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윙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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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 Red Wings

1. 개요
2. 배경
3. 알려진 전개
3.1. 정찰조 투입과 작전 현황
3.2. 발각 그리고 결정
3.3. 교전과 참사
3.4. 구원
3.5. 구출작전과 전장수습
3.6. 결과
4. 실상
4.1. 계획
4.2. 투입
4.3. 발각
4.4. 교전
4.5. 이후
5. 기타


1. 개요[편집]


2005년 6월 27일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졌던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씰의 작전이다. 특수부대원 19명이 전사한, 미 특수전 사상 최악의 피해를 기록한 작전 중 하나이다. 레드윙 작전과 함께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작전은 독수리 발톱 작전이 있다.


2. 배경[편집]


2002년 아나콘다 작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대규모 작전은 벌어지지 않았는데, 이유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이슈가 쏠리면서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이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아프간 작전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탈레반은 당시 파키스탄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급격하게 확장, 전에 없는 공격적인 작전을 펼쳤다. 탈레반은 국경에 근접해 있던 자불(Zabul)에서만 1000여명의 탈레반 게릴라들을 집결시키는 등 세를 과시하며 다국적군과 미군을 향한 과감한 공격을 가했다. 덕분에 2003년 말까지 미군 피해는 220여명으로 늘어났고, 미군은 고가치목표(HVT), 즉 게릴라 지휘부나 보급거점을 타격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동원한 타격으로 작전을 전환하여 대응하게 된다.

작전에 동원된 씰 10팀은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아흐마드 샤(Ahmad Shah, 또는 모하마드 이스마일(Mohammad Ismail)) 체포 또는 제거 임무를 부여받았다. 아흐마드 샤는 직할 부하만 200여명을 거느리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세를 크게 과시하고 있었으며, 쿠나르(Kunar) 주의 수도인 아사다바드(Asadabad) 서쪽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중이었다.

CIA가 아흐마드 샤의 위치 첩보를 입수하자 2005년 6월 27일 씰 10팀의 작전이 시작된다.


3. 알려진 전개[편집]



3.1. 정찰조 투입과 작전 현황[편집]


6월 27일 야간에 MH-47의 침투로 4명의 정찰조가 투입되었다.

마이클 P. 머피(Michael P. Murphy) 대위[전사]
매튜 G. 액셀슨(Matthew G. Axelson) 하사[전사]
대니 P. 디츠(Danny P. Dietz) 하사[전사]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 중사(당시 병장)

정찰조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아흐마드 샤(Ahmad Shah)가 은거해 있다는 마을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LZ에서부터 7시간이 넘는 강행군으로 6월 28일에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이들은 관측지점을 선정하고 목표지점을 관측, 탈레반의 움직임을 정찰하며 아흐마드 샤를 최종적으로 타격하기 위한 증원부대를 기다렸다. 다만 영화속에서도 보여주듯 실제로도 산악지형에서의 통신은 매우 불안정하고 부실했다고 한다.[2]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작전은 통신장애를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3.2. 발각 그리고 결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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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대기하고 있는 비트(은신) 지역으로 마을 주민 성인남성 2명과 어린이 1명이 나무를 베기 위해서 올라왔다가 이들과 접촉한다(6월 28일 12시 20분). 적성지역의 민간인에게 발각된 것은 특수전 부대에게 매우 치명적인 일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본대와의 교신도 두절된 상황이었다. 특수전 교리에 따르면 접촉 민간인은 본대로 이송시키거나 풀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노려왔던 아흐마드 샤(Ahmad Shah)의 체포 혹은 제거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며, 더욱이 자신들의 생존과 기도비닉 유지에도 매우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에 정찰조 대원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대원들은 인도주의적 측면과 교전수칙 문제, 그리고 자신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종합적인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팀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영화에서 그 모습이 잘 묘사된다). 아무리 특수전 혹은 비정규전이 잔혹하다고 해도 특수부대원들도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하면 고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영국 SAS 브라보 투 제로 팀도 유사한 상황에서 민간인을 놓아줬다가 이라크군에게 추격당해 앤디 맥넵과 크리스 라이언을 제외한 팀이 궤멸했고, 마찬가지로 걸프전에서 미 육군 특전단 ODA-525가 민간인 남매에 발각되어 200여명의 이라크군과 수 시간 교전을 벌인 경우도 있다. 다만 이쪽은 때맞춰 도착한 근접항공지원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이라크군을 격퇴하고 팀 전원 모두 무사히 공중 퇴출할 수 있었다. 인권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는 공산권이나 북한군 특수부대도 동일한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결국 민간인들의 생사는 조율 끝에 투표로 결정하게 되었는데 2명이 풀어주는 쪽에 표를 던지고 1명은 사살, 그리고 한명은 기권함으로써 접촉한 민간인들을 풀어주었다.[3] 그리고 대원들은 다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노출을 피하게 된다.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는 매우 훌륭한 평가를 받을만 했지만, 그 이후의 상황들과 결과를 본다면 큰 비극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리고 탈레반 치하 협조지역의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1시간도 안되어서 아흐마드 샤(Ahmad Shah)와 그 탈레반 일당들에게 씰 정찰팀의 정보와 위치가 노출된다.


