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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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末期
2. 한복 하의류의 허리 부분을 지칭하는 말
2.1. 현대의 인식
2.2. 변형
3. 末技
4. 사투리


1. 末期[편집]


정해진 일이나 기간의 끝이나 마무리가 되는 시기. 반대말은 '초기(初期)'.



2. 한복 하의류의 허리 부분을 지칭하는 말[편집]



한복 치마바지의 맨 위에 둘러서 댄 부분. 즉, 치마허리나 바지허리의 명칭

치마허리는 치마말기, 바지허리는 바지말기라 한다. 말기 부분은 아직도 용어 통일이 되어 있지 않아서, 책마다 "치마(바지)말기" "치마(바지)허리" 아예 "허리말기[1]"등으로도 표기한다.

말기는 치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지나 하의 등, 서양복으로 치면 '웨이스트밴드'[2]이다. 하의류로 입는 옷에는 보통 다 달리게 되는 구성 요소이다. 애초 '말기'라는 말 자체가, 의복을 허리나 몸통에 고정시키기 위해 본판에 덧달려 있는 웨이스트밴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별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치마나 바지의 한 부분인 것이다. '말기'라는 단어 자체를 워낙에 안 쓰다보니, 서양의 웨이스트밴드와 대응되는 말이라는 것이 잊혀진 것이다. 사어(死語)가 되어서 그 원뜻을 모르고 오개념이 생긴 것.

흔히 "어깨허리"라고 부르는 조끼 모양의 요소도 말기의 한 종류이며, "어깨허리/조끼허리 말기"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짧게 줄여서는 "어깨말기" 혹은 "조끼말기"라고 부른다. 용어 통일이 안 되어 있어 여러 표기법이 있는데, 어쨌든 이것도 말기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소위 "말기치마"에 쓰이는 말기 모양은 "띠허리식 말기" "전통식 말기" 혹은 튜브탑과 비슷하다고 "탑 말기"(주로 학자나 전공자는 아닌 업체 사람들)라고 부른다.

그러니 따로 분리되어서 가슴을 조일 수 있게 만들어진 의복이나 장식은 '말기'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것은 가슴가리개나 <허리띠>, <졸잇말>이라고 부르는 말이 따로 있는 복식 품목들이다. 한복은 말기를 여밀 때 말기에 달려 있는 끈[3]을 사용하거나, 따로 허리띠를 사용하여 여민다.

특히 전통적인 남자 한복의 사폭바지는 트임(옆트임/앞트임/뒤트임 따위)이 없는 바지 본판과 벨트 역할을 하는 말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자 치마와는 달리 바지 말기에 끈을 붙여 달지 않고 따로 허리띠를 써서 고정시키는 물건이다.[4]

여자의 속옷으로 쓰이는 바지들(단속곳/속속곳/고쟁이)이나 여자가 말을 타기 위해 입는 "말군"이라는 바지나 아기가 입는 풍차바지처럼 트임이 있는 바지에는 말기에 끈이 달려 있지만, 트임 없이 제작된 남성의 사폭바지는 허리띠로 여미는 물건이다. 잊지 말자.

여성 속옷인 가슴가리개와 자주 혼동되나, 말기는 치마나 바지의 허리부분에 천을 둘러서 대어 입기 편하게 만든 부분(웨이스트밴드)이고, 가슴가리개(가슴을 조여맨다고 "졸잇말", 예전에는 허리와 가슴을 감쌌다고 "허리띠"라고도 한다)는 넓고 긴 허리띠 형태의 본판과 여밈끈 2개로 이루어진 속옷이다. 자세한 사항은 한복 항목이나 가슴가리개 항목 참조. 실제 말기는 가슴가리개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폭이 좁다.

흔히들 18~19세기 여성들의 칭칭 동여매진 허리나 가슴을 보면서, 치마에 달린 말기가 넓게 대어져 있어서 그런 모습이 나왔나 생각하지만, 안쪽에 넓은 가슴가리개(졸잇말/허리띠)를 매고 그 위에 치마를 입으며 (폭이 좁은)치마 말기를 덧매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기 면적이 넓어 보이게 되는 효과를 낳았을 뿐이다. 조선시대 의복은 개화기에 어깨허리가 들어오기 전까지 무조건 말기 부분은 물들이지 않은 소색이나 자연색의 면/마 원단을 사용[5] 했으며 여성들이 속옷으로 이용하던 가슴가리개 역시 그런 재료를 사용해 만들었기에, 색 구분이 가지 않아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2.1. 현대의 인식[편집]


현대 한복의 "말기치마"는 가까운 한푸나 기모노와 분류하기 위해서, 한국의 여성용 전통복장의 개량 분야에서 디자이너의 센스를 결정짓는 분야이다. 가슴허리 부분에서 분리되는 상의(저고리)의 디자인적인 특징과 함께, 치마말기의 배허리 라인을 어떻게 만들것인지, 끈의 장식요소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를 궁리하는 것이 현대식 한복의 쟁점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 2000년대 이후 한복 디자이너들이 제일 많이 경쟁하는 분야였다.

