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슬라프 클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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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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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분데스리가 심볼.svg

2005-06 · 2006-07
파일:실버슈.png

2002 FIFA 월드컵 실버슈
[1]
파일:분데스리가 심볼.svg

파일:골든슈.png

2006 FIFA 월드컵 골든슈


베스트팀
파일:Kicker 로고.svg

2004-05 · 2005-06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심볼.svg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심볼.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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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월드컵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기타 정보







독일의 축구 감독


이름
미로슬라프 클로제
Miroslav Klose

본명
미로슬라프 요제프 클로제[1]
Miroslav Josef Klose
출생
1978년 6월 9일 (45세)
폴란드 실롱스키에 주 오폴레[2]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신체
184cm / 체중 80kg
주발
오른발(양발)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코치
축구 감독
소속
선수
SG 블라우바흐-디델코프 (1987~1998 / 유스)
FC 08 홈부르크 (1998~1999)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99~2004)
SV 베르더 브레멘 (2004~2007)
FC 바이에른 뮌헨 (2007~2011)
SS 라치오 (2011~2016)
코치
독일 대표팀 (2016~2018 / 인스트럭터)
FC 바이에른 뮌헨 (2020~2021 / 수석 코치)
감독
FC 바이에른 뮌헨 U-17 (2018~2020)
SC 라인도르프 알타흐 (2022~2023)
국가대표
137경기 71골[3] (독일 / 2001~2014)
종교
가톨릭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수훈
5.4. 개인 기록
5.5. 출전 기록
6. 여담
6.1. 가우초 세리머니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2014-dede.jpg
[4]

실패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실패에 안주하는 것이 부끄러울 뿐.

독일축구 선수 출신 코치, 감독.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독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멤버 중 하나로, 2006 독일 월드컵 골든슈[5]2002 한일 월드컵 실버슈[6] 수상자이며 독일 대표팀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자[7]이다.

클럽에서는 베르더 브레멘 시절이 전성기로, 2005-06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득점왕, 도움왕, VDV 올해의 선수을 모두 석권하고 2006년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를 수상하기도 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파일:클로제 베르더 브레멘.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로슬라프 클로제/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클로제 월드컵 16번째 골.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로슬라프 클로제/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클로제는 정통파 타깃맨이 아니다. 뛰어난 공간침투와 뒷공간을 돌아가는 능력, 몸 전체로 골을 넣는 능력, 확실한 찬스 한방에 갑자기 나타나 득점하는 포쳐 스타일에 가까운 편이다.[8] 게다가 저 뛰어난 공간침투의 밑바탕이 되어 주는 빠른 스피드가 아주 일품이다. 클로제가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인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공간'과 '패스'라는 화두가 최신 조류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고, 클로제는 전술한 본인의 장점들을 살려서 그 흐름을 주도해나가는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런데 한국의 해외축구 전문가, 팬들은 오히려 그 2002년 월드컵에서 클로제가 넣은 무수한 헤더 골을 근거로 구시대적인 타겟맨으로 낙인을 찍었고, 그래서 90년대에 나왔다면 일류였겠지만 21세기에는 뒤쳐진 선수라는 평가가 한국 팬덤에서의 일반적인 평가이기도 하였다.[9] 반면 미하엘 발락은 그 조류에 적합해보였고, 그래서 2002년에 독일이 거둔 성과의 지분을 상당 부분 저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다. 덧붙여서 2000년대 초의 독일 분데스리가는 해외축구 팬들에게 유럽 3대 리그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그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클로제의 평가는 더 나빴다. [10]

클라우디오 로페즈와 스타일이 거의 판박이인데 둘 다 그 특유의 빠른 주력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요리조리 싹싹 피해다니면서 슈팅을 날리는 그런 스타일의 선수이다. 실제로도 공격수임에도 공을 갖고 도망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포지션이 에르난 크레스포와 같다고는 하지만 어마무시한 피지컬을 이용해 몸싸움으로 우겨넣는 크레스포와는 달리 클로제는 빠른 발로 이리저리 움직여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실제로도 주력이 후달려서 클로제를 놓치는 바람에 실점하는 팀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2002년의 사우디아라비아나 2006년의 코스타리카와 에콰도르이다. 클로제는 세 팀에게서 각각 3골, 2골, 2골을 갈취해갔다.

