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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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박인천
(1946~1984)
제2대
박성용
(1984~1996)
제3대
박정구
(1996~2002)
제4대
박삼구
(2002~2009)
제5대
박찬법
(2009~2010)
제6대
박삼구
(2010~2019)
권한 대행
이원태
(2019~2020)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금호아시아나그룹 제4대, 제6대 회장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
박삼구
朴三求|Park Sam-koo


파일:external/newsmanager2.etomato.com/20150909_p.jpg

출생
1945년 3월 19일 (79세)
전라남도 광주부 본정[1]
(現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동)
자택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본관
밀양 박씨
직업
기업인
현직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
학력
광주서중학교 (졸업 / 35회)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 38회)
연세대학교 (경제학 63 /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부모
아버지 박인천 어머니 이순정
형제자매
박성용, 박정구
누나 박경애, 박강자
남동생 박찬구, 박종구
여동생 박현주
배우자
이경렬
자녀
장남 박세창[2]
장녀 박세진[3]
종교
불교

1. 개요
2. 생애
3. 회장 시절
3.1. 갑질
3.2. 기쁨조 미투 폭로
3.3. 고액 퇴직금 수령
3.4.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
5. 여담
6. 상훈
7. 어록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 제4대, 6대 회장, 현재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이자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아버지 박인천과 형 박성용, 박정구에 이어 2002년 회장에 취임하였다. 2009년 그룹이 워크아웃에 빠지며 회장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11월 1일 전문경영인 신분으로 논란 속에 회장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2019년 3월 28일 다시 회장직을 사퇴했다. 2021년 5월 13일 계열사부당지원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 역사상 최초 구속수감된 회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아버지와 형들이 일궈놓은 잘나가던 금호아시아나를 파멸시킨 그룹 한국 기업 역사상 최악의 회장이다. 당연하지만, 금호그룹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재벌, 아니 대한민국의 경영인으로 범위를 확대하더라도 그보다 더 처참하게 탄탄한 회사를 말아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4]

특히 그의 회장직 취임 후 그룹은 공격적 M&A의 여파로 자금난을 겪고, 해가 갈수록 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한때 무리한 M&A를 통해 7위까지 올린 재계서열도 25위로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급기야 2019년 결국 그룹 매출의 70%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및 그 자회사를 매각하게 되었다. 아시아나 매각이 완료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순위 60위권 밖의 중견기업으로 추락하게 됨과 더불어 명칭도 변경될 예정이다.

2. 생애[편집]


1945년 3월 19일, 전라남도 광주부에서 출생했다. 금호그룹 창업주인 아버지 박인천과 어머니 이순정 사이의 7남매(4남 3녀) 중 다섯째이자 3남이다.[5]

1964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68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를 졸업하여 20대의 나이에 금호타이어에서 근무를 시작해 금호그룹 전무이사, 부사장을 거쳐 1980년 (만 35세) 금호실업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1991년 아시아나항공 사장, 2001년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은 후 2002년 둘째 형인 박정구 회장이 폐암으로 사망하자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직에 취임하였다.


3. 회장 시절[편집]


사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포트폴리오는 정말 망하기 힘든 구조였다. 건설[6], 생명보험타이어, , 석유화학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같은 회사들에 고속버스 사업으로 시작한 만큼 터미널과 같은 부동산 자산과 국내 고속버스 시장에서 최대의 점유율을 갖춘 금호고속에서 고정적인 현금 수입 등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이렇게 자산과 현금이 풍부한 구성을 갖춘 재벌이 드물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버지 박인천, 첫째 형 박성용, 둘째 형 박정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서열 10위권 내로 진입시켰다. 그러나 박삼구는 이 자산을 믿고 과욕을 부림과 판을 크게 벌리는 지속적인 오판 끝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사실상 해체 단계로 몰아넣었다.[7]

창업주 박인천의 작고 이후 그룹의 전통이었던 형제 경영을 깨뜨리고 세습을 시도했다. 다른 대기업과는 달리 금호아시아나그룹 2세 형제들은 65세가 되면 다음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기로 했었는데, 박삼구는 그의 나이 65세인 2010년에 동생 박찬구 석유화학 부문 회장에게 경영을 승계했어야 했지만, 아들 박세창에게 경영권을 승계해 주려 했다. 게다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인수를 강력히 만류하는 박찬구와 대판 싸움을 벌이게 된다. 결국 이 두 가지 문제로 형제 사이가 악화되어, 결국 박찬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석유화학 부문을 계열분리하여 독립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인 것은 덤.

특히 대우건설 인수가 매우 이해할 수 없는 큰 문제였는데[8], 인수자금에만 6조 6천억원, 여기에 대한통운까지 포함하면 총 10조원이 넘는 어마무시한 돈이 계열사 동원 + 교환사채 + 인수금융 등을 통해 투입됐으며 그것도 인수 자금의 절반 이상이 빚이었다. 그룹 내부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소모하는 무리한 기업 규모 확장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지만, 언론에서는 '경영계의 마이더스의 손이다'라면서 찬양하는 기사가 많았다.

무리한 차입의 결과,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일명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며 대침체가 터지자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다. 그룹의 모태 기업인 금호고속,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 주요 계열사인 금호타이어, 금호생명이 주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으로 넘어갔다. 어떻게든 금호그룹의 상징성인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의 경영권은 되찾았으나, 금호렌터카는 KT[9], 금호타이어는 중국의 더블스타에 매각되었고 금호생명은 1조원 가까운 공적자금이 투입된 후 지금까지 산업은행의 애물단지로 남아 있다.

