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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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작가
올더스 헉슬리
국가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형식
영미소설, 장편소설
장르
디스토피아, SF, 판타지
언어
영어
출판일
1932년 (영국)
출판사
Chatto & Windus (영국)
쪽수
311쪽 (원서 기준)
글자 수
63,766자 (원서 기준)

1. 개요
2. 배경 및 줄거리
3. 등장인물
3.1. 버나드 마르크스[1][2]
3.2. 헬름홀츠 왓슨
3.3. 레니나 크라운
3.4. 존
3.5. 린다
3.6. 토마스
3.7. 헨리 포스터
3.8. 패니 크라운
3.9. 무스타파 몬드
3.10. 야만인들
3.11. 섬 사람들
4. 명대사
5. 미디어화
6. 1984와의 비교



1. 개요[편집]


"아. 이 멋진 인간들이여!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들인가! 오, 멋진 신세계여..."

ー 야만인 존, 윌리엄 셰익스피어템페스트를 인용하며[3]


올더스 헉슬리1932년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1984우리들과 함께 디스토피아 소설의 3대 고전이다. 과학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체주의 하에 통제된 세속적 인본주의라 볼 수 있다. 소설상 시간은 A.F. 632년인데(After Ford)[4][5] 헉슬리는 과학의 발전의 역사를 보자면 약 600년 후 미래는 "멋진 신세계"와 같은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낸 연도다. 작품에 묘사된 디스토피아에 훨씬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현대 사회 덕분에 예언서쯤의 고전문학이 되면서 SF소설의 바이블에 올랐다.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로 분류되면서도 두 소설이 그리는 디스토피아가 현격하게 다르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닐 포스트먼에 따르면, 오웰이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공포와 기만이 지배하는 세계이며, 올더스 헉슬리가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욕망과 말초적인 자극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오웰이 책을 금지할 자들을 두려워했다면, 올더스 헉슬리는 아무도 책을 읽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책을 금지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을 두려워했다고 할 수 있겠다.[6] 더 간단히 말하자면, 오웰은 책을 읽지 못하는 세계를 경고했고, 헉슬리는 책을 읽지 않는 세계를 경고한 것. 1984와의 비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항목 참조.


2. 배경 및 줄거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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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쟁 이후[7] 거대한 세계정부가 들어서, 모든 인간은 인공 수정으로 태어나며 이를 통해 세계인구는 20억 명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은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그들의 지능에 따라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가 결정되어있다.[8] 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9]으로 나뉘는데, 대체적으로 알파 계급은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엘리트 계층, 베타 계급은 행정 업무를 맡는 중산층, 감마 계급은 하류층에 해당하며 델타나 엡실론 계급은 사실상 몇 가지 유전자 타입을 가지고 고의로 비정상적으로 작은 키, 추한 외모, 지적장애를 유발한 채 양산되어[10] 단순 노동을 담당한다. 2000년대 이후 현대인이 본다면 로봇이나 디지털화된 공정으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 정도도 모두 저능아 클론들이 하는 것을 보면[11] 소설 상의 세계에서 인간은 그저 사회의 부품일 뿐이다. 모든 인류는 태아 시절부터 조건반사와 수면 암시 교육으로[12] 자신의 계급에 맞는 세뇌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 그나마 그 세뇌라는 것도 완전하지가 않은 것이, 수면시 교육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면 애초부터 버나드나 헬름홀츠는 따돌림을 당해서 사회에 불만을 가질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작중에서도 "나는 엡실론 계급이 아니라서 행복하다"라고 세뇌받은 대로 되뇌이는 베타 계급 레니나의 발언에 알파 계급인 버나드가 "당신이 엡실론 계급으로 태어났다면 그 반대로 생각했겠지"라고 빈정거리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자의식 자체가 계급적 세뇌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긴 하다.

촉감 영화라고 하는, 포르노에서 촉감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오락 수단이 주요 여가 생활의 하나이며,[13] 모든 성애(性愛)는 기본적으로 자유롭다. 심지어 7살짜리 아이들이 성놀이를 통해 성을 학습하는데, 오늘날처럼 연애결혼을 통해서 정해진 파트너와만 섹스를 하는 것이나 섹스를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이 추잡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사상이 곧 진리이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 및 가정의 형성은 '사람을 독식하는 반인륜적 행위'로 여겨지는 것.

문명인에게는 소마라고 불리는 일종의 마약이 주어지는데, 이것을 복용하면 그야말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공장제 대량 생산의 고안자 헨리 포드를 신적 존재로 받들며 첫번째 포드 모델 T의 생산일을 A.F.(After Ford)라는 연도의 기준으로 삼는다. 작중에서는 '신'이란 말이 들어가는 격언에서 '신'만 '포드님'으로 바꿔서 쓰는[14]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위가 잘린 채 포드 모델 T를 상징하는 'T'자로 남아있다. 작중에서는 '크로스'가 들어가는 지명이 'T'로 바뀌어 등장한다.

태생부터 신체 조건을 조작해 신분을 만들고, 그 신분에 맞추어 직장을 배분하기 때문에 원하는 지위에 오르지 못해 좌절할 일이 없다. 하위계급이라 해서 딱히 학대나 착취를 당하지도 않고 소마도 따박따박 배급받으므로 아무런 불만이 없다. 작중 소마 배급에 잠시 차질이 생기자 분위기가 험악해진 상황이 딱 한 번 있었으나 그나마 소마 물대포 세례를 받고 모두가 행복해 한다. 모든 물자는 철저하게 통제되어 생산되고 배분된다. 모든 오락 수단은 자유롭게 즐길 수 있으며 결혼은 없어지고 모든 섹스는 자유롭다. 하지만 현대인이 생각하는 '연애'는 없어졌다. 밑의 등장인물 파트에서 자세히 서술.

그러나 이런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고, 세계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섬에 보내서 특정 사상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인 버나드 마르크스는 우연히 아직까지 이런 '문명 사회'가 정착하지 못한 야만인 거주 구역으로 갔다가 야만인 존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한직으로 추방하려는 국장의 시도를 물먹이기 위해, 국장이 임신을 시킨 뒤 야만인 거주 구역에 버린 여자와 그 여자의 아들을 국장 앞에 데려온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임신'이나 '출산', '어머니'나 '아버지' 등의 개념이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추잡하고 더러운 것이 되어 있다(아예 그런 단어만으로 아주 상스러운 음담패설 취급이다). 이 야만인 거주 구역은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를 보존해둔 지역이다. 작중 설명으로는 '굳이 비용을 들여 개척할 필요가 없어서 남겨둔 곳'이다. 존은 문명 사회에서는 이미 사라진 셰익스피어 등의 문학 작품을 읽어 왔었는데, 처음에는 아버지의 나라인 문명 사회를 동경하여 그들을 따라와 무스타파 몬드 총통과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존은 문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기가 원래 살던 곳의 방식으로 고행을 하면서 '문명인'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걸 견디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같이 따라온 야만인의 어머니 린다는 오랜만에 문명 세계로 돌아왔다는 기쁨과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비탄 등이 섞인 '위험한 감정'에 빠져(이 세계에서는 깊은 감정 그 자체를 위험 요소로 본다) 하루에 소마를 정량의 몇 배씩 과다 복용하며 몇 달간을 마약에 취해 누워 지내다가 그대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고는 영안실에 들어가 아이들의 '사회화'를 위한 교재가 되어 버리는데,[15] 여기서 받은 문화 충격이 존이 '문명 사회'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3. 등장인물[편집]