또한, 어시스트에도 소질이 있다. 클로제가 단순한 골게터에 불과했다면 베르더 시절 그와 함께 한 클라스니치가 공격수 평점 2위를 차지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이에른에서 토니와 짝을 이뤄서 득점은 다소 줄은 반면, 뛰어난 패스로 토니의 득점을 도왔다. 연계 플레이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보는게 더 적합하다고 하는 평가도 있다.

또한 압도적인 뚝배기를 이용한 헤더 능력과 그를 뒷받침해 주는 준수한 피지컬 또한 그의 장점이다. 포스트 플레이란 무릇 헤더의 정밀함 + 피지컬 + 공간 침투 능력 + 동료를 이용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모두를 일류급으로 갖춘 스트라이커는 정말 찾기 어려우며 2000년대의 클로제는 이 부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다.

폭격처럼 퍼붓는 헤더가 워낙 인상적이라 축구팬들은 그를 가리켜 박치기 공룡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카이저슬라우텐에서 뛴 2000년부터 2004년 까지의 동영상을 봐도 클로제가 전형적인 타겟맨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이 시기로만 보면 헤더에 뛰어난 포쳐스타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베르더 브레멘[11]와 바이에른 뮌헨을 거치면서 팀 공격수를 살리는 플레이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커리어 중반기 이후로는 포스트 플레이를 갖춘 어드밴스 포워드로 분류하는게 맞다.

처음 출전한 월드컵, 아일랜드전에서 선제골을 넣은후.

클로제하면 떠오르는, 골을 넣은 뒤의 공중제비 세리머니는 일품이지만 부상 위험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이를 잡수신 이후부터는 잘 하지 않았다.[12][13] 2014 브라질 월드컵 가나 전에서도 나왔는데, 한 바퀴를 완전히 다 돌지는 못하고 땅을 짚으면서 착지했다.[14] 엄청나게 가벼운 몸을 자랑하는 위의 움짤과 비교해보자.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4. 지도자 경력[편집]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인스트럭터로 활동 중이며, A매치가 있을 때마다 대표팀과 동행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된다. 독일201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러시아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퇴장 때문에 경기에 출장할 수 없었던 제롬 보아텡과 함께 카잔 아레나의 관중석에서 국가대표팀치욕적인 순간을 보았다.[15]

2018년 7월부터 FC 바이에른 뮌헨 U-17 팀을 지휘한다고 한다.[16]

2019년 1월 현재 클로제의 지휘 하에 뮌헨 U-17팀은 서남부 주니어 분데스리가에서 14승 2패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16경기에서 무려 41득점이나 한 것은 덤. 누가 월드컵 득점왕 출신 아니랄까봐...

2019년 5월 클로제의 팀은 서남부 주니어 분데스리가에서 1위를 해 결선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었다.[17] 상대는 쾰른. 하지만 쾰른에게 아쉽게 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2019년 11윌 현재 새로운 시즌 중 3위로 나름 선방하고 있다. 다만 아우크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하필 1대7로 대패했다(...).

2020년 5월 7일 FC 바이에른 뮌헨 1군팀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공홈 팀에 합류한 것은 7월 28일이다.[18]

2021년 4월 18일, 한지 플릭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사임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클로제도 2021년이 계약 만료인데 재계약 가능성이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빌트의 기사에 따르면 클로제가 U-17 감독 시절에 하산 살리하미지치(브라쪼) 단장의 아들인 닉 살리하미지치가 클로제 체제에서 거의 출전하지 못 했기에 불만을 가진 브라쪼가 클로제를 다른 연령대 팀으로 보내려고 했었다고 한다.

클로제는 2021년 4월 19일 독일 키커지와의 인터뷰에서 2020-21 시즌이 끝나고 한지 플릭 감독과 함께 팀을 떠나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클로제는 "울리 회네스 명예회장과 칼-하인츠 루메니게 의장은 개인적인 욕심을 버린 채 팀에 헌신했기 때문에 뮌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단장은 사람 사이에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하산 살리하미지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

2021년 5월 19일(한국 시간) 결국 헤르만 게를란트도 계약이 끝나면 팀을 떠날것이라고 말하며 클로제와 게를란트는 당분간은 바이언에서 볼수없을것으로 보인다.

키커에 의하면 건강문제로 인하여 코치일을 잠시 쉴 예정이라고 한다. 클로제의 인터뷰에 의하면 3주전에 다리에 통증에 있어 병원에 찾아갔는데 혈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코치임에도 공을 차는 것조차 못하는 중이며 특수스타킹을 내내 신고있어야 한다고..