이외에도 화물기 화재, 샌프란시스코 사고기체 전손+사망사고 2건히로시마에서 A320 1대를 전손시킨 사고까지 다사다난한 기간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건 아시아나항공이 노선대비 적은 비행기를 운용하면서 생긴 문제의 연장선상이었다. 참고로 대한항공은 1999년 세기말의 화물기 추락사고 이후에도 하네다에서의 엔진 화재, 세부에서 A330을 전손시킨 사고 등 위험천만한 사고가 좀 있긴 했으나 어쨌든 25여년간 사망사고는 0건이었다.

게다가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그룹재건을 목적으로 금호기업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부동산 가치만 1조 원 가량이 되는 금호터미널을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2,700억 원이라는 헐값에 인수한 후, 금호기업과 금호터미널을 합병시킨다. 설상가상으로 2018년 7월에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부족 사태까지 터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사태의 원인은 박삼구 개인이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되찾기 위한 자금을 투자받을 목적으로 무리해서 기내식 업체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경영인 한 사람의 욕심과 잘못된 판단으로 수많은 승객, 승무원, 하청업체 직원들까지 고통을 겪다가 기어이 하청업체 사장이 자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더욱이 박삼구의 경영권 회복에 동원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무려 715%에 달하고 있다. IFRS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면 1153.3%나 된다. 항공업의 특성상 항공기 구입 비용을 모두 지불하기 어려워 리스로 항공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외부감사 결과 '한정' 의견을 받고 관리종목에 편입되는 사태에 처하면서, 2019년 3월 28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누가 한국 재벌 아니랄까봐 아들 박세창에게 경영권을 넘기려 했지만, 채권단으로부터 퇴짜를 맞고 결국 아시아나항공 매각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HDC현대산업개발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서 계열분리가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사태 및 아시아나의 경영난 등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M&A가 무산되어 당분간 채권단 체제 하에 놓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한진가 갑질사건이 워낙 이슈가 커서 그렇지 박삼구 회장의 갑질은 한진가의 그것도 울고 갈 수준이다. 조양호 회장은 재임기간 중 아시아나보다 더 많이 비행기 띄우고도 사망사고가 0건이었지만, 박삼구 회장은 위에도 있듯 사망사고 2건을 포함하여 비행기 스크랩(고철처리≒폐차)이 총 3건이다. 그리고 아시아나항공뿐만 아니라 금호아시아나그룹 자체를 사실상 무너뜨려버렸다. 즉, 박삼구 회장은 애초부터 경영능력 자체가 의문인 인물이다. 사고건수가 낮다는 것과 사망사고가 없다는 것은 운송업 특히 항공사에선 최우선 과제이고 이것도 객관적으로 수치화되는 중요한 경영실적인데 조양호는 본인과 가족이 다혈질이라 논란이 된 것 말고는 경영능력이 뛰어났지만 박삼구는 재계서열 7위였던 기업을 순식간에 60위권 밖으로 밀어내린 대기록(?)을 남긴 기본조차 안 된 CEO였다.

결국 이 회장의 이상한 업적 때문에 무너질리가 없었던 박인천금호아시아나는 결국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금호건설금호고속마저 업황이 좋지 않다보니 계열사 간 지원은 꿈도 못꾸고 있고, 사실상 각자도생 중이다.

3.1. 갑질[편집]


  •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형제간의 우애가 좋기로 소문났었지만, 본인의 욕심으로 인해 형제 경영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역사상 최초로 깨뜨린 주범이다. 박삼구 전 회장이 대우건설대한통운을 인수함에 앞서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그룹의 위기를 우려해 형에게 만류하였지만, 묵살당하였으며, 두 회사 인수에만 총 10조원의 어마어마한 돈을 지출한 것과 더불어 대침체와 대우건설 인수 때 내건 풋옵션으로 인해 수많은 이자까지 지불해야 했던 금호아시아나가 버티다 못해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자, 두 형제간의 책임공방 다툼이 점화되었다. 3년짜리 회사채도 발행했지만 연장이 안 됐고, 2008년 말엔 기업어음이 5,000억원대에 달하는 등 점점 부채가 늘어 위험신호가 여러 곳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2009년 6월 대우건설 풋백옵션이 돌아오면서부터 금호그룹이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시장이 알아차린 것이다. 박삼구는 금호석유화학을 팔아서라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살리겠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박찬구는 그룹이 항공 중심의 본연으로 돌아가고 알짜배기인 석유화학은 매각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으로 맞섰다. 좁게는 금호석화의 생존 여부를 두고, 크게는 그룹의 회생 방안을 두고 두 형제간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던 것이다. 동생의 수 많은 독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자칫하면 자신의 경영권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탓일까, 이에 빡친 박삼구는 박찬구를 강제로 해임시켜버렸고, 이에 분노한 박찬구는 자신을 해임시키고 그동안 갑질&무능의 경영을 그룹의 위기로 몰아붙인 형을 상대로 법적대응 및 그가 가지고 있던 금호산업 등의 지분 처리, 석유화학 부문에 대한 지분을 늘려 계열분리 하는 등 형과 완전히 결별했다. 이른바 7년이나 진행 되었던 형제의 난. 박찬구 회장 역시 형제의 난을 오래 끌 생각은 아니였으나, 검찰에 소환되는 등 갖가지 심리적 공격을 당해왔으며 이 배경에 박삼구가 있다고 판단하여 "형과 루비콘 강을 지나버렸다"며 형제 경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사실 두 형제간의 경영 스타일도 극과 극으로 다른데, 박삼구는 외형 확장을 중시하였고, 박찬구는 보수적이고 내실을 중시하였다. 2016년, 형제의 난은 종결되었고, 서로 표면상 화해는 했지만 남보다도 못한 앙숙 관계가 돼버렸다. 2019년 4월,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인해 지방 중견기업 오너로 전락할 예정인 박삼구와 분가 후 안정적이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는 박찬구의 입장과 평가가 뒤집혀졌다.

