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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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Melkite Greek Catholic Church
كنيسة الروم الملكيين الكاثوليك[1]
Μελχιτική Ελληνική Καθολική Εκκλησία


파일:성모안식대성당.jpg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성모 안식 대성당

규모
약 160만 명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유세프(요셉) 압시

1. 개요
2. 멜키트
3. 역사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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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파로, 교황수위권을 인정하되 비잔티움 예법을 따르고 아랍어를 사용한다. 해당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 아랍인이라는 점만 빼면 예법이나 교리 부분에서는 그리스 비잔티움 가톨릭과 대동소이하다. 이러한 연유로 '멜키트 비잔틴 가톨릭'으로도 불린다. 다만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의 성립, 분리 역사가 더 빠른 편인데, 정교회에서 1726년 분리되었다.

현재 신자 수는 약 160만여 명으로 추정되며, 시리아레바논[2], 요르단, 이스라엘, 이라크, 쿠웨이트 등 아랍권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그 밖에도 아프리카, 미국, 영국, 캐나다 등지에도 있다. 아랍권 밖, 즉 유럽아메리카 대륙의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신자 대부분은 아랍계 이민자들이지만, 백인, 흑인, 그리고 한국인이나 일본인동아시아인 신자들도 일부나마 존재한다.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 보유. 총대주교좌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다. 마론파와 마찬가지로 총대주교는 투표를 거쳐 선출된 후 교황에게 책봉받는 형식으로 착좌한다. 현 총대주교는 시리아 태생의 요셉 압시이다.[3]


2. 멜키트[편집]


멜키트라는 명칭은 과거 비칼케돈파 교회(오리엔트 정교회)가 다수를 차지하던 시리아이집트 등지에서 비칼케돈파 교회 신자들이 칼케돈파 신자들을 로마 황제를 따르는 왕당파라고 멸칭한 데서 유래했다.

왕 또는 황제를 뜻하는 시리아어 '말카(ܡܠܟܐ)'[4]에 ~파, 혹은 ~의 사람(자손)이란 뜻의 접미사가 붙어 '말카야(ܡܠܟܝܐ)'에서 출발한다. 이후, 동로마 제국으로 넘어오면서 '말카야'라는 단어는 중세 그리스어 '멜키테스(Μελχίτης)'로, 라틴어로는 '멜키타(Melchita)'로 변형되었다. 영어로는 라틴어 표현에서 유래되어 'Melkite'라고 쓰는데 발음은 '멜카이트'다. 프랑스어로는 'Melchite'[5], 독일어로는 'Melkit'라고 쓰며 두 언어 모두 '멜키트'라고 발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어/독일어식 발음에서 따온 '멜키트'로 음역한 사례가 많다.


3.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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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기독교의 역사
비잔티움 전례
Melkite Greek Catholic Church: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Greek Orthodox Church of Antioch: 정교회
서시리아 전례
Maronite Church: 마론파
Syriac Orthodox Church: 시리아 정교회
Syriac Catholic Church: 시리아 가톨릭
동시리아 전례
Ancient Church of the East: 동방 고대교회
Assyrian Church of the East: 아시리아 동방교회
Chaldean Catholic Church: 칼데아 가톨릭
[1] 아랍어. Kanīsat ar-Rūm al-Malakiyyīn al-Kāṯūlīk[2] 레바논 인구의 5%가 신자이다.[3] 아랍어식으로는 '유세프 압시'라고 부른다. 요셉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최초이자 현 시점에서는 유일한 총대주교로, 후세에 요셉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총대주교가 나오지 않는 한 요셉 1세로 불리지 않는다.[4] 아랍어로 왕을 뜻하는 말리크와 어원이 같다.[5] 때론 영어와 동일한 철자를 쓰기도 한다.


로마 제국기독교화 이후 서기 5세기 시리아이집트를 중심으로 합성론 신학이 유행하였다.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 내에서 아람어를 사용하는 인구 중에서는 합성론을 지지하는 인구가 많았다면 반대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콘스탄티노플과 마찬가지로 정통 칼케톤 교파를 지지하였다. 7세기 이슬람 세력의 중동 정복 이후, 시리아의 기독교인들은 칼케돈파-그리스어권 출신이나 비칼케돈파-아람어권 출신 할 것 없이 아랍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들이 오늘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레바논과 요르단의 아랍계 기독교인들의 기원이 된다.

1054년 교회가 동 서로 분리되자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이집트의 정교회 신도들은 동방 정교회의 중심축인 콘스탄티노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7세기 이래로 로마와 화해하려는 노력들이 부분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고, 1724년 선출된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키릴로스 6세는 그의 친가톨릭적 성향을 우려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로부터 파문당했고, 그 대신 로마 교황으로부터 정당한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임을 인정받음으로써 시리아의 칼케돈파 교회는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교회와 안티오키아 정교회로 나뉘어졌다.

2014~5년 통계에 의하면 이스라엘 기독교인 인구의 42%,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내 아랍계 기독교인 인구의 60% 정도가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소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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