DFB 감독으로 부임한 플릭이 클로제를 코치진에 데려오는 것을 원했으나 위에 상술한 것처럼 건강문제로 인하여 거절했다.

2022년 6월 17일에 오스트리아의 SC 라인도르프 알타흐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이후 리그 꼴찌를 기록했고 2023년 3월 20일에 경질되었다. #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5.3. 수훈[편집]


  • 은월계수잎 훈장: 2002, 2006, 2010, 2014


5.4. 개인 기록[편집]




5.5. 출전 기록[편집]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9-00
카이저슬라우테른
분데스리가
2
0
0
0
0
0
0
0
0
2000-01
카이저슬라우테른
분데스리가
29
9
0
2
0
2
0
12
2
2001-02
카이저슬라우테른
분데스리가
31
16
2
4
0
-
-
-
-
2002-03
카이저슬라우테른
분데스리가
32
9
5
4
4
-
-
-
-
2003-04
카이저슬라우테른
분데스리가
26
10
3
1
1
-
-
2
1
2004-05
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32
15
9
4
0
1
0
8
2
2005-06
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26
25
14
3
2
2
0
9
4
2006-07
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27
10
16
1
0
2
0
12
3
2007-08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27
10
8
6
5
2
1
12
5
2008-09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26
10
7
4
3
-
-
8
7
2009-10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25
3
1
5
2
-
-
8
1
2010-11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20
1
1
4
3
-
-
2
1
2011-12
SS 라치오
세리에 A
27
13
5
2
0
-
-
6
3
2012-13
SS 라치오
세리에 A
29
15
1
2
0
-
-
5
1
2013-14
SS 라치오
세리에 A
25
7
2
0
0
-
-
3
1
2014-15
SS 라치오
세리에 A
34
13
6
6
3
-
-
-
-
2015-16
SS 라치오
세리에 A
24
7
0
1
0
-
-
4
1


6. 여담[편집]


  • 2005년생 쌍둥이 아들인 노아루안이 현재 TSV 1860 뮌헨 유스(U-19)에서 뛰고있다. 따라서 아버지 요제프부터, 아들인 노아와 루안까지 3대가 축구선수인 축구인 집안이다.
  • 팀에서는 부진하지만 국대에서는 날아다니는 애국자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여러 가지가 겹쳐서 2010년 즈음에 발생한 견해로 일단 포돌스키가 국내에서 이 기믹으로 굉장히 흥했던 선례가 있어서 국내에서 독일 국가대표 선수들이 모두 그렇다는 선입관이 있었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분데스리가는 다른 유럽리그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기때문에 한국 축구팬들이 평소에 눈에 안 띄던 독일 선수들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19] 큰 대회가 있는 해에는 독일 선수들이 좋은 기량을 보여주기 때문에 분데스리가에 관심이 전혀 없으면서 독일 국가대표 선수가 경기에서 좋은 기량을 보여진다는 해석은 국내 팬들에게 흥미로운 기믹이다. 그런데 이 시즌 애국자 포돌스키가 클럽에서 극적으로 부활하는 바람에 또 다른 독일 선수가 제물이 되기 딱 좋았고 사실 필요했는데, 마침 클로제가 그 시즌 클럽에선 못 보여 주던 솜씨를 국대에서는 귀신같이 발휘하며 새로운 타깃이 되었다.