  • 박정구 회장의 작고 후 2010년 경, 박삼구의 오판으로 인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핵심 그룹사였던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이 워크아웃 및 자율협약 등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직후 그의 장남인 박철완 당시 아시아나항공 부장과 그의 모친이 작은 아버지인 박삼구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을 맡아보겠다고 제언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절대 안된다고 했으며, 1988년 회사 설립 이래 조그만한 항공사를 메이저급 국적 항공사로 성장시켰던 것 역시 박삼구 회장 본인이었던 것 만큼[10] 박철완의 제안을 거부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형제의 난과 더불어 박정구 일가와의 사이도 틀어져 버렸으며, 형제의 난 초기에 박삼구 편이었던 박철완은 넷째 작은 아버지인 박찬구를 따라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나[11] 2021년 초, 조카의 난이 발발하여 금호석유화학 주주총회에서 박찬구와의 표 대결에서 완패해 3월 31일 부로 해임되었다. 아름답게 보여졌었던 형제경영의 말로가 형제간, 일가친척 모두에게 큰 상처만 남기게 되어 씁쓸하게 비추어진다.

3.2. 기쁨조 미투 폭로[편집]



박 회장은 스튜어디스들을 만나면 ‘내가 기 받으러 왔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본관 1층에서 여승무원들을 불러놓고 20~30분 동안 껴안은 뒤에는, 20대 초반의 갓 입사한 승무원 교육생들이 머무는 교육훈련동으로 가서 시간을 보낸다. 업무보고를 받으러 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승무원이 아닌 일반직들의 사무실에는 방문하지도 않는다.


  • 매년 1월 직원들과 하는 북한산 등산도 논란이다. 박 회장과 함께 산을 오르고 내릴 여승무원들로 구성된 별도의 조직이 있다는 주장이다. 또 박 회장은 매년 북한산 중턱에 있는 음식점 별채에서 여승무원들로부터만 세배를 받아왔다. 또 다른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도 증언한다.

정말 기이한 풍경이다. 박 회장은 방에 혼자 앉아 있고, 여성 직원들은 일렬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1명씩 들어가서 세배를 하고 흰색 봉투를 들고 나온다.


승무원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연례 가을행사 ‘플라자 앤 바자회’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등 장기자랑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증언한다.[12]

누가 그걸 하고 싶겠느냐. 성심병원 간호사 춤 동영상이 논란이 됐을 때, 여기 직원들은 ‘우리가 원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회장님을 뵙는 날, 자꾸만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었죠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가슴이 터질 듯한 이 마음 아는지"

(KBS 보도 중)


아시아나 승무원 "회장님 오신다, 넌 울고 넌 안기고 넌 팔짱"(북한김정은을 보는 것 같은..)
"우리가 기쁨조냐"…아시아나 여승무원들, 박삼구 회장 상대 '미투' 폭로글 쇄도

기내식 사태 이후 올해 초 타칭 기쁨조에 자사 여승무원 인턴을 동원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단독]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아시아나 갑질 공연, KBS 북한이 연상되는 수준이다.

2019년 1월 9일, 해당 사건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미 대대적으로 언론에서 기사화 된 이후로 본인과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으며 두어달 후 아시아나항공의 회계 파문으로 인하여 10년만에 또 다시 그룹 총수직에서 물러났고, 아시아나항공 및 항공 사업부들을 모두 매각키로 결정하였다. 본래 HDC 현대산업개발이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자였으나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와 더불어 이로 인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까지 누적되어 인수는 무산되었고 산업은행의 주도하에 한진칼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여 초대형 국적사로 통합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3.3. 고액 퇴직금 수령[편집]


금호그룹이 기울어가는 와중에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2019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박삼구 전 회장이 총 65억원 가량의 거액의 퇴직금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금호그룹이 부실을 겪으며 들어간 공적자금만 수조원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 언론으로부터 도마위에 올랐다.

박삼구 전 회장은 2017년 금호타이어를 매각하며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날 때도 고액의 퇴직금을 챙겨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채권단이 "경영실패로 물러나는 마당에 퇴직금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며 지급 보류 결정까지 내렸다. 채권단 관계자는 "회사의 경영악화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전 임원들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은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 일. 특히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금호타이어의 정상화에 필요한 모든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경영악화로 구조조정 중인 회사에서 퇴직금을 받아간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 개월 간의 공방 끝에 박삼구 전 회장은 끝내 22억원을 받아갔다. 박삼구 전 회장 뿐만 아니라 측근인 고위 임원들도 대거 고액의 퇴직금을 지급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일종의 사익 편취 마지막 수단인거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서도 하고, 어떤 경우엔 보수를 굉장히 높게 해서도 하는데, 마지막 수단으로 회삿돈을 어떻게 보면 빼돌리는 수단으로 퇴직금 제도가 악용되고 있는 것이죠."라고 비판했다. #


3.4.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편집]


2020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등 주력 계열사를 이용해 총수 지분율이 높은 금호고속(금호홀딩스)에 부당 지원을 했다며 내부거래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320억원을 부과했고 아울러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당시 그룹 전략경영실 임원 2명을 고발했다.

