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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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2003년 제14호 태풍
3. 태풍의 진행
4. 기록
5. 피해
6. 논란 및 사건사고
6.1. 노무현의 뮤지컬 관람
6.2. 최낙정의 옹호 및 해임
7. 결과 및 여담
8. 관련 자료
8.1. 영상
8.2. 사진


1. 개요[편집]


2003년 9월 6일 15시부터 14일 06시까지 위력을 유지하며 최저 기압 910hPa을 기록한 대형 태풍. 추석 하루 뒤인 9월 12일 15시 제주 남동쪽 해상을 통과해 제주 고산에서 최대순간풍속 60m/s를 기록했으며 21시 경남 고성 일대에 중심기압 950hPa으로 상륙하여 약 6시간만인 13일 2시 30분 경북 울진 앞바다로 빠져나갔다. 태풍의 위험 반원인 부산, 경남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공식 피해액은 재산 피해가 4조 2천억, 사망 및 실종자가 132명[1]이었다.

'매미급'이라는 기준이 되는 태풍으로 위협적인 태풍이 등장할 때마다 회자된다. 유사한 위치의 태풍으로 1959년 9월 사라와 2002년 8월 루사[2]를 꼽을 수 있다.

매미(Maemi)는 북한이 제시한 태풍명으로, 문자 그대로 곤충 매미를 뜻한다. 이후 무지개로 대체되었다.

2023년 9월 12일 상륙 20주년이 되었다.


2. 2003년 제14호 태풍[편집]


제명된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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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와메이

2002
차타안

2002
루사*

2002
봉선화

2003
야냔

2003
임부도

2003
매미*

2004
수달

2004
팅팅

2004
라나님

2005
맛사*

2005
나비*

2005
룽왕

2006
짠쯔

2006
빌리스

2006
사오마이

2006
이오케※

2006
상산

2006
두리안

2009
모라꼿*

2009
켓사나

2009
파마

2010
파나피

2011
와시

2012
비센티

2012
보파

2013
소나무

2013
우토르

2013
피토

2013
하이옌

2014
람마순

2015
사우델로르*

2015
무지개

2015
곳푸

2015
멜로르

2016
므란티*

2016
사리카

2016
하이마

2016
녹텐

2017
하토

2017
카이탁

2017
덴빈

2018
룸비아*

2018
망쿳

2018
위투

2019
레끼마*

2019
파사이

2019
하기비스

2019
간무리

2019
판폰

2020
봉퐁

2020
린파

2020
몰라베

2020
고니

2020
밤꼬

2021
꼰선

2021
곤파스

2021
라이

2022
말라카스

2022
메기

2022
망온

2022
힌남노*

2022
노루

2022
날개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은 이름 뒤에 * 표기.
※ 허리케인이 날짜변경선을 넘어오면서 태풍으로 편입된 것으로 허리케인 때의 이름이 붙어있다. 허리케인 명명기준 '이오파'로 변경.



2003년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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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냔
구지라*
찬홈
린파*
낭카
소델로*
임부도
고니
모라콧
아타우*
밤코
크로반
두지앤
매미*
초이완
곳푸
켓사나
파마
멀로
니파탁
루핏

← 2002년 태풍
밑줄이 그어진 이름은 제명된 태풍이다.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은 이름 뒤에 * 표기.
2004년 태풍 →



2003년 태풍
제13호 두지앤제14호 매미 → 제15호 초이완


2003년 제14호 태풍 매미

태풍 등급보기

중형의 초강력 태풍 ( KMA )
대형의 맹렬한 태풍 ( JMA )
5등급의 슈퍼태풍 ( SSHS )

위성사진

파일:Maemi2003.jpg

진로도[3][4]

파일:Maemi2003track.png

활동 기간
2003년 9월 6일 15시 ~2003년 9월 14일 6시
영향 지역
파일:괌 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류큐 열도, 본토[5]
파일:대만 국기.svg 대만 북부[6]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저장 성, 장쑤 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전역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황해도, 강원도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연해주, 사할린 섬, 쿠릴 열도
태풍 등급
5등급[JTWC]
10분 등급
맹렬한 태풍[JMA]
태풍 크기
대형(직경 1,020 km)
최저 기압
910 hPa
최대 풍속
1분 평균
77 m/s
10분 평균
54 m/s
피해
사망
119명
실종
13명
재산 피해
4조 2,225억 원[7]

1959년 사라 이후 한반도 상륙 태풍 중 가장 강한 태풍. 게다가 한반도를 강타한 시기도 사라와 같은 추석 연휴였다. 역대 최고 피해액의 루사가 지나간 지 단 1년 만에 연속으로 최강급 태풍이 상륙한 데다 루사와 매미의 유형이 상반되는 부분이 많아서 루사와 함께 아직도 태풍의 전투력 측정기로 인용되고 있는 태풍이다.

셀마, 프라피룬, 루사 수준의 크나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2000년 프라피룬이 강풍으로, 2002년 루사가 영동 지방에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혔다면 매미는 여수와 진주에 200~300mm 넘는 강수와 제주와 부산/경남 해안 지역에 강풍과 해일로 큰 피해를 입혔다. 특히 강풍은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정도였는데 이는 50m/s까지 견디게 설계되었다는 부산항크레인들이 줄줄이 쓰러지고[8] 제주에서는 순간 최대 풍속 60m/s[9]가 두 곳에서나 관측되어 3년 전 프라피룬[10]이 세운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러나 당시 풍속계의 측정 상한이 60m/s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욱 강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바람에 휩쓸려 넘어지는 걸 볼 수 있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매미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게 상대적으로 약한 왼손 펀치인 가항반원(안전반원)이라는 것이었다.[11][12] 다만 매미는 위험 반원인 영남 지방에서 큰 피해를 줬다. 가항 반원은 세력이 강한 채로 지난 제주도와 상륙 직후인 전남 남해안에서 큰 피해가 났다.

하필 불과 1년 전에 루사가 한반도에 22시간이나 머물며 엄청난 비로 한반도를 초토화시켰는데 그 뒤를 매미가 이어 와서 또 뒤집어 놓고 가고 이후에도 수년간 태풍이 와서 루사로 입은 재해 복구를 하기도 전에 4년 내내 또 태풍으로 인한 재난을 맞아야 했다.[13] 이처럼 강수량을 200mm~300mm 넘는 비와 엄청난 강풍으로 인해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힌 나머지 결국 이 중 매미와 루사는 영구제명되었고 나비도 이슬람식 이름이라 제명시켜 두 번 다시 태풍 이름으로 쓰이지 못하게 되었다. 참고로 매미의 대체명은 무지개였는데 2015년 중국 남부에 큰 피해를 입히는 바람에 제명되어 수리개로 바뀌었다. 얄궂게도 한반도에서 제출한 순우리말 이름의 태풍이 3연속으로 큰 피해를 입혔다.[14]

사실 대한민국으로 왔던 태풍들 중에는 매미보다 더 강했던 태풍들도 여럿 있다. 2012년에 내습했던 산바는 900hPa, 4년 후 찾아왔던 차바는 905hPa로 최전성기로 따지면 매미보다 근소하게나마 더 강했다. 다만 상륙 당시 강도로 따지면 매미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이렇게 매미가 크게 약화되지 않고 상륙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최전성기를 맞은 위치가 일본 오키나와현으로 다른 태풍에 비해 꽤 고위도[15]에 속했고 두 번째로는 당시 남해안의 수온이 28도 가량으로 9월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뜨거워서 계속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또 세번째는 2010년 곤파스급의 빠른 이동 속도였는데 최전성기 시점에서 한반도 상륙까지 불과 36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즉 태풍에 최적화된 환경과 빠른 이동 속도에 힘입어 크게 약화되지 않고 상륙해 큰 피해를 입히고 갔다.

