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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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15 · 19 · 20대 내각 총리
박봉주
朴奉珠 | Pak Pong-ju


파일:/image/001/2016/05/10/PYH2016051016190001300_P2_99_20160510203109.jpg

출생
1939년 4월 10일 (84세)
일제강점기 조선 함경북도 성진군
(現 북한 함경북도 김책시)
국적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학력
덕천공업대학 (학사)
직업
관료, 정치가
주요경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1980~2007)
조선로동당 경공업부 부부장(1993~1994)
조선로동당 경제정책검열부 부부장(1994~1998)
화학공업상(1998~2003)
내각 총리(2003~2007)
조선로동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2010~2012)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2010~2013)
조선로동당 경공업부 부장(2012~2013)
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2013~2019)
내각 총리(2013~2019)
국무위원회 부위원장(2016~2021)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2016~202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2019~2021)[1]
주요서훈
파일:attachment/hokburiorder.jpg 김일성훈장(2002)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한글.png

지역구
평안남도 수복선거구(제100호)

1. 개요
2. 행적
2.1. 초기 이력
2.2. 김정일 시대
2.2.1. 1월 12일 방침
2.2.2. 1월 21일 방침
2.2.3. 8월 11일 방침
2.3. 시장경제 도입 실패 과정
2.4. 김정은 시대
2.4.2.1.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 연구
2.4.2.2. 변동 가격제 개혁 과정
2.4.2.3. 가내편의봉사업 관리 운영 개혁 과정
2.4.2.4. 농장책임관리제 연구 과정
2.5. 평가
2.5.1. 권력서열 3위로 상승 및 상무위원 진입 후 은퇴
2.5.2. 북한 시장경제 도입으로 인한 기아문제의 일시적 해소
2.5.3. 대용연료의 자체적 생산 및 해결 과정
2.5.4. 공장 가동률 폭발적 증가
2.5.5. 북한 GDP 경제성장률 대폭 증가
3. 여담
4. 참고 자료



1. 개요[편집]


북한의 9대, 12대 내각총리.[2] 2019년 4월까지 북한의 내각 총리를 역임하게 되면서 현재 직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로동당 부위원장 겸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다.


2. 행적[편집]



2.1. 초기 이력[편집]


흙수저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실력을 바탕으로 북한 최고위층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로써 덕천공업대학 졸업 후 23세에 룡천식료공장 지배인이 되면서 최고의 생산력을 증가시킨 것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며 41세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 되었으며 1980년대에 그를 다룬 군당책임비서라는 선전영화가 제작될 정도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현장에서 성과를 증가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북한 계획경제의 한계점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으며 경제 전문가로 북한의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인 연형묵과 박봉주 그리고 로두철 등 상당한 테크노크라트를 지도자들이 임명하고 중시하는 사례로 발전하게 되었다.


2.2. 김정일 시대[편집]


2003년 4월부터는 각급경영단위에 포진해 있는 유급당원을 축소하며 조선로동당의 행정대행현상을 감소하는 효과가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급여가 인상되었으며 급여지급체계가 변경되면서 국가재정부담을 감소시키려는 효과도 고려하게 되었다.
조선로동당과 내각의 고정 배급제 인원과 국가재정으로 관리되는 예산제 기관 인원을 감소하는 대신 자체로 급여를 해결하는 독립채산제 기관과 기업소 인원을 증가시킨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군의 경제사업축소조치는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군의 외화벌이 사업의 내각 무역성으로 일원화하며 내각 산하에 민경협을 신설하면서 남북경협의 실무사업전담과 인민무력부 산하의 원유공업총국을 원유공업성으로 격상시키며 내각으로 이관하게 되었다.
가금총국과 육류가공공장의 내각 산하로 편입시켜서 박봉주 총리는 2004년 3월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군의 무역 업무를 무역성으로 일원화하면서 도, 시, 군 공장기업소에 무역사업을 전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게 되었다.
김정일의 측면 지원에 힘을 입으며 박봉주는 부실무역회사를 정비하고 해외 상사원들의 급여를 인상하며 투자유치를 위해서 해외교포의 경제특구 이외 지역에서의 기업소 및 은행 설립과 광산 개발의 직접 투자도 허용하게 되었다.
김정일은 특히 2004년에 총리전용열차를 제공하면서 박봉주 총리에게 생산현장을 직접 점검하도록 지시를 내리며 2005년에는 발전경험을 다시 배우고 오도록 하면서 자신의 현지지도과정에서 박봉주 총리를 수시로 대동하면서 설명을 듣게 되었다.
박봉주 총리도 김정일의 신임에 부응하면서 경제사업을 적극적으로 장악하면서 경제개혁조치의 성과를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되었으며 특히 무산철광과 김책제철연합기업소 등 전용열차를 타면서 산업현장을 점검하며 난항을 겪은 문제를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군에도 협조를 구하게 되었다.
물론 장성택도 간접적으로 숙청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되었으며 수도건설위원장 신일남이 장성택과의 관계를 믿으며 항명하였을 때 그를 해임하고 지방으로 좌천시키며 내각 간부들은 박봉주 총리의 대담성과 추진력에 찬사를 보내면서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군의 간부들도 실세 총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고 언급하게 되었다.


2.2.1. 1월 12일 방침[편집]


2002년 이후 함경도 지역에서 시범 실시된 것으로 알려진 개인경작제도가 올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농장에서 옥수수를 경작할 수가 있는 농지만 골라 토지 비옥도를 감안해 농민 1인당 200 ~ 400평씩 분할하면서 경작하게 되었다.
올해 농장 토지 350평을 개인경작지로 분할받으며 이 제도가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고 밝혀 북한소식1호에서 북한 당국이 올해 3월부터 1인당 300평씩 토지를 배분한 뒤에 토지의 품질에 따라 상중하로 국가납부금을 납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장은 개인에게 개인경작지용 비료 등을 지원하고 가을에 현금이나 곡물을 대가로 납부한다며 모든 농가는 개인경작지로 6개월 동안의 식량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북한 협동농장의 곡식 생산량이 2000년 358만 톤에서 2001년의 354만 톤으로 하락하다가 2002년에 387만 톤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2003년 415만 6천 톤으로 2004년에는 최대 424만5천 톤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북한이 2004년 들어서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협동농장 개인경작제도는 1980년대 초 중국이 개혁개방조치와 함께 단행한 농업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을 일부 담고 있으며 상당한 효과를 이룩하고 있다.


