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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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자녀 수와 자녀의 사회성의 연관성



1. 개요[편집]


단 하나뿐인 , 즉 독녀(獨女)인 사람. 애칭으로는 외동이 있으며, 이 역시 많이 쓰인다.

일반적으로는 무남독녀(無男獨女)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실제로도 그런 예를 떠올리지만 부차적인 의미가 있어 '아들이 여럿이되 딸이 단 한 명만 존재하는 경우도 외딸에 해당'된다. 이 경우는 고명딸이라고도 한다.[1]

즉, 외딸은 무남독녀와 1남 1녀, 고명딸의 개념을 모두 합친 개념이다. 그러므로 외딸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딸이 1명이라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하면 된다. 다만 좁은 뜻으로는 무남독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 무남독녀 : 딸 하나 외에 다른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
  • 1남 1녀 : 딸 하나 아들 하나씩인 남매 중 딸인 경우.
  • 고명딸 : 아들이 둘 이상 있고 유일한 딸인 경우.

1980년 이전 세대까지만 해도 외동인 집안은 극히 드물었지만[2] 1981년 "1명만 낳자" 하는 식의 구호가 생기고 나서 크게 증가했는데, 1987년도에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자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잠시 줄어들었다가 90년대 중후반부터 다시 늘어나고 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다만 1950년대 이전 세대로 한정한다면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로 인해 외딸이 된 케이스도 드물게나마 있으며, 어머니가 (소위: 세컨드)[3]이라든지 영아 사망률 등 기타 요소로 인해 외딸의 비율이 그 이후 세대(1950년~1970년)에 비하자면 살짝 많은 편이다. 당연하겠지만 현 시점에 비하자면 새발의 피.

재산이나 권세가 상당한 집안은 무남독녀만 있을 경우 후계자 선정에 많은 갈등이 따랐으며, 양자를 들이거나 딸의 남편을 데릴사위로 맞는 경우가 잦았다. 당연히 최근에는 그런거 무시하고 그냥 딸한테 물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아들 항목과 겹치는 부분으로, 외동에 대한 편견 때문에 달갑지 않은 일을 겪을 수 있다.

1.1. 자녀 수와 자녀의 사회성의 연관성[편집]


결론만 말하자면 절대 아니며, 사실무근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외동이 급증한 시기가 도시화로 인한 공동체 붕괴와 맞물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 효녀 심청, 구렁덩덩 신선비, 춘향전, 아기장수 등등 전래 동화의 주인공들 상당수가 외동이며, 외동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개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굳센 인물로 설정된 경우가 많다.

가상 매체에서 높으신 분이나 근엄한 아저씨 캐릭터가 사실 외딸을 두고 있어서 딸바보짓 하다가 평소 이미지 다 말아먹는 건 이미 클리셰.

물론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 인물이긴 하지만, 현재는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인 한부모 가족, 그것도 외동이 긍정적인 역할로 나왔다는 것은 옛날에도 외동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으니, 의외로 외동이 많았을 수는 있다.

그런데 앞서도 언급했듯이, 한국과 중국에서 정부 차원에서 가족 계획을 실시했던 시기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공동체 사회가 파괴되었던 시기와 겹친다. 효녀 심청 이야기가 나왔던 시절에는 심학규가 젖동냥으로 심청이를 키웠듯이 마을 전체가 아이 한 명을 키워 주는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환경이라면 외동이라도 자연히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상승하는 집값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니는 환경이라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게 된다.

게다가 정부 차원에서 가족 계획을 실시했다는 것은 그만큼 인구가 많아서 생존 경쟁이 치열했다는 의미이다. 즉, 외동이건 아니건 간에 수많은 또래 경쟁자들과 치고 박고 싸우느라 자연히 이기적인 심성이 만들어지기 쉽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자녀 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환경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외딸인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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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성차별적 용어라는 논란이 있어 1990년대 후반 이후로는 점차 장녀나 외딸로 대체되어 쓰이고 있다.[2] 이들 중 대부분은 이혼, 그리고 집안 사정 등이 있다.[3]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첩 제도는 공식적으로 1915년 까지 허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