파일:Maemi2003.jpg

최전성기에 도달한 태풍 매미의 위성 사진


파일:태풍 매미.png

2003년 9월 12일 15시[16] 제주도 앞바다에 막 들어선 태풍 매미의 위성사진[17]


파일:매미(태풍)_진로도2.jpg

확대 진로도[가]

3. 태풍의 진행[편집]


파일:매미(태풍)_매미(태풍)_진로도1.jpg

파일:매미(태풍)_기상청2.jpg[가]

근처에서 발달하던 열대저기압이 2003년 9월 6일 15시 일본 기상청(JMA)에 의해 열대폭풍으로 승격되었다. "매미"로 명명되는 순간이었다. 매미는 발달에 유리한 주변환경 속에서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위성사진에서 눈 구조가 나타나자 JTWC에서는 8일 3시를 기해 SSHS 1등급 태풍으로 승격시켰다.

9일부터는 태풍의 발달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중국 동해안 부근으로 형성된 거대한 단파골 전면의 상층 남서류와 매미의 북서쪽 방면의 상층 발산류가 서로 합병되었다. 더욱 증대된 상층 발산은 곧 매미의 급발달을 유도하였고 9일 21시 매미의 1분 평균 최대풍속은 67m/s에 이르면서, SSHS 4등급의 슈퍼 태풍으로 발달하였다. 다음 날 아침까지 매미는 계속 발달 경향을 이어나갔고 10일 9시 JTWC 기준 1분 평균 최대풍속 77m/s까지 발달하여 SSHS 5등급의 슈퍼 태풍으로 최성기를 맞이하였고 같은 날 밤까지 같은 강도를 유지하였다. 이때 일본 기상청(JMA)은 매미의 세력을 10분 평균 최대풍속 54m/s, 중심기압 910hPa로 해석하였다.

11일 4시, 매미는 1분 평균 최대풍속 69m/s의 SSHS 4등급의 슈퍼 태풍으로 일본 류큐 제도미야코 섬을 통과하였다. 미야코 섬의 관측소에서는 해면기압 912hPa이 관측되었고 순간최대풍속도 74.1m/s가 관측되었다.

미야코 섬을 통과한 매미는 11일 아침 동중국해에 진입하였고, 눈벽 교체 순환을 겪으며 한반도를 향해 빠르게 북상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태풍의 발달에 불리한 주변환경이 조성되면서 매미는 점진적인 약화 과정을 거치며[18] 12일 15시 제주도 남동쪽 해상을 통과하였고[19] 같은 날 21시 JTWC 기준 1분 평균 최대풍속 49m/s의 SSHS 2등급 태풍, 95노트, 10분 평균 풍속 39m/s, 중심기압 950hPa의 세력으로 경남 고성군 일대에 상륙하였다.[20]

매미는 상륙 후 한반도를 통과하는 동안 육상마찰과 함께 빠르게 세력이 약화되면서 13일 새벽 3시에 울진 앞바다를 통해 동해상으로 진출하면서 온대저기압화가 시작되었다.[21] 14일 아침 9시 오호츠크 해까지 진출한 태풍 매미는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되면서 각국은 감시를 종료하였다.


4. 기록[편집]


공식 순간최대풍속 목록(m/s)
제주
고산 60.0[22]
제주 60.0
성산 37.6
서귀포 36.8
경남
통영 43.8
부산 42.7
창원 38.8
남해 37.2
울산 33.2
밀양 32.4
거제 32.0
합천 31.8
진주 31.3
거창 27.0
산청 25.5
경북
울진 36.3
대구 33.3
영천 29.7
포항 29.3
영덕 29.3
상주 27.7
안동 23.7
의성 23.7
울릉 23.7
영주 23.5
문경 23.1
구미 19.8
봉화 15.8
전남
여수 49.2
완도 36.8
진도 36.3
고흥 30.2
목포 28.9
해남 28.6
흑산도 25.7
장흥 24.3
광주 24.0
순천 22.2
전북
장수 25.2
남원 24.7
군산 21.8
임실 21.4
정읍 15.6
부안 15.6
전주 14.5
충남
대전 22.5
부여 15.8
금산 14.8
보령 13.2
서산 12.1
천안 10.3
충북
추풍령 26.4
제천 23.1
보은 19.0
충주 18.3
청주 17.8
강원
동해 28.8
강릉 21.8
태백 21.3
속초 21.1
영월 17.4
대관령 15.5
철원 13.7
인제 13.5
춘천 11.1
경기
이천 17.7
동두천 15.6
백령도 15.4
양평 12.6
강화 11.1
수원 10.8
인천 10.6
비공식 순간최대풍속 목록(m/s)
제주
모슬포 45.1
경상
부산 53.4
진북 45.0
부산북구 42.3
전라
거문도 55.8
공식 최대풍속 목록(m/s)[23]
제주
고산 51.1[24]
제주 39.5
성산 20.9
서귀포 16.0
경남
통영 31.8
부산 26.1
창원 24.7
합천 20.2
진주 18.9
울산 18.3
밀양 17.4
남해 15.6
산청 15.5
거창 13.8
거제 13.1
경북
울진 28.2
포항 18.5
대구 17.1
상주 15.8
영주 15.5
영덕 15.4
영천 14.9
울릉 14.0
문경 12.7
의성 12.2
구미 10.7
전남
여수 35.9
완도 28.9
진도 21.8
목포 20.8
흑산도 17.3
해남 16.8
장흥 15.2
광주 13.7
순천 13.0
전북
군산 16.5
장수 14.5
남원 14.2
임실 10.3
충청
제천 13.5
추풍령 12.7
대전 11.7
보은 10.8
강원
동해 20.9
속초 14.2
태백 11.3
강릉 10.8
대관령 10.6
경기
백령도 11.1

