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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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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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파일:체육훈장.png
연도
2005년
이름
박재홍
분야
스포츠
사유
체육발전유공
체육훈장거상장(3등급)



박재홍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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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8
2000
2007
2008
2010


파일: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로고.svg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1998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02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6 KBO 리그 신인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6 KBO 리그 홈런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6, 2000 KBO 리그 타점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7, 1999, 2008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자











보유 기록
신인 시즌 최다 홈런
30개[1]
신인 시즌 최다 타점
108점


박재홍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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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93d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62번}}}
김선우
(1992~1993)

박재홍
(1996~2002)


장요상
(2004~2005)
KIA 타이거즈 등번호 62번
이재주
(2002)

박재홍
(2003~2004)


김정수
(2005~2008)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62번}}}
윤길현
(2002~2004)

박재홍
(2005~2012)


한동민
(2013~2014)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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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342323423.jpg

파일:MBC 로고 화이트.svg · 파일:MBC SPORTS+ 로고.svg 해설위원
박재홍
朴裁弘 | Park Jae-hong

출생
1973년 10월 2일 (50세)[1][2][3][4][5]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서림초등학교 (졸업)
무등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사회체육학[6] 92[7] / 학사)
신체
176cm, 85kg
포지션
중견수, 우익수, 지명타자, 좌익수, 3루수[8]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1차 지명 (해태)[9][10]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6~2002)
KIA 타이거즈 (2003~2004)
SK 와이번스 (2005~2012)
해설위원
MBC /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3~)
경력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2011~201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19~2021)
병역
예술체육요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상훈
체육훈장 거상장
응원가
SK 와이번스 시절
응원 전용 구호[11]
트랜스픽션 - 승리를 위하여[12][13]
본관
밀양 박씨

1. 개요
4. 은퇴 후
4.1. 해설자 경력
5. 논란
6. 여담
7. 주요 기록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국프로야구에 '야생 본능'이 사라져가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투수뿐 아니라 야수들도 분업화되고 있다. 홈런 치는 선수와 도루 하는 선수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재능에 따라 유형을 정할 수는 있지만, 장점을 극대화하고자 다른 장점을 잃는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야생 본능이 살아 있는 야구도 무척 재밌다."

에릭 테임즈30-30 클럽 달성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출처


10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FA로 100억은 받았을 선수 [14]

MBC SPORTS+ 이석재 PD[15]


현대 유니콘스,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소속의 외야수. 現 MBC 스포츠플러스 소속의 야구 해설위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12기 회장직을 역임한 바 있다.

정민태와 함께 현대 유니콘스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스타였으며, 한국야구의 대표적인 5툴 플레이어로 꼽히기도 한다.[16]

광주광역시 출신이지만 프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인천광역시 연고팀에서 했기에[17] 인천 출신이 아님에도 세대를 초월해서[18] 인천 팬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스타 선수[19] 중 하나이며 무려 인천 야구의 적장자라는 호칭까지 받은 인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이다.[20]

등번호는 현대 시절부터 62번을 사용하였다.[21]

2. 선수 경력[편집]


박재홍의 선수 경력



3.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편집]



파일:external/pds.joins.com/2012121114185396035_1.jpg

비리문제로 인해 사실상 내쫓긴 손민한의 뒤를 이어서 2011년 12월 9일 11차 정기총회에서 275표 중 89표를 얻어 87표의 서재응에 2표 차로 새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5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야구팬들 중에는 기존의 비호감이 섞여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슨 선수협 회장?'이라는 등의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도 있지만 박재홍 자신도 내 코가 석자지만 일단 된 만큼 확실하게 해보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사실 고등학교 후배였던 이호준이 바람을 잡아서[22] 출마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정적인 시선이 꽤 많이 있었으나, 회장 취임 직후인 12월 15일부터 당면문제인 회계 감사에 착수하여 29일날 빠르게 결과를 내놓았다. 이후에도 전방위적으로 현재의 선수협의 비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방위로 노력하는 중. 야구팬들의 시선도 꽤 긍정적으로 바뀐 상황이며, 현 시점인 2022년에는 가장 훌륭했던 선수협 회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거기에 2012년 1월 16일자 총회에서 그동안 선수협의 자금 유용의 문제가 되었던 판공비를 2군 선수 장비지원금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하여, 선수협의 이미지 상승과 더불어 박재홍 개인에게도 그 동안의 이기적이라는 소문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계기가 됐다. 이는 과거 도원구장 시절부터 박재홍의 팬이었던 사람들이나 박재홍을 까는 사람 대부분이 박재홍 개인에 대한 시선을 뒤집는 계기가 된 셈.

2012년 6월 10구단 창단 문제와 관련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수장으로 KBO 측과 대척점에 서서 맞섰다. 10구단 창단을 차일피일 미룬다면 리그 중단까지 고려하겠다며 강수를 두었으며, 야구선수들과 팬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선수협과 그들의 중심에 서 있는 박재홍을 응원하였다. 일단 7월 13일, KBO 이사회에서 제10구단 관련 안건을 '긍정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올스타전 보이콧은 철회했다.

여담으로 선수협 관련해서 강병규가 성실하고 주체적으로 일을 딱딱 처리한다 하여 좋아한다. 하지만 박재홍은 선수협은 강병규와 무관하다며 강병규에 대해 선을 그었다.[23]

2013년에는 사과문을 썼다면서 NC로 입단하려는 언플을 한 손민한의 행동에 대하여 트위터를 통해 작정한 듯 격한 반응을 보였으며, 얼마 뒤 현역 은퇴를 결정함에 따라 선수협회장 자리도 자동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은퇴식에서 손민한을 불러 그간 쌓였던 앙금을 풀면서 재조명받기도 했다. 손민한을 비판했던 건 후회하지 않지만, 꼬리표 때문에 선수로 영영 복귀하지 못할까봐 직접 불렀다고. 또한 손민한의 복귀 여부는 팬들과 후배 선수들에게 맡긴다고 했다. 그야말로 대인배. 관련 기사

박재홍이 은퇴하면서 공석이 된 선수협 회장 자리는 광주일고 후배인 서재응이 이어받았다.


4. 은퇴 후[편집]



4.1. 해설자 경력[편집]


파일:박재홍 해설.jpg

은퇴한 후 엠스플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순철처럼 모두까기인형 스타일의 해설을 한다. 이숭용, 마해영, 양준혁 등에 비하면 해설가로서는 나은 평가를 받는다. 가끔씩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해설도 하며 메이저리그 지식은 부족하지만 선수 경험을 살린 해설과 조금이라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지식을 습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설하면서 기존 빵형에 더해 빵위원이라고 팬들에게 종종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2013년 8월 2일, 3일 있었던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편파해설을 하는 바람에 삼성 팬들이 분노, 엠스플 게시판을 초토화시킨 적이 있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례적으로 3연전이 끝나기도 전에 해설자가 교체되었는데 하필 교체된 사람이...