3.3. 교전과 참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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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발생과 퇴각로

탈레반은 즉각 추적에 나서 정찰조가 은거한 산을 포위해버렸다. 동시에 정찰조의 퇴로에서 양측히 접촉하면서 교전이 시작됐는데 현재 이 탈레반 병력 규모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병력에 대한 규모가 처음 언급보다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위작전이 흔히 그렇듯이 직접 교전하는 부대 외에도 차단-타격 등에 다수의 병력이 동원되므로 이는 당연한 것이다. 구출 후 러트렐 본인이 직접 쓴 보고서에서는 적 규모 20명, 이후 미 해군이 이들에게 훈장을 추서할 때는 적이 50명 정도였던 것으로 발표되었으니 직접 교전한 탈레반 규모는 이 정도였다고 볼 수 있고, 전체 탈레반 병력은 최소 100여명에서 최대 200~250여명까지 추정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민간인을 풀어준 뒤 채 1시간도 되지 않은 13시 20분에 탈레반과 접촉하자 정찰조는 매우 당황한다. 게다가 팀은 정찰목적으로 투입됐기 때문에 기관총 같은 공용화기도 부재한 상황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본대와의 교신이 먹통이었다는 점이다. 이후 교전 초기 수 시간동안 정찰조는 본대에 자신들이 발각되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

정찰조는 초기 첨병들을 손쉽게 제압하며 산악지형에서 퇴각했지만 점차 불어나는 탈레반 병력으로 상대가 자신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치열한 총격전으로 정찰조원 대부분이 부상을 입은 와중에 마이클 P. 머피 대위가 총격을 무릅쓰고 고지대까지 올라가 위성전화로 본대와의 교신에 가까스로 성공한다. 머피 대위와의 교신으로 본대는 정찰조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조를 준비한다. 그러나 탁 트인 고지대에 노출된 머피 대위는 집중사격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피탄당해 전사했다.[4] 하지만 머피 대위의 고귀한 희생에도 2개 중대 규모가 넘는 적과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정찰조의 병력과 화력이 너무나 열세했다. 결국 교전 2시간 시점에서 정찰조는 팀원의 절반이 사망하고 한 명은 과다출혈로 죽어가고 있었다.

정찰조의 긴급구조 요청에 씰 10팀의 팀장 에릭 크리스텐슨 소령은 팀원들을 이끌고 긴급출동했다. 씰팀은 16명의 병력이 각각 MH-47 치누크 2대에 나뉘어 탑승하였고 이들을 호위하기 위해서 AH-64A 아파치 2대와 UH-60 블랙 호크 4대(호위병력 탑승)가 투입되었다. 즉 달랑 치누크 2대만 가고 호위 헬리콥터가 아예 없던 영화 론 서바이버와 다르게 호위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고지대에서는 당시 최신형이었던 AH-64D였더라도 치누크를 따라갈까 말까한 판에 엔진출력이 D형보다 한참 떨어지는 구형 AH-64A는 치누크를 쫓아가기 어려웠다. 원칙대로라면 치누크는 호위 공격헬기가 쫓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급박한 상황을 감안하여 작전팀장인 크리스텐슨 소령과 치누크 조종사는 단독으로 전투지역에 돌입하는 것을 선택했다. 정찰조원들의 생사가 벼랑 끝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샤는 미군이 동료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미국이 동료가 다치면 도와주러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건 전장의 규칙이다."


