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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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菱自動車工業株式会社
Mitsubishi Motors
미쓰비시자동차공업주식회사
파일:Mitsubishi_Motors-Logo.wine.svg파일:Mitsubishi_Motors-Logo-white.svg
기업명
정식: 三菱自動車工業株式会社
영어: Mitsubishi Motors
한국어: 미쓰비시자동차공업주식회사
창립일
1970년 4월 22일
시장 정보
도쿄증권거래소 1부 7211
수뇌부
카토 타카오 (대표이사 CEO 겸 회장)
본사 소재지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우라 3쵸메 1-21
산업 분야
자동차 산업
최대주주
닛산 34.03%[1]
자본금
2,843억 8,200만엔 (2022년 3월 기준)
매출액
연결: 2조 389억엔 (2022년 3월 기준)
영업이익
연결: 873억엔 (2022년 3월 기준)
홈페이지
글로벌 일본

1. 개요
2. 역사
2.1. 설립
2.2. 전성기
2.3. 하락세
2.4. 구조선 찾기
2.5. 급한 불은 껐지만
2.6. 생존 모색
3. 대한민국의 인연
3.1. 현대자동차와의 관계
3.2. 대한민국 진출
4. Ralliart
5. 성룡과의 관계
6. 생산차량
6.1. 승용
6.2. 상용차
6.3. SUV/RV
7. 단종차량
7.1. 승용
7.2. 스포츠카
7.3. SUV/RV
7.4. 픽업트럭
8. 컨셉트 카
9. 합자회사




1. 개요[편집]


정식 명칭은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 (三菱自動車工業, Mitsubishi Motors Corporation). 한국에는 '미쓰비시 모터스' 명칭으로 진출했다. 과거에는 이름처럼 미쓰비시 그룹의 계열 기업이었으나, 2016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었다.[2] 이름은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으로 바뀌었다.

일본 내에서는 경차부터 대형차까지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고 있으나 해외시장에서 주력으로 수출하고 있는 차종들은 대개 위에서 말한 C세그먼트급의 모델이 아닌 이상 SUV 모델로서, 그 라인업이 충실하지는 않은 편이다. 상용차 전문 제조 회사인 미쓰비시 후소의 경우, 1980년대까지는 미쓰비시 자동차 소속이었으나, 2000년대 초반에 이미 다임러 트럭에 넘어갔다.


2. 역사[편집]



2.1. 설립[편집]


원래는 미쓰비시 중공업 산하 자동차 사업부였다. 1960년에 나온 '미쓰비시 500', 1962년 '미니카'라는 경차를 시작으로 승용차 업계에 뛰어들기 시작, 1963년 콜트1000, 1969년에는 갤랑을 내놓더니 1973년 랜서의 첫 모델을 내놓게 된다. 그리고 1974년에는 아프리카 사파리 랠리를 완파하여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1970년 2월, 미쓰비시 중공업이 미국 크라이슬러와 합작사업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고, 그 해 4월 22일. 미쓰비시 자동차로 물적분할되었다. 1971년부터 제휴선인 크라이슬러를 통해 갤랑을 수출하기 시작했으며[3] 이후로도 미라쥬 등의 다양한 모델을 내놓으며 그럭저럭 잘나가고 있었다. 특히 1979년부터는 크라이슬러 호주 지부를 인수해 미쓰비시 차종의 현지생산도 주도했고,[4] 미국에서는 크라이슬러와 합자를 내서 1985년에 '다이아몬드 스타 모터스'라는 법인을 차린 뒤 차량을 공동으로 설계, 생산, 판매하기도 했다.[5]

1978년부터 2011년까지는 토요타 등 다른 일본 자동차 회사들처럼 차급에 따라 세분화된 딜러[6]를 갖추기도 했는데, 랜서, 미라쥬, 콜트 등은 '카 프라자점'(Car Plaza)에서 팔았고, 갤랑은 말 그대로 갤랑 전문점에서 팔았다. 2012년부터는 이런 형태를 폐지하고 다시 미쓰비시 대리점으로 단일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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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이 미쓰비시 그룹인지라 예나 지금이나 쓰리 다이아몬드 로고를 사용하지만, 70년대 후반~1991년까지는 위 사진과 같이 일본 내수용 한정으로 사명의 영문 이니셜 'MMC'를 도안화한 로고와 병용하기도 했다.


2.2. 전성기[편집]



미쓰비시 자동차 다카르 랠리 CM. 1980년대 CM송을 대부분 마츠토야 유미가 담당했다고 한다.

1990년대 초부터 파제로랜서 에볼루션으로 전 세계의 각종 랠리에서 연전 연승을 거두고, 말레이시아의 자동차 회사인 프로톤[7]에 차량 생산에 대한 각종 기술을 제공하고, 유럽의 PSA 그룹볼보, 그리고 현대자동차에 자신들의 휘발유 직접분사 엔진 기술을 제공하는 등 '기술의 미쓰비시'라는 이미지로 닛산을 압박하고 뒤이어 혼다와 경쟁하며 일본 내 2등 자동차 회사라는 타이틀을 거의 거머쥐었다.

파제로, 샤리오, RVR 등을 내세워 1990년대에 "RV의 미쓰비시"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의 호황을 기록한 바 있다.


2.3. 하락세[편집]


1990년대 후반부터 경영진들의 나태와 오만은 미쓰비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실제로 당시 컨설턴트이자 전 회장이었던 구보 도미오(久保富夫)도 말년에 현대차와 비교하면서 임원들을 타박할 정도었다. # 쿠보 토미오는 미쓰비시 중공업/자동차에서 전설적으로 통하던 사람이다. 1931년 도쿄제국대학[8] 공학부 항공학과를 졸업하고, 미쓰비시 중공업 비행사업부로 입사뒤에 바로 Ki-46 100식 사령정찰기 개발 주임을 맡았고. 전후에는 자동차 사업부로 이적해 공장장에서 회장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현대자동차에 기술 협력을 실시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기초를 쌓게 해준 은인이기도 하다.