공정위는 2015년 이후 박삼구 전 회장이 그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인수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금호고속을 금호아시아나의 계열사들이 부당하게 우회 지원하는 등의 행위가 있었다고 밝다. 아울러 공정위는 금호그룹이 이러한 작업을 통해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권을 키우고, 경영권 승계 구도를 총수 일가에 유리하게 만들려고 했다고 판단했다.

2020년 10월 21일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했고, 사건을 배당받은 공정거래조사부는 11월 7일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와 금호고속 서울사업소 등을 압수수색해 내부 문건과 자료를 압수하는 등 강제 수사를 벌였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행해진 바로 다음날인 11월 8일 오전 11시 15분 박삼구 전 회장은 일본으로 출국하려다가 공항에서 제지당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아니고 대한항공 KE703편을 이용해 일본 나리타로 출국시도했다가 공항에서 제지당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2021년 4월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해당 기사가 보도되자마자 그룹 측에선 도피 시도는 절대 아니었다고 즉각 해명하였지만, 아시아나도 나리타 노선이 존재하는데, 도피 시도가 아니었다면 왜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가졌었던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지 않고 대한항공을 이용하려 했냐는 의심적인 반응이다.

2020년 12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윤모 전 금호그룹 전략경영실 상무(현 금호고속 감사)와 윤씨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공정거래위원회 전 직원 송모씨를 증거인멸, 뇌물수수 및 공여 등 혐의로 구속했다. 공정위에서 디지털포렌식(데이터 복구) 자료분석 업무를 담당하던 송씨는 그 대가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 중 사측에 불리한 자료 일부를 삭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

2021년 2월 23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와 금호고속 광주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2021년 4월 13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박삼구를 최종 소환통보를 하였다.#

2021년 4월 16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서 9시간 가량 조사 받고 귀가했으며 검찰은 박삼구의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중이다.

2021년 5월 10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는 독점규제법 위반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그리고 5월 13일 새벽,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박 전 회장은 구속 수감되었다.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피의사실과 같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

2021년 5월 26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박 전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3.4.1. 재판[편집]



3.4.1.1.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편집]

  • 사건번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고합482
  • 재판부: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조용래 부장판사)

2021년 8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박삼구 회장의 첫 공판기일이 있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고합482)

2021년 11월 2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2022년 7월 12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박 전 회장에 대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임직원 3명에게는 징역 3~5년을, 금호건설에는 벌금 2억 원을 구형했다.

2022년 8월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조용래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회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2021고합482). 함께 기소된 윤모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상무에게는 징역 5년이, 박모 전 경영전략실장[13]과 김모 전 아시아나항공 재무 담당 상무에게는 각각 징역 3년이 선고됐다. 또 금호건설 주식회사에 대해서도 벌금 2억 원을 선고했다.#, #

인정된 혐의는 ▲계열사 자금 3300억원 횡령(금호터미널 등 계열사 4곳의 자금 3300억원을 횡령해 산업은행이 가진 금호산업 주식을 매입) ▲금호터미널 주식 저가 매각(아시아나항공이 가진 금호터미널 주식 100%를 금호기업에 평가자금 절반 이하인 2700억원에 팔아치움) ▲기내식 사업권 저가 양도(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독점 사업권을 1333억원에 스위스 게이트그룹에 넘기고, 그 대가로 1600억원 규모의 금호고속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도록 함 ) ▲공정거래법 위반(계열사 9곳을 동원해 금호기업에 1306억원을 담보 없이 싼 이자로 빌려줘 지원한 혐의) 등 대부분이다. 다만 공정거래법 위반과 금호건설 부당지원 혐의에 대해서는 특수관계인에 이익이 귀속됐다는 점만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은 박삼구 전 회장이 그룹 지주사이자 아시아나항공 모회사인 금호산업(현 금호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 '금호기업'(현 금호고속)을 만들고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2022년 8월 22일, 박삼구 전 회장 측은 법정구속 직후 1심 판결에 불복해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3.4.1.2. 2심 서울고등법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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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족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범금호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여담[편집]


  • 아시아나항공의 코드가 OZ라서[14] 항공기 갤러리 등지에서는 마법사 항공 또는 마법사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번에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이를 통해 박삼구 회장의 부조리와 갑질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박삼구 회장은 흑마법사 또는 악한 마법사로 불리기도 했다.

  • 큰 형 박성용 전 회장처럼 문화예술 애호가이며, 한국 메세나협회 회장으로서 적극적인 후원을 하고 있어서 음악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본인이 총동문회장으로 있는 모교 연세대학교 백양로에 금호아트홀 연세를 기부하고 클래식 음악 영재들을 많이 후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거쳐갔던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대우건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건물도 같이 매각하는 바람[15]에 어정쩡한 모양새가 되었고 결국 2019년 5월 1일 부로 폐관이 결정되었다.

  • 구본무 LG 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구 회장과 박삼구 회장은 1945년생 동갑내기이고 연세대 동문이라 절친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구본무 회장 장례식 때 3일 모두 빈소를 찾았고 발인까지 함께 했다.

