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하라 노리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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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1990년대의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큰 인기를 얻는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으로, 이미 2000만을 넘긴 음반 판매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 방송에서 나온 오리콘 차트 집계에 따르면 역대 일본 남자 솔로 가수 중에선 음반 3위이다.[4]
2. 생애[편집]
1969년 5월 18일 오사카부 타카츠키시에서 전기상을 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학력은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중퇴.
대표곡으로는 どんなときも[5][6] , 冬がはじまるよ[7] , もう恋なんてしない[8] , 世界に一つだけの花[9][10] 등이 있다.
많은 가수들에게 곡을 제공하기도 했다.[11] 거의 전곡의 작사, 작곡, 편곡을 본인이 하고 있다. 장조의 희망차고 소년같은 노래가 주특기이면서도 Fall같은 단조의 비트있는 음악 역시 꽤나 세련되게 만드는 작곡천재. 작곡할 때 가사를 먼저 만든 뒤 곡을 붙이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가사의 소재는 주로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1985년 16세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담당하고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데모 테이프 투고 코너에 'HALF'라는 노래를 투고해, 사카모토 류이치로부터 고평가를 얻는다. 1989년 AXIA MUSIC AUDITION '89에서 그랑프리를 획득(심사위원상도 받았다)한 이후[12] 첫번째 싱글「NG」과 첫 번째 앨범 「君が笑うとき君の胸が痛まないように」로 데뷔. 1991년 발매한 싱글 「どんなときも。」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유명해진다. 투어 "WELCOME TO MY PHARMACY" 이후 1995년에 목에 폴립이 발견되어(성대용종) 입원하면서 장기 요양을 하게된다. (이때 사망설까지 나왔다고 함)
1999년에 각성제 소지가 발각되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자숙의 시간을 가진 뒤 이듬해 말부터 활동을 재개.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다가,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그룹 SMAP의 불멸의 히트곡 世界に一つだけの花(세상에 단 하나뿐인 꽃)을 만들면서 부활에 성공한다.[13]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2020년 2월 13일, 또 다시 약물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각성제가 아닌 최음제 랏슈인데 약물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와 투약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체포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각성제 소지 혐의 자체는 사실이지만 현행범이 아닌 2년전에 소지했었다라는 이유로 현재는 소지도 사용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일본 정부에 대한 여러 비판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미 약물을 끊고 재활에 힘쓰는 사람을 갑자기 잡아넣는 것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21년 활동 재개를 발표했다.
3. 디스코그래피[편집]
3.1. 싱글[편집]
3.1.1. 그 밖의 싱글[편집]
3.2. 앨범[편집]
3.2.1. 정규 앨범[편집]
3.2.2. 베스트 앨범[편집]
3.2.3. 라이브 앨범[편집]
3.2.4. 커버 앨범[편집]
3.2.5. 리믹스 앨범[편집]
3.2.6. 트리뷰트 앨범[편집]
3.2.7. 기획 음반[편집]
3.2.8. 박스[편집]
3.3. VIDEO & DVD[편집]
3.3.1. 그 외 영상[편집]
4. 마츠모토 레이지와의 은하철도 999재판[편집]
2006년 10월 마키하라 노리유키가 CHEMISTRY에게 제공한 約束の場所의 가사 중 일부가 1996년부터 연재가 재개된 새로운 은하철도 999에 등장하는 대사를 도용했다며 마츠모토 레이지가 여성주간지와 와이드 쇼 등에 출연해 마키하라 노리유키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마키하라는 기자회견을 거부했고 같은 해 11월 7일자 공식 홈페이지에 ‘은하철도 999는 개인적인 취미로도 읽은 적이 없고 가사도 모두 오리지널이며, 진정 도작이라고 의심된다면 (자신을 고소하여)재판에서 마무리를 짓고 싶다.’라는 취지의 코멘트를 발표했다. 마츠모토는 문제의 만화의 대사만으로 도작이라 칭하는 근거로 ‘10년 간 강연 등에서 이 말을 몇 번이나 말한 적 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TV에서의 코멘트로서 마츠모토는 마키하라에게 전화했을 때 ‘죄송하다고 했다면 문제삼지 않을 생각이었다.’라고 말했지만 마키하라는 ‘도작하지도 않은 것에 용서를 구한다면 (도작을)인정하는 행위다.’라고 거부했다.
