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메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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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모로코 모하메디아.jpg
도심부 전경
파일:모하메디아 모로코.jpg
그랑 상업 지구

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아랍어 المحمدية
베르베르어 ⴼⴹⴰⵍⴰ
영어 Mohammedia

모로코 중북부의 도시. 카사블랑카에서 동북쪽으로 12km, 라바트에서 서남쪽으로 50k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다. 인구는 21만명으로 모로코에서 14번째로 큰 도시이다. 모로코 정유 산업의 중추를 담당하는 사미르 정유 공단이 위치한 곳으로, 서쪽 해안의 거대한 정유 공단과 북쪽 항구에 석유 저장 시설이 있다. 본래 지명은 페달라였는데, 1960년 국왕 무함마드 5세가 사미르 정유 공단의 초석을 놓은 것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따 모하메디아로 개칭하였다. 공업 도시인 동시에 동북쪽 해안을 중심으로 관광 리조트와 골프장 등이 형성된 휴양지이기도 하다. 본래 카사블랑카의 위성 도시였지만 근래 들어 중간의 아인 하루다, 제나타 환경 도시의 개발과 함께 카사블랑카와 점차 연담 도시화가 되고 있다.

2. 역사[편집]


페달라 (فضالة)는 아랍어로 '신의 총애'를 뜻하는 파달라 (فضل الله)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무라비트 왕조 시기부터 항구가 있었고 14-15세기부터 유럽 상인들이 왕래하였다. 1773년 알라위 왕조의 술탄 시디 모하메드 벤 압달라는 페달라에 곡물창고와 함께 창고와 그를 왕래하는 상인들을 지키기 위핸 카스바 성채를 세웠다. 1900년을 전후로 페달라에는 많은 독일인들이 정착하였고, 그중 마네스만 가문은 일대의 토지를 대량 구매하였다. 다만 1911년 모로코 위기 후 독-프 협정으로 마네스만 가문은 프랑스 자산가들에게 땅을 싸게 넘기고 떠나야 했다.

이렇게 부동산을 대거 얻은 장 & 조르주 에르상 형제는 1912년 프랑스-모로코 회사, 1914년 항만 회사를 차리고 페달라 개발에 나섰다. 프랑스령 모로코 시기 페달라는 어류 및 농산물 가공업 등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1929년 자크 에르상 학교, 1934년 중앙 광장에 생 자크 성당, 1938-51년 해수욕장과 해변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2차 대전기에는 횃불 작전의 일환으로 1942년 11월 미군이 페달라에 상륙, 독일군 수비대를 분쇄하였다. 1960년 6월 25일 페달라는 독립을 이룬 국왕 무함마드 4세의 이름을 따 모하메디아로 명명되었고, 관광-공업도시로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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