경험이 쌓이면서 해설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여러 측면에서 좋아지고 있는 편. 선수 출신 해설가들 중에서는 말도 잘하고 논리적이다. 게다가 너무 흥분하지만 않으면 타고난 목소리 톤도 좋은 해설자로 꼽힌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해설을 약간이라도 병행한 덕[24]인지 야구에 대한 통계적 접근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돌직구를 던지기는 하지만 해설의 정확성과 전문성에 있어서는 확실히 좋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외야수로서 공수가 매우 뛰어났던 선수였던 만큼 타격 매커니즘이나 외야 수비에 관해 디테일하게 잘 짚어준다.

2015 시즌에는 투수 출신이면서 자신처럼 해설을 잘하는 신입 정민철 해설위원과 시너지를 이루어 해설계의 투타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돌아온 차명석 해설위원과의 투타조화도 훌륭하다.

2017 시즌까지도 MBC에서 유일하게 밥값하는 엠스플 최강해설진의 일원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왠지 정민철 해설도 그렇도 MLB 외도 때문에 KBO 해설의 빈도가 약간 줄어든 것은 KBO 팬들에겐 아쉬운 점. 다만 2인 해설에 비해 1인 해설을 할 때는 강한 주관과 자존심으로 인해 이순철 주니어스런 모습이 있기 때문에, 해설실력은 선수시절 실력처럼 모두가 인정하지만 어느 정도 취향을 타는 측면은 있다. 말투와 태도 특성상 약한 편파해설의 경향만 있어도 강해보이기도 하고...

어린 선수 혹은 젊은 선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여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종종 있다. 고졸 신인도 아닌, 군필에 나이 30살 전후에 팀의 실세이자 주축인 선수한테 어린 선수라는 표현은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주로 대상이 본인이 선수시절 막판 베테랑 시절일 때 신인급인 선수들이 해당되는데, 본인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어린 선수로 계속 인식되어 있기 때문인 듯 하다.

2018 한국시리즈 해설 때 모 약쟁이를 겨냥한 봉인해제 발언으로 누리꾼들의 웃음을 샀다.

2021년 중반 박성한에게 배트를 세우는 타격폼이 더 좋다고 조언을 하였는데, 그 후 박성한은 SSG의 3할 유격수가 되었다...

2021년 6월 29일 롯데-키움전 중계 도중 두 커플이 거리를 두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스와핑 드립을 쳤다.#


파일:박재홍 40인 레전드 시상식.jpg

리틀 쿠바
박재홍(17위)
KBO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시상식 (2022.09.17)
2022년 8월 22일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성실함의 대명사 부문에서 전체 순위 17위로 레전드 40인에 선정되었고, 2022년 9월 17일 SSG 랜더스와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 클리닝 타임에서 시상식이 진행됐다.

2022 한국시리즈 2차전에 SK 왕조를 이끌었던 김성근 전 감독과 박재홍 해설위원이 인천 SSG 랜더스필드를 찾았는데, 후문에 따르면 원래 김성근 전 감독이 시구, 박재홍 해설위원이 시타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해 취소되면서 대신 스카이박스에서 자리를 지켰다.

5. 논란[편집]


  • 2020년 10월 10일 정병문 캐스터와 심수창 해설위원과 함께한 키움 대 한화 경기에서 김창현 키움 감독대행을 겨냥하면서 수많은 망언을 쏟아냈다며 큰 비난을 받았다. 특히 데이터를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으며 시청자들의 어이를 털리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밑에 나와 있는 대화 내용을 보면 알듯이, 김창현 대행이 말한 '전력분석 자료의 50%가 실제 경기에 적용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박재홍 위원이 그 근거를 물었지만 답을 듣지는 못했다는 말과, 전력분석으로 명성이 나 있는 김정준 해설위원조차 10%가 넘기기가 어렵다는 말을 덧붙이며, 야구는 오락 게임이 아니며 수능 답안지처럼 정답이 아니라는 말을 나눴을 뿐이다.# 즉, 데이터를 무시했다는 뉘앙스가 아니고, 김창현 대행이 명백한 근거 없이 데이터를 과신하고 있다는 의문이 든다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고 봐야 한다. 사실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 정도는 개인 주관이 반영된 해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아래는 대화 전문이다.

[ 대화 내용 ]
박: 박재홍 해설위원, 정: 정병문 캐스터, 심: 심수창 해설위원
(키움 경기 중 4회 초)
정: 김창현 감독 대행이 오늘로 세 경기째에요.
박: 네 지금 김창현 감독대행 경기 전에 감독 그 기자들 미팅 때 제가 한번 만났어요. 그래서 질문을 하나 드렸거든요?
정: 어떤 질문드리셨어요?
박: 그러니깐 그 전력분석을 또 오래 했잖아요. 그래서 '전력분석의 자료가 실제 경기에서 몇프로나 적용이 되나'라고 제가 질문을 드렸는데요. 답이 조금 저는 놀랍더라고요.
정: 몇프로 정도라고 말씀하시던가요?
박: 심수창 의원은 몇프로 정도나 적용이 될 것 같습니까?
심: 저는 뭐 전력분석이 수능 답안지가 아니기 때문에 참고사항이기 때문에 5%에서 10% 사이? 5%?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박: 제가 질문을 던졌는데 답은 50프로.
정: 왜 50% 정도라고 뭐 다 이유가 있을 텐데.
박: 제가 근거는 어떻게 되냐고 또 질문했는데 근거는 없었습니다.
정: 묘한...?
(웃음)
박: 사실 저도 선수 생활을 해봤지만, 전력 분석의 자료는 뭐 어찌보면은... 10프로만 돼도 대단한 거거든요?
(경기 중계로 대화 중단)
정: 아까 저희가 좀 말씀을 나누다 말았는데, 50% 정도 적용이 될 것이다. 근데 근거는 없다. 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박: 네 그러니까 사실 저는 현장에서 선수 생활을 했을 때 전력 분석 자료를 받아도 이게 참고자료지, 분석이 좀 틀릴 때도 있거든요. 순간순간마다 다 맞아들지가 않아요. 그래서 뭐 심수창 위원이 5% 말씀하셨듯이 저는 많으면 한 10%? 15%? 정도가 적용되지 않을까 했는데 50%라는 숫자에 좀 많이 놀랐는데요. 야구는 게임이 아니에요.
정: 야구는 게임이 아니다?
박: 네 오락게임이 아닙니다.
정: 저는 뭐 잘은 모르겠고 퍼센트를 떠나서 근거는 잘 모르겠는데 50%다 이 대답 자체가 상당히 정말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웃음).
박: 저희가 또 궁금해서 전력분석에 굉장히 또 명성이 있는 김정준 해설위원[1]한테 질문을 드렸더니 "10%가 넘기기 힘들다." 그런 답이 돌아왔고요.
심: 저도 많은 팀을 옮겨 다니면서 전력분석을 해봤지만, 사람마다 성향이 다른 것 같아요. 이게 마치 수능 답안지처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뭐 상대를 할 때, 안쪽 바깥쪽 다음에 뭐 커브를 던지면 이 타자는 약하다. 그런데 전부 다 그렇게 던질 수는 없거든요. 그러면 오락 게임이 되는 거잖아요.
정: 그래서 박재홍 위원이 말씀하셨듯이 야구는 게임이 아니다. 어쨌든 뭐 다들 갖고 있는 철학이 있으신 거니까.
심: 네 참고사항이 될 수 있죠.
(5회 초)
정: 키움 같은 경우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전체적으로 타격감도 많이 떨어져있고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는데 그보다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남아 있는 잔여 경기 속 가운데 두산과의 경기가 무려 다섯 경기가 남아있어요. KT와의 경기도 세 경기 남아있고. 김창현 감독대행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박: 전력분석의 자료는 참고자료로써는 상당히 좋습니다. 그러니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늘어나는 거죠. 옵션의 하나라고 생각을 해야되구요.
(6회 말 한화 공격 1사 1루(이용규), 노수광 타석 키움 폭투 장면 때)
정: 이용규의 여파가 바로 이렇게까지 또 연결이 되네요.
박: 지금 이용규 선수가 1루에서 2루에 가는 척 하면서 약간의 페이크 동작을 줬는데요.
정: 맞아요.
박: 이지영 포수가 그 동작에 반응하면서 블로킹이 아닌 지금 이제 미트를 원래 포구하는 쪽으로, 2루 송구하는 그 방향 쪽으로 하면서 와일드 피치가 나왔습니다. (1루 주자 이용규가 2루 도루를 시도하는 척을 하는 장면) 여기서 이렇게 가는 척만 했거든요? 사실은 이지영 선수가 블로킹을 하는, 미트의 방향이 반대가 만들어져야 되는데...
정: (이지영 포구 장면)약간 백핸드 형태를 취하면서...
박: 네 그렇죠. 그 반응하는 모습보고 하다 보니까 와일드 피치가 어찌보면 유도가 됐다고 봐야겠죠? 타석에서도 나가서도 이용규가 상당히 많은 그림을 만들어줬어요.
정: (중계 화면이 김창현 감독대행을 비추자)지금 왜 김창현 감독대행이 나오냐면 사실 저런 상황에 대한 전력 분석이나 어떤 데이터가 가능할까요?
박: 없습니다.
정: 없겠죠. 당연히. 예.
(7회 초, 박병호의 땅볼 타구를 한화 강경학이 수비 시프트로 쉽게 잡아내자)
정: 지금은 강경학 선수가 2루 베이스 바로 뒤에 있었어요.
심: 이런 것들이, 시프트가, 이런 것들이 전력분석이죠.
정: 네 그렇죠.
박: 전력 분석에서 확률이 가장 높은 게 수비 시프트인 것 같습니다. 타자의 타구 방향들이 확률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확률이 높아질 수 있는 거죠.