닛산 못지않게 동일한 플랫폼으로 개성없는 여러 가지 모델을 만들어내서 팔았으며,[9][10] 1980년대부터 '달리는 실러캔스'[11]라는 치욕적인 별명과 함께 말아먹기 시작한 고급차 시장은 현대자동차와 손을 잡은 뒤에도 마케팅 실패, 품질 문제 등으로 여전히 좋은 평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차량의 품질은 계속 하락했으며 이에 반해서 차량의 부품값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그래도 이전에 승승장구했던 미쓰비시 자동차는 이미 1996년부터 경영진들의 나태와 오만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나태와 오만은 1996년 4월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자회사에서 터진 성희롱 사건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인 여직원 약 300명이 직장 내에서 상습적 성희롱을 당해왔다며 집단 고소한 것이다. 미쓰비시는 3,400만달러(약 380억원)라는 성희롱 소송 사상 최대의 화해금을 물고 사건을 종결지었으나 회사 이미지는 치명적 타격[12]을 입었고 덩달아 미국 내 매상도 감소하고 만다.

2000년대 초에는, 자사에서 생산했고, 생산중이었던 120만 대[13]의 차량들에 중대한 결점[14]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은폐해 오다가 운전자의 사망 사고 후 언론 보도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기업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판매량 및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며[15] 회장이 경찰에 체포당하고 회사가 도산 직전까지 갔다.[16][17]

이후 대대적인 공개 사죄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신모델을 내놓으면서 어느정도 회복은 한 상황이지만 현재 사정이 그렇게 좋지 못하며, 어려운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모 회사인 미쓰비시에서는 방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더욱 난처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지금의 몰락까지 왔다고 한다. 실제로도 미쓰비시 그룹 내에서의 미쓰비시 자동차의 비중은 의외로 굉장히 작다.[18]

2008년에 크라이슬러로부터 인수 후 30년 간 현지 모델 개발과 함께 운영하던 호주 공장을 시작으로, 2012년에 DAF 공장으로 시작해 볼보와 합작한 네덜란드 Nedcar 현지공장, 2015년 9월 25일에 미국 일리노이 현지공장을 모조리 폐쇄 후 다른 기업에 매각함에 따라 외국 생산 거점을 모조리 잃었다. 각각 VDL[19]리비안에 매각되어 활용되고 있다.

2.4. 구조선 찾기[편집]


원체 1990년대 중후반부터 기존의 지분 관계에 있어 제일 큰 대주주가 다임러-크라이슬러였다. 물론 이 시기 전 1980년대부터 이미 크라이슬러와도 엔진이나 주요부품 등에서 협력관계를 맺어왔고, 크라이슬러도 미쓰비시 자동차의 주주로 참여하고 있었다.[20]

1990년대 중후반 크라이슬러다임러-벤츠가 인수하여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자, 그룹의 주축인 다임러-벤츠 측에서는 크라이슬러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미쓰비시를 다임러의 아시아 기지로 쓰기 위해 승용과 상용 부문을 몽땅 인수했었고, 현대자동차와도 손을 잡았었다.[21][22] 하지만 결국 다임러 벤츠 측에서 크라이슬러를 털어내면서 2005년 주식을 모두 매각하고 미쓰비시에서 손을 떼었으며, 대신 수익을 그럭저럭 잘 낸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계획대로 제대로 인수합병했다.

조금 더 말하자면, 미쓰비시 자동차는 다임러-벤츠가 주축인 다임러크라이슬러에서 전폭 지원해 주는 와중에서도 몰락을 거듭하는 중이었고, 그러던 중 크라이슬러와 지지고 볶던 다임러 벤츠가 크라이슬러와 결별하면서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이 와해되자, 벤츠는 미쓰비시 승용부문에서 손 떼버리고, 대신 대형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만 인수하여 다임러 그룹 내의 상용차 부문 아시아 기지로 재탄생시킨 것이다.[23]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쓰비시 그룹 측에선 미쓰비시 중공업을 비롯한 그룹 내 자회사들의 경영까지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자동차 부문이 악화일로를 걷게 되자 더더욱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 자동차 부문 경영악화에 미쓰비시 중공업을 비롯한 그룹 내 자회사들의 경영 악화로 지원이 힘들어지자, 기존의 대주주인 다임러 측은 주식을 증자했고, 이 주식을 푸조가 사들임으로서 대주주 명단에 푸조가 올라가게 되었다. 덕분에 미쓰비시는 푸조에 자사의 준중형 SUV전기차를 공급하는 협력관계가 성립되었다. 당시 대주주인 푸조가 한때 얼라이언스를 제의했으나 미쓰비시 측에서 거절했다.[24] 그럼에도 SUV와 전기차 플랫폼 제공 등의 협력은 앞으로도 계속 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푸조는 오히려 토요타, GM과 밀접히 협력했고 FCA와 합병해 스텔란티스가 된 지금은 일부 구형 차량만 공유하고 있어 계속 된 협력 이야기는 무산된 듯 하다.

2015년부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 협력을 하기로 최종 결정함으로써 미쓰비시의 기함 프라우디아[25]/디그니티를 비롯한 중대형 세단들을 닛산 리뱃지 형식으로 내수 생산하고, 전기자동차와 신형 세단의 개발·생산에 있어서 파트너쉽을 맺기로 하였다.[26] 결국 이러한 이유로 르노코리아 부산 신호동 공장 생산라인에서 미쓰비시의 일부 차종들이 새로 혼류 생산될 예정이었지만 미쓰비시와 르노-닛산 간의 이견차로 중단되어 미쓰비시의 새 중형차 개발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업계에서는 환율로 인해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생산하는 비용이 더 저렴한 것으로 나타나자 미쓰비시가 마음을 바꾼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렇게 르노-닛산 간의 협력도 잠깐 동안 불발되었다가, 연비조작 뻥카가 드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5월 12일이 되자 닛산이 허겁지겁 미쓰비시 자동차 지분 34%의 2,370억엔어치 주식을 사들이고, 덤으로 과징금도 전액 배상해 줌으로써 드디어 미쓰비시 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그리하여 미쓰비시 자동차는 현재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4번째 새로운 일원[27]으로 편입된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르노-닛산 그룹에 레이싱 특화 브랜드가 하나 더 들어간 셈이며, 미쓰비시 측의 기술이 닛산은 물론이고 모기업인 프랑스의 르노와 계열사인 한국의 르노코리아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업계에선 예측하고 있다. 다만 반대로 현재 미쓰비시의 기술력이 전기차 같은 일부 기술을 제외하면 현행 차량들과 비교해볼 때 많이 낡은 감이 있고, 미쓰비시에 실질적으로 남은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르노와 닛산에게 차체와 기술력을 받아와서 이전의 낡은 차체와 기술력을 모조리 뒤엎고 새로운 르노닛산의 차체와 엔진들로 라인업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또한, 이제 미쓰비시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새 일원이 되었기에, 엎어졌던 계획이었던 르노코리아 부산 공장의 미쓰비시 중형차량 혼류생산 계획도 다시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2.5. 급한 불은 껐지만[편집]


