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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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구성
4. 기원
5. 왜 42.195㎞인가?
6. 특징
6.1. 주자
6.2. 시청자
7. 규칙
8. 기록
8.1. 세계 기록
8.2. 한국 기록
8.3. 기타 기록
8.3.1. 비공인 세계 최고 기록
8.3.2. 세계에서 가장 오래 걸린 마라톤 완주기록
9. 유명 국가와 선수
10. 한국의 마라톤 현황
11. 북한의 마라톤
12. 주요 대회
13. 장비
14. WA 라벨
15. 사건 및 사고
16. 기타



1. 개요[편집]


Marathon

42.195 ㎞를 달리는 초(超)장거리 달리기.

현존하는 달리기 종목 중 그 거리가 가장 긴 종목이자 올림픽 육상에서 혼자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종목이다.[1]

영어 발음은 매러떤[mærəθən\][2]. 전 세계에 존재하는 지명으로 그 중 그리스 아티키 주 마라톤이 가장 유명하며 이곳[3]에서 벌어진 마라톤 전투에서 하술한 육상 종목이 유래했다.

당연하지만 지구력이 중요한 종목. 단순히 지구력만이 아니라 끈기로 대표되는 정신력 역시 중요한 요소다. 군대에서 행군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신체적 능력 측면에서 '도저히 낙오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낙오하고 반면에 왜소하거나 평소에 두각을 드러내지 않던 사람과 누가 봐도 낙오할 것 같던 사람이 행군을 별 탈 없이 마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기서의 '정신력'은 육체적, 정신적 환경이 최상인 상태에서 발휘되는 인간의 초인적인 끈기를 의미한다.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매우 힘든 경기라는 점에서 어떤 고되고 힘든 일을 장시간 쉬지 않고 수행함을 나타내는 관용어로도 쓰인다. '마라톤 협상'이라든지. 마라톤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금언은 역시 "인생은 마라톤이다"라고 할 수 있다.


2. 상세[편집]


전에는 달리 행해진 곳이 없으며, 제1회 1896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흥행 종목을 만들고자 미셸 브레알이 제안한 종목이다. 곧 본질적으로는 사이클 12시간 주행이나 비둘기 사격 같은 초기 올림픽 특유의 정신 나간 실험적인 종목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일회성으로 그친 다른 종목들과는 다르게 올림픽이 근간으로 삼은 고대 그리스 정신과 가장 부합한다는 측면 때문에 영원히 유지될 올림픽의 꽃이다.

마라톤이 어느 정도로 중요하냐면, 마라톤은 (하계) 올림픽의 메인 이벤트이자 올림픽 육상 일정의 마지막 경기로 고정되어 있으며, 메달 시상식을 올림픽 폐회식에서 직접 거행한다.[4] 그러니까 올림픽 폐회식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이 모두 우승자 본인의 메달을 시상하는 장면을 보는 것인데 선수로서는 매우 큰 영광인 셈이다. 즉, 폐회식 도중에 마라톤 우승자의 국가(國歌)가 연주되는 비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로 메달 수여식을 경험하는 것이다.[5]

마라톤은 그야말로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종목으로, 인간의 극한 시험을 아주 오래 진행하는 가혹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라톤 선수들은 스프린터들보다 살짝 느린 속도 수준에서 하루 종일 달리며, 한 번 마라톤을 끝내고 나면 체중이 5 kg씩 빠진다고 한다.[6] 마라톤을 하다가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는 당연히 있다. 마라톤은 구간마다 탈수를 방지하기 위해 물을 주는 것이 당연하며, 역시 당연하게도 위급 상황을 대비한 응급차와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따라다닌다. 그 만큼 인간을 순수하게 체력적으로 극한까지 몰아넣는 종목이다.

이렇게 매우 힘든 종목이다 보니 몇몇 참가자들은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포기한 참가자들은 회송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돌아간다.

또한 다른 경기에서는 IOC 위원이 메달을 건네지만, 마라톤은 IOC 위원장이 직접 마라톤 메달리스트들에게 메달을 건네준다. 이런 상징성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흥행(중계권료, 광고 수익 등) 면에서도 마라톤은 올림픽 축구, 육상 100m 달리기와 함께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종목으로 꼽힌다.

3. 구성[편집]


마라톤 대회는 경기 성격과 축제 성격으로 나뉘며, 풀코스가 없는 대회는 전부 축제의 성격을 띤다. 완주 거리에 따라 42.195㎞거리인 풀코스('marathon' 이나 'full marathon'으로 부른다), 풀코스의 절반인 21.0975㎞거리인 하프코스(half marathon) 등으로 나뉜다. 하프 마라톤이야 마라톤 거리인 42.195㎞의 딱 절반이니까 풀코스 마라톤과 연관성이 꽤 있지만, 5㎞, 10㎞는 그렇지 않아 '마라톤'으로 불러도 될까 의문스러울 수 있다. 그런 이유로 5㎞ 달리기10㎞ 달리기는 '5K run', '10K run' 등으로 부르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트랙을 달리는 육상 종목 경기의 경우는 5천미터 달리기나 1만미터 달리기라고 하는 편이다.

당장 올림픽이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만 봐도 5㎞나 10㎞는 경기장 트랙을 도는 일반적인 장거리 달리기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미 '마라톤'이라는 단어가 '장거리 경주'의 의미로 굳어져서 '5㎞ marathon'도 '5㎞ run'정도까진 아니어도 상당히 널리 쓰이며# 42㎞를 진행할려도 할 수도 없는 수영도 올림픽 종목 중 하나인 10㎞ 수영을 '마라톤 수영'이라 한다. 애초에 아래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42.195㎞'라는 디테일한 수치가 역사적 사실을 100% 반영해서 정한 것도 아니다.

풀/하프 코스 마라톤 대회에도 10㎞나 5㎞ 경주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그만큼 참가비를 더 받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만큼 수익 창출 효과도 더 볼 수 있다.

코스 구성은 주로 왕복 또는 순환으로 진행한다. 현대의 마라톤은 편도 코스가 잘 쓰이지 않는다.[7]

풀코스를 넘는 것은 '울트라 마라톤'으로 부른다.[8] 두 배(84.4㎞) 거리의 더블 마라톤도 여기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50㎞, 100㎞ 코스 또는 12시간, 24시간 코스[9]가 많지만, 몇날 며칠을 달리는 더 긴 대회도 많다.[10] 세계 4대 극지 마라톤은 식량과 텐트를 짊어지고 6박 7일 동안 극지를 290㎞씩 달리는데 사하라 사막,[11] 고비 사막, 아타카마 사막 코스를 모두 클리어한 사람에게만 최종보스남극 코스의 도전권이 주어지며 이를 모두 해낸 그랜드슬래머는 불과 수십 명밖에 없다. 대표적인 울트라 마라톤 선수는 데이비드 고긴스가 있다.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 실시하는 천리행군은 일종의 울트라마라톤이라고 볼 수 있다.

4. 기원[편집]


기원은 그리스페르시아가 전쟁을 벌인 지명 마라톤의 어원이 된 마라톤 전투다. 이 전쟁의 승리를 전하기 위해 쉬지 않고 아테네로 달려 승전보를 전한 직후 숨진 그리스군 전령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이 종목이 탄생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이 전령의 이름은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로, 승전보가 아니라 스파르타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파견된 전령이다. 그리고 임무 완수 후 죽지도 않았고, 아테네로 잘 돌아갔다.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 올림픽을 만들 때 지인 중 한 명인 프랑스인 문헌학자 미셸 브헤알(Michel Breal)이, 당시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를 주인공으로 하여 감동적인 스토리로 각색한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가 극적으로 각색 되었을 뿐 페이디피데스가 비범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전령도 엄연한 병사이기 때문에 갑옷 등의 기초적인 무장은 한 상태로 저 만큼이나 달렸다는 뜻이 된다. 240㎞를 2일 만에 주파했다는데 약 40㎞ 코스를 2시간 반정도로 뛰어다닌 것이다. 스파르타가 성벽도 필요 없었을 정도로 험준한 산악 지대에 위치해 있음을 감안하면 너무 힘들어서 도중에 헛것을 볼 지경이었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오히려 그만큼 몸을 혹사 했음에도 죽지 않고 귀국 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의 체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단히 뛰어났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 마라톤 전투직후 그리스 보병들은 33㎏ 중무장을 한 채로 30㎞ 떨어진 아테네를 3시간 만에 주파, 페르시아의 원군이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그 병력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퇴각했다. 당시 올림픽 경기에서도 중무장을 한 보병 호플리테스들이 달리기를 하는 종목이 있던 걸 감안하면 완전군장 달리기는 이때부터 있던 셈.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에서는 이 마라톤 전투의 치욕을 잊지 않아서 마라톤을 보이콧한다는 속설이 1972년대부터 있었는데, 이는 일부만 사실이다. 일단 그리 잘하진 못하지만 여러 마라톤 경기에 꾸준히 출전은 하며 마라톤 대회도 있기는 하다. 단 이란이 직접 개최한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마라톤 종목을 제외한 것이 올림픽을 포함한 모든 마라톤 경기를 보이콧한다는 식으로 와전된 것이다. 해외에서 열면 참가는 하지만 자국에서만큼은 열지 않겠다 정도.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한 이란인 패널 키미야의 증언에 따르면 테헤란 아시안 게임 당시 마라톤을 종목에서 제외한 이유는 당시 이란에 마라톤 경기에 참여할 선수가 없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5. 왜 42.195㎞인가?[편집]


42.195㎞는 야드파운드법으로 써도 26마일 385야드 = [math(26 \frac7{96})]마일로, 미터법으로 해도 야드파운드법으로 해도 애매한 단위가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의 거리가 42.195㎞라서 정해진 거리라는 낭설이 있었다. 그러나 1927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의 조사결과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는 36.75㎞로 밝혀지면서 이 설은 폐기되었다.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40㎞,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40.26㎞,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40㎞, 1906년 10주년 올림픽에서는 41.86㎞,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는 40.2㎞,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는 42.75㎞ 등 열릴 때마다 제각각이었는데, 공식 거리가 정해지지 않아서 대충 40㎞쯤 뛰면 되겠지하는 정도였다.

