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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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말 감독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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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파일:cannespalmedor.png
황금종려상
제8회
(1955년)


제9회
(1956년)


제10회
(1957년)

델버트 맨
(마티)


자크 쿠스토
루이 말
(침묵의 세계)


윌리엄 와일러
(우정어린 설득)


역대 베니스 영화제
파일:goldenlion.png
황금사자상
제36회
(1979년)


제37회
(1980년)


제38회
(1981년)

수상자 없음[1]

루이 말
(아틀란틱 시티)
존 카사베츠
(글로리아)

마가레테 폰 트로타
(독일 자매)
제43회
(1986년)


제44회
(1987년)


제45회
(1988년)

에릭 로메르
(녹색 광선)

루이 말
(굿 바이 칠드런)

에르만노 올미
(거룩한 술꾼의 전설)

파일:silverlion.png
심사위원대상
제21회
(1957년)


제22회
(1958년)


제23회
(1959년)

수상작 없음

루이 말
(연인들)
프란체스코 로시
도전

잉마르 베리만
(마술사)
제26회
(1962년)


제27회
(1963년)


제28회
(1964년)

장 뤽 고다르
(자기만의 인생)

루이 말
(도깨비 불)
이고르 탈라킨
(Introduction to Life)

그리고리 콘친쳬프
(햄릿)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마태복음)


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BAFTA 로고.svg
작품상
제27회
(1973년)


제28회
(1974년)


제29회
(1975년)

프랑수아 트뤼포
(아메리카의 밤)

루이 말
(라콤 루시앙)


마틴 스콜세지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감독상
제34회
(1980년)


제35회
(1981년)


제36회
(1982년)

구로사와 아키라
(카게무샤)

루이 말
(아틀란틱 시티)
[2]

리처드 애튼버러
(간디)
제41회
(1987년)


제42회
(1988년)


제43회
(1989년)

올리버 스톤
(플래툰)

루이 말
(굿 바이 칠드런)


케네스 브래너
(헨리 5세)


역대 세자르 영화제
파일:cesarawards.png
최우수작품상
제13회
(1988년)


제14회
(1989년)


제15회
(1990년)

알랭 카발리에
(테레사 수녀)

루이 말
(굿 바이 칠드런)[3]

브뤼노 뉘탕
(카미유 클로델)



파일:louis malle.jpg

“예측가능한 방향은 늘 일정한 관습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정반대로 사고해왔다. 나는 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혼란스러워하길 바란다.”


“감독들은 미래를 위해 남겨질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우리들은 곧 사라질 것이 분명한 필름과 화학물질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곧 사라질 것이다. 200년이 지나면 우리의 작품들은 먼지가 될 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루이 말 Louis Malle (1932.10.30 ~ 1995.11.23)

1. 개요
2. 생애
3. 작품 목록
3.1. 장편
3.2. 단편
3.3. 다큐멘터리



1. 개요[편집]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거장 가운데 한 명으로,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개인간의 관계와 계급 문제를 예리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룬 30여 편의 영화를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연인들>, <프리티 베이비>, <마음의 속삭임>, <굿바이 칠드런>, <데미지>, <앙드레와의 저녁식사> 등 다수가 있으며 칸 영화제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하였다. 프랑스 감독 중 가장 앵글로색슨적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2. 생애[편집]


루이 말은 1932년 프랑스 북부 튐리에서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4살 때부터 아버지의 8mm 카메라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프랑스 부르주아 가족배경과 엄격한 가톨릭 기숙사 학교제도를 경험하며 자신을 둘러싼 부르주아 관습체계에 대한 반역의 꿈을 키워왔다. 그 후 루이 말은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다가 파리의 프랑스국립영화학교 이덱(IDHEC)(現 라 페미스(La Femis))에 진학하여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조감독으로 활동하며 자크 쿠스토로베르 브레송과 협업 활동을 했고 [1] 그 뒤론 부친의 자금으로 자신의 첫 장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echafaud, 1957)로 자신의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3. 작품 목록[편집]



3.1. 장편[편집]


노랑색 글씨는 루이 말의 대표 작품.

제목
원제
년도
42번가의 반야
Vanya on 42nd Street
1994
데미지
Damage
1992
밀루의 어떤 5월
Milou en mai
1990
굿바이 칠드런[2]
Au Revoir Les Enfants[3]
1987
알라모의 총성
Alamo Bay
1985
크랙커스[4]
Crackers
1984
앙드레와 저녁식사
My Dinner With Andre
1981
아틀란틱 시티[5]
Atlantic City
1981
프리티 베이비[6]
Pretty Baby
1978
블랙 문
Black Moon
1975
라콤 루시앙[7]
Lacombe Lucien
1974
마음의 속삭임[8]
Le Souffle au Coeur
1971
파리의 도적
The Thief Of The Paris
Le Voleur
1967
비바 마리아!
Viva Maria!
1965
도깨비불[9]
Le Feu follet
1963
매우 사적인 일
Vie Privee
1962
지하철의 소녀
Zazie dans le metro
1960
연인들[10]
Les Amants
1958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1]
Ascensure Pour L'Echafaud
1957


3.2. 단편[편집]


원제
년도
비고
Crazeologie
1953

Station 307
1954

Histoires extraordinaires
:seg.William Wilson
1968



3.3. 다큐멘터리[편집]


제목
원제
년도
비고
침묵의 세계
Le Monde du silence
1956
전세계에서 최초로 컬러로 수중촬영을 사용해 깊은 바다의 색깔을 보여준 영화 중 하나.
자크 쿠스토와 함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12]
다큐멘터리로써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은 <화씨 9/11>과 이 작품 뿐이다.

Vive le Tour
1962

캘커타
Calcutta[13]
1969
루이 말이 직접 1968년에 인도를 여행다니며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캘커타)와 7부작 TV다큐시리즈(인도의 유령)
인도의 유령
L'Inde fantôme: Reflexions sur un voyage

Humain, trop humain
1974


Place de la république
1974


Close Up[14]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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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레송 영화를 좋아해 제작진에 들어갔으나 현실과 괴리를 느꼈다고 한다. 이후 브레송 언급은 잘 안 하고 스타일 면에서도 멀어지게 된다.[2]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과 OCIC상, BAFTA에서 감독상, 세자르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7관왕을 기록한 영화이다.[3]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던 시절, 이 영화를 대여하려던 고객이 이 영화의 제목(Revoir)Reservoir(창고)로 착각한 것이 그의 데뷔작인 저수지(Reservoir)의 개들의 제목의 모티브가 되었다.[4] 베를린 국제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5]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6] 칸 영화제 기술대상[7] 아카데미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BAFTA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8] 아카데미 각색상 노미네이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노미네이트[9]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 베니스 영화제 Italian Film Critics 대상[10]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11] 조감독 단계를 거친 후의 첫 장편 데뷔 작품[12] 그렇긴해도 자크 쿠스토가 직접 스쿠버다이빙 생활을 하며 해저의 모습에 대해 써놓은 동명의 자서전(The Silent World: A Story of Undersea Discovery and Adventure)을 바탕으로 다큐를 찍은데다가 루이 말은 어디까지나 조감독으로서 촬영에 참가했으므로 사실상 쿠스토의 작품이라고 보는게 더 적당할 듯하다. 루이 말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작품이지만 정작 루이 말의 대표작으로 언급되진 않는 편이다.[13] 칸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초청[14] 단편 다큐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