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공국

덤프버전 :




밀라노 공국
Ducà de Milan
Ducato di Milano

파일:Flag_of_the_Duchy_of_Milan_(1450).svg.png
파일:밀라노 공국 국장.svg
국기
국장

파일:Duchy_of_Milan_(1402).svg

1402년 밀라노 공국의 최대 영토
1395~1447, 1450~1796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밀라노 코뮌
이탈리아 왕국
위치
이탈리아 롬바르드
수도
밀라노
정치 체제
군주제
국가 원수
밀라노 공작
주요 공작
[ 펼치기 · 접기 ]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1395~1402)[1]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1412~1447)[2]
프란체스코 1세 스포르차(1450~1466)[3]
프란츠 2세(1792~1796)[4]
}}}
인구
75만 명 (17세기)
민족
이탈리아인
언어
이탈리아어
롬바르드어
종교
로마 가톨릭
통화
스쿠도, 리라
주요 사건
[ 펼치기 · 접기 ]
         
1395년 건국
1447년~1450년 황금 암브로시아 공화국[1]
1499년~1512년 1차 프랑스 점령기
1515년~1522년 2차 프랑스 점령기
1524년~1525년 3차 프랑스 점령기
1535년~1786년 합스부르크 왕조 통치기
1556년~1700년 스페인 통치기
1700년~1796년 오스트리아 통치기
1796년 합병
}}}
현재 국가
이탈리아, 스위스[1]

언어별 명칭
롬바르드어
Ducaa de Milan
이탈리아어
Ducato di Milano
라틴어
Ducatus Mediolani
독일어
Herzogtum Mailand
프랑스어
Duché de Milan
스페인어
Ducado de Milán

1. 개요
2. 역사
3. 역대 공작



1. 개요[편집]


르네상스 시기 밀라노를 중심으로 롬바르디아 일대를 다스린 신성 로마 제국의 봉신국. 비단 산업 등을 토대로 26개의 소도시들과 근방 영토를 차지하고 르네상스 시대 내내 이탈리아 반도, 넘어서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 중 하나였다.

밀라노 공국의 창립 세력인 비스콘티 가문은 1277년 이래 밀라노 지방을 다스려온 유서깊은 명문귀족가였다. 이후 비스콘티 가문의 남계 직계가 단절되자[2] 비스콘티 가문의 용병대장에 불과했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비스콘티 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한 후 밀라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스포르차 가문 시대의 밀라노 공국은 중계 무역을 틀어쥐고 갈수록 부유해졌고, 강력한 경제력을 토대로 북부 이탈리아를 통일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1450년부터 1535년까지 지속된 스포르차 가문의 시대에 밀라노 공국은 비단 무역 등을 통해서 당대 르네상스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르네상스 예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피렌체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령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북부 이탈리아 통일의 꿈을 접어야 했으며 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간의 이탈리아 전쟁에 휘말려 4차례나 약탈을 겪어야 했다. 결국 1535년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로는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지배 기간에도 공작위는 있었으나 스페인-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 군주들이 동군연합으로 겸하는 등 공국은 사실상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2. 역사[편집]


비스콘티 가문은 1277년부터 밀라노 코뮌을 지배하였다. 1대 지배자였던 오도네 비스콘티의 치하에서부터 118년이 지난 후, 제10대 지배자였던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는 당시 보헤미아 왕국의 왕이자 독일왕이었던 룩셈부르크 가문바츨라프 4세[3]에게 무려 10만 플로린을 바치며 작위를 얻어냈다.[4] 1395년 5월 1일의 일이었고, 이것이 밀라노 공국의 시작이었다.(동시에 갈레아초가 다스리던 파비아도 백국으로 승격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uremberg_chronicles_f_72r_1.png

밀라노 공국은 15세기 들어 이탈리아 북부의 통일을 목표로 하여 다른 도시들을 위협하였다. 1440년 베네치아-피렌체-교황령의 연합군과 밀라노 군은 안기아리에서 격돌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묘사하여 유명해진 이 전투에서 연합군이 승리하여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북부에서의 패권을 지킬 수 있었다. 이후 비스콘티가의 남계후손이 단절되자 밀라노 공국은 일시적으로 멸망하고 그 자리에 암브로시아 공화국이 세워지지만 밀라노의 용병 대장으로 유명한 스포르차 가문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비안카 마리아 비스콘티와 결혼하여 암브로시아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밀라노 공국을 재건했다. 그 이후 스포르차 가문은 15세기 말까지 밀라노 공국을 통치하며 그 번영을 이끌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용병대장에서 시작해서 한 국가의 주인이 되고 그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통치를 잘해 나라를 번영시킨, 그야말로 인생승리라 할 수 있겠으나[5] 밀라노 공국은 이내 이탈리아 전쟁의 갈등속에 정면으로 휘말리게 된다.

파일:Peter_Paul_Ruben's_copy_of_the_lost_Battle_of_Anghiari.jpg

이후 프랑스의 지배(1499년~1512년, 1515년~1522년, 1524년~1525년)에 놓였다가, 결국 스페인에게 넘어갔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로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796년 이후 프랑스 제1공화국의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밀라노 공국과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를 합쳐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을 만들어 지배했으며 1859년에 오스트리아 제국이 제2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에서 패하면서 밀라노는 이탈리아 왕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현재의 이탈리아 공화국까지 이르게 된다.

밀라노 공국의 수도였던 밀라노의 인구는 1600년에 120,000명이었고 1800년에는 140,000명으로 인구가 많은 중요한 도시였다.


3. 역대 공작[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08:10:04에 나무위키 밀라노 공국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스위스의 이탈리아어권 지역인 티치노가 본래 밀라노 공국 영토였다.[2] 이탈리아의 거장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가 이 가문의 방계 출신이다.[3] 바츨라프는 체코식 이름이고, 독일식 이름으론 벤첼(Wenzel)이다.[4] 밀라노 공작위 + 파비아 백작위.[5] 장난이 아니라 요즘 빙의물로 대표되는 양판소들의 메인스트림 골격이 이탈리아 전쟁 이전까지의 스포르차 가문에 대입하면 딱 맞아 떨어진다. 오죽하면 작가들이 이 가문을 모티브로 소설을 썼나 싶을 정도. 비슷한 예시로 살짝 근대풍 양판소나 로판의 대표 모티브로 취급되는 러시아 제국이 있다. 아예 스포르차 가문의 주인공이 이탈리아 통일을 꾀하는 '이탈리아에서 살아남기'라는 대체역사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