마라톤에서 42.195㎞라는 거리를 최초로 채택한 대회는 1908 런던 올림픽이다. 원래는 윈저 성에서 출발하여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26마일(41.843㎞)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결승점을 왕족들이 관람하는 로열 박스 밑에 두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스타디움 구조상 입구에서 로열 박스 밑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로열 박스의 대각선 쪽으로 들어와 시계 방향으로 마지막을 뛰는 부분이 추가되어 385야드(352m)가 늘어났다.[12]

여러 기사나 블로그 등지에서 42㎞+195m라고 나온다던가, 원래 26마일이었던 마라톤 규격이 영국 때문에 변경되었다던가, 심지어 영국 왕실에서 뒤늦게 갑질을 했다는 식의 잘못된 내용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알려진 경우가 많다. 근데 워낙 영국이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도 하지 않았다 #동아일보 #한겨레

하지만 첫번째는 당시 영국은 미터법이 아니라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내용이고, 위에도 설명했다시피 마라톤은 당시만 해도 애초에 정해진 거리가 없었다. 그리고 위의 요구는 처음 코스를 정할 때부터 요구했던 것이지, 뒤늦게 갑질로 변경 된 것이 아니다.#BBC특집기사

1908 런던 올림픽 마라톤이 표준이 된 것은, 당시 마라톤 경기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것이 원인인데, 1908 런던 올림픽 도란도 실격 사건 항목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해당 사건은 곧 마라톤 흥행으로 이어졌으며, 심지어 도란도 피에트리를 비롯한 선수들은 일부러 런던 올림픽 코스와 동일한 길이로 코스를 설정해서 리매치를 벌이기도 했다. 이 같은 26마일 385야드 코스 경기의 흥행에 힘입어, 1921년 IAAF[13]는 26마일 385야드(= 42.195㎞)를 마라톤 코스 공식 길이로 확정한다. 이는 1924 파리 올림픽에도 이어져, 1924년 이후 올림픽에서는 공식적으로 42.195㎞를 달리게 되었다.

1천분의 1, 즉 42m 이내의 오차는 허용된다. 그러나 규정 거리보다 긴 경우에 한하고 절대 짧아서는 안 되는데, 42m를 초과하거나 단 1㎜라도 부족하다면 올바른 코스로 인정되지 않고 기록 또한 무효가 되어 버린다.[14] 이 42.195㎞를 칼같이 측정하는 것도 사실 꽤 곤란한 작업인데, GPS는 오차범위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전문 측량원 3명이 자전거로 달린 다음 이들의 결과를 비교하여 일관성 있는 거리로 확정하게 된다. #

6. 특징[편집]



6.1. 주자[편집]


다른 육상경기와 다르게 출발은 경기장을 출발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도로와 도심지 그리고 공원같은 야외에서 경기를 진행하며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고되고 힘든 종목 중 하나다.[15] 일단 풀코스를 완주하면 대략 4㎏의 엄청난 체중감량이 일어난다. 또한 경기 도중에 기절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가끔 생기며 여러가지 잔부상은 물론이거니와 드물게는 심장을 비롯한 신체에 무리가 가서 사망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간혹가다 중간에 넘어지는 일도 생기는데 같이 넘어진 선수들은 난감하다. 특히나 상위 클래스의 선수일 경우는 더더욱 난처해진다.[16] 마라톤마다, 특히 큰 국제대회에는, 커다란 상금과 선물들이 1등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뛰고난 뒤 결승선에 들어갔을 때의 그 성취감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특히, 비중이 큰 대회에서 우승권에 들어가는 것은 본인의 성취감은 물론이며 전세계적으로 굉장한 주목과 영광이 따른다.

물론, 경기 코스가 경기장이 아닌 도로와 도심지인 탓에 가끔 지하철에 탑승하는 꼼수를 부리는 주자들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적발되면 칼같이 실격 당하며 뉴스에 대서특필되어 아주 엄청난 대망신을 당한다. 주최측에서는 이걸 적발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전자칩을 하나씩 나눠준 뒤 특정 코스를 통과할 때마다 해당 코스에 설치된 컴퓨터가 이 전자칩을 읽도록 되어 있게 규정을 정했다. 완주를 했는데 이 코스에서 전자칩을 읽은 기록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 것으로 의심되어 실격 처리된다. 전자칩을 읽는 컴퓨터는 주최측에서 비밀리에 설치하기 때문에 주자들은 이 컴퓨터가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이걸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택시를 탄 뒤 그 코스에서만 내려서 달리고 다시 택시에 탑승하는 꼼수를 부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한국 역사상 가장 값진 올림픽 금메달은 태극기를 달고 최초로 우승한 레슬링의 양정모가 아니라 마라토너 황영조라고 평가하는 기자들도 많다. 특히,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수상한 손기정 선수가 "한국 체육계의 국민영웅"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유난히 아까운 은메달이 많았던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이 끝난 후 모 방송사에서 대한민국의 가장 값진 메달리스트가 누구냐는 앙케트 조사에서 마라톤 은메달 이봉주[17]를 가장 많이 꼽았을 정도로 올림픽에서 마라톤의 위상은 매우 엄청나다.

보통 마라톤 대회는 다른 종목과 다르게 경기에서 선수와 더불어서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경기를 참여할 기회를 많이 준다. 보통은 일반부와 선수부로 나눠서 뛴다. 우승이 아닌 완주만을 목표로 참가하는 얼마 안 되는 스포츠가 바로 마라톤이다.[18] 그리고 실제로도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일반인들은 9개월 정도만 꾸준히 연습하면서 차츰 뛰는 거리를 늘려가면 마라톤 완주는 거뜬히 해낼수 있다.

아마추어의 경우, 3시간 이내로 완주하는 것을 sub 3(서브 쓰리)라고 하며, 이것이 모든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목표이자 꿈이다. 실제 웬만한 마라톤 동호인들도 3시간 이내에는 좀처럼 완주하지 못하며, sub 3가 되는 순간 어느 동호회에서도 아마추어 고수로서 인정받게 된다. sub 3에 도달하려면 1㎞를 4분 15초 안팎으로 일정하게 달려야 가능한데, 그 속도로 3시간을 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 마라톤에서는 거의 우승이나 다름없는 기록이다.

6.2. 시청자[편집]


또한 다른 종목과는 달리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종목이고 경기가 2시간 넘게 진행되기 때문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루해지기 쉽다. 웬만한 근성 아니고는 보는 것도 괴롭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 뛰는 장면만 두 시간 이상을 보게 되는데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심지어 볼거리도 풍부하고 이야기 구성이 있는 영화만 해도 상영시간이 두 시간 이상 되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세계 마라톤계에서 상위권에 있었던 1990년대 때는 나름대로 인기있던 관전스포츠였다. 물론 복싱이나 쇼트트랙 같이 격렬하고, 빠르고, 화려한 종목에는 밀렸다.

이러한 약점 때문에 마라톤 경기 중계는 꽤나 고난이도의 노하우가 요구된다.[19] 선두그룹을 오토바이로 쫓는 파파라치 중계는 기본이요,[20] 헬기도 띄우고 중계차도 그룹별로 나누고 캐스터와 해설자의 입담도 중요하다.[21]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 스코어벅(마라톤에서는 주로 등위와 남은 킬로수가 들어간다) CG와 최근에는 VR, AR을 통한 데이터 그래픽까지 들어간다. 그나마 마라톤 선수들이 워낙 빠르게 뛰어가기 때문에 배경그림이 생각보다는 빨리 휙휙 바뀌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7. 규칙[편집]


보통 규칙은 다음과 같다.
  • 지정된 장소만 달리며
  • 참가자는 전문의가 발급한 건강진단서를 제출하여야 하고
  • 음식물은 주최 측이 준비하되, 코스 출발점에서부터 11㎞ 지점에 준비하고, 5㎞마다 두도록 되어 있다. 선수는 자기가 희망하는 음식물을 신청하여 허락을 받으면 지정된 식음대[22]에서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반칙은 다음과 같다.
  • 주자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
  • 도구를 이용해 편법으로 뛰는 행위[23]
  • 마라톤을 뛰기 전에 금지된 약물 복용(도핑) 행위[24]
  • 경기 중 의사나 타인으로부터 응급조치를 받는 행위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먼저 경기 포기 의사를 명백히 밝히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채 치료 받으면 실격이 된다.)
  • 신체 이상 증상을 보이는 행위[25]
  •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행위[26]
  • 동반자와 함께 달리는 행위
  • 자신의 그룹을 벗어나 앞 그룹에서 출발하는 행위, 메이저급 마라톤 대회 풀코스는 오버페이스 및 사고 예방 그리고 엘리트부 선수들의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서 해당 접수자의 그 이전 대회 풀코스 완주 최고기록에 맞추어 출발 그룹을 정해주기 때문이다. 풀코스 완주 경험이 없다면 보통 맨 마지막 그룹에서 출발하게 되고 욕심을 부려 지정된 그룹보다 앞선 그룹에서 출발하면 기록 집계에서 누락되는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대회에 따라서 규정이 다르지만 정해진 그룹보다 늦게 출발하는 경우는 페널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출발 이후 경기중에 자신의 능력으로 앞그룹 선수들을 추월해 달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않는다.
  •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행위. 도심지를 달리기 때문에 가능한 반칙이며 가끔 일부 마라톤 주자들이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타다가 적발되어 실격당하기도 한다. 반칙 중에서 가장 악질 반칙에 해당된다.

실격에 관한 가장 유명한 사건은 '도란도의 비극'이라 불리는 그 주인공은 바로 1908 런던 올림픽에 출천한 이탈리아 선수 도란도 피에트리(1885~1942). 피에트리는 결승선 50m 앞까지 여유롭게 선두로 질주했으나, 긴장이 풀려서인지 점점 휘청거리더니 결승선을 불과 10여m 앞두고 쓰러졌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0px-Dorando_Pietri_1908.jpg
도란도를 애처롭게 여긴 심판들과 경기 진행요원들이 도란도를 부축해서 질질 끌면서 결승선을 통과시켰다.

잠시 뒤에 2시간 55분 18초로 2등으로 들어온 미국선수인 존 헤이즈(1886~1965) 측에서 격렬히 항의해 피에트리는 결국 실격처리되었다. 지금이야 미국의 위상이 크지 그 당시 미국은 인디언들이나 살던 야만국 취급을 받았는데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기절해 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 피에트리는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따위는 원하지 않았다.'면서 반발했지만 규정은 규정이라 번복은 없었다. 하지만 피에트리를 돕지 않았어도 어차피 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데 기절했다가 깨어날 시간을 고려하면 10위에도 못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쓰러지기 직전에도 피에트리는 400m를 무려 10분에 걸쳐서 뛸 정도였다.[27] 남아공 출신의 찰스 헤퍼론(1878~1932)은 3등으로 경기를 마쳤으나 피에트리의 실격으로 은메달을 받았다. 이 사람도 꽤 황당한 일화가 있다. 하프 코스까지는 선두로 잘 달렸는데 관객이 준 샴페인 한 잔을 받아마셨다 위경련이 일어나 페이스를 잃고 3등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피에트리의 실격으로 2위로 올라가면서 남아공 최초의 마라톤 은메달을 선사했다.

