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천(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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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인 1960년생 농구인에 대한 내용은 박종천(1960) 문서 참고하십시오.
한국의 前 농구 선수이며 현재 수원 kt 소닉붐의 코치를 맡고 있다.
고향은 논산시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안산시에서 나왔다. 중학교에 농구부가 없자 농구를 하려고 먼 목포시로 건너가 목포상고 농구부에 들어갔고 경희대에서 팀의 주포로 괜찮은 활약을 보이면서 200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대표로도 발탁되었다.
파일:루키 시절의 박종천 서울 삼성.jpg
2003년 프로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받으며 프로 무대에 입성하는데 성공했지만 이규섭을 위시해서 포워드 자원이 넉넉했던 팀이었던 때였는지라 적응하지 못하고 주로 벤치에서만 내내 머물렀다. 결국 2005년 군에 입대해 두 시즌을 국군체육부대에서 보낸 뒤 제대하고 나서도 역시 딱히 자리는 없었던 데다 거의 잉여에 가까웠을 정도였다.
2009-2010 시즌부터 팀의 샐러리를 줄이기 위해 무상으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이적하였다. 유재학 감독 밑에서 엄청난 강훈련을 소화하면서 자신감을 찾아냈고 결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적 후 첫 시즌 출전 시간은 4배 늘어난 평균 20분을 뛰면서 평균 8득점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내면서 일약 팀의 주축 식스 맨으로 자리 잡았다. 외곽슛이 괜찮았고, 필요할 때 득점을 넣어 상당한 능력을 보여준 덕분에 통합 우승으로 크게 주목받았고, 그로 인해 기량발전상과 식스맨 상을 모두 타면서 크게 각광받았다.
농구도 못 할 뻔했던 박종천은 이 때의 활약으로 FA 대박을 터뜨리면서 억대 연봉도 받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꾸준히 모비스의 키 식스맨으로 활약했다.
2014-2015 시즌 종료 후 은퇴해 부산 kt 소닉붐의 코치를 맡게 됐다. 그러나 코치로서의 평가는 감독인 조동현의 내외적인 나쁜 부분에 묻혔지만, 사실상 존재감이 없었기에 별로 좋지 않았고 kt 선수들의 슈팅능력 개선도 별로 없었다.
2017-2018 시즌 조동현 감독이 2년간의 성적 부진 및 17-18 시즌 구단 최저 성적으로 인해 결별했지만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수석코치였던 서동철 감독이 부임하면서 남아있는 코치 중 잔류하게 되었다.
2018-2019 시즌 팀의 5년만의 플레이오프를 함께했으며 2년 연속 정규리그 6위로 재평가를 받았다.
kt 팬들에게는 평가가 매우 좋은 편. 슈터 출신인 서동철 감독과 함께 슈팅을 조련하면서 대학시절 허훈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3점을 개선시켰으며 양홍석 역시 성공률을 10%가량 올렸고, 김현민과 최진광, 문상옥, 박준영이 3점슛을 장착하는데 기여했다.박지원, 최창진이 남았다
2021-2022 시즌인 2022년 1월 24일 울산에서 펼쳐진 현대 모비스 전에는 서동철 감독이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으로 퇴장당하자 대신 감독대행으로 남은 경기 시간 동안 진두지휘 했다. 헌데 부상이 있는 허훈을 뒤늦게 출장시켜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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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의 前 농구 선수이며 현재 수원 kt 소닉붐의 코치를 맡고 있다.
2. 선수 시절[편집]
고향은 논산시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안산시에서 나왔다. 중학교에 농구부가 없자 농구를 하려고 먼 목포시로 건너가 목포상고 농구부에 들어갔고 경희대에서 팀의 주포로 괜찮은 활약을 보이면서 200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대표로도 발탁되었다.
파일:루키 시절의 박종천 서울 삼성.jpg
2003년 프로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받으며 프로 무대에 입성하는데 성공했지만 이규섭을 위시해서 포워드 자원이 넉넉했던 팀이었던 때였는지라 적응하지 못하고 주로 벤치에서만 내내 머물렀다. 결국 2005년 군에 입대해 두 시즌을 국군체육부대에서 보낸 뒤 제대하고 나서도 역시 딱히 자리는 없었던 데다 거의 잉여에 가까웠을 정도였다.
2009-2010 시즌부터 팀의 샐러리를 줄이기 위해 무상으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이적하였다. 유재학 감독 밑에서 엄청난 강훈련을 소화하면서 자신감을 찾아냈고 결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적 후 첫 시즌 출전 시간은 4배 늘어난 평균 20분을 뛰면서 평균 8득점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내면서 일약 팀의 주축 식스 맨으로 자리 잡았다. 외곽슛이 괜찮았고, 필요할 때 득점을 넣어 상당한 능력을 보여준 덕분에 통합 우승으로 크게 주목받았고, 그로 인해 기량발전상과 식스맨 상을 모두 타면서 크게 각광받았다.
농구도 못 할 뻔했던 박종천은 이 때의 활약으로 FA 대박을 터뜨리면서 억대 연봉도 받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꾸준히 모비스의 키 식스맨으로 활약했다.
3. 지도자 생활[편집]
2014-2015 시즌 종료 후 은퇴해 부산 kt 소닉붐의 코치를 맡게 됐다. 그러나 코치로서의 평가는 감독인 조동현의 내외적인 나쁜 부분에 묻혔지만, 사실상 존재감이 없었기에 별로 좋지 않았고 kt 선수들의 슈팅능력 개선도 별로 없었다.
2017-2018 시즌 조동현 감독이 2년간의 성적 부진 및 17-18 시즌 구단 최저 성적으로 인해 결별했지만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수석코치였던 서동철 감독이 부임하면서 남아있는 코치 중 잔류하게 되었다.
2018-2019 시즌 팀의 5년만의 플레이오프를 함께했으며 2년 연속 정규리그 6위로 재평가를 받았다.
kt 팬들에게는 평가가 매우 좋은 편. 슈터 출신인 서동철 감독과 함께 슈팅을 조련하면서 대학시절 허훈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3점을 개선시켰으며 양홍석 역시 성공률을 10%가량 올렸고, 김현민과 최진광, 문상옥, 박준영이 3점슛을 장착하는데 기여했다.
2021-2022 시즌인 2022년 1월 24일 울산에서 펼쳐진 현대 모비스 전에는 서동철 감독이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으로 퇴장당하자 대신 감독대행으로 남은 경기 시간 동안 진두지휘 했다. 헌데 부상이 있는 허훈을 뒤늦게 출장시켜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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