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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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배우.
2. 연기활동[편집]
2.1. 1990년대[편집]
1986년 연극 《햄릿》에서 햄릿역으로 연극에 먼저 입문한다. 이후 1987년 연극 《전쟁과 평화》에서 주인공을, 1988년 연극 《무기와 인간》에서 조연을 맡으며 연극 배우의 삶을 살아가려 했지만 위에서 서술한 이유로 영화계로 가게 된다.
대학시절 동기였던 양윤호 감독과 금관상 영화제 청소년 영화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가변차선》이라는 영화를 처음 찍었다.[4] 이후 조연으로 몇 편 찍다가 주연 데뷔는 1996년작 영화 《유리》[5] 에서였고, 이 작품을 통해 내적 고민을 거듭하다 금기를 깨는 수도승 역을 맡아 '대형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충무로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또한 이 영화는 국내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선정되었다.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영화상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한다.
연이어 1996년 MBC 드라마 《사과꽃향기》에서 주인공 서경주를 짝사랑하는 어리숙하지만 귀여운 케이블TV 보도 채널의 신참 기자 백성덕 역을 맡아 열연 한다. 영화 《유리》가 아직 개봉 전이었기 때문에 완전 신예에 불과했던 그가 주연으로 파격 캐스팅 된 데는 김혜수의 공이 컸다. 그의 연기를 높게 평가한 김혜수가 제작진에게 그를 추천했다고 한다. 이후 심은하와 함께 종교로 인한 집안 문제를 다룬 MBC 드라마 《사랑한다면》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지만 하필 경쟁작이 《첫사랑》이어서 조기 종영 되고 만다.
그러나 1999년 동국대학교 동기인 양윤호가 메가폰을 잡고 전지현과 함께 출연한 멜로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이 흥행에 실패했다. 2000년에는 영화 《킬리만자로》도 흥행에 참패하여 잠시 주춤한다.
2.2. 2000년대[편집]
2001년 처음으로 출연한 코미디 영화 《달마야 놀자》가 전국 관객 400만 명 가까이 들며 다시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멜로물에서 감정의 결을 섬세하고도 완곡하게 드러냈던 그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며 새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태권도 유단자였지만 선무도 무술을 한 달여간 배우며 작품에 대한 열정을 보인다.《달마야 놀자》는 불교 영화에 가깝습니다.조폭이란 소재만 빌려 왔지, 폭력이 난무하는 자극적인 작품이 아니라 "착한 영화"입니다. 포용과 용서란 무거운 주제를 코미디 형식으로 가볍게 다룬 작품이지요. 작품은 코미디지만 제가 코믹 연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잠수 오래하기, 3천배 먼저 하기 등 조폭과 스님과의 대결이란 설정이 코믹 하지요. 저는 배역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데 열중했습니다.
《달마야 놀자》 관련 인터뷰에서
이후 2003년 전지현과 세번째로 함께한 작품 《4인용 식탁》이 개봉한다. 그의 첫 공포 영화이며 죽은 아이들의 환영에 시달리는 인물 정원 역을 맡아 열연 한다. 이 영화에서도 배역 연구를 위해 정신병원을 찾아 정신분열증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흥행 성적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19금 호러무비가 72만명이면 흥행한 것이며, 호러매니아 사이에서는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호평 받았다.
또한 그 해 출연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연기력과 스타성을 동시에 인정 받는다.[10] 그는 재벌 2세 자동차 회사 사장 한기주 역을 맡았고 배역 연구를 위해 잘 알던 사업가에게 많은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또한 현실적인 재벌 2세를 연기하기 위해 작가에게 직접 일하는 신을 많이 넣어 달라고도 하며 일하는 남자의 시초가 된다."애기야 가자"[9]
"참아도 내가 참아, 누가 너더러 참으래? 그리고 참을 이유가 뭐야?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구!"
드라마 《파리의 연인》
박신양은 맡은 캐릭터가 죽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인물을 살리기 위해 언제나 심혈을 기울인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살린다'는 말일 정도다. 마치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심폐 소생 술처럼 연기하는 걸 보면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박신양은 ‘차도남’ 아니 ‘차도의’(차가운 도시 의사)라고 표현하고 싶다.
드라마《쩐의 전쟁》 장태유 PD가 박신양을 표현한 말
하지만 《바람의 화원》을 끝으로 출연 정지 논란[11] 에 휩싸이기도 했다.
