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로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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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웰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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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애비럿 로웰
Michael Averett Lowell

생년월일
1974년 2월 24일 (50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1]
출신지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신체
192cm, 95kg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5년 20라운드 뉴욕 양키스
소속팀
뉴욕 양키스(1998)
플로리다 말린스(1999~2005)
보스턴 레드삭스(2006~2010)

1. 개요
2. 선수 생활
3. 기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했던 야구 선수.


2. 선수 생활[편집]



2.1. 뉴욕 양키스[편집]


1995년 드래프트에서 20라운드에 양키스의 지명을 받은 로웰은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하게 단계를 밟은 뒤 1998시즌 후반기에 콜업되어 8경기에 출장했다. 하지만 시즌 후 주전 3루수인 스캇 브로셔스와 재계약을 맺은 양키스는 1999시즌을 앞두고 로웰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한다.

2.2. 플로리다 말린스[편집]


말린스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1999년 초에 가진 신체검사에서 로웰은 고환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고내가 고자라니, 시즌을 앞두고 수술을 받게 된다. 다행히도 초기였기에 완치가 가능했으며 이후 로웰은 5월에 빅리그로 올라와 12개의 홈런을 때려내면서 시즌 후 부상을 딛고 일어난 선수에게 주는 상인 토니 코니글리아로 상을 수상한다. 이듬해인 2000시즌부터 완전한 주전 3루수로 도약해 .270 22홈런 91타점의 성적을 기록한다. 2001시즌에도 .283 18홈런 100타점의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고, 2002시즌에는 생애 첫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등 .276 24홈런 92타점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전반기에만 커리어하이인 28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왕 경쟁에도 나섰으며, 2년 연속으로 올스타에 뽑혔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후반기에는 4개의 홈런을 추가하는데 그쳤고, .276 32홈런 105타점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우승 반지도 획득했고 더불어 실버슬러거도 수상했으며 시즌이 끝난 후 팀과 4년 3,200만불의 연장 계약까지 맺는 등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4시즌에도 .293 27홈런 85타점으로 젊은 주포 미겔 카브레라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5시즌에는 .236 8홈런 58타점으로 그야말로 죽을 쒔는데, 수비는 좋았기에 생애 첫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긴 했지만[2] 시즌 중에도 끊임없이 트레이드 루머에 시달렸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 선수팔이에 나선 말린스는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핸리 라미레즈, 아니발 산체스, 헤수스 델가도, 하비 가르시아를 받는 대신 로웰과 조시 베켓, 기예르모 모타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킨다.

2.3. 보스턴 레드삭스[편집]


이적 첫 해인 2006시즌, 로웰은 .284 20홈런 80타점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같이 보스턴으로 온 베켓이 5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반면 보스턴이 내준 유망주인 핸리 라미레즈와 아니발 산체스는 빅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이 트레이드는 보스턴의 실패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7시즌, 로웰은 .326 21홈런 120타점[3]이라는 커리어 하이라 해도 무방한 성적을 거뒀다. 베켓도 20승으로 다승왕에 오르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이들의 활약에 힘입은 보스턴은 2007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시리즈에서 홈런 하나를 포함해 15타수 6안타(.400)의 맹타를 휘두른 로웰은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내게 된다.

시즌 후 FA가 된 로웰은 구단과 계약기간에서 이견을 보이며 시장에 나왔으나, 결국 3년 3,750만불에 재계약을 맺었다. 계약 후 인터뷰에서 "팬들이 나를 보스턴에 남게 했다" 라는 인터뷰로 보스턴 팬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2008시즌, 로웰은 엉덩이 부상 등으로 113경기 출장에 그치며 .274 17홈런 73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후 엉덩이 수술을 받았으나, 이듬해인 2009시즌에도 수술을 받은 부위가 말썽을 일으키면서 고생한 끝에 .290 17홈런 75타점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부상의 여파로 인해 그의 장기 중 하나였던 수비력은 이미 급격히 감소해 있었고, 결국 보스턴은 로웰을 떠나보내고 대신 FA로 나온 아드리안 벨트레를 잡기로 한다. 그리고 2009년 말, 보스턴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포수 유망주인 맥스 라미레즈를 받는 대신 로웰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시도했고 이는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로웰의 엄지손가락 인대가 파열되었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이 트레이드는 무산되었다. 다만 보스턴은 예정대로 벨트레를 영입했고, 손가락 수술을 받은 로웰은 포지션을 1루수로 옮기게 된다.

2010시즌 초, 로웰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을 선언했다. 이미 부상의 여파로 인해 기량은 많이 하락한 상태였고, 시즌 중에도 부상부위가 재발하면서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했다. 그리고 10월 2일, 친정팀인 뉴욕 양키스전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치게 된다.

통산 성적은 .279/.342/.464 1619안타 223홈런 952타점.

3. 기타[편집]


  • 은퇴 후에는 MLB 네트워크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 2012시즌 이후 경질된 아지 기옌의 뒤를 이을 마이애미 말린스의 새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고, 대신 전 플로리다 출신의 포수였던 마이크 레드먼드가 감독을 맡게 되었다.

  • 로웰을 마지막으로 말린스는 2013년 현재까지 공수를 겸장한 3루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겔 카브레라호르헤 칸투는 타격은 좋았지만 수비는 영 아니었고, 호세 레예스 때문에 3루수로 전향했던 핸리 라미레즈는 타격과 수비 양쪽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013년에는 베테랑 플라시도 폴랑코를 영입해 3루 자리에 앉혔지만 이미 전성기는 한참 지났다.

  • 2016년에 처음 입후보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선 단 한 표도 얻지 못하고 탈락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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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내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 출신.[2] 골드글러브 단골이었던 스캇 롤렌최희섭과 충돌하면서 시즌 아웃이 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덕을 본 점도 있다.[3] 보스턴 역대 3루수 최다 타점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