2016년 닛산이 최대주주가 되고 한시름 놓았지만, 그럼에도 예전의 명성을 찾을 길이 없는 수렁에 빠진 상태이다. 차량의 경쟁력도 부족한 상태며, 신차는 뜸하고 차량의 완성도 또한 경쟁업체에 비하면 떨어지는 상태. 오죽하면 북미에서 근래 발전중인 현대자동차가 더 나아보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플랫폼 노후화&부재로 세계 시장에서 중형급 이상에서 갤랑, 데보네어, 프라우디아가 전부 단종되며 완전히 철수했고 매년 전년 대비 30%로 판매량이 감소하는 등으로 힘겨운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201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사실상 소형 플랫폼으로의 집중을 선언하며 중형급 포기를 기정사실화했으나 2012년부터 일본 내수시장에 닛산의 일부 모델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미드십 엔진 형식의 경차 i[28](전기차 버전은 i-MIEV) 등이 시장에서 선전하며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으나, 판매량은 일본 내수 시장 부동의 꼴찌 수준이다. 반대로 경차는 닛산과의 합작법인 NMKV를 통해 닛산 배지 모델을 OEM 납품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주목받을 시장인 전기자동차 시장에 대비한 기술력을 상당히 빠르게 키워놓은 상황이라,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은 아니다. 일본 자동차 회사 중 가장 먼저 전기자동차인 i-MiEV를 내놓고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판매량은 낮다.

상황이 이런지라 전통의 모터스포츠 부분에서는 이미 2008년 일찌감치 철수했고, 자사가 직접 하던 렌터카 사업[29]도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2014년 북미 시장에서 사라질 브랜드 리스트에서 볼보와 미쓰비시 자동차를 언급했다. 하지만 볼보는 포드와 결별 후 차이나 머니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고, 미쓰비시는 그야말로 철수는 안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

2014년에는 자사의 간판 모델인 란에보의 단종을 발표했으며, 2015년에는 그 베이스 모델이 되었던 랜서 역시 단종 수순을 밟으면서 사실상 과거의 명성을 전부 잃어버렸다.

2016년에는 연비를 조작한 것이 발각되었다. 처음에는 현 판매 중인 경차 2종[30]이 발각된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추가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무려 1991년부터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즉, 1991년 이후 일본 국내에 출시한 거의 모든 차종의 '연비'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측정해왔다는 뜻이다. "미쓰비시, 거의 전 차종 연비 불법 측정" 아사히 과징금이 1,000억엔이 넘을 것으로 전망되었고, 결국 2016년 5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 2,000억엔을 출자해 과징금 해결을 보면서 미쓰비시 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배상금이 조단위라 스케일이 다르다.

2019년 4월에는 파제로일본 내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세계 최초로 4WD SUV 모델의 PHEV를 발표하여 곧바로 상용화하고 세계 각지의 랠리에서도 다시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데다가, 하이브리드전기자동차에 대한 기술력이 상당해, 자금력만 뒷받침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


2.6. 생존 모색[편집]


전술했듯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아시아 주축인 닛산이 2016년 5월 미쓰비시 자동차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업계나 언론에선 르노 닛산이 미쓰비시와 영향을 어느정도 주고 받으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크게 두가지로 예측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과거 미쓰비시 자동차의 레이싱이나 자동차 관련한 여러 기술들이 모기업인 르노는 물론이고 미쓰비시 자동차를 데려간 닛산과, 르노의 한국 기지인 르노코리아자동차에게도 기술적으로 여러 가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사실 르노와 닛산도 레이싱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미쓰비시 역시 이들과 만만치 않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 파제로 등으로 쌓아온 4륜구동 명성이 아직 다 죽은 것은 아니기에 르노, 닛산, 르노코리아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예측이 적지 않다.

두번째로는 르노닛산엔진과 차체를 미쓰비시에게 제공하여 새로운 라인업을 만들게 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미쓰비시의 기술력은 전기차나 4WD 기술을 제외한 일반 차량 기술력에 한해서는 현행 차량들과 비교해볼 때 많이 낡은 감이 있고, 인수되기 전에도 자신들이 신차를 제작하지 못해 몇몇 닛산의 차를 들여와 뱃지 엔지니어링으로 판매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31] 그래서 이전에 남아있던 낡은 차체와 엔진들을 싹 갈아엎고 르노와 닛산이 새로운 차체와 엔진을 제공해서 다시 미쓰비시 라인업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의견들도 적지 않다.

2020년 7월 27일, 미쓰비시 자동차가 공식적으로 유럽 시장 철수 선언을 했다. 미쓰비시는 2020년 1분기 동안 12억 9천만 파운드[32]의 손실을 입었고, 유럽시장 기준 미쓰비시의 점유율은 1%에 남짓해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높은 동남아시아 시장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미쓰비시의 유럽시장 전면 철수는 이미 예견되어 왔었는데 이미 2012년도 네덜란드에 위치한 연간 20만대의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을 수요 부진, 신차 라인업의 노후화 및 경영난으로 인해 폐쇄하였고, 미래 사업전략 재검토에 돌입하였지만 이후 7년만에 끝내 버티다 못해 유럽시장을 전면 철수하게 된 것이다. 미쓰비시 이사회에 의하면, 자사는 향후 3년동안 회사의 고정 비용을 최대 20% 줄일 계획이며, 유럽시장에서 철수하는 것과 더불어 생산 인력 구조조정, R&D 비용 삭감, 2021년까지 파제로를 생산하고 있는 일본 사카호기 공장[33] 폐쇄 및 모든 생산 설비를 오카자키 공장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수립한다고 밝혔다.