도란도를 부축한 사람들은 '가만 놔둬도 질 선수를 실격패로 만든 건 부끄러운 짓'이라고 언론에서 호되게 씹혔으며 도란도 지인들에게 "당신이 그렇게 돕는 건 그 선수에게 굴욕을 주는 거요!"라고 쓴소리를 듣어야 했다. 영국 왕인 에드워드 7세는 피에트리에게 특별 황금컵을 수여했으며 미국 작곡가 어빙 벌린(1888~1989)은 '도란도'라는 음악을 작곡하여 헌사했다. 그리고 1909년에 미국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나간 피에트리는 헤이즈를 24초 차이로 제치고 우승하며 설욕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피에트리는 이후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 했고,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젤린도 보르딘이 금메달을 차지할 때까지 이탈리아는 마라톤에서 메달을 딴 일이 전무했다. 그 후 이탈리아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스테파노 발디니'가 금메달을 땄는데,[28] 이 대회에서 관중 난입 사건이 일어나 선두를 달리던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가 피해를 보는 바람에 약간은 빛이 바랬다. 이후 반데를레이 리마는 브라질의 스포츠 영웅이 되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성화 최종 점화자가 되었다.

달리다가 배가 아파서 경기를 중단하고 택시를 타고 경기장으로 돌아갔는데, 경기장에 도착하고 보니 배가 안 아파서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적당한 틈에 1등인 척 들어갔다가 나중에 걸려서 실격된 선수도 있었다고 한다.

8. 기록[편집]


참고로 마라톤은 '세계 최고 기록'이라는 개념이 없다. 대회마다 경기장 구성이 너무도 크게 차이나서 기록경쟁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라톤 거리를 아주 정확하게 측정했더라도 실제 경기에서는 고도, 고도 편차, 기울기, 굴곡, 날씨, 지면, 바람 등 세계 각지의 기록을 서로 비교하기에는 기록에 영향을 끼치는 제어 불가능한 요소가 너무 많다. 세계 최고 기록이 있는 육상 경기들도 경기 중 뒷바람이 평균 초속 2m 이상이면 올림픽 경기장에서 뛰더라도 비공인 기록이 된다. 그래서 마라톤은 신기록을 수립했더라도 연맹의 공인을 받은 '세계 기록' 으로 표현한다. 다만 그 명예는 일반적인 세계 최고 기록과 동급으로 대접받는다.

8.1. 세계 기록[편집]


  • 남자 기록
    • 시간: 2시간 0분 35초
    • 선수: 켈빈 킵툼 (케냐)
    • 달성 대회: 2023. 10. 08. 2023 시카고 마라톤
  • 여자 기록
    • 시간: 2시간 11분 53초
    • 선수: 티기스트 아세파 (에티오피아)
    • 달성 대회: 2023. 09. 24. 2023 베를린 마라톤

8.2. 한국 기록[편집]


  • 남자 기록
    • 시간: 2시간 07분 20초
    • 선수: 이봉주
    • 달성 대회: 2000. 02. 13. 제21회 도쿄 국제 마라톤
  • 여자 기록
    • 시간: 2시간 25분 41초
    • 선수: 김도연
    • 달성 대회: 2018. 3. 18. 2018 동아일보 서울국제마라톤

8.3. 기타 기록[편집]



8.3.1. 비공인 세계 최고 기록[편집]


  • 남자 기록
    • 시간: 1시간 59분 40초
    •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 (케냐)
    • 달성 대회: 2019. 10. 12. INEOS 1:59 챌린지
2시간의 벽 돌파라는 마라톤의 오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세계랭킹 1위인 킵초게가 초빙되어 오스트리아에서 치루어진 이벤트 대회였다. 장소가 오스트리아로 결정된 것은 전 세계에서 기후예측이 가장 쉬운 곳이었기 때문으로 마라톤에 가장 적합한 환경인 섭씨 10도, 습도 80%가 되었을때 경기 기록 측정을 시작하였다.

정식으로 달린 건 킵초게 1명 뿐이며, 그 이외에는 기록 달성을 위한 페이스메이커만 41명이 동원되었다. 초반부터 킵초게 앞에 5명이 V 자 대형을 구성하여 바람을 막아 주고, 뒤쪽에도 2명을 배치하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페이스메이커는 매 4km 마다 교체되어 페이스메이커에 의한 기록 감소도 피했다.

최적의 상황에서 킵초게는 '1시간 59분 40초'를 달성하며 2시간의 벽을 깨뜨렸다. 이는 100 미터당 평균 17초01의 속도로 2시간 내내 달려야 가능한 기록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페이스메이커가 동원되었기 때문에 공인 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에 신은 나이키 알파플라이는 설계도 사진이 떠돌면서 에어줌 팟이 2겹이고 카본 플레이트가 3장이라는 낭설이 떠돌았지만, 나이키 관계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킵초게가 신은 알파플라이는 시중 판매제품과 똑같았다고 확인했으며, 당시 영상을 봐도 낭설로 퍼져있던 설계도처럼 에어줌 팟이 2겹이 아니고 1겹인걸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이보다 이전인 2017년 5월에도 나이키에서 후원하는 '브레이킹2' 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때는 2시간 0분 25초로 2시간 돌파는 실패했었다. 이때의 실패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2년후에 재도전하여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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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 세계에서 가장 오래 걸린 마라톤 완주기록[편집]


1912 스톡홀름 올림픽 마라톤에 참가한 당시 일본에서 참가한 2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카나쿠리 시조(金栗四三)는 경기 중에 일사병으로 쓰러져 26.7㎞ 지점에서 경기를 중단하고 인근 농가에서 치료를 받았다. 공식적으로 치료받지 않고 경기 중간에 사라진 데다 완주하지 못했다는 창피함이 밀려와 그는 일본으로 귀국해버렸고, 실격이 아닌 실종으로 처리되었다.

당시 날씨가 섭씨 40도에 육박할 만큼 엄청난 무더위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총 68명의 선수 중 절반인 34명이 중간에 기권하였으며 포르투갈 선수인 프란시스쿠 라자루가 고온과 탈수로 인해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경기 중에 죽는 사태까지 벌어졌을 정도로 마라톤하기에는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1967년, 스톡홀름 올림픽 개최 5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식전을 개최하다가 카나쿠리 시조가 '경기 도중에 실종해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그래서 스톡홀름 올림픽 위원회는 카나쿠리 시조를 기념식전으로 골인을 시키기로 하여, "그때 못 뛴거 마저 뛰셔야죠?"라면서 직접 초대를 했고 경기장 내에 준비된 골테이프를 잘랐다.

이로써 카나쿠리 시조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고, 54년 8개월 6일 8시간 32분 20.3초의 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걸린 마라톤 완주 기록을 남기면서 파란만장한(?) 마라톤 경주를 완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나이는 그 당시 75세가 되어 있었다. 상징적인 조치였던데다, 카나구리가 고령임을 감안해 중도에 그만둔 곳부터 완주하진 않고 그냥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서 테이프를 끊는 것으로 대체했다.

골인하는 순간, 경기장에는 “일본의 카나구리 선수가 지금 골인했습니다. 기록은 55년... 이것으로 제5회 스톡홀름 대회의 전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라는 아나운서 멘트가 흘렀다. 카나구리 씨는 골인 후 인터뷰에서 “참으로 긴 코스였습니다. 그 사이에 손자가 다섯이나 생겼을 정도로요.”라며 유머러스하게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세계 마라톤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오래 걸린 완주기록은 이렇게 만들어지게 되었다.#

카나쿠리 시조는 일본 마라톤계의 대부라고 불리며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일본 마라톤 기술의 기초를 닦아놓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또한, 1920년부터 시행한 일본의 신년 최대 스포츠행사 ‘하코네역전마라톤’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1983년 11월 13일 구마모토현 타마나시에서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그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오사카 주오구 도톤보리에 있는 일본 최대 크기의 제과회사인 글리코의 광고판인데, 1935년부터 지금도 한 번도 교체되지 않고 광고모델로 쓰인다. 그는 말년에 고향 구마모토현에서 여생을 보냈는데, 구마모토현민종합운동장의 애칭인 ‘KK 윙’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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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톤보리 강에 위치한 글리코맨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걸린 마라톤 완주기록'을 남겼던 마라토너 카나쿠리 시소의 실제 이야기가 2019년 1월부터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제목은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로, 1964 도쿄 올림픽을 배경으로 한다. 주연으로는 아야세 하루카, 나카무라 칸쿠로, 아베 사다오가 나왔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한 번 다뤘는데, 일부 사실을 왜곡했다. 시조가 중도 실종된 뒤 마라토너로서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을 빼버렸고, 그날 이후로 마라톤을 접고 은둔하다시피 했으며, 주변에서 야유를 해대는 불행한 일생을 살았던 것처럼 묘사했다. 또한, IOC 측이 먼저 완주를 권유하며 초청한 사실을, 원하면 기권 처리해준다고 전화했고 시조가 거부하고 마저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라고 멋대로 왜곡했다.

9. 유명 국가와 선수[편집]


마라톤으로 유명한 선수로는 에티오피아아베베 비킬라가 있다. 아베베는 1960 로마 올림픽에선 맨발로 뛰어서 아프리카 흑인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이끌어 내었고, 1964 도쿄 올림픽에선 맹장수술을 받은 지 6주만에 곧바로 참가하여 우승했다. 이 당시 올림픽 진행요원들이 아베베의 우승을 예상하지 못해서, 미리 에티오피아 국가를 준비해두지 않았다. 결국 시상식에서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촌극이 빚어졌고, 당연히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격분하여 따졌다. 심지어는 일본 언론에서도 세계적 망신이라고 비판했다. 뭐 맹장수술 받은 사람이 바로 참가해서 우승한 게 이상하긴 하지만. 또한 단 3명 뿐인 올림픽 마라톤 2연속 우승자 중 1명이기도 하다. 다른 1명은 1976, 1980년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한 구 동독의 발데마르 치에르핀스키. 다만, 1980년 올림픽이 서방 세계의 집단 보이콧이 일어난 대회라서 잘 알아주지 않는 비운이 있다. 또 다른 1명은 2016, 2020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한 엘리우드 킵초게다.

