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박종철(동명이인) 문서
박종철(동명이인)번 문단을
박종철(동명이인)#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박종철
朴鍾哲 | Park Jong Chul


파일:/news/200906/08/segye/20090608105806.114.0.jpg

출생
1965년 4월 1일[조기입학]
부산직할시 서구 아미동
(現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사망
1987년 1월 14일 (향년 21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現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민주인권기념관)
사인
물고문 중 질식사[1]
본관
밀양 박씨
학력
토성초등학교 (졸업)
영남제일중학교 (졸업)[2]
혜광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 / 명예학사)

종교
불교[3]
직업
학생운동가
부모
아버지 박정기[4], 어머니 정차순[5]
형제자매
박종부, 누나 박은숙
인척
삼촌 박월길
1. 개요
2. 생애와 성품
3. 추모
4. 기타
5.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종철이를 살려내라"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사망한 후 학생운동의 구호.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아들이 사망한 후 한 말.[6]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 학생운동가. 이한열과 더불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인물.

2. 생애와 성품[편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진보진영 관련 문서 파일:초록색 깃발 이미지 흰색 테두리.png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진보정당
파일:정의당 흰색 로고.svg
파일:기본소득당 흰색 로고.svg
파일:노동당(대한민국) 흰색 로고.svg
파일:녹색당(대한민국) 흰색 로고.svg
파일:대민당 화이트.png
파일:미래당 흰색 로고.svg}}}
여영국
신지혜
현린
김예원, 김찬휘
김현승, 김삼생
오태양
사상
좌파 · 진보주의 · 사회민주주의 · 민주사회주의 · 사회주의 · 페미니즘 · 생태주의 · 신좌파 · 평화주의 · 반제국주의 · 다문화주의 · 소수자 운동 · 자유사회주의 · 좌파 민족주의 · 유럽공산주의 · 풀뿌리 민주주의 · 공산주의 · 아나키즘 · 룩셈부르크주의 · 21세기 사회주의 ·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 국제주의 · 삼균주의 · 레닌주의 · 마르크스주의 · 바쿠닌주의 · 안티파시즘 · 카피레프트 · 기독교 사회주의 · 포스트 모더니즘 · 좌파 자유지상주의 · 아방가르드 · 정치이상주의 · 신마르크스주의 · 신트로츠키주의
정치인
대통령 후보 · 국회의원 · 당대표
지식인
마르크스주의
김세균 · 김수행 · 강신주
근대비판
진중권 · 박노자 · 홍세화 · 고미숙 · 임지현
시민사회(범민주)
신영복 · 김상조 · 조희연 · 최장집 · 김동춘
민족주의
백기완 · 강정구 · 강만길 · 서중석 · 조정래 · 한홍구 · 백낙청
여성주의
권김현영 · 루인
기타
유시민 (범민주) · 리영희 · 김상봉 · 김영민
운동가
민주·학생운동
강경대 · 김귀정 · 박래전 · 박선영 · 박종철 · 이한열 · 지명관
노동운동
전태일 · 이소선 · 김지선 · 김진숙 · 노찾사 · 이석규 · 박노해 · 하종강 · 한상균
농민운동
강기갑 · 김민기 · 백남기
여성운동
권인숙 (범민주) · 나혜석 · 이희호(범민주) · 이효재 · 이태영
환경운동
김종철 · 이효리 · 최승호 · 최열 · 최재천 · 하승수
성소수자 운동
육우당 · 정욜 · 곽이경 · 홍석천 · 김기홍 · 변희수 · 한채윤
정파
평등파
중앙파 · 현장파 · 노동정치연대 · 평등사회네트워크 · 새진보통합연대 · 모멘텀 ·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 · 노동자연대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자주파
국민파 · 인천연합 · 울산연합 · 광주전남연합 · 경기동부연합 · 겨레하나
기타 · 신좌파
국민모임 · 21세기 · 참여계 · 글로벌 그린스 · 사회당계
노동조합 · 시민단체
민달팽이 유니온 (범민주) · 참여연대 (범민주)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범민주) · 한국여성단체연합 (범민주)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범민주)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청년유니온 · 알바노조 · 환경운동연합 · 성소수자 인권단체(비온뒤무지개재단 · 성소수자 부모모임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전국농민회총연맹 · 아수나로 · 전국학생행진 · 전국철거민연합 · 중고생연대 · 청년좌파 ·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 진보네트워크센터 · 전쟁없는세상 · 군인권센터 · 예술대학생 네트워크
언론
제도권
한겨레 (범민주) · 경향신문
비제도권
오마이뉴스 (범민주) · 민중의소리 (범민주) · 노동과세계 · 미디어오늘 · 프레시안 ·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 참세상 · 좌파 유튜버
정당연대
진보동맹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 그린뉴딜 포럼(정의당·녹색당·미래당 공동캠페인) · 반기득권 공동정치선언 · 정치개혁연합 (해체) ·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해체)
역사
제1공-노태우 · 문민-이명박 · 박근혜-현재 · 계파 역사
싱크탱크
정의정책연구소 · 진보정책연구원
창작물
그 쇳물 쓰지 마라 · 민중가요 · 땀이 · 캐치
관련 문서
대한민국 진보정당 · 대한민국 극좌정당 · 진보정당 틀 · 극좌정당 틀 · 기타 계파 분류 · 정의당의 계파 분류 · 진보당의 계파 분류
관련 정당
법외·제3지대
사회변혁노동자당 · 통일한국당 · 대한민국당 · 국가부패척결당 · 페미니즘당
극좌
진보당 · 민중민주당
다른 진영 관련 문서 (진보 · 민주당계 · 보수)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GamyLyingHurtNeed, 합의사항1=다음에 해당하는 문화예술인은 '운동가' 분류에 삽입한다.
1. 진보적 운동(노동운동, 사회운동 등)을 기반으로 한 민중예술을 하는 예술가 2. 진보적 시민단체 운동에 참여한 문화예술인 3. 민주노총의 구성원과 정파 활동을 하는 문화예술인, 다음에 해당하는 문화예술인은 ‘정치인’으로 분류한다. 1. 진보정당의 당원인 문화예술인 2.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문화예술인 )]