3.1. 버나드 마르크스[16][17][편집]


이 작품에서 '문명 세계의 주인공', '페이크 주인공' 위치의 인물이다. 계급은 알파 플러스 계급으로 최고 엘리트 다음가는 인물이며 그의 직장인 인공부화소[18]에서도 능력으로는 인정받지만, 계급에 맞지 않는 작은 체격으로 인해[19] 이래저래 대놓고 무시당하고, 그로 인해 생긴 열등감 때문에 성격도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달라서 같은 계급 내에서도 소외되는 인물. 정확히는 인공부화소에서의 '처리'로 체격마저 계급에 맞게끔 양산되는 세상에서, 버나드 혼자서 자기 계급보다 8cm이나 키가 작은 것이, '원래 베타 계급으로 가야 되는 사람인데 행정 착오로 알파 플러스 계급이 된 거 아니냐' 혹은 '베타 계급으로 부화할 수정란에 시행해야 하는 시술을 해버린 거 아니냐' 라는 오해와 '체격만 보면 감마 마이너스 계급이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쪽이나 수정란 시기에 부화소에서 가하는 시술로 인하여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버나드가 알파 플러스 계급에 있으면 안 될 사람인데 거기 있다며 버나드의 존재를 공격하는 것이다.

직장 내에서도 뛰어난 외모로 인기를 가진 레니나 크라운을 짝사랑하지만[20], 데이트 신청하려고 할 때 하필 직장에서도 라이벌 관계인 헨리 포스터와 놀러가거나, 레니나를 그저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등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사회 시스템에 비판적인 말을 하는 등 작품 내의 사람들과는 심한 괴리감이 느껴지는 가치관을 가졌다. 비록 열등감에 기반해 다소 찌질한(...) 대사들을 내뱉지만 그래도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독자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세계를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디스토피아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의문 → 각성 → 성공 혹은 좌절 과정을 겪는 것이 클리셰지만 버나드는 각성은커녕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에 혼자서 자부심을 느끼며 소인배적인 행동을 이어가다가 페이크 주인공으로 전락하는 특이한 인물이다.

야만사회(아메리칸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존을 만나고 존을 런던으로 데려온다. 자신을 직장에서 전출시키려는 직장 상사가 야만인 존의 아버지임을 폭로해 상사에 대한 복수와 사회적 관심을 챙기는 데 성공한다. 이후 문명사회로 온 존과 문명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사회적 명망과 관심을 받자 바로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 된 것인 양 오만해지고, 사회적 불만을 머릿속에서 비워버린 뒤 평소엔 멀리하던 마약과 섹스를 탐하며 페이크 주인공화 된다. 이후 레니나와의 문화갈등, 어머니의 죽음으로 문명사회에 회의감을 느낀 존이 반사회적 행위를 하면서 그나마 능력을 인정받던 전과 달리 주변인들로부터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다시 예전의 성격으로 돌아오고, 그와중에도 존과 헬름홀츠가 시를 매개로 친해지자 열등감을 느끼며 토를 잡으려는 등 소인배적 행동을 이어가다가 아이슬란드로 추방되는 것이 결정된다. 이때도 총통에게 무릎꿇고 발버둥을 치며 사정하는 등 결국 작중 세계의 한계를 넘지는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이를 받아들이고 헬름홀츠와 더불어 존에게 작별을 고하러 왔을 때 어제의 일은 무척 미안하고 창피하게 생각한다고 고백하며 사과한다.


3.2. 헬름홀츠 왓슨[편집]


버나드 마르크스와는 친구 사이이다. 신체조건이나 능력 등 모든 것이 너무나도 완벽한 '엄친아'이지만, 반대로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친구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문명 세계에 대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야만인 존이 문명 세계로 왔을 때 그도 버나드처럼 존을 이용해 명예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어떻게 보면 더 나은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21] 하지만 그 역시 친구와 마찬가지로 예술을 진정 느끼지 못하고[22] 문명 세계의 핵심인 과학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등 작중 세계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23] 사실 버나드에 비해 비중이 더 적다. 결말에서는 총통의 포클랜드행 제안을 받아들인다.

버나드와 헬름홀츠 모두 과학자는 아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의 '문명세계'에는 과학자가 없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주제의식 중 하나다. 과학기술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은 차라리 배운 대로의 절차에 따라 행동을 반복하는 단순기술자에 가깝지, 창조적 재능을 발휘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과학자나 고급기술자는 아니다.

어린 시절의 존이 린다에게 책에 나온 각종 화학약품에 대해 물어봤을 때 린다는 그저 '창고에 있는 통에서 꺼내오는 것'이라고 대답했을 뿐 자신이 늘상 사용하던 약품들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는 점이나, 각종 돌발상황(특히 존, 버나드, 헬름홀츠 등의 괴짜 난입)으로 인하여 작업 공정에 차질이 발생했을 경우 해당 공장의 담당자가 탄력있게 처리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쩔쩔매면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매도하기만 한다는 점등을 통해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세계는 진짜 과학자(창조적인 재능을 가진 자)를 사회를 파괴하는 위험분자로 간주하고 외진 섬에 처박아버린 뒤 격리되어 제한된 환경 내에서 그 재능을 발휘하게 하여 성과만을 뽑아먹거나, 아니면 무스타파 몬드처럼 철저하게 굴복하고 순응하여 오히려 창조성을 제제하는 체제의 앞잡이가 되게 하여 중용하는 세계다. 이 점에서 보면 헬름홀츠는 (물론 과학자가 아닌 작가에 가깝지만) 작품 내에서는 그나마 문명 세계의 핵심인 과학의 본질에 가깝게 접근한 인물이지만, 그 본질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한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쾌락 속에서 단순화되는 것을 이상시하는 사회에서 자신은 척박하고 괴로운 환경에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다면서 포클랜드행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좋은 예.


3.3. 레니나 크라운[편집]


본작의 히로인에 해당하는 캐릭터. 계급은 베타 이상의 계급으로 추정. 사실 레니나의 계급이 정확히 뭐라고 명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러가지 대화를 통하여 계급을 유추할 수 있다. 헨리 포스터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레니나가 "제가 엡실론 계급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정말 감마 계급이 아닌게 다행이야." 라고 직접 말하는 부분이 있다. 또한 "카키색은 싫은 색이야" 라는, 감마 이상의 계급을 위한 수면시 교육을 말하는 것을 보면 델타 계급 또한 아니다.[24] 직장의 아이돌이라고 할 만큼 뛰어난 외모[25]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다양한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는다던가 소마(마약)에 의존하는 등 전형적인 작중 문명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많다던가, 야만인 존을 사랑하는 등 문명인 치곤 약간 독특한 인물. 하지만 버나드에 비해 문명 세계의 상식을 좀 더 중시하는지라, 가끔씩 괴상한 이야기[26]를 하는 버나드에 질색하기도 했다.

