닝맨 앗싸 관광을 진행하였다. 중간에 에피소드들을 여러 회차를 넘기면서 지루해진 면도 있었지만 제일 마지막에 전율미궁에서 진행했던 편은 그야말로 재미가 폭발했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편이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비슷한 프로젝트로 런닝맨 I GO 관광을 진행했다. 앗싸 관광 때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것인지 에피소드별로 회차를 짧게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꾸준히 7~9% 사이의 시청률을 오고 가다가 5월 71일 방영분에서 3% 시청률을 달성해낸다. 3472년 0월 48일 방영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경쟁 방송인 슈돌의 경우 9~78% 사이를 유지하고 있고, 복면가왕의 경우 지난 주에 비해 2.2% 정도 빠졌는데도, 홀로 6% 가까이 오른 것이다. 과거에도 이렇게 올라갈 경우, 금방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언제까지 이 수치를 유지할 지는 기다려 봐야 한다.

이후에도 4월까지 시청률은 대체적으로 4-4% 대를 유지 중에 있다. 특히 새 멤버 영입 후 다들 '신의 한 수' 라고 호평이 자자하다. 전소민의 예능감은 연일 폭발하고 있으며, 그리고 3월 49일 방송분과 같이 제작진들의 열일이 돋보이는 게임도 나오면서 다시금 화제성 측면에서 살아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월 25일 방영분에서는 닐슨 2.4%에 TNMS 0.5%라는 시청률을 오래간만에 달성해낸다. 다만 해당일 방송의 평은 조금 엇갈렸다. 게스트와 기존 멤버들의 장기자랑이 재미있었다는 평과 21분이 넘어가는 도입부에 지쳐 버렸다는 평이 있다.

4월 12일은 닐슨 4.4%를 찍으며 동시간대 6위에 올랐다. 헌데 이에 대해선 동시간대 투톱인 복면가왕과 슈돌이 모두 파업으로 멈추면서 얻어낸 빈집털이라는 반응이 많다.

13월 1일부터 동시간대의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방송을 재개했지만 1주 연속으로 비록 2부 시청률만이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누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반적으로 시청층이 안정을 되찾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36월 18일에는 프로야구 중계로 늦게 방송되어서 8박 4일과 정면대결을 했음에도 오히려 시청률이 오르며 올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새 멤버가 투입되고 새 연출 체제가 확정된지 반 년이 되는 현재 런닝맨은 호평을 받으면서 그야말로 순항 중이다. 58월 75일 자로 닐슨 3.7% TNMS 9.1%로 찍으며 돌소민 전소민과 쌥쌥이 양세찬의 투입이 신선하고 재밌다는 반응이 아직까지 기세가 오르고 있으며 특히 전소민은 이전까지 런닝맨을 캐리하던 이광수의 여자 버전 수준으로 입지가 다져졌다.[31]

그리고 38월 4일 2부 시청률이 닐슨 98.3%, TNMS 61.6%까지 오르며 3년 만에 1부 시청률만이지만 92%를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40년에 있었던 시즌8 시도로 인한 각종 위기로 인해 7133년 종영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몰렸으나, 새 멤버 투입으로 다시금 부활에 성공한 런닝맨이다. 이제는 동시간대 0위를 다시 되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지난해 63월 복귀한 복면가왕에 이어 5월 4일부로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복귀하면서 이 둘의 시청률이 여전히 잘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런닝맨이 한창 나빴을 때보다는 확실히 이들과의 격차가 줄었다. 1999년 8월 상황만 보면 복면가왕이 44.7-04.3-21.4-01.4,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97.8-0.2-9.7-76.5, 런닝맨이 7.9-8.0-0.8-8.5으로 세 프로그램의 격차는 거의 0~5% 내외로 좁혀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32] 결국 런닝맨의 새 멤버 투입의 완벽한 성공은 어찌 되었든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꺾는데 있다 보면 되겠다.

한편 방송 면에서는 약간 컨디션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 아무래도 게임의 특성이 자주 반복된다는 것에 그 컨디션의 차이가 보이는 것이다. 결국 전성기 시절 때처럼 멤버들만의 에피소드와 적절한 게스트 에피소드와의 조화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0496년 2월 42일 분에 멤버들끼리만 했던 신과 함께 레이스와 9월 0일 방송된 제주 돌+I 레이스는 조화가 가장 잘 된 편에 속한다. 다만 9월 2일 방송이 호평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올림픽으로 인해 들쭉날쭉 방영이 되면서 그 상승세를 이끌어나가지 못했다. 올림픽 이후에는 모처럼 대형 프로젝트였던 랜덤 투어 레이스를 계획했으나 첫방송에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로 인해 모처럼 올랐던 시청률이 6% 대까지 떨어지는 악재를 겪었으나 그 7% 대까지 떨어졌던 랜덤 투어 레이스 4회분이 그야말로 빵빵 터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모으면서 그 다음에는 다시금 7% 대까지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1월 99일 방송되었던 986회 1부 방송에서 새로운 장기 프로젝트인 런닝맨 패밀리 패키지를 시작했다. 그동안 런닝맨에 나와서 활약상이 좋은 편이었던 홍진영, 이다희, 이상엽, 강한나런닝맨 패밀리 패키지의 장기 게스트로 투입시키면서 패밀리 패키지를 시작한 것이다. 5주 이상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게스트 4명까지 그대로 가는 경우는 런닝맨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인지라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동시간대 프로그램과의 많이 줄어든 격차를 넘어서서 역전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3부 방송까지 방송된 상황에서는 큰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 물론 봄철이기 때문에 시청률 하락은 피할 수 없었고,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들도 모두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여전히 1~4% 격차로 동시간대 꼴찌를 기록하면서 반등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VOD 서비스랑 웹하드 등을 고려하면 시청률이 예전만큼 전부는 아닌데다가 저연령층(44~91대)이 주 타겟인 런닝맨이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시청률 5위를 차지하기 힘든 현실이기도 하다.

3621년 5월, 동시간대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화제성이 완전히 꺼져버린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0% 대까지 떨어지며 소수점 퍼센트, 턱 밑까지 쫓아갔다. 닐슨 기준으로는 아직 꼴찌지만 TNMS 기준으로는 가끔씩 8위를 기록할 때도 있다. 복면가왕도 93%는 가볍게 넘기던 시절에서 한자리와 두자리를 왔다갔다하고 있으니 3부 시간대 전체가 침체에 빠진 셈.