  • 피지컬적으로도 테크닉으로도 몹시 빼어난 정도는 아니라 스페셜로 엮거나 주목받을 만한 플레이 같은 게 별달리 나올 게 없었던 것, 옛 소속팀인 베르더와 카이저슬라우테른이야 챔스 진출할 일이 없거나 진출해도 크게 대단할 게 없었던 것, 바이에른에 입단하고 나선 첫 해 유로파, 두번째 해 국내의 무관심 속에 득점 1위를 달리며 드디어 빅 매치라 할 수 있는 챔스 8강 바르샤 전에서 팀 전체가 줄부상에 시달리고 본인도 득점 1위가 무색하게 병원행 티켓을 끊으며 바이에른이 안드로메다에 갔다왔고 이 여파로 또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 09/10 시즌 다시 챔스 티켓을 끊은 바이에른 뮌헨이 챔스 결승까지 진출했는데 클로제는 코빼기나 좀 보였던 것, 이를 다 취합해 보면 클로제의 전성기 8년 동안 분데스에 관심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월드컵이나 유로 때면 눈에 띄던, 그것도 아주아주 크게 띄던 선수였던 것, 특히 10년 월드컵은 대기록 달성까지 겹치며 이에 시기하고 조바심 내는 호돈빠들의 음해와 분탕질까지 겹치며 애국자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 비단 위와 같은 이유뿐 아니더라도 실제로 국대에서의 활약이 클럽보다 더 나았으며 임팩트도 강했다. 클로제의 기록을 보면 리그에서 20골을 넘긴적은 베르더 브레멘 시절 단 1시즌 뿐인데 그 1시즌을 제외하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는 단언코 얘기할 수 없었다. 현재와 달리 2경기당 1골이면 월드 클래스라고 불릴만 했지만 그 기준에 부합하는 시즌도 많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리그 최고 수준이냐를 논해야하는 정도였는데 당시 분데스리가의 위상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2000년대 중후반 독일의 암흑기에 맞물려 독일 분데스리가 자체도 상당히 침체되어있었다. 명백히 2000년대 중후반은 EPL이 압도하고 있었으며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그 뒤를 잇고 있었다. 그러니 독일 리그를 떠나지도 않았으며[20], 그마저도 빅클럽도 아닌 팀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뮌헨에서는 30줄에 들어섰던 선수가 기가막히게 국대에서는 잘하니 이러한 이미지로 보일만 했던 것.

  • 존경스러운 인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한번은 클럽 경기에서 클로제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넘어졌다. 심판이 오심으로 상대편에게 페널티 킥을 선언하자, 클로제는 상대편의 반칙으로 넘어진 게 아니라 바닥이 패여 있어서 내 실수로 넘어진 것이라며 페널티 킥을 거부했고, 곧바로 필드골로 당당하게 골을 넣었다. 동료는 물론이고 상대 선수들에게도 좋게 대하고, 심판에게도 크게 소리치는 법 한번 없다. 성실하고 착한데다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아직도 다른팀에선 주전으로 뛸법한데도 벤치에만 앉아있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꾹 눌러오다 감독이 떠나자 가벼운 인터뷰 한 번으로 넘기는 인품을 보면 참 점잖은 사람이다. 다만 페널티킥의 경우는 이건 한 경기에서의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나 당시에는 VAR도 없었던지라 심심찮게 시뮬레이션도 나오던 시기였다. 결코 가볍게 여길만한 것은 아닌 것.
파일:external/cdn3.wn.com/0a0e50db2fcd5aafe32ba4888f71-grande.jpg
12년 라치오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코너킥을 핸드볼로 골을 넣은 다음, 핸드볼 사실을 시인했다. 독일에서처럼 골 넣고 이겼다 해피엔딩~이 되진 않고 0:3으로 패하긴 했지만 참 보기 드문 페어플레이 정신. 이로 인해 상대 팀이었던 나폴리 선수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 클로제가 바이에른으로 떠나올 당시에는 이적에 관한 잦은 언론플레이와 바이에른과의 불법접촉으로 인해 팬들과의 관계가 정말 최악이었다. 또한 클로제의 부인이 팀동료였던 패트릭 오보모옐라와 그렇고 그런 관계였고 임신까지 했다는 악성 루머까지 돌았다. 그런데도 클로제는 고소 한 번 않고 그냥 조용히 떠나갔다.

물론 불법접촉을 했고, 이적문제로 팀을 뒤흔들어놨던 클로제의 잘못도 있지만 팬들의 대응과 언론의 반응이 너무 저질이었다. 그런데도 묵묵히 덮어버린 클로제를 깔 수가...처음에 바이에른 팬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아니 바이에른 팬들 상당수도 '이런 충성심이라면 필요 없다' 라는 소리까지 했는데 나중에는 클로제를 옹호해 줬으니...참 클로제는 저때 이적 관련해서 처신을 잘못한 거 말고는 깔 거리가 없었다. 아니 그때 욕 먹던 이유도 '저렇게 하면 팀이 이적료도 제대로 못 받으니 문제가 있다'였는데 결국 바이에른이 베르더에게 매우 후한 금액을 줬으니 감정적인 게 아니고서야 깔 게 없기도 하다. 뭐, 아직도 베르더 팬들은 클로제 이적 얘기 나와도 복귀는 없었으면 한다고들 할 정도지만.