  • 정·관계 및 재계 뿐 아니라 법조계와 금융계를 비롯해 학계와 언론계 등으로까지 인맥이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광두 전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는 광주서중학교광주제일고등학교 2년 선후배의 인연으로 굉장히 돈독한 사이며 실제로 김광두 전 부의장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감사위원과 금호석유화학그룹의 감사위원으로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재직한 것 역시도 같은 중고등학교 선후배사이라서 그렇다. 또한 박삼구 전 회장과 같은 광주일고 출신인 이낙연[16] 전 총리와 이병훈[17] 더불어민주당 의원, 소병철[18] 더불어민주당 의원과도 굉장히 돈독한 관계로 알려져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부인 박 모씨의 오빠가 금호그룹에서 임원으로 근무했던 인연으로 박삼구 회장은 김기춘과 친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일가[19]박지원 전 국정원장과도 친분이 있다. 해외 인맥도 화려한데, 박삼구는 중국의 정관계 인사들과도 인맥을 쌓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 전 주석 등 중국 내 최고 지도자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제19대 대통령 선거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이는 박지원, 정동영 등 상당수의 동교동계 인사들이 소속된 점 및 호남권에서의 강력한 지지 아래 당시 그룹 재건의 마지막 퍼즐인 금호타이어 재인수전을 놓고 채권단과 협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경우 호남 정치권의 지원을 통한 금호타이어 재인수가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결과는 박삼구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았으며, 이는 곧 금호타이어가 중국으로 매각되어 버리고[20], 그룹 해체 및 2020년 12월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과 합병이 추진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 이동걸 한국산업은행 전 회장과는 서로 악연이다. 2009년 6월 금호그룹이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으면서 금호타이어, 금호산업 등이 채권단 관리로 넘어갔지만 박삼구 전 회장은 산업은행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2010년 11월에 다시 경영에 복귀했다. 당시에도 박 전 회장에게 산업은행이 지나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박삼구는 우여곡절 끝에 2015년에 금호산업을 인수하며 그룹 재건의 첫 발을 뗐다. 그룹 재건의 마지막 퍼즐인 금호타이어 재인수를 통해 경영 정상화를 이루어 내겠다는 취지 하에 상황상 우선 매수권까지 보유한 박삼구에게 금호타이어 재인수가 순탄하게 이루어지는가 싶었지만, 이동걸 전 회장의 지난 2017년 9월 취임 직후 금호생명, 대우건설 등의 매각 등 금호 관련에 관한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해 나가겠다는 포부와 중국 더블스타의 인수전 참여 등 금호타이어 매각 문제로 박삼구 전 회장과 매각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되던 ‘우선매수권 문제’를 담판 짓기 위해 면담을 가졌으며, 채권단의 자율협약 결의로 주도권을 빼앗긴 박삼구 회장이 경영권과 우선매수권을 포기하고 상표권 사용 문제도 협조하겠다고 약속하면서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에게 금호타이어 재인수 기회를 완전히 빼앗았다는 점에서 이들 사이의 감정은 이 때부터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삼구 회장의 우선매수권이 금호타이어 매각 실패 이유’라는 이동걸 회장의 발언도 있었다. 당시 박삼구 회장은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통해 금호타이어 재인수를 하겠다고 하였으나 산은에서 개인 자격으로 인수해야 한다고 거절했으며, 그 훨씬 이전에도 일본의 요코하마 타이어와 공동 인수를 추진했었지만 이 마저도 거절한 바 있다. 산업은행이 다른 인수후보자인 중국더블스타를 찾아 협상을 시작하자 박삼구 측은 금호타이어의 상표권 문제를 들어 협상진행을 방해하는 등 중국으로의 매각을 격렬히 반대하였고, 중간에 더블스타와의 매각 협상이 결렬 되기도 하였지만 끝내 금호타이어는 박삼구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의 자구책 제시에도 불구하고 더블스타에 매각되어버리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이후 아시아나항공을 놓고도 묘한 신경전을 벌인 바 있는데, 기내식 대란과 오너 리스크, 기체 결함 등에 따른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위기가 우려되자 이동걸이 “회사의 현금흐름이 급격히 나빠진다면 바로 경영을 개입하겠다”고 경고하면서다. 결국 2019년 4월 회계감사 쇼크로 인하여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키로 결정하고, 본래 새주인 예정이였던 HDC현대산업개발은 이듬해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아시아나 인수작업을 무기한 연기시켰으나 전세계적인 전염병 확산에 의해 세계 경제상황, 특히 항공산업이 휘청된 것 등을 고려하여 모든 상황이 나아지는대로 인수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산은과 채권단에게 협조를 원했던 모양이나 "당장 인수할거냐 말거냐" 라는 식으로 다소 지나치게 다급했던 이동걸에 대한 욕심이 결국 가장 이상적이였었던 M&A를 무산시킨 꼴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국영화 체제로 전환될 줄 알았던 아시아나항공은 느닷없이 대한항공이 인수하는 것으로 산은의 주도 하에 결정남에 따라 30여년만에 복수 민항 체제에서 독점 체제로 후퇴시켜버릴 작정이다.(...) 그룹을 해체수준으로 폭망시킨 건 박삼구의 실책이 크긴 하지만, 이미 쌍용자동차, 하이디스 등이 중국 자본으로 들어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을 또 다시 중국에 내주고, 국내 항공시장을 독점 체제로 후퇴 시키는 등 다소 산업보호에 대한 중요성 결여 및 융퉁성도 없었던 이동걸의 책임도 피해갈 수 없다. 결국 이 둘의 악연으로 인하여 국내 경제산업에 대한 불안감만 더욱 증폭된 원인만 제공해준 셈이다. 무능하기로는 두 사람 동일하다는 평가. 결국 이 사람의 행보로 인해 박삼구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 임원들은 '이동걸' 이름 석자에 지금도 이를 간다 카더라...