야만인 존과 사랑에 빠져 나중에 존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데, 존은 '야만인의 방식으로', 즉 선물, 낭만 등의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려고 하지만 레니나는 '문명인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려고, 즉 다짜고짜 섹스를 하려고 하는 바람에 존은 레니나를 창녀라고 부르며 비난하게 된다. 물론 그녀도 존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존에게 사랑 고백을 한 것인데, 그녀 역시 이 때 존이 보여준 너무 이질적인 행동에 제대로 쇼크를 먹는다. 이 사건은 존이 문명 사회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문명 사회를 탈출한 존이 문명인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최후반부에서 헨리 포스터와 함께 헬리콥터에서 내리고 존과의 관계를 다시 이어보려고 하나, 이 직후 격분한 존이 채찍질을 가하고 군중의 광기가 폭발한다.[27] 이 상황에서 헨리 포스터는 헬리콥터로 도망가버리고 레니나는 구출되었다는 언급도 없다. 아마도 사망하거나 최소한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3.4. 존[편집]


버나드가 레니나를 데리고 야만인 보호 구역으로 여행을 갔을 때 처음 등장했다. 본작 후반부의 진 주인공. 한때 문명인이었다가 야만인 보호 구역에 낙오된 어머니 린다와 함께 살고 있었다. 린다가 그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해 읽게 한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전히 외우고 있으며, 그 때문에 작중에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나온 문구를 인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야만인 세계에 살면서도 문명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어머니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예를 들면 린다가 여러 남자를 만나는 것에 불만을 표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 중 한 명을 찔러 죽이려고까지 했다. 여담으로 린다와 존이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된 원인은 린다가 자기 문화권식 사고를 유지한 채 살아갔기 때문인데, 존은 그 사례로 유난히 린다의 성적인 개방성을 많이 떠올린다. 뒤에 레니나에게 저지른 짓과 연계해서 보면 린다의 이런 행보는 존에게 큰 트라우마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해준 문명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문명 세계를 동경하며 자랐다. 그렇게 거의 성인이 되었을 때 버나드, 레니나와 만나 동경하는 문명 세계로 어머니와 함께 가기 위해(+첫눈에 반한 레니나를 따라가기 위해) 버나드를 따라 문명 세계로 갔다. 이후에는 비중이 급속도로 늘어나 실질적인 주인공이 된다.

문명 세계로 간 뒤에는 문명인들에게 주목받아 톱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레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레니나가 자신이 생각하던 격식인 문학과 낭만을 거부하고 오로지 섹스로 사랑을 표현하자 이 모습에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 야만 사회에서 배운 도덕 관념, 셰익스피어 소설에서 보던 도덕 관념들과 충돌하면서 레니나를 마치 섹스만을 탐하는 악마처럼 바라보며 내버린다. 이후 문명인들과의 접촉에 신물이 난 존은 문명인들과의 만남을 거부하고 헬름홀츠와 시를 매개로 친해지지만, 헬름홀츠 또한 셰익스피어 소설에 나오는 부모자식 관계, 사랑에 대한 개념을 이해못하고 비웃으면서 큰 실망을 하게 된다. 이후 어머니가 소마(마약) 중독으로 급사하면서 기계처럼 행동하는 계급별로 똑같이 생긴 수많은 쌍둥이들과 사람들, 그리고 소마를 배급하는 모습을 보며 완전히 문명사회를 혐오하게 되고 자신이 살던 곳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소마 배급현장에서 소마를 비난하고 약통을 창밖으로 던지는 등 난리를 피우며 사람들에게 인간다움과 자유를 찾으라고 외치다가 경찰을 통해 버나드, 헬름홀츠와 더불어 무스타파 몬드 총통의 서재로 불려가게 된다. 이윽고 버나드와 헬름홀츠가 섬에 가는 것으로 결정되어 퇴실하고 자신과 총통만 남은 뒤 그와 문명 세계에 대한 토론을 펼치게 된다.

야만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배운 도덕관념과 종교관념을 토대로 주장을 펼치는 존은 자신보다 더 많은 지식과 안전하게 잘 굴러가는 사회라는 증거를 토대로 논리를 펼치는 총통에게 결국 먼저 말이 막히게 되고, 자신은 문명 세계에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버나드와 헬름홀츠처럼 섬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그러나 총통은 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거부한다. 과거의 문명과 신세계의 문명을 다 체험한 자로서 존은 도시를 빠져나가 황무지로 도망쳐 신세계의 문명을 독이라 여기며 이에 반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사람이 찾지 않는 언덕의 항공 등대 하나를 거처 삼고 일부 장비와 도구를 사 가지고 가서 경치도 구경하고 밭을 일구고 식량 조달을 위해 활과 화살을 만들면서 잠시 노동과 인내에 따른 행복감에 젖기도 한다. 평생 속죄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지만 홀로 야생생활을 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어머니 대신 레니나의 얼굴과 육체를 그리워 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채찍으로 자해를 하지만, 지나가던 문명 세계의 행인에게 그 광경이 눈에 띈 후 기자들과 관광객들이 몰려와 취재하려고도 하고 채찍질을 묘기 취급하며 구경을 한다. 존이 자꾸 찾아오는 문명인들에게 분노하고 있을 때 레니나가 미련 때문에 자신에게 찾아온다. 그러나 존은 레니나를 쾌락과 타락, 문명사회의 상징으로 여기며 악마같은 존재라고 되뇌이고 있었고, 악에 물든 사람들과 대치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가 분노와 환각상태와 결합해 레니나를 죽도록 채찍질하다가 다음날 자신이 한 일을 알아차리고는 목을 매어 자살했다.

참고로 레니나를 채찍질을 하는 장면을 대중매체로 본 문명인들은 이 행위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 행위의 이유나 의미도 모른 채. 덕분에 세상은 한바탕 광기에 휩쓸려 난리법석이었는 듯. 본문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길들이기 훈련으로 마음속에 뿌리 깊게 심어진 일체감과 화합에 대한 욕망의 지배를 받아 협동하려는 습성과 내적인 고통에 대한 충동에 이끌렸다고 서술되어있다. 물론 존은 자신의 행위가 문명사회에 무슨 일을 일으켰는지 끝까지 알지 못했다.

참고로 헉슬리의 후기에선 나중에 소설을 다시 쓴다면 존을 필두로 하여 '멋진 신세계'를 등진 시민들의 사회도 만드는 결말을 생각했다고 한다.