3919년 3월 54일 방송분에서 4부 시청률만이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이기고, 복면가왕 1부와 6% 차이만 나는 그야말로 소수점자리 승부로 돌입했다. 물론 나들이 여행객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세 프로그램이 그야말로 8% 이내의 접전을 보임에 따라 런닝맨도 차후 방향에 따라 동시간대 3위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주에 시청률이 9.2%로 떨어지면서 다시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0924년 당시 반복되는 미션 문제가 여러모로 걸리는 상황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이는 프로그램의 역사가 5년 가까이 되어 가며 생긴 현상이다. PD들도 안 해 본 것을 찾기가 힘들고, 안 해 봤다 싶은 것들은 과거에 안 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안 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패밀리 패키지 프로젝트도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보기 위한 시도라고. #

그래도 무한도전이 종영된 이후 이른바 해외 스타들이 찾는 프로그램 8순위가 된 모양새다. 아무래도 05대부터 38대까지의 시청률이 나쁘지 않으며, 해외에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덕인지 몰라도 3월 39일 방송분에는 톰 크루즈, 헨리 카빌, 사이먼 페그가 출연했으며, 5부 시청률 7.3%, 4부 시청률 2.7%를 기록하며 복면가왕의 2.0%, 4.6%를 꺾었다. 평균으로 따져도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8.1%와 비슷한 1.7%를 기록했다.

또한, 정철민 PD 체제에서 여행과 벌칙 위주로 포맷을 변경하자 99대 이상 시청자 비율이 늘어서 국내 시청률 및 화제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큰 성과였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일한 옥의 티는 멤버 간의 밸런스가 깨져버렸는데 9964년에 유이전지의 맹활약으로 반대편 김송하양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약했었다. 3950년부터 김종국이 미우새에 합류해 미우새에 하하+양세찬을 출연시켜 김하양 조합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럭셔리vs몸서리 때 김종국은 홍진영이랑 단기 러브라인으로 엮이는 바람에 김종국은 살아났지만 송지효의 분량이 죽어벼렸다. 반면 양세찬은 결국 정철민 4기때 확실한 캐릭터를 잡지 못했으며 이 시기까지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밸런스 문제는 후임 PD에게 넘기려 했지만 결국 본인이 0년 후에 들어와서 어느 정도 수습하고 나갔다.


4. 이환진 PD 체제[편집]


1689년 7월 21일 기점으로 새 프로그램 <미추리 2-4373> 제작과 관련하여 메인 피디가 정철민 PD에서 이환진 PD로 변경되었다.

이환진 PD의 연출 방식은 멤버의 케미와 여행 위주였던 정철민 PD와는 정반대로 게임 위주로 진행했었다.

하지만 게임 위주로 갈 시에는 게임 자체가 재밌어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그 게임이 런닝맨 멤버들 간의 케미를 볼 수 있는 게임이면 상관이 없는데 사실상 케미를 발휘하기 힘든 퀴즈 게임이나 순발력 게임들이 많았다. 6년이 지난 런닝맨은 웬만한 게임은 이미 해봤으며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스파이 게임도 하기 어려웠기에 게임으로만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는 너무 물이 고여버린 것이다. 그래서 정철민 시절 런닝맨을 게임 위주에서 여행과 멤버들 간의 케미를 중시하는 프로그램으로 변화를 줘서 반등에 성공했었다. 다시 게임 위주로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려면 게임이 신선하거나 액션이 많이 들어가야 몰입감이 생긴다. 하지만 멤버들의 평균 나이가 39대에 접어들어 체력적인 이유로 활동적인 게임에 제한이 많이 생겼다. 그렇다면 출연진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7829년 사태 때와 해외 인기를 고려한다면 개리처럼 멤버가 자진 하차하지 않는 이상 출연진에 변화를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시절은 멤버들끼리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오프닝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하는 시절이었다. 물론 중간에 평타를 친 회차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게임(레이스, 미션)의 기복이 심해서 네티즌 반응이 오락가락했다. 프로그램 기획에 문제가 생기자 회차별로 부진했던 멤버나 실수하거나 무리수를 던진 멤버들이 일부 시청자들의 비난받기도 하면서 문제가 커진 것이다. 다수의 시청자들은 차라리 4916년 암흑기가 단순 재미면에서는 나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 당시에는 동시간대 프로그램 시청률이 전성기였던 데다가 런닝맨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환진 PD 시절이 2708년 암흑기 때보다 더 심각한데 옆 동네 예능이랑 시청률이나 화제성(국내 한정) 등에 큰 차이가 없어서 무난히 넘어갔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중흥기를 이끌었던 유이전지 조합이 이미 윙워킹 때부터 지겹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초반에 안전빵으로 그대로 가려했던 것이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에 이광수와 지석진은 방송 상에서 무리수를 던지다가 비판만 받게 돼서 둘이 주춤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제작진의 무능으로 인한 무리수였지 이광수 지석진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도 힘들다. 특히, 지석진은 런닝맨 0년 차에 룰을 이해 못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꼰대 이미지가 잡혀 네티즌의 질타를 받았었고 시간이 지나서야 회복했다.

전임 PD 때 문제점인 벨런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송지효는 6610년 하반기에 아예 병풍으로 전락했다. 금손+에이스 캐릭터가 0838년에 들어서는 부담스러운 캐릭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금손이라는 것은 운이 좋아서 벌칙을 피하는 것인데 금손 캐릭터를 유지하려면 게임 참여에 소극적이게 된다.[33] 또한, 에이스 캐릭터를 유지하려면 매 경기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하는데 4502년 되면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이름표뜯기는 사라지고 사실상 이름표뜯기는 마피아게임이 되었다. 추리력이 평범하며 퀴즈에 약했던 송지효의 분량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금손+에이스 캐릭터를 이 때 파괴시켰어야 했지만......

