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크-아이슬란드 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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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만들어진 이유
3. 소멸
4. 표기법
5. 여담


1. 개요[편집]


바스크-아이슬란드 피진(Basque-Icelandic pidgin)이란 17세기아이슬란드 서안으로 이주하여 고래잡이를 하던 바스크인 선원들이이 사용했던 바스크어 기반의 피진어를 뜻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름에서 쉽게 연상되는 바와 달리 바스크어와 아이슬란드어의 피진이 아니다. 피진 자체는 바스크어 기반에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등이 짬뽕되어 만들어졌으며, 바스크인 선원들이 서유럽을 떠도는 동안 이미 형성된 후 아이슬란드까지 온 것이다. 물론 이후에 일부 아이슬란드어 어휘가 유입되기는 했으나, 다른 언어들에 비하면 그 영향이 매우 미비했다. 그래서 '바스크-아이슬란드 피진'이라는 이름은 '아이슬란드에서 쓰이던 바스크어 피진'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 만들어진 이유[편집]


바스크는 남유럽에 위치한 반면 아이슬란드는 북유럽에 위치해서 딱히 접점이 없을 것 같지만, 둘다 북대서양에 접해 있어서 바닷길을 통한 교류가 가능했고, 고래잡이를 비롯한 원양어업에 종사하던 바스크인 선원들이 마찬가지로 고래잡이로 유명한 지역인 아이슬란드 해역[1]까지 진출하면서 접점이 생겼다.[2] 아이슬란드 측 사료에서는 적어도 1608년부터 바스크인들이 아이슬란드 해안에서 고래잡이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3. 소멸[편집]


바스크인들이 아이슬란드에 머문 시기는 매우 짧았다.
1613년 한 바스크 배가 무려 17마리의 고래를 잡았고, 이 사실이 바스크 땅에 알려져 1614년에는 무려 26척의 배가 아이슬란드를 향해 떠났다. 이중 다수가 길을 잃거나 영국 해적들에게 납치당하여 최종적으로 아이슬란드 해안에 다다른 것은 10척뿐이었다. 이 해가 바스크-아이슬란드 사회의 규모가 제일 컸을 때였다. 1615년에는 16척의 배가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중 4척만이 여름에도 남아 고래잡이를 계속했고 나머지는 전부 러시아로 떠났다.

그리고 문제의 1615년 9월, 아이슬란드 서안에 머물던 3척의 배가 떠나려다가 갑작스런 폭풍과 유빙 때문에 가라앉고 82명의 선원들이 해안가로 돌아오는 일이 발생한다. 세 그룹의 선원들 중 두 그룹은 파트렉스피외르두르(Patreksfjörđur)라는 마을에서 겨울을 보냈고 이듬해 고향으로 떠났다. 그러나 마르틴 데비야프랑카(Martín de Villafranca)[3]라는 선장이 이끌던 배의 그룹은 둘로 나뉘어 선장이 속한 그룹은 이사퍄르다르튭(Ísafjarđardjúp) 피외르드에 다다랐고 다른 그룹은 폴룽카르픽(Bolungarvík) 마을을 거쳐 최종적으로 팅케이리(Þingeyri)라는 마을에 다다른다.

굶주림에 시달렸던 일행은 그곳의 어느 빈 상인의 집에서 말린 물고기를 훔쳐 먹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10월 5일 밤에 바스크인들 14명이 자고 있던 움막을 습격해 그들을 죽이고 시체를 난도질한 뒤에 바다에 가라앉힌다. 오직 가르시아라는 이름의 청년 한 명만 살아서 도망친다.

3일 후, 마을 보안관이던 아리 마크누손(Ari Magnússon)이 수다빅(Súđavik)에서 회의를 열었고 12명의 판관들은 모든 스페인인들[4]을 아이슬란드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한다. 선장 마르틴과 17명의 선원들은 이사퍄르다르튬에서 낚시를 하던 도중에 아리가 지휘하는 군인들에게 죽었다. 이들은 눈, 귀, 코가 꿰뚫렸고 성기를 훼손당했다. 선장 마르틴은 도끼에 어깨와 가슴 부상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도망쳤으나 돌에 맞았고 해안으로 끌려나와 고문받고 죽었다.

아리는 1915년 10월과 1916년 1월에 각각의 사건에 대하여 13세기 알팅그[5]에서 만든 법전에 따라 모든 스페인인들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죽일 것을 명한다. 이 사건을 오늘날 아이슬란드에서는 '스페인인 학살'이라 부른다.

이 사건 이후로 바스크인들은 아이슬란드에 항해를 오지 않게 되었고, 바스크-아이슬란드 피진은 자연히 소멸했다.

4. 표기법[편집]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언어학자들이 유추한 바로는 로마자 중 24개[6]를 사용한다고 한다.


5. 여담[편집]


바스크인들은 또 신대륙에서 바스크-알곤킨 피진, 래브라도-이누이트 피진[7] 등 다양한 피진을 만들어 냈다. 바스크-아이슬란드 피진과 달리 이쪽은 진짜 해당 언어들과 만들어낸 피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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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스크인 외에 다양한 국적의 선원들이 이미 이곳에서 고래잡이를 하고 있었다.[2] 본래 이들의 본진은 래브라도였고, 그곳에서 고래잡이가 흥하자 17세기에는 아이슬란드에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3] 산 세바스티안 출신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신대륙 고래잡이 개척에 기여했다.[4] 바스크인들을 뜻함.[5] 아이슬란드 국체가 있기 전부터 존재한 유서깊은 의회. 아이슬란드/역사 참조.[6] 로마자 중 어느 글자들을 사용했는지는 미상.[7] 다만 이쪽 바스크인들은 프랑스어 화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