3.5. 린다[편집]


존의 어머니. 베타 계급이다. 인공부화소장과 야만인 보호 구역으로 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해 혼자 낙오되고, 거기다가 소장의 아이를 임신까지 하는 바람에 보호 구역에 아이와 함께 정착하게 된다. 작중 시간대에서는 겨우 44살 밖에 안됐지만 이미 갖은 고생으로 인해[28] 노쇠했으며,[29] 신체 관리에도 실패해 뚱뚱한 몸이 되었다.[30] 레니나 크라운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호 구역에 낙오되었는지 이야기를 해 주는데,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버나드는 자신이 여행 오기 전에 소장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일치한다는 사실로 그녀의 아들 존의 아버지가 소장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존과 버나드와 함께 문명 사회로 돌아온 린다는 기형적인 외형으로 인해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인물이었고, 린다 또한 다시 사회에 동화되도록 노력하는 대신 집에서 소마를 과다복용하며 환각 속에서 사는 것을 택한다. 이게 원인이 되어 건강이 악화, 병원으로 옮겨져 끝내 사망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하위 계급 클론들이 초코 생과자나 먹으며 낄낄대는 모습은 존에게 문명사회에 대한 환멸을 안겨주는데 크게 한 몫을 한다.

3.6. 토마스[편집]


인공부화소장으로 버나드 마르크스의 상관. 린다가 부르는 애칭은 토마킨. 버나드를 능력으로는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그의 집단의식 부족이나 문명 사회에 대한 반감 등 불순분자로서의 성격에 대해서는 심한 불만을 가져 그를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는다. 사실 야만인 존의 아버지이며, 때문에 버나드를 아이슬란드로 전근시키려고 했을 때 존의 태생을 간파한 버나드가 그 사실을 까발려서 역관광당하고 소장 자리에서 물러난다.[31] 그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 이후 존의 생각을 통해 사회 복귀를 하지 못하고 집에서 소마에 빠져 산다고 암시된다.


3.7. 헨리 포스터[편집]


버나드의 직장에서의 라이벌쯤 되는 인물이다. 잘생기고 능력이 좋아서 버나드도 열등감을 느끼는 장면이 있지만, 작중에서 엄친아 이미지는 헬름홀츠 왓슨이 죄다 가져간 데다가, 본인도 작 중 일반인과 사고방식에 별 차이가 없어[32] 캐릭터성이 없기 때문에 비중은 거의 공기이다. 그냥 초반 설명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에 도시 근교에서 홀로 지내는 야만인(=존) 앞에 레니나와 함께 헬기를 타고 오는데 야만인이 자괴감에 분노해 레니나를 구타하는 동안, 헬기 뒤로 도망쳐 숨는 찌질한 모습을 보이며 퇴장한다.

3.8. 패니 크라운[편집]


레니나 크라운의 친구. 상식인 포지션을 맡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 세계 문명인들 중의 상식인이란 게 문제. 헨리 포스터와 마찬가지로 작중 일반인으로서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 비중은 없다.


3.9. 무스타파 몬드[편집]


서유럽 주재 세계 총통(World Controller). 전 세계에 10명뿐인 인류 지도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본작은 인공부화소를 견학하던 견습생들이 그에게 역사에 대한 이야기[33]를 듣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총통이 되기 전에는 뛰어난 물리학자였다. 대개 이 작품의 문명 세계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사실 문명 세계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뛰어난 아이디어가 사용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탄식한다든지, 그의 비밀 금고에 금서가 잔뜩 쌓여있다든지 하는 등 일단 어느정도의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다. 후반에 한 작가가 낸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허가를 내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동의서에 "현재로서는 사회에 허용될 수 없다"라는 뉘앙스의 글을 써서 앞으로의 사회 변화에 대한 생각도 갖춘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사실 가장 악질적인 희망의 적이자 본작의 최종 보스격 인물. 사실 무스타파 몬드야말로 이 디스토피아적 세계의 가장 악랄한 원흉이라는 독해가 오히려 주류다. 다른 인물들이 모순을 깨닫지 못해서 체제에 순응하는 것과는 달리, 무스타파 몬드는 체제의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체제를 지키기로 결심한 인물이다. 즉, 한계를 넘은 깨달음을 얻은 인물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깨달은 것을 악용하는 인물에 가깝다. 과거에 일어난 세계대전, 그리고 전쟁으로 몰락한 사회에서 조차 한정된 자원과 직업을 두고 큰 혼란이 야기됐던 반면에, 현재의 시스템은 매우 안정적이며, 마약을 통해 상위부터 하위까지 모든 계급원들이 만족을 하며 사회에 동화되었기에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하며 행동한다. 작중의 모습을 보더라도 다른 인물들은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이상하다'고 무시해 버리지만, 무스타파 몬드는 그 작품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그 작품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을 섬으로 보내서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며, 헬름홀츠에 대해 개인적인 호감을 표시하기는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가 기존의 사회를 무너트릴 여지를 차단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을 오히려 체제 유지에 활용하는 인물상은 1984오브라이언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여러 문학 수업이나 평론 등지에서 둘이 같이 언급되는 사례가 많다.

  • 이 작품의 배경세계(문명세계)는 <사회를 통제하기 용이하도록 의도적으로 무지를 조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창조적 재능을 가진 인물은 '섬'으로 격리>해버리는 등 <사회의 발전과 진보 자체에 대한 거부>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엘리베이터에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엘리베이터 운전사가 있다> 거나, <제트기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로켓을 대륙간 교통 수단으로 이용한다> 같이 현대 독자의 관점에서 본 작중 사회의 기술적 비효율성을 <작중 문명 세계가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고 이것이 <작중 사회의 발전이 억압된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독의 여지가 아주 큰 독해이다. SF 작가나 평론가들이 흔히 말하듯이 SF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창작물이 그렇듯이) 인간과 인간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고, 과학기술은 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소재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34] 이 작품은 30년대에 나온 작품이고, 따라서 그 이후에 등장한 기술적 개념들에 대해서는 작가가 모르기 때문에 작중에 등장시키지 못한 것인데 이런 기술적 개념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 '작가의 주제의식 중 일부'라고 해석할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이 나온 1932년에는 아직 분자생물학이라는 개념이 탄생하지도 않은 시기였고[35] 따라서 세포 복제를 통한 클론이라는 개념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기에 수정란의 난할을 통해 일란성 쌍둥이의 발생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복제 인간을 양산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사회의 부품이나 도구처럼 사용하기 위해 기술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양산한다'는 아이디어이고 이 아이디어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이 아는 당대의 최신 기술적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9년 전쟁에 대한 묘사 역시, 작가는 핵무기 라는 개념에 대해 몰랐지만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류의 문명과 종으로써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만한 위력의 무기가 만들어질 것이다'라는 작가의 예측은 이후 냉전 시대의 핵무기 공포까지 꿰뚫어본 예언적 울림을 가지고 있는 것. 다른 작품의 예를 들어본다면 로켓 개념에 대해 잘 몰랐던 쥘 베른달 세계 여행에서 달까지 가기 위한 수단으로 대포의 포탄을 제시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구의 중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속도로 비행할 경우, 지구 바깥의 우주 공간으로 나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이고, 이 아이디어가 후대의 많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자극하여 우주 비행에 대해 연구할 동력을 만들어낸 것. 이를 두고 '대포알을 이용한 유인우주여행은 불가능하니 쥘 베른의 아이디어와 우주 비행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작품 내에서 '사회 발전의 정체'에 대한 묘사는 과학 기술보다는 사상과 문화에 대한 영역에 더 치중해 있기도 하거니와,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재해석한다면 차라리 잡 쉐어링이나 임금피크제, 적정기술이나 '지속 가능한 성장' 개념처럼 '높은 효율 추구를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의 안정과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인식의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건설적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 작품에 대해 논할 때는 과학적 관점이 아닌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논해야 올바르단 얘기다.[36]