가슴가리개를 한 것 같은 모습이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기생옷으로 여겨지는 디자인이기 때문인지 인식이 좋지만은 않다.[6] 넓은 말기를 적용한 한복이 많이 등장하면서 그런 인식이 차차 나아지는 중이라고는 하나 한복의 용도 자체가 일상복에서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 선택적으로 입는 옷으로 변해버린지라 펑퍼짐한 치마저고리에 비해 주류는 아니다.

서브컬처에서도 그렇게 메이저한 디자인은 아니다. 일러스트의 경우에도 구한말의 어깨허리가 적용된 펑퍼짐한 한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는 기생복이나 어우동 한복[7] 이라고 부르며 꺼리는 시선이 존재할 정도. 하지만 말기치마도 서브컬처에서 연구가 덜 되었을 뿐이지, 가슴 아래를 탄탄하게 조이는 3번째 복장으로서 굉장히 새롭고 독특한 양식에 속했다. 가슴허리를 조이는 치마말기의 면적, 치마말기에 새겨지는 장식이나 형상, 이를 묶는 치마끈의 장식요소 등등, 디자이너들마다 유니크한 어레인지가 가능한 복장이다.

2010년 들어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도 조금씩 알려진 모양. 한복 특유의 짧은 저고리를 형상화한 짧은 상의를 형상화할 때, 허전해지는 가슴허리 부분을 채워주는 패션으로서, 다양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잦다. 애초에 이런 용도로 발전한 복장이니...


2.2. 변형[편집]


  • 어깨허리식 말기 치마 : 조선후기에 선교사가 여성해방 운동의 일환으로, 치마의 말기를 조끼 모양으로 재단하여 만들거나 어깨끈을 달아서 치마와 일체화한 형태이다. 끈이 없어 쉽게 흘러내리며 칭칭 조여야 하는 전통 띠허리식 말기의 형태를 변형하거나 어깨끈을 부착하여 활동하기 쉽도록 한 것이다. 현재 보급되는 한복의 상당수도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어깨치마에 끈이 필요 없다는 주장과, 끈을 둘러서 패션만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틀렸다. 어깨허리 말기 치마에도 말기끈이 있다. 조끼처럼 생긴 어깨허리 양 끝에 짧고 좁게 달려 있는 끈들이 어깨허리 말기의 말기끈들이다. 어깨허리식 말기가 없던 시절보다 길이가 짧아지고 너비가 좁아지는 등 쇠퇴한 형태이지 없어진 것이 아니다. 말기 끈 없이 되어 있는 것은 단추나 후크가 달려 있는 통치마용 말기[8]이다. 흔히 펼치면 한 장으로 펼쳐지는 자락치마의 어깨허리 말기에도 말기끈이 있어야 치마를 고정시키고 여밀 수 있다. 끈 없이 어깨허리만 걸치면 치마 뒤가 다 벌어지고 치마를 여밀 수 없다.

  • 말기치마 : 단어만 놓고 보면 말기가 달린 치마를 뜻하므로 치마저고리의 평범한 치마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말기(웨이스트밴드) 부분이 없이 자락만 있는 치마를 어떻게 입겠는가? "말기치마"라는 용어는 복식용어 개념이 부족하여 "어깨허리식 말기"를 "말기"의 한 종류라고 인식하지 못한 세대가 만들어낸 일종의 오개념이다. 바로 부르려면 "띠허리식"이라고 하거나 "전통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아니면 탑말기나.. 정확하게는 "개량형 띠허리식 말기"가 나을 것이다. 상술한 대로 "말기"라는 용어는 어깨끈이 없는 특정한 디자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기는 그냥 서양복으로 치면 스커트/팬츠 허리밴드 부분이다.

<어깨허리/조끼허리식 말기>가 아닌, 전통 방식처럼 어깨끈이 없이 직선적인 말기를 붙인 치마를 흔히 "말기치마"라고 부른다.. 라지만 지금의 개량형 띠허리식 치마에는 어깨끈이 다 달려 있다. 예전처럼 어깨끈이 없는 말기는 가슴에 입으면 너무나 쉽게 흘러내린다[9]. 어깨끈이 없는 말기는 허리에 입는 허리치마에 많이 달려 있다. 허리는 인체에서 가장 잘록한 부분이라 허리에 맨 것이 조금 느슨해진다 해도

이후 현대 한복 디자인계에서는 말기의 너비를 늘려 가슴가리개처럼 보이도록 개량한[10] 퓨전한복의 치마를 뜻하는 단어로써 정착했다. 말기치마의 말기 부분은 퓨전한복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이뤄지는 부분이다.

