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 풀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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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영향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마니 풀리테(mani pulite)는 이탈리아어로 '깨끗한 손'을 의미하며 이탈리아의 부정부패 척결 작업을 말한다. 수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비리를 밝혀내면서 기독교민주당사회당을 몰락시키는 데 공헌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기독교민주당을 대체한 인물이 하필이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였고 거기에 더해서 극우 정당의 성장까지 이루어지면서 이탈리아의 부패상을 척결하는 데 실패했고 용두사미에 그친 작전이라는 평가가 강하다.


2. 상세[편집]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 사회의 큰 화제였던 막시 재판으로 마피아들이 대거 검거되면서 이탈리아 정계와 마피아 사이의 유착관계가 의심받는 등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 정계는 부정부패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본격적인 수사는 1992년 2월 17일 이탈리아 검찰이 사회당 경리국장의 집을 수색해 700만 리라의 현금을 압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사회당에 정치 자금을 대던 밀라노의 한 청소 대행 업체가 사법당국에 사회당을 고소하면서 불거졌는데 수사가 진행되면서 정계와 재계가 총체적으로 연결된 부패 사건이었음이 밝혀졌으며 1992년부터 1994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을 소환시켜 나갔고 개중에 1000명을 구속시켰다. 1983년부터 1987년에 이르기까지 총리를 지낸 베티노 크락시는 마니폴리테 작전이 벌어지자 튀니지망명해 다시는 이탈리아 땅을 밟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고 줄리오 안드레오티 전 총리도 비리 혐의가 드러났으며 줄리아노 아마토도 총리에 등극했지만 비리 혐의가 드러나서 결국 사임했을 정도다. 이 작전은 디 피에트로(Antonio Di Pietro) 검사가 주도하였는데 그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3. 영향[편집]


하지만 이탈리아 정재계를 정화시킬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다르게 1994년 총선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자신을 성공한 사업가로써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면서[1] 보수층이 대거 베를루스코니가 이끌던 포르자 이탈리아로 쏠리면서 베를루스코니가 총리가 되었고 베를루스코니가 비리에도 버텨내는 데 성공했으며 검사들을 좌파라고 비하하는 선전도 했는데 이것도 먹혔다. 그러면서도 경제정책은 헛방을 지속한지라 결국 마니 풀리테가 이탈리아의 개혁을 이뤄낼 것이라는 희망은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고 이 작전의 틈을 파고들면서 이탈리아 극우파[2]들을 성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뒷맛이 씁쓸한 결과를 낳았다.


4. 기타[편집]



  • 이 작전에서 이름을 따 온 현대미술 작품도 존재하는데 다름 아니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체지방으로 만든 인체 비누다. 베를루스코니가 지방흡입 수술을 받으면서 팔린 체지방을 입수해서 비누를 만든 것으로, "자체가 더러운 인간이니 이걸로라도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라"는 식의 조롱을 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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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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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까지만 해도 베를루스코니는 성공한 사업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호감도가 매우 높았던 인물이었다. 물론 반은 언플 능력 덕택이기는 했지만 여하튼 성공했기는 했다.[2] 가령 북부동맹1994년 총선을 기점으로 주요정당으로 떠올랐다. 물론 오성운동과 연합한 것은 훗날의 일이지만 마니 풀리테가 발단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