탈레반은 미군이 구조작전을 시작하자마자 산중에서 기관총과 RPG를 이용한 대공사격을 가해왔다. 이 화망사격 가운데 RPG 탄두 한 발이 씰팀이 타고 있던 치누크 "터빈 33"을 강타했다. 피격당한 터빈 33은 1마일 거리의 벼랑 바위턱에 아슬아슬하게 불시착하는 데 성공했지만 랜딩 존이 너무 좁았기에 헬기가 급격히 기울어지다가 결국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야 만다. 영화 "론 서바이버"에서는 하필이면 씰팀의 패스트 로프(Fast Rope)를 위해 개방된 후방램프를 통해 조종석으로 날아와 폭발, 격추당한 것으로 묘사했으나 이는 영화적 연출을 위한 과장이다. 이 사고로 치누크에 탑승해있던 16명[5] 전원이 전사했다. 이 참사에 경악한 지휘부가 즉각 구조작전을 취소하고 퇴각함으로써 정찰조의 유일한 생존자인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만이 산중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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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당시 탈레반들이 찍은 씰 10팀의 노획품 사진이라고 한다. 전사자들 사진은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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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러트렐

당시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은 다리에 총상을 입는 등 각종 부상에도 불구하고 12km를 강행군하였지만 절벽에서 떨어져서 사실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덕분에 그는 회고한대로 누워 죽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3.4. 구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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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마커스 러트렐을 발견한 민간인 '모하마드 굴랍 칸(Mohammad Gulab Khan)'이 있었다. 작전 중 적성지역 민간인을 살려주었다 이 지경에 처한 마커스 러트렐은 굴랍을 매우 경계했지만, 그는 러트렐을 안심시키고 자신의 마을인 사브레이(Sabray)로 데려왔다.[6] 굴랍은 탈레반으로부터 은신처를 제공하고 러트렐을 치료해준다. 그리고 교전 발생 4일차인 7월 2일. 사브레이 마을의 장로가 인근의 미 해병대기지 캠프 블레싱(Camp Blessing)을 찾아가 러트렐의 메모를 전달함으로써 그의 생존이 확인된다.

물론 사브레이 마을 역시 여느 아프간 마을과 다르지 않게 탈레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마을 내에도 탈레반 동조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탈레반이 마을로 쳐들어와 사람들을 협박했지만 이 사람들은 탈레반을 싫어한터라[7] 마을의 규율대로 탈레반으로부터 그를 보호함으로서 탈레반과 마을의 충돌은 불가피해진다.
이는 파슈툰족의 율법에 의한 것인데, 영국, 소련, 미국 등과도 맞붙는 이들이 탈레반이라고 숙일리가 없다.

3.5. 구출작전과 전장수습[편집]


미군은 최악의 참사에 침통한 분위기에도 생존자 수색에 혈안이 되어있었지만 며칠 동안의 수색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특히 MH-47은 탈레반 대공무기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제대로 항공 수색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 육군 특전단 그린베레(Green Beret)가 이미 마을 주변에 거의 도달해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었고 기동성이 우수한 HH-60 페이브 호크 헬리콥터[8]와 구조전문가인 미 공군 파라레스큐를 투입하면서 수색작전은 대규모 구출작전으로 발전한다. 아프간군 특수부대의 유도를 받은 미 육군 그린베레 팀원들이 마을 외곽에서 차단선을 펼치는 과정에서 역시 마커스 러트렐의 존재를 파악한 탈레반이 마을을 공격했고 22시경 미 육군 그린베레 + 마을 민병대와 탈레반간의 교전이 시작된다. 마을 민병대는 수적, 화력면에서 열세였지만 미군이 오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탈레반과 싸웠고 AH-64 아파치 공격헬기와 AC-130H 건쉽의 막강한 항공화력과 그린베레의 화력에 탈레반이 밀리자 탈레반은 35명의 사망자를 내며 퇴각하고 만다. 이 교전 때문에 구조헬기는 이륙이 지연되어 23시 05분에 기지를 출발, 23시 38분에 마을에 도착한다. 그리고 주민들로부터 안내를 받아 마커스 러트렐에 대해 신분확인절차[9] 후 그와 모하마드 굴랍이 함께 헬기에 탑승하여 이송함으로서 생존자 구출이 종료된다.

그리고 당연하게 전사자 영헌과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작전이 벌어졌다. 모하마드 굴랍은 러트렐이 구출되고 나서 탈레반의 살해협박에 시달렸기에 1주일 뒤 가족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쿠나르 주 아사드바드로 이주해야 했다. 이 작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에어파이터 -출동! 블랙호크'(러트웰 구출과정)에서도 다뤄졌다.


