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대 내 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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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의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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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목록
2.1. 고려도경
2.2. 고려사


1. 개요[편집]


고려사 및 고려 인종 대 송나라 승려 서긍이 사신으로 고려에 왔을 때 쓴 고려도경에 등장하는 별궁들이다.

황성 내에 군주가 사는 본궐 외에도 수 많은 별궁이 있었는데 이 중 제후에게 하사한 궁궐도 있었다. 후대의 사례를 보자면 조선 왕조 경복궁 내의 건청궁이 밑의 별궁에 해당된다.

2. 목록[편집]



2.1. 고려도경[편집]


특이하게도 이 궁궐들은 전 국가들/지역들의 이름을 따 왔다. 부여, 조선, 계림, 금관, 낙랑 등. 제후의 궁궐에 국가명을 봉해주는 것은 고려 국왕이 한반도에서는 황제라는 외왕내제의 의미로 추정되고 있다. 좌춘궁, 우춘궁을 제외한 별궁의 명칭은 문종 시기 확정되어 인종 시기에는 적경궁을 제외하고 모두 주인이 없이 비어진 상태였다. 다만 고려도경에는 별궁이 10개라고 했는데, 나열된 것을 세면 총 9개의 별궁만이 등장한다. 기록상 좌춘궁 앞에 실린 장경궁(이칭 숭덕궁)까지 합쳐 10개가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장경궁(長慶宮)
숙종 시기에는 숙종의 누이[1]가 살았지만 예종 시기에는 비어 있어 예종의 궁녀와 관료가 지키던 곳으로 적혀 있다. 이후 숭덕궁으로 개칭된다.

  • 좌춘궁(左春宮)
고려 인종송나라 승려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등장하는 만월대 내 별궁. 좌춘궁과 우춘궁, 두 궁궐이 존재했고 좌춘궁엔 태자가, 우춘궁엔 군주자매가 살았다. 고려 인종 대엔 태자가 살던 곳으로 태자로 임명되고 관례를 치루면 이 곳을 관저로 쓸 수 있게 된다. 고려도경에 따르면 궁궐은 고려 본궐보단 위세가 작았다고 한다. 고려에선 태자가 세워지면 궁을 내려주고 부(府)를 설치해 태자의 신하를 배정해줬다. 고려도경에 나오는 궁문은 춘덕문(春德門), 대화문(大和門), 원인문(元仁門), 육덕문(育德門)이 있었다. 고려사에도 등장하며 좌춘궁이 아닌 수춘궁(壽春宮)으로 불렸다. 좌춘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수춘궁 문서 참조.

  • 우춘궁(右春宮)
고려 인종 대 인종의 자매들 등 여러 여자들이 살던 곳으로 궁성 정문 승평문 기준 오른쪽에 있었다. 고려의 내명부로 추정된다.

  • 부여궁(夫餘宮)
한국고대 왕조 부여에서 따왔다. 또한 백제의 왕성이자 옛 국호이기도 했다.

역대 부여궁주(夫餘宮主)
1대
부여공 왕수
적경궁주
? ~ ?
문종의 아들.

  • 계림궁(鷄林宮)
한국의 고대 왕조 신라의 별칭에서 따왔다. 만월대 왕부 서쪽에 위치했다고 적혀 있다. 계림공 시절 숙종이 명복궁에 기거했고, 아내 명의태후 또한 초기에 명복궁주로 불린 것을 생각하면 정확한 명칭은 명복궁 - 계림공부로 추정된다.

역대 계림궁주(鷄林宮主)
1대
계림공 왕희
명복궁주
? ~ ?
문종의 아들.

  • 적경궁(積慶宮)
현종 대부터 고려사에 등장하며 고려도경에 따르면 당시 인종의 계모가 살던 곳이라 한다. 그럼 예종의 후비들 중 당시 이미 사망한 것이 확실한 경화왕후를 제외한 문정왕후, 장신궁주 숙비 중 한 사람이 살던 곳인듯 하다. 전임 궁주들은 모두 왕족 출신 여성이었다는 점과, 현종의 딸 적경궁주와 문종의 딸 적경궁주가 고모-조카딸 사이이고 문종의 딸 적경궁주와 문정왕후가 다시 고모-조카딸 사이임을 고려하면 같은 왕족 출신인 문정왕후가 적경궁주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겠다. 장신궁주 숙비의 아들 왕각관의 비문에서 장신궁주를 “궁빈”으로 그 아들을 서자로 취급하였고 문정왕후와는 달리 사후 시호도 부여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실이라는 뜻을 내포한 “계모”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공양왕 시기 적경원과 같은 곳인지는 알 수 없다.

역대 적경궁주(積慶宮主)
대수
시호
배우자
봉위기간
비고
1대
효혜OO
미상
? ~ 1030.02
평릉[2]에 장사지냄.
2대
효정공주
?
? ~ 1030.07
현종의 딸.
3대
부여공비
부여공 왕수
? ~ 1086.02[3]
문종의 딸.
4대
문정왕후
예종 왕옹
? ~ ?
진한공 왕유의 딸.

