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병삼

덤프버전 :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군인, 정치인.

김정일 말기, 김정은 초기에 잠깐 흥했으나 곧 퇴장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1935년 7월 1일, 평안남도 문덕군에서 출생했다. 6.25 전쟁 기간 동안 평안남도 안주탄광 지역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으며 안주탄광 소년근위대 당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1951년 1월 15일, 김일성을 접견하고 3차 세계청년학생 축전에 북한 대표로 파견되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졸업 이후 군단 정치부 지도원으로 배치되었으며 정치부 부부장, 정치부장, 정치위원을 거쳐 총정치국 부국장으로 승진했다. 1992년 4월 중장으로 진급하였으며 1995년 10월 6일, 모범적 군인으로 선정되어 김정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19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9년 4월에 상장으로 진급,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었다. 2009년 5월, 조선인민내무군 정치국장 겸 당책임비서에 임명되었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월, 박정순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 등을 지냈다. 2011년 10월,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2012년 3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2286호에 따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2012년 4월, 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2~2013년 사이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계속 수행했으며 2013년 12월, 김국태 장의위원에 선출되었는데 서열을 보면 정치국 후보위원인 주규창보다 서열이 높은 것을 보아서 이때까진 정치국 후보위원직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장성택 숙청과 함께 소식이 뚝 끊기더니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서 탈락했다. 아마도 정치국 후보위원 해임은 훨씬 더 빨리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장성택과 같이 숙청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으나 2017년 3월에 최초 방영한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방영한 <포화속의 소년들>에 출연하면서 생존이 확인되었다. 90에 가까운 고령이고 6.25 때 소년 빨치산으로 활약한 공도 있고 하니 대충 연금 받으면서 은퇴생활을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조선소년단 9차 대회를 맞이하여 2022년 12월에 방영된 소개편집물 <소년빨치산>에 출연했다. 2023년 7월 10일자 20시 보도에서도 그의 공이 다시금 조명되었다. 7월 27일 열병식에서 소년 및 남녀빨찌산상징종대 대표로병으로 행진하였다.

3. 여담[편집]


동명이인으로 곽산군 책임비서로 역시나 로력영웅 칭호를 받은 리병삼도 있다.

4. 참고문헌[편집]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17 북한의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6)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08:10:37에 나무위키 리병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