2.3. 2010년대[편집]
2011년,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싸인》에서 천재 법의학자 윤지훈 역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건재함을 보여줬으며[12] 놀랄만한 점은 원래 싸인은 케이블에서 방영될 예정이었다.그동안 쉬면서 200여편의 시나리오와 대본을 받아봤는데, 그 중에서 ‘싸인’만이 눈에 들어왔다”며 “꼭 이야기해야 할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글을 잘 쓴다고 느껴 결정했다
드라마 《싸인》 제작보고회에서
그런데 박신양이 캐스팅 되자마자 바로 지상파로 편성 변경이 되었다고 한다. 박신양은 당시 법의학자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위해 실제 법의관들과 함께 먹고 자며 수차례 부검에 참관하고 그들의 가족까지 만나며 A4 160장에 달하는 일지를 작성했다고 한다. 실제 법의관과 얘기하며 대사를 직접 쓰기도 했는데 3회 중 "그냥 고마워해 살아있다는 거에 고마워해"가 있다.
최초로 법의학자들의 삶에 대해 그린 이 드라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기념비적인 평가를 받았고 법의관 지원자 수가 눈에띄게 늘기도 했다. # 그리고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원래는 16부작이었지만 20부작으로 종영했다. 엄청난 연기를 선보였지만 연초에 방영했고, 연말에 방영했던 《드라마》가 히트를 해서 연말 시상식에서는 무관에 그쳤다. 드라마제작사와 사이가 안 좋아서 팽 당했다는 소리도 있지만 SBS는 대상급 배우에게 최우수상을 줄 수 없어서 상을 안 줬다고 밝혔다."내가 너 같은 부류들을 잘 아는데 단란한 가정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애들이 CSI 보면서 '저거 멋있겠다' 싶어서 뛰어든 것 다 알아. 구역질 나고 토할 것 같으니깐 꺼져."
드라마 《싸인》
2013년, 6년만의 영화 복귀작 《박수건달》이 흥행에 성공한다. 조폭이 운명이 바뀌어 무당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설정과 신파로도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이 영화에서 조진웅과 키스신을 찍었다. 《박수건달》이 《7번방의 선물》보다 조금 더 일찍 개봉하긴 했지만 이후 《7번방의 선물》의 돌풍에 주춤하면서도 300만을 돌파, 389만을 기록한 걸 보면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이다.
이후 예능에만 집중하고 연기는 안 할 것처럼 보였으나 2015년 12월 23일, 2016년에 방영될 KBS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출연을 확정 지었다. 싸인 이후 5년 만의 TV 복귀작이자 박수건달 이후 3년 만의 연기 복귀작[13] 이기도 하며 데뷔 이후 최초 KBS 출연작이다.[14] 《쩐의 전쟁》의 작가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다.[15]
영화 ‘인디안 썸머’ 이후 변호사와 관련한 소재에 관심이 생겼다. 약 5년 전부터는 ‘변호사 이야기’에 대해 생각도 많이 했다. 법을 다루는 이야기 속 인물들은 팽팽한 갈등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서로 물러설 수 없는 극한 지점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 법을 대하는 입장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며 인물들의 관계 역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5년만의 브라운관 복귀작을 조들호로 선정한 이유
2016년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 조들호로 출연, 믿고 보는 배우, 국민 배우의 수식어가 왜 붙어있는 배우인지 보여주며, 장르가 박신양이라는 말까지 탄생 시켰다. 대본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졌지만 멱살 잡고 캐리 하며 시청률 1위로 만들었다. 이 드라마로 KBS연기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이 상 역시 박보검과 공동으로 받으면서 연말 시상식에서 받은 메인 상 3개를 모두 공동 수상하게 되었다.
2019년 1월, 《동네변호사 조들호》 시즌 2의 방영이 확정되었다. 허나 스토리상의 난맥, 작품 내외로 큰 말썽을 보이면서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3. 예능활동[편집]
2012년 추석특집 예능 《시간을 달리는 TV》에 출연하여 초성이 같은 가수 PSY를 패러디한다. 그해 《박수건달》 홍보차 개그콘서트 생활의 발견의 게스트로 출연하여 본인의 여러 작품을 패러디했다.