  • 2022년 5월 1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박민우가 투수 조요한을 상대로 친 공이 날아가자 여성 관객이 환호성을 지르다 파울임을 알고 실망했다. 해당 타구의 경우 3루측에서 보면 페어로 보일 수 있는 타구였다. 허나 이때 캐스터 김수환과 해설위원 박재홍이 한 발언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여성들은 일단 배트 맞으면"…야구 방송서 울려퍼진 女혐오

  • 2023 WBC 한일전 중계 도중 김형준 해설위원이 다르빗슈의 한 가지 구종을 다르게 던지는 피칭방식을 설명했다. 허나 그 말을 딱 자르고 슬라이더는 다 같은 슬라이더라는 발언을 해 도마에 올랐다. 같은 구종을 다른 속도, 약간 다른 궤적으로 던지는 피칭스킬은 다르빗슈 유 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인 류현진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해당 부분은 기본적인 공부가 안 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을수밖에 없었다

  • 선수 시절 금지약물 검사에 적발된 적이 있다. 98년 아시안 게임으로 출국하기 전 자체 사전검사에서 박찬호와 금지약물 성분이 적발되었지만 무시하고 본선에 출장을 강행해서 금메달을 땄다. 본인은 당시 부상 때문에 복용하던 소염진통제 때문에 그렇다는 소명을 했다.

6. 여담[편집]


  • 2003년~2004년 KIA에서 선수로 뛰던 당시 대인관계가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가장 유명한 건 광주일고 동기인 김종국과의 관계가 생각만큼 원만하지 못했다고 알려진 것. 프로 입단 과정에서 박재홍과 김종국의 라이벌 관계도 한 원인이다.[25] 아마 시절 평가는 김종국이 박재홍보다 우세했었다. 한국의 프로야구판이 좁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의 케이스다.[26] 또 자존심이 강하고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상 2000년대 초중반까지 해태 시절의 위계질서 문화가 남아 있던 KIA의 고참들[27]과도 전체적으로 융화하지 못해 팀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28] 그런 소문 때문인지 당시 SK 조범현 감독은 박재홍을 영입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한때 같은 팀이었던 박경완이 조범현을 설득해 영입했다고 한다. 본인은 이런 자신에 대한 편견을 풀고 싶었던 모양. 그렇지만 김종국과 박재홍 둘은 대학시절 줄곧 국가대표팀에서 같이 뛰었고, 프로입단 후에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에서 대표팀으로 같이 뛴 적이 있다. 박재홍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으나 둘의 사이는 세간의 평과 달리 좋은 편이다.이태일 기자 블로그 스톡킹에 박재홍이 출연할 당시 박재홍은 김종국의 수비력이 탄탄했다고 칭찬했고 김종국은 '박재홍은 공,수,주 3면 모두 완벽했고 그야말로 야구천재'였다고 밝혔다.

  • 하지만 KIA 타이거즈 시절에 부당한 일도 많이 당했었고, 대인관계가 나빠졌다는 것도 KIA 타이거즈 프런트의 횡포와 언론플레이였다고 본인이 밝혔다. 심지어 KIA 타이거즈 프런트의 대표인 정재공 단장이 박재홍을 술자리에 불러서 취한 상태로 박재홍의 머리를 2번이나 후려치며 "왜? 내가 너 때리면 안 되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단장의 폭행과 모욕에 분노한 박재홍이 술잔을 단장 근처로 집어던지고 사람들이 말렸다고 밝혔다. 즉 박재홍이 KIA 프런트에게 수많은 농간을 당한 것. 괜히 박재홍이 KIA를 떠나버린 것이 아니다.[29]

  • 야구 황금세대인 92학번의 한 사람이다. 광주일고 시절 김종국(주로 2루수)이 3번을, 자신은 4번 타자로 활약하며 팀을 이끌었고, 종종 투수로도 등판했다. 3학년이었던 1991년에는 팀을 청룡기, 황금사자기 결승전에도 올렸지만, 둘 다 경남상고신일고에 패해 준우승으로 그쳤다.[30]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 박찬호 등 스타 투수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고교 시절 동기생들 가운데 타자로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동기생 타자로는 위에 언급한 김종국 외에 송지만, 이영우, 정경배 등이 있다.)[31]