2.2.2. 1월 21일 방침[편집]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을 허용하였으며 이전에 생산 능력의 100%를 계획지표로 하달하였다면 이제 70%을 지표로 하달하고 나머지 30%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을 통한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며 필요한 자재를 다른 기업으로부터 구매할 수가 있게 허용하게 되었다.
2004년부터 일부 공장기업소의 생산계획수립 - 임금결정 - 노무관리 등에 대한 지배인의 경영권이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기업 운영의 융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가계획위원회가 전략지표 – 중요지표의 경우에만 현물계획으로 하달하고 나머지는 금액계획으로 하달하게 되었다.
국가가 설정한 생산계획에 대한 가격제정은 국가가격제정국이 지방에서 설정한 생산계획에 대한 가격제정은 지방가격제정기관이 기업 자체 생산 제품에 대한 가격제정은 기업이 하면서 공장기업소의 유휴생산잠재력을 동원하면서 계획외 수요가 있는 소비품을 생산 및 판매할 수 있도록 하면서 부족한 원자재는 종합시장에서 매입하며 생산품은 합의가격 또는 시장가격으로 판매할 수가 있다고 되어 있다.
공장기업소들이 종합시장의 등장 이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합법화되었다고 전하며 종합시장 판매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기업소는 계획생산제품의 부수적으로 생산되는 부산물로 인민생활필수품을 제조하게 되면서 이를 종합시장에서 판매하여 현금을 조달할 수가 있다.
이를 국가납부금을 납부하지 않는 생산 유지비로 사용할 수가 있으며 종합시장에 판매할 수가 있는 생활필수품은 생필품 생산의 30%를 초과할 수 없다는 제약이 존재하게 되면서 30%의 이윤을 유보할 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기업소가 기본 생산물이 아닌 부산물로 제조한 소비품의 30%만 종합시장에 자율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하나 실제로 계획 생산에 기초한 기본 생산물의 시장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은 2004년 1월 21일부터 국영기업소 생산물의 종합시장 판매량을 아예 계획내 생산량으로 결정해서 허용할 방침이라고 언급하였다.
2004년부터는 임금의 상한선을 폐지하고 국가납부금 외 나머지의 초과이윤을 유보한 유휴자금에서 자체 배분을 허용하는 등 기업의 임금 결정 및 지급 권한을 대폭 확대한 것이 특징적이며 기업의 현금보유한도를 확대하면서 재정지출한도 이상의 추가 지출도 허용함으로 종합시장을 통한 무역회사에서 수입한 생산재와 소비재의 적기 구입 등 경영활동의 탄력성을 제고를 하게 되었다.
국가가 직접 공장기업소에 노동력을 배치하였으나 최근에는 노무관리의 유연성 증대를 위해 기업이 유휴 노동력을 탄광 - 농장 등에 파견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독자기업설립시 일정액의 설립금 은행예치를 의무화하고 예치 금액중 70% 정도는 다시 은행대부가 가능하도록 제도화하였다.
기업소가 보유한 국가설비는 은행에 그 재산액을 등록하고 은행에 감가상각비를 납부 및 설비를 거래할 때는 은행 절차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일부 생산 단위에 국한되나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생산물자를 지정하는 대신 금액상 지표만 하달하며 융통성을 부여할 수가 있으며 직접금융방식인 직접 대부와 간접금융방식인 대출을 허용하면서 암묵적인 관행이 되었다.


2.2.3. 8월 11일 방침[편집]


2004년 김정일이 재가한 8월 11일 방침에서 공장기업소의 유휴생산잠재력을 동원하여 계획외 수요가 있는 상품을 생산 및 판매할 수가 있도록 하며 부족한 원료 및 자재는 종합시장에서 구매하고 생산품은 합의가격 또는 시장가격으로 판매한다고 되어 있다.
공장기업소들이 종합시장의 등장 이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합법화되었다고 전하며 종합시장 판매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기업소는 계획생산제품의 부수적으로 생산되는 부산물로 인민생활필수품을 제조하면서 이를 종합시장에서 판매하여 현금을 조달할 수가 있다.
이를 국가납부금을 납부하지 않는 생산 유지비로 사용할 수가 있으며 종합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은 생필품 생산의 30%를 초과할 수가 없다는 제약이 존재하면서 30%의 이윤을 유보할 수가 있다.
노력동원체계의 중요 대상은 노동성이 지방은 도, 시, 군에서 장악 및 이용하며 시, 도에 남는 노력으로 독립채산제 기업소를 설립할 권한을 부여하고 기업소가 생산 책임을 지는데 맞게 노력관리권한도 부여한다고 언급하게 되었다.
지방경제관리기관에 잉여노동력을 활용하면서 독립채산제 기업소를 설립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예산제 기관도 점진적으로 독립채산제 혹은 반독립채산제 기관으로 전환하고 기업관리 및 기업 실패의 자율화를 확대하면서 기관, 기업소에 경쟁개념을 도입하면서 국가재정부담을 감소하려는 의도이다.
노동력은 기업소의 요구에 따라 공급하며 남는 노력은 여러 형태의 경영 허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가 있으며 모두 동등한 경영권을 가진 독립회사로 전환하면서 독립채산제, 반독립채산제 규정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기업소의 자산규모에 따르는 국가납부금 납부 방법으로 개정할 수가 있어 기업소는 국가계획 하에 기업소 자체 자금으로 확장이 가능하며 국가납부금을 납부한 다음의 기업소기금은 전적으로 기업소에 처분 권한을 부여하게 된다고 언급하였다.
또 다른 양태로써 기업소를 인수하여 경영하는 경우를 보면 본인이 내세운 대리인을 통해 인수하는 것도 가능하며 인수하였을 경우 기업소에 대한 인사권으로 인수하는 게 가능한 공장기업소의 규모는 제한적이며 300명 정도 되는 4급과 5급 기업소는 존재하지만 중앙공업은 아직 없다.


2.3. 시장경제 도입 실패 과정[편집]


김정일에게 당과 정부의 구조조정 및 시장경제의 전면적 도입 등을 건의하면서 북한 군부 및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사로잡혀서 2006년 6월, 공금유용혐의로 직무정지를 당하게 되면서 2007년 4월 끝내 총리에서 실각하며 평안남도 순천화학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2009년 박봉주 실각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국가계획위원장 박남기화폐개혁참담한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서 박남기가 2010년 3월 26일 총살되며 경공업부장인 김경희 등의 추천으로 2010년 8월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에 복권되었으며 9월에는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다시 임명되면서 중앙정계로 복귀할 수가 있었다.
이때 북한에서는 부분적인 경제개혁조치가 취하여 지는 데 기업소법과 석탄법, 사회주의상업법, 무역법, 지하자원법 등이 다시 개정되거나 새로 공포되는 등 상당한 경제개혁조치들이 부분적으로 시행하였으며 종합시장 통제에서 유연적으로 대처하게 되면서 부분적으로 시장화를 독려하는데 도움이 되면서 시장경제가 부분적으로 다시 활성화가 되었다.