1965년 4월 1일 부산시 서구 아미동에서 아버지 박정기와 어머니 정차순의 2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형 박종부와 누나 박은숙이 있다.

부산 토성초등학교, 영남제일중학교[7]와 부산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에 1년 재수해서 1984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에 입학하였다.

고교 시절 단짝이었으며 함께 서울대학교 84학번으로 재수해 입학한 김치하의 말에 따르면 "얼굴이 하얗게 뽀얗고 피부가 맨들맨들한데 두꺼운 안경을 낀, 그 당시로서는 귀티 나는 친구"라고 한다. 더불어 회고하기를 "아주 성실하고 차분한 사람이었으며, 한번 자리에 앉으면 진득하게 공부하는 친구였다.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가족들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종종 마음이 담긴 편지를 보내곤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 최인호 역시 그의 첫인상에 대해 "외모나 인상이 순진하고 해맑은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동기들보다 정치의식이 상당히 높았다"고 설명했다. 1987년 1월 14일 이후 31년, 박종철을 기억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당시 농성지원 가두시위에서 체포되어 5일 구류를 살았고 여름 방학에는 공활(위장취업)을 하기도 했다. 1986년 노학연대 투쟁에 참가했다가 4월 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가두시위에서 체포, 구속되었고 7월 15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다음은 박종철이 옥중에서 부모님께 쓴 편지들 중 하나다.

아버지, 어머니.

더운 날씨에 비는 오지 않고, 높은 하늘은 틀린 일기예보를 조롱이나 하는 듯이 연일 쨍쨍 내리쬐는군요.

꽤 더운 편이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 합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비치 파라솔 밑에서 선글라스 끼고 한가하게 피서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먹고 잘 놀아서 피둥피둥 찐 살을 빼느라고 사우나탕, 헬스클럽 다니면서 땀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삼복더위에 라면으로 끼니 때우며 먼지와 기름 냄새로 가득찬 무더운 작업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에 비하면 저는 신선 놀음입니다.

가족들의 그런 태도는 여기 갇혀 있는 저에게는 진정으로 위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딴 가족들은 면회 오면 어떻게든 꿋꿋하게 지낼 수 있도록 용기를 복돋아 주고 바깥 소식들을 전해주고들 하는데, 허구헌날 판사님 앞에 고개 숙여라, 판사가 무슨 내 할아버지라도 됩니까.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을 시켰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시키지 못합니다. 저를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 학생들이 구속되어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를 구속시켰습니까. 저들을 미워합시다. 그리고 저들이 저들 편한 대로만 만들어 놓은 이 땅의 부당한 사회구조를 미워합시다. 악한 것을 악하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마음 속으로 진실하게 믿는 용기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구속되어 있는 사실을 왜 쉬쉬합니까. 한 명에게라도 더 이러한 부당한 현실을 알리십시오. 내가 왜 구속되었는가를, 저들의 폭력성을, 우리들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고발하십시오. 그럴 용기가 없으면 마음 속으로나마 바깥에서 오늘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우리 친구들과 저처럼 싸우다 갇혀 있는 친구, 선배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라도 쳐 주십시오.