2017년 SBS 예능 내방 안내서에 고정으로 출연했다. 여기서 《파리의 연인》의 상대 역이었던 배우 김정은과 재회하며 여전한 케미를 보여준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1. 쩐의 전쟁 출연료 지급 소송[편집]
자세한 내용은 쩐의 전쟁(SBS)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리허설 대역 논란[편집]
과거 리허설 대역을 써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다. # 리허설을 대역이 진행하는 동안 자신은 휴식을 취하고 녹화가 시작되면 배우가 연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굳이 논란이 될 것도 없었던 것이 그 과정에서 리허설 대역을 쓴 건 조명 위치나 카메라 각도 등을 잡는 과정에서 쓴 건데 그 과정이 굳이 배우가 필요 없는 과정[17][18] 이기도 해 제작진과 의논 하에 이루어졌으며 싸인 촬영 현장 제작진의 말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 현장 사정과는 맞지 않긴 했지만 덕분에 두 주연 배우인 김아중과 박신양이 쉴 수 있는 시간과 대본을 좀 더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쩐의 전쟁 현장에선 연이은 밤샘 촬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으며 촬영 대기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직접 해명한 바 있었다. 상대 역이었던 박진희는 다들 그렇게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 뿐이라며 감싸기도 했다.
사실, 박신양은 바람의 화원을 제외한 모든 드라마에서 분량이 다른 배우들에 비해 몇 배로 많기도 하고, 외국에선 주연 배우들이 리허설 대역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선 그런 경우가 없어 매우 생소한 경우이기도 하다.
참고로 배우 이규형이 과거 싸인에서 박신양의 리허설 대역을 맡은 적이 있다.#
5. 대사 소화 능력[편집]
작가의 대본을 가장 자기 식대로 바꾸어 연기하는 배우 중에 한 명이다. 그 일로 가끔은 작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꾼 대사가 훨씬 드라마의 몰입도를 올린다고 한다. 작가에 대한 반감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사가 나온다고. 아래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다르게 한 대사들.
바쁘더라도 내 말 꼭 전해. 더 이상 3류 양아치 수법 안 통하니까 이쯤에서 접으라고.
-아무리 바빠도 이 말은 꼭 전해줬으면 좋겠는데. 더 이상 3류 양아치 수법 안 통하니까 이쯤에서 접으라고.
무슨 말인지 몰라? 무슨 욕심이 얼마나 많으면 너나, 네 아버지처럼 사는데. 남의 약점 등 쳐서 대체 얼마나 더 잘 먹고 잘 살고 싶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묻나? 얼마나 욕심이 많아야지 너나, 네 아버지처럼 사는데. 남의 등골 얼마나 더 잘 먹고 잘살고 싶은 건데.
당사자인 내가 언제까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언제까지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어떻게 알았는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안다는 거고 내가 알았으니 우리 아버지나 누나가 아니라 날 상대해야 한다는 거야. 난 진검엔 진검으로 속임수엔 속임수로, 양아치 수법엔 더 싸구려 양아치 수법으로 대응하니까, 자랑스런 금 뺏지 오래 달고 싶으면 다신 내 앞에 얼굴 디밀지 말라고 전해. 문윤아, 너도!
-어떻게 안 게 뭐가 중요하지? 중요한 건 내가 알고 있다는 거고. 내가 안 이상, 이제 우리 누나나 아버지가 아니라 날 상대해야 된다는 거지. 난 진심엔 진심으로 속임수엔 속임수로, 양아치 수법엔 더 싸구려 양아치 수법으로 대응하는 사람이니까! 구려 금 뺏지 더 오래 달고 싶으면 내 앞에 얼굴 내밀지 말라 그래! 문윤아, 너도 마찬가지야. 알아들었어? 내 얘기 끝났으니까, 꺼져!
그래서 한때 김은숙 작가와 사이가 안 좋아졌다. 물론 지금은 사이가 괜찮다.