2013년 현재까지 마라톤 최강국은 케냐에티오피아이다. 케냐만 해도 보스턴 마라톤, 런던 마라톤, 로테르담 마라톤 같은 세계적인 마라톤 대회를 10회 연속 우승할 정도로 마라톤 먼치킨들이 넘쳐난다. 2012년까지 2시간 4분대를 기록한 마라토너 6명이 케냐 선수일 지경. 이에 맞서는 에티오피아는 수에선 케냐에 밀리지만 2008년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2시간3분 59초로 2시간 4분대의 기록을 깸과 동시에 세계최고기록을 세우며 마라톤 강국의 면모를 보여줬으나 2011년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케냐의 패트릭 마카우가 2시간 3분 38초로 우승하며 세계최고기록을 갈아치웠고, 2013년 9월 또 다시 그 베를린 마라톤에서 역시 케냐선수인에티오피아는 콩라인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윌슨 킵상 키프로티치가 2시간 3분 23초의 기록으로 완주하면서 세계최고기록을 또 다시 갈아치웠다. 2014년 9월 또 다시 그 베를린 마라톤에서 역시 케냐선수인 데니스 키메토가 2시간 2분 57초의 기록으로 2시간 3분대 벽을 깨면서 세계최고기록을 또 다시 갈아치웠다.

하지만 2016년 2월에 케냐 선수들은 너도나도 약빨(도핑)로 뛴다는 사실이 폭로되어서 케냐의 마라톤 위상도 위협받고 있다. 한 케냐 선수가 말하길 모두가 약빨이기 때문에 본인도 약의 힘이 없으면 경쟁을 할 수가 없어서 약을 한다고 얘기했다.

다만 올림픽에선 먼치킨급인 케냐,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우승한 경우는 의외로 적은데 케냐의 경우 2008년 사뮤엘 완지루가 유일한 올림픽 우승자였었다. 올림픽의 경우는 일단 시기가 한여름이고[29] 올림픽 개최지의 지형과 관광명소를 달리는 코스라 고저차가 심하기도 하고 코스가 복잡하기까지 하다. 즉 한마디로 올림픽 마라톤은 기록이 나쁘게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올림픽 마라톤은 페이스메이커가 허용되지 않고 눈치싸움이 심한데 동아프리카 선수들은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고 다른 선수들과 느린 페이스로 지구전에 들어가게 되면 후반부에 지구력이 강한 유럽이나 아시아선수들에게 말려들고 만다. 케냐가 우승한 2008 베이징 올림픽만 봐도 케냐선수들이 작정하고 30도의 폭염속에서 초반 10km를 세계기록 페이스로 달리는 살인적인 레이스를 펼쳐서 아예 유럽이나 아시아 선수들은 따라올 엄두도 못내게 만들었다. 한국대표팀도 5km지점에서 추격을 포기할 정도였다. 사뮤엘 완지루는 2시간 6분 32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죽기살기로 따라갔던 상위권 선수들이 "미친 경주였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살인적인 레이스였고 동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스피드"로 승부해야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러다가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엘리우드 킵초게가 2시간 8분 44초[30]로 우승하면서 케냐 선수로 8년만에 2번째 금메달을 받았다. 킵초게는 결승선을 앞두고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여유있게 우승했는데 그는 이번 대회에 앞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혀왔다. 앞서 킵초게는 2016년 4월 열린 런던 마라톤에서 2시간 3분 5초로 결승선을 통과해 런던 대회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는 마라톤 이전에 장거리 육상 선수로 활약하여 2003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5,000m에서 우승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5,000m에서 동메달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5,0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다가 2013년 마라톤으로 종목을 바꿨다. 이후 2014년 미국 시카고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4분 11초로 우승하면서 종목 변경에 성공했다.

그리고 비공식 대회인 INEOS 1:59챌린지에서 2시간 벽을 깼다!! 다만 대회 자체 목적이 2시간의 벽을 깰 수 있는가 시험해본 것에 가깝고 마라톤 룰을 안 지킨 이벤트 행사다. 페이스 메이커 7명에다 레이저포인트로 속도조절을 도왔으며 킵초게가 신은 마라톤화도 특별히 만들어서 앞으로 마라톤 대회에선 이런 제품은 금지되었기에 큰 의미는 없지만, 공식대회에서 깰 가능성이 생겼다는데 의의를 두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케냐는 여자 마라톤에서도 제미마 숨공이 2시간 24분 4초로 2016 리우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역대 남녀 마라톤 올림픽 동반우승 첫 금자탑을 세웠다. 참고로 남자 마라톤에선 킵초게에 이어 페이사 릴레사(26ㆍ에티오피아)가 2위를 기록했고 게일런 루프(30ㆍ미국)이 3위로 동메달. 여자 마라톤에서는 숨공에 이어 바레인 국적 유니스 젭키루이 키르와가 은메달, 에티오피아의 메어 디바바가 동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2018년 9월 16일에 치뤄진 베를린 마라톤에서 2016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엘리우드 킵초게가 무려 2시간 1분 39초로 역대 마라톤 최고기록을 새롭게 기록했다! 4년만에 종전 기록에서 1분 18초나 더 빨랐다. 그리고, 다시 4년 뒤인 2022년 9월 25일에 치뤄진 베를린 마라톤에서 킵초게는 2시간 1분 9초로 자신이 세운 세계 기록을 30초 더 갱신하며 우승했다.

일본의 마라톤 성적도 수준급이다. 자국에서 열린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 그 다음 대회인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마라톤에서 수상한 바 있다. 1991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다니구치 히로미(谷口浩美)가 우승했고,[31]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수상한 적이 있다.[32] 이후에도 세계육상선수권에서는 은메달, 동메달을 계속 수상하고 있으며, 마라톤에서만 메달 3개를 얻은 적도 있다. 2018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1위(이노우에 히로토), 여자 2위(노가미 게이코)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에서 함께 상위권 성적을 내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마라톤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자국에서 열릴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계속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다.[33] 이러한 추세면 금메달까지는 몰라도 메달권 진입은 충분히 기대할수 있을 듯하다.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마라톤에 나온 스구루 오사코는 메달은 실패했으나 2시간 10분 41초로 6위라는 상당한 성적을 거뒀다.중국 선수인 양 샤오후이가 19위,바레인 선수 엘 하산 엘 압바씨가 25위였다.여자마라톤은 케냐 출신 바레인 귀화선수인 유니스 춤바가 7위로 아시아 선수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다. 한국 여자선수 최경선은 2시간 35분 33으로 34위.

선수는 아니지만 개그맨인 네코 히로시가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하기도 했다. 일본이 아닌 캄보디아 국적으로 2016 리우 올림픽에 나왔다. 성적이야 그리 기대할 거 없었지만 그래도 139위로 완주했다. 사실 후술하듯이 이번 올림픽에서 남자 마라톤에 20대 한국 선수 두 명이 130위대라는 성적을 기록했고, 네코 히로시의 나이가 40살(!)인데다 전문적인 마라톤 훈련을 받은 선수도 아닌 일반인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히로시의 성적은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기록이 아니었다.[34]

더불어 리우 올림픽에서 논란이 된게 에티오피아 국적인 페이사 릴레사였다. 2위로 은메달을 받은 그는 리우올림픽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또 리우올림픽 폐회식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뒤 두 팔로 머리 위에 X자를 그렸다.

이는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에 나선 주민 1천 명 이상이 경찰의 강경 진압에 죽거나 투옥된 데 대한 저항이라고 릴레사는 밝혔다. 릴레사는"나는 이제 에티오피아로 가면 죽거나 감옥에 갇힌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논란이 커지자 릴레사를 영웅으로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릴레사는 귀국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릴레사의 에이전트는 AFP에 "릴레사가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면 좋을 게 없다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다"며 "릴레사가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IOC는 올림픽에 정치적인 언급을 하면 메달 박탈등 징계를 내리는게 일반적이지만 이번 경우는 여론을 인식해서인지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에티오피아와 케냐가 이렇게 목숨 걸듯이 마라톤에 매달리는 이유는 바로 출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Teufelskoche'라는 책자(한국어 번역판 제목 <날 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에서 야레드 하일레실라시에라는 에티오피아 마라톤 선수가 나와 이야기하길, 독일 베를린 마라톤 나와 여럿 도전 중이라고 하며 이름있는 마라톤 대회 우승하면 수십억이나 넘는 온갖 돈이 굴러오며 올림픽 메달이나 세계 기록도 그 이상으로 대우받는 거였다.이름이 떨어지는 대회조차 우승하여 빈민가에서 탈출하여 제법 좋은 집을 사고 돈도 벌던 선수도 있다는 것. 자신도 중상위 정도임에도 마라톤에서 성적이나 미래성이 좋다고 독일에서 훈련받고 돈도 받는다고 했다.

10. 한국의 마라톤 현황[편집]


대한민국에서는 그나마 육상 종목에서 가장 세계적으로 내세울만한 종목이었다.[35]

베를린 올림픽에서 뛰었던 손기정, 남승룡[36][37] 1947년 51회 보스턴 마라톤[38]에서 당시 세계기록인 2시간 25분 39초로 우승한 서윤복이 있으며 54회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선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3위를 차지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최윤칠이 4위,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이창훈이 4위를 차지했다.[39]

하지만 그 뒤론 부진에 빠져 세계에서 한국 마라톤은 잊혀지다가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경쟁력 있는 선수들을 배출하면서 다시 마라톤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김원탁[40]이 금메달을 수상한데 이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은 황영조손기정 이래로 56년 만에 마라톤에서 우승하며 화룡점정을 이룬다. 1993년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김재룡이 4위를 차지하는 좋은 성적[41]을 차지했다.

이후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마라톤 은메달,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51년 만에 한국선수로 재우승[42]이봉주의 등장으로 한국 마라톤계의 화려한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봉주는 2003년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1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봉주 은퇴 이후로 다시 한국 마라톤은 어둠에 빠지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봉주의 활약으로 2002 부산 아시안게임은 우승했지만 이후로는 암흑기라고 해도 할 말 없을 정도다. 2000년대 중후반 아직도 뛰고 있는 이봉주의 분전 빼고는 이렇다할 성적을 낸 선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지영준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며 다시 영광을 되찾는 듯 했으나 지영준 선수는 확실히 이봉주의 뒤를 이을 만하다고 평가받은 촉망받는 선수였으나 선수 생활에 치명적인 지병 발발로 일찍 은퇴하고 코치로 전향하는 아픔을 겪었다.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도 한국선수인 이두행은 2시간 17분 19초로 32위, 장신권이 2시간28분 20초로 73위, 개인 최고기록이 2시간 9분 28초인 정진혁은 2시간 38분 45초라는 기록으로 82위라는 최악의 부진을 보여줬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 나온 지 76년이 지나도록 70위권 바깥으로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남자는 10위, 여자는 8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니 말 다했다.

