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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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파일:attachment/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photo.jpg

[1]
본명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출생
1889년 4월 26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망
1951년 4월 29일 (향년 62세)
영국 케임브리지셔주 케임브리지
국적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display: none; display: 오스트리아"
행정구
]]
(1889~1939)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1939~1951)
직업
철학자
서명
파일:Ludwig_Wittgenstein_signature.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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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린츠 국립실업고등학교 (중퇴)
베를린 공과대학교 (공학 / 석사)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
(공학 / 박사과정 중퇴)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
(철학 / 박사) (1929년)
경력
케임브리지 대학교 철학 교수
주 분야
논리학, 형이상학, 언어철학, 수리철학, 심리철학, 인식론, 미학
지도 교수
버트런드 러셀
종교
무종교 (유신론)
링크
공식 사이트, 아카이브 사이트


1. 개요
3. 사상
3.1. 전기 철학
3.1.1. 「논리-철학 논고」
3.2. 후기 철학
3.2.1. 「철학적 탐구」
3.2.2. 「확실성에 관하여」
3.2.3. 『문화와 가치』
4. 주요 저술
5. 명언
6. 대중 매체에서
7. 여담



1. 개요[편집]


내가 아는 천재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완전히 전통적 천재관에 부합되는, '열정적이고 심오하며 강렬하고 지배적인' 천재의 예

버트런드 러셀


흔히 모든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2]

하지만 이 말에는 '비트겐슈타인 전까지'라는 단서를 덧붙여야 한다.

와스피 히잡, 비트겐슈타인의 제자

오스트리아 태생의 철학자.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3]이자 현대 영미분석철학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일상언어학파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일반성을 갈망해 점점 일그러져 가는 지성계에 언어 사용의 다양성과 차이를 강조하였다.[4] 또한 듀이, 하이데거와 함께 체계 철학에 대비되는 3대 교화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5]

"표현은 삶의 흐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라고 그 스스로 말한 것과 같이, 그의 삶을 그의 철학과 분리해 고찰하기는 어렵다. 그 누구보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지만,[6] 동시에 가장 인간답기를 바랐던[7] 인간.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사상[편집]


언급한 바와 같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입문은 수학과 논리학에 대한 관심에 따른 러셀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유명한 말로는 전기 철학시절을 대표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8]가 있다. 후기 철학 때는 "낱말의 의미란 언어 안에서의 그 사용이다."[9]가 있다. 흔히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러셀의 제자로 있던 시기부터 1차 세계 대전 이후 시골에서 교사 생활을 하기까지를 전기 철학으로(대표되는 책 「논리-철학 논고」), 시골에서 교사 생활을 끝마치고 다시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온 후 사망할 때까지를 후기 철학으로 구분한다(대표되는 책 「철학적 탐구」).[10]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이론이 아닌 탐구로 여겼기 때문에 각 이론마다 이름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뒤의 이론들은 필요에 의해 후대에 이름이 붙혀진 것이다.

3.1. 전기 철학[편집]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는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11]라고 밝힌 시기이다. 그의 전기 철학에 의하면 윤리와 아름다움은 하나이며 인간이 말을 통해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 드러난다.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대답은 말로써 물을 수 없으며, 따라서 물음이란 던져진 이상 그 물음에 대한 대답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윤리 명제는 있을 수 없다."[12] 철학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 과학들이 증명 없이 참으로 가정하는 모든 원초적 명제"이다.

3.1.1. 「논리-철학 논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논리-철학 논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후기 철학[편집]


시골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은 그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고 표현한 마을 주민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비트겐슈타인은 후에 케임브리지에 돌아와 자신의 사상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게 된다. 이 전환은 후에 '일상언어학파'라고 불리는 사상을 태동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는 러셀과 청년 시절의 자신의 사상인 '이상언어'에 대한 갈망을 거부하고 "일상언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철학에 대한 정의는 "사소한 것들의 종합"이다.