  • 92년 93년만 해도 당시는 고교지명 후 프로직행이 드물고 스타급은 모두 대학으로 진학하던 시절이었기에 그도 해태의 1차 지명을 받고 대학에 진학했고, 이후 앞에서 서술한 일련의 프로 데뷔 과정을 통해 광주의 팬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래서 광주 해태전에서는 술에 만취한 한 해태 팬이 캔맥주를 던진 것이 하필이면 박재홍의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지명을 거부하고 대학으로 가는 경우는 박재홍 이외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이게 비난이 컸던 이유는 현대 피닉스돈지랄을 통한 우회영입 꼼수 때문에 지명권 트레이드라는 어처구니 없는 과정을 통해 입단했기 때문. 물론 해태가 현대처럼 돈을 팍팍 쓰던 구단은 아니었지만.[32] 어쨌든 이로 인해 해태는 연고지역 출신인 박재홍에 대한 지명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금+최상덕 트레이드를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여야 했다. 참고로 마일영도 비슷한 사례에 속한다. 다만 쌍방울이 돈이 모자라서 판 것 뿐이다.[33]

  • 앞서 나왔듯이 언론과의 관계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이는 박재홍이 "야구장에선 야구만"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때문에 야구장 안에서 기자의 인터뷰나 취재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고 거부해왔다. 불타는 그라운드 시즌1 박재홍 편에서 이런 모습이 생생히 드러난다.[34]

  • 언론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과는 달리 팬들과의 의리는 상당히 신경쓰는 편. 특히 자신이 뛰던 팀인 현대와 SK의 연고지인 인천광역시에 대한 애정이 엄청났는데, 현대 유니콘스에서 눈 밖에 나서 트레이드된 이유가 연고지 이전과 관련해서 프런트에게 대들었기 때문이다.[35] 이후 다시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하며 인천 팬들의 환영을 받으며 인천팀으로 되돌아오는데 성공했고, 2009년 말 두번째 FA에서도 "인천에서 300-300을 달성하고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고 팬들 역시 인천 프랜차이즈 사상 첫 우승을 안겨준 박재홍을 꽤나 좋아한다. 타팀팬들에겐 개념없다고 눈에 가시처럼 여겨지지만 여전히 인천의 야구팬들에게는 사랑받는 선수이다. 인품도 훈훈하고, 팬서비스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물론 기자들과 친한 편이 아닌데다가 '야구장에서는 야구만'이라는 박재홍의 가치관 때문에 신인왕 + MVP 떡밥이 있던 시절에는 팬들을 귀찮아 했다는 썰이 풀리기도 했다.

  • 하지만 고향인 광주광역시로 경기하러 내려가면 얄짤없었다. "지명까지 받았는데 돈 때문에 연고팀을 등졌다"는 것이 주된 반감의 원인으로[36] 해태 시절엔 박재홍을 향해 쫓아다니면서 10원짜리 동전을 투척하는 경우도 있었다.[37] 이후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어 이적 첫 해에 활약을 어느정도 하나 싶더니, 두 번째 해에 태업논란과 단장과의 트러블로 인해 다시 평가가 나빠졌다. 그렇게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후, 광주로 원정을 가서 KIA 타이거즈와 경기를 할 때면, 경기 시작 전부터 구장에 들어와 있던 무등 아재들이 귀신같이 찾아내서 고향 사투리가 섞인 쌍욕으로 갈궜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나이 지긋한 광주 기아팬들이 박재홍을 발견한 순간, "아따 재홍아~ 여그가 니 고향이여. 이 XX야!"로 말문을 열고, 박재홍이 쳐다보면 "뭘 구다봐! 이 XXXX야!" 같은 모욕적인 욕설을 시전했다고 한다. 이 정도가 많이 순화된 표현으로, 당시 광주 팬들이 박재홍에게 너무 가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1996년 신인 시절 당시 리그의 최고 에이스였던 조계현대놓고 본때를 보이겠다고 박재홍에게 벼르기도 했다. 박재홍 부모님도 박재홍이 연세대를 졸업하고 해태 입단을 거부한 뒤 현대로 가버리자 이 일 때문에 한때 광주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도 못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팬들의 감정도 누그러지고, 2013 시즌 정우영, 손혁과의 3인 중계 도중에 KIA 팬들에게 손혁과 같이 사과하기도 하는 등, 그 이후 크게 모난 행보는 보이지 않아 이젠 그러려니 하는 KIA 팬들도 상당한 편. 이후 프로야구 40주년 기념 히스토리40 칼럼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고향팀에 입단해 고향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되고싶다라는 소회를 밝힌것을 보면 이 일이 가슴에 큰 한으로 남은 모양.

  • 아는 사람은 알지만 의외로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현재까지 미혼이다.[38][39] 크보계 동자공의 대가 양준혁(1969년생)이 2010년에 은퇴한 이래 가장 나이 많은 노총각 야구선수였다. MBC 스포츠플러스 '베이스볼 투나잇 야!'의 쉬어가는 코너 '변두리 야구'에서 조인성, 강동우와 함께 KBO 3대 노총각으로 언급된 적이 있었다.
2012년 류택현이 플레잉 코치로 복귀함에 따라 2번째로 나이 많은 노총각 선수가 되었고, 2013년에 결국 양준혁에 이어 두 번째 노총각으로 은퇴하게 되었다. MBC 스포츠플러스 '구구절절'에서 양준혁 해설위원, 정병문 캐스터[40]와 함께 악성 미분양(노총각을 의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2017년부터 싱글들이 출연하는 SBS 예능인 "불타는 청춘" 에 출연 중. 강동우와 류택현은 각각 2014년과 2015년에 결혼해서 노총각에서 탈출했고 그 양준혁도 결혼소식[41]을 알린 후 2021년 3월 13일 결혼식을 올리며 노총각에서 탈출하면서 박재홍만 더욱 쓸쓸해졌다.

  • 한국 야구의 발전을 늦춘 원흉(?)이라고 한다.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우수한 DNA를 전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됐으니까...# 나머지는 아들을 하나만 낳은 이종범, 딸만 셋 낳은 박찬호, 50이 넘어서야 장가를 간 양준혁이라나 뭐라나... 이 중에서도 유일하게 미혼이다

  • 현대 유니콘스 입단 동기였던 장정석키움 히어로즈 감독이 1998년 11월에 결혼했을 당시 결혼식 사회를 맡았던 적이 있다. 이 때만 하더라도 일찍 장가를 갈 줄 알았던 그였기에 지금도 미혼이란 것은 상상을 못할 정도다, 그리고 장정석의 아들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이후 박재홍이 KIA로 트레이드된 뒤에도 반년 먼저 KIA에 온 장정석과 다시 재회하며 KIA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박재홍의 팀 적응 등을 장정석이 도와주는 등 나름 친분이 있던 걸로 보인다.


  • 네이버 라디오볼 2013년 5월 13일 편에서 정철우 기자가 언급한 바로는, 박재홍 해설위원에게 "어렸을 때, 우상이었거나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누구냐"라고 물어보자 대답이 "없어요"라고 하더니 대뜸 "나보다 야구 잘하는 선수를 못 봤다"고. 그리고 이어 "좌측 폴대 옆으로 살짝 빗겨나간 파울을 치고 우측 폴대 옆으로 살짝 비켜난 파울을 치고, 타석에서 살짝 물러선 후 그 다음 공을 센터 전광판을 맞추는 홈런을 때린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랜다. 그 이야기에 놀란 정철우 기자가 "그 선수가 누군가요?"라고 묻자 너무나 태연히 "저요".