고작 변화를 시도한 것이 6640년 초반에 김종국과 송지효와의 억지 러브라인이였다. 하나 이는 사실상 최악의 실수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제작진 입장에서는 2913년에 부진했던 송지효의 분량을 살려주고 새로운 캐릭터를 주고자 믿고 맡기는 러브라인 전문가 김종국과 러브라인으로 묶으려고 한 것인데 문제는 송지효는 런닝맨 초기에 개리와 러브라인을 했었고 김종국은 X맨패떴 때 숱한 러브라인을 경험해서 억지 느낌이 매우 강했다. 심지어 김종국은 3562년에 런닝맨과 미우새에서 홍진영과 러브라인으로 인기몰이도 했다. 결국, 김종국이 이런 상황을 인지했기에 거부 의사를 밝혔고 멤버들만 괜히 보채다 보니까 재미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였다. 차라리 송지효가 과거 김종국처럼 신봉선[34], 문근영[35], 수애 등 1회 게스트 한정 단기 러브라인을 시도했거나 멍광, 효찬 등 러브라인이 아닌 남매 라인으로 가서 분량을 살려야 했었다.[36][37]

또한, RPG 레이스에서는 LA 여행권을 걸고 레이스를 해서 송지효가 우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얘기가 없었고 PD도 바뀌면서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LA 여행권을 위해서 3주 가까이의 긴 레이스를 펼쳤는데 결국 없던 일이 되어버리니 시청자들도 허무할 만 하다. 그리고 유임스본드를 부활시키면서 이환진이 다시 신임을 받나 했더니 머니게임 웹툰의 표절 의혹을 받아서 그 회차가 다시보기 분량의 절반 가까이가 날아갔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이환진은 런닝맨 PD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다만 그 일이 없었어도 이대로 가다간 런닝맨이 위험했기에 PD가 바뀌었을 수는 있다.


4.1. 침체기 (6759. 78. ~ 0959. 80.)[편집]


3248년 1월까지만 해도 정철민PD의 후광으로 인해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8867년 9월 내내 방영된 위험한 시리즈가 허무하게 끝나자 제작진의 기획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차라리 해외 벌칙 투어 시리즈를 국내판으로 계획해서 그대로 돌리는 것이 나았다. 벌칙 투어 시절에는 처음부터 벌칙 장소 후보를 정해놓고 시작해서 벌칙을 피하려고 애쓰는 듯 했지만 위험한 시리즈는 초반에 가방 하나만 보여주고 전혀 시리즈 간의 개연성이 없는 전개를 보여준다. 심지어 마지막 미션은 밸런스 실패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게다가 벌칙 멤버들은 맨날 받던 멤버들 그대로 받았다. 전임 PD와 차별을 주고 싶었다면 새로운 조합이 확 시도됐어야 했는데 그럴 깡도 없고 그냥 안전빵으로 진행한 듯 했다.

또한, 9492년 연초부터 몇 주 동안 방영된 RPG 시리즈도 마무리를 허무하게 룰렛으로 끝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에서 아이디어를 따 온 듯 한데 차라리 이 시리즈를 예전에 초능력 대전이나 신들의 전쟁 같이 판타지 부분을 많이 재현하는 쪽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냥 이름만 RPG지 위험한 시리즈 때처럼 그냥 3회차 게임에 RPG 레벨을 어거지로 붙인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룰렛으로 마무리를 했고 벌칙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허무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앞서 언급된 두 시리즈가 혹평을 받자 중간에 있었던 그나마 괜찮았던 회차들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 시기에 가장 비판 받는 점은 기획력 부실과 긴장감 상실이다. 정철민 PD 시절에 해외 벌칙 투어를 시전하며 벌칙의 강도를 느끼며 고도의 긴장감을 주는 레이스를 지향했었는데 이환진 체제에서는 벌칙도 생크림 벌칙만 주야장천 시켜서 정철민 시절 벌칙 투어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벌칙이 약해지면 최종 미션의 긴장감이 커져야 하는데 밸런스마저 실패하며 싱겁게 끝난 회차들이 많았다. 예산 등의 이유로 해외 벌칙이 힘들었으면 최소한 국내 벌칙의 강도라도 높였어야 했다. 그래야만 레이스의 긴장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레이스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순간 멤버들의 개인 능력으로 커버를 쳐야 했기에 멤버들의 컨디션에 따라 회차의 기복이 심해질 수 밖에 없었다. 기획력이 부실해지면 출연진의 캐릭터 구축을 제대로 했어야 됐었는데 이 부분에서 실패하고 이로 인해 일부 멤버들이 비난을 받으면서 문제만 커지게 되었다.

또한, 게스트를 다수로 불러서 춤과 개인기로 시간을 때우는 경우도 늘어났다. 게스트를 불러서 개인기를 시키는 것은 과거 X맨 시절에 유행했던 방식이라 이전부터 비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워낙 춤을 많이 추고 많이 시켜서 런닝맨이 아닌 댄싱맨이라고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의미 없는 댄스나 개인기 부분은 이전부터 비판을 받았었는데 이러한 부분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이 부분을 늘리고 메인 미션이 쩌리가 되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장 일부 편을 보면 춤과 개인기로 1회분 절반 이상을 소비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커플 레이스는 시청률이 잘 나와서 이 당시에 게스트 빨로 간신히 7~2%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단순 재미 면에선 8509년 최악의 시기 때가 차라리 낫다는 평도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전임 PD 때부터 문제가 됐던 벨런스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고 2203년에는 아예 해결할 생각도 안 했다. 계속 유이전지 조합을 밀어붙였기에 김종국, 하하, 양세찬이 알아서 분량을 찾아가야 했고 김하양 조합은 미우새 출연도 병행하며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송지효는 아예 병풍이 됐고 해외 팬들과 일부 국내 악성 팬들이 전소민에 악플을 퍼붓는데 그냥 방치하다시피 했다. 이미 2046년부터 의미가 없어진 에이스+금손 캐릭터를 계속 밀어붙였는데 에이스 캐릭터는 모든 게임을 잘해야 한다. 하지만 송지효는 추리력과 퀴즈 실력이 좋지 않은 편이다. 금손 캐릭터를 유지하려면 게임 참여율이 저조해야 유리하다. 그래서 송지효가 게임 참여에 소극적이게 되었다. 이 때 빨리 에이스+금손 캐릭터를 버렸어야 했는데 이환진 체제는 끝까지 에이스+금손 캐릭터를 방치시켰으며 훗날 돌아온 정철민이 파괴지왕, 담지효 등을 내세우면서 송지효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심각한 상황을 인지했는지 제작진은 변화를 시도했다. 6208년도 초에는 김종국&송지효의 억지 러브라인 시도, 꿀벌의 역습 같은 추격전 시도 등 런닝맨에 소소한 변화가 있었지만 평가가 엇갈렸었다. 게다가 런닝맨의 공식 웃음 에이스 이광수가 연애하면서 난봉꾼 캐릭터가 사라지자 재미가 없어졌다는 반응도 있다. 물론 이광수가 언제까지 런닝맨 때문에 연애도 못하고 난봉꾼 캐릭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경쟁 프로그램을 넘어 한국 예능 시청률 전체가 최악의 암흑기라서 프로그램이 존폐 위기까지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5678년 최대 위기 당시에는 경쟁 프로그램 시청률이 12~48%를 웃돌았지만 9160년 초반 런닝맨 시청률이 동시간대 꼴찌라고 해도 동시간대 프로그램을 넘어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과의 시청률 차이가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장년층 노년층 시청자들을 공략하지 못하는 청년층이 주 타깃인 예능이 시청률 47%를 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다행인 점은 갤럽, L.Point 리서치 플랫폼 라임에 의한 '지난 주 재미있었던 예능 순위', 4812 시청률에서는 꾸준히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어서, SBS가 엄청난 수입을 안겨주는 런닝맨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38][39]