3.2.1. 「철학적 탐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철학적 탐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2. 「확실성에 관하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확실성에 관하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3. 『문화와 가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화와 가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주요 저술[편집]


제목
발간 연도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1년[13]
철학적 탐구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1953년
청색 책 갈색 책
Blue and Brown Books
1958년
확실성에 관하여
Über Gewißheit
On Certainty
1969년
문화와 가치
Culture and Value
1977년
생전에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은 『논리-철학 논고』가 유일하다. 『철학적 탐구』도 한 권의 책으로 생전에 출판하려고 했으나 그가 죽음으로써 사후에 출판하게 되었다. 이 2권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비트겐슈타인의 강의나 일기, 메모 등을 사후에 편집하여 내놓은 책들이다.


5. 명언[편집]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14]


진지하고 훌륭한 철학 작품은 전적으로 농담만으로 구성해서 쓰여질 수 있다.[15]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16]


나는 나의 세계이다. [17]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18]


단어를 발음하는 것은 상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과 같다. [19]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사자를 이해할 수 없다. [20]


천재에게는 다른 정직한 사람보다 더 많은 빛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 빛을 불타는 지점으로 집중시키는 특별한 종류의 렌즈를 가지고 있다. [21]


사람들이 때때로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면, 지적인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22]


누군가에게 진실을 납득시키려면 그것을 진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대신 오류에서 진실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23]


부분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말라. 이 견해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더라도, 항상 하나의 큰 전체 문제를 넘어서 자유로운 관점이 있는 곳으로 달아나라. [24]


6. 대중 매체에서[편집]


  • 영국의 게이 영화 감독 데릭 저먼이 만든 영화 《비트겐슈타인》이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칼 존슨이 비트겐슈타인과 싱크로 일치. 그의 철학보다는 성 정체성과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주를 차지한다.

  •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에서 다른 사람의 몸의 아픔과 관련하여서 신생아의 이에 관한 비유가 나온다.[25] 이에 영감을 받아 미국의 일렉트로닉 음악 그룹 Matmos가 「Roses and Teeth for Ludwig Wittgenstein」라는 제목의 음악으로 만들었다. 노래의 분위기는 굉장히 음산하고 기괴하다.

  • 독일의 가수 Tilman Rossmy는 철학에 푹 빠져 자신의 사랑을 몰라주는 여성에 대한 노래를 「Wittgenstein sagt」로, 노르웨이의 헤비메탈 밴드 Endolith는 「Ludwig Wittgenstein on Ethics」 라는 제목의 락음악을 만들었다.

  • 신해철은 2000년 Wittgenstein이라는 밴드명으로 활동했다. 넥스트 해체 이후 영국 유학을 다녀온 신해철의 최종적인 프로젝트였다. 밴드명을 비트겐슈타인으로 지은 동기는 '~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쓰고 싶었는데 그중 가장 적합한 이름이 비트겐슈타인이어서 그 이름을 쓰게 됐다고 한다.

  • 에두아르도 파울로치(Eduardo Paolozzi) 「뉴욕의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in New York)」이라는 그림도 있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paolozzi_witt_200.jpg

  • 데이비드 마크슨(David Markson)은 「비트겐슈타인의 정부(Wittgenstein’s Mistress)」라는 책에서 지상에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 어떤 한 여성을 묘사한다. 그녀는 끝까지 독백으로 일관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Wittgenstein's Nephew)」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소재로 픽션을 가미하여 소설을 썼다.

  • 『로지코믹스』라는 책에서 러셀의 제자로 등장한다. 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히 내민 채 러셀 교수를 찾는 모습이라든지, 러셀 앞에서 발광(...)하는 모습이나 휘파람을 부는 모습도 그렇고 평소 표정이 다소 귀엽다.


7. 여담[편집]



  • 서울시 교육청이 주관한 2018학년도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 영역 비문학독해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과 후기철학을 비교하는 인문 지문이 출제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에 대한 퇴행이다. 만약 그들이 이긴다면 철학이 암살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은 철학의 암살자이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추악하고 파괴적인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고 만다.