  • 어렸을 때부터 야구만 열심히 했는지 방송 중계 중에 LG 트윈스김용의의 별명이 또치라고 하자 또치가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캐스터가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등장인물이라고 하자 왠지 빼빼 마른 캐릭터일 거 같다[42]고 하면서 경기 중에 또치를 검색했다. 결국 검색 끝에 또치의 정체를 알게 되고 나서는 별명에 수긍했다.

  • 지금 10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1990년대 중반 프로야구 스티커 뽑기 붐이 불었을 때 이종범-마해영 다음의 시그니처 캐릭터가 박재홍이었다. 쉽게 말해서 스티커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앞으로도 그만큼 압도적인 포스를 뿜어내는 신인은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그 이유다. 하지만 그 셋이 모인 04년도는 본인들도 그렇고 팀도 그렇고 성적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셋 다 이상한 사건에 연루되기까지 했고.


  • 해설위원을 하면서 개그 캐릭터로 이미지를 단단히 굳히는 중이다.노래부르는 빵형

  • SBS 불타는 청춘출연한다. 시청자 반응은 그럭저럭인 편. 이후 멤버로 출연하고 있다. 여기서는 큰 손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는데 불청에 합류한 첫 여행이었던 전북 남원에서 라면 100인분을 만들더니 부산에서는 어묵 150인분 만들기에 성공하여 같이 간 출연진이랑 제작진들과 모두 나눠먹었다. 이후에도 명절음식을 싸들고 오거나 닭 16마리를 사와서 가마솥 옛날 통닭을 만들기도 했다.

  • 인천에 오래 살았고 현재도 송도국제도시에 거주함에도 불구하고 인천sell야구장에서 하는 레전드와 함께하는 야구레슨에서 사회인야구인들에게 인천 맛집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 운전면허는 프로 입단 후에야 땄다고 한다. 신인 시절이던 1996년 20-20을 달성할 때는 구단에서 엑센트를, 30-30을 달성할 때는 티뷰론을 포상으로 받았는데, 이 중 엑센트는 모교에 기증했고 티뷰론은 직접 몰고 다니다가 1998년 두번째로 30-30을 달성할 때 그 해 출시된 EF 쏘나타를 받고 후배 김수경에게 넘겼다고 한다.

  •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 직후 모기업 기아자동차에서 막 출시했던 오피러스를 직원 할인을 받아 구매한 적이 있다.[43][44] SK 이적 후에도 이 오피러스를 타고 다녔다으며 현재는 BMW 740d로 차를 바꿨다. 여담으로 박재홍의 맞트레이드 상대였던 김건한 역시 KIA로 가자마자 오피러스를 구매했다고 한다.


  • 국가대표에 단골로 뽑혀갔으며 국대에서도 꾸준히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이 때문에 '리틀 쿠바'라는 별명이 붙었다.


6.1. 빵 사건[편집]


2007년 쯤 당시 KIA 타이거즈의 투수였던 신용운에게 싸이 쪽지를 통해서 질문을 하였고 빵 사건의 범인이 박재홍이라는 답변 쪽지를 받았다는 캡처를 제시하여 그렇게 진실이 밝혀지나 싶었으나, 싸이 쪽지의 발신자 이름 조작이 가능한것이 밝혀지고 이후 신용운이 그런 답변을 한 적이 없음을 밝힘으로서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이 일을 만든 유저는 이종범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기 위한 조작이었다고. 여담으로 사건 직후 신용운을 만난 경기에서 박재홍은 홈런을 날렸다.

이후 OBS의 불타는 그라운드를 통해서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말했고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진범이 마해영인 것으로 사실상 확정되었지만, 이미 빵재홍, 뚜레재홍 등의 별명이 붙어버렸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뉘앙스였으나 워낙 입에 착착 달라붙어서 그런지 긍정적인 뉘앙스로 바뀌어서 계속 쓰였다. 박재홍이 진범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서 더 부담감 없이 빵 드립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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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이 빵재홍이란 말이 듣기 싫었던 시절에 본인이 빵재홍이 아니라고 해명하던 영상에서 나온 발언이다.

박재홍 본인도 한때는 마음고생을 꽤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별 거부감 없이 개그 소재로 사용한다. 한때 멸칭으로 불리던 별명을 자신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로 승화시킨 셈. 해설위원으로 데뷔한 이후 대전 중계를 하러 내려갔을 때 빵집에서 빵을 사서 기자들에게 돌렸고, 롯데 경기 중계전, 김시진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한 기자가 "빵 사건을 아냐?"라고 물었더니 김시진 감독이 안다고 하자 옆에 있던 박재홍 曰, "이제부터 빵 사건이 뭔지 아는 사람만 빵이라고 부르라고 해야겠어요."[45]

  • 팀의 최고참 급이 된 후로는 빵형, 선수협 회장이 된 뒤로는 빵회장님. 사실 빵형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타팀 팬들도 박재홍을 대상으로 빵과 관련된 별명을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SK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 2013년 정기 연고전 야구 경기에서 연세대측의 편파 해설을 맡은 바 있는데, 원래 해설하기로 했던 6이닝이 지나고 "빵이 없어서 배고파서 해설을 더 못하겠다"는 드립을 친 바 있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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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의 영상에서 박재홍이 언급하듯 SK 시절 룸메이트였던 조동화를 통해 브래드 피트와의 합성사진, 이른바 '브래드 재홍'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은 2013년 9월 11일 군산 경기 해설 때문에 내려갔다가 유명한 빵집인 이성당의 단팥빵을 한입하는 빵해설의 모습이다. 동족상잔 드립은 정우영 캐스터가 했다고 한다.