이렇게 신사스럽고 점잖은 사생활과 팀의 승리를 위해 사심없이 정열을 다하는 플레이 덕분에 한국의 분데스 팬들로부터 미로 형, 로제 언니라고 불리며 많은 호감도를 쌓고 있다. 허나 왠지 베르더 팬이나 바이에른 팬들로부터는 알게 모르게 경원시되는 면도 많다. 베르더 팬들에게는 이적 소동 때문에 바이에른 팬들에겐 부진 때문에...베르더 팬의 경우 뉴비면 이적 소동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바이에른 팬들의 경우 뉴비면 최근의 부진 때문에 클로제를 탐탁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올드비들은 베르더의 경우 이적 소동의 앙금이 있고, 바이에른의 경우 잘 해 주던 시즌의 기억이 있어서 비교적 관대하다. 어차피 바이에른이 클로제 없다고 시즌 망한 것도 아니고 올리치, 뮐러, 고메즈가 다 땜을 해 줬기 때문에.

  • 상술되었듯 비교적 유명한 팀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서 클로제의 업적이나 실력이 과소평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2000년대 들어 독일은 단 한번도 역대 최강 팀이라고 부른 적도 없고 오히려 최악의 팀이라는 이야기만 많이 들었다. 그런 팀을 일으켜 세운게 미하엘 발락, 올리버 칸, 미로슬라프 클로제 세 사람으로 02년 결승전으로 팀을 보냈고[21] 유로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06년에는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힘으로 부숴서[22] 기적적인 동점골로 팀을 4강으로 보냈다. 10년에는 잉글랜드에게 일격을 먹이는 선제골로 팀의 대승을 가져왔으며 탁월한 위치선정으로 아르헨티나를 또 다시 침몰시켰다. 유로컵 준우승, 월드컵 준우승, 월드컵 3위 2회 그러나 끝내 유로컵과 월드컵 어느 쪽에서도 우승을 하진 못했다. 하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인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다시 나갈 확률을 이미 70% 이상으로 잡고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스웨덴전에서 두 골을 넣는 등 2013년에도 만 35살의 나이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상황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독일 축구협회에서도 그렇고 클로제는 거의 무조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다시 나간다고 봐야 한다. 클로제의 실력이 하향곡선이 된다 해도 독일 축구협회에서는 클로제를 후보로라도 해서 무조건 국가대표 엔트리에 넣을 것이며 조별리그에서 실력이 약한 팀을 만나면 100% 클로제를 선발 출전시킬 것이 확실하다. 두 골만 넣으면 역대최다득점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4년 독일 국대 엔트리에 최종선발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약한팀이 브라질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23]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클로제가 골을 넣은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24].

  • 펠레의 저주의 최고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펠레FIFA 100을 선정할 때 클로제가 2002년 월드컵에서 아주 인상깊은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로제를 FIFA 100에서 제외시켰는데 클로제는 이후 세 월드컵에서 5골, 4골, 2골을 퍼부으며 총합 16골로 현재 월드컵 본선 득점에서 호나우두의 기록을 깨고 최다골을 기록했다.

  • 브라질 월드컵 이후, 호나우두 팬들의 극딜을 받고 있다. 월드컵 통산 득점 기록을 깼을 뿐인데, 위에 언급된 애국자 드립을 치면서 클로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에 클로제를 인정하는 축빠 및 호나우두 안티들(정확히는 팬들의 무차별 찬양에 질린 축팬들)이 반격을 하면서 점점 떡밥이 커지는 중.

다만 호나우두의 악질빠들은 2번의 월드컵에서 12경기 14골을 기록한 게르트 뮐러나 단 한 번의 월드컵에서 13골을 넣은 쥐스트 퐁텐의 사례를, 그러니까 호나우두보다 월드컵 경기당 득점률이 더 뛰어났던 이들 선수들의 사례를 언급하면 월드컵에 더 오래 나오는 것도 실력이고 어쨌거나 골도 더 많이 넣었지 않았냐고 하는 바람에 이중잣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득점은 현대의 압박수비가 나오기 전의 기록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참고로 게르트 뮐러는 경기당 2.97골 나오던 시절이고, 쥐스트 퐁텐은 경기당 3.6골 나오던 시절. 호나우두는 경기당 2.52골 시절에 1978년 이후로 최다 8골. 참고