지적재산권이라는 법률적 차원에서 본다면 2006년 11월 11일 방송분의 TV프로그램 프라이스 버라이어티 남보DE남보(プライスバラエティナンボDEなんぼ)[15] 중의 토론이 있어 그 당시 국제변호사인 야시로 히데키(八代英輝)가 재판이 된다면 마키하라가 ‘도작했습니다.’라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한 마츠모토측이 패소하지 않을까라는 견해를 표시했다. 또 2006년 10월 22일 방송된 TBS테레비의 TV프로그램 앗코에게 맡겨줘!(アッコにおまかせ!) 중의 법률가와 의견을 교환하는 회답에서도 마츠모토 측 패소의 견해를 표시했다.
2007년 3월 22일 마키하라 노리유키가 마츠모토에 대해 도작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달라며 저작권침해 부존재확인등 청구를 도쿄 지방재판소에 제출했다. 재판에서 마츠모토 측이 도작이라고 말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경우에는 CM송의 중지 등에 의해 발생한 2,200만엔의 피해배상청구를 진행한다는 안도 제출했다. 이에 대해 마츠모토는 3월 26일의 토크쇼에서 ‘남자라면 질 줄 알면서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라고 말했고. 또 일련의 고소에 대해 구두변론 등을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 후, 12월 26일에 도쿄 지법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마키하라 노리유키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손해 배상 판결을 내렸으나 양쪽 모두 항소, 최종적으로 마츠모토 레이지가 “마키하라 씨의 사회적인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사과하며 화해했다.
5. 기타[편집]
-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팬이다.
- 본인이 직접 게이라고 커밍아웃하지는 않았지만 게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 1999년첫번째 마약 소지로 체포됐던 때에는 오쿠무라 슈이치라는 남성과 같이 체포되어, 당시에는 친구라고 언급했으나 오쿠무라는 일본 최대 게이거리로 유명한 신주쿠 2초메의 게이바에서 일하며 오카마의 킨타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조사 결과 마키하라와 오쿠무라는 동거를 하고 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 외 마키하라의 노래 가사 등에서 게이의 입장에서 쓴 가사 또한 자주 보이기도 한다.
[1] 출생 당시의 이름은 槇原範之였다.[2] 마키하라가 직접 설립한 독자적인 레이블이다.[3] 마키하라의 개인 소속사다.[4] 1위는 후쿠야마 마사하루, 2위는 나가부치 츠요시[5] 일본에선 거의 국민가요급으로 유명한 노래. 발매 3달만에 100만장을 돌파했다. 콘서트에서 마무리를 이 노래로 하는 경우가 많다.[6] 또한 스티브 바라캇이 라이브에서 Don Na To Ki Mo라는 제목으로 연주에 일본어가사까지 부르기도 했다. 이는 일본과 스티브 바라캇의 각별한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7] 한국에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연금엔딩이 대표적인 봄 노래로 떠오른 것처럼, 일본에선 대표적인 겨울 노래. Every Little Thing이 커버하기도 했다. 특히 연말에 하는 후지 테레비의 FNS 가요제에서 매년 아이돌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하기도.[8] 김완선이 대만 활동 당시 莎喲娜啦(SAYONALA)라는 제목의 노래로 리메이크해서 불렀다.[9] SMAP에게 줘서 초대박이 났다. 대박친 거 보고 후회했다고. 그래서 나중에 자신이 커버한 버전을 앨범에 싣거나 콘서트에서 부르거나 하기도…[10] 이 곡의 전무후무한 초히트로 인해 마키하라 노리유키는 매달 외제차 1~2대씩 뽑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곡 수입을 받는다고 한다.[11] 대표적으로 SMAP의 世界に一つだけの花와 chemistry의 約束の場所 등.[12] 이 때 우수상을 받은 이가 바로 후쿠야마 요시키이다.[13] 이 곡의 전무후무한 히트 덕에 작곡수입도 일본 최고라고 한다. 매달 외제차 한두 대씩 뽑을 수 있을 정도라고.[14] 마키하라의 초기 레이블인 워너 뮤직 재팬 시기의 7개의 앨범들(君が笑うとき君の胸が痛まないように ~ UNDERWEAR)을 리마스터링한 박스셋이다. 이 7개의 앨범을 낸 시기가 마키하라의 90년대 황금기라고 볼 수 있다.[15] 칸사이 테레비에서 방송[16] 콘도 마사히코의 애칭이 맛치인 것과 비슷하게 보면 된다.[17] 'We Love Mackey'라는, 후배가수들이 커버한 트리뷰트 앨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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