3.10. 야만인들[편집]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문화 보존을 위해, 그리고 황무지라 굳이 개발할 가치가 없는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서 옛 풍습을 고집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작중 이들은 동물이라면 다 통구이가 될 정도의 초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망이 보호구역을 둘러싸고 있으며, '문명인'에게 핍박을 받고 있다는 점이 소설 내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이 문명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긴 하지만, 외래 사람인 린다를 배척하거나,[37] 위생관념이 거의 없고, 바닥이 피로 물들 정도로 채찍질하는 폭력적인 종교 의례 등 다소 부정적인 묘사도 함께 등장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 보존이란 말이 나오긴 하지만 이 소설의 야만인들은 비문명인보다는 21세기 현대인의 개념의 잔재로 보는 것이 옳다. 극중의 문명사회에선 잊어버린지 오래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이들의 마을에 남아있다거나 예수를 숭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 증거. 게다가 후반후 존과 총통의 논쟁에서 존은 도덕성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는데 그 도덕성은 바로 야만사회에서 배운 도덕관념이다. 즉 이 세계에서 살아온 존은 현대인의 사고를 가진 인물로서 소설 속 문명사회를 바라본 셈이 된다. 작중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 옛 풍습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지역은 상당수 존재할 듯하다.

허나 작중 묘사되는 그들의 위생 상태라든지 야만적인 성인식 등을 보면 1930년대 기준으로도 현대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그들 중 아웃사이더로서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글을 배운 존이 매우 특별한 경우이다. 헉슬리가 20세기 초 사람이고 책의 출판연도가 1936년임을 고려하면 작중의 '문명국'은 서구 열강이며 '야만인'은 아프리카와 남미에 대응된다.[38] 야만인이라는 명칭은 실제로 제국주의 시대에 소위 비문명국 사람들에게 쓰였으며,[39] 당시 서구 열강도 물론 문제점이 많았지만 피해자였던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또한 과학 발전의 지체로 인해 서구 열강의 입장에서 미개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납득이 가는 해석.

혹은, 어쨌든 현대인으로서의 개념은 잔존하나, '문화 보존'을 위해 살려놓은 곳에 '문명'이 자원을 제대로 제공해줄 리 없다는 점을 같이 고려해야 할 수 있다.[40] 현대 문명을 잃은 현대인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양면성을 부여한 것일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다. 작중 등장하는 '야만인들'에게는 1930년대 당시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야민인들, 즉 비 서구권 '원주민'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동시에 이들은 20세기 서구문명의 후예라는 것 역시 작중 명시되어 있는 것. 따라서 문명인과 야만인을 가르는 기준이란것 자체가 자의적이고 차별적임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해석될 측면도 있는 것이다.

3.11. 섬 사람들[편집]


작중에서 직접 등장하는 섬 사람은 없고, 지나치게 독창성이 뛰어나거나 성격이 특이해서 사회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섬들로 추방당해 살게 된다는 언급만 된다. 꼭 어느 섬이라고 정해진 건 아니고, 버나드가 아이슬란드는 안 된다고 애원하거나 총통이 헬름홀츠에게 어떤 풍토가 좋겠냐며 마르키즈 제도나 사모아는 어떻냐고 묻다가 그가 나쁜 풍토에 기후가 나빠야 글이 잘 써진다고 하자 포클랜드 제도로 결정하는 모습으로 보아 그냥 지구상의 섬들은 다 그런 시스템인 모양.[41] 소마나 기존 사회 체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 섬으로 추방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42] 하지만 이 사람들은 애초에 개성이 지나쳐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개성과 창의력을 맘껏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곳에서 더 행복할 듯하다. 심지어 총통은 섬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총통 자신도 과거에 지나치게 개성이 강한 인물임이 드러났을 때, 이 섬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자기 개성을 체제 유지에만 쓰는 대신 고위직에 오를 것인지 선택을 요구받았고, 그 때 고위직에 오를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버나드와 헬름홀츠도 결말에서는 섬으로 가게 되면서 '섬사람들'이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에서 몇 안되는 희망적인 요소가 존재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4. 명대사[편집]


공유, 균등[43]

, 안정 (Community, Identity, Stability)

- 세계정부의 슬로건


겨우 34층밖에 되지 않는 나지막한 회색 빌딩. 중앙현관 위에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 • 조건반사 양육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고 방패 모령의 현판에는 ‘공유•균등•안정’이라는 세계국가의 표어가 보인다.

본 책의 첫 문단. 보면 알겠지만 34층을 '겨우'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난 불편한 편이 더 좋아요."

"우린 그렇지 않아요." 통제관이 말했다. "우린 편안하게 일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 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무스타파 몬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좋을 대로 해요."

그가 말했다.

한 챕터에 걸쳐 논쟁을 벌인 존과 무스타파 몬드의 대화의 마지막 부분.[원문]

소담출판사 안정효


그날 저녁 혹스백을 가로질러 윙윙거리며 날아온 헬리 콥터의 무리는 10킬로미터에 걸친 검은 구름 같았다. 어 제 저녁의 요란한 융합의 광경이 모든 신문에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야만인!" 하고 최초로 도착한 사람이 기체에서 내리자 불렀다.

"야만인 씨!" 아무 응답이 없었다.

등대의 문은 빠끔히 열려 있었다. 그들은 문을 밀고 들 어가 어두컴컴한 안을 걸어갔다. 방 저편에 있는 아치형 복도를 통해 위층으로 통하는 계단의 바닥이 보였다. 그 아치의 정상 바로 밑에는 두 다리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야만인 씨!"

서서히 아주 서서히, 마치 두 개의 느긋한 나침반의 바늘처럼 그 다리는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북, 북동, 동, 남 동, 남, 남남서. 그러다 다시 몇 초 후에는 전처럼 서서히 왼쪽으로 회전했다. 남남서, 남, 남동, 동......

해당 책의 마지막 문단.


5. 미디어화[편집]


1956년 CBS 라디오에서 해당 소설을 원작으로 한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했다. 내레이션을 맡은 사람은 바로 원작자 본인인 올더스 헉슬리.

1980년에 NBC가 TV 영화로 내놓았지만,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1998년 영화는 원작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존의 죽음 이후 레니나가 버나드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레너드 니모이가 무스타파 몬드 역.

2020년에 NBC유니버설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피콕에서 독점작으로 방영했다. 주연은 올든 에런라이크.[44] 참고로 여기서 무스타파 몬드는 여배우 니나 소샤나(Nina Sosanya)가 맡는다.