2021년 미국에서는 그나마 간간히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취급은 그리 좋지 못하다. 긴 세월 미국에서 토요타혼다는 고장 안나고 오래 달리는 차로 입지가 완전히 굳어졌고, 3인자인 닛산은 옵션과 가성비는 좋으면서 스타일리쉬한 자가용으로 3인자의 자존심은 지켰다. 그 뒤를 잇는 라인인 마쓰다스바루는 계속 페이스리프트를 해오며 '좋은 일본차란 이런 것이다.'의 트렌드를 굳혀왔다. 특히 마쓰다는 최근 럭셔리를 지향하면서 상위트림은 강하고 스포티한 엔진에 온갖 바느질과 고급가죽으로 도배되어 위상이 매우 높아졌고 스바루는 판매량만 토요타와 혼다의 압도적인 물량에 지는거지 높은 완성도와 내구성은 그들을 압도하기로 유명하며 비교적 흔히 보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34] 반면 마지막인 미쓰비시 자동차는 옛날 미국에 데뷔할 당시현기차의 취급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유튜브 영상 등에서도 JDM 매니아들은 예전의 미쓰비시 자동차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댓글들이 많다.

거기다 요즘엔 신차 R&D 및 기술 개발 비용도 아끼고 있는지 르노 차량들을 가져와 배지 엔지니어링하는 차종들이 늘고 있다. 철수가 확정된 유럽에서 단순한 딜러망 유지 및 환경규제 대응 차원에 가까울 정도로 캡처, 클리오같은 차들을 그릴 정도만 바꿔 미쓰비시 명의로 공유하기 시작했다.[35]

2023년 10월, 미쓰비시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3. 대한민국의 인연[편집]



3.1. 현대자동차와의 관계[편집]


1973년 당시 미쓰비시 자동차는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고, 마침 이웃나라의 신생 기업이었던 현대자동차포드와 결별한 후 자동차 기술 전수를 골자로 한 기술 제휴를 미쓰비시 측에 타진하게 되면서 두 회사의 인연이 시작된다.

본래 미쓰비시 자동차는 1965년에 대한민국 시장 진출을 희망하면서 신진자동차와 기술제휴를 하려고 했었으나 이 과정에서 신진자동차가 미쓰비시 콜트 1500 승용차 100대를 들여오면서 특혜 논란에 신진자동차의 폭리 논란도 일파 만파로 번지게 되었고[36], 이 와중에 토요타가 신진자동차를 꼬드겨서 1966년에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하는 바람에 미쓰비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8년 후 현대자동차와 기술제휴를 체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었다.

기술제휴가 체결된 후 미쓰비시 자동차는 승용과 상용을 통틀어 현대자동차의 기술적인 스승 역할을 하였으며, 자연히 옛날, 즉 1970~90년대에 나온 현대자동차 모델의 가솔린/디젤 엔진, 변속기, 플랫폼 등은 미쓰비시제를 이용했다. 양사의 기술 종속 관계는 실질적으로 3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가, 마지막 합작 모델인 1세대 에쿠스(프라우디아)가 단종된 2008년에서야 완전히 끝나게 된다. 당시 국내 자동차 제조사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다른 외국 자동차 회사들의 태도에 비하면, 미쓰비시 자동차는 현대자동차에 꽤나 잘 해준 편에 속하였다. 덕분에 현대자동차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후반까지 미쓰비시 자동차가 설계한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베이스로 하여 상품성을 높인 모델들을 대거 출시하면서, 국내 및 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에서 자금 조달 문제로 미쓰비시 자동차에 부품 대금 결제를 주식으로 대신하게 되면서 미쓰비시 자동차가 현대자동차의 대주주로 올라서게 되고,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에서 자체적으로 추진 중이던 엔진 독자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해 경영 일선에 개입하여 내부적으로 방해를 시도하였던 정황들도 있었다. 다만 세타 엔진을 개발하면서 세타의 블록을 양사가 같이 쓴 것은 있다.

결함 은폐 사건으로 미쓰비시 회사가 도산 직전까지 가자, 현대자동차의 미쓰비시 인수설까지 나돌았을 정도였다. 실제로 미쓰비시와 현대자동차 양 측 모두 합병을 진지하게 고려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원체 미쓰비시 그룹 자체가 과거 전범기업인 데다 사죄에 대해서는 인색한지라, 만일 미쓰비시 자동차 부문만 현대가 인수한다 해도 "전범기업을 형제로 들이느냐"라고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을 수 있는 일이다.[37] 애초에 이런 외부 반응을 차치하더라도 한참 미쓰비시가 오늘 내일 할 때인 2000년대 초반에는 1997년 외환 위기형제의 난의 영향으로 현대자동차 역시 미쓰비시를 마음만 먹는다고 인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38]

그러나 미쓰비시가 몰락을 거듭한 지금은, 고급차 부문에서 닛산 푸가OEM 방식으로 공급받아 기함인 프라우디아와 디그니티 신형을 만들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미쓰비시 자동차는 자본제휴 관계인 닛산과 르노코리아의 모기업인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동참한다. 닛산이 최대주주이지만 과반에 못 미치기 때문에 일본 법에 정의되는 모회사는 아니며 지분법 적용 관련회사 관계로 취급된다. 미쓰비시의 지분은 미쓰비시 상사 20.02%를 포함해 22%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미쓰비시 그룹에도 계속 소속된다.


3.2. 대한민국 진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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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2008년 9월 대우자동차판매 계열 MMSK를 통해 진출 이후 같은해 10월부터 랜서 에볼루션아웃랜더의 판매를 시작했고, 11월에는 이클립스 쿠페를 선보였으나 당시 엔고 환율까지 덮치면서 2008년 10월 53대, 11월 7대, 12월 5대라는 판매량의 위엄을 보여주며[39] 진출 첫 해에 철수 위기를 겪었다.

이후에는 매월 수십대 정도의 매출은 유지하고 있으나 판매 부진으로 딜러가 이탈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매우 부진했다. 이 와중에도 SBS 드라마 천사의 유혹에 차량 PPL을 진행하는 등 어느 정도 마케팅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2010년 기준으로 랜서(갤랑 포르티스)의 가격은 3,000만원 전후(옵션에 따라 2,900만원대)의 가격을 책정했으나, 랜서 에볼루션은 6,000만원이 넘는 가격이 책정되어 원성을 많이 들었다. 국내 판매된 미국사양 랜서 에볼루션TC-SST에 S-SWC까지 달린 MSRP 45,000불의 풀옵션 사양이였고, 환율 영향도 있으나 시장의 기대수준이 4,000만원 중반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베이스가 된 일반형 랜서도 판매하였으나 국산 준중형과 비교해도 나을 바 없는 품질로 시장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40] 영업사원들의 사정인지 나중에는 신차가 대량으로 중고차 시장에 대거 유입되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쯤되니까 갤로퍼의 원판 모델 파제로가 국내에 발매되었다는 건 아무도 신경조차 안썼다. 결국 철수 고려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미쓰비시만이 아니라 스바루일본차가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맥을 못추는 편이긴 한데, 이정도일줄은 몰랐다는 평이 지배적.