1990년대엔 남녀 모두 지구력이 강한 아시아 쪽 선수들이 강세를 보인 편이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남자부의 경우 스피드가 강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한다. 특히 상술됐듯, 케냐에티오피아에서 거의 정책적으로 미는 종목이자 선수들에게도 국제대회 우승하면 그야말로 로또 당첨 돈과 명예가 굴러오기에 힘을 다한다. 때문에 탑클래스 마라토너는 물론이거니와 페이스 메이커 역시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가 다수를 이룬다. 여자부의 경우도 남자부와 비슷하긴 하나, 일본이 여자마라톤계에서는 순위권 선수를 배출해내고 있는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마라톤 금메달을 일본이 2연패했다. 그리고 여자 마라톤에서도 케냐나 에티오피아, 자메이카도 꽤 실력이 좋아서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마라톤은 에티오피아의 티키 젤라나가 금메달,케냐의 프리스카 젭투가 은메달, 자메이카의 타트야나 아르키포바가 동메달을 받았다. 2016 리우 올림픽도 위에 서술하듯이 케냐 선수가 금메달을 받았다.

2015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에리트레아선수인 게브레슬라시에 기르메이(20)가 2시간 12분 28초로 우승하며 사상 처음 에리트레아 첫 육상대회 우승을 안겨줬다. 강력한 우승후보인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을 제쳤고, 무엇보다 전쟁을 벌이며 지금도 이를 가는 이웃 에티오피아 선수(2시간 13분 08초로 2위인 츠게이 예마네가 에티오피아인이다.)를 2위로 제쳤기에 에리트레아에서 환호 분위기. 날씨가 너무 더워서 선수들이 고전했다는 평과 같이 지난 대회(2013년) 우승자 스티븐 키프로티치(우간다)는 2시간 14분 43초로 6위에 그쳤으며 케냐 선수들이 1명도 10위안에 들지못하는 부진을 보여줬다. 동아시아 선수로는 북한의 박철이 2시간 15분 44초로 11위를 차지한 게 최고 성적이다. 한국은 노시완 선수가 2시간 32분 35초에 39위를 거뒀는데 완주한 선수가 모두 42명이었다. 동아시아 마라톤 최강국인 일본은 줄곧 10위권 선수들을 내곤 했는데 이번 2015년 대회에서 후지와라 마사카즈가 21위를 차지하면서 부진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북한의 김혜성이 여자 10위를 거둔게 아시아 최고 성적이었다. 물론 바레인 국적인 유니스 젭키루이 키르와가 은메달을 받긴 했지만 그녀는 케냐 출신 귀화선수였기 때문이다. 여자 마라톤 강호이던 일본은 후쿠시 카요코가 14위에 그쳤다.

케냐 출신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가 귀화 의사를 밝혔다. 팀도 한국 실업팀인 청양군청[43]으로 옮겼고, 2016년 리우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위해서 달린다는 뜻의 주한(走韓)이라는 이름까지 지었다고 한다. 성은 은사인 오창석 백석대학교 교수의 성을 따라 오주한이라고 지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기는 하지만 돈을 보고 귀화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자신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좋아서 귀화하겠다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44] 또 에루페의 귀화가 한국 육상에 자극이 될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에루페가 2012년 말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으로 2년간 자격정지를 당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면서 대한체육회는 일단 에루페의 귀화심의를 보류했다. 일단 에루페 본인은 말라리아 치료 과정에서 맞은 주사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는데, 에루페의 해명이 받아들여지더라도 대한체육회 규정상 도핑과 관련해 징계를 받은 선수는 징계가 끝난 뒤 3년이 지나야 다시 국가대표 자격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만약 귀화를 하더라도 리우올림픽 출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45] 결국 특별귀화는 불발되었고 리우 올림픽에 에루페는 출전하지 못했다. 다만 에루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속해서 한국 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확실하게 못박았고 결국 최종적으로 한국국적을 취득하였다. 2018년 7월 31일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긴 했으니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은 출전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제육상연맹(IAAF)의 새로바뀐 법조항 때문인데, 중동국가들의 젊은선수들을 계속 귀화시켜서 출전시키는것 때문에[46] 귀화 후 3년간 국가대표 발탁금지라는 조항을 만들었다. 이대로라면 에루페는 도쿄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제육상연맹이 아닌 IOC가 개최하는 것이니만큼[47] 아직 그렇게 단정짓기는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결국은 국가대표 선발 명단이 확정되고 나서야 알 것 같다. 어쨌든 국제육상연맹이 한국 대표 자격을 인정해 주었다. 대표 선발도 가능하다. 그리고 2016 리우 올림픽 마라톤에서 한국선수로 나온 손명준은 131위, 심종섭은 138위를 기록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손명준, 심종섭 두 선수는 이미 전지훈련 때부터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심종섭 선수는 이미 햄스트링과 발뒤꿈치 부상을 당해 제대로 경기를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었다. 그러나 리우올림픽 배구 대표팀 사례에서 보듯 무능한 스태프는 선수촌 입촌 후에야 이 사실을 눈치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게다가 손명준 선수는 경기 전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까지 접했던 상황이라 제대로 된 컨디션에서 뛰기가 힘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욱 황당한 것은 연맹이 선수촌 AD 카드를 확보하지 못해 선수 두 명만 먼저 입촌해 개인 훈련을 하며 생활했으며 음식 때문에 설사 증세를 겪었고, 아마추어조차 풀코스 이전에 진행하는 식이요법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국가대표급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햇반이나 김을 다른 선수들에게 얻어다 먹으며 생활한 것이다. 아무리 두 선수의 성적이 처참하다 하더라도 연맹의 부실한 관리가 성적 추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연맹이 제대로 선수관리에만 신경 썼더라면 아무리 부진했더라도 저 정도까지의 처참한 성적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아시아권 선수들을 보면 16위를 거둔 일본선수 사사키 사토루가 아시아 선수 중 가장 성적이 좋았으며 25위인 인도선수 터나칼 고피, 26위 헤타 램(인도), 북한 선수인 박철이 27위, 스리랑카 선수인 아누라다 인드라짓 쿠레이가 34위를 기록했다. 몽골, 이란, 중국, 대만 선수들보다도 성적이 더 저조했다. 상술하듯이 마라톤에 그리 애정이 없다는 나라 이란조차도 129위를 기록했지만 이걸 비웃을 수 없는 상황이며, 그야말로 한국 마라톤은 이제 올림픽 메달은커녕 50위권에도 못 들어가는 형편이 되었다. 어떻게 한국 마라톤을 재건해야 할 지 막막한 상황이다. 물론 상술했듯 이 모든 게 선수들만의 잘못은 아니며, 연맹의 지원체계 또한 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 위상이 커서 그런지 이야기거리가 참 많은 종목이기도 하다. 마라톤과 관련된 사건으로 일장기 말소사건이 대표적.

국내에서 펼쳐지는 전국구급 메이저 마라톤 대회로는 매년 3월에 서울특별시에서 개최하는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동아일보 주최)[48]과 10월에 춘천시에서 열리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조선일보 주최)[49], 11월에 서울특별시에서 열리는 중앙서울마라톤(중앙일보 주최)[50]이 유명하다.

중, 고교에는 3월말에 하는 경주 코오롱 구간 마라톤 대회가 유명하다. 이쪽은 2023년 현재 39회 대회를 하고있고 KBS 1TV에서 중계해주고 있다. 대학부에서는 건국대학교가 마라톤 사관학교라 칭할 정도로 유명하다.

2018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여자 마라톤 김도연 선수가 21년만에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 메달 프로젝트 가동에 들어갔다.

2020년 11월 5일, 주역들이 음주운전을 일으켜 육상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전 상벌위원회)는 9일 회의를 열고 강원도청 소속 선수인 신광식은 제명, 정의진은 자격정지 3년, 황종필은 자격정지 2년의 중징계를 받았으며 감독 소홀의 책임이 있는 최선근 국가대표 마라톤팀 총감독과 정남균 국가대표팀 코치는 보직 해임됐다. 엄광열 마라톤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자진사퇴했다. 이로 인하여 11월 22일 춘천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조선일보 주최 제74회 전국마라톤선수권대회까지 취소됐다. 육상연맹은 엘리트 등록선수들만 참가하는 이 대회가 이번 사고로 강원도청 등이 불참, 참가 신청한 구미시청과 한국체대 2개 팀으로는 진행할 수 없어 취소했다고 밝혔다.

홋카이도 삿포로시[51]에서 진행된 2020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서 심종섭 선수는 2시간 20분 36초로 들어와 49위를 기록했으며,[52] 오주한 선수는 13km 지점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기권했다. 도쿄의 무더위로 인해 도쿄보다 상대적으로 시원한 삿포로에서 치뤄졌음에도 높은 기온과 습도로 인하여 기권하는 선수가 속출하였다.


11. 북한의 마라톤[편집]



1999년, 스페인 세비야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마라톤 여자부 경기에서 북한정성옥금메달을 획득했다. 기록은 2시간 26분 59초.

12. 주요 대회[편집]



세계

세계 6대 마라톤 월드 마라톤 메이저

아시아

한국

13. 장비[편집]


의복은 손발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핫팬츠와 민소매를 입으며, 팬츠는 2중 구조로 되어 있어 속옷 기능을 겸한다. 옷은 헐렁하지만 움직임에는 방해되지 않는다.

남성의 경우, 풀코스를 뛸 경우에는 니플패치를 꼭 부착할 것을 권고하는데, 상의가 유두에 쓸리면서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재질이 좋은 옷을 입으면 되지 않겠냐" 반문 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구글에 "마라톤 출혈"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이미지가 젖꼭지 부위에 출혈을 일으킨 마라토너 사진들이다. 하프나 10㎞ 대에서는 옵션이다. 다만 이는 체형에 달린 문제로 남자라 해도 유독 유두가 돌출돼 있다거나 하면 단 몇키로를 뛰더라도 붙이는 걸 권한다. 미리 뛰어보고 쓸리면 무조건 붙이자.

여성의 경우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기 때문에 그럴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남녀 공히 레깅스](혹은 속바지라 불리우는 것)를 착용하는 것도 좋다. 양쪽 허벅지 안쪽이 만나는 사타구니 부위가 쓸려서 엄청난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파일:external/ydtalk.com/marathon3.jpg
2012 런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스티븐 키프로티치(Stephen Kiprotich)가 결승선에 도달하는 장면.