강수량(mm)[25]
제주
성산 269.0 제주 266.4 서귀포 201.0 고산 61.0
경남 서부
남해 452.5 진주 271.1 산청 256.5 합천 193.0 거창 165.5 통영 164.5
경남 동부
밀양 193.5 창원 177.1 거제 145.0 울산 116.1 부산 104.0
경북 서부
대구 197.0 구미 165.0 의성 139.0 상주, 영주 119.5 안동 104.4 문경 96.5
경북 동부
울진 182.5 영덕 178.0 포항 175.5 영천 167.0 봉화 125.5 울릉 102.3
전남
고흥 303.0 여수 258.6 순천 176.0 해남 146.5 장흥 142.0 완도 127.5 광주 78.0 진도(첨찰산) 68.0 목포 61.5
전북
장수 128.5 남원 99.0 임실 93.0 전주 81.0 정읍 70.5 부안 69.0
충청
추풍령 161.0 보은 112.5 금산 95.0 충주 84.1 대전 83.0 제천 76.0 청주 67.6 천안 54.5
강원
대관령 397.0 강릉 308.0 태백 209.5 속초 207.2 동해 205.0 영월 77.5 원주 60.5 홍천 52.5 인제 52.0

최저해면기압(hPa)
제주
성산 954.4 서귀포 964.9 고산 970.5 제주 974.0
경남 서부
통영 954.0 남해 956.1 진주 960.9 합천 968.3 산청 975.6 거창 976.7
경남 동부
창원 959.0 거제 961.6 밀양 965.5 부산 977.8 울산 978.6
경북 서부
대구 967.5 의성 974.0 안동 976.1 영주 979.2 상주 979.3 문경 982.9
경북 동부
영천 971.9 울진 974.0 포항 974.7 영덕 975.8 울릉 976.4
전남
여수 956.5 고흥 971.7 완도 980.0 순천 980.3 장흥 980.6 해남 983.6 진도(첨찰산) 984.9 광주 986.0 목포 987.8 흑산도 993.0
전북
남원 982.2 장수 982.7 임실 985.9 전주 989.7 정읍 991.6 군산 992.6 부안 992.8
충남
금산 988.2 대전 990.4 부여 993.1 천안 994.4 보령 995.0 서산 996.6
충북
추풍령 981.1 보은 985.0 제천 987.6 충주 989.3 청주 991.1
강원 내륙 평지
영월 985.6 원주 991.9 인제 995.3 홍천 995.4 춘천 995.7 철원 998.5
강원 동해안/산지
태백 979.1 동해 982.6 대관령 987.5 강릉 988.8 속초 994.7
경기
이천 993.7 양평 994.9 수원 996.2 서울 997.0 인천 997.4 동두천 997.7 파주 998.6 강화 998.8
신기한 점은 태풍 경로의 왼쪽에 위치한 제주와 고산 두 곳에서 60.0 m/s가 기록된 반면 똑같이 태풍 경로의 왼쪽에 위치한 일부 중부 내륙(서울, 파주, 원주, 홍천)에서는 10m/s를 밑돌았다. 또한 강수량도 집중호우가 내린 동해안과 달리 수도권, 강원 영서 중서부(철원, 춘천), 충남 서부(서산, 보령, 부여), 전북 북서부(군산)에서는 50mm도 기록되지 않았다.[26]


5. 피해[편집]


남해안 상륙-동해안 탈출이라는 강원 동해안 및 전남 남해안, 영남 지역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로를 그리며 올라온 전형적인 경우다. 태풍 전방의 동풍이 부는 지역에 백두대간이 떡 막고 있으면서 비구름이 산맥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대량의 집중호우가 내린 것. 특히 바로 전년도에 비슷한 경로를 그린 루사에 이어서 매미를 얻어맞은 강원 영동 지방 역시 피해를 입었다.[27] 바로 1년전에 찾아와 엄청난 비를 뿌리고 간 루사 피해를 채 복구도 하지 못한 동해안 지역의 인적, 물적 피해가 매우 막심했다.

역대 1위의 기록적인 바람과 루사만큼은 아니지만 시간당 80mm, 누적 300mm가 넘는 폭우로 특히 200mm 넘는 비가 내린 여수와 진주는 시가지가 침수되었다. 이곳에서 오래 산 노인들에게 물으면 최악의 태풍으로 사라호와 매미를 손에 꼽을 정도. 특히 다른 태풍들과 달리 태풍 이름이 순우리말 이름이다 보니 더 기억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침수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아파트 고층에 살던 사람들도 수재를 겪었는데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왔던 나머지 빗물이 창틀에 스며들다 못해 넘쳐나서 집안으로 흘러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심지어 유리창이 수압에 깨진 집들도 많이 나왔다.

반대로 수도권에서는 매미의 영향이 거의 없어 루사보다는 기억하는 사람이 적다.[28]


5.1. 인명 피해[편집]



5.1.1. 9월 12일[편집]


  • 오전 6시 포항 남구 구룡포읍 성동 2리에서 성영난(58.여)씨가 마을 앞 논에 설치해둔 양수기를 둘러보다가 실종되었다.

  • 오후 2시 40분 제주도 서귀포항에서 부산선적 모래운반선 금용비 3002호(570t) 선원 김명구(58.부산시 해운대구 반송1동)씨가 요동치는 배를 고정시키려다 밧줄에 다리가 절단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졌다.

  • 같은 시간, 제주도 연동에서는 안옥수(73.여)씨가 맨홀 실족으로 사망했다.

  • 오후 동래구 안락동에서 한미웅(61)씨가 집이 정전되자 수리하려다 감전돼 숨졌다.

  • 또 강서구 녹산동에서는 해일로 인해 2급 지체장애인인 황성광(34)씨의 집이 파도에 휩쓸리면서 황씨가 실종됐다.

  • 8시 10분경에는 여수시 소라면 현천 저수지 부근에서 대우 티코 차량이 물에 떠밀려 저수지에 잠겨 119 신고를 했으나 통신 연결이 되지 않아 동승자 강모(여.75)씨가 소방서까지 뛰어와 신고해 구사일생으로 운전자 강모(여.68)를 구할 수 있었다.

  • 오후 8시 30분 고흥군 포두면 오치마을 앞 선착장에서 강한 비바람 속에 어선 결박 작업을 하던 이영운(51), 정철호(52)씨가 실종됐다.

  • 오후 8시 55분 거제시 옥포2동 제일교회의 벽돌이 무너지면서 인근 신용상(51)씨의 집을 덮쳐 신씨 등 일가족 4명이 일부 매몰돼 부상을 입었다.

  • 오후 9시 진해시 용원동 우창수(46)씨가 살던 3층 조립식 건물이 초속 30m이상의 강한 바람에 건물의 절반가량이 뜯겨 날아가면서 장롱이 우씨를 덮쳐 우씨가 질식사했다.

  • 오후 9시 여수시 오림동 공용버스터미널 앞에서 불어난 맨홀에 60대 가량의 남자가 빠져 실종됐다.

  • 오후 9시20분 경남 통영시 도남동 ㈜신아조선에서 건조 중이던 4만5천t급 원유운반 탱크선이 태풍 '매미'의 강한 바람에 닻이 끊기면서 표류하다가 통영선적 멸치잡이 어선 범양호(27t.선장 김대봉.63)와 충돌해 범양호가 침몰하면서 선장 김씨와 선원 정성문(56.통영시 산양읍)씨 등 2명이 실종됐다.