2.4. 김정은 시대[편집]



2.4.1. 12.1 경제개혁조치[편집]


2012년 4월 박봉주는 조선로동당 경공업부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013년 4월, 최영림에 이어 6년 만에 내각 총리와 정치국 위원에 복귀하면서 경제개혁을 7년 만에 다시 재추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6월 13일에는 6.13 방침으로 인해 농업개혁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수확량이 2004년에 비해 상당부분 증가하여 9월에는 상업적인 경제개혁조치가 시행하고 국영상점 및 편의봉사업 부문을 개혁하면서 국영상점의 투자와 개인 경영을 허용하게 되며 돈주들의 국영상점 투자 및 인수를 다시 개정하고 돈주들에게 국영상점과 가내작업반의 경영권 행사를 유도하게 되었다.
국영상점망은 일부 소비품을 현금으로 거래할 수가 있으며 그 소비품의 가격을 능동적으로 조절하는게 가능하면서 개인들이 기관 명의를 대여받으며 국영상점을 운영하는 현상이 확산한 현실을 인정해 개인들의 국영상점 투자를 양성화하도록 지시를 하달하게 되었다.
상업성에 도매상업센터을 설치하게 되면서 수입품의 국영상점 공급을 관리해 상업유통개선의 기대 효과를 보면 국영유통망의 활성화와 함께 주민들의 시장이용억제를 도모하며 그간 관행화된 국영유통망에 대한 개인 투자 및 경영을 허용함으로 국영상점의 투자재원확대를 꾀하도록 전면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다.
2012년 12월 1일 12.1 경제개혁조치가 시행하게 되면서 특히 국영상점 및 편의봉사업 개혁 과정을 포함한 8대 경제개혁 시안을 추진하며 상업개혁조치를 제외한 7가지의 경제개혁조치는 시범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상업개혁조치는 12월 1일 이후에 전국적으로 확대 및 추진하면서 국영상점 및 편의봉사업에 대한 국영상점의 개인 경영을 허용하게 되며 돈주들이 상당부분을 국영상점 혹은 편의봉사업에 투자하게 되는 계기를 삼게 되었다.
특히 이때를 계기로 농업개혁을 추진하면서 1인당 1,500평 ~ 3,000평의 농지를 1년 동안 임대하게 되며 농사를 경작한 결과에 따라 상당량의 농업 생산량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500만 톤 이상의 수확량을 달성해 2013년 8월 15일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를 실시하게 되면서 전국으로 확대 및 실시하게 되었다.


2.4.2. 8.15 경제개혁조치[편집]



2.4.2.1.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 연구[편집]

1. 생산단위에 계획 및 생산조직권 확대 부여 : 기업소지표를 대폭 증가하면서 기업소들이 주문과 계약에 기초해 자체로 계획을 수립하고 생산을 조직하게 하는 것이며 인민경제계획화에서 기업소지표를 대폭 증가하며 중앙지표도 국가가 생산조건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경우 기업소지표와 계획권을 이관하게 한다.
기업체들은 기업소지표와 이관한 중앙지표에 대한 계획을 기업들 간 주문과 계약의 방법으로 수립해 수행하면서 기업체들이 생산능력 상 여유가 있고 국가가 시달한 지표를 수행한 조건에서 수요가 있는 지표들을 제한 없이 생산할 수가 있다.
2. 생산단위에 관리기구 및 노력조절권 부여 : 국가가 기업소의 급수에 따른 표준관리기구 및 표준노동정량을 규정하면서 기업체들이 실정에 맞게 세부관리기구나 노동정량을 정할 수 있도록 정간화하며 또한 생산단위에서 노동력을 입직 또는 퇴직시킬 수가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여러 형태의 겸직제 - 도급제 - 책임제를 도입하도록 한다.
3. 제품개발 및 품질관리권, 인재관리권 부여 : 국가의 품질감독기능을 강화하면서 기업체들의 신제품 개발 및 품질개선노력도 강화하도록 품질관리체계를 정립하며 국가의 규격제정원칙 및 등록 사업에 융통성을 부여한다.
기업들이 예비인재들을 기술대학에 위탁하는 위탁학업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며 상설 또는 비상설 과학기술 자문봉사기구을 운영하면서 기업들의 제품 개발을 지원하도록 한다.
4. 무역 및 합영 - 합작권 부여 : 국가가 정한 원칙과 방법론에 기초해서 해당 생산 단위에 무역 및 합영 - 합작권을 부여하며 독자적인 대외경제활동이 어려운 기업체들은 해당 상급단위를 통한 경영해야 한다.
국가적으로는 기업체들이 대외경제활동을 가능하도록 수출입 계약 체결, 대표단 파견, 국제통신이용, 대외결제 등의 환경을 마련해 주면서 수출입 제품 가격 승인 등 관련 절차를 극력 간소화하게 한다.
5. 주동적인 재정 관리권 부여 : 기업체들이 국가자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동자금을 비롯한 경영자금을 조성할 수 있도록 재정금융제도를 수립하면서 기업체들의 국가납부계획 수행 후 잉여자금에 대한 활용권을 부여하게 한다.
6. 생산단위에 가격제정 및 판매권 부여 : 기업소가 주문과 계약에 의해 생산한 지표들에 대해서는 자체로 또는 수요자와 합의해 가격을 제정하며 기업들이 자체로 정한 가격으로 생산자와 수요자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고 거래할 수가 있도록 상사 및 도매기관과 소매기관, 시장, 직매점 등 생산물 유통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하게 한다.
7. 근로자들의 개인적 자금 – 기술 – 지식 동원 허용 : 각 생산단위가 공증기관이 인정하거나 은행이 정한 절차에 따라 주민들의 유휴자금을 이용하거나 연로보장자와 사회보장자 등 집에 있는 사람들의 기술과 지식을 활용하는 노동계약을 체결하는게 가능하도록 한다.
8. 직장 – 작업반 – 분조 내에서 담당책임제 실시 : 공업부문에서 기대 및 작업장 담당 책임제, 농업부문에서 포전담당책임제, 국토 부문 혹은 도시경영부문에서 구획담당제를 적용하면서 국가적으로 담당책임제 조직 – 운영과 관련한 원칙을 규정하고 기업소에서 자체 실정에 맞게 구체적으로 집행해야한다.


