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덤프버전 :

분류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2016년에 제작된 반야심경 리믹스 버전 동영상에 대한 내용은 반야심경 리믹스 문서
반야심경 리믹스번 문단을
반야심경 리믹스#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한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반야심경
한자


산스크리트어
데바나가리 문자
भगवतीप्रज्ञापारमिताहृदयसूत्र
음역
바가와띠 쁘라갸빠라미따 흐리다야 수뜨라[1]
영어
Heart Sūtra
티베트어
བཅོམ་ལྡན་འདས་མ་ཤེས་རབ་ཀྱི་ཕ་རོལ་ཏུ་ཕྱིན་པའི་སྙིང་པོ
음역
쫌덴데마 쎼랍기 파롤뚜친빼 닝뽀[2]

1. 개요
2. 특징
3. 반야심경 본문 및 해석
3.1. 오역?
4. 다른 동영상
4.1. 커버
5.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반야심경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대한불교조계종 공식 한국어 반야심경



송광사의 반야심경.[3]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이다. 그 위상은 그리스도교사도신경과 같다.


2. 특징[편집]


6백 권이나 되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을 한문으로 260자도 안 되게 짧게 요약하여 대승 불교의 깊은 진리를 함축했다는 경전이다. 동아시아에 한문으로 번역하여 전래한 사람은 당나라 현장 법사. 서유기에서 삼장법사(=현장)가 고향을 그리워한다거나 앞길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심란해하면 손오공"스승님, 또 반야심경의 깊은 뜻을 잊으셨군요."라고 태클거는 장면이 제법 많이 나온다. 서유기에서는 저팔계가 삼장법사의 제자로 들어온 뒤 오소선사라는 인물이 대단하다며 추천하였고, 심경은 이 오소선사가 삼장법사를 만나서 전수한 것으로 나온다.

원래 현장 이전에도 반야심경이라는 불경 자체는 '마하반야바라밀다명주경'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알려졌다. 번역자는 현장 (649년 번역본)과 함께 불경 번역의 거두로 꼽히는 412년 쿠마라지바 번역본.(출처: 대한불교청년회 게시판동국역경원 불교사전) 다만 요새는원래부터, 한중일 두루두루 현장의 번역이 더 많이 유명하다.인기가 많다는 뜻 후술하겠지만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정한 반야심경 한국어 표준번역도 현장이 한역한 반야심경을 기준으로 한다.

원래 반야심경도 다른 경전과 마찬가지로 석가모니가 반야심경의 내용을 설한 계기, 장소, 설해진 후의 결과 등이 다 쓰인 광본(廣本)[4]이 있으나 보통 핵심부분만 독송한다. 한국 천주교에서 미사 때마다 신앙고백문으로 (길고 복잡한)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대신 (쉽고 짧은)사도신경으로 대체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짧은 버전(현장역본:사도신경)의 신앙고백문이 긴 버전(광본: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보다 판본이 오래되어 보인다는 문헌학계의 컨센서스도 주목할만한 유사점.

사실 이쯤 되면 광본 기준으로도 3쪽 밖에 안 되는 내용을 600권으로 늘린 분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티베트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광본을 독송한다. 이 산스크리트어 광본을 두고, 소품반야경과 대품반야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창작된 광본을 현장, 또는 누군가가 산스크리트로 역번역(back-translation)했다고 보는 불교학자(대표적으로 Jan Nattier)들도 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쓰는 관용구에 맞지 않는 표현이나, 중국식 언어습관이 섞인 산스크리트어 조어가 광본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라고. 현재로서 반야심경 위경 논란은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서 결론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산스크리트 원본이 있었다 하더라도 각 번역자의 선택에 따라 번역본 혹은 음역본이 일부 축약/편집되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의견이 많다. 참고로 학계에선 현장과 쿠마라지바 둘 다 짧은 판본만 건드렸지 광본을 번역한 흔적을 찾지 못했으며, 광본의 대표 역자로는 저 두 사람이 아닌 법월法月(739년역), 반야般若/리언利言(790년역, 위의 동국대 한글대장경 링크도 반야/리언 판본의 한글 번역이다.), 법성法成(856년역), 지혜륜智慧輪(860년역), 시호施護(980년역) 등이 있다. 소본의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트 사본은 일본 법륭사(法隆寺)에 패엽본으로 소장하고 있고, 광본의 산스크리트 사본은 일본 나라 하세데라(奈良 長谷寺)가 소장하였다.