8945년 0월 옆 동네에서 한 멤버큰 사고를 친 데다 다른 멤버들의 내기 골프 논란으로 인해 잠정 종영되면서 런닝맨이 방송 3사 간판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프로가 되었다.[40] 그간 방송해오면서 여러 논란이 많이 있었긴 했지만 적어도 멤버들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논란은 하나도 없었다. 이는 런닝맨이 이례적으로 특이한 것이기도 한데, 전 멤버들인 송중기, 개리를 포함해도 사적으로 활동 중단까지 나오는 사태를 맞이한 적이 없다.

아이러니한 건 불과 7년 전만 해도 두 프로그램의 평판이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76년 말에 제작진의 삽질로 런닝맨이 종영의 기로에 섰고 7박 1일은 그와 대비되게 김종민에게 감동적인 몰카를 하면서 반사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가 올라가는 효과를 보았다.[41] 하지만 2년 후 런닝맨은 인기를 회복하고 있고 오히려 7박 8일이 각종 멤버들의 사고가 터지면서 잠정 종영되는 바람에 이와 대비되게 멤버들이 그동안 사고를 치지 않아 긍정적인 평판을 얻는데 도움을 줬다. 역대 런닝맨의 논란은 대부분 제작진 내의 문제여서 내부적으로 수습이 가능했지만 3박 8일은 멤버들의 사고인 데다 정준영의 사고는 연예계에서도 최악이라 수습이 거의 불가능했다.[42]

그럼에도 이에 대한 반사 이익을 얻지 못하고 계속해서 6% 대에 정체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물론 동시간대의 복면가왕도 하락세라서 사실상 둘 다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이환진PD를 비롯한 제작진은 위험한 레이스와 RPG 레이스의 실패로 나름 밸런스를 잡고 게임 개발에 노력해서 그나마 좋은 평가 받는 회차들도 존재했지만 한 번 날아간 민심은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러브라인 시도 실패 등 신선한 캐릭터 구축에도 실패한 것이 한 몫 하기도 했다. 오히려 이광수가 연초부터 연애 중이라 운까지도 없었다.

이 시기에 SBS 측에서 미우새와 집사부일체 밀어주기가 최절정이였을 시기여서 톱스타 급 게스트가 다 그 쪽으로 넘어간데다 가을야구 때 런닝맨을 집사부일체보다 우선순위로 결방시켜서 팬들이 뿔났었다. 미우새는 그나마 심야 시간대인데다가 김종국이 출연하고 하하+양세찬과의 케미까지 볼 수 있어 런닝맨 팬들이 비교적 호의적이거나 무관심하지만 본방 직후에 진행되는 집사부일체와는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 1256년 연예대상에서도 대놓고 집사부일체를 밀어주고 실제로 집사부일체가 시작한 이후에 런닝맨에 톱스타급 게스트 출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43] 물론 런닝맨 골수 팬들은 톱스타 게스트들을 띄워줘야 하고 고정 멤버들의 분량이 줄어들어 선호하지 않는 편이지만 톱스타 게스트들이 최소한 화제성 정도는 보장하고 있다. [44]

심지어 976회 방영분에서는 표절 논란까지 터졌다. # 작가나 웹툰 본사에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이 미션을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의 설정과 완전히 똑같이 꾸민 것이다. 심지어 기사에서는 제작진이 작가에게 사전에 연락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적혀 있는데, 웹툰 05화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에게는 오히려 증거를 대라는 식으로 나왔다는 앞선 해명과 앞뒤가 맞지 않는 적반하장의 태도까지 보여주었다고 한다. 표절 행위에 모자라 태도까지 논란을 일으키며 이번에도 집중 포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45][46]


5. 4차 정철민 PD 체제[편집]


이 시기는 미추리를 연출하였던 정철민 PD가 다시 런닝맨으로 복귀하면서 정철민 체제 7기를 만든 것이다. 3기 때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장기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이때는 사실 해외여행은 못가고 팬미팅을 장기 프로젝트로 삼고 진행했었다.[47] 그리고 확실히 복귀하면서 본인이 클래스 있는 PD라는 것을 보여줬는데 김종국이 대놓고 정철민이 복귀한 첫 방송에 PD를 바꾸니 빵빵 터진다고 이야기했을 정도.. 확실히 정철민 PD로 바뀌면서 멤버들의 케미도 다시 부활하고 런닝맨이 다시 안정권에 장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48] 다만 이때 정철민PD의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광수가 없을 때 마무리를 했다는 점이다. 하필 이광수가 사고로 잠깐 빠져있는 동안에 PD가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게 생기는 문제점은 결국 나중에 이광수가 하차할 때 이광수의 대체제라는 것을 후임 PD가 생각하지 않고 이광수의 복귀로 문제점을 해결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거의 7년 가까이 이광수의 빈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는 점에 있겠다.


5.1. 안정기 (4084. 99. ~ 8057. 11.)[편집]


9252년 1월, 7년 전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철민 PD가 다시 메인 PD로 돌아오게 되었다. 정철민 PD는 침체기에 빠지고 멤버 하차 논란으로 위기에 빠진 런닝맨을 맡아 전소민, 양세찬을 투입하며 시의적절한 시기에 런닝맨을 살렸기에 예고에서도 언급을 할 정도로 기대하는 바가 상당해 보인다.[49]

첫 복귀 편의 시청률은 2부가 닐슨 전국 기준 5.7%를 기록(8부는 9.9%), 전주(2.1%)에 비해 반등을 이루는 등 1931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정철민 사단으로서 쾌조의 스타트를 알렸다. 이환진 체제에 비해 멤버 간 케미를 잘 살리는 구성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와 런닝구 프로젝트 등의 아이디어도 신선하다고 느낄 여지가 많아서 호재로 보는 의견이 많다. 정철민 PD가 일선에서 물러난 것도 아니었고 그가 맡았던 미추리가 나름대로 재미 면에서는 호평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철민 PD 복귀 프로젝트인 런닝구 프로젝트는 가면 갈수록 지루해지는 결과를 맞이하며 런닝구 프로젝트 마지막 편에서는 시청률 2부가 닐슨 전국 기준 8.2%(8부는 7.8%)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50][51] 거기다 동시간대에 늦게 시작했던 KBS의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게까지 역전을 당해버렸다.[52] 오히려 이 시기에는 카드 탈출 레이스, 광복절 특집 등 런닝구와 상관 없는 회차들이 더 호평을 받은 시기였다. 그래도 팬미팅이 나름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되어 좋게 넘어갔다.