2.4.2.2. 변동 가격제 개혁 과정[편집]

공장기업소가 자체로 혹은 수요자와 합의해서 가격을 제정하는게 가능한 지표는 ①. 교류몫, ②. 국가가 보장해주지 못한 공장기업소가 자체로 원료와 원천을 공급해서 생산한 상품, ③. 주문과 계약에 따르는 임가공제품, ④. 생활필수품, ⑤. 인민생활조 수입상품을 비롯해서 협동화폐소 환율로 역교환해야 되는 지표, ⑥. 일부 기호품의 가격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제외한 국가계획위원회 계획화 지표는 국가유일도매가격을 적용하게 되면서 국가계획으로 공급된 원자재와 화공품, 귀금속 등 국가통제품도 합의가격으로 제정할 수가 없어 공장기업소가 제정한 가격은 국가가격제정기관에 등록하고 적용하게 되어 있다.
가격은 원가를 보상하고 확대재생산을 실현할 수 있게 하면서 수요와 공급 관계를 고려해서 종합시장보다 낮게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으며 국영생산단위의 생산 정상화를 도모하면서 종합시장에 편입 가능성을 경계하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2.4.2.3. 가내편의봉사업 관리 운영 개혁 과정[편집]

내각 상무조는 식당 등 사회급양부문과 목욕탕 - 이발 - 수리 - 가공 등 편의봉사부문의 문제점을 검토한 결과 국가가 필요한 물자들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지역마다 봉사의 조건이나 수요가 다른데 봉사가격을 일률적으로 정해준 점이 문제라면서 자체로 봉사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국가가 관여하지 말 것을 건의하도록 한다.
내각 상무조는 알곡, 고기, 채소, 연료 등의 원자재와 화장품, 연료, 천 등 편의봉사용 자재들을 자체로 확보하게 하면서 가격도 편의봉사부문 기업소들이 자체로 제정하며 가격제정기관에 등록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언급하게 되었다.
다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이발, 미용, 목욕은 지방인민위원회가 연료와 휘발유를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국정가격으로 봉사하도록 하자고 건의 및 시행하도록 한다.
편의봉사란 인민들의 문화후생적수요를 충족시켜 생활상 편의를 보장하고 건강을 증진시켜주는 사회적 봉사의 한 형태이며 편의봉사에는 위생편의봉사, 이용편의봉사, 가공편의봉사, 수리수선편의봉사 같은 것이 속하고 있다.
2014년 편의봉사법에 따르면 편의봉사망의 조직은 지방인민위원회가 감독하며 국가계획기관과 중앙상업지도기관, 지방인민위원회는 편의봉사계획을 바로 설립해야 하고 기관, 기업소, 단체는 자기 단위의 실정에 맞게 종업원들을 위한 편의봉사시설을 정비하면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고 수록되어 있다고 언급하게 되었다.
편의봉사 영업승인신청문건을 해당 지방인민위원회의 합의를 거쳐서 중앙상업지도기관에 제출하며 영업승인신청문건에는 신청기관, 기업소, 단체의 명칭, 봉사업종, 봉사능력, 봉사시설 위치, 조직 근거 같은 것을 밝혀야 한다.
중앙상업지도기관은 편의봉사 영업승인신청 문건을 받은 날부터 30일 안으로 봉사운영조건과 가능성을 정확히 검토하고 승인 또는 부결하여야 한다고 수록되어 있다고 언급하게 되었다.
편의봉사 영업승인을 받은 기관, 기업소, 단체는 중앙상업지도기관으로부터 편의봉사 영업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하며 영업허가증을 받지 않고서 주민을 대상으로 편의봉사활동을 시행할 수 없고 해당 기관, 기업소, 단체는 편의봉사활동을 승인 받은 봉사업종과 정해진 질서대로 하여야 한다.
지방인민위원회와 편의봉사기관, 기업소, 단체는 해당 지역의 실정에 맞게 가내편의작업반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으며 해당 기관, 기업소, 단체는 가내편의작업반의 작업환경과 조건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수록되어 있다.
국가계획기관과 해당 기관은 편의봉사용 자재와 부속품을 품종별, 규격별, 재질별로 계획에 따라서 제때에 정확히 공급해야 하면서 편의봉사기관, 기업소, 단체는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원가를 보상하면서 일정한 소득이 조성되게 하는 원칙에서 봉사요금을 합리적으로 결정해서 해당 가격기관에 등록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수록하게 되었다.


2.4.2.4. 농장책임관리제 연구 과정[편집]

1. 포전담당제 실시 문제와 관련한 내용 : 포전을 개별 농장원이나 작업조에게 일정한 기간 고정 분담시켜 책임지고 관리하게 하고 각 포전의 책임 한계를 명확히 하여 연초에 농업생산과제를 국가에 납부할 생산량과 농장에 납부할 생산량, 개별 농장원들의 분배량으로 분할하면서 정확히 규정하고 영농공정수행에서도 포전이 분담해야할 작업을 정확히 규정하면서 국가적인 보장에만 의존하려는 현상을 제거한다.
생산물 분배와 처리권은 국가에 납부할 생산량을 우선 보장한 나머지는 전량 농장원들에게 현물을 기본으로 분배하고 농장원들의 여유 곡물은 그들의 의사에 따라 합의가격으로 국가가 수매하거나 생활용품과 교환하도록 하면서 국가가 포전담당제 실시 방법에 간섭하지 말고 분조가 책임지고 사정에 맞게 포전 분담을 조직하도록 한다.