  • 해설자로 데뷔한 2013년, 베이스볼 투나잇 야!의 예고 영상에 정말로 바게트를 들고 출연조용준이 던진 슈라이더를 때려서 폭파시켰다.
  • LG 트윈스 브래드 스나이더"어 스나이더 우리 빵 집안인데. 브래드 스나이더잖아"라고 했다.
  • 한국프로야구/2014년 개막전 베이스볼 투나잇에서 4강 진출 팀 선정에서 넥센 히어로즈를 선택했고 만약 4강에 진출 못할 시 빵집을 차리겠다고 공약했는데 넥센의 포스트시즌확정되면서 그런 거 없게 되었다.
  • 2016년 4월 17일 NC-롯데 중계 중, '2002년에 조사한 '밥을 가장 잘 얻어먹을 것 같은 선수' 순위에서 2등(압도적인 1위는 정수근...이라는 통계가 나오자 "오히려 밥을 많이 사줄 것 같아요", "빵 많이 얻어 먹은 거 아니에요?" 라며 빵 사건 드립이 또 튀어나왔다.
  • 2016년 5월 6일 기아-넥센 중계 중, 서건창이 바나나를 먹자 '선수들이 배고프면 빵 먹어야 돼요(26초 부터)' 라는 드립을 쳤다.
  • 2016년 9월 15일 넥센-kt의 경기 중 황덕균이 덕아웃에서 간식거리를 먹자 "저는 주로 을 먹었는데요, 배고프면 먹어야죠" 라며 캐스터와 시청자들을 터뜨렸다.
  • 빵재홍과 꼴리검의 절묘한 조화 상대역은 배지현 아나운서다.
  • 2018년 8월 6일 MBC SPORTS+ 야구중심에서 시청자 질문으로 제과점 운영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라는 질문에 "제 숙원사업입니다."라고 맞받아치는 센스를 선보였다.
  • 2019년부터는 EBS FM 팟캐스트에서 '박재홍 임용수의 야구야구'를 진행 중이다. 원래는 정민철도 진행했으나, 한화 단장으로 가게 되면서 임용수 캐스터가 대신 오게 되었다.
  • 2020년 7월 15일 KIA-삼성 중계 중, 한명재 캐스터가 양준혁과 통산 WAR를 비교하는 중에 빵... 이라고 언급하며 사석에서 빵형으로 부른다고 인증했다.
  • 2021년 4월 13일 NC-SSG 중계 중, 한명재 캐스터가 NC의 택진이형과 SSG의 용진이형을 비교하는 중 형드립의 원조는 본인인 빵형이라고(...) 소개했다.
  • 2022년 9월 17일에 진행되었던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시상식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저를 빵형이라고 많이들 하시던데 그렇게 불러도 됩니다"라며 관중들을 빵 터트렸다.#

7. 주요 기록[편집]


30-30을 데뷔 시즌에 기록하더니, 선수 시절 동안 무려 세 번을 기록했다. 이것만으로 그의 능력은 설명이 된다. 특히 매년 162경기를 치루는 메이저리그에 비해 1996, 1998시즌 당시 KBO 리그는 126경기를 치렀다. 때문에 30-30의 가치가 더욱 높다는 점을 상기하자. 경기수를 감안한다면 크보의 30-30은 160경기의 40-40에 가깝다. 심지어 1998년에는 30홈런-40도루의 기록을 수립하였다. 기록 달성 연도는 1996년, 1998년, 2000년. 2000년에는 타점왕까지 했었다. 호타준족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역사적인 선수. KBO 역사상 최강의 호타준족 타자라고 해도 무방하다.[47]

참고로 2000년에는 3할-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을 기록했다. 한국야구 최초로 200홈런-200도루 기록을 세웠고 2009년에는 250홈런-250도루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도루에 대해선 여러가지 의견이 많은데 도루 성공률이 매우 낮다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통산 도루 성공률이 겨우 64%에 불과하며 30-30을 기록했을 때도 67~69%에 불과했다. 도루란 실패하면 주자가 없어지고 아웃카운트만 하나 늘어나는 리스크가 큰 행동. 따라서 70% 이하, 엄격하게 보면 75% 이하의 도루 성공율은 팀에 도움은커녕 해가 되는 플레이다. 삼성의 레전드인 양준혁도 같은 이유로[48] 도루 스탯에 대해선 평가가 박한 편이다.

스탯티즈 기준 도루 대비 득점기여인 RAA에서 역대 1786위 중 1761위라는 처참한 RAA를 기록했다. 단순히 평균 이하 수준이 아니라, 팀에 해를 끼치면서 개인 기록을 관리했다고 평가해도 무방할 정도로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최악의 주자였음을 증명해준다. 오히려 도루한 것이 해가 되는 꼴. 도루를 200개 이상 기록한 선수 중에 박재홍만이 유일하게 RAA도루 기록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하였다. 그의 도루는 기록을 위한 기록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그의 도루는 팀에 득보단 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루로 아웃되지 않았다면 팀 득점에 훨씬 더 기여했을 것이다. 실제 기여도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 도루 개수만으로 선수의 주루 툴을 판단하는 기존의 사고 방식이 선수의 가치를 지나치게 왜곡한 꼴이다.스탯티즈RAA도루기록

원래 데뷔 시즌에 김재박 현대 감독의 시즌 구상은 박재홍을 톱타자로 기용해[49] 김인호나 김성갑 같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기존의 테이블 세터진을 보완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박재홍의 지나치게 좋은 공격력 즉 1번 치고 장타력이 너무 좋다는 이유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3번으로 타순을 변경하게 되었다. 1번타자는 김인호 낙점. 결국 이 때문에 문동환 카드를 이용해 롯데에서 전준호를 데려와 이 문제를 해결했다. 김대익의 가능성을 믿고 쉽게 트레이드를 결정한 롯데는 그 이후 십수년간 톱타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2006년까지만 해도 홈스틸까지 성공하는 등[50] 적극적으로 도루를 시도했으나,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에는 부상 위험을 감안하다 보니 좀처럼 박재홍에게는 도루 사인을 내지 않는지라 2007년부터는 20도루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없다. 호타준족이지만 도루 실패율이 꽤 높은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을 국내에서 찾는다면 이영우양준혁 정도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개인 통산 최고 타율이 1997년에 96경기를 뛰며 기록한 3할2푼6리였을 정도로 기술보다는 힘으로 장타를 만들어 타점을 쓸어담는 스타일이었다. 스윙 자체가 원년 홈런왕 김봉연과 비슷했다.

획득한 우승반지는 1998, 2000(현대) 2007, 2008, 2010(이상 SK)으로 총 5개.

2013년 3월 마구마구에서 레전드 카드 패치 때 SK가 아닌 현대 소속으로 나왔다. 팀으로 뛴 연차는 오히려 SK 시절이 8시즌으로 현대 시절 7시즌을 넘어섰지만, 전성기 때 임팩트가 임팩트다 보니 이렇게 된 듯. 그러나 애초에 연고지 문제 때문에 현대에서 쫓겨나다시피했고 인천 연고로 뛴 시즌으로 한정할 경우 12시즌이나 되니 인천야구 떡밥을 걸고 넘어지는 SK 팬 유저층에서는 불만을 제기했다. 이것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2013년 6월 프로야구 매니저의 추가 레전드 카드에서는 현대랑 SK 양쪽 모두 1장 씩 총 2장의 레전드 카드로 나왔다. 하지만 얼마안있어 마구마구에서도 레전드 기준이 완화되어 SK소속 레전드 카드도 추가되었고 2015년 10월엔 마구최고등급 카드인 블랙카드는 당당히 현대가 아닌 SK로 카드가 출시되었다

2001년 심정수가 현대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팀 내에서 유일하게 번트 면제(?)를 받는 선수였다. 당시 현대는 40홈런에 OPS 1.034로 2000년 리그 MVP였던 박경완조차도 번트를 6회나 댔고, 같은 해 타율 1위였던 박종호가 번트 20회로 리그 전체 3위를 기록하는 팀이었던 것을 보면 특별 대우를 받은 셈이다. 현대에서의 7년간은 번트를 단 한 번도 대지 않았지만, 2003년 KIA로 이적한 이후에는 은퇴까지 거의 매 시즌 번트를 댔다.