2011년 4월 7일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국내 공식 수입사인 MMSK가 사업을 접고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극심한 판매 부진으로 2011년 1분기 실적이 34대에 불과할 정도로 영업 적자가 심각하며 이와는 별도로 대주주인 대우자동차판매가 워크아웃에 돌입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MMSK는 자본 잠식률이 93%에 달해 기업으로서의 생존력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MMSK가 청산되고 나서 새로운 업체가 그 자리를 메웠는데, 범 한진그룹 계열인 CXC 모터스가 그 자리를 잡았다. 참고로 CXC 모터스의 대표인 조현호는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의 조카다. 2012년 3월 16일 대한민국에 재진출하였으며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재진출 후 2012년 4월까지 등록 및 판매 0대로 단 1대도 팔지 못했다. 2012년 수입차 시장은 독일제 고급 디젤 세단이 급부상하면서 일본차들이 모두 부진하긴 했지만 그 중에서도 미쓰비시 자동차는 2012년 상반기 판매 대수는 22대, 그것도 상당수는 내부 직원 판매로, 일반 소비자 판매는 한자릿수에 불과했다.

결국 2013년 CXC 모터스는 전시장을 폐쇄하여 한 곳만 남은 상태고 이마저도 재고 처분 후에 폐쇄할 예정으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 결국 2013년 7월 한국 영업을 잠정 중단했다. CXC 측은 잠정 중단일 뿐 재철수가 아니라지만 명백한 사망플래그. 2013년 10월 CXC 모터스와 계약이 종료되면서 대한민국에서 다시 철수했고 때문에 대한민국 구매자들은 보증 수리같은 AS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버림받은 상황이다.[41]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3.3. 르노코리아자동차의 협력[편집]


그러나, 현재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미쓰비시 자동차의 최대 주주 상황이니 이제 르노코리아를 통해서 미쓰비시 차들을 A/S받거나 고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르노코리아에서 승용 부문의 부족한 라인업을 미쓰비시에서 들여와 리뱃징해서 채울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 외에도 르노코리아에서 생산되는 차량을 역으로 미쓰비시 라인업으로 리뱃징해서 수출할 수도 있다는 업계 분석도 있다. 원체 닛산이 미쓰비시를 인수하기 전 협력관계일때 르노코리아의 부산 신호동 공장에서 미쓰비시 브랜드의 중형차를 혼류 생산한다는 계획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계획은 잠시 엎어지긴 했지만 이제 미쓰비시 자동차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미쓰비시의 세단들이 르노코리아을 통해 플랫폼과 기술 교류를 하거나, 르노코리아 공장에서 본격적으로 혼류 생산되리라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르노코리아와 협력을 하긴 하더라도, 브랜드 공식수입 자체는 안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 한국시장에서 존재감 없는 인지도, 팬들 울리는 가격, 불성실한 서비스, 전범기업의 그림자로 2번씩이나 미역국을 먹고 또 다시 공식으로 수입한다면 오히려 더 역효과만 부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쓰비시 그룹에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로 본적을 옮기긴 했으나, 전범기업의 먼지를 완전히 털어낸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미쓰비시 브랜드 자체로 판매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미쓰비시의 차를 도입을 하거나 조립생산을 하게 된다면 르노코리아 상표와 차명으로 교체하는 배지 엔지니어링 과정을 거칠 것이다. 만약 미쓰비시 차가 국내에 생산되더라도 닛산 로그 2세대의 전례처럼 수출 전용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르노코리아가 경차로 르노 트윙고를 들여오려다가 국내 경차규격을 초과하는 문제로 포기한 적이 있었기에, 이참에 미쓰비시의 경차를 리뱃징해서 르노코리아로 판매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단, 이는 가능성이 낮은 것이, 미쓰비시의 경차는 현재 일본에서 수출하는 모델이 없기 때문에 우측통행 모델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초기엔 르노코리아의 준중형 플랫폼을 바탕으로 새로운 랜서(후속)를 제작하기로 닛산 측에서 발표를 했다는 문구가 영문 위키피디아에 서술되었다.[42] 이렇게 랜서가 부활한다면 랜서 애볼루션도 르노코리아 차대 기반으로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이 유력했었으나 7월 이후부터는 르노코리아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다는 계획에 대한 말이 영문위키에선 지워졌고 르노-닛산과 미쓰비시 측에서도 이렇게 발표를 했다가 취소하고 왔다갔다 번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당시 정식 인수만 했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플랫폼과 기술협력을 받을 것이란 계획만 잡혔지, 어떤 플랫폼을 어떻게 개발할지는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더 자세한 것은 두고 봐야 할 일이다.참조

르노 또는 르노코리아에서 제작한 차체들이 새로운 미쓰비시 차량의 생산 기반이 될 수 있다라는 것 외에는 아직 정해진게 없다. 때문에 앞으로도 더 지켜봐야 하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측에서는 미쓰비시 브랜드를 최대한 존중해 준다고 했으나, 한 그룹 일원이 된 이상 서로 간의 기술 협력과 공유는 당연히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르노코리아는 지리자동차와 지분 양도를 하며 플랫폼을 공유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2018년경에 출시 예정이었던 미쓰비시의 주력 차종인 아웃랜더의 차기 모델이, 닛산 엑스트레일과 플랫폼을 공용, 종래의 GS 플랫폼에서 닛산 CMF로 변경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때문인지 출시시기가 2019년경으로 늦춰졌다고 한다. 이후로도 소형 플랫폼의 공용 역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미쓰비시의 전 모델이 리뉴얼이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2021년, 아웃랜더가 풀체인지를 하면서 미쓰비시의 자동차 최초로 CMF 플랫폼을 적용하였다.