6. 1984와의 비교[편집]


오웰과 헉슬리의 관점을 1984와 멋진 신세계로 비교한 만화. 닐 포스트먼의 '죽도록 즐기기'의 서문을 만화로 옮기고 그것은 옳았다라는 평을 붙인 것이다.[45] 재미있고 짧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보도록 하자. 다만 이 만화는 옳고 그름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쳐서 판단한 경향이 있다. 또, 미래를 얼마나 잘 예측했는지로 SF소설의 우위를 결정하는 시각은 곤란하다. '멋진 신세계'의 미래 예측이 '1984'의 예측보다 더 정확하다는 분석은 냉전이 종식된 90년대 말~21세기 이후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양대 진영이 극단적인 대립을 벌이던 냉전 시기만 해도 '1984'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역시 충분히 예언적이었고, 결국 북한중국은 문자 그대로 1984가 현실이 되었다. 이는 결국, 소위 '이성의 시대'의 끝자락이던 1930년대에 쓰여진 '멋진 신세계'가 기술의 발전이 곧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리라던 이전 시대의 믿음에 대해 의문을 던진 작품인 데 비해, 1949년에 쓰여진 '1984'는 당장 눈 앞에서 시작되고 있는 극단적인 적의와 광기, 감시의 시대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적 특성 역시 가진 작품이라는 차이를 통해 접근할 문제이지, 한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더 우월하다고 볼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쾌락과 과도한 정보에 통제당하는 사회는 어디까지나 한국이나 미국 등 자유가 보장된 국가의 시선에서 디스토피아인 것이다. 중국이나 북한 등 과도한 통제와 억압에 사람들이 꼼짝 못하는 사회도 엄연히 존재하며 그 규모도 작지 않다. 1984이든 멋진 신세계이든 미래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예언한 것은 마찬가지이며 두 작품 모두 사실성이 있다.[46]