  • 오후 9시 25분, 통영시 한산면 용호리에서 오문관(63)씨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었다.

  • 오후 9시 30분 부산 남항에 피항했던 어선 82경진호(88t)가 묶어놓은 밧줄이 풀려 표류하던 유조선에 부딪쳐 침몰해 선장 김진식(55)씨와 갑판장 고광태(43)씨, 조리장 이용군(51)씨 등 3명이 실종됐다.

  • 오후 10시 거제시 장승포동 조줄이(86)씨의 집이 무너져 조씨와 처 이영아(여.85)씨가 매몰돼 구조됐으나 조씨는 구조된 지 1시간여만에 숨졌다.#

  • 오후 10시 10분 진해시 속천항에 정박 중이던 부산선적 제성호 98호에 타고 있던 신원미상의 남자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

  • 오후 10시 15분, 사상구 감전1동 한재석(50)씨 집에서 한씨가 LP가스통을 치우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강풍에 휩쓸려 추락해 숨졌다.

  • 오후 10시 20분, 사하구 다대1동에서 서용석(43)씨가 감전사했다.

  • 비슷한 시각, 부산시 건설안전시험사업소 직원 권영기(43)씨는 비상소집연락을 받고 부산으로 오던 중 88고속도로 합천터널 부근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1

  • 오전 10시 25분, 강서구 신호동 해안 주택가에는 해일이 덮쳐 현성술(90)씨와 부인 이분선(여.66)씨가 실종됐다가 13일 오후 인근 해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1

  • 오후 10시 30분, 연제구 연산9동에서는 김미숙(46.여)씨가 주택 2층 옥상 가건물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붙잡고 있다가 1층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 오후 10시 40분, 경남 창녕군 신전 저수지에서 뉴 EF 쏘나타 택시가 저수지 주변에서 태풍에 휩쓸려 저수지로 추락해 마을 주민 이모(남.35)씨와 이씨의 9살 딸, 조카, 그리고 택시 운전사 성모(남.51)씨가 14일 오후 6시 10분쯤 택시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오후 10시 55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우판암(70)씨 집 등 가옥 6채가 완파되면서 우씨가 사망하고 우씨의 처와 아들, 이웃 박이동씨 부부가 매몰됐다.

  • 오후 11시,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도성암 요사채가 호우로 유실되면서 신도 신현숙(65.여)씨와 김춘현(50.여.대구시 동구 불로동) 등 2명이 실종됐다.

  • 오후 11시 마산시 진동면 요장리 최모(47)씨 집에서 추석을 쇠러 온 조카 최혜지(10.거제시 신현읍)양이 높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숨진채 발견됐다.#

  • 오후 11시 05분, 창원시 귀산동 석교마을 김봉기(82)씨 집에 해일이 덮쳐 김씨 부부가 실종되기도 했다.

  • 오후 11시 10분, 마산시 진동면 요장리에서는 최은영(여.80)씨가 실종되고 김기임(여.8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 오후 11시 20분 진주시 옥봉동 기아자동차 앞 도로에서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전신주에 감전돼 숨졌다.

  • 같은 시각, 전남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유호연(77)씨의 단독주택이 무너져 내린 산비탈 흙에 매몰돼 부인 박인심(74.여)씨가 숨지고 유씨 등 가족 3명이 부상을 입었다.

  • 오후 11시 25분 여수시 안산동에서 산사태가 나 김강현(42)씨의 집을 덮쳤다. 이 사고로 김씨의 부인 최정호(여.40)와 아들 김승택(남.5), 딸 김은지(여.5)양 등 일가족 3명이 흙더미에 매몰돼 119가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4시간만에 모두 숨진 채 발견되었다. 거실 뒷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장모 정옥기(여.63)씨는 토사가 무릎까지만 차고 올라와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김강현씨는 뒷산 상황을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1 한편 여수소방서장은 일가족이 매몰되었다는 신고를 받고도 퇴근은 했다고 밝혀져 빈축을 샀다.#2

  • 오후 11시 55분 쯤 50대 남자가 불어난 대구 신천 급류에 휘말려 숨진 채 발견됐다.


5.1.2. 9월 13일[편집]


  • 오전 0시 50분께 대구시 남구 봉덕동 중동교 아래 신천에서 50~60대 남자가 물에 빠져 숨져있는 것을 행인 김모(3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1

  • 태백시 철암동 철암천이 오전 1시께 범람하며 상당수의 주택이 침수되고 철암동 진출입로인 남동교와 백산역 앞 무명교가 물에 잠겨 주민 3천여명이 고립됐다.#

  • 오전 1시께는 영덕군 영해면 대진2리 야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가 최득로(34)씨 집을 덮쳐 최씨가 토사에 매몰돼 숨지고 최씨의 동생 득필(31)씨, 이모 김미영(여.60)씨 등 2명이 부상당했다.

  • 오전 1시 10분께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 비례동 장수복(73)씨 집 뒷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흙더미가 장씨의 집을 덮쳤다. 이 사고로 장씨의 손자 은우(11)군이 토사에 매몰돼 숨졌고 아들 영철(45)씨 등 일가족 21명이 중경상을 입고 울진의료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 오전 1시 20분께는 군위군 부계면 남산1리 신동식(54)씨 집 뒷산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해 신씨의 부인 이난희(여.49)씨가 토사에 매몰돼 숨졌다.#1

  • 오전 2시께 삼척시 원덕읍 노곡2리에서 산사태가 나 권태명(98)씨 집을 덮쳐 권씨가 매몰돼 숨졌다.

  • 오전 2시께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 다전마을 이기환(67)씨 집 등 9채가 산사태로 매몰되면서 이씨와 부인 김영순(여.65)씨 등 2명이 실종되고 김모(67.여) 등 3명이 부상당했다.

  • 오전 2시 50분께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원심곡마을 앞 도로에서 무쏘 승용차(운전자 박희오.60)가 갑자기 불어난 급류에 고립되자 함께 타고 있었던 박씨의 형수 최순자(59.여.)씨가 차문을 열고 탈출하려다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 갔다. 박씨와 함께 타고 있었던 박씨의 부인과 형은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에 의해 구출돼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이들은 이날 고향에 성묘하러 왔다가 승용차편으로 되돌아가다 마을 앞 하천이 도로로 범람하면서 차량이 고립돼 이같은 사고를 당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1#2

  • 오전 3시께 의령군 가례면 양성마을 계곡물이 불어 가옥 5채 가량이 유실되면서 주성추(73)씨와 처 조용봉(74)씨, 첫째 아들(49), 둘째 아들(47), 둘째 아들의 딸(18)등 일가족 5명이 사망했으며 이웃 김봉식(63)씨는 실종됐다.