4. Ralliart[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랠리아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성룡과의 관계[편집]


1980년대 중반부터 홍콩의 영화배우 성룡과 제작협력 관계를 맺기 시작하여, 성룡의 해외진출과 함께 가히 전 세계적인 PPL 효과를 보았다. 미쓰비시 자동차 모델이 성룡의 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84년 영화 쾌찬차부터이며, 이후 용형호제, 폴리스 스토리, CIA, 빅타임 등에 이르기까지 성룡이 출연하는 영화의 상당수에 자사의 자동차 모델이 등장하였다. 1995년작 영화 성룡의 썬더볼트미쓰비시 자동차 홍보영화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PPL의 정점을 이루었다. 경쟁자용 레이싱카를 제외하고서는 영화에 투입되는 차량들을 거의 대부분을 지원했고, 오프닝에서처럼 주인공 설정이 미쓰비시 자동차의 드라이버 연수생으로 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성룡이 홍콩에서 운영하는 정비공장의 견인차조차도 미쓰비시 모델일 정도였다. 실제 이 견인차는 미쓰비시 후소에서 만든 캔터라는 모델로, 현대자동차의 2톤~3.5톤급 중형트럭 모델인 마이티의 초기 모델은 캔터의 라이센스 버전이었기에 앞부분을 보면 익숙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룡의 버프로도 일어서기 힘든 상황이다보니, 차이니스 조디악에 잠깐 출연한 미쓰비시 파제로 이래로 신차를 볼수 없었지만, 2017년에 공개되는 신작에, 콘셉트 XM-PHEV를 기반으로 개발되는 소형 미니밴이 등장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6. 생산차량[편집]






6.1. 승용[편집]


  • 미라쥬 (Mirage)
  • 아트라쥬
  • 그랜드 랜서
  • 랜서 (Lancer)[43]
  • 콜트 (Colt)[44]
  • 콜트 플러스 (Colt Plus)
  • eK
    • eK X[크로스오버SUV]
  • eK 스페이스 (eK Space)
    • eK X 스페이스[크로스오버SUV]


6.2. 상용차[편집]




6.3. SUV/RV[편집]


  • 에어트랙(중국형) (Airtrek)
  • RVR (RVR)
  • 이클립스 크로스 (Eclipse Cross)
  • 엑스팬더 (Xpander)
  • 엑스포스 (XFORCE)
  • 아웃랜더 (Outlander)
  • 파제로 스포츠 (Pajero Sport)[45]
  • 트라이톤 (Triton)
  • 델리카 D:5 (Delica D:5)
  • 델리카 D:2 (Delica D:2)


7. 단종차량[편집]



7.1. 승용[편집]


  • 미니카 (Minica)
  • 프레시스 (Precis)[46]
  • 트레디아(Tredia)
  • 카리스마(Carisma)[47]
  • 에테르나 (Eterna)
  • 갤랑 (Galant)
  • 아스파이어 (Aspire)
  • 에메로드 (Emeraude)
  • 디아망떼 (Diamante)
  • 시그마 (Sigma)
  • 마그나/베라다 (Magna/Verada)
  • 데보네어 (Debonair)
  • 프라우디아 (Proudia)
  • i/i-MIEV (i/i-MiEV)


7.2. 스포츠카[편집]




7.3. SUV/RV[편집]


  • 리베로 (Libero)[48]
  • 디온 (Dion)
  • 샤리오 (Chariot)
  • 레그넘 (Legnum)
  • 엔데버 (Endeavor)
  • 그란디스 (Grandis)
  • 델리카 (Delica)
  • 델리카 스페이스 기어 (Delica Space Gear)
  • 파제로 (Pajero)
  • J 시리즈 (J3, J4, J20, J44, J50, J30, J20H)
  • 징거 (Zinger)


7.4. 픽업트럭[편집]




8. 컨셉트 카[편집]