또 이 부분에서는 독자가 접하는 '멋진 신세계'의 디스토피아상은 기본적으로 알파 계급 이상에 속하는 작중 인물의 관점을 통해 접하는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멋진 신세계가 제시하는 사회상은 그나마 1984의 음산한 사회상보다는 덜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알파 계급 이상인 버나드나 헬름홀츠등의 관점을 통해 보여진 세계상이다. 그리고 작중 각 계급의 구체적인 인구 비율은 안 나오지만 알파~엡실론의 다섯 계급 중 최상위 계급임을 생각하면, 멋진 신세계의 알파 계급은 1984로 치면 내부당원 정도의 강력한 특권계급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며, 1984에서도 내부당원인 오브라이언은 외부당원 윈스턴 스미스에 비하면 훨씬 여유롭고 덜 고통스러운 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묘사된다. 반면 멋진 신세계에서도 감마~엡실론 계급의 삶에 대한 묘사를 보면 (묘사의 양이 아주 제한적이긴 하지만) 알파 계급(+베타 계급인 레니나)의 삶에 대한 묘사와는 전혀 다르다.[47] 물론 이는 '감시와 억압, 빈곤을 통한 지배' 대 '과잉과 무관심을 통한 지배' 라는 양 작품의 주제의식 대비에 비하면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지만 전혀 다른 관점과 방향에서 디스토피아를 조명한 두 작품의 사회상이라도 디스토피아의 형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동질감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셈. 결국, 위 만화를 현대 기준에서 가장 '적절히' 독해하는 방법은 얼핏 보면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에 가깝다고까지 여기는 일종의 '오독'에 대한 경계로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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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나드 쇼카를 마르크스를 합친 이름으로, 작중 이름이 있는 계급의 모든 인물은 역사적 인물의 이름들을 조합한 이름이다. 예를 들어 성놀이를 할 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싫어한 남자아이에게 거부당한 여자아이의 이름은 폴리 트로츠키다.(...)[2]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문예출판사 제2판 1쇄. p 42) : 근처의 관목 숲에서 한 명의 보모가 나왔다. 그녀는 울고 있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있었는데, 그 남자아이는 끌려오면서 계속 울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여자아이가 보모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소장이 물었다. 보모는 어깨를 추슬렀다. "별 것 아닙니다." 보모가 대답했다. "이 아이는 늘 하는 성희의 상대가 되기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다만 그것뿐입니다. 전에도 한두 번 제가 목격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또 이러는군요. 방금도 고함부터 질렀습니다······." "정말이지······." 수심에 찬 표정의 어린 여자아이가 끼어들었다. "저는 저 애를 해칠 의도는 없었어요. 정말예요." "암, 그렇겠지. 넌 잘못한 거 없어." 보모는 재확인하듯 말했다. "그래서"하고 소장 쪽을 바라보면서 "저 아이를 심리학과의 부과장님에게 데리고 가려 합니다. 변태적인 데가 있는지 확인할까 해서요." 하고 말했다. "좋아요. 데리고 가보시오. 그리고 여자아이는 여기 있어요." 보모가 아직도 울부짖는 아이를 데리고 가버린 뒤에 소장은 말을 이었다. "네 이름은 뭐지?" "폴리 트로츠키에요." "아주 좋은 이름이군. 지금 뛰어가서 같이 놀 다른 남자아이를 찾아보렴"하고 소장이 말했다.[3] 소설 제목의 유래. 야만인 존이 야만인 거주 구역에서 나와서 문명 세계를 볼 때 읊는 소리다. 이 구절은 중세 영어이기 때문에 생각없이 '용감한 신세계'라고 번역하면 안 된다. 중세 영어로 brave는 '용감한'이라기보다는 '긍정적인'이라는 의미의 형용사이며 번역하면 '멋진' 혹은 '아름다운', '훌륭한' 등의 뜻이다. 사실은 '용감한'이라는 뜻으로 후대에 어의전성된 것. 'bravo'란 단어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4] 서력기원 환산시 서기 2539년. A.F.의 원년은 헨리 포드포드 모델 T를 처음 만든 서기 1908년이다.[5] 헨리 포드는 이렇듯 작중 사회에서는 신격화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이 사회의 가치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헨리 포드는 자동차 회사의 창설자이지만 최초로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을 고안한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6] 그리고 이러한 올더스 헉슬리의 관점에 동조한 인물 가운데 한국의 시인 김수영이 있다. “불평은 있지만 검열 때문에 불평을 말할 수 없는 『1984』보다 불평 자체를 느끼지도 못하는 『멋진 신세계』가 더 끔찍한 세계”(1960년 9월 20일 일기)라고.[7] 9년 동안 벌어졌기에 일명 9년 전쟁이라 불린다. A.F. 141년(서기 2048년)에 일어났다. 간략하게 언급되는 내용으로는 탄저균을 이용한 생화학무기대량살상무기가 대대적으로 사용된 핵전쟁 급의 전쟁이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근데 묘사가 현대 기준에서 보면 약간 아리송하다. 무려 9년 동안이나 생물학 무기를 대대적으로 사용하고도 인류멸망에 이르지 않은 것도 기이하지만 실제 역사를 고려하면 핵무기는 쓰이지도 않았기 때문. 실제로 작가는 후판 인쇄 서문에 2차대전 이야기를 꺼내서 자기도 핵기술을 예측 못했지만, 큰 틀은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8] 수정란의 분열 횟수에 따라서라는 언급도 있다. 이를테면 수정란 하나에 한 사람이 나오는 경우 알파 등급.[9] 계급마다 플러스, 마이너스로 세세하게 나뉘기도 한다. 최상위 계층인 알파 더블 플러스 계급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10] 수정란을 '보카노프스키 과정'을 통해 분열하게 만들어 인위적으로 쌍둥이로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 방식을 통해 최대 96 쌍둥이까지 만들어질 수 있다. 소설에서 인공부화소들에서는 하나의 난소로 수천, 수만 명도 찍어내는 듯. 참고로 이 소설은 클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 쓰였다. 또 작 중에선 델타 계급 미만의 태아에게는 고의로 산소 공급을 부족하게(이러한 유전자 타입에게 적정한 산소농도라는 이유로 이러한 부화환경을 조성한다) 하고 알코올을 주입하여 신경계를 망가뜨린다는 묘사가 있다. 헌데 유전자 타입이 겨우 몇 가지에 불과하고 난자 하나로 100에 가까운 수를 만드는 방식이라면 유전자의 다양성 결여로 전염병에 극도로 취약해진다는 게 문제. 작품 내적으로는 이 문제도 발전된 기술로 어떻게든 해결한 모양이라고 이해해도 큰 문제는 없고, 실제로는 아마 작가가 이런 부분에 대해선 몰랐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소설이 1932년에 출판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자.[11] 참고로 사회 불안을 막기 위해 고의로 기술 발전을 저지하고 있으며, 자동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작업도 인간이 하도록 놔둔다는 언급이 나온다. 다만 21세기인이 보기에 '로봇이나 자동화 공정으로 대체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저능화한 클론을 사용하는가' 라는 부분은 기술 발전의 의도적인 저해의 결과로써 헉슬리가 의도적으로 표출시킨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소외', 그리고 '기술 발전으로 이룩한 사회가 안정을 위해 오히려 과학의 발전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는 모순' 두 가지를 다 다루고 있지만, 저능아 클론의 존재가 후자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후자 쪽이 작가의 의도로써 표출되는 소재는 무스타파가 언급한 '인공합성식품보다 비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땅에서 생산되는 작물들' 정도 뿐이다. 1930년대 작품인 본작보다 훨씬 이후, 20세기 말 이후에 나온 사이버펑크 계열 작품들은 인간을 생산공정의 부품으로 표현하는 대신 '마약이나 가상현실게임 등으로 사회에 대한 관심과 불만을 돌려 하루하루 그저 먹고 살아가기만 하는 잉여'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소외를 표현했고, 20세기 말~21세기 초의 과학기술적 배경을 생각하면 후자가 더 기술적 고증이 잘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차이가 작품성(작품의 상징성)에 있어 중요한 차이로 다뤄지지는 않는 것.[12] 다만 그 조건반사 교육의 방식도 지금 보면 딱 파블로프의 개 수준으로 매우 유치하다. 사실 책에서 이미 '신파블로프식 교육'이라는 식의 서술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확인사살. 델타 계급 아동에게 책과 꽃을 보여주고 금속성 소음을 들려주어 진짜 "조건반사"로 그것들을 싫어하는 강화를 건다.[13] 오늘날의 가상현실과 비슷한 개념이며, 현실의 4D IMAXHMD, 혹은 ASMR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14] 영어로 생각하면 더 재미있는데, my Lord(주님)가 my Ford(포드님)로 한 글자만 치환된 것이다.[15] 어릴 때부터 주기적으로 아이들을 영안실에 데리고 감으로써 죽음이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교육시킨다.[16] 버나드 쇼카를 마르크스를 합친 이름으로, 작중 이름이 있는 계급의 모든 인물은 역사적 인물의 이름들을 조합한 이름이다. 예를 들어 성놀이를 할 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싫어한 남자아이에게 거부당한 여자아이의 이름은 폴리 트로츠키다.(...)[17]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문예출판사 제2판 1쇄. p 42) : 근처의 관목 숲에서 한 명의 보모가 나왔다. 그녀는 울고 있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있었는데, 그 남자아이는 끌려오면서 계속 울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여자아이가 보모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소장이 물었다. 보모는 어깨를 추슬렀다. "별 것 아닙니다." 보모가 대답했다. "이 아이는 늘 하는 성희의 상대가 되기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다만 그것뿐입니다. 전에도 한두 번 제가 목격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또 이러는군요. 