  • 오전 3시 10분,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서는 산사태로 흙더미가 주택을 덮쳐 방동규씨 등 일가족 3명이 매몰됐다.

  • 오전 3시 30분께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음리 곽남순(65.여)씨 집이 불어난 물에 침수, 유실되면서 곽씨가 현풍천에 휩쓸려 숨졌다.

  • 오전 4시, 동해시에서 주택이 붕괴되어 동해 소방서 119 구조대가 주택 매몰 현장에서 6시간에 걸쳐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정화자(68)씨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 오전 6시께 강원도 삼척시 오분동 백경도(72)씨 집이 매몰되면서 잠을 자던 백씨와 손녀 자욱(16)양 등 2명이 숨졌다.

  • 오전 6시 40분, 정선군 임계면 애산리에 사는 68살 이재현씨와 93살 권재천 할머니가 침수된 가옥을 정리하다가 숨졌다.#

  • 13일 오전 7시까지 경남에서 사망, 실종자는 23명으로 집계되었다.보도 기사

  • 오전 12시 전국적으로 사망자가 30명, 실종자가 31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1

  • 오후 3시 10분께는 울진군 원남면 덕신 1리 임창식(34)씨 집 뒤편에서 임씨가 도랑을 치던 중 담이 무너지면서 임씨의 하반신이 토사에 묻혀 119구조대에 의해 구조돼 울진의료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으나 숨졌다.

  • 오후 4시까지 전국에서 103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사망자 명단


5.1.3. 9월 14일[편집]


  • 오전 6시 20분께, 마산시 해운프라자 엘리베이터에서 김광임(23.여)씨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 오전 6시 45분께, 경민시티빌 상가건물 지하 1층 노래방에서 김중봉(45)씨와 종업원 배병옥(여.38)씨 등 2명이 사체로 발견됐다.

  • 오전 11시 40분께 인근 두산2차아파트 207동 지하주차장에서 이 아파트에 사는 유희성(78)씨가 숨진채 발견돼 마산의료원으로 이송됐다.

  • 오후 10시까지 11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되었다.#


5.2. 부산광역시[편집]


파일:external/www.donga.com/0913_26.jpg

매미의 위력을 잘 보여준 부산항의 무너진 크레인들.[29] 다만 나중에 쓰러진 크레인들을 조사해 보니 부실 시공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긴 했다. 13년이 지난 2016년 9월에 배상이 확정되었다.

  • 매미로 인해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반산초등학교의 옥상 위에 임시로 설치해 둔 가건물 2층이 날아가면서 1, 2학년 아이들의 교실이 사라졌다... 결국 1, 2학년[30] 아이들은 건물이 증축될 때까지 운동장에서 수업하거나 오후 1시에 등교하여 다른 학년의 교실을 빌려 수업했다.

  • 광안리 수변공원에 매우 큰 바위덩어리들이 바닷속에서 밀려왔는데 그 중 하나를 태풍 매미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그대로 남겨두고 전시하고 있다.[31] 일명 '매미바위'. # 15년 뒤 태풍 콩레이가 왔을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이에 대해 시는 시민들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것은 치우고 나머지 3∼4개는 이 바위처럼 안내판을 붙여 관리하기로 했다. 태풍이 올 때 경고를 무시하고 함부로 해안에 접근했다가는 이런 바위에 맞아 죽거나 이런 바위도 뭍에 올릴 강한 파도에 떠내려가서 시신조차 못 찾을 수 있습니다라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일부러 남겨 두어 관리한다고.

  • 부산 해운대 선상 레스토랑이 좌초되었다.#

  • 부산 낙동강에 있는 다리 구포교의 일부 구간이 붕괴되어 사라졌다. # (2005~2008년 사이로 추정) 구포교는 다시는 복구되지 못했고[32] 2008년 완전히 철거되어 사라졌다. 한마디로 구포교에 사망선고를 내린 태풍이라고 볼 수 있다.


  • 영도구에서는 조선 시대 송덕비가 바다로 떠내려가 유실됐다...가, 14년 만인 2017년 7윌 7일에 바닷가에서 천막을 치고 장사하던 상인에 의해 발견되어 되찾을 수 있었다.#

  • 수영구 남천동을 지나던 부산 남부소방서 소방차가 강풍에 쓰러진 크레인에 맞아 운전하던 전영환 소방교 등 소방관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운전석 앞부분이 뜯겨져 나갈 정도로 충격이 컸으며 이후 수차례의 접합 수술에 실패한 전영환 소방교는 복직 후 119상황실로 옮겨서 이후에도 근무 중이다.


5.3. 대구광역시[편집]


  • 수성구는 물고기를 닮은 대형 수석[33]을 신천 가운데 전시했는데 이 바위는 태풍으로 인해 불어난 물 때문에 북구 칠성동까지 떠내려 가기도 했다.

  • 또 대구에 많이 심어졌던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가 강풍에 모조리 넘어지거나 쓰러져 버리는 등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이는 이 나무가 뿌리가 얕고 바람에 약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북대계명대의 개잎갈나무는 전멸했고 동대구로의 상징인 개잎갈나무 가로수는 복구하니 마니 갑론을박이 일었다가 강전정된 채 지지대에 의존하고 있다.

  • 신천 고수부지 축대도 곳곳에 피해를 입어 재정비를 해야만 했다.

  • 달성군 소재 달성공단에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고 산사태 등으로 인해 공장들이 매몰되는 등의 피해가(천장까지 토사가 차오름) 있었다. 인근 군부대들이 총 출동 하여 약 한 달간 대민피해복구를 실시하였다.

  • 북구 소재 대구시민운동장[34]엔 예나 지금이나 꽤 큰 은행나무 가로수가 많은데 그 나무가지가 부러져 도로에 널려 있었다고 한다.

  • 대구 계명대학교 대명 캠퍼스 내의 소나무들도 여러 그루 쓰러졌다.

  • 2003년대구 도시철도 2호선이 아직 개통되지 않은 시절,[35] 대구 본시가지에서 시지지구로 가려면 예나 지금이나 무조건 담티고개를 넘어야 하는데[36] 당시 시지지구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만촌동에서 담티고개를 넘어가는 게 그리도 고역이었다고 한다.[37]

5.4. 경상남도[편집]



5.4.1. 거제시[편집]


거제시로 들어오는 송전탑이 죄다 쓰러지며 거제 전역에 4일간 정전이 일어났다. 삼성, 대우 두 곳의 조선소도 크레인이 쓰러지는 등 개판이 된 것은 덤. 장승포와 옥포, 지세포는 방파제를 넘어 해일이 덮쳐 해안가의 주거지와 상가를 쓸어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는 바닷물이 마구 들어와 자동차들이 죄다 침수되기도 했다. #


5.4.2. 마산시[편집]


"내 육십 평생 살다가 육지에서 배에 치여서 입원해보긴 처음이다."