신발은 기록이 좋은 선수일수록 가벼운 것을 착용하는 편이며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이 착용하는 수제화는 한 쪽당 백 그램대 초반에 불과[53]다. 참고로 일반적인 남성 쿠션화는 삼백그램 중반대다. 그만큼 쿠션이 부족하므로 근력이 없는 초보자는 이런 것을 신고 뛴다면 부상을 당할 수 있다.[54] 요즘은 대세가 바뀌어서 레이싱화도 엄청난 양의 폼과 카본플레이트를 넣는 추세라서 엘리우드 킵초게 신발로 유명한 나이키 베이퍼플라이 시리즈와 알파플라이 시리즈는 이백 그램대 중후반 정도의 무게이다.

2시간대에서 보편적인 브랜드는 아식스였다. 하지만 세계기록급을 보유한 선수들이 가장 많이 착용하는것은 나이키, 아디다스다. 3시간대를 넘어가면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들이 만든 경량화가 많이 보이게 되며 4시간대에서는 일반적인 퍼포먼스 런닝화들도 많이 뛴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아식스는 선수 수준에서도, 마스터즈급 동호인 수준에서도 완전히 퇴물이 되어갔고 현재는 매우 보수적인 마스터즈급 동호인이 아니라면 아식스는 거의 신지 않는다.[55]

2019년 들어서는 약간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된 킵초게를 초빙해서 2시간의 벽을 깰 때, 나이키가 킵초게에게 신겼던 마라톤화는 기존과는 정반대로 복합소재 쿠션을 왕창 쌓고 탄소섬유 보강판까지 넣어서 무게가 한쪽 당 이백그램 가까이 나가는 물건이었고, 이후 이런 제품군이 다른 마라토너들에게도 유행하고 있다.

카본화 유행이 극에 달한 2023년 즈음에는 다시 새로운 트렌드가 발생했다. 무게를 늘린 두꺼운 카본화에서 과거 레이싱화 수준의 가벼움과 기존 카본화의 두툼한 반발력을 모두 보유한 새로운 카본화로 대세가 넘어갈 조짐이 보인다. 130g이라는 충격적인 무게로 등장한 아디프로 EVO를 위시한 새로운 카본화는 기존 카본화 수준의 쿠셔닝과 반발력에 옛날 레이싱화 수준의 무게까지 장착했지만 100km도 못 뛰는 극악의 내구성과 엄청난 가격이 단점.

14. WA 라벨[편집]


대회마다 WA 측에서 등급을 매긴 것이다. 참가 선수 수준, TV 중계, 코스 적합성 등을 기준으로 골드, 실버, 브론즈로 나뉜다.

골드 급에 들어가면 말 그대로 괴수 중 괴수가 득실대는 대회라 할 수 있다. 미국의 3대 마라톤인 보스턴, 뉴욕, 시카고 마라톤이나 유럽의 베를린, 플로라 런던 그리고 가끔 포함되는 파리 마라톤은 모두 골드 라벨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샤먼, 베이징, 인도 델리, 일본 도쿄, 비야호 등이 있으며, 한국은 서울 국제 마라톤이 2009년 실버에서 골드로 승격하였고, 춘천 국제 마라톤이 2012년에 승격되었으나 2014년부터 자격을 상실하여 서울만 유일한 골드 라벨이었으나, 2023년 대구국제마라톤이 골드 라벨로 승격되었다.[56]
https://worldathletics.org/competitions/world-athletics-label-road-races/calendar-results

실버 라벨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대회로 국내에서는 춘천 뿐이다. 이 밑으로는 최소 조건을 만족한 브론즈가 있는데, 브론즈 인증을 받은 국내 대회는 없다.

또한 선수에게도 기록에 따라 라벨이 주어지는데, 최소 브론즈 라벨은 따야 풀코스를 뛸 수 있지, 없으면 받아주지 않는다. 또한 그 급에 맞는 대회만 나가게 되어 있고, 여기서 일정 기록을 세우면 승격되어 고 티어 대회에 나갈 수 있다.

또한 월드 마라톤 메이저스(WMM)에서 세계 6대 마라톤#으로 꼽히는 대회들과 세계선수권 그리고 올림픽을 메이저 마라톤 대회로 꼽는다. 그중 보스턴 마라톤은 첫 올림픽 다음해인 1897년에 개최되었을 정도로 위상이 매우 높으며, 런던과 베를린 마라톤은 기록 경신이 많이 되다보니 '세계 최고기록의 산실'로도 불린다.
파일:세계 6대 마라톤.jpg

15. 사건 및 사고[편집]


  • 1908 런던 올림픽에서는 심판들이 탈진한 선수를 부축해가며 1위로 골인시키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탈리아 출신의 피에트리 도란도(1885~1942)가 그 주인공이다. 이 경기는 종래 40㎞ 코스로 진행되던 마라톤이 출발점이 윈저 성으로 바뀌면서 2.195㎞ 늘어나 42.195㎞로 진행한 최초의 마라톤 대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오차 때문에 페이스 조절을 잘못하기라도 한 건지 선두로 달리던 그는 스타디움에 들어오자 완전히 탈진해 쓰러져버렸고, 그 직전에도 400m를 무려 10분에 걸쳐서 뛸 정도였으니 2위에게 뒤쳐지는 건 기정사실로 보였다. 그런데 그걸 본 심판진들이 몰려나와 도란도를 부축해 결승선까지 끌고 갔다. 훗날 이 일로 비난을 받자 그들은 인도적인 감정에서 저지른 일이었다고 강변했으나 실은 2위로 추격하던 선수가 미국의 존 헤이즈였기 때문에, 영국인으로 구성된 심판들이 양키가 우승하는게 배알이 꼴려서 그랬다는게 중론이다. 결국 당연하게도 도란도는 실격당했고, 도란도는 울먹이면서 왜 자기를 실격하게 만들었냐며 울분을 토해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 마라톤 심판위원 중에 셜록 홈즈의 작가로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이 있었는데, 당시 신문기사에 실린 사진에서 그와 비슷하게 생긴 또다른 심판이 도란도를 부축하는 모습이 찍힌 걸 본 사람들이 그 심판을 코난 도일로 오해해서 비난했다. 코난 도일 역시 자기가 직접 도란도를 부축하지는 않았지만, 심판진의 한 사람으로서 도란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기에 비난을 받아들이고 도란도를 위한 모금 행사를 주도하였다. 개최국인 영국에서도 미안한 감정이 있어서인지 영국 왕인 에드워드 7세가 특별 황금컵을 수여했으며, 미국 작곡가 어빙 벌린(1888~1989)은 도란도야말로 승리자라면서 도란도라는 음악을 작곡하여 바치기도 했다. 그리고 1909년에 미국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나간 도란도는 헤이즈를 24초 차이로 제치고 우승하며 설욕했다.

  •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단독 1위로 달리던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 선수를 갑작스레 튀어나온 웬 종말론자가 밀치면서 관객석으로 끌고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아일랜드 출신의 종말론 신봉자 코넬리우스 호런으로, 심판의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벌인 사건이었다고 하며, 이미 그 전에도 잉글랜드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를 방해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 정신병자의 만행으로 리마 선수는 10초 정도 옥신각신한 끝에 다시 코스로 복귀하기는 했지만, 이미 잃어버린 페이스는 되돌릴 수 없었고 결국 38~39㎞ 지점에서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발디니 선수와 미국의 메브라톰 케플레지기 선수에게 추월당하며 3위로 골인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리마 선수는 그럼에도 범인을 탓하지 않고 '사고가 없었다면 내가 우승했을지는 알 수 없다. 나는 3위 이내 입상을 목표로 했고, 영광스러운 동메달을 땄다.'라며 대인배 인증을 했다. 선수와는 별개로 브라질 측에서는 IOC에 금메달 공동 수여를 해달라며 항의를 했으나 묵살당했다. 하지만 IOC 측에서도 경기장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게 켕기기는 했는지 페어플레이를 한 선수에게 주는 쿠베르탱 메달을 줬다. 물론 브라질 선수단은 이걸로 만족 못하고 CAS(스포츠중재재판소)에 재소해서라도 금메달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리마는 12년 후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성화 최종 점화자로 선정되어 성화대에 불을 지폈다.

  • 2008년 스웨덴의 미카엘 에크발이란 선수는 하프 마라톤에 출전해서 달리는 도중 설사를 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누가 봐도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온 몸에 변을 묻힌 채 완주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왜 경기를 포기하고 씻으러 가지 않았냐는 질문에 '한 번 멈추면 그 다음에도 또 멈추게 된다'라며 완주 정신의 중요함을 말했다. 이 정신이 보답을 받았는지 해당 경기에서도 전체 4만명 중 21위라는 좋은성적을 거뒀고, 그 뒤엔 하프 마라톤 스웨덴 신기록을 세웠다. 이 이야기야 매우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실제로 마라톤 선수들은 위장 장애의 발병율이 높아서 복통과 설사의 위험이 많은 편이다. 계속해서 격렬하게 달리기를 하다 보니 소화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탈이 난 것이었다.

  • 2013년 보스턴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는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범인은 체첸 계열의 차르나예프 형제로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진 것이 범행 동기로 보인다. 보다 많은 피해자를 만들기 위해서였는지 우승자가 결승점을 지난 때가 아니라, 그로부터 2시간쯤 뒤에 결승점 부근에서 폭발이 2번 연달아 약 12초 간격을 두고 발생했다. 이로 인해 3명의 사망자와 18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 2018년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여자 마라톤에서는 주최 측에서 자원봉사자에게 1위로 들어오는 자국의 허인리 선수에게 오성홍기를 걸쳐주게끔 시켰음이 드러나며 이슈가 되었다. 사실 1위로 골인한 선수에게 국가 홍보 목적으로 국기 등을 씌워주는 것은 꽤 흔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 사건의 문제점은 골인한 뒤가 아니라 선수가 한참 달리는 도중에 관객석에서 뛰쳐나와서 그걸 건네주려고 들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단독 1위로 달리고 있던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있는 에티오피아 선수랑 치열하게 앞을 다투면서 달리는 중이었다. 당연히 골인 지점을 앞두고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난데없는 난입객을 마주한 허인리 선수는 그걸 거절하며 계속 달려갔으나, 이어서 2번째 난입자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예 진로에서 오성홍기를 펼치며 막아섰고, 결국 허인리 선수는 마지못해 그걸 잡아들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진맥진한데다 비까지 오는 상황에서 손에 두툼한 국기를 들고 뛰는 건 역시 부담스러웠는지 결국 몇 초 뒤에 도로 땅에다가 내동댕이치고 달렸다. 하지만 결국 잃어버린 페이스는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 에티오피아 선수에게 1위를 뺏기면서 2위로 골인하고 만다.