  • 2017년 11월 8일, 금호타이어 주식 호가창에 3,918주 주문이 일제히 나오는 상황이 빚어졌다. 3,918주 주문은 박삼구의 39, 씨발의 18을 조합한 주문으로, 박삼구를 욕하기 위한 주문이었다. 같은 원리로 1,839주 (1839 = 씨발삼구) 주문도 박삼구 전 회장을 겨냥한 주문으로 쓰였다. 그만큼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박삼구의 악명은 자자했다고 한다.




  • 그룹 회장이 되기 전과 후의 평가가 그룹 내 베테랑 급 임직원들 사이에서 극과 극으로 갈린다. 아시아나항공 사장 시절엔 전세계 항공사 중 최초로 전 노선 기내 금연 실시와 더불어 대한항공 대비 높은 급여 및 복리후생 제공, 항공기 안전 투자, 사업장 시설 투자 및 임직원들에 대한 처우개선 등에 힘써왔으며, IMF 경제 위기를 맞았음에도 구조조정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대외적인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복직시키는 등 위기를 극복, 사내 인트라넷에서 누군가가 괜찮은 제언을 한다면 즉시 실행으로 옮기는 등 나름 개념적으로 회사를 키워냈다고 평가받았지만, 금호그룹의 회장이 되고나선 사장 시절과 달리 권력맛에 취했는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즉 박삼구의 경영 능력은 딱 사장까지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는 것. 대체적으로 아시아나항공 초기 부터 재직 중인 임직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예전엔 정말 일하기 좋은 회사"였다는 것이다.

6. 상훈[편집]


  • 보사부장관 표창 (1993년)
  • 국민훈장 석류장 (1996년)
  • 환경경영대상 종합대상 (1999년)
  • 물류대상 대통령 표창 (2000년)
  • 에어트랜스포트월드 승객서비스상 (2001년)
  • 금탑산업훈장 (2004년)
  •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 (2006년)
  • 중한우호협회 중한우호공헌상 (2007년)
  •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2014년)
  • 레지옹 도뇌르 훈장 (2016년)


7. 어록[편집]


- "지금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결코 만만치 않다. 보다 더 철저하게 외부 환경을 분석해 우리 상황에 맞고 합리적이고 실행 가능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전략에 따라 발 빠르게 대처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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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새 각오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시작하려고 한다. 새로운 발상과 사고로 창업 초심을 되살려 2018년을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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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한일 양국은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오래 교류해 많은 공통점을 가진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민간 차원의 지속적인 교류가 한일 관계를 돈독하게 지탱한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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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2일, 한국방문위원회가 추진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우호의밤‘ 행사 환영사에서


- "금호타이어 인수전은 결국 순리대로 될 것이다. 우리가 인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고,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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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2일, 에어부산 사옥 준공식에서 금호타이어 인수전을 놓고


- "내 부덕의 소치로 국민과 여러분께 너무 걱정을 끼쳤다. 참 민망스러웠고 정말 여러분께 죄송했다. 동생이 소송을 취하해줘서 동생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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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2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금호터미널 지분 매각 관련 소송을 취하해주자 언론과 인터뷰에서 고맙다는 소회를 털어놓으며#


- "북미 시장은 자동차와 타이어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지역이다. 금호타이어가 글로벌 톱티어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시장을 적극 확장해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첨단 설비는 물론 선진화된 관리 시스템으로 최고의 타이어 공장을 만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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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3일, 금호타이어 조지아 공장 준공식에서


- "기업의 기(企)자는 사람 인(人) 밑에 멈출 지(止)로 이루어진 글자로, 글자의 형상이 상징하듯 사람이 없으면 기업은 멈추게 됨을 의미한다. 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 책임은 고용 창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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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상반기 공개채용을 시작하면서#


- "500년 영속기업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목표를 당부드린다. 기업의 목적이 단순한 이윤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기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이윤뿐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모든 조직이 우선순위를 가지고 이윤 경영을 해달라. 둘째, 품질경영이다. 품질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제품의 품질, 기술의 품질, 서비스의 품질로 제품의 부가가치를 올리자. 셋째, 안전경영이다. 안전경영은 경영자의 철학이 없인 불가능하다. 내 생명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소박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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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4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관광청이 없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관광청이 만들어지면 행정입법권을 가질 수 있어 한국관광산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 입법기능을 가진 관광청이 만들어진다면 유럽연합처럼 ‘한, 중, 일 3국 공동관광청’설립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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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8일, 한국방문위원회 기자간담회 中#


- "죄송합니다. 수년 동안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더 낮은 자세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 진정 아름다운 기업이 될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본인의 부덕한 탓으로 가족 문제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부분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금호산업 인수를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더 낮은 자세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국가 경제발전에 작지만 큰 힘이 될 수 있도록 남은 여생을 다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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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4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금호산업 지분을 사들이기로 하면서 밝힌 첫 인사말


- "제가 오늘 분에 넘치게 상을 받았습니다만 그 동안에 1977년도에 우리 선친께서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굉장히 저도 좋아하는 말이고 어떻게 그 당시에 그런 캐치프레이즈를 쓰셨을까...굉장히 선친을 존경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제가 갑자기 2005년도에 문화재단을 맡으면서 '선친의 유지, 제 큰형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문화재단을 발전시켜야겠다' 그런 책임감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문화예술 부분에 영재들을 발굴하고 영재들을 지원하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해볼까 합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만 기업인으로서 아름다운 기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제가 해야 할 1차적인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으로도 더 책임을 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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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4일,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시상식에서.