2. 농장책임관리제 관련 내용 : 개별 농장들에 농업생산계획권과 생산조직권을 주어 자체 실정에 맞게 관리하도록 하며 중앙지표로 시달된 농업생산계획을 수행하는 조건에서 농장지표는 자체로 작물을 선택하고 부업생산단위도 조직할 수 있도록 한다.
개별 농장이 영농물자를 자체로 구입할 수 있도록 국가에 납부할 생산량을 제외한 농산물을 기관 - 기업소와 교류하거나 판매할 수 있도록 하며 농장에 관리기구와 노력조절권을 부여하면서 관리기구를 대폭 감소하거나 비생산부문 노력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한다.
개별 농장이 자율적으로 자금 관리할 수 있도록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의 종합 계좌를 삭제하고 개별 농장에 현금 계좌를 개설해주며 주민들의 여유자금도 동원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농장에서 농장지표로 생산한 농산물은 자체로 가격을 제정해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

3. 농업지도관리방법 개선 문제 : 농업성이 농토를 가진 모든 단위들의 농업생산계획 - 국가알곡의무수매계획 - 영농물자공급계획 등 농업생산관리를 하나의 기준과 규정에 따라 규율할 수 있게 한다.
농장의 창의성이 증가하도록 농업지도기관들의 사업 체계를 개선하면서 군 협동농장경영위원회는 농장의 영농사업지도를 도 농촌경리위원회는 종자생산과 자재공급 - 기술지도를 농업성은 농업발전전망, 전국적인 농사 작전, 자재 보장, 과학기술도입, 기술양성사업을 맡아보는 체계를 세우고 농업지도기관이 농촌에 층층이 현지지도하면서 농사지도를 일률적으로 하는 현상을 제거한다.
영농물자 공급 체계를 개선해 비료 - 휘발유 - 농기계 부속품 등 영농물자들을 국가적인 계획 공급과 함께 농장들의 주문에 따라 계획화하고 판매하는 방법도 도입하면서 토지 - 관개수로용수 - 전력 이용에 해당한 알곡수매생산량을 바로 정하고 일정기간 고착화 시킨다.
국가의 영농물자 공급 책임과 농장의 알곡의무수매책임을 명백히 하면서 국가가 계획된 영농물자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면 그에 해당하는 알곡 수매를 조절하고 농장이 알곡의무수매계획에 미달하였을 경우에는 다음해로 이월시켜 무조건 이행하도록 한다.

4. 포전담당책임제와 농장관리책임제를 실시하기 위해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 : 첫째, 국가알곡수매생산량을 지난 기간 알곡생산실적의 30%정도로 규정하고 5년간 고착시키는 문제와 둘째, 영농물자와 알곡과의 교환 비율을 바로 정하는 문제를 해결한다.
셋째,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상황을 국가가 확증해주고 의무수매계획을 조절해 주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넷째, 농사에 부족한 노력을 기관 - 기업소들과 계약의 방법으로 보장받는 체계를 세우는 문제와 다섯째, 농장의 농산물을 양정기관에 수매하거나 판매할 때 자금을 즉시 결제하는 체계를 세우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여섯째, 국가적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5. 평가[편집]



2.5.1. 권력서열 3위로 상승 및 상무위원 진입 후 은퇴[편집]


장성택 사후, 장성택의 인맥으로 평가되면서도 오히려 권력서열이 오른 박봉주 총리는 가장 뜬 인물로 평가를 받았지만 한때는 북한의 경제개혁 실패에 대비해 언제든 숙청 당할 수 있는 대표적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장성택의 울타리 안에 있던 박봉주가 군부의 견제를 받으며 홀로서기가 가능할 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으며 전문가들은 박봉주가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비판하며 울먹거린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장성택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었다.
김정은이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해도 아직 막강한 이권사업을 거머쥔 군과 조선로동당, 국방위원회 등 버거운 조직들이 버티고 있어 가시밭길이 예상되었지만 위의 분석이 무색하게 박봉주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하여 북한 경제를 재건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
박봉주는 2002년 경영 자율성 부여 및 수익에 따른 분배 차등화, 임금인상 등을 골자로 하는 7.1 경제개혁조치를 주도하여 2003년 9월 총리직에 올랐으나 자본주의 황색 바람 확산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2007년 4월 내각 총리에서 해임된 바 있다.
박봉주가 총리를 역임할 당시 한 기업소에서 책임비서로 활동했던 사람은 당시 북한 경제는 대단히 빠르게 성장했으며 북한 주민들은 매일같이 박봉주에 대한 평가를 입에 올렸다고 소회하고 그는 박봉주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는 사람, 통 큰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과거 박봉주가 보여주던 모습이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기대감이 상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박봉주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7.1 경제개혁조치 내 기업의 자율성 보장이 당시 침체된 경제에 상당한 활력을 만들며 이 국장은 국가에서 임명한 간부가 회사를 운영하던 방식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이 공장기업소 지배인을 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고 밝혔다.
탈북자도 능력이 있으면 기업을 하라는 방식으로 바꾸었으며 자본이 있는 사람은 자본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능력으로 곳곳에서 봉사소와 외화벌이 사업소가 설립되며 주민 생활이 크게 나아졌다고 전하고 있어 탈북자들은 박봉주가 과거와 같이 새로운 경제개혁조치를 본격 가동할 경우 북한내 시장화와 개혁개방의 열망 확산은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데일리 NK 기사
2016년 5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민간인인 내각 총리가 중앙군사위원회에 포함된 것은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이례적인 조치며 김정은, 김영남, 최룡해, 황병서와 함께 빅4로 임명이 되었다.
2016년 6월 29일, 새롭게 신설된 국무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내각을 대표해 임명되었으며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105주년 열병식에서는 김정은의 바로 왼편에 위치해 강력한 실세임을 과시하였지만 박봉주의 높아진 위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내각에 대한 당적 지도를 상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분석이 있으며 박봉주 개인이나 내각 자체의 힘은 그리 강력하다고 보기 힘든 상태이다.
실제로 김정일은 2003년 박봉주를 등용하면서 거의 전권 위임에 가까운 막강한 권한을 주었으나 김정은은 박봉주의 지위는 높여주었지만 그에 뒷받침되는 실질적인 권력까지 부여하지 않아 2019년 4월 10일 - 11일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 총리직은 김재룡 자강도당 위원장에게 넘겨주었지만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유임되었으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도 받은데다가 북한에 3명밖에 없는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최룡해 상임위원장과 함께 선출되며 아직도 정치적으로 건재함을 드러나고 있다.#
특히 91세의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이 물러나고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이번 내각 개편에서 80세의 고령인 그가 위상을 유지한 것이 주목하여 2020년 다시 총리가 김덕훈으로 이임이 되자 박봉주는 모든 것을 김덕훈에게 맡기듯이 노하우를 전수하기 시작하였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하여 모든 것을 김덕훈에게 경제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시작하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연합뉴스 기사
그러나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박봉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정치국 상무위원 및 정무국 부위원장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아 은퇴하였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대신하여 조용원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선임이 되었다.국민일보 기사, 연합뉴스 기사