3.6. 결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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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티노시의 추모 공원에 설치된 제임스 서 하사와 매튜 액셀슨 하사의 동상[10]

2005년 6월 27일~ 7월 초까지 벌어졌던 레드 윙 작전은 최악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목표였던 아흐마드 샤 제거 실패는 물론 미 특수전 사상 전례가 없는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뒤인 2011년 8월 6일 새벽,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공격으로 미군 31명이 탄 치누크 헬리콥터가 격추되어 탑승인원 전원이 전사했고, 이들 31명 중 대다수가 네이비 씰 내에서도 최고의 정예인 DEVGRU[11] 소속의 대원들이었기에 레드 윙 작전은 미 특수전 사상 두번째로 피해가 큰 작전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미군은 고가치표적에 대한 작전 수행에 있어 좀 더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추구하게 되었다. 때문에 CIA가 운용하는 프레데터(Predator) 무인기(UAV)에 의한 헬파이어 미사일 공격과 같은 공격형 무인기와 항공타격으로 작전을 전환하게 되지만 이것이 또 항공오폭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씰 10팀 등 미군 특수부대를 몰살시켰던 아흐마드 샤(Ahmad Shah)는 2008년 4월 파키스탄 북서부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다 파키스탄 경찰과의 총격전 때 파키스탄 경찰들에게 사살됨으로서 복수는 할 수 없었다. 물론 미군은 아흐마드 샤가 죽은 것만으로 만족하지만.

정찰조를 구출하기 위해서 투입된 160 특수항공대의 MH-47 헬기(호출부호 터빈 33)가 탈레반의 RPG 공격으로 헬기가 추락하면서, 기체에 타고 있던 네이비씰 대원 8명과 헬기승무원 8명 등 16명 전원이 전사했다. 여기에는 네이비씰 대원인 한국계 제임스 서(한국명: 서성갑, 당시 28세) 하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일화는 영화 론 서바이버를 통해서 다시 영화로 만들어져서 전사한 그들을 기리고 있으며 영화속에는 실제 생존자였던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이 까메오로 출현하여 전사한 동료들을 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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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유일한 생존자인 러트렐은 자신을 구해준 모하마드 굴랍을 수소문하여 미국으로 초대하여 그와 재회했다. 러트렐은 굴랍에게 감사를 표하며 식사대접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자국의 군인이 작전지역에 투입되었다가 곤경에 처하고, 현지 민간인의 도움으로 혼자 살아남아 귀환한다는 참 감동적인 실화일 것이다. 그러나...


4. 실상[편집]


사실 위의 내용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한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계속 문서 내에서 말이 바뀌질 않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나 모순되는 말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12]

'레드 윙 작전 - 론 서바이버는 허구였음이 밝혀짐.'. #

현재 밝혀진 정황들을 종합해 봤을 때, 해당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래는 위 글을 적당히 요약한 것으로, 더 자세한 내용은 위의 번역본과 원문을 확인하면 좋다.

'은인' 모하메드 굴랍의 인터뷰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이다. # 참고로 위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은 2010년 쯤 이야기고, 이 인터뷰가 나온 것은 16년으로 굴랍은 14년도에서야 이 왜곡된 실상을 듣고 크게 분노했었다고 한다.

4.1. 계획[편집]


당초 이 계획은 네이비 씰이 아닌 미국의 해병대에 의해 입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씰이 관례적으로 으레 그러하듯 해병대로부터 이걸 강탈해 갔는데, 그대로 진행했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씰이 독자적으로 수정을 가하면서 큰 문제가 생겼다.

해병대가 계획했던 원본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또 체계적이었다. 일단 정찰조로는 베테랑 저격수 6명이 팀을 이뤄 투입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씰은 여기에 쌩뚱맞게 초짜 네 명을 정찰조로 투입했으며, 심지어 이들 중 실전 경험을 겪은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이들은 정찰 훈련 조차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중요한 통신장비조차 당초 여러 개 준비했던 해병대와 다르게 씰은 신호 약한 MBITR만 챙기고 비상용으로 위성전화만 달랑 챙겼다고 한다. 이에 해병대가 기겁하여 '그거 작동 안 하면 다 죽는데 어쩌러고 그러냐'며 말렸지만 씰은 이걸 그냥 씹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병대의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4.2. 투입[편집]


원래 해병대는 상당히 멀리서 헬기로 정찰조를 투입한 후, 이 정찰조가 먼 거리를 걸어서 작전지역에 침투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왜냐하면 헬리콥터를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헬리콥터의 소음은 절대로 누군가 모르고 지나칠 수 없는 수준으로 시끄럽기 때문이다.[13] 하지만 씰은 그냥 작전 지역 근처에 헬기로 정찰조를 떨군다는 상당히 패기 넘치는 계획을 세운다.