엄마 아버지의 막내아들은 결코 나약한 인간이 아닙니다.

이만 줄입니다.

1986년 7월 8일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철이는 서울로 올라갔다. 아들이 감옥에 있는 동안 함께 활동하던 여러 명의 선후배들이 ‘5·3 인천항쟁’으로 구속되고 없었다. 철이는 법대 친구와 토론하며 새로운 이론들을 익혔다. 이때 읽은 책이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국가와 혁명> 복사본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출간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읽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철이가 마지막으로 부산에 내려왔을 때, 누나 은숙은 일본어를 공부하는 동생을 보고 의심했다.

“니 공산주의 서적 볼라고 일어 공부하는 거 아이가?”

“그래, 맞다. 와? 니 어머니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돈, 승차권, 목도리 아낌없이 주던 '자선사업가' 박종철


2.1.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출소 후에도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언어학과 3학년으로 학생회장 직분을 맡았던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어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는데 이에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아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8]


3. 추모[편집]


1997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 추모비와 흉상이 건립되었고 2004년에는 혜광고등학교에도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본래 혜광고 교정에도 흉상을 세우려고 했지만 혜광고에서 반대하여 추모비 만으로 타협했다고 한다.

1989년 박종철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동아리 선후배들이 주축이 되어 '박종철출판사'를 설립했다. 관련 기사, 박종철출판사 페이스북 최인호(영어 강사) 항목 참고.

2001년 2월 26일 서울대학교는 박종철 열사에게 명예 학사학위증을 수여했다.

2018년 1월 13일, 관악구 대학동 대학5길에 박종철 열사를 기리는 '박종철 거리'가 조성되었다. 신림동 대학5길에 오늘 '박종철거리' 조성된다

2018년 3월 20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요양원에 있었던 박종철의 아버지(89)를 만나 31년 만에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에 대해 직접 사과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아버지는 검찰의 사과를 받은 지 4달 뒤 2018년 7월 28일 아들 곁으로 떠났다.

유골을 산골하였기 때문에 박종철의 묘소는 가묘로, 여기에 실제 안장된 사람은 박종철의 아버지다. 1987년 1월 16일 아침에 벽제화장장(현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 후 임진강에 산골하였다. 1989년 초혼장을 치른 후 산골한 곳의 흙을 관에 담아서 가묘를 만들었는데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9]에 이 가묘가 있다.


4. 기타[편집]


  • 생전 종교가 불교였다. 대공분실에 친형 박종부와 스님이 추모하러 같이 온 것도 그렇고 사후 31년만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스님들이 모인 걸 보면 불교가 확실하다.[10]

파일:20180110134648872ltwg.jpg

  • 자이언트 53화에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그의 죽음 이후 이강모의 형 이성모는 조필연과 "전두환 정권도 끝"이라고 말한다.

  • 영화 1987에서는 배우 여진구가 연기했다. 공교롭게도 박처원 역을 맡은 김윤석이 박종철 열사의 혜광고등학교 2년 후배이다. 그래서 김윤석이 "영화 속이긴 하지만, 내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 2022년 1월 9일 3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기사.


  • 박종철출판사에서 발간하던 박종철 평전이 절판되면서 PDF로 무료 공개했다. 다운로드 링크


5. 같이 보기[편집]



[조기입학] [1] 정확한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다. 욕조의 턱 부분에 목이 눌려서 질식사한 것이므로 익사가 아니다.[2] 원래 동대신동 서여고 자리에 있었으나 열사가 졸업한 지 3년 후인 1983년 장림으로 이전하였다.[3] [함께 쓰는 화두-'한국불교'] ② 1987년 박종철 열사와 불교. 부모님도 독실한 불교 신자다.[4] 1928년 12월 ~ 2018년 7월 28일 (향년 89세)[5] 1933년 ~ (91세).[6] 이 말은 6월 민주 항쟁 시위단의 플래카드에도 쓰였다.[7]부산영남중학교[8] 이 대사는 영화 1987에서 박처원 처장을 맡은 김윤석이 했는데 김윤석은 "내가 이 대사를 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박종철 열사의 혜광고등학교 2년 후배이며 1987년 당시 실제 대학생으로서 이 얼토당토않은 변명거리가 신문지 헤드라인으로 도배된 걸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대기 때문이다.[9]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민주열사들의 묘들이 있는 곳이다. 전태일, 조영래의 묘지도 이곳에 있다.[10] 속세의 불자들이 사망했을 때 스님들이 장례를 주도하는 일이라던지, 조문하고 경을 외우는 일이 드물긴 하지만 은사스님의 영향력이 큰 청년 불자거나 속세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경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22:00:59에 나무위키 박종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