2.5.2. 북한 시장경제 도입으로 인한 기아문제의 일시적 해소[편집]


세계일보의 반론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북한에 결식자가 거의 없다는 응답도 나왔으며 하루 식사를 몇회를 하느냐는 질문에 거의 90%는 하루 세끼 이상이라고 답하였으며 주식으로는 백미를 먹었다는 응답이 70%로 지난해 45.3%에 비해 크게 올랐다.
고기에 대한 섭취율은 50%가 일주일에 한두번이라고도 하였으며 특히 매일이라고 답한 비율도 만만치 않았으며 이 이전에도 마찬가지로 최소 2012년 이후에는 급속도로 쌀에 대한 결식자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었으며 2015년 이후에는 애초부터 쌀 위주와 고기 위주의 식사율이 증가하였다.세계일보 기사
북한에서 곡물의 시장가격은 2012년에 2,000 - 5,000원을 돌파한 이후로는 4,000 - 5,000원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종합시장에 흘러가는 곡물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상이며 처분권 완화로 농민들이 식량판매소에 곡물을 판매하고 있다.
실제로 2.4톤의 분배를 받은 농민도 있어 분배가 많았던 농장에서 농장원이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가정도 늘어났고 김정은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박봉주 총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포전 담당 책임제로 인하여 식량이 식량판매소에 풀린 덕분에 기아 문제가 일시적으로 해소된 것이다.문화일보 기사
2010년에 약 451만 톤, 2011년에는 약 469만 톤, 2012년에는 519만 톤, 2013년에는 519만 톤, 2014년에는 524만 톤, 2015년에는 약 548만 톤, 2016년에는 약 498만 톤을 생산하여 특히 포전담당제가 실시된 2012년에는 곡물 생산량이 부쩍 증가하였다.자유아시아방송 기사
2014년 생산량은 580만 톤을 생산하였으며 2015년 생산량은 505만 톤으로 2016년 생산량은 590만 톤을 생산하고 2017년은 540만 톤을 생산하였으며 2018년 생산량은 약 495만 톤으로 최근 10년 중 가장 감소하게 되었다.
생산량 감소의 주요 원인은 자연재해와 약한 회복력, 부족한 농자재, 낮은 기계화 수준이며 북한 정부는 과학 농업과 고수율을 집중적으로 추진하면서 2019년 생산량은 665만 톤을 생산하여 지난 10년 동안 가장 높은 수확량을 기록하였다.
2020년에 연이은 태풍과 홍수에 의한 자연재해로 인해 생산량이 552만 톤으로 감소하였으며 경작지가 한정되어 있어 갯벌 간척은 농업 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중요한 해법으로 인식되며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협동농장 공동사육과 개인농가부업을 장려하면서 온실양식, 민물양식, 근해어류양식을 널리 시행함과 동시에 근해재배면적을 확대하였으며 5세 미만 어린이의 영양실조 유병률을 급격히 감소시키고 모든 여성의 영양 요구를 해결하는 데 눈에 띄는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평안북도 동림군의 주민 소식통은 지난 달부터 국가무역회사 주도의 국경 밀무역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으면서 요즘 동림군 종합시장에 나가보면 수입 설탕과 밀가루 가격이 내려가고 있고 코로나 사태로 품귀현상을 빚던 중국산 조미료가 눈에 띠고 있으며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김일성 생일 이전부터 종합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수입 식자재와 조미료는 밀무역이 일부 재개되면서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라면서 태양절 이후에도 밀무역을 통해 중국산 식자재와 조미료가 계속 종합시장에 들어오면서 수입 식자재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현재 평안북도 동림군 장마당에서 수입 밀가루 1kg 가격은 지난 3월 내화 3만 원에서 1만 5천 원으로 절반이나 내렸으며 설탕은 5만원에서 2만 8천 원, 식용유는 3만 8천 원에서 2만 8천 원으로 하락하였다.
수입 맛내기 1kg 가격도 19만 원에서 11만 원까지 하락하였으며 같은 날 평안남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평성, 안주 등 내륙지역에서도 코로나 사태로 가격이 폭등하던 수입 조미료가 하락세 접어든지 한달이 다 되어간다면서 당과류 원료인 수입 설탕과 밀가루도 유통량이 많아지면서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자유아시아방송 기사
대부분의 비생산부문의 기업소와 사업소는 물론 원자재 보장이 되지 않는 생산 부문의 기업소에서도 가내부업축산반과 양어장을 설립해서 가축을 사육하거나 생선을 양식해 판매한 이윤의 30%를 유보할 수 있으며 10%를 기업소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MBC 기사
독립채산제로 전환된 지방산업공장과 비생산부문의 사업소와 기업소에서도 대부분 가내부업축산반과 양어장을 설립해서 지방인민위원회에 등록해서 승인을 받고 독립채산제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양식한 생선이나 혹은 가축의 부산물을 판매하여 보유한 자금을 기업소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더벌이가 사실상 허용이 되었다.
김정은은 비생산부문의 기업소와 사업소에서 더벌이를 할 경우 양어장과 가내부업축산반을 꼭 등록해서 승인을 받으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이며 대부분의 비생산부문의 기업소와 사업소에서도 특히 수익창출사업을 추진할 때 양어장과 가내부업축산반을 반드시 설립해서 허가를 받은 뒤 경영을 추진하면서 원자재 확보와 대용연유 확보에 나서고 있다.데일리 NK 기사


2.5.3. 대용연료의 자체적 생산 및 해결 과정[편집]