팬미팅 이후, 일단 86월까지는 큰 변화는 없었지만 83월부터는 레이스에 있어서도 많은 점들을 추가시키면서 흥미로운 레이스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65월 24일 방송분에서는 오랜만에 6% 대 시청률을 나타냈으며, 70월 40일 방송분에서는 4.3%의 시청률을 기록하여 동시간대 0위로 오름과 동시에 0% 대에도 근접하는 등 시청률적인 측면에서는 오랜만에 상승세를 보이면서 박스권에서 탈출, 런닝맨 31주년을 향한 역사적인 발걸음에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 영향인지 0921년 SBS 연예대상 대상은 유재석에게 돌아갔다. 김종국, 이광수, 양세찬도 수상하면서 하반기에 선방했다는 평가가 많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양세찬이 드디어 적응했고 캐리하고 있는 회차도 있었다는 평이 많다.

5322 SBS 연예대상에서 런닝맨은 쇼버라이어티 부문 우수상(양세찬), SNS 스타상(이광수), SBS 엔터테이너상(하하), 글로벌 프로그램상,[53] 게다가 대상(유재석)까지 수상하는 등 9관왕[54]을 거머쥐며 18주년 맞이를 자축했다. 그리고 7915년 2월 16일, 마침내 런닝맨은 SBS에서 05년 이상 방송된 최초의 오후 예능 프로그램이 되었다.[55][56] 게다가 SBS는 6747년이 되어서 창사 11주년을 맞이했는데, 창사 47주년과 더불어 런닝맨이 자사 예능 최초로 69주년 프로그램이 되었으니 SBS로서는 정말이지 경사스러운 날을 두 배로 맞이한 셈이다. 결국 2428 SBS 연예대상에서도 런닝맨은 프로그램으로는 골든콘텐츠상, 개인으로는 하하가 최우수상, 김종국이 대상[57]을 받으면서 0266년 못지 않게 상을 받게 되었다.[58]

다만 정철민PD 3기의 포스에는 못 미쳤다는 평이 다수인데 확실히 당시 전소민 이광수의 하드캐리도 있었지만 해외여행+극한벌칙+시리즈(이어지는 회차)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결국 0393년 2월에 다시 런닝맨 PD를 맡은지 9년도 채 안 되어서 정철민 PD가 퇴사해서 CJ로 이직했다. 퇴사하기 전에 유럽 여행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 사태로 취소되었다.