9. 합자회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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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닛산이 최대주주이지만 과반에 못미치기 때문에 일본법에 정의되는 모회사는 아니며 지분법 적용 관련회사 관계로 취급된다. 이외에 미쓰비시 그룹 계열 지분이 22% 수준.[2] 제3자 배정 증자를 통하여 닛산이 2,373억엔에 미쓰비시 지분의 34%를 확보하였으며, 미쓰비시 계열사는 우호 지분으로서 기존 지분을 10년간 유지하는 조건. 미쓰비시의 지분은 미쓰비시 상사 20.02%를 포함해 22%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미쓰비시 그룹에도 계속 소속된다.[3] 크라이슬러 그룹의 소형차 라인을 보충해주면서 미쓰비시의 미국 진출로를 열어준 계기인 동시에, 미쓰비시에게는 한동안 미국에서 자체 브랜드 진출이 막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4] 이때 호주 지부를 통해 개발한 현지공략차종이 갤랑의 파생 모델인 마그나였다. 마그나가 세대교체를 하고 고급형 모델이 베라다로 독립하는데, 이때 호주에서 생산한 베라다 왜건이 디아망떼 명의로 수출되었다.[5] 미쓰비시 이클립스가 다이아몬드 스타 모터스에서 만들어진 첫 차종 중 하나였다.[6] 1970년대부터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모델 다양화에 맞춰 대리점을 다각화했다. 주로 기존의 '고급 모델'과 새로 출시되는 저가 모델을 따로 파는 데서 시작했다.[7] 1994년에 로터스를 인수한 회사다.[8] 현재의 도쿄대학[9] 갤랑 플랫폼으로 에테르나, 레그넘을 만들었으며, 랜서 플랫폼으로 미라지, 카리스마를 만들었다. 근데 갤랑과 에테르나, 레그넘이라던가 랜서와 미라지는 말이 좋아서 형제차지 실상은 그냥 같은 차에 이름만 바꿔서 파는 배지 엔지니어링 수준이었다. 특히 1996년 이후 모델들은 닛산 못지않게 어느 차가 오리지널이고 어떤 차가 변형모델인지 구별도 못할 정도였다. 그 중 카리스마볼보 S40 1세대와 동일한 모델이었고 네덜란드에서 생산됐다.[10] 단, 랜서와 미라쥬는 특정 딜러점 전용으로 가지치기된 모델들이며 당시 일본에서는 딜러점 다각화 정책으로 인해 같은 차종을 딜러점 채널별로 조금씩 손봐 판매하는 경우가 흔했다. 당시 혼다도 준중형 세단 하나를 도마니, 시빅 페리오, 인테그라 SJ로서, 중형 세단 하나를 아스코트와 라파가로서 일부만 조금씩 손질해 판매했으며 토요타 역시 1990년대 당시의 코롤라와 스프린터는 물론, 딜러점 다각화 정책을 갓 폐지한 2010년대까지만 해도 알파드와 벨파이어, 복시와 노아 및 에스콰이어 등의 차들은 전, 후면부와 인테리어 배합, 파워트레인만 달리한 한 차종 돌려막기식 라인업이었다.[11] 1964년에 나와 1986년까지 22년 동안 판매된 1세대 데보네어를 말하며 이후 1986년에 들어서야 2세대 모델을 개발하였고, 이것이 현대 그랜저로 팔렸다. 다른 별명은 '미쓰비시 그룹 중역 전용차'다.[12] 2020년대 미국에서의 상황은 도대체 아직까지 어떻게 미쓰비시가 살아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판매량뿐만 아니라 모델들의 퀄리티가 안 좋은 쪽으로 악명높다. 어떤 사람들은 폰티악, 머큐리, 올즈모빌 등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 수많은 브랜드가 과거에 청산당한 것 덕분에 미쓰비시가 아직도 살아있는거라고 깔 정도. 미국에서 미쓰비시가 유일하게 내세우는 전략이 '그 누구보다 싼 가격'이다.[13] 승용차 갤랑, 파제로, 파제로 이오, 랜서(란에보 포함), 델리카 스페이스 기어 163,707대, 대형 상용차 더 그레이트, 슈퍼 그레이트, 에어로 에이스, 에어로 킹, 에어로 퀸, 에어로 에이스, 에어로 스타 1백만대[14] 휠을 고정하는 볼트가 깨져서 타이어가 튀어나갔다. 그것도 대형 트럭(!)이 결함으로 야채를 싣고가던 트럭이 고속도로 요금소를 들이받아 운전자가 사망한 사고와 튀어나온 타이어에 아이 어머니가 맞아 어머니가 그자리에서 죽고 아들은 크게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이케이도 준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15] 때마침 12개월 동안 0퍼센트 할인, 0퍼센트 이자, 0달러 선납금이라는 0-0-0 마케팅을 했었는데, 이 사태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0-0-0 마케팅으로 산 차를 중고로 다시 팔아버리는 바람에 미쓰비시는 심각한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16] 지금도 몇몇 언론에서 설문조사나 의견조사를 하면 일본인들 대부분은 미쓰비시의 결함은폐에 대해 "회사 책임자가 그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우리 전통대로라면 책임자가 할복이라도 했어야 할 상황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이는 실제로 모터트렌드 코리아에서도 일본내 시민들에게 자동차 회사들에 대한 이미지 조사를 할때 나온 말이기도 하다.# 게다가 2002년에는 25만대를 넘던 일본 내수 판매량도 2017년에는 7만대 이하까지 떨어졌다. 출처 얼마나 막장이었으면 같은 일본 소비자들까지 등을 돌릴까?[17] 이 사건은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로 유명한 이케이도 준의 소설 '하늘을 나는 타이어(空飛ぶタイヤ)'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 소설도 드라마화, 영화화가 진행되었다.[18] 다만 2차대전 후 일본 대기업 집단에서 각 계열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관례를 두고 보면, 오히려 2005년에 지분의 30%에 달하는 출자를 해 준 게 이례적이다.[19] 1953년 설립된 기업. 매각 이후 BMW X1컨트리맨, 컨버터블 등의 미니를 위탁 생산중이다.[20] 이 시기 크라이슬러 차종 중에서는 미쓰비시에서 제작된 엔진을 크라이슬러가 자사 입맛에 맞게 튜닝하여 얹은 차들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긴밀한 관계였던 셈. 포드도 가끔 야마하 모터에서 엔진을 주문해 오긴 하지만 그보다 더했다 보면 되겠다.[21] 이 당시 다임러 크라이슬러 홈페이지에 벤츠, 크라이슬러, 미쓰비시 자동차가 한 그룹으로 속해있었고, 현대자동차는 합자회사(Joint Venture)로 표시되어 있었다. 물론 잠시동안이지만 사족으로 이 시기 현대가 상용차 부문에서 벤츠의 엔진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현대 그린시티 문서 참조.[22] 또한 당시는 다임러 크라이슬러 그룹이 계속 굳건하다고 믿었기에 다임러 벤츠 측에서는 상용차부터 승용차 부문 전 라인업 기술 협력의 초석으로, 맨 먼저 현대의 상용차 부문과 협력을 야금야금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크라이슬러와 벤츠 간의 여러 문제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와해되고 나서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23] 미쓰비시 상용차 부문은 계속 유지하기로 하여 앞으로도 다임러 벤츠가 계속 소유중이다. 본문에서도 서술했지만 미쓰비시 그룹 내에선 승용 부문이 갈수록 병크로 치닫고 있었고, 그나마 승용부문에 비해 수익을 더 잘 내는 쪽이 상용차 부문이었다. 승용차 부문에 비해 수익도 잘 내고 일도 잘 하던 미쓰비시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를 당연히 벤츠는 포기할 수 없었고, 미쓰비시 후소를 메르세데스 벤츠 상용차의 아시아 기지로 키워내기 위해 지분인수를 늘려 자회사로 만들었다.