날아온 배에 충돌해 입원한 어느 어부의 인터뷰[38]


이 거대한 태풍의 강력한 풍속과 낮은 기압은 마산시[마] 해안가에 궤멸적인 상처를 남겼다. 기압 때문에 부풀어오른 바닷물이 만조와 강풍이 겹쳐 5m짜리 거대 해일을 몰고 왔던 것. 해일은 부두를 넘어 해안가에 있는 아파트단지와 상가의 지하주차장들을 휩쓸었다. 바닷가에 붙어 있는 아파트는 2층까지 물이 차올랐으며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경남대 앞 댓거리는 부두로부터 1.2km나 떨어진 내륙인 곳이었다. 이 곳은 100년 전까지 바다였으며 일제강점기부터 차츰차츰 매립하던 곳이었다. 옛 어른들은 정확히 매립 전 해안선까지 물이 들어온 것이라고 증언했는데 정말로 그랬다. 자세한 내용은 마산시 문서를 보자.

파일:2003매미 마산만 매립선.png

마산은 이 해일 때문에 수십명의 희생자를 내는 등 당시 가장 처참하게 박살났던 도시다. 심지어 이후 마산(현 마산합포구)에서는 20세기 중반에 퇴출된 터돋움집이 21세기에 부활했고 서항부두 인근에는 당시의 피해와 사망자를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파일:external/sports.chosun.com/39o06005.jpg

당시 강풍의 습격으로 파괴된 마산 야구장 조명탑.[39] 이 때문에 원래 마산에서 치를 예정이었던 9월 16~17일 롯데와 한화의 경기는 급하게 사직으로 옮겨서 치렀다고 한다. 이외에도 해안가 쪽 아파트들은 대부분 전면부 통유리가 파손되었는데 강풍대가 지나간 시간은 밤 9시부터 11시경까지 고작 2시간에 불과했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고작 2시간만에 도시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이다.

대우백화점(현 롯데백화점 마산점)도 태풍으로 인한 침수로 인해 지하매장이 물에 잠겨 운영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한동안 지상매장만 운영하다가 이후 다시 복구되어 운영 중이다.

전기는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복구되었지만 식수는 거의 하루동안 복구되지 않았고 심한 곳은 사흘 뒤에야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배수펌프나 인프라 등도 전부 침수되어 버렸기 때문. 이 기간 동안 댓거리 지역 주민들은 도시 한가운데의 사막을 경험하였다.

원래 갯벌이었던 곳을 매립하여 만든 마산자유무역지역(구 수출자유지역)도 큰 피해를 봤다. 대부분의 공장 및 사무실 건물 1층이 물에 잠겼고 물류창고 또한 파도에 휩쓸렸다. 당시 자유무역지역에 당직으로 근무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파도가 밀려와서 도망치려 했는데, 다리가 물에 잠겨서 이동할 수 없었다. 결국 가장 튼튼한 건물이었던 ○○회사 옥상에 주변회사 당직 근무자들이 모두 모여서 가족들에게 전화하기에 바빴다. 3시간쯤 있으니까 물이 빠졌는데, 바닥에 하얀 벽돌 같은게 굴러다니더라, 내려와서 자세히 보니 휴대폰들이었다."[40]

라고 한다. 당시 마산자유무역지역 당직 근무자들은 그 비싼 노키아 휴대폰이 박스포장 그대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이 매우 기억에 남는다고..[41][42]IMF를 견뎌낸 수많은 경영인들이 회사를 지키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분투를 벌였고 테이프로 사무실 문을 밀봉하고 모래주머니나 고무타이어 등을 쌓아 임시 방파제를 꾸리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건물 2~3층 높이까지 차오르는 파도 앞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기계 부품 공장을 경영하던 한 경영인은

"테이프로 유리문 틈틈을 막아 사무실을 밀봉하고 당직근무자들에게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일단 차를타고 다리를 건너 집으로 가고있는데, 회사를 나온지 20여분 정도도 되지 않아서 전화 한통이 왔다. 회사에 물이 차고 있다는 당직근무자의 연락이었다. 일단 회사를 빠져나오라고 했는데, 20분 그사이에 다리가 물에 잠겨서 나갈수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밖이 더 위험하니 일단 회사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이동할 준비를 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또 20분쯤 있다 전화가 왔는데, 책상 높이까지 물이 차서 컴퓨터가 다 죽었는데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 만만한 태풍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일단 다 포기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라고 얘기했다. 다음 날 한 차례의 파동이 지나가고 공장으로 바로 달려갔다. 군경이 정문다리를 통제하고 있어서 후문으로 갔는데, 이쪽은 소방관들이 통제하고 있더라. 3시간쯤 있으니 통제가 풀려서 회사에 들어갔는데 바닥에 노키아 전화기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공장에 들어가니 먼저 온 다른 직원들이 50cm 가까이 쌓인 모래들을 삽으로 퍼내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물에 홀딱 젖어 녹초가 된 당직근무자가 앉아있었고, 가서 괜찮냐고 말을 걸었다. 그 근무자는 "막연히 안전한 곳이라고 하면 어카요! 안전한 곳이 어딘지 알려줘야지!"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며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노키아 (노키아 TMC) 언급은 당시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있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공통으로 증언하는 부분이다. 인상적이긴 인상적이었던 모양.

당시 마산의 궤멸적인 피해로 인해 군부대에서는 마산을 고향으로 하는 병사에게 특별 휴가를 보내주는 등 전국적으로 피해 복구에 힘썼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방문 시 특전사들이 당일 멋있게 현장 복구하러 오고 기존에 죽어라 일하던 군인들은 숨으라고 하여 예비군 동대장 중 일부가 이 군인들을 동원해 아는 지하주점을 치우게 했다는 게 당시 복구작업을 한 군인의 증언이다. 다만 복구작업에 투입되었던 다릉 39사단[43] 출신 군인은 "그 때는 거의 24시간 가까이 투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특전사가 교대해줘서 굉장히 반가웠다. 그 때 겨우 쪽잠을 잘 수 있었고 나중에 시신들도 특전사 아저씨들이 건졌다."고 증언했다.

하필 추석 연휴에 태풍이 겹쳤던 터라 마산에 귀성한 많은 사람들이 차례는커녕 수해 복구에 힘을 썼다.

마산 인근 진해시(현 창원시 진해구)도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때 진해기지사령부에서 태풍경보를 내려 대부분의 함정들은 파도가 잔잔한 수역으로 피항을 갔지만 사람 팔뚝만한 강철로 만든 쇠사슬인 닻줄이 파도를 버티지 못하고 끊어져 하마터면 침몰할 뻔한 함정들도 있었고[44] 해군기지 부둣가는 마산처럼 해일로 인해 2층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면서 대부분의 시설물이 유실되었고 쑥밭이 되었다. 진기사 내에 위치한 해군사관학교도 수십년간 사용하던 출입로가 이때 붕괴되어 한동안 생도 및 교직원들이 출입에 불편을 겪어야 했으며[45] 모 해군부대는 10월에 예정된 훈련을 취소하고 복구작업만 하다 보니 다음 해인 2004년으로 해가 바뀌었다는 경험도 있을 정도. 이는 인근 다른 부대들도 마찬가지여서 39보병사단 예하 연대도 2003년 가을은 대부분 대민지원에 투입되었다.