처음에는 몇몇 몰상식한 자원봉사자들의 만행이라고 여겨졌으나 이내 대회 주최 측에서 시킨 것이 드러나면서 네티즌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중국 측에서는 거꾸로 언론플레이를 펼치며 허인리 선수가 국기를 모욕했다고 비난하였다. 심지어 개중에는 '네가 1위하는 게 국기를 존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냐'며 욕하는 이야기까지 있었기에 세계인들의 눈을 의심케 했다.

  •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프랑스 선수인 모하드 암도우니가 선수들을 위해 세워놓았던 테이블 위의 물병들을 팔을 뻗은 채로 그대로 모조리 쓰러뜨리고는 마지막 열에 있던 것만 혼자 집어가서 달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뒤따라오는 선수들을 향한 고의적인 방해 행위인지 아니면 단순한 실수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사실, 고의적인 방해가 아닌 실수로 물병을 쓰러뜨렸다고 하더라도 프로페셔널한 마라톤 선수가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비매너스러운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16. 기타[편집]


마라톤을 (다른 것과 섞지 않은 정통) 소재로 한 게임은 딱 하나 있다. 제니 톰슨의 마라톤이 그것. 문서 참조.

관련 기관 또는 기업은 대회마다 다르며 대표적인 예시로 동아일보(동아마라톤), 아모레퍼시픽[57](핑크런[58]) 등등이 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에서 하니가 부상 이후 빠른 속도를 낼 수 없게 되어 단거리 스프린터에서 장거리 마라토너로 종목을 전환하는 내용이 나온다. 마지막회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모두 결승선을 통과한 상태에서 기진맥진한 채 간신히 달려 꼴찌로 운동장에 입장한다. 보다못한 창수가 하니를 업고 달리겠다고 하자[59] 혼자의 힘만으로 완주하겠다며 달려서 마침내 골인하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만화가 끝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마라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많이 반영됐다.

일반인이 참여하는 마라톤 대회를 보면 유두에서 피를 흘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젖꼭지가 옷에 쓸리면서 피가 나는 것이다. 주로 폴리에스테르나 면 소재의 옷을 입을 경우에 옷이 땀에 젖고 이 옷이 상하로 흔들리면서 젖꼭지를 사포마냥 문질러 대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소재의 옷이나 젖꼭지 패드, 윤활제 등을 발라서 예방해야 한다.[60]

42㎞가 넘는 장거리를 2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경기라서, 별로 안 빠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간단한 계산으로 환산해보면 20㎞/h 가 넘는 속도이다. 대략 100m 를 18초에 주파하는 속도로 2시간 동안 달려야 세계 랭킹권의 성적이 나오는 것이다. 평소에 운동 안 하던 일반인은 런닝머신 12㎞/h 놓고 10분 달리기도 힘든 걸 고려하면 엄청난 속도다.[61]

마라톤에서는 '신기록'이라는 말보다 '최고 기록'이란 용어를 더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마라톤은 코스마다 엄청난 난이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일률적으로 시간을 재는 것은 무리가 있고 온도나 습도, 바람 등 날씨에 의해서도 좌우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당연히 최단시간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라갈 수 없다.[62] 비슷한 개념으로 썰매 종목의 트랙 레코드가 있다.

장거리 경주라는 특징 때문에 '오랫동안 쉬지 않고 어떤 한 가지를 계속하는 행위'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는데 특히 미국쪽 방송에서는 '~ 마라톤'이라고 하면 거의 하루종일 특정 프로그램만 에피소드 순서대로 줄곧 틀어주는 이벤트를 의미한다. 회사에서는 끝없이 길어지는 회의를 '마라톤 회의'라고 표현한다. 게임 업계서도 쓰이는데 리세마라는 표현이 '리셋 마라톤'의 약자다.

마라톤 풀코스 거리인 42.195㎞는 수도권의 몇 개 도시를 횡단할 수 있을 정도로 긴 거리다. 수도권 남부의 경우, 최대 8개 시까지 횡단이 가능하다.[63] 경기 북부의 경우에도 6개 시군을 횡단하는 루트[64]가 가능한데 포천 신북면 열두개울[65]에서 초성리역을 거쳐 3번 국도를 따라 서울시에 진입해서도 당고개역까지 가야 풀코스가 나올 정도다. 연천군 전곡읍에서 서울 도봉산역까지 운행하는 39번 버스의 편도 거리가 마라톤 풀코스 거리보다 짧은 40㎞ 내외이고 서울 버스 604서울 버스 650의 왕복 운행 거리가 풀코스 거리를 조금 넘는다. 홍천군, 의성군, 화성시 등 면적이 큰 시군은 마라톤을 완주해도 그 시군 안쪽이기도 하다. 그만큼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그 자체로 의의가 크다 할 수 있겠다.

네덜란드는 강추위가 찾아온 겨울에 운하가 단단히 얼면 국가급 대회로 스케이트 마라톤을 개최한다.