이하 선수생활 시절 통산 주요 기록. 순위 기준은 은퇴식이 거행된 2013년의 시즌 종료 시점 기준이다.

  • 통산 300홈런으로 역대 7위. 바로 위인 6위는 311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송지만, 5위는 314홈런을 기록하고 은퇴한 박경완이다. 이 세 선수의 나이와 홈런 개수 차이를 감안해 보면, 은퇴할 때까지 입단동기인 송지만과 6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될 듯했는데, 2012 시즌을 끝으로 박재홍이 은퇴하면서 당시 현역이던 송지만의 사실상 승리. 덧붙여 2014년까지를 기준으로 한 현역 선수 중 박재홍, 송지만의 홈런 개수에 가장 근접해 있는 선수는 285개의 이호준, 273개의 김동주뿐으로 그 외 선수들과는 넘사벽이 존재한다. 은퇴 후에는 이호준이 2015년, 이범호가 2017년에 301호 홈런을 치며 2018년 기준으로는 9위다.

  • 역대 최고의 호타준족 답게 통산 도루 267개로 역대 13위. 2011년에 김주찬에게 9위, 2013년에 이종욱에게 10위 자리를 역전당했지만, 2012년까지 도루와 홈런 모두 역대 10위권 내에 올라가 있던 선수는 박재홍이 유일했다. 이후 박용택정근우에게 밀려 순위가 더 내려갔고, 이용규가 평년 수준으로 성적을 기록한다면 2014년 말에는 14위까지 내려간다.

  • 통산 1,081타점으로 역대 5위. 그 위로는 1,389타점의 양준혁, 1,145타점의 장종훈, 2013년까지 각각 1,102타점의 이승엽과 1,097타점을 기록한 김동주 밖에 없다.

  • 통산 3,000루타로 역대 6위. 그 위에는 2013년을 기준으로 양준혁이 3,879루타, 이번에도 역시 데뷔 동기인 송지만이 3,186루타, 그 뒤에 장종훈(3,172), 장성호(3,069), 이승엽(3,006)이 있다. 데뷔 당시의 임팩트는 박재홍>송지만이었으나 꾸준함이 강점인 송지만이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역전했다. 재미있는 점은 홈런기록과 더불어 보면 에누리 하나 없이 딱 300홈런-3000루타라는 점이다.

  • 삼진이 약간 많은 편이다. 1,147삼진으로 역대 4위. 2013년 기준으로 1위 박경완(1,600개)과 이번에도 역시, 송지만(1,451개)이 더 많은 숫자를 기록하였다. 3위는 장종훈의 1,354개다.

  • 삼진이 많은 타자였지만 그 것을 상쇄할만큼의 볼넷을 얻었던 타자이기도 하다. 볼넷 875개로 역대 9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통산 볼삼비 역시 0.76으로 상당히 준수하다.

  • 준족이었지만 통산 병살타는 151개로 굉장히 많다. 역대 공동 23위. 통산 도루 20위 이내에서 이 정도로 병살타가 많았던 선수는 박용택과 유이하다. 물론 리드오프로 주로 출전하는 발빠른 선수와는 달리 누상에 주자를 두고 타석에 들어오는 박재홍을 무작정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 정규시즌 성적과는 별개로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 3회나 우승하였는데,(1997년, 1999년, 2008년) 이는 양준혁과 함께 최다 우승기록이다. 특히 2008년 홈런레이스에선 월드홈런레이스라는 이름 하에, 국내선수끼리 예선을 한 후에 베이징 올림픽 대비를 위해 국내에서 훈련 중이던 네덜란드쿠바 선수 1명씩을 뽑아 대결을 했는데 거기서 우승을 했다.

8. 관련 문서[편집]