그러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저 악질적인 변명일 뿐이다. 동시대의 경기당 득점률을 따져도 퐁텐 시절의 기록은 호나우두 시절의 1.42배 정도이지만 쥐스트 퐁텐의 월드컵 기록은 경기당 무려 2.17골로 호나우두의 0.79골의 무려 2.74배나 된다. 이것은 명백한 이중잣대이다. 애초에 다른 선수들의 기록을 무조건 깎아내리면서 특정 선수의 기록만을 찬양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인 것. 이런 저런 이유로 호나우두가 클로제보다 나은 공격수라는 점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클로제를 B급 공격수 취급할 정도로 비하하는 태도도 많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클로제의 실력을 인정한다고 해서 호나우두의 평가가 떨어지는 일은 결코 없으며 그 때문에 굳이 클로제가 보여준 것을 무시하며 그를 크게 비하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명백히 호나우두가 클로제보다 좋은 커리어를 쌓았고 또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클로제를 깎아내리는 것이 옳진 않다.

결국 가장 뜨거운 불씨가 뭐였냐면, 최소한 국내 호나우두 팬들 사이에서는 월드컵 최다 득점이라는 호나우두의 기록을 바탕으로 타 선수를 숱하게 폄하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클로제가 월드컵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워 버리자 최다골 기록을 바탕으로 타 선수들을 폄하하고 호나우두를 치켜올리던 행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호나우두를 치켜세우고 타 선수를 깎아내리려던 행위가 무색해져 버린 것이다.

이 내용과는 별개로, 압도적인 국가대표 성적에는 뒤떨어지지만 클로제의 클럽 성적이 초라한 것은 결코 아니다. 득점 기록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물론 당대를 주름잡은 선수들에 비하면 다소 부족했고 이와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발롱도르 수상자를 뽑는 그 시대의 기자들 중 누구도 클로제를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클로제 혼자서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독일 국가대표팀과 함께였기 때문에 최다 골 기록이 가능했다는 평가이다. 이는 2018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에게도 같은 시선으로 이어졌는데, 그 누구도 월드컵을 우승했음에도 프랑스 선수가 발롱도르를 수상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25] 진정한 의미에서 팀의 위력이 더 강한 팀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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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도적인 헤더 비율을 볼 수 있다. 클로제의 경우 16번째 골까지 모두 페널티박스 안이며 그 골을 득점한 경기가 바로... 미친 활동량을 자랑하지만 득점 찬스에는 어느새 페널티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국대 클로제의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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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중제비를 잘한다. 그래서 클로제는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할 때마다 한동안 세레머니가 공중제비로 고정되어 있었으나 30줄에 접어든 뒤로는 부상의 위험 때문인지 자제하고 있다. 그러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가나전에서 호나우두의 월드컵 최다골과 타이를 이룬 뒤 공중제비를 선보였는데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지 완벽하게 착지하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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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공격수들 중 2위에 이름을 올렸다.
  • 2023년 8월 31일에 UEFA 회장상을 수상했다.

6.1. 가우초 세리머니[편집]


독일의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자신을 제외한 5명의 선수[26]들과 "가우초는 이렇게 걷지, 독일인은 이렇게 걷지."라고 외치며 패자를 조롱하는 춤을 췄다고 문제가 되고 있다. 다만 이 춤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인종차별과는 관계가 없다. 분데스리가의 전통을 모르는 기자의 오해가 빚은 사태로, 이 응원 자체는 각국의 응원을 소개하는 네이버 페이지에도 실려 있는 굉장히 유서 깊은 응원으로 'XX는 이렇게 걷지, 독일인은 이렇게 걷지'라는 후렴구를 되풀이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와 싸워 이겼을 경우 Osis라고 붙이는 식. 즉 상대가 진 걸 놀리고 자기 팀이 이긴 걸 높이는 노래라서 설령 태도니 조롱이니 뭔가 비판을 하더라도 인종차별 이야기는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이 일파만파 퍼진 원인은 자국 리그의 문화도 잘 모르는 슈피겔지(紙)의 기레기 하나가 쓴 기사[27]가 해외로 퍼지며 뜬금없이 인종차별과도 연관되고 나치 전범문제까지 언급하며 아주 실제와는 다르게 와전되어 클로제를 아주 천하의 개쌍놈으로 만들어놓았다. 이 세레머니는 오래전부터 분데스리가와 독일 국대에서 경기 종료 후, 혹은 팬들과의 축제에서 행해진 한 가지 문화와 같은 세레머니이다.[28] 방법은 간단하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힌채 전반부를 부르고,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며 후렴구를 외치며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So gehen die 상대나라/상대팀, die 상대나라/상대팀 gehen so - So gehen die 독일/자기팀, die 독일/자기팀 gehen so!
상대 팀 이름 자리에 나라 이름이나 상대 클럽만 넣고 부르면 되는 간단한 노래이다. 그냥 경기에서 져서 고개를 떨구고 집에 들어가는 상대팀 모습과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승자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애초에 아르헨티나는 백인 인구가 대다수인 국가로, 독일에 대한 국민 정서도 좋은 편이다. 가우초(Gaúcho, 가우초 내지는 가우슈, 남미 카우보이)가 아르헨티나 비하 단어라는 것도 억지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마스코트가 가우초를 본뜬 가우치토(Gauchito)이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인 호나우지뉴의 별명도 가우슈인데, 비하 단어라면 굳이 별명으로 부를 이유가 없다. 독일인도 Jerry나 Kraut라는 멸칭으로 불리지만 이걸 인종차별이라고 시비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좀 더 겸손했더라면 아예 안 해서 논란의 여지나 오해를 받을 거리를 사전에 만들지 않는 것이 좋았을 텐데 맥주를 들이키고 올라간 상황이다 보니 역시 아래에서 말하듯 술이 웬수인 것이나 다름없다.