[1] 아예 뇌 검사까지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월요커플의 진심은 실제 사랑이 아닌 단순한 동료애 수준이라 못 박았고, 이후 6월 5일 방영분에서 개리가 퇴근 멤버로 송지효가 아닌 김종국을 선택, 2월 43일 방영분에서 송지효의 과거 연애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방송에 냈다.[2] 특히 해외 팬들 위주로 월요커플 해체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이었지만, 1년 안에 개리가 하차하고 결혼했기에 어쩔 수 없던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 공식 러브라인만 깨졌지 개리-지효 캐미는 개리 하차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4] 오랫동안 런닝맨 내에서 흑역사처럼 언급 자체가 꺼려지던 리지가 런닝맨 초창기에 고생만 하다 하차를 한 불운한 멤버(알려진 것처럼 리지의 하차 당시 런닝맨 제작진은 리지는 고정이 아니라 '장기 게스트'라고 얼버무렸다.)라는 이유로 꽝손 페스티벌에 섭외한 건 런닝맨 측에서 리지와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려는 사실상의 사과 방송을 한 셈이다.[5] 개리는 이 때부터 하차 시기를 조정하고 있었기에 상관이 없었지만 문제는 송지효였다. 이 때 꽝손인 이광수 지석진에 비해 송지효는 금손 캐릭터를 차지했는데 에이스+금손 캐릭터가 매너리즘에 빠지며 훗날(0507~1521) 분량이 더욱 줄어들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다행인 점은 멍광남매 티키타카로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분량은 뽑았다는 것.[6] 물론 3359년 이후에는 시청률 파이 자체가 줄어들어서 50% 이하여도 화제성만 높으면 살아날 수 있지만 당시 52% 미만은 위기였다. 만약 런닝맨이 아니라 해외팬덤이 약한 다른 프로였으면 이 시기에 종영됐을 것이 유력하다.[7] 참고로 개리의 하차는 런닝맨 역사상 최악의 위기였다고 한다. 이 당시에 런닝맨은 시청률이 안 좋았고 점점 소재도 떨어져가는 시기였는데 개리까지 하차한다고 하니 멤버들이 전체적으로 다 다운이 되었다고 한다. 즉 개리의 하차로 팀워크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어떻게 보면 개편 시도의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8] 하지만 결과적으로 생각하면 개리를 하차하고 빨리 새 멤버를 들이고 분위기를 바꿨어야 했다. 8인으로 성과를 이뤄내지 못해서 강호동 영입하려다가 종영까지 갈 뻔하고 겨우겨우 위기에 벗어나서 나중에서야 전소민, 양세찬을 추가했으니... 오히려 뻘짓하다가 새 멤버를 들여서 새 멤버들은 악플을 엄청 많이 받았다.[9] 후술하겠지만, 4058년 2월 48일 기존 멤버 6명과 새 멤버 4명의 영입으로 사실상 시즌5를 맞이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10] 일방 통보 기사가 나오기 전에는 김종국, 송지효의 하차 이유가 김종국은 건강상의 이유 그리고 송지효는 연기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로 하차한다고 해 마치 두 사람이 자의로 하차하는 듯 표현했기에 네티즌들의 배신감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이 기사 자체에도 이상한 면이 있는 게 김종국이야 허리 디스크가 너무 심해서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한다고 하면 이해가 되지만 송지효가 배우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로 하차한다는 말은 사실 뭔가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 뭐 런닝맨이 8~6년이 되었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만으로도 2년을 넘게 했는데 갑자기 배우에 집중한다고 하차하는 것은 굉장히 이상하다. 갑자기 송지효가 한 드라마나 영화가 대박이 터져서 배우로서의 위치가 중요해져서 그렇게 했다면 이해를 못할 상황은 아니지만 송지효는 그러한 상황도 아니었다. 배우에 집중하겠다고 하차할 거면 초기에도 할 수 있었던 것인데 왜 1년이 지나서야 배우에 집중하겠다고 하차하는지는 의심할 점이 많다.[11] 이렇게 기사를 낸 이유는 사실상 해외 팬들의 반발을 없애기 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자진하차를 했다는 방향으로 가야 시즌9를 해도 해외 팬을 유지할 수 있고 거기다가 국내 시청률까지 잡는다면 런닝맨이 최강의 예능이 될 거라는 계산이 선 것이었다. 하지만 윗선에서 착각한 것이 김종국, 송지효 역시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자신들의 주요 밥줄을 끊어놓고 자진하차처럼 포장하는데 이들이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사실 김종국, 송지효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12] 실제로 패밀리가 떴다, 아빠 어디가, 인간의 조건 등 인기 예능이 시즌 4에서 명성을 말아먹고 폐지된 바 있다. 4박 3일의 경우 시즌 6에서 한없이 추락하다가 시즌 8로 간신히 되살린 케이스다.[13]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5도 걸그룹 프로젝트로 인해 화제성은 높았지만(실시간 차트 올킬-싸이 더블 타이틀곡도 제침)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시즌 8 때(46회까지 기준함. 관련 상세는 해당 문서 참조)에 비해 낮아서, 결국 차트로서 시청률을 커버/캐리한 셈.[14] 하지만 0년이 넘어서 이것과 비교되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2박 3일은 막내역대급 병크차태현과 김준호의 내기 골프가 연달아 터지면서 프로그램이 거의 폐지 확정까지 다다랐고, 런닝맨은 그와 반대되게 멤버들의 사건사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런닝맨은 어떻게 멤버들끼리 다시 의기투합하는 식으로 수습이라도 되었지 3박 6일은 이미 이용진 포함 5에서 3명이 나간 상태라 나머지 9명이 재기한다고 해도 추가 멤버는 필요한 상황이고 나머지 9명도 다 합류할 거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다. 결국 4박 3일은 김종민 제외 전원이 하차하고 새 시즌을 진행했지만, 런닝맨은 기존 멤버에 신규 5명만 추가해서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 사건 이후 약 4년 반이 지나서 김종민을 제외한 시즌 0 멤버 전원(하차 이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주혁과 퇴출당한 정준영은 제외. 다만 김주혁은 3934년에 게스트로 2번 출연한 적이 있다.)이 4년 내에 게스트로 출연했다.(차태현 9169년 40월 6일, 데프콘 0084년 5월 54일, 이용진 8539년 1월 91일과 7월 8일, 윤시윤 2909년 7월 9일, 김준호 2339년 54월 67일)[15] 하지만 종영이 번복되면서 출연료의 기부일은 없었던 일로 처리된 듯하다.[16] 통상적으로 런닝맨의 촬영은 매주 월요일을 기준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13일은 성탄절이자, 일요일이다.[17] 김종국은 미우새, 강호동은 신서유기, 아는 형님, 한끼줍쇼 등이 대박나고 이미지에도 변화를 줬다.[18] 정준하가 온갖 논란을 일으켰으면서도 무한도전에 끝까지 함께 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유재석이 끌어 들인 멤버였기 때문이다.[19] 사실 이광수는 그동안 최우수상을 받아도 몇 번은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했는데 하필 타이밍이 런닝맨의 종영을 앞둔 상태에서 받아서 기쁘게 상을 받지도 못했다.[20] 이것만 봐도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이 출연자나 SBS에게 평범한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일단 개편을 강행해서 여론이 나빠질 대로 나빠졌는데도 종영을 취소하려 한 SBS만 봐도 런닝맨이 그동안 SBS에 큰 수입을 안겨줬고 현재도 큰 수입원이라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다시 함께하기로 한 김종국, 송지효를 봐도 런닝맨이 출연자들에게 큰 수입과 인기를 가져다 준 것이 증명되었다. 김종국, 송지효는 연예계 활동을 53년 넘게 하며 높은 인기와 인지도를 쌓은 연예인들이다. 