[24] 아마도 푸조 측에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보고 대항하려는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회사간 이해관계와 유로화 약세 등의 문제로 PSA 측과 미쓰비시는 자본제휴를 그만두게 되고, 경기회복 후에 다시 지분협력을 하겠다고 밝혔다.[25] 과거 현대 에쿠스와 공동 개발되었던 그 1세대 프라우디아로, 2세대는 닛산 푸가/닛산 시마를 로고만 미쓰비시로 바꿔서 프라우디아로 팔았다. 그렇다고 해도 정작 일본 내에서 판매량은 낮았다.[26] 우선 일본 언론에서도 "토요타와 독일 폭스바겐, 미국 제네럴 모터스로 구성된 3강 체제에서 르노-닛산과 미쓰비시 연합이 더해진 4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하며 "이전까지의 미쓰비시의 제휴들이 실패였다"고 까는 점을 봐서는 차라리 미쓰비시 측도 이번 협력만큼은 안정적인 자본제휴나 매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속내인듯도 하다. 출처[27] 르노코리아자동차, 다치아, 라다에 이은 4번째 르노닛산 계열 브랜드.[28] 스마트 포투에 들어가는 1.0L 가솔린 터보 엔진이 i에 장착되는 엔진이다.[29] 일본은 자동차 메이커가 직접 렌터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30]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닛산의 이름으로 판매된 것까지 포함하면 4종이다.[31] 일례로 앞서 전술했듯 자사의 기함인 프라우디아 2세대를 자신들이 제작하지 않고 푸가를 들여와서 리뱃징만 해서 만들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32] 한화로 약 1조 9천여억원[33] 파제로 제조라는 법인으로 따로 분류되어 있다.[34] 최근 들어 일본 자동차 시장이 차량 자체의 성능에서 편의성으로 포커스가 이동할 때, 스바루는 일본 내수 시장에서 잘 안팔리므로 내수를 포기하더라도, 수출경쟁력을 위해 자동차 기술과 완성도, 성능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스바루의 자동차는 일본 메이커 중에서 유일하게 스바리스터라는 애칭이 붙은 팬덤을 양성할 정도로 호평이며, 해외에서는 토요타혼다가 그저 넘사벽일 뿐 스바루도 항상 '자식들이 고등학교 졸업하면 부모가 물려주는 차'로 긴세월 그 입지가 굳어졌다.[35] 이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 중에서 중소규모에 속하는 마쓰다, 스즈키에서도 취하고 있는 방식이다. 마쓰다 2의 유럽 사양은 토요타 야리스의 배지 엔지니어링 버전으로 교체되었으며, 스즈키도 유럽 시장용으로 토요타 라브4코롤라 하이브리드를 어크로스스웨이스로 도입했다.[36] 당시 콜트 파동이라고 불렸는데, 한편으로는 제2의 새나라 자동차 파동이라고 하기도 했을 정도로 파장이 컸었다.[37] 물론 언론플레이로나마 "전범기업의 몰락" 내지 "과거 전범행위의 댓가" 비슷하게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인수 이후에 미쓰비시 자동차와 갈등을 빚을 여지가 생겼을 것이다. 삼성이 닛산을 아예 사오는 걸 고려하던 당시에도 같은 논지로 비판받았다. 삼성은 특히 IMF를 일으키는데 일조했다고까지 이미지가 악화되어서 도저히 그걸 견딜 상황이 아니라 당시에 인수를 포기했고 결국 닛산 차량을 베이스로 영업했던 인연으로 르노에게 명의를 대여해주고 사업을 접어버린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형제로 받아들이느냐는 질타 자체가 미쓰비시가 지닌 전범기업 이미지를 감안하면 오히려 후한 대접이다. 반일감정이 크게 관여한다고 가정하면 반대로 이번엔 미쓰비시가 이 되어 볼 차례라며 오히려 인수를 장려하는 방향도 가능하다. 기업의 인수가 노예무역인 건 아니지만 이후의 르노-닛산의 관계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일본 기업들이 해외에 팔려나가서 끌려다니는 걸 상당히 불쾌해하기 때문. 일본 국민들이 괜시리 좋아하는 프랑스의 회사가 이러는데도 반응이 좋지 못한 데 반한감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기업이, 특히 미쓰비시가 아니였으면 자동차는 꿈도 못 꿨을 하룻강아지 회사가 역으로 호랑이가 되어서 미쓰비시를 잠식한다면 패닉이 대단했을 것이다.[38] 비슷한 시기에 결국 현대는 기아를 인수한다. 이쪽이 훨씬 이득도 많았고 국내 기업이 같은 국내 업체를 살려서 데려가는 그림으로 보여져 국가나 국민들에게 호감을 산 점도 있다.[39] 2008년 11~12월 초기 선보였던 랜서 에볼루션과 아웃랜더를 월별로 각각 1대씩밖에 못파는 막장테크를 탔다![40] 심지어 일본 영사관, 주한일본대사관 차량 중 일제차조차도 미쓰비시는 거의 없고 죄다 렉서스, 도요타, 혼다, 닛산, 인피니티뿐이다. 그만큼 일본에서 온 외교관들조차도 미쓰비시 차를 안 샀다는 소리.[41] 국내 관련법에 의하면 수입차 및 수입 제품 공식 딜러의 철수 이후 6년간은 의무적으로 A/S를 해줘야한다. 현재 닛산과 올림푸스가 그 상태이다. 하지만 고작 1년간 영업해서 무슨 노하우가 있을까 싶고 2020년 현재 그 6년의 기간도 끝나버려 진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렸다. 차는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지 그렇다고 중고로 팔자니 중고 가격도 너무 형편없다. 하다못해 00년대 이전에 직수입으로 들여온 차들은 현대자동차의 일부 차종과 부품이 호환되기 때문에(특히 시리우스 엔진) 현대자동차를 수리하는 곳에 가면 해결을 볼 수 있다 치지만, 이 때 당시 판매했던 차들은 기술적으로 차이가 많이 벌어져 현대자동차와 호환될 만한 부품이 거의 없는 게 문제. 그나마 플랫폼을 공유한 크라이슬러 계열 차종들과 일부 부품 호환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쪽 역시도 직구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부품 수급이 잘 안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결정적으로 부품 가격 조차도 꽤나 비싼 편이다.[42] 원문은 <Nissan and Mitsubishi have announced plans to develop a mid-size sedan to replace the current Lancer, using a Renault Samsung platform, and Nissan has said that they plan to share some car platforms and jointly develop future vehicles with Mitsubishi Motors.>[43] 일본 국내는 왜건 타입 랜서 카고가 판매중. [44] 본래는 미라쥬의 수출명 중 하나였지만, 2002년에 그 후속으로 유럽식 해치백이 등장하자 콜트로 통일되었다. 2012년에 단종되었으나 지금은 타이완 현지에서 콜트 플러스를 판매하고 있었고,(#) 최근에는 르노 클리오(국내에서 한때 수입했다가 중단된 그 클리오 맞다.) 리뱃징으로 부활하고 말았다...[크로스오버SUV] A B [45] 영문 표기대로라면 파제로 스포'트'가 되겠지만, 외래어다보니 '트' 발음에 대해 ツ(츠) 또는 トゥ(토우=투) 또는 ト(토) 중에서 적당히 선택해서 쓴다. 그래서 미쓰비시 측의 표기는 パジェロスポーツ 로 표기되어 있다.[46] 당대 미쓰비시와 현대의 협업 관계에서, 미쓰비시 미라쥬의 플랫폼으로 개발된 현대 포니 액셀이, 아메리카에서 다시 미쓰비시 프레시스로 전개되었다.[47] 볼보 S40의 자매차. 현재의 미쓰비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지만, 미쓰비시 카리스마가 오리지널 모델이다.[48] 영문 철자도 같기는 하지만, 동명의 한국제 트럭과는 관계가 없다. 이쪽은 90년대 중반에 전개된 랜서의 스테이션 왜건 자매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