앞뒤 사정을 아는 독일 축구연맹이나 관계자들도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도 그러려니 하며 쿨한 반응이다.[29] 월드컵 이후 잡힌 뒤셀도르프에서의 독일과의 친선 경기도[30] 문제없이 진행된다. 독일 축구 연맹 회장의 반응이나 슈피겔 # 등 독일 언론의 비판 역시 인종차별이 아니라 겸손하지 못한 선수단의 행실에 초점을 맞춰 비난하고 있다. 빌트 지 칼럼의 마지막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Der deutsche Gaucho-Dance war eine Schnapsidee. Die Nationalspieler werden kritisiert, weil sie bei der WM-Feier einen fragwurdigen Tanz auffuhrten. Eine Petitesse und Harmlosigkeit, wie sie in Fußballstadien hundertfach schlimmer vorkommt, meinen nun die einen. Die anderen sprechen von einem unentschuldbaren Fehlverhalten, welches die Feierlichkeiten, ja gar die ganze WM zu einem gigantischen Eigentor werden ließe. Tatsachlich war die Vorfuhrung keine Glanzleistung. Man muss aber auch nicht ubertreiben.

가우초 춤은 바보 같은 아이디어였다. 국대 선수들은 논란이 되고 있는 춤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경기장에서는 그것보다 더한 것들이 일어나기에 별 것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용서되어서는 안 되고 전체 월드컵을 망치는 행동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국대 선수들의 쇼는 잘한 일은 아니지만 너무 지나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파일:클로제_보아텡.jpg
그리고 독일은 4년 후 열린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에게 2:0으로 무참히 패배했고, 이제는 모든 국가들에게 조롱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가우초 세레머니의 원인 제공자였던 클로제는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이 계속 포착되었다. 지난 대회 4강에서 클로제가 월드컵 최다골 기록을 경신할 때 종전 기록 보유자였던 호나우두가 조국이 치욕적으로 패배하고 자신의 기록도 깨지는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봤었는데 이제는 클로제가 그 신세가 되었다.
[1] 성인 클로제의 발음이 /ˈkloːzə/여서 표기만 보면 클로저지만, 독일어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독일어의 e는 발음 상관없이 그냥 ㅔ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기에 클로제가 맞다.[2] 그의 아버지가 프랑스로 이적했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프랑스 부르고뉴로 이주해서 7살 때까지 프랑스에서 자랐다.[3]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출장 2위, 최다 득점자. 역대 출장 1위는 로타어 마테우스.[4]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 브라질전에서 독일의 두 번째 골을 넣고 환호하는 클로제의 모습이다. 클로제는 이 골로 호나우두가 보유하고 있던 월드컵 최다 골 기록을 경신했다. 하필 이 경기를 브라질에선 호나우두가 중계하고 있었다.[5] 5골[6] 5골[7] 독일 대표팀 71골, 월드컵 16골[8] 실제로 클로제의 월드컵 득점을 보면 대부분이 공간 침투를 통해 가장 좋은 위치에 들어가서 득점하는 장면이다. 피지컬을 이용해 찍어누른 골은 2002년 사우디전을 제외하면 별로 없다.[9] 물론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클로제는 동시대의 디디에 드록바와 같이 득점력뿐만 아니라 2선과의 연계플레이에 있어서도 뛰어난 상당히 현대적인 타입의 공격수였다. 이는 당시 국내에서 분데스리가의 인기가 전혀 없었던 이유로 생긴 편견이다.[10] 심지어 2001년에 바이에른 뮌헨은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였고 2002년 월드컵 직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독일 팀인 레버쿠젠이 진출했었다.