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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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례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성래
2. 아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박성래



1. 구례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성래[편집]


성명
박성래(朴誠來)
생몰
1882년 ~ ?
출생지
전라남도 구례군 용방면 용정리
사망지
미상
추서
대통령표창

박성래는 1882년생이며 전라남도 구례군 용방면 용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2일 박흥래(朴興來)의 집에서 천도교도 6명과 함께 천도교구장 유태홍의 대리인 김종웅(金鍾雄)으로부터 ‘선언서’와 ‘공약삼장’을 전달받고 각각 구역을 정하여 선언서를 붙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박성래는 구례군 용방면과 광의면을 담당했다.

이후 그는 광의면, 용방면, 토지면 면사무소 게시판과 구례군청 게시판, 구례면 봉북리에 거주하는 김윤승 소유의 비각, 봉남리, 용두리 집 대문, 신월리 도선장 게시판 등에 독립선언서를 부착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4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박성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2. 아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박성래[편집]


성명
박성래(朴聖來)
생몰
1881년 12월 3일 ~ 1933년 9월 24일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돈포리
사망지
충청남도 아산군
추서
대통령표창

박성래는 1881년 12월 3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돈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경 아산군 선장면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뒤 태형 40도에 처해졌다. 이후 아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3년 9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박성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