코로나의 영향이 다른 스포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대부분 경기장이 정해져 있어 그곳에서 경기하는 다른 종목과 다르게 42.195㎞라는, 위에서 언급했듯 수도권 몇 개 도시를 거쳐갈 수 있을 정도로 긴 거리를 무대로 경기하는 마라톤의 특성으로 인해 비대면 대회가 적극적으로 열었다.[66] 가장 흔한 방식은 선수가 GPS 장비를 착용하고 원하는 장소를 뛰는 것. 당연히 선수 개인이 도로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회 기간 이내라면 원하는 시간에 나누어서 뛸 수도 있다. 이것 말고도 Zoom을 켜고 뛰는 모습을 녹화하는 대회도 있다. 북한에서는 아예 가상 마라톤 대회라는 것을 시도했다. 각자 원하는 장소에서 42.195㎞를 마라톤 현장을 구현한 가상 공간에서 뛰고 그 기록을 인증받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코로나19가 악화되면서 국경을 폐쇄해야 해 다시 취소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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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0km 경보걷기 종목이며, 2021년을 끝으로 올림픽에서 빠지고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만 치른다.[2] 남한을 제외한 북한 문화어, 중국어, 일본어는 이 발음을 받아들여 각각 '마라손', '马拉松(mǎlāsōng)', 'マラソン'으로 적는다. 북한 표기는 일제강점기부터 쓰인 일본어 음차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손기정이 활동하던 시기에도 '마라손'이라는 표기가 조선 전역에서 가장 널리 쓰였다. '마라톤'이라는 표기가 남한에 확산된 건 1975년 기점인데 어원이 그리스어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3] 이곳에 회향(μάραθον)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4] 원래 폐회식에서는 남자만 시상했는데,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남자 여자 모두 시상했다. 최초로 올림픽 폐회식에서 마라톤 시상식을 거행한 것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이다. 대한민국의 이봉주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조시아 투과니에게 불과 3초 차로 금메달을 내준 바로 그 대회다.[5] 참고로 동계 올림픽 폐회식에는 크로스컨트리 단체출발 클래식 30 km(여자)/50 km(남자) 시상식을 한다. 그러나 동계 올림픽은 아이스하키 결승전에 밀려서 메인 이벤트로는 인정되지 못한다.[6] 다만 이건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거의 수분() 무게이다. 실제로 소모되는 열량은 신장과 체중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3000 kcal를 넘어가지 못한다.[7] 국제육상연맹은 편도코스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다. 참고로 국제육상연맹의 인증 기준을 보면, 출발지와 도착지의 직선거리가 전체 코스의 절반인 21.0975㎞ 이하이어야 하고 표고차이가 1㎞당 1m를 넘지 않아야 한다. 곧 출발지와 반환점 사이의 높이 차이가 21m 이하일 것.[8] 달리기의 역사에서는 울트라 마라톤이 오히려 마라톤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국제아마추어육상연맹(IAAF)은 1991년에서야 울트라 마라톤을 공식대회거리로 인정하였다.[9] 정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이 달리는 방식[10] 미국대륙횡단대회는 64일 동안 LA부터 뉴욕으로 달린다. 대한민국에서도 622㎞(남한 종단), 1,500㎞, 2,500㎞ 등의 전국일주 울트라 마라톤 대회들이 열린다. 마라톤과 달리 울트라 마라톤은 단순히 몇㎞를 달리기보다는 특정한 테마를 갖고 진행하며, 코스의 구성이 훨씬 다채로운 편으로 비포장이나 경사로가 포함될 수 있으며 기후나 날씨에서도 제한이 적다.[11] 가끔 다큐멘터리에서 사하라 대회가 나온다.[12] 후일담으로 1990년대말 해당 코스 길이를 재측정해 본 결과 26마일 385야드보다는 174야드 더 짧았다고 한다.[13]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thletics Federations, 국제육상경기연맹, 1921년 당시에는 International Amateur Athletic Federation이 공식 명칭[14] 실제로 동아일보가 해마다 개최하는 동아국제마라톤 1994년 대회에서 기록이 예상 외로 잘 나오자 코스 길이가 짧지 않느냐, 출발시 운동장 트랙을 한바퀴 덜 돈 것이 아니냐는 억측이 있었다. 주최 측에서 대회 후 다시 코스 길이를 계측하자 오히려 규정 거리보다 12m 정도 길었다. 이 당시 김완기가 2년 만에 남자 마라톤 한국신기록(2시간 8분 34초)을 세웠지만 불과 한 달 후 보스턴 마라톤에서 황영조가 다시 깨버렸다.(2시간 8분 9초)[15] 올림픽 종목을 제외한 전 종목 중에는 당연 철인 3종으로 불리는 트라이애슬론 울트라 코스(수영 3㎞,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가 가장 고되다.[16] 선수들은 42.195㎞ 전체를 쉬지 않고 뛰는 것을 중점으로 훈련하기 때문에, 기껏해야 5~10초 넘어져서 지체했다 해도 페이스가 흐트러져 경기 전체를 망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 남자 마라톤에 출전한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가 중반 이후로 압도적 선두를 달리다 관객의 난입으로 넘어져 페이스가 흐트러져 3위로 처진 것이 대표적이다.[17] 이 당시 이봉주의 은메달 이후로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들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언론들의 시선이 매우 긍정적으로 달라졌을 정도이다. 이봉주 항목 참조.[18] 그 외에는 철인 3종, 극한지(사막 등) 레이스 정도. 보다시피 마라톤보다 더 빡센 종목밖에 없다.[19] 마라톤보다 중계 시간이 훨씬 길고 (약 5시간정도) 볼거리 없는 일반 도로를 하염없이 달려야한다는 점에서 도로사이클 경기와 중계 스타일이 비슷하다. 사이클은 중계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런지 중간에 현지 명물 관광지나 음식 레시피(!)소개를 끼워넣거나 SNS의 질의응답도 라이브로 해줄 정도.[20] '파파라치 중계'란 말 자체가 프랑스의 사르코지 당선 때 일반화된 업계용어로 그 전에는 아예 오토바이 ENG중계를 '마라톤 중계'라고 불렀다.[21] 어떤 중계방송 해설자는 선수들이 반환점을 지나는 장면에서 'ㅇ번 선수 돌았습니다, ㅇㅇ번 선수 돌았습니다... 중략... 이로서 모든 선수들이 완전히 돌았습니다' 라는 황당한 멘트를 했다고 한다. 이계진의 책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 에 나온 일화. 사실은 일본쪽이 TV중계는 화면영상을 중시해서 쓸데없는 코멘트가 이전보다 많이 줄었기 때문이지만 이건 야구나 축구중계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를 비교해보면 한국쪽이 말이 많으며, 사실 이건 일본도 70년대까지는 그랬다. 세계적인 추세라고까지 볼 건 아니고 일본만의 변화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은 아직도 입담이 주가 되는 중계를 많이 한다.[22] 물을 적신 스펀지도 같이 있다.[23] 고무줄에 거는 행위이며 스펀지에서도 이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24] 질병치료제에 들어간 약물도 포함한다.[25] 위의 강화된 규칙으로 부당한 이익 보는 것도 아니고 징계 사유도 아니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 반칙으로 만들어 즉시 실격 처리 및 치료 조치를 하게 되어 있다.[26] 가끔 다른 선수가 부축해서 들어오는 영상도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받은 사람은 그 즉시 실격된다. 하지만 더 이상 걷지도 못할 정도면 바로 위 항에 의하여 이미 실격 상태라서 부축하지 않아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27] 시간당 거리로 계산하면 2400m. 즉 2.4km/h(...)로, 성인의 보행속도와 비슷하거나 더 느리다.[28]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유일한 비아프리카인 남자 마라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1996년 이후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의 국적은 1996 남아프리카공화국(이봉주 은메달), 2000 에티오피아, 2004 이탈리아, 2008 케냐, 2012 우간다, 2016, 2020 케냐이다.[29] 보통의 마라톤 대회는 봄이나 가을 선선한 날씨에 열린다. 세계기록이 나온 베를린 마라톤은 영상8도였다.[30] 리우 올림픽 당시 남자 마라톤은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치러졌다. 이 정도의 악천후 속에서 저 기록을 냈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다.[31] 일본 출신으로 첫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 우승자다. 그러나 이듬해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레이스 도중 급수대에서 물을 받아 마시다 운동화가 벗겨져 넘어지는 불운이 겹쳐 8위로 골인했다. 만약 다니구치가 넘어지지 않고 레이스 막판까지 모리시타와 경쟁을 벌였다면 황영조가 일본 선수 2명의 페이스와 견제에 말려 금메달 획득이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3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모리시타가 금메달을 딴 황영조의 다음 순위로 들어와서 은메달을 수상했다.[33] 이건 육상 전종목 마찬가지다. 일본은 투척종목에서도 메달을 수상한 경력이있고 이를 포함 최근 단거리에서 마라톤에 이르기까지 선수들을 집중육성 중이다.[34] 다만 선수가 아닌 일반인 주자들의 경우 40대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누적된 연습량에 따라 폐활량이나 근지구력이 좋은 경우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는 아직도 마라톤이나 달리기 등의 스포츠는 30대 중반 이상의 나이대에서부터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연습량이 충분히 축적되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연령대도 40대인 경우가 많다. 최근에 들어서 러닝에 흥미를 보이는 청년층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35] 실제로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전 당시 내외신으로부터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이유가 바로 마라톤 빼고는 다른 종목은 다 현시창이라는 한국 육상계의 현실 때문이었다. 사실 이때도 마라톤은 경쟁력이 높은 편은 아니었고, 차라리 한국 경보 간판이자 유일하게 톱10급 경기력을 가지고 있던 김현섭이 가장 돋보였다.[36] 베를린 마라톤 동메달. 손기정 옹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선발전 성적은 남승룡 1위, 손기정 2위였다. 손기정이 세계최초로 2시간 30분대를 돌파했다고 하지만, 남승룡은 비공인 국내대회에선 2시간 26분대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올림픽에선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서 초반에 처졌었지만 막판 스퍼트로 30명 정도의 선수들을 앞지른 결과 3위를 했다. 당시 일본 마라톤 선수단에서는 '식민지인들이 대일본제국의 국가대표인 것이 껄끄러워서' 이들을 배제하고 일본인 선수로 대체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발전 성적 때문에 명분이 없어, 교체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했던 짓이 컨디션 조절하고 쉬어도 모자랄 판에 베를린 현지에 가서 또 선발전을 치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인 선수들은 지름길로 가는 꼼수를 썼는데도 손기정과 남승룡을 못 이겼다.[37] 1932년 올림픽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김은배가 6위, 권태하가 9위를 차지했는데 이때에도 일본은 한국 선수들에게 일본선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강요했다고 한다.[38] 올림픽 다음으로 오래된 마라톤 대회로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다.[39] 이창훈은 훗날 손기정의 사위가 됐다.[40] 김원탁은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성화점화자 3명 중 하나였다.[41] 동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세 번째 성적이다. 1991년 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일본 선수인 타나구치 히로미가 우승한 게 가장 좋은 성적. 두 번째는 1999년 대회에서 일본인 사토 노부하라가 거둔 3위와 2005년 대회에서 오가타 츠요시가 거둔 3위.[42] 더불어 케냐의 우승 11연패를 막았다.[43] 여담으로 그의 은사인 오창석 백석대학교 교수의 고향이기도 하다.[44] 돈을 보고 귀화를 추진했다면 한국이 아니라 카타르 등 아랍권 국가로 갔을 것이다. 에루페는 개인 최고기록이 2시간 5분대로, 맘만 먹었으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국가로 귀화할 수 있었다. MBC 2580 인터뷰에서는 올림픽에 못나가도 한국에서 그냥 농사지으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45] 다만 이 규정은 이중처벌 논란이 많았고 이후 박태환이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하면서 사문화되었다.[46] 물론 귀화 자체가 문제라서 문제인 게 아니다. 진짜 이유는 중동 국가들이 돈으로 아프리카의 가난한 국가의 유망주들을 꼬드겨서 귀화를 시켜 출전시키는 문제 때문에 생긴 것이다.[47] IOC는 귀화선수들의 출전에 매우 관대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 사태로 1년 연기되어 3년 조건이 충족되었다.[48] 교통 통제로 인한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1990년대에 대회 장소를 경주시로 옮겨 치른 적이 있으나 2000년부터 다시 대회 장소를 서울특별시로 옮겼다. 경주시는 후술한 대로 소리소문없이 동아마라톤의 바리에이션이 되었다. 매년 9월에 열리는 공주백제마라톤과 10월에 열리는 경주국제마라톤이 동아마라톤의 바리에이션이다.[49] 이 대회 역시 원래는 서울특별시에서 개최했던 대회였지만 1995년부터 대회 장소를 춘천시로 옮겼다.[50] 2018년부터 JTBC 서울 마라톤으로 명칭변경[51] 삿포로 시내를 전부 일주하는 코스로, 홋카이도대학,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 삿포로시 시계탑 등의 삿포로의 명소를 다 지난다.[52] 올림픽 2연패의 킵초게와는 12분 차이다. 리우 올림픽에서는 그 격차가 34분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좁혀졌다.[53] 지금은 안 그렇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54] 과거 출시된 이런 메커니즘의 마라톤화를 신는다면 거의 맨발로 뛰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극단적 경량화를 추구한 나머지 밑창이 없다시피하며 충격 흡수가 하나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체 근력이 약하면 무릎이 아직난다.[55] 2021년 기준으로는 아식스도 TPA를 이용한 두꺼운 신소재 중창과 카본플레이트를 적용한 신발을 출시해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고, 대회 성적에서 좋은 결과를 거둠으로서 다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수준 선수들은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신는다.[56] 당시 남녀 모두 참여 가능한 유일 국내 골드 마라톤 대회였다. 서울은 외국인 여성 참여가 불가능했다.[57] 한국유방건강재단 관련사[58] 단축 코스뿐이다. 3㎞, 10㎞.[59] 당연히 실격이다.[60] 주로 바셀린젖꼭지사타구니에 발라서 이런 마찰로 인해서 살갗이 까지는 걸 예방한다. 일반적으로 프로 선수들은 패드를 착용한다고 한다.[61] 평소 운동량이 엄청난 격투기 선수들도 3분을 버티기 힘든 속도이다. 해당 영상의 선수들도 저 정도면 엄청나게 잘 뛰는 것이며 대부분의 일반인은 어림도 없다. 애초 창창한 10~20대 남성쯤이나 15초 전후지, 30대만 돼도 딱 100미터 전력 질주가 17초 내외면 엄청 양호한 편. 즉 마라토너는 평범한 성인 남성이 이 악물고 100미터 달리는 속도로 그 422배 거리를 내내 뛴다는 뜻.[62]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엘리우드 킵초게만 보더라도 개인의 공인 기록은 2시간 1분, 비공인 기록은 sub2를 달성할 정도로 빠른 선수이지만 도쿄 올림픽에서는 최악의 기상 조건으로 인해 최고 기록보다 7분이나 늦은 2시간 8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출전을 위한 기준 기록이 2시간 11분이었음을 감안하면 당시 경기 무대였던 삿포로의 날씨가 얼마나 극한 조건이었는지 알 수 있다.[63] 부천시의 옥길호반베르디움아파트에서 시흥-광명-안양-군포-의왕-성남-용인(동천역)까지 편도 풀코스 루트를 만들 수 있다.[64] 포천-연천-동두천-양주-의정부-서울. 왕복 코스의 경우에도 도봉산역에서 동두천시 송내동 송내삼거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풀코스 거리가 된다.[65] 열두개울펜션 입구가 포천시와 연천군의 경계다.[66] 물론 2020 도쿄 올림픽처럼 그냥 다 똑같이 뛰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