[11] 클로제가 뛰던 시절 베르더의 공격수 넬슨 발데스,클라스니치, 아론헌트, 모하메드 지단은 커리어하이의 득점을 이뤘다.[12] 남아공 월드컵 8강 아르헨티나전 때도 득점 후 이 세리머니를 선보였다.[13] 실제로 2012-13 시즌부터 브라질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세리머니를 자제하고 있다고 했었고 다행히 월드컵에 나가서 기록 경신에 성공했다.[14] 엉덩방아를 강하게 찍으면 부상 당할 위험이 있어서 세리머니 실패 때를 감안해 손으로 안전하게 착지했다.[15] 근데 참 의문인 것이 현역 선수는 아니나 독일 국대와 동행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는 것인데, 정작 독일 선수들은 러시아 월드컵 동안 하라는 연습은 안하고 밤새서 새벽까지 게임을 해대고, 규율을 어기고 파티나 하고, 기초적인 체력 훈련도 안 하고 놀고먹기 바쁜 등 기강 해이가 드러났다. 레전드 선배, 그것도 14년 전 친선전인 한국과의 경기에서 쓰라린 경험을 해본 선배 앞에서 이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데, 은근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은 딸리거나, 같이 놀았거나(...)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아예 리더십이 딸리는 것 같진 않은 게 후술하듯 뮌헨 U-17 감독으로는 승승장구를 하고 계셔서... 결론은 당시 독일 선수들 절반이 4년 전에 같이 뛰었던 후배들이니 같이 놀았던 걸로...[16] 사실 클로제는 이미 2017년 프리 시즌에 바이에른과 함께 아시아 투어에 참가하는 모습도 보였다.[17] 독일 U-17 분데스리가는 3지역으로 14팀씩 3개의 리그가 시즌을 치르고, 3개 리그 중 1위 3팀과 2위 한 팀이 4강 플레이오프를 해 전국 우승자를 가린다.[18] 헤르만 게를란트와 함께 공동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19] 손흥민이 잠시 분데스리가에 있는동안 이런 현상은 잠시 해소되었다.[20] 말년에 라치오로 갔긴 했지만, 애국자 이미지가 생긴 2000년대 후반 기준.[21] 조별리그에서 클로제의 활약은 돋보였다. 승점자판기였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아일랜드와 카메룬과의 경쟁인데 아일랜드와의 1-1은 클로제의 골이었고, 카메룬 전에서도 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보이며 승리를 이끌었다.[22] 진짜로 그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는 클로제와 접촉 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들것에 실려갔다.[23] 실제로 클로제가 월드컵 때 선발 출전한 상대를 보면 프랑스,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였다...그리고 그 세 경기에서 독일은 무려 3승 9득점 1실점이라는 흠좀무한 기록을 세웠다.[24] 골을 넣은 49경기에서 40승 9무, 비슷한 기록의 소유자로 이니에스타가 있다.[25] 2018년 발롱도르는 2018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루카 모드리치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26] 마리오 괴체, 토니 크로스, 안드레 쉬를레, 로만 바이덴펠러, 슈코드란 무스타피[27] 독일도 그렇고 스포츠 전문지가 아닌 일반 신문에서 스포츠 기사를 다룰 때는 종목을 잘 알지 못하는 기자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게까지 큰 사고를 치는 일은 없어서 잘 모를 뿐이다.[28] 알싸인들도 이 사건 후에 사이트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었다.[29] 물론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잠시 발칵 뒤집어졌지만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냥 묻히고 있는 분위기이다.[30] 다만 이건 월드컵 결승전 때문에 복수전을 치르려고 잡은 게 아니라 월드컵 한참 전부터 친선 경기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어찌저찌해서 사정이 그렇다 보니 자존심 싸움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참고로 독일은 아르헨티나에게 월드컵에서는 4승 1무 1패로 엄청난 우세이지만 A매치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호구이다.

[분류:공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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