  • 진한궁(辰韓宮)
한국의 고대 국가 집단인 진한에서 따왔다.

역대 진한궁주(辰韓宮主)
1대
진한공 왕유
?
? ~ ?
문종의 아들.

  • 조선궁(朝鮮宮)
한국의 고대 왕조인 고조선에서 따왔다. 당연하지만 당시 조선은 고려의 시조급 국가, 조상급 국가로 취급됐다.

역대 조선궁주(朝鮮宮主)
1대
조선공 왕도
경원 이씨
? ~ ?
문종의 아들.

  • 장안궁(長安宮)
한국의 옛 국가에서 따오지 않았고, 한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따왔다. 장안은 신나라 시기에 잠시 상안으로 개칭된 전적이 있다. 상안공이 본래 평양후였다가 진봉된 점, 장안의 다른 명칭인 호경이 서경(현대의 평양)을 이르는 명칭으로도 불리는 점을 보면 “평양”의 대체호칭으로 도입된 듯 하다.

역대 장안궁주(長安宮主)
1대
평양군 왕형
?
1022.07 ~ 1034.10
현종의 아들.
2대
평양공 왕기
?
? ~ ?
현종의 아들.
3대
상안공 왕수
?
? ~ ?
문종의 아들.

  • 낙랑궁(樂浪宮)
한사군 중 하나에서 따오기도 했으며, 삼국시대 이후로는 통일 전 신라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자리잡았다. 즉 계림, 진한과 같은 신라의 별칭.

역대 낙랑궁주(樂浪宮主)
1대
낙랑군 왕휘
?
1022.07 ~ 1046.06
현종의 아들.
2대
낙랑후 왕경
?
? ~ ?
정종의 아들.
3대
낙랑후 왕침
?
? ~ ?
문종의 아들.
4대
낙랑공 왕영
?
? ~ ?
정간왕의 아들.

  • 변한궁(卞韓宮)
한국의 고대 국가 집단인 변한에서 따왔다. 다만 고려 왕가의 선산이 있는 구룡산(현 황해북도 금천군 소재)이 삼국유사에 따르면 “변나산(卞那山)”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적혀 있으므로, 개성국공-개성후 등에서 나타나는 “개성” 호칭과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꽤 있다.

역대 변한궁주(卞韓宮主)
1대
변한후 왕음
?
? ~ ?
문종의 아들.

  • 금관궁(金冠宮)
한국의 고대 왕조인 금관가야에서 따왔다.

역대 금관궁주(金冠宮主)
1대
금관후 왕비
?
? ~ ?
문종의 아들.


2.2. 고려사[편집]


  • 토양궁/상양궁(土陽宮/上陽宮)
현종 원문왕 대부터 고려사에 등장한다. 인종 공효왕이 서화궁(書和宮)으로 개칭했다. 서화전(書和殿)이 있었다.

  • 보화궁(寶華宮)
고려사현화사비에 등장하는 궁궐. 고려 초 건축된 것으로 보이며 임금이 거주하는 별궁보단 왕족에게 하사되는 궁궐이었던 걸로 보인다. 현화사비엔 '대내 보화궁(大內 寶華宮)'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현종의 어머니 헌정왕후가 이 곳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대내(大內)는 '정궁 안' 이란 뜻인데 이를 보아 보화궁의 위치는 당시 만월대 범위 내에 있었던 듯 하다. 덧붙여 고려사에 따르면 헌정왕후의 사망지는 안종의 집이었기 때문에 보화궁=안종의 집일 가능성이 있다.
역대 보화궁 주인
대수
이름
봉호
봉위기간
비고
1대
유O
보화궁부인
? ~ ?
광종의 딸.
2대
황보O
효숙왕태후
? ~ 993.03
사망 장소에 따른 추정.

  • 천추전(千秋殿)
목종 즉위 후 태후로 올려진 헌애왕후의 관저로 사용된 궁이다. 1009년 1월, 기름창고에 화재가 발생, 천추전을 완소시킨적 있다.
역대 천추궁 주인
대수
이름
봉호
봉위기간
비고
1대
왕O/유아지
천추전군/천추전부인
? ~ ?
각각 문원대왕의 아들이자 광종의 딸.
2대
황보O
천추태후
997.12 ~ 1009.02
공식 봉호가 아닌 별칭.

복원궁은 궁호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궁궐이 아닌 도교 사원이다. 북송의 도교가 유입되며 고려[4]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는데, 기존 한국에 있던 도교식 제사인 초제, 성신제 등이 복원궁과 북송의 제도를 통해 더 복잡하고 깊게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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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령궁주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녀의 며느리와 손자며느리가 승덕공주와 숭덕궁주라는 궁호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적경궁은 따로 존재.[2] 능에 배향되었다는 점을 미루어 왕비 이상의 신분으로 추정되나, 후비열전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왕비가 아닌 공주 신분으로 능호를 받은 사례(보령궁주 - 온릉)가 나타나서 무조건 왕후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시호는 효혜(孝惠).[3] 부여공과 혼인하는 시점.[4] 예종 문효왕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