마산시 차량의 6%가 침수피해를 입었다. 마산시는 2003년 9월 24일 "해일이 몰아치면서 침수된 차량은 모두 8,061대로 전체 등록 130,753대의 6.2%를 차지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고 밝혔다. 매립지를 중심으로 침수 피해가 컸으며 월영동이 3,255대(40.4%)로 가장 많았고 동서동이 962대(11.9%)이며 진동면 555대(6.9%), 합포동 527대(6.5%), 산호동 503대(6.2%), 봉암동과 양덕2동, 오동동이 300∼400대선, 반월동과 문화동, 구산면, 진전면이 100∼200대 선이었다.#

마산 해운프라자 침수 사고도 발생하였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산 해운프라자 침수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6.1. 노무현의 뮤지컬 관람[편집]


한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강력한 태풍이 북상하던 9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 행사 일정으로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논란이 되었고 이에 대해 사과하였다. #

6.2. 최낙정의 옹호 및 해임[편집]


이에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은 '대통령이 뮤지컬을 볼 수도 있는것 아니냐? 태풍이 북상하면 그 대비를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해야 하냐?'는 취지로 노무현 대통령을 감쌌다. # 이에 고건 국무총리가 나서서 해임건의를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최낙정 장관을 해임했다. #


7. 결과 및 여담[편집]


공식 피해 집계에 따르면 사망·실종자가 132명, 재산 피해는 4조 2천억여에 달하며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수많은 지역이 정전 피해를 입었다. 2003년 이전에 심은 가로수들은 이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기울어진 뒤 강전정을 당해 볼품없게 변해 버렸다.

2000년대 연이어 발생하던 참혹한 태풍 피해로 인해 부작용도 생겼는데 곤파스 같이 수도권을 관통하거나 매미에 비견될 만큼 강력한 태풍이 아니면 전국권 뉴스 속보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 공화국 문서 참조.

당연하지만 매미는 이 피해 때문에 제명되어 무지개로 대체되었고 무지개도 2015년 중국에 끼친 피해로 제명되어 수리개로 대체되었다.[46]

사라, 루사와 함께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평가된다. 매미 이후 볼라벤, 산바, 차바, 링링, 콩레이, 마이삭, 하이선, 그리고 2022년의 힌남노까지 최전성기 기준으로는 매미에 필적하거나 더 강력한 태풍들이 한반도를 지속적으로 내습했지만 급격한 약화, 경로 변화 등의 이유로 인해 매미의 위력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북한은 9월 15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태풍 '매미'가 몰고온 강풍과 폭우로 남조선 여러 지역에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고 간략하게 보도했다. 이어 9월 20일에는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장재언 명의로 조의전통문을 발송했다.

이번에 귀측의 여러 지역에서 심한 태풍으로 인하여 많은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하여 동족으로서 가슴아프게 생각하며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시하는 바이다. 우리는 피해지역들에서 하루 빨리 수재민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재난의 후과(결과)를 가시게 되기를 기대한다.


8. 관련 자료[편집]



8.1. 영상[편집]






태풍 전문 촬영기사 제프 맥클리(Geoff Mackley) 일행이 찍은 태풍 매미가 강타했을 당시의 사천읍내의 모습.[* 태풍 매미가 강타했던 사천시 인근의 도시인 남해군의 순간풍속은 37.2m/s에 달했다. 이를 보아 사천시의 순간풍속은 대략 35m/s 전후로 추정할 수 있다.(태풍 매미 강타 당시 사천시에는 풍속계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풍속 정보는 알 수 없다.)]





태풍 매미 자연의 역습(KNN[47], 2003년)





2003년 초강력 태풍 '매미' 경남에 상륙하다!(KBS 창원, 2020년)
우리나라를 휩쓴 역대 최고의 태풍들(KBS 부산, 2021)



역대 가장 강한 바람 '태풍 매미'가 남긴 상처(MBC 강원영동, 2020년)



태풍 매미가 지나간 후 마린시티 한화리조트 주변 참상



태풍 매미가 강타했을 때 여수시의 모습.
태풍 매미가 강타했던 여수의 순간풍속은 49.2m/s에 달했다.

[MBC 뉴스데스크]2003.09.12
[MBC 뉴스데스크]2003.09.13
[MBC 뉴스데스크]2003.09.14


8.2. 사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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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신감만항터미널의 대형 크레인 6대가 붕괴된 모습#


파일:매미(태풍)_부산_해상호텔.jpg

[부산 해운대구] 해상관광호텔이 전복되어 있다.


파일:매미(태풍)_부산_송도.jpg

[부산 송도] 테트라포트가 해안가 도로 위로 올라온 모습[48]


파일:매미(태풍)_마산_마산보건소1.jpg


파일:매미(태풍)_마산_마산보건소2.jpg

[마산] 해일에 마산서항에 적재된 통나무가 떠내려온 모습(마산보건소 인근)


파일:매미(태풍)_마산_해운프라자.jpg

[마산] 당시 큰 인명피해를 가져온 통나무를 해운프라자 앞에서 소방대원과 봉사자들이 정리하고 있다.