[1] 음력 9월 7일. #[2] 김종국 감독이 본래 박재홍은 1972년생들과 동기였으나, 중학교 3학년 때 1년 유급했다고 밝혔다.# [3] 모두가 알고 있는 장면은 김종국 vs 박재홍 처음부터 라이벌로 알고 있었으나, 결국 초 중때는 박재홍이 선배인 셈. 결국 KIA와 그 KIA의 성골인 김종국과 융화되지 못한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급을 하지 않았다면 91학번인 진필중, 심재학 등과 동기가 됐을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1972년생 야구 선수들은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황금세대인 1973년생 선수들에 비해 이름을 떨친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적다.[4] 당시에 광주에는 그런 선수들이 많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기태홍현우가 빠른 생일이 아님에도 조기 입학했다.[5] 현재 해설 단짝으로 활약하는 정민철은 반대의 경우로, 만20세에 프로에 데뷔한 경우다. 즉 정민철은 고졸로 92 데뷔인데, 박재홍은 91학번이 될 수도 있었다. 생일로는 동생인데 야구계에서는 형으로 불리는 경우가 생길 뻔했다.[6] 2008년 3월, 스포츠레저학과로 개칭되었다가 2017년 3월 스포츠응용산업학과로 개칭되었다.[7] #[8] 아마추어 시절에는 원래 내야수였고 주 포지션이 3루수였다. 프로 입단 후에는 2002시즌에 8경기 출장한 적이 있다.[9] 지명 거부 후 연세대학교 입학.[10] 졸업 후 1996년 실업야구 팀 현대 피닉스와 계약을 맺으며 결국 해태가 현금+최상덕을 받는 대가로 박재홍의 현대 유니콘스 입단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아래에 후술한 것처럼 고향팀인 KIA를 상대로 한 원정 경기마다 아재들에게 쌍욕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11] S! K! 박재홍! 호타준족 박재홍! X2[12] 오 오오오오 오오오오 오오~ SK 박재홍 X4[13] 응원 전용 구호가 끝나면 바로 응원가를 이어서 불렀다.[14] 그리고 마침 10살 연하의 최형우가 2016년 KIA 타이거즈와 FA 100억 계약을 하였고 이후 100억 계약은 S급 스타 플레이어에게 대명사가 되었다[15] 2022년 스톡킹에서 이때의 발언을 다시 언급했는데 지금 시점으로는 150억은 받았을 것이라고 정정했다.[16] 다만 70%에 못미치는 통산 64%대의 성공률로 주루툴을 도루에 있어서 성공적으로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다만 빠른 발을 보유했었고, 30-30을 세차례나 달성했기에 얻었던 평가.[17] 17년의 프로 선수 생활 기간 중 12년을 인천 연고팀 선수로 뛰었다. 그 영향인지 본인은 살면서 인천에서 생활할 때가 가장 편했다고 말한 바 있고 현재도 송도에서 거주 중이다.[18] 전성기 시절에는 어린이 팬부터 여성 팬들은 물론 올드팬 도원전사까지 폭넓은 세대의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중에도 박재홍에 대한 팬덤이 가장 두터운 세대는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이들이다. 2022년 기준으로 30대 후반이 된 사람들인데 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박재홍은 그야말로 인천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도원의 아이돌'이었고 이들이 고등학생이나 성인이 된 후에는 문학구장에서 활약했다.[19] 인천 출신이 아님에도 인천 연고팀 선수로 오랫동안 뛰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로는 군산 출신의 정명원, 대구 출신의 최창호, 광주 출신의 조웅천, 전주 출신의 박경완박정권 등이 꼽힌다.[20] 김경기, 정민태가 같은 별명을 받았다.[21] 후에 밝히길 신인 시절 남아있는 번호 중에 그냥 골랐다고 한다.[22] 결국 이호준도 훗날 선수협 회장을 맡게 된다.[23] 강병규가 박재홍이 선수협 회장일 당시 전후로 서재응을 디스하고 손민한을 저격하는 등 대외적으로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이긴 했으나 그 때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나머지 시기엔 선수협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보일 정도로 별 짓을 다 했다. 특히나 이 시기에 이병헌에 대한 사기, 폭행 혐의 등으로 인한 고소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언론 플레이용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방송 진출 이후 오랜기간 선수협에 대해 일절 관심이 없던 강병규가 본인의 여러가지 힘든 상황에서 갑자기 양준혁 디스, 선수협 관련 발언 등을 의도적인듯 내놓는 상황이어서 선수협의 단호한 선긋기는 이해할만하다.[24] 최근에도 간간히 메이저리그 해설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개최되는 MLB 올스타전 해설을 위해 신시내티로 갔다.[25] 해태는 1992년에 박재홍을 1차 지명으로 뽑아두었는데 그 정도로 박재홍이 유망주였다는 소리다. 김종국이 1차 지명을 받은 것은 대학을 졸업한 1996년의 일.[26] 박재홍도 연세대 시절 나름 유명한 선수였으나 김종국이 고려대 시절 들은 제 2의 이종범이라는 소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물론 막상 프로에 와보니 박재홍은 데뷔 첫 해부터 30-30을 찍으며 날아다닌 반면, 김종국은 프로에서 2루수 골든글러브도 한번 타보고 국가대표 2루수도 한번 해봤으나 타격이 상당히 약한 편이어서 대학 시절의 모습에 비하면 뭔가 아쉬운 모습이었고 결국 수비와 주루로만 먹고 사는 평범한 선수가 되고 말았다.[27] 당시 KIA 감독이던 김성한부터가 직전해에 훈련중 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이유로 선수를 구타한 장본인이었다. 더군다나 김성한이 시즌 중에 경질당하고 감독대행으로 선임된 유남호 역시 코치 시절에 보여준 권위적인 태도와 행보로 문제가 되었던 이력이 있었고.[28] 게다가 코칭스태프나 프런트에도 상당수가 KIA 출신이 많았고 이들 대부분이 박재홍과 학연(광주일고)로 얽혀있기도 했다.[29] 2011년 LG에 온지 3달 밖에 안 된 송신영이 바로 FA가 되어 떠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 쪽도 프런트에서 모욕감을 주자 원 소속팀과의 협상기간이 끝나고 5시간 만에 한화와 계약해서 나가버렸다.[30] 경남상고에는 훗날 두산에서 활약하는 차명주가 있었고, 신일고는 조성민과 강혁 등의 호화 멤버들이 버티고 있었다.[31] 이 점에서 조성민, 임선동은 물론이고, 정민철 등에도 밀려 고교시절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서술되었던 이전 문서의 내용은 정확하지 못하다. 특히 정민철의 경우, 1992년 입단 당시 국가대표 에이스 출신이었던 정민태, 지연규 등에 이름값이 한참 밀려있던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박재홍이 고교시절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면, 당시 전성기를 달리던 연고구단 해태가 고등학교에 졸업하자마자(1990년대까지만 해도 프로야구 신인은 대졸 출신이 대다수였다) 1차 지명을 했을 리가 없다.[32] 그래서 고졸우선지명으로 뽑아둔 서재응 - 김병현 - 최희섭이 전부 MLB로 진출하면서 수혈이 이뤄지지 못 했다.[33] 마일영 트레이드를 계기로 지명권 트레이드는 십여년간 금지되었다.[34] 이렇게 언론과 친하지 않은 선수가 박주영이다. 박주영은 유독 인터뷰를 잘 안하기로 유명하다. 안정환도 전성기 시절엔 언론이랑 그렇게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안정환 전성기 때는 워낙 이미지가 시크하고 테리우스로 대표되는 귀공자풍 이미지라... 하지만, 안정환은 알고 보면 굉장히 어렵게 축구를 한 선수다. 그 밖에 김동주도 기자들과는 친하진 않다. 사실 김동주도 워낙 무서운 이미지라... 이와 반대인 케이스는 이승엽, 홍성흔, 강민호. 특히 이승엽, 홍성흔은 기자버프로 골글을 탄 적이 많다.[35] 물론 이건 프런트 입장도 억울한게 당시 현대그룹 윗선에서 어거지로 구단 연고지를 이전시키려다가 모기업인 현대전자가 공중분해 될 정도로 일이 꼬였기 때문. 애초에 구단 대표이사도 그룹 내에서는 수 많은 임원 중 1개 전무에 불과하며, 단장도 겨우 1개 이사에 불과한지라 영향력이 큰 자리가 아니다.[36] 박재홍이 현대로 입단하게 된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37] 박재홍 데뷔 첫해 광주 원정 내려갔을 때 박재홍한테만 물병을 던져대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경기 내내 헬멧쓰고 중견수 수비를 본 적도 있었다.[38] 이종범아들이 맹활약을 할 때마다 굉장히 높은 확률로 양준혁과 함께 언급된다. "제발 빨리 결혼하고 애낳아서 우리팀에 데려와주세요"(...) 하는식.[39] 2018년 어린이날 넥센 히어로즈kt wiz와의 경기 우측 하단에는 "어린이날과 관계 없는 박재홍과 양준혁 대기중" 이라는 엠스플의 문구가 있었다.[40] 1976년생인 정병문 캐스터는 2016년 5월 결혼과 동시에 노총각을 탈출했다.[41] 원래는 2020년 12월 초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였으나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면서 결국 2021년 3월로 연기되었고, 3월 13일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다.[42] 정확한 예상이었다. 또치는 실제로 빼빼 마른 캐릭터다.[43] 오피러스는 2003년 3월에 출시되었다.[44] 당시 KIA 선수단에게 2년 후 소유권 이전 조건으로 30% 할인 + 24개월 무이자 혜택을 주었다고 한다.[45] 그래서 그런지 빵사건 당시 같은 팀이었던 심재학은 아예 박재홍을 빵이라고 부른다.[46] 여담으로 연고전을 가면 연세우유와 고대을 주는 경우가 있다.[47] 그리고 그가 이루지 못한 40-40에 도전하는 선수가 등장했다. 그리고 도전에 성공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낸 타자가 됐다.[48] 통산 도루 성공률 61%, 게다가 도루성공률 60%이상이면 나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을 해설 당시 하여 시청자들의 어이를 상실하게 하기도... 당장 염경엽의 23시즌 LG가 도루성공률이 61%이다.[49] 실제로 그의 프로 데뷔전이었던 1996년 4월 13일 인천 LG전 당시 그의 타순은 1번타자였다.[50] 성공 동영상이 보고싶다면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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