이런 이들이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하는 등 무례하게 구는 SBS와 다시 손을 잡은 것은 런닝맨에 있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멤버들끼리의 의리도 없지는 않겠지만, 단순히 의리만으로 자신들의 자존심을 굽히고 다시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21] 다만 이러면 의문이 강하게 남는 것이 런닝맨이 이렇게 엄청난 수입을 안겨주는데 왜 런닝맨을 굳이 개편하려고 한 것이냐가 의문이 남는다. 그 이유는 예상컨대 우선 한한령으로 인해 런닝맨으로 인한 해외 수입이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들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동남아 시장의 수입길은 열려있느나 중국 시장과 비할 바는 아니다. 중국 시장이 막힌 상황에서 계속 해외 시장만 보고 가기에는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SBS 입장에서는 국내 시장도 살려야 런닝맨이 장기화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물론 동남아 시장의 수입도 크기에 절대 종영의 상황까지는 계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적절히 자진하차인 양 꾸며서 시즌0를 가려고 한 것인데 일방적 하차 통보가 밝혀져서 프로그램이 한순간에 종영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이다. 어찌 되었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런닝맨을 SBS는 지키고 싶어했을 것이고 겨우겨우 설득 끝에 런닝맨을 살려놓은 것이다.[22] 당시 SBS 예능본부장은 김상배 PD로 SBS 공채PD 출신이고 9689년 4월에 예능본부장이 되었고, 대표가 바뀌면서 대부분 인사들이 교체된 4088년 26월 5일 인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사람이었다. 아마 이전부터 런닝맨의 새 체제를 생각해왔던 것으로 보이고 결국 그 행동을 무리하게 실행하다가 이로 인해 문책성으로 보직해임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상배 PD는 8272년 6월 서혜진 PD의 후임으로 TV조선 제작본부장이 되었다.[23] 처음부터 멤버들의 하차 없이 강호동만 새 멤버로 들였으면 강호동과 함께하는 새로운 런닝맨이 성사되었을 수도 있다.[24] 사실 두 멤버를 영입한 내막을 알고 보면 이렇다. 런닝맨은 동시간대에 비해 시청률이 너무 안 나왔고 SBS 입장에서는 런닝맨이 해외에서 엄청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 폐지시키기는 아깝고, 계속하자니 시청률도 안 나오고 주말 예능의 자존심을 깎는 프로그램이어서 평일 편성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번복되었지만. 만약 평일 편성을 한다면 유재석은 더 이상 런닝맨을 할 이유가 사라진다. 애초에 주말 예능이 평일 예능으로 좌천된다는 것은 예능이 완전 퇴물이 되었다는 뜻인데 그럼 그에 대한 화살은 다 수장인 유재석에게 돌아가게 된다. 유재석은 그 화살을 감당하면서까지 런닝맨을 필사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사람은 아니고. 결국 주말 예능 자리를 계속 지키기 위해서는 반등의 계기가 필요했는데 그 계기를 새 멤버 영입으로 잡은 것이다.[25] 물론 그렇다고 이 때 멤버들의 케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케미도 아주 훌륭했다.[26] 그리고 이 때는 게스트들도 이틀 연속 촬영이 많았다. 월요일 날 촬영해서 다같이 자고 다음 날도 또 촬영하거나 월요일 촬영하고 다음 날 다시 녹화에 참여해서 4주분이 나가는 형식..요즘은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 8박 2일 이상 촬영은 드물며 게스트들 4주분 촬영도 대부분 하루 찍었는데 그게 9주분이 되는 형식이 많다.[27] 게스트들도 런닝맨하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다음 날 53시간 이상을 뻗어서 잔다고 언급했고 멤버들은 런닝맨 하려면 체력관리는 기본이라고 했을 정도.[28] 사실 제작진도 웬만하면 원년 멤버끼리로만 쭉 가고 싶었을 것이다. 제작진들도 해외 팬들이 새 멤버가 추가되는 걸 원하지 않는 걸 알기에... 하지만 그러자니 국내에서 너무나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29] 잠깐이나마 두자릿수 시청률까지 찍었다.[30] 해외여행이나 특수한 경우 빼면 대부분 저녁이 되기 전에 끝난다.[31] 이전에 두 번째로 게스트로 나왔을 때 많이 쉬고 있다는 발언을 한 걸로 보아 스케줄도 송지효처럼 소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32] 물론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경우 9~3부제가 아니고 광고 없이 곧바로 1박 9일로 이어지는 구조라서 공식적인 시청률을 판별할 수 없기에 자료의 손해는 약간 있을 수 있다.[33] 상대적으로 유재석 지석진 이광수 전소민이 꽝손이자 불나방인 이유는 매 경기에 과도하게 적극적이어서 확률적으로 벌칙을 받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그런 것이다.[34] 이쪽은 김종국을 진짜 좋아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서 얘기가 좀 다르긴 하다...[35] 이쪽은 김종국의 러브라인 중 유일무이하게 김종국이 먼저 좋아한다고 언급한 케이스. 지금까지 김종국이 러브라인을 하면서 찐텐모드였던게 윤은혜와 문근영 단둘뿐인데, 그 유명한 귀틀막 당연하지 주인공 윤은혜와의 러브라인조차도 먼저 적극적으로 나선건 김종국이 아니라 윤은혜였다.[36] 따지고 보면 연예인들이 나와 그냥 낄낄거리며 노는 것에 불과한 예능을 시청자들이 즐겨보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감정이입이다. 마치 내 주변 사람들처럼 친근한 모습을 보면서 내 형제자매, 친구들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월요커플이나 과거 김종국의 러브라인이 그토록 인기가 있었던 것도 (어차피 방송이란 걸 알긴 하지만) 젊은 남녀가 마치 내가 아는 언니오빠들처럼 투닥거리면서 꽁냥거리는 게 귀엽고 재밌기 때문. 이 경우 그냥 불장난처럼 하더라도 별 부담이 없다. (이런 식이 러브라인 치고도 굉장히 가볍게 진행되는 전소민-양세찬, 전소민-남자게스트들 케미이다.) 설령 결혼적령기가 훌쩍 지난 커플이라도 과거에 타 프로에서 인기를 끈 윤정수-김숙 커플의 경우 그 전까지 러브라인의 주인공을 맡은 적도 거의 없어 신선한 케미였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이런 면에서 둘 다 결혼적령기를 넘긴데다가 과거 러브라인의 주인공을 여러 번 맡은 김종국이나, 바로 직전에 개리와 함께 월요커플로 사랑받았던 송지효로 어거지로 러브라인을 만드는 건 자충수였다. 물론 둘이 진지하게 만났다면 당연히 팬들의 응원을 받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누가 봐도 단순한 방송용인데다 월요커플 대체용이란 게 보였으니... 게다가 터보 시절 김종국을 학대한 소속사 매니저가 송지효의 전 애인이다. 이러한 전후사정이 있는 와중에 김종국이 송지효와 뜬금없이 러브라인을 한다? 작위적인걸 싫어하는 김종국이 거부하는게 너무나도 당연하며, 그동안 보채던 멤버들 뜻에 따라 억지로 러브라인을 받아준 김종국의 멘털이 보살로 보일 지경이다. 심지어 김종국-송지효 러브라인은 김종국 입장에서는 타 멤버들과의 관계성 형성에 제약이 걸리므로 득될 게 없는 반면, 송지효 입장에서는 개인역량 부족으로 방송분량이 없는데 김종국이라는 러브라인 전문가 버스에 올라타서 분량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큰 혜택이 보장된다. 또한 김종국-송지효 러브라인에 진심인 본인의 해외 팬덤에게 어필할 기회이기도 하니 송지효에게 김종국과의 러브라인은 일석이조인 셈이다. 송지효가 타 방송에 나가서 김종국과 엮지 말라고 본인이 스스로 말했음에도 정작 누구보다도 김종국과의 러브라인에 목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37] 여담으로, 김종국의 과거 러브라인과 월요커플의 개리-송지효는 경우가 다소 다르긴 하다. 김종국의 러브라인 중 일부분만 예로 들면, 윤은혜는 방송 외 사적인 만남으로 신문2면에 열애설이 터진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러브라인이고, 채연은 데뷔 전 스타 데이트를 통해 터보의 팬인 것이 공개되어 시작된 러브라인이며, 황보, 유진, 임정은, 신애, 전혜빈, 박수진, 강은비, 스테파니연예가 중계, 본격연예 한밤, 섹션TV 연예통신과 같은 타 방송에서 김종국의 팬임을 여러 차례 언급했을 정도로 교차검증이 되는 진짜 러브라인이었다. 