물론 씰이 헬리콥터로 근접하면 들킨다는걸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그런데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계획을 수정해서 당초의 원안대로 더 먼 곳에 정찰조를 떨구는 것이 아니라 황당하게도 이유 없이 작전 지역에 헬기를 계속 띄워서 진짜 정찰조가 언제, 어디로 침투할 지 모르게 한다는 씽크빅이었다.

하지만 씰의 행복회로와는 정반대로, 탈레반은 '계속 헬기가 뜨는 것을 보니 근시일 내로 누군가 침투한다'고 가정하고 헬기의 비행경로를 통해 대략적인 침투 위치와 경로까지 알게되는 참사가 벌어진다.

4.3. 발각[편집]


심지어 침투조는 헬기에서 로프로 강하하면서, 그 로프까지 회수하지 않고 그 자리에 버리고 오는 실책을 저지른다. 당연히 헬기의 이동경로를 알고있던 탈레반은 로프를 발견했다. 이 말은 탈레반이 이들 정찰조가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안 시점이, 미군이 주장하는 ‘양치기들을 만나서’보다 훨씬 더 이른 시점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양치기들을 만나서 들킨게 아니라, 들켜서 양치기를 만났다 쪽이 오히려 더 정확하다. 원래 중동 지역에서는 비무장한 민간인들을 널리 뿌리는 것이 미군을 상대하는 상식이다. 이들이 딱히 탈레반 같은 단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게 아니더라도 총으로 위협해 특정 경로나 구역을 돌게 할 수 있다. 교전규칙상 이런 비무장 민간인들을 사살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이기 때문에 꽤 높은 정찰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정찰조의 입장에서도 이들과 마주치면 적극적 협력자인지 소극적 협력자인지도 모르니 끽해야 할 수 있는게 같이 데리고 간다든가 혹은 발견 장소에 억류하는게 다다. 심지어 그냥 이들을 사살하는 전범 행위를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해당 인원과 소식이 끊겼다는 것 만으로 이미 침투조가 어디로, 언제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있는 셈이라 사실상 일종의 가불기나 마찬가지다. 즉 정찰조가 만났다는 양치기들도 로프를 보고 탈레반이 저인망 식으로 주변 지역을 훑기 위해 뿌렸을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정찰조가 양치기들을 만난 시점에서 이미 그들이나 양치기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발각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참고로 정찰조들이 양치기들을 죽일지 논의했다고 하는데, 이는 영락없는 전쟁범죄다. 물론 현실의 전쟁범죄가 다 그렇듯 미국이 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안 되었다.

결국 양치기들이 정찰조에게 억류되자 연락이 끊긴 탈레반은 당연히 그들이 원래 돌아야 할 경로로 향했고, 풀려난 양치기들과 만나며 씰에 대한 정보를 전부 입수하게 된다.

4.4. 교전[편집]


앞선 친절한 헬리콥터들의 예습과 양치기들의 증언을 통해, 이제 탈레반은 정찰조를 훤히 꿰고 있게 된다. 거기다 애초에 그 지역 병력인 만큼, 지형지물에 대해 더 훤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씰은 상술했듯 양치기들을 만난 순간 이미 발각된 것이므로, 양치기를 풀어준 후 전력으로 해당 지역에서 멀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그냥 고지대에 올라가 위성전화로 본대와 연락하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부족한 통신 장비가 발목을 잡아, 성과 없이 내려오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목표인 Ahmad Shah는 마커스와 미군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냥 지역 탈레반이었다고 한다. 즉 그가 데리고 다닌 병력도 100명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250명까지 늘어났던 것과는 다르게 끽해야 8~10명 정도라고. 어찌됐든 탈레반은 몰래 매복해 씰을 기습했고, 결국 생존자 한 명인 마커스 빼고는 전멸하고 만다.

마커스는 치열하게 교전했다는 본인의 주장과는 다르게 탈레반과 조우하자 마자 도주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모하메드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마커스가 탄창을 다 비우면서 치열하게 교전했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사용하지도 않은 탄창 11개를 들고있었다고 한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 후 QRF즉각대응팀이 MH-47를 타고 아파치 엄호 하에 현장으로 날아갔으나, 앞서 말했듯 씰이 이미 탈레반에게 예행연습을 엄청 시켜준 트롤링을 저지른 탓에 탈레반은 비행루트를 완전히 숙지하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RPG에 맞고 격추되어 전원 사망한다.

