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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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林相鍾

2. 생애[편집]


1926년 9월 1일에 고용노동자의 아들로 출생하여 고생하다가 해방 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어서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전후 경제부문 일군 및 건축가로 일하였으며, 현성일의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김정일의 측근으로 사업하면서 그의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1987년, 김일성 75세 기념 김일성훈장, 1992년, 김일성 팔순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92년 11월, 38호실 제1부부장에 임명되어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였으며, 1992년 12월, 6기 20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96년 1월, 전임 38호실 실장 최봉만이 이중장부 혐의로 체포된 이후 후임 실장[1]으로 승진하였다. 1996년 4월, 묘양총회사 사장을 겸하였다. 1999년에서 2001년 사이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수차례 수행했다. 직책 상 중앙위원회 위원 정도로는 올라갈 법 했으나 김일성 사후 당 정치가 마비되면서 죽을 때까지 후보위원 직위를 유지했다.

후지모토 겐지의 회고에 따르면 술을 못 마심에도 상당한 짠돌이라서 김정일이 돈을 걸고 술게임을 할 때마다 독한 위스키를 연거푸 들이키고 꼭 돈을 타가곤 했다고 한다. 2003년 7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나 김정일의 비자금 관리라는 직책 특성상 그다지 외부에 노출되진 않았다. 일본말에 능통했는지 80년대 후지모토가 처음으로 김정일을 만날 때 통역을 하고 후지모토에게 조선어 인사법을 가르친 것도 림상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재직하던 중 중국을 방문하여 상하이의 북한 호텔과 식당의 운영 실태를 점검하던 중 호텔방에서 2007년 10월 16일 9시에 81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당중앙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림상종동지는 당과 수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여온 충직한 혁명전사이다. (...) 동지는 당과 수령의 높은 신임에 의하여 일찍부터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였다. (...) 동지는 우리 당의 주체사상, 건군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령도에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상당히 후하게 써주었다. 다만 하필이면 사망 시점이 베트남 공산당 총비서 농득마인의 방북 시점이라서 사망 4일 후인 10월 20일에야 로동신문에 부고가 실렸다.

이후 관련 보도가 확인되진 못했으나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3. 참고문헌[편집]


  • 2007 북한의 주요 인물(서울: 통일부, 2007).
  • 현성일,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 간부정책을 중심으로(서울: 선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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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부 자료는 39호실로 되어 있지만, 현성일의 연구에는 38호실로 되어 있음으로 현성일의 연구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