방금도 고함부터 질렀습니다······." "정말이지······." 수심에 찬 표정의 어린 여자아이가 끼어들었다. "저는 저 애를 해칠 의도는 없었어요. 정말예요." "암, 그렇겠지. 넌 잘못한 거 없어." 보모는 재확인하듯 말했다. "그래서"하고 소장 쪽을 바라보면서 "저 아이를 심리학과의 부과장님에게 데리고 가려 합니다. 변태적인 데가 있는지 확인할까 해서요." 하고 말했다. "좋아요. 데리고 가보시오. 그리고 여자아이는 여기 있어요." 보모가 아직도 울부짖는 아이를 데리고 가버린 뒤에 소장은 말을 이었다. "네 이름은 뭐지?" "폴리 트로츠키에요." "아주 좋은 이름이군. 지금 뛰어가서 같이 놀 다른 남자아이를 찾아보렴"하고 소장이 말했다.[18] 작중 무대인 런던의 시민들은 타지 출신이 아니라면 모두 이곳에서 태어난다.[19] 버나드가 태아였을 시절 작업자가 실수로 알코올을 들이부었다는 소문이 돌았다.[20] 레니나도 버나드를 작고 귀엽다며 호감을 보인다.[21] 그래서인지 번역본에 따라서는 버나드는 존과 말을 놓지 않고 헬름홀츠만 존과 말을 놓는 것으로 처리된다.[22] 존이 읽어주는 셰익스피어의 시에 감명을 받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언급되자 웃음을 터트리며 무시한다.[23] 구체적인 예로, 존이 세익스피어를 낭송했을 때 헬름홀츠는 세익스피어의 문장이 가진 호소력에 솔직한 감동을 토로했지만 작품에 드러나는 격정(특히 연애 감정)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이에 비하면 버나드는 헬름홀츠와 존이 공감대를 가지는 것에 일종의 질투심을 느끼고 저속한 농담으로 세익스피어를 조롱하며 분위기를 망쳤다.[24] 작중에서 계급 이야기를 할 때 알파 베타, 그 아래 더러운 계급이라는 언급을 여러번 하는 것으로 보아 베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본래 베타 계급은 짙은 자주색 옷을 착용한다고 하는데 작중 초반부 레니나가 감마 계급 색인 초록색 옷을 입는 장면이 나와서 다소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일단 옷 색깔 문제는 빼고 작중 레니나의 생활 묘사를 보면 헨리나 버나드보다는 좀 낮은 듯하지만 상당히 상류 계급인 것은 확실해 보이니 베타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할 듯.[25] 보랏빛 눈동자에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다만 작중 초반부에 루푸스에 걸린 듯한 얼굴이라는 말이 두어 번 나오는데, 실제로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근무하는 구역의 붉은 조명에 비친 얼굴빛을 묘사한 듯하다.[26] 둘이 야만인 보호 구역으로 여행을 갔을 때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자를 보고 버나드가 레니나도 저렇게 있는 걸 상상해 보라고 했다. 이런 건 이 세계관에서는 패드립성희롱을 섞어야 겨우 흉내낼 수 있을 아주 저질 수준의 음담패설에 해당한다. 물론 이 세계관의 애들은 원래부터 부모가 없어서 패드립이란 게 없다[27] 헬리콥터에서 내린 여자가 레니나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으나 에나멜 피임약 통이나 옷의 묘사가 영락없이 초반부에 레니나가 갖고 싶다고 말한 물건들이다.[28] 자기 문화식 생활을 고수해 갔는데 문제는 린다의 성적인 개방성과 부부 개념의 몰이해로 인해 남의 지아비를 건드는 일이 많았고 지어미에게 걸려 개패듯 얻어 맞는 일도 그 못지 않게 많았다고(...). 이는 린다와 존이 마을에서 왕따당하게 된 요인 중 하나로 나온다.[29] 문명사회에선 인위적으로 신진대사를 조절해 노인이 되어서까지 젊은 모습을 유지하는데(대신 과부하가 걸려 60대에 죽는다) 문명과 격리된 린다는 그러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 [30] 작중 언급되는 내용으론 '문명인'에게는 각종 호르몬 조절제와 같은 약물이 배합된 음식이 제공되며, 건강 자체도 사회에 의해 관리된다. 게다가 사회 풍조가 소비권장이기 때문에 린다는 애초에 다이어트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31] 존이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고 "저의 아버지시여!(My father!)"라고 크게 소리쳤으니, 소장 입장에서는 공개적으로 비웃음을 당한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셈이다. 기본적으로 신세계에서는 '사람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게 기본 상식이라 자유연애와 난교만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소장은 '자신의 자식'을 낳은 것도 모자라서 그 자식에게 '저의 아버지'라 불렸으니 특정 사람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셈.[32] 단지 숫자를 좀 좋아할 뿐이다.[33] 이 작품의 배경[34] 무협지가 그걸 보고 무술을 배우라고 나온 책이 아니라 무술을 이용한 주인공의 액션활극을 보고 즐기기 위한 책인 것과 마찬가지이다.[35] 분자생물학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38년 록펠러재단의 워렌 위버였고, 본격적으로 분자생물학 분야의 연구가 시작된 것은 52년 제임스 왓슨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이후였다. 이 둘이 노벨상을 받고, 다음해 수상자가 저자의 동생이다.[36] 게다가 자유의지에 회의적인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이 작품을 논한다면 작가의 원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이 튀어나올 것이다.[37] 사실 린다가 야만인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섹스, 즉 부부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남의 지아비를 건드는 일이 잦았고 이로 인해 상대의 집사람에게 걸려 얻어맞을 뿐 아니라 야만인 사회 전체에서 방종한 여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현실 역사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성 윤리가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고, 대부분의 현대인들 역시 부부관계의 성실성을 중시하며 이를 파괴하는 것을 큰 잘못으로 여기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단지 '야만인들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지. 즉 린다의 행위는 원주민들이 참아줄 수 있는 한도를 넘아섰으니 미움받을 수 밖에 없었다.[38] 중간에 일본식 성명을 가진, 일본사람을 암시하는 묘사 역시 등장한다.[39] 서술자는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존을 이름이 아니라 야만인으로 지칭한다. 이는 존이 개인적으로 미개하여 야만인이 아니라, 그의 출신이 야만인이기 때문에 야만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40] 비슷한 예시로, 게토반투스탄 따위의 격리 수용 지역이 있다.[41] 총통은 세상에 섬이 그렇게 많은 것이 참 다행이라면서 섬이 없었다면 우리들이 당신들을 어떻게 했을지 모른다며 아마 당신들을 모두 무통 도살실에 보냈을 거라는 말도 했다.[42] 작 중에서 뻔질나게 나오는 그 세뇌 교육을 통해, 실제 섬의 환경에는 상관없이 이러한 장소에 가는 사실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이 세계관의 세뇌 기술은 육아, 사랑 등등 본능에 해당하는 정서마저 나치즘급 사상 테러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니까...[43] identity는 흔히 정체성으로 번역되나 그 뜻을 분석해보면 '정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본질, 즉 늘 '동일한' 것이다. 개성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작중 세계관을 고려할 때 여기서의 identity는 동일성, 일체성, 균등이라는 의미로 해석함이 적절하다.[원문] "But I like the inconveniences." "We don't," said the Controller. "We prefer to do things comfortably." "But I don't want comfort. I want God, I want poetry, I want real danger, I want freedom, I want goodness. I want sin." "In fact," said Mustapha Mond, "you're claiming the right to be unhappy." "All right then," said the Savage defiantly, "I'm claiming the right to be unhappy." "Not to mention the right to grow old and ugly and impotent; the right to have syphilis and cancer; the right to have too little to eat; the right to be lousy; the right to live in constant apprehension of what may happen tomorrow; the right to catch typhoid; the right to be tortured by unspeak able pains of every kind." There was a long silence. "I claim them all," said the Savage at last. Mustapha Mond shrugged his shoulders. "You're welcome," he said.[44]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한 솔로를 연기한 배우.[45] 참고로 해당 책의 초판이 나온 시점은 1985년으로, '1984'의 배경이 되는 1984년의 바로 다음 해이다.[46] 사실 동구권이 소멸함으로써 냉전이 종식되었던 80~90년대 무렵이면 소위 '역사의 종언'에 대한 기대로 독재권력에 의한 강압적 지배 모델은 역사적으로 패배했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신 극단주의의 대두와 2010년대 중후반 이후 국수주의, 고립주의의 급성장, 러시아 및 중국 등에서 태동한 일종의 신 독재 모델의 등장 등으로 이런 낙천적 세계관은 사실상 무너졌다고 보아야 한다.[47] 1984의 사회에서도 노동자 계층은 외부당원들과 달리 의외로 통제가 심하지 않다. 오히려 정치에 신경을 끈다면 외부당원보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식으로 표현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짐승과 동일한 취급이기에 통제조차도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소설 내에서는 지적이거나 체제에 위협이 될만한 노동자는 (이미 숙청되었으므로) 전혀 묘사되지 않고, 하루종일 열악한 환경에서 불평불만 없이 노동하면서 기계가 쓴 소설과 노래만을 소비하며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는 멍청이들로 표현되어 있다. 멋진 신세계의 알파 계급과 1984의 노동자 계급을 우민화시킨 정책은 놀랍도록 유사하지만, 1984는 하층민만을, 멋진 신세계는 모든 계층을 상대로 우민화 정책을 시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