  • 드레스 : 탑드레스 형태의 한복 드레스 등을 위시한 현대의 퓨전한복에서 보이는 형태로, 전통적인 치마말기와 가슴가리개가 가슴을 압박하는 형태인데에 반해 이 경우 말기치마의 말기를 신체 굴곡에 맞춰 재단하여 드레스의 탑라인처럼 만들어 서구적인 디자인을 적용시킨 것이다. 각종 자수로 장식하며, 생략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말기 끈으로 마무리한다. 변형으로 튜브탑 드레스나 일상적인 원피스처럼 제작하기도 하며, 저고리나 볼레로 저고리를 함께 걸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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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릭원피스와 함께 입은 허리치마. 출처
  • 허리치마 : 면이나 린넨 등의 원단을 써서 허리에 입는 전통 띠허리 풀치마를 좀 더 현대적으로 개량하여 개량한복 원피스나 저고리는 물론, 기성복 티셔츠나 블라우스, 원피스 등과 함께 입어도 좋게 만든 것으로, 한뼘 내외의 말기와 늘여뜨리거나 리본처럼 묶는[11]치마말기 끈과 더불어 다양한 길이로 만들어지는 것이 특징.


3. 末技[편집]


변변치 못한 기술이나 재주.


4. 사투리[편집]


북한어 : 말하는 기색
마루(어떤 사물의 첫째)의 함경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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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표현은 치마/바지 어느 한 쪽에 한정되지 않고 순수하게 구성요소를 포괄하여 명칭하고 있어, 말기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용어일 것이다[2] 지난 문서에서는 "허리벨트"라고 하였으나, 엄밀히 말하면 "웨이스트밴드"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을 듯 하여 수정하였다.[3] 말기끈[4] 요새 나온 한복 바지들이 따로 허리띠와 대님을 쓰는 수고를 덜기 위해 허리끈과 대님 따위를 바지에 아예 붙여서 재단하는 것이지 절대 전통 방식이 아니다. 이것도 여자의 "어깨허리(조끼허리라고도 함)"와 같은 개량형으로 보면 될 것이다.[5] 어깨에 고정시킬 수 있는 끈이 생기기 전까지는 무조건 물들이지 않은 면/마 원단을 썼다. 비단은 매끄러워, 허리나 가슴에 둘렀을 때 옷을 고정시키는 힘이 약해 쓰지 않았으며 신체와 접지력(?)이 좋고 빳빳한 면과 마 원단을 써야 했다. 어깨허리(조끼허리)식 말기가 등장하고 나서야 겉으로 드러나는 말기 부분에 치마와 같은 천(색깔이나 재질이나)을 쓰거나 하얀 비단으로 말기를 마감하는 방식이 생겨났다.[6] 그러나 한복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현대에 널리 퍼져있는 펑퍼짐한 디자인의 한복은 구한말에 서양인에 의해 개량된 형태이다. 거꾸로 조선 후기까지 말기치마를 입은 실루엣을 연출하는 가슴가리개는 여성에게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다.[7] 사실 어우동은 조선초기의 '양반가' 출신 여성이다. 조선 초기의 여자 한복은 굉장히 품이 크고 넓으며 길이도 길었다. 말기가 노출되는 조선후기의 의복과 달랐으며 그녀 생전에 18세기식 옷은 유행하지 않았다. 현대, 18세기 기생과 유사한 어우동의 이미지는 근대 영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시절 영화들의 복식고증(뿐 아니라 모든 고증 자체가)이 똥망 수준이었기 때문에 18세기식 기생 복장이 나온 것이다... 실제의 어우동은 무수한 남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다닌 것은 맞지만 기생이 된 적은 없으며 그녀가 입었던 복장도 18~19세기식 기생복이 아니었다.[8] 자락치마가 아니고, 원피스처럼 치마 둘레가 막혀 있는 통치마용이다[9] 가슴 부분이 원래 튀어나와 있기도 하고, 아무리 세게 묶어서 가슴을 조인다 하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인체의 복원력 때문에 흐트러지기 쉽다.[10] 드라마 황진이 등에서 나오는 여성용 한복들.[11] 한복의 기본 매듭법은 리본과 같은 쌍매듭이 아니라 외매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