며칠부터 지배인은 출장이 잦아지며 대용연유생산에서 앞선 단위들을 찾아 해주시, 사리원시 등 여러 곳을 다니며 때로는 괜히 큰일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그때마다 군당위원회 일꾼들은 그에게 지지를 하여 주었으며 지배인이 애써 구해온 몇장의 도면을 놓고 사업소 일꾼들과 종업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고민하며 어떻게 해결할지 자체의 힘으로 연유 문제를 꼭 해결하겠다는 확고한 결심 뿐이었다.
생각을 고심하다가 생각이 막혀 풀리지 않으면 또다시 강동군이며 송림시에 거듭 출장을 가면서 그들은 탐구의 낮과 밤을 이어갔고 한달 만에 끝내 폐수지에 의한 대용연유생산공정을 확립하게 되었으며 처음으로 대용연유가 생산하게 되어 그때의 환희가 되살아난 지배인이 기뻐하였다.
어느 한 인민반에서 폐수지를 가져온 것이며 현재 신원군에서 대용연유생산에 필요한 폐수지를 인민반에서 폐수지를 수매받아 가져오며 그날이 마침 인민반 별로 폐수지를 수매하는 날이었으며 그는 가져온 마대를 보여주었는데 헌 마대와 찢어진 비닐 주머니, 깨진 플라스틱 대야와 칫솔대 등 별의 별 것이 다 있었고 신원군 연료사업소에서 폐수지로 대용연유를 생산한다고 할 때 기뻐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신원군연료사업소에서는 자체로 생산한 디젤유를 여러 농장에 싣고 나가 시험해보며 논밭갈이를 하는 트랙터에도 벼탈곡기에도 이용해 보았으며 반응이 아주 좋았고 대용연유에 기뻐한 검촌협동농장 제4작업반에서 못쓰게 된 박막을 수집하여 벌써 3번이나 사업소에 실어왔다고 밝혔다.
길주군농기계작업소에서 대용연유를 생산할 것을 결심해 설비 제작에 연구하고 지난해 12월 트랙터 수리와 농기계 제작에 쓰이는 전기를 대용연유로 해결해야 하며 설계와 함께 설비 제작이 완성되어 대용연유가 생산하여 나왔지만 제진장치 시험 결과는 매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작업소에서 또다시 시험에 들어갔으며 어느날 제진 장치의 각 부분품을 유심히 살펴보던 한 용접공이 환호를 올리며 해결방법을 알아내며 시험 연구원들은 분무장치를 새롭게 개조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작업현장에는 낮과 밤이 따로 없이 플라즈마 불꽃이 날리고 개조하기 위한 전력을 모았다.
지난 4월말 길주군 농기계작업소에서 환경오염이 없는 대용연유 생산에서 성공함으로 전력 사정이 긴박하였던 속에서 농기계 제작과 트랙터 수리 정비를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도록 전력 해결을 하였으며 농기계작업소 가동에 어려움이 현재까지 없다.
룡호리 협동농장에 도착하여 농장 일꾼이 반갑게 기자를 맞이하였고 찾아온 사연을 알겠다는 듯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그들은 아담한 대용연유생산기지로 기자들을 안내하였으며 대용연유가 생산되는 모습을 보니 기자도 모르게 감탄이 터졌다.
지난 5월말부터 생산을 시작하였는데 8월까지 5톤 가량 되는 대용연유를 생산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며 한 달에 1.65 - 1.7톤이나 대용연유를 생산하여 하루에 53 - 56kg이나 생산할 수 있는 양으로 알려져 있다.
대용연유를 생산한 것을 농장의 트랙터를 비롯한 각종 농기계들을 원만히 가동시키고 있어 대용연유의 개발과정을 보면 3월말 구역당위원회의 책임일꾼이 길주군에 폐수지로 대용연유를 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한 연구원이 있어 농장일꾼들이 찾아가 그 기술을 배워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관리위원장과 리당위원장, 기계화분조장이 길주군을 향해 떠났으며 폐수지재생이용기술을 연구하는 그 연구원은 기술역량과 공무기지가 많은 공장도 아닌 크지 않은 협동농장의 힘으로 대용연유의 생산을 해보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거부하였다.
농장의 일꾼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으며 농번기인 영농사업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며칠씩이나 연구원에게 간청하여 이들의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에 감명을 받아 연구원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었으며 연구원은 자기에게 기술을 배워달라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농장의 책임일꾼들이 모두 찾아와 사정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연구한 생산 방법을 원리적으로 해설하였다.
그 후에 협동농장까지 수백리길을 찾아와 생산공정의 설계는 물론 설비 제작과 운영 방법에 이르기까지 지도하여 주었다고 하며 협동농장에는 폐수지로 대용연유를 생산할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열렸으며 지금은 영농작업에 쓰고 남은 대용연유를 다른 단위에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이때 이전에도 대부분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만든 플라스틱을 가공하여 대용연유를 생산하여 많은 협동농장에서 생필직장을 만들어 생산하거나 혹은 연료사업소에서 생산한 대용연유를 시장가격에 판매하면서 많은 수익을 얻고 있거나 혹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 판매하고 상당한 이익을 거두고 있어 혹은 반대로 폐수지를 수집하면서 폴리에틸렌 수지와 폴리프로필렌 수지를 가지고 대용연유로 재가공하고 있다.
북한 로동신문은 자력자강의 위력으로 비약의 도약대를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체의 힘으로 어려운 과학기술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디젤유 생산 공정을 완성한 평안남도 문덕군 동반협동농장을 소개하고 있다.
로동신문은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 고립 압살 책동으로 농사에 필요한 원유가 부족하면서 농장 일꾼들은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라는 각오로 실패를 거듭하던 끝에 폐수지로 대용연유를 생산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이어 한 개의 반응로에서 하루에 평균 100 ~ 150kg의 대용연유를 생산하는데 농장에는 이런 반응로가 여러 개가 존재하고 있으며 자체로 생산한 대용연유로 트랙터 등 농기계를 가동시켜서 국가에 적지 않은 이득을 주고 있다고 선전하였다.중앙일보 기사


2.5.4. 공장 가동률 폭발적 증가[편집]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의 말에 의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대 월급 인상률은 일반 공업인에게는 35배의 월급 인상률이 올라 175달러의 월급 인상률이 올랐으며 일반 편의봉사업종에 대하여 105달러의 월급 인상률이 오른 것이 확인이 되었다.오마이뉴스 기사
이를 바탕으로 환산하면 현재 계획형 기업에도 상당한 액수가 올라갔으며 북한의 주요 제철소의 전문 기술직 노동자들과 노동 강도가 센 탄광 노동자들에게 북한 돈으로 100여만 원의 월급이 지급되고 있다.
제철소 가동에 있어서 필수적인 기술직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을 제고시키기 위해 이러한 월급 인상이 이루어졌다고 소식통이 알려왔으며 보조직장 노동자인 경우에는 30여만 원 사이에서 월급이 지불된다면서 하지만 계획 생산 과제를 완수했을 때에만 월급 전액이 지불되고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당연히 월급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데일리 NK 기사
현재 가동률도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에 60% 이상 가까이 가동률이 올라갔으며 업종에서 설비가 열악하거나 생산 여건이 좋지 않은 기업을 방치함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거나 기존 기업에 추가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생산을 증대하려는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2.5.5. 북한 GDP 경제성장률 대폭 증가[편집]