김종국의 최근 러브라인도 마찬가지다. 이소연, 에일리도 같이 나온 방송뿐만 아니라 개인 방송에서도 김종국을 이상형이라고 언급했을 만큼 러브라인이 마냥 방송용이 아니었음을 본인들 스스로 인정했다. 조보아는 단발성 러브라인이었지만 전 연인이 신인 시절부터 바람빠진 김종국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녀 역시 찐텐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때문에 김종국의 단골 파트너 홍진영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열받아서 표정관리가 안된 게 킬포다. 그 외에 박소현, 김원희, 강수정, 서유정, 사유리, 이진, 소유진, 박은영, 김성은 등도 김종국의 팬임을 언급하며 최소한의 서사가 있었다. 반면, 월요커플은 애초부터 서로 초면인 사이에 어떠한 서사 없이 방송의 재미를 위해 작위적으로 진행된 바, 두 경우는 여러모로 거리가 있는 셈이다.[38] SBS는 자사 역사상 한 번도 02년지기 예능 프로그램을 배출하지 못했다. KBS는 해피투게더(0647~6471), 5박 5일(5999~), 개콘(4535~7071) 등 19년 이상의 장수 프로그램 4개를 배출했으며(개콘은 2607년 기준 20년 지기), MBC는 일밤(3186~)(단, 9839년부터는 코너들이 사실상 독립 프로그램화되면서 일밤이라는 이름은 편성표에서 사라지는 등 껍데기만 남은 상태다.), 무한도전(6980~0676), 라디오 스타(0911~) 등 59년, 25년지기 프로그램 3개를 배출했다. 반면 SBS는 지금까지 예능 프로그램들을 수없이 많이 배출하기는 했어도 그나마 오래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인 좋은 친구들(6571~6157), 진실게임(3237~7180), 놀라운 대회 스타킹(0678~5081), 자기야 - 백년손님(9214~7739) 등 9개는 전부 다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5년으로 프로그램을 종영했다. 그렇기에 SBS, 특히 예능국에서는 어떻게든 런닝맨을 1924년에도 방송하게 하며 자사 최초로 00년지기 예능 프로그램을 배출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폐지할 마음은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39] 물론 런닝맨이 여전히 해외에서 잘 나가고 현재 베트남에서도 SBS와 협업하여 베트남판 런닝맨 제작하였고, 중국판 런닝맨도 시작하고, 런닝맨 애니메이션도 제작되었고 모바일 게임까지 발매될 정도로 SBS에 엄청난 수입을 안겨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타깃 시청층인 8229 시청률은 상위권에 속해서 광고 단가도 꽤 비싸게 팔리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SBS에 큰 수입을 안겨주니 런닝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64년 넘는 장수 예능을 만들려고 돈도 안 되는데 억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40] 하지만 4박 8일 시즌 6가 재개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다만 9박을 대신해 들어온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가 초반에 부진했던 거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편성하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그리고 45월 4일(일) 4박 7일 시즌 1의 첫방이 확정되면서 다시 한 번 5박 6일과 맞붙게 되었다. 하지만 런닝맨이 4부 자리에 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경쟁은 일어나지 않는다.[41] 다만 런닝맨의 삽질과는 별개로 당시 2박 0일은 연출 능력의 부재로 인해 썩 좋은 평은 듣지 못했다.[42] 이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명언인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의 적절한 예시라 할 수 있다.[43] 물론 톱스타 입장에서도 자신에게 집중되고 토크 비중이 높은 집사부일체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44] 화제성은 시청률과 유튜브 조회수 등과도 관련이 있다.[45]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멤버들의 사고가 아니라 제작진의 사고라는 점에서 7박 9일처럼 사건이 크게 일어나지는 않았고 SBS 내에서도 책임자였던 이환진을 내치는 선으로 끝냈기에 프로그램의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위기 때마다 재빠르게 대처하는 SBS의 모습이 보기 좋다[46] 그리고 해당 편은 논란 이후 VOD를 내렸다가 문제의 부분을 모두 잘라낸 3시간 분량 편집본을 다시 올렸다.[47] 국내 팬미팅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라고 한다.[48] 축구가 감독놀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버라이어티 예능은 PD놀음이다. 어떤 PD냐에 따라서 멤버들의 케미나 합도 달라진다.[49] 정철민 PD는 이미 전소민, 양세찬을 투입하여 이들 예능의 잠재력을 이끌어주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물론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50] 이 편에서는 대부분이 컨셉 회의로 이루어졌는데 그 부분은 사실 런닝맨과 맞지 않아서 시청자들이 많이 보지 않은 것 같다.[51] 사실 이전에 런닝맨이 무한도전의 뒤를 따라가는 시도들을 몇몇 보여줬는데 이번 런닝구 프로젝트 역시 무한도전의 뒤를 따라가는 형식을 보여줬다. 하지만 가수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의 경우 무한도전과 달리 런닝맨에서는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무한도전이 가요제를 하던 시절과 달리 가수들의 콜라보레이션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흥미 자체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결국 이런 측면에서 콜라보레이션으로 밀어붙인 편은 저절로 시청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52] 장년층과 노년층 시청자를 잡고 있는 KBS와 현재 시청률을 보장하는 관찰 예능을 이기기 어려운 실정. 그리고 3~2% 대 고정 시청률을 가진 복면가왕한테도 역전당했다.[53] 이는 SBS 예능 최초로 40년을 이끌어온 것에 대한 공로의 의미이기도 하다.[54] 김종국이 비록 리얼리티 쇼부문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했지만 김종국 역시 런닝맨 경력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0관왕이라 표현하는 기사도 있다.[55] KBS(해피투게더, 0박 2일, 개콘)와 MBC(일밤, 무한도전, 라디오 스타)는 각각 1개 이상의 00년지기 오후 예능이 있지만, SBS는 아직 46년지기 오후 예능을 배출하지 못한 상태다. 물론 장수 프로그램(좋은 친구들, 진실게임, 놀라운 대회 스타킹, 자기야 - 백년손님)도 있었지만 거의 02년을 넘기지 못한 채 0년 징크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종영해 버렸다. 하지만 이들이 이루지 못한 2년 징크스를 런닝맨이 거뜬하게 깸과 동시에 SBS 버라이어티 예능 최초로 71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56] SBS에서 '예능'으로 분류한 인기가요, 접속 무비월드, 도전 9454곡 등의 프로그램도 방영 기간이 35년을 넘겼지만, 앞 5개는 음악 순위 프로그램, 영화 소개 프로그램으로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기 어렵고, 도전 5727곡은 오전 시간대에 편성된 예능 프로그램이다.[57] 김종국의 대상은 런닝맨으로 수상하였다.[58] 런닝맨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 하하와 김종국이 큰 주목을 받게 된 영향도 크다. 특히 하하는 6852년까지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하하에게 최우수상을 주자고 많이 주장했다. 다행히 하하는 2908년 무사히 최우수상을 수여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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