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동음이의어)

덤프버전 :

1. 품사의 하나
2.1.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
2.2. 이름있는 선비
3. 역사서
4. 불교에서 승려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품계


1. 품사의 하나[편집]




2. [편집]



2.1.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편집]


유명인사의 줄임말. 해당 항목 참조.


2.2. 이름있는 선비[편집]


중국의 사족(士族) 중에서도 능력이 뛰어나고 인품이 고결한 사람들을 명사라 부르며 사족들 사이에서도 고급 사족으로 대우했다. 삼국지의 경우 황완, 순상, 순욱, 순유, 채옹, 공주, 원소, 제갈량, 방통 등이 명사로 이름높았다. 채옹은 당대의 기재이고 원소는 사세삼공을 지낼 정도로 명문귀족이며 공주는 고목나무에 꽃이 피게 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말재주가 뛰어났다.

특히 후한 말에는 명사들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꽤 큰 편이었는데 영제 말부터 후한 정권이 위태로워지고 기존까지 권력을 잡고 있던 환관 세력에 대항하는 청류파들이 원소를 중심으로 결집하기 시작하며 확실히 환관은 아닌 것 같다는 분위기로 흘러간다.[1] 이 때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명사들이었는데 그 경위는 이렇다.

한나라는 한무제 시기부터 향거리선제라 하여 지역의 향론을 바탕으로 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제도를 택하고 있었고 향론에서 중요한 키포인트는 각지의 명사들이었다. 즉 명사들에게 잘 보여야 좋은 평가를 받게 되고 따라서 벼슬길도 열리는 것.(이게 안 된다면 기존 관료들의 밑으로 들어가 그 밑에서 쌔빠지게 구르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했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 명사들의 정의를 보듯 짐작가겠지만 당연히 '자기에게 잘 보이는 기준'이 그저 비위나 잘 맞추고 뇌물 잘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만족시킬만한 도덕적이거나 그 나름대로 좋게 평가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후한 말에는 앞서 말한 저 많은 명사들과 명사들의 눈에 들기 위한 인재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많이 보인다. 예시로 유비는 공융을 도우러 가면서 당대의 명사인 공융이 자기 이름 한마디 언급해준다고 좋아했고 유요는 태사자에 대해서 명사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 않았다며 써주기를 망설였다. 그러다 보니 조조의 경우 청년기에는 꽤 오랫동안 명사들의 호평을 구하느라 고생해야 해서 후에 젊은 시절에 아무도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고 원소는 얼자라는 태생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6년상이라는 고행을 치르기도 했다.

3. 역사서[편집]


명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전체역사서. 명사 문서 참조.


4. 불교에서 승려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품계[편집]


비구니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품계. 비구대종사에 상당한다. 한국 불교에서는 법랍 40년 이상으로 특별전형을 통과해야 받을 수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7 23:16:53에 나무위키 명사(동음이의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단적으로 환관 조숭의 양손자인 조조 또한 환관의 인맥으로 출세하지 않았다. 즉 환관쪽 인맥은 이 시기쯤에는 별로 쓸모없이 돼버린 것. 다만 그는 그와는 별개로 탁류파인 원씨 가문의 원소, 원술과 친하게 지내긴 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