박봉주 총리가 재직했던 2013년2019년까지 정부수반에서 머무를때 2015년 ~ 2019년 경제성장률이 국내총생산 규모로 성장하였을 때 연평균 5.1%까지 성장하였으며 1인당 GDP 비교로 하였을 때 연평균 4.6%까지 성장하였다는 것을 볼 때 현재의 내각 총리의 민수 경제 비율이 총 경제의 30% 수준을 머무르고 있었을 때를 비교하자면 상당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화상회의로 진행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고위급 정치 포럼에서 북한이 VNR 보고서를 발표하였으며 북한의 국내총생산이 2015년 274억 달러에서 2019년 335억 달러로 연 평균 5.1% 성장하였으며 1인당 GDP는 같은 기간 연 평균 4.6% 성장했다고 밝혔다.
VNR 보고서는 2015 - 2020년 동안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위성과학자 주택 지구가 멋지게 지어졌고 모두 9천 5백 호의 주택이 평양 주민들에게 무상 분배되었다고 밝혔으며 2016 - 2020년 태풍과 홍수로 매년 심각한 자연 재해를 당한 뒤 복구 작업에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동원해 주택 3만 7천 호를 지은 뒤 주민들에게 무상 분배했고 피해 지역에서 주택 3만 1천 호를 수리했다고 보고하였다.
2012 - 2020년 동안 현대적인 의료 시설들도 들어섰다고 보고하여 평양 산부인과 병원의 유방암 관련 기관, 옥류어린이병원, 류경 종합안과병원, 류경치과병원, 묘향산의료기구공장을 그 예로 들었다.
아울러 2013 - 2020년 사이 마식령 스키장과 미림승마장, 문수유희장, 능라인민유원지, 양덕온천문화휴양지가 완성되었고,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이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때 대부분 재직 시절이 되는 총리는 박봉주 총리로써 상당한 기반을 가지고 총 경제의 30%의 비율로 상당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으며 3차 7개년 계획 이후로 3차 7개년 계획 수준보다 5배 이상 GDP가 증가하게 되었다.KBS 기사


3. 여담[편집]


  • 강성산과 더불어 임기를 2번에 나눠 수행한 북한의 총리이다.

  • 1948년 건국 이래로 1972년까지 24년간 수상직에 있었던 김일성을 제외한다면 북한의 총리 중 최장기간 재임기간을 자랑하는 총리이며 2003년 9월 ~ 2007년 4월 간 3년 7개월, 2013년 4월 ~ 2019년 4월까지 6년, 도합 10년 가까이 총리로 지냈다.

  • 대한민국에는 김재익 경제수석이 경제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면 북한에는 박봉주 총리가 실세 총리라는 명목으로 한동안 권력 및 현지지도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상당한 주민의 의중을 반영한 사례이며 김재익 경제수석과 박봉주 총리 모두 욕심이 그러하게 없다고 평이 알려졌으며 전부 전두환김정일 혹은 김정은의 총애를 받아오며 살았었다.

  • 공통점으로는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경제개혁조치를 추진하여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경제개혁조치를 취함으로 상당한 경제 성장이 왔었으며 대한민국은 이때 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으로 끝났으며 북한도 한동안 2015년에는 7.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2016년에는 3.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여 상당한 시장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고위급 정치 포럼에서 북한이 VNR 보고서를 발표하였을때 북한의 국내총생산이 2015년 274억 달러에서 2019년 335억 달러로 연 평균 5.1% 성장하였고 1인당 GDP는 같은 기간 연 평균 4.6%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북한의 경제성장이군

  • 차이점이라면 김재익 경제수석은 강등이나 혹은 숙청을 받은 사례는 없었으나 박봉주는 한때 위기가 있었을 정도로 박남기와의 권력싸움에서 패하여 2007년 결국 한번 강등 및 추방되었다가 2010년 다시 복귀하여 김정은의 총애를 받으며 나중에는 박남기를 뛰어넘는 최후의 승자가 된다. 또 김재익 경제수석은 도중에 서거하여 후대에게 경제를 맡기게 되지만 박봉주는 은퇴할때까지 총리를 한 경험과 은퇴 전에 자신이 돌봐온 경제에 대한 후계를 양성하는데 도움을 주어 나중에 김덕훈이나 혹은 로두철 같은 총리나 부총리 혹은 경공업부 같은 제조업을 육성시키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4. 참고 자료[편집]


  • 북한 기업의 사실상의 사유화 - 양문수 | 통일연구 | 2016.10
  • 북한 변화 실태 연구 - 홍민 | 통일연구원 | 2018.12
  • 북한의 기업관리체계 및 기업행동양식 변화 연구 - 이석기 | 산업연구원 | 2003.12
  • 북한의 유통 실태와 전망 - 김영희 | 산은조사월보 | 2008.12
  • 북한에서의 시장의 형성과 발전 - 양문수 | 비교경제연구 | 2005.08
  • 7.1 조치 이후 북한의 체제 변화 - 서재진 | 통일연구원 | 2004.12
  • 북한 경제개혁의 실태와 전망에 관한 연구 - 김영윤 | 통일연구원 | 2006.12
  • 북한 외화획득사업 운영 메커니즘 분석 - 임수호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2017.12
  • 김정은 시대 서부 주요 도시의 기업현황 및 가동률 결정요인 분석 - 정은이 | 통일연구원 | 2019.12
  • 북한의 상업활동 변화와 2000년 이후 상업법 개정 - 김영희 | 통일연구원 | 2015.09.24
  • 북한 정책결정과정의 조직 행태와 관료정치 - 한기범 | 북한대학원대학교 | 2009.12
  • 북한 경제개혁의 재평가와 전망 - 임수호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2015.12
  • 고난의 행군 이후 개인소유권 변화에 관한 연구 - 박일수 | 북한대학원대학교 | 2006.06
  • 북한의 국영기업 개혁 내용과 성공의 가능성 탐색 - 권영경 | 동북아경제연구 | 2004.08
  • Voluntary National Review -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 National Partners | 2021.06
  • 편의봉사법 | 법제처 | 2017.11.21
  • 조선중앙통신 | 2020.11.16
  • 로동신문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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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는 주요 경력을 지냈던 일을 사직하고 은퇴하여 혁명원로로 대접받고 있음이 확인이 되었으며 일명 김영남, 최영림, 최태복 등 많은 혁명원로와 함께 큰 대접을 받고 있다.[2] 김일성 제외시. 김일성 포함시 10대 13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