- "차세대 항공기 아시아나 A380의 도입이 고객서비스 만족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아시아나 A380은 그 중심에서 우리를 도와 최고의 안전운항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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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6일, 프랑스 에어버스 툴루즈 공장에서 가진 아시아나항공 A380 1호기 인수식 행사에서.


- "우리는 지난 68년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여 왔고 특히 지난 4년 동안 여러분들의 열정과 집념으로 제2창업의 기반을 만들어 냈습니다. 창업회장님께서는 항상 ‘사람은 무슨 일이든 마무리를 지을 줄 알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 끝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손으로 제2창업 마무리를 짓도록 합시다. 임직원들이 사랑하고 사회에서 존경 받는 새로운 금호아시아나를 만들어 나갑시다."

-

2014년 1월 2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2011년은 어느때보다 다사다난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 대지진에 이은 원전사고와 유럽발 경제위기, 전세계적인 민주화 시위와 내전, 그리고 지난 12월 19일 김정일 사망 등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습니다. 그룹 내부적으로 금호타이어 중국시장 리콜사태, 항공화물기 사고, 그리고 부동산 수요감소로 인한 국내 건설경기 침체 등 정말 어려웠던 한 해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기가 속한 자리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자랑스런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 비록 예전에 비해 규모는 작아졌지만, 강하고 힘있고 멋있는 금호아시아나, 임직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새로운 금호아시아나, 그리고 사회로부터 존경 받는 새로운 금호아시아나를 만들어 갑시다. 다시 한번 임직원 가족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임직원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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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기업의 역사에는 희비와 부침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그룹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켜 온 65년의 전통과 저력이 있습니다. 창업 당시부터 면면히 내려 온 '집념'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금호아시아나'의 역사를 함께 열어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임직원 모두는 '하겠다는 의지', '하고 싶어하는 열정',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금년도 경영목표달성은 물론 '새로운 금호아시아나' 역사의 자랑스러운 원년을 만들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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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아름다운 기업, 500년 영속기업을 만들겠다는 약속에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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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8일,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해임조치한 뒤 동반퇴진을 선언하며.


- "글로벌 물류회사로 나가려면 전 세계보다는 이머징 마켓인 중국과 베트남으로 특화해야 한다. 이길 수 있는 시장으로 가서 하는 게 글로벌화라고 생각한다. 해운업은 대한통운에 연안 화물선이 4척이 있는데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해운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한통운이 국내에서는 확고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해외시장에서는 약해 글로벌 물류업체로 성장시키기 위해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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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7일, 대한통운 인수 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 "창업 60주년을 맞아 새 CI를 도입하였고 대우건설을 성공적으로 인수하였습니다. 우리 그룹과 대우건설의 만남은 향후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우리 그룹이 새로운 60년을 향해 비상하는 데 있어 힘찬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우리그룹은 이제 진갑(進甲)을 맞아 새로운 60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출발선 상에 서 있습니다. 그 첫 해인 2007년도에는 그룹의 화두를 `아름다운 飛上`으로 삼고자 합니다. ··· 금년에도 국내외 경기는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와 환율은 불안할 것으로 예상되며, 위축된 투자심리도 회복이 불투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절대 방심하지 말고 항상 긴장하며 한마음 한 뜻으로 대처해 나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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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기업은 지탄받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지탄은 그 어떤 총탄보다도, 폭탄보다도 무서운 것으로 약속한 것은 꼭 지키고 건실한 경영을 통해 신뢰받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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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7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창립 60주년 기념사 中#


- " 회사를 한꺼번에 인수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당장이라도 1조천억 원짜리 수표를 끊을 수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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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전이 경쟁입찰기업들과 불붙자 한 말# 결국 이 말은 결국 회사가 반토막나는 비극이 되고야 말았다.


- “우리는 대우건설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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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할 당시.


- “2005년 한 해도 지난해 못지 않게 국내외 경영환경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도 최고의 경영성과를 일궈 냈듯이 올해에도 전 임직원이 지혜와 슬기를 모아 내년으로 성큼 다가온 그룹 창립 60주년을 그룹 중흥의 기점으로 만들기위해 최선을 다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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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4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모든 그룹사 및 임직원 모두는 무엇보다도 수익성 창출 및 향상을 위해 역량을 총 동원함으로써 금년도 그룹의 경영목표를 기필코 달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금년도부터 이러한 경영목표를 착실히 달성해 간다면 우리그룹의 경영비전인『해당 업종에서 최고 1등의 기업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며, 2010년까지 기필코 재계 5위의 기업집단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그룹의 경영목표를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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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2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시스템이라고 본다. 항공업은 '산업의 오케스트라'로 적어도 8개 이상의 직종이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안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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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28일, 경쟁 항공사와 크게 차별되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 "회사를 처음 만들때부터 20세기안에 "월드 베스트 넘버 원"을 목표로 세웠다. 질(質)로 승부하겠다. 구체적으론 매년 한차례씩 발표하는 미국 에어 트랜스포트 월드지의 "올해의 항공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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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월 17일, 아시아나항공의 청사진에 대한 답. 그의 목표대로 13년 뒤인 2009년, 아시아나항공이 ATW 올해의 항공사상에 수상되었었다.