질 들뢰즈의 A to Z, "W"의 "비트겐슈타인" 파트 中

[1] 핀란드의 철학자 예오리 헨리크 폰 브리크트(Georg Henrik von Wright)와 촬영한 사진. 원본에는 보는 사람 기준으로 오른편에 브리크트가 앉아 있다.[2] 수학자이자 과정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유명한 격언. 상술된 버트런드 러셀의 스승이기도 하며, 맨체스터 공대 박사과정 학생이던 비트겐슈타인이 크게 자극받았던 책인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라는 유명한 저작을 러셀과 함께 남겼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을 읽고 화이트헤드를 만나러 케임브리지에 직접 찾아갔지만 못 만나고 러셀만 만났다. 화이트헤드는 몇달전 런던대 교수가 되어 런던에 살고 있어서 없었기 때문. 이후에도 두사람은 죽을때까지 단 한번도 직접 만나지 못했다.[3] Considered by some to be the greatest philosopher of the 20th century(몇몇 사람들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간주된다.)#[4] 그 자신이 젊은 시절에 그 누구보다 '일반성'을 갈망했다는 것은 함정. 비록 비트겐슈타인 본인은 부정하지만, 그가 젊은 시절 일반성을 갈망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심지어 그 자신조차 「논고」에서 수행했던 것 중의 하나는 명제의 일반 형식에 관한 연구라는 점(철학적 탐구 65)에서, 모두 '일반성에 대한 갈망'에 빠져있다." 홍진기. (연세대학교, 2011) 니힐리즘의 철학적 극복 :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니체의 형태학적 이해, 167.[5] 리차드 로티, 박지수 옮김. (까치글방, 1998)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395.[6] "대체 왜 그럽니까? 당신은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겁니까?" 그러자 비트겐슈타인은 벽력같이 외쳤다. "물론이야! 나는 완전하게 되기를 원해!". 레이 몽크, 남기창 옮김. (필로소픽, 2012) 비트겐슈타인 평전, 527. 이하 평전[7] "우리를 인간답게 존재하도록 하시옵소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김양순 옮김. (동서문화사, 2008) 논리철학논고/철학탐구/반철학적 단장, 497.[8]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김양순 옮김. (동서문화사, 2008) 논리철학논고/철학탐구/반철학적 단장, 114.[9] 같은 책, 150.[10] 만약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 것에 회의할 수 있다면 그가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어릴 때부터 쭉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만약 실제로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 일관적이었다면 전기와 후기의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1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김양순 옮김. (동서문화사, 2008) 논리철학논고/철학탐구/반철학적 단장, 94.[12] 아주 대강 말하자면 당위는 사실의 한 종류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명제가 사실만을 표현한다고 가정하면 당위는 명제를 통해 표현될 수 없다.[13] 1921년에 독일어판을 먼저 출간하고 1922년에 영어판 출간함.[14] 원문은 "Man könnte den ganzen Sinn des Buches etwa in die Worte fassen: Was sich überhaupt sagen lässt, lässt sich klar sagen; und wovon man nicht red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2))" 해석은 "이 책의 전체 의미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명확하게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15] "A serious and good philosophical work could be written consisting entirely of jokes."으로 알려진 말로서, 원래는 『비트겐슈타인: 회고록』를 쓴 노만 말콤이 비트겐슈타인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It is worth noting that Wittgenstein once said that a serious and good philosophical work could be written that would consist entirely of jokes (without being facetious)." (Ludwig Wittgenstein: A Memoir (1958), by Norman Malcolm)[16] Nothing is so difficult as not deceiving oneself. (Culture and Value (1980))[17] Ich bin meine welt.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2))[18]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2))[19] Uttering a word is like striking a note on the keyboard of the imagination.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1953))[20] If a lion could talk, we could not understand him.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1953)) [21] There is no more light in a genius than in any other honest man—but he has a particular kind of lens to concentrate this light into a burning point. (Culture and Value (1980))[22] If people did not sometimes do silly things, nothing intelligent would ever get done. (Culture and Value (1980))[23] To convince someone of the truth, it is not enough to state it, but rather one must find the path from error to truth. (Philosophical Occasions 1912-1951 (1993))[24] Don't get involved in partial problems, but always take flight to where there is a free view over the whole single great problem, even if this view is still not a clear one. (Notebooks 1914-1916, Journal entry (1 November 1914))[25]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김양순 옮김. (동서문화사, 2008) 논리철학논고/철학탐구/반철학적 단장,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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