연기력이 너무 뛰어나 자신이 돋보이지 않아도 될, 전체적으로는 조연이 보여야 될 장면에서조차 혼자 튀어보인다
한 순간으로 보면 그게 맞을 수 있지만 드라마 전체로 보면 아쉬울 수 있다
‘자정에서 새벽까지’ 김 작가는 드라마를 둘러싼 갖가지 뒷담화를 들려주었다. 그 중 많은 이야기를 《온에어》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때 김 작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비난을 했던 배우는 박신양이었다.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만난 자리였는데, 김 작가는 박신양의 전황을 낱낱이 고했다. 무척 재미있었다. 작가와 배우가 그토록 서로를 증오하면서 만든 작품의 결과가 대박이라니.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복수였다. 당시 박신양의 넥타이가 화제였는데, 그녀는 넥타이를 멘 그를 괴롭히기 위해 ‘뙤약볕 아래 서’라는 지문을 자주 넣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복수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박신양이 촬영을 거부해 장면이 아예 바뀌기 일쑤였다는 것이었다
김은숙 작가와의 비화
6. 출연 작품[편집]
6.1. 영화[편집]
6.2. 드라마[편집]
6.3. 예능[편집]
6.4. 연극[편집]
6.5. 뮤지컬[편집]
6.6. 광고[편집]
- 현대L&C 현대 아르떼 (1997년)
- 삼성화재 (1997년)
- 아모레퍼시픽 미래파 (1998년)
- 삼성카드 (1999년)
- OB맥주 OB라거 (1999년)
- LF 마에스트로 (2000년 ~ 2005년)
- 보령제약 겔포스M (2001년)
- GM대우 L6매그너스 (2004년)
- 신한카드 (2004년)
- 우미건설 (2004년)
- 롯데손해보험 (2008년)
7. 수상[편집]
8. 여담[편집]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이며, 동기로는 영화감독 양윤호와 배우 최준용, 김유석 등이 있다.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러시아 유학길에 올라 쉐프킨 연극대학교와 슈킨 연극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는데, [26]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이유는 "연기론"의 발원지가 러시아여서 결심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보디가드 알바도 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유학 경험 때문인지 러시아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으며[27] , 미국 조지아 대학교 (UGA)에서 강연을 할 정도로 영어 실력도 굉장하다.
- 박신양은 동국대학교에서 연기를 배우다가 방송사 공채를 봤지만 떨어졌고, 함께 대학원에 가기로 했던 친구들이 입학을 하지 못하자 당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던 러시아로 유학한다. “붕괴된 가치관 속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고. 하지만 러시아의 배우들은 사상이 아니라 “사람 답게 열심히 멋지게” 사는 것을 고민했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박신양은 3년 동안 러시아의 4대 연극학교인 셰프킨과 슈킨 대학에서 연기를 배웠다. 슈킨 대학에서는 그가 학비가 모자라 귀국할 상황이 되자 동기들이 탄원서를 제출했고, 그를 가르친 유리 미하일로비치 알사로프 교수가 그를 배려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슈킨 대학에서 리듬과 몸 만으로 연기하는 법을 배웠고, 연기자를 훈련 시키는 시스템을 익혔다. 이후 모 강연에서 이 당시 교수에게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드냐고 호소하자 교수에게서 그럼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하는지 생각해봤냐는 답변을 들었다고 유학 시절 이야기를 풀기도 했다.
- 액션신 같이 몸을 쓰는 씬을 대역 없이 촬영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파리의 연인에서 아이스하키 장면도 허리 부상 회복 후 직접 촬영했으며, 쩐의 전쟁에서도 박진희와 함께 계단을 구르는 장면도 직접 박진희가 다치지 않게 여러 번 연습해서 촬영했다. 바람의 화원에서 호랑이에게 쫓기는 장면도 절벽에서 뛰다가 넘어져 잠시 기절하기도 했으나 정신이 든 후, 다음에 하자는 제작진의 만류에 여길 또 언제 오겠냐며 다시 해내 제작진의 박수를 받았다고 장태유감독이 직접 밝힌 바 있다. 최근에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옥상 투신 장면도 대역이 대기했으나, 직접 촬영해서 슬로우 장면도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 연기를 위해 발레, 기계체조, 아이스하키 등 여러 운동을 섭렵하고 있는 배우다. 그리고 싸인 때는 연기의 갈증이 컸던 지 드라마의 OST 작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범죄의 재구성 촬영 전에는 3달 간 하루 9시간 이상씩을 여관방을 잡아 최동훈 감독과 영화 얘기를 했다고 한다.
- 쩐의 전쟁 때 파워레인저 메인음악을 자주 불렀었는데 드라마의 인기로 그 노래가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 든 적이 있다.
- 중학교 때 아이큐가 공개됐었는데 127이다. 또한 중학교 생기부에 활동적인데 너무 지나치게 활동적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 드라마 싸인 당시 한 네티즌이 윤지훈의 가족 관계 도를 만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