- "복수로 만든 목적은 고객 서비스 개선과 항공산업의 경쟁력 강화 두가지입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두가지 목적이 다 이뤄졌습니다. 대한항공도 경쟁력이 강화됐고 고객들도 훨씬 편해졌습니다. 중국 취항일은 당초 두 회사가 합의하기로 했었는데, KAL이 일방적으로 26일로 정했고 우리가 23일로 결정하자 KAL이 다시 22일로 앞당겼습니다. 결국 두회사 모두 22일 취항으로 조정되기는 했지만요. 그동안 경쟁이 있었던 것은 저쪽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뛸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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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18일, 복수민항체제로 서비스 개선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 반면 이로 인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의 갈등 격화 및 중국 노선 개설을 둘러싸고도 경쟁이 지나쳤다는 일부 여론의 지적에 대한 답.


- "사고난지 1년반이 지났지만 지금도 너무나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운항을 무엇보다 강조하면서 새 비행기만 도입했었는데 이를 과신했던것 같습니다. 지난해 사고를 큰 교훈으로 생각하고 안전교육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결과적인 일이 긴 하지만 직원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단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안전운항을 최우선으로 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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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18일,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이후 회사 안팎 또는 경영방향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답.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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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일제시대였기에, 일본어 지명 혼마치(本町)이다. 당시 일본령 조선에서 혼마치라고 불리는 곳은 서울명동, 부산동광동, 광주의 충장로 등 지역의 중심지였다.[2] 금호건설 사장.[3] 금호익스프레스 상무. 상무로 근무했던 금호리조트가 최근 금호석유화학으로 매각되면서 자리를 옮겼다.[4] 굳이 비견할 상대를 찾자면 대우그룹김우중 회장과 쌍용그룹의 동갑인 김석원 회장 정도다. 특히 김석원 회장은 아버지가 물려준 재계 6위의 거대기업을 취미에 빠져 망치고 정치나 기웃거리며 외도나 하다가 그룹을 붕괴시켰으며, 박삼구는 선친과 형들이 탄탄히 다져놓은 그룹을 전통에 따라 동생에게가 아닌 무리하게 자신의 아들에게 세습시키려 하는 등의 행동으로 동생 박찬구 현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과 갈라섰고 이후 너무 무리한 인수작업으로 인해 재계 7위까지 올랐던 그룹을 한순간에 파괴해버리는 등 많은 점이 유사하다. 그래도 김우중 회장은 자기가 그룹을 스스로 세웠다는 공은 있으며 스스로 세운 그룹을 과신하다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라 물려받은 것을 말아먹은 저 둘보단 낫지만 그 말아먹은 그룹의 규모가 훨씬 크다. [5]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초당대학교 총장을 지내 인지도가 있었던 5남 박종구는 박인천 회장이 본부인이 아닌 혼외정사를 통해 낳은 아들로 금호가의 정식 일원으로 대접받지는 못했다. 박종구의 '구'는 한자로 아홉 구(九)자를 쓰고 박정구, 박삼구, 박찬구의 '구'는 한자로 구할 구(求)를 쓴다. 박삼구에 의하면 동사무소 직원이 잘못 받아적어서 그렇다고 한다. 또 맏형인 박성용은 동생들과 달리 이름이 유일하게 돌림자가 아닌데, 원래 이름은 준구(準求)였지만 후에 개명했다고 한다. 출처[6] 당시 2000년대 초~중반에는 아파트인 어울림 브랜드가 인기가 많았던 브랜드였었고 래미안 등의 고급 브랜드 축에 속해있었다.[7] 항공부문을 매각하면 금호고속과 금호산업만 남게 된다. 재계 순위도 60위권 바깥으로 떨어질 예정이다.[8] 금호건설이라는 건설사가 있는데 있는거 꾸준히 키우면 되지 굳이 대우건설을 왜 인수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았다.[9] 지금은 롯데가 인수해 롯데렌터카가 되었다.[10] 아시아나 초기 시절에 박삼구는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다른 계열사보다 애착이 갔던게 아시아나였다고 본인이 자주 이야기 했을 만큼 열정이 대단했었다.[11] 박삼구로부터 팽 당해 갈 곳이 없어진 박철완을 박찬구 회장이 거두어 준걸로 널리 알려졌다.[12] 이것 때문에 곁에서 이를 본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이를 하지 말아달라며 박삼구에게 크게 따졌다고 하며 돌아온 건 박삼구의 호통이었다고 한다.[13] 박홍석 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으로 알려졌다.[14] 자세한 이유는 이곳 참조[15] 대우건설의 원래 사옥인 대우빌딩(서울역 앞의 금색 빌딩)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돈 없다고 모건스탠리에 팔아버렸고 대신 금호아트홀이 있던 광화문 사옥을 대우건설에게 배정했다.[16] 광주일고 45회[17] 광주일고 50회[18] 광주일고 52회[19]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총재 시절부터 출장 시 아시아나항공을 자주 이용하였다.[20] 문재인 정부에서는 금호타이어의 상황을 놓고 법정관리보다 중국 쪽 자본유치가 훨씬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입장을 취하였고 결국 금타는 중국에 매각되었지만, 오늘날에도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쌍용차 매각에 이어 두고두고 후회할 최악의 판단미스라고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