4.5. 이후[편집]


이후 생존자인 마커스가 모하메드에게 의탁하게 되고 어찌저찌 구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거짓말이 빠지면 섭한게, 탈레반이 지속적으로 모하메드를 위협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는 모하메드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방인을 보호하겠다'고 하자 탈레반이 군소리 없이 물러갔다고 한다. 명분상 '이슬람 원칙주의'인 탈레반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셈이다. 다만 이후로는 지속적인 탈레반의 테러와 협박을 받았고, 당초 아프간 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가 결국에는 미국 쪽에서 보호해준다고 나서서 미국 텍사스의 모처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조카를 비롯해 가족들을 잃어, 앞서 말한 마커스의 거짓말과 가증스런 태도에 큰 분노를 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되게 된 것도 별도의 구출작전을 펼친 것이 아니라, 그냥 이후 제 발로 걸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대규모 해병과 특수전 병력, 항공전력이 수색을 위해 밀고 들어오자, 원래 작전 목표였던 Ahmad Shah와 탈레반 병력들은 파키스탄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미군 입장에서는 어찌됐든(?) 해당 지역의 탈레반 철수라는 소기의 전술적 목적은 거둔데다가 괜히 치부를 들출 필요가 없으니 침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5.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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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 뒷열 왼쪽에서 5번째 선글래스를 끼고 있는 인물이 전사한 마이클 머피 대위, 앞열 맨 오른쪽 인물이 구조 작전중에 터빈 33 헬기 추락으로 전사한 한국계 제임스 서 하사이다.[전사] A B C 사망 후 1계급 추서된 계급이다.[2] 하지만 실제에서는 사태가 훨신 더 심각했는데, 영화에서는 VHFUHF 고출력 군용무전기가 통신이 안됐던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AN/PRC-148 멀티밴드 소형무전기 그리고 이리듐 위성전화기가 전부였다.[3] 실제 생존자인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은 자신의 결정을 매우 후회했다. 하지만 그를 구해준 사람도 결국 민간인이었으니 그 결정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렇게 특수부대원들이 민간인을 살려준 사례는 의외로 많은 편이며 어차피 100%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들키지 않는 쪽으로 가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민간인들을 죽일지, 나무에 묶어두고 50 : 50의 확률(굶어 죽든지, 탈레반에게 발견되든지에 맡길지 그냥 살려줄지에 대해서 2명은 죽이자고 하고 대장인 사람은 중립, 마커스 러트렐만 비폭력을 적극 주장했는데 비폭력을 주장한 마커스만 살아남았다. [4] 이 희생으로 머피 대위에게는 명예 훈장이 추서되었다.[5] 해군 특수부대 8명,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8명[6] 다른 소스에서는 마을 양치기 소년들과 접촉하여 데려오게 되었다고도 한다.[7] 아프간인들이라고 무조건 탈레반에 동조하지 않는다. 특히 탈레반은 아프간을 통치할 때 폭정을 일삼아댄터라 아프간 내에서도 탈레반에 대한 감정이 매우 나쁘며 그들과 싸우는 사람들도 많다.[8] 현역으로 소집된 공군 예비역 조종사들이 투입되었다. 이들은 예비역으로 전환되기 전 걸프전이나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같은 전장을 경험하여 원래 복무하고 있던 현역 헬기 조종사들보다도 실전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었다.[9] 그 사람만의 개인 취미 등을 물어보면서 확인을 거친다. 이는 실제로 상호간 피아식별을 위해서 하는 당연한 조치이다. 러트렐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은 "가장 좋아하는 슈퍼히어로는?" 참고로 답변은 "스파이더맨!"이었다.[10] 둘이 살아생전에 절친이었다고 한다.[11]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전과를 올린 그 부대다.[12] 대표적으로 교전 인원 수. 처음에 보고서에서는 20명이라고 했다가 금방 50명으로 늘고, 이후 추정치가 100명에서 250명까지 무슨 고무줄 늘어나듯 계속 늘어난다. 공식적인 인원수인 50명이라고 할지라도 4명이서 50명과 붙었다가 하나가 살아남았단건데, 이 쯤이면 그냥 슈퍼히어로 영화를 찍어야 할 판이다.[13] 심지어 청각이 아예 없는 청각장애인들 조차도 공기의 진동 때문에 근처에 헬기가 날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