파일:매미(태풍)_마산_해운동 아파트.jpg

[마산] 해운동의 한 아파트. 당시 마산시 차량의 6%인 8,061대가 침수되었다.#


파일:매미(태풍)_거제_택시.jpg

[거제] 해일으로 택시와 집들이 휩쓸려 누더기가 됐다.#



9. 매미성[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매미성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태풍 매미 때문에 만들어진 제방 시설이라 매미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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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은 3명 사망.[2] 사실상 루사는 피해가 심했지 상륙 당시 세력은 매미보다 훨씬 약했고 다른 태풍을 봐도 비슷한 수준의 세력으로 상륙했다.[3] 매미의 진로도. 최전성기 세력의 상당수를 남해 연안까지 유지하면서 한반도를 강타했기 때문에 더욱 피해가 컸다.[4] 사진에 보이다시피 스치기만 했는데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준 매미의 위력을 볼 수 있다.[5] 규슈, 시코쿠, 주고쿠, 홋카이도[6] 타이베이시, 신베이시, 지룽시[JTWC] [JMA] [7] 2023년 1월 기준으로 화폐 가치를 다시 계산해 보면 6조 5955억 4500만 원이라는 수치가 나온다.[8] 이후 부실 시공이라는 것이 밝혀졌다.[9] 전날 오키나와를 통과했을 때는 74.1m/s였다고 한다. 심지어 제주도는 태풍의 진로 왼쪽인 가항반원에 있었음에도 이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10] 매미가 오기 전 흑산도에 58.3m/s으로 관측되었고 이때까진 관측 사상 최대 기록이었다. 당시 이름은 프라피룬이었으나 외래어 표기법 개정으로 인해 현재는 쁘라삐룬으로 고쳐졌다가 다시 환원되었다.[11] 태풍의 진행 경로 왼쪽인 안전 반원은 진행 방향과 풍향이 서로 반대라서 풍속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관측된다.[12] 다만 진로상 위험 반원에 든 곳이 있었다. 바로 부울경 지역.[13] 하지만 태풍 루사와 매미가 너무 압도적으로 강해서인지 태풍 메기, 나비, 에위니아, 나리는 언급이 잘 안 되며 그럭저럭인 수준으로 인식되어 있고 한국 기상청이 제명시키지 않았다. 나비의 경우 주 영향은 일본이며 이슬람교 때문에 제명되었다.[14] 매미는 북한, 메기와 나비는 대한민국에서 제출한 태풍명이다. 대한민국에서 나비를 대체하여 제출한 태풍명은 독수리.[15] 북위 23.8도대만과 동위도였다.[16] 상륙 6시간의 시각이다.[17] 당시 세력은 중심기압 935hPa, 10분 평균 풍속 46m/s(90kn), 1분 평균 풍속 54m/s(105kn)에 달하는 매우 강력한 태풍이었다.[가] A B 기상청 태풍 찾아보기 과거 태풍 자료다.# 아직 수정되지 않은 볼라벤 사례가 있어 참고로 봐야한다.# 병행해서 같이 보면 좋을 일본 기상청의 태풍 매미 사후해석 PDF 파일 자료[18] 다만 당시 제주도 앞바다까지 28도~29도의 고수온인 태풍에 유리한 조건이라서 약화가 매우 더디었고 북위 30도를 넘을 당시에도 930hPa 세력으로 지나갔으며 심지어 재발달까지 보인 미친 태풍이었다.[19] 이때가 중심기압 935hPa, SSHS 3등급이었다.[20] 참고로 SSHS 기준 3등급의 태풍이 96노트인데 사실상 카테고리 3등급에 준하는 세력으로 상륙했다.[21] 이때도 970hPa를 유지하는 괴물 태풍이었다. 970hPa는 평상시 대한민국에 오는 태풍 세기랑 비슷하다.[22] 당시 순간최대풍속 1위였으며 현재도 태풍 기록으로는 역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날씨폭탄으로 인하여 현재는 역대 2위이다. 하지만 당시 풍속계 상한이 60.0 m/s였기에 실제로는 더 강했을 가능성이 높다.[23] 10분 평균 풍속[24] 태풍에 의한 최대풍속 역대 1위다. 제주 고산 최대풍속 실측치를 만약 일본 기상청이 반영했다면 우리나라 남해상에서 10분 평균 풍속 100kn(51m/s)가 나왔을지도 모른다.[25] 9월 11일~13일 누적[26] 단 제주도 근처를 지나갈 때는 중심기압 940hPa로 지나갔고 대한민국에 상륙한 뒤 수도권이 왼쪽에 위치해 있을 때 중심기압 970hPa로 세력이 약해졌음을 감안해야 한다.[27] 사실 영동 동해안은 어지간한 비가 와도 물이 바로 바다로 빠져나가는 지형 특성으로 인해 홍수 피해가 잘 나지 않는 지역이다. 그러나 매미 때는 어지간하지 않은 너무나 많은 비를 뿌리는 바람에 강릉, 동해, 삼척 등지가 모두 홍수 피해를 입었다.[28] 수도권 사람들은 루사, 매미보다도 곤파스를 더 잘 기억할 것이다.[29] 심지어 부산 바로 윗 도시인 울산에서는 건조 중이던 수천톤급 배가 바람에 의해 떠밀려가 다른 배를 들이받는 사고도 있었다.[30] 당시 1995~1996년생[31] 안내 표지를 보면 알겠지만 이 바위가 날아왔을 때 풍속도 무려 41m/s라고 한다. 시속으로 환산하면 147.6km/h이다.[32] 이미 바로 옆에 구포대교가 실질적으로 구포교를 대체하던 상황이라 복구의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33] 시가 10억은 된다고 한다.[34]DGB대구은행파크[35] 대구 도시철도 2호선은 매미가 지나간 지 2년 뒤인 2005년에 완공 및 개통되었다.[36] 고모역 쪽으로 도는 고모로도 있다. 다만 2003년에는 지금과 달리 조악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였다.[37] 게다가 이 해 2월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로 인해 도시철도 이용도 매우 불편했다.(교대~동대구 구간이 운행중지 상태였다.)[38] 이 경우는 그래도 목숨은 건졌지만 매미 내습 당시 경상남도 남해군에서는 바지선이 해안도로를 덮치는 바람에 도로를 지나가던 승용차의 운전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마] [39] 참고로 이 조명탑은 마산시에서 야구장 만들 때 지어진 게 아니라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 롯데그룹에서 지어준 것이었다.[40] 당시 노키아가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입주해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노키아 TMC 참조. 노키아 창고가 파도에 휩쓸리면서 떠내려온 물품들이다.[41] 대다수가 GSM&EDGE를 사용하는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들이었으니...[42] 당시 텔슨전자가 하청한 제품들만 CDMAOne과 CDMA2000 1xRTT였다. 문제는 1년 뒤에 부도났지만.. 8년 뒤에야 WIPI 의무탑재가 폐지되고 GSM을 기반으로 하는 3세대 이동통신 규격인 WCDMA가 도입되면서 대한민국에서도 출시될 수 있었다.[43] 당시에는 창원에 주둔하고 있었다.[44] PCC급이 사용하던 앵커체인이 끊어져 난리가 났다고 한다. 다행히 해군은 태풍이 오는 날이면 전투배치에 준하는 비상당직자를 배치하기에 바로 엔진을 켜고 외해로 항해해 사고는 없었다. 이후 PCC급은 태풍으로 인한 피항 시 쇳줄인 앵커체인에 더해 장력을 분산해 주는 나일론 홋줄을 하나 더 다는것으로 규정이 강화되었다.[45] 대한민국 해군이 UDT/SEAL 모병을 위해 만든 영화 해마(영화, 1995)에서 구 도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0:00분 경 훈련생들이 IBS 구보를 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이후 무너진 부분에서 내륙 쪽으로 좀 더 들어간 위치에 왕복 4차선 도로를 새로 뚫었다. 해군사관학교 방문 행사, 군항제 등 해군 부대개방 행사에서 개방되는 도로가 여기다.[46] 그러나 수리개도 최저기압이 800대로 떨어졌을 만큼 만만치 않았으나 육지나 섬엔 상륙하지 않고 영향을 받은 필리핀도 가항 반원이라 피해는 적었다.[47] 방영 당시엔 PSB였다. KNN으로 바뀐 시기는 2006년 중반이다.[48] 현재 촬영지 좌측은 매립으로 송도 오션파크가 들어섰고, 우측은 송도풍림아이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옛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