짧으면서 의미가 깊기 때문에 대승 불교 의식에서 매우 자주 독송하고, 우리나라 불교계도 역시 거의 모든 법회의식에서 독송한다. 그리스도교와 비교한다면 주기도문/주님의 기도사도신경, 이슬람에서는 알 파티하(개경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반야심경을 동아시아 불교계에 이처럼 널리 퍼트린 사람 또한 바로 당나라 현장 법사.

대승 불교의 '공 사상'을 설명하는데, 이를 터득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평생 반야심경만 독송하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불교의 주요한 키워드이므로 불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졌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이 널리 알려진 경구이다. 재미있는 점은, '공 사상의 측면에서 보면'이라는 전제 하에 초기불교의 교리가 깡그리 부정되는 듯하다는 것이다. 순서대로, 초기불교에서 무아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오온과 육입처, 육경, 육식은 물론, 순관과 역관을 포함한 12연기의 제1항부터 제12항, 사성제가 깡그리 모두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없다'고 하는 것은 진짜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자성(自性, 고정불변하는 실체, 혹은 본성)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공 사상 문서로. 성경의 전도서에서 지혜자와 우매자의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언제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스리랑카 출신 승려가 일본에서 반야심경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고 책을 내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대충 요지는 '색즉시공은 불교의 교리에 부합하고 철학적으로 보아도 논리가 맞지만, 공즉시색은 말이 안 된다. 공즉시색은 틀렸다.'는 것. 이는 상좌부 불교의 관점 때문인데, 상좌부에서는 공(空), 즉 무아(無我)인 것은 물질, 마음, 마음부수, 닙바나로 실제로 있는 것 네 가지 전부이며, 그러므로 공은 물질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는 '모든 가로수는 나무이다'와 '모든 나무는 가로수이다' 두 가지 명제의 참/거짓 여부와도 비슷하다. 반면 대승 불교에서는 공(空)뿐 아니라 유식(唯識)을 함께 고려해서 논리를 전개한다. '색즉시공'은 공으로 해석가능하고, '공즉시색'은 유식으로 해석가능하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이 '색즉시공'이고, 그러한 하나를 모든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이 '공즉시색'. 따라서 '하나의 빛이 온 세상을 장엄하게 비춘다'는 화엄(華嚴)의 사상은 '공즉시색'의 유식론에 기반을 둔 논리인 것이다.

2011년 9월 20일 대한불교 조계종 187회 중앙총회에서 종단표준의례 한글반야심경[5] 동의안을 가결하였으며, 10월 5일 공포되었다. 이하 본문의 한국어 부분은 조계종 표준 한글반야심경을 인용한 것이다.


3. 반야심경 본문 및 해석[편집]


摩訶(마하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일체를 초월하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가장 핵심되는 부처님의 말씀.
((([ruby(菩薩,ruby=보살)] ((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 [ruby(五蘊,ruby=오온)](( (一切(일체((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6]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7][8]
舍利(사리[ruby(子,ruby=자)] (((( (((( ((([ruby(空,ruby=공)] (((( (((( ((((
사리자여! 색[9]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10],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11]도 그러하니라.
舍利(사리( ((((( (((( (((( ((((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형태는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 (((( (((((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도 없으며,
((((((( ((((((( ((( ((((((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12]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13]도, 법[14]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15]
((( ((((( (( ((( (((((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16]
(((([ruby(道,ruby=도)] (((((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 [ruby(菩提薩埵,ruby=보리살타)] (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 (((( (((( (((((( (([ruby(涅槃,ruby=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17]
(((( (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느니라.
(( 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 (((( (((( ((((( ((一切(일체( ((((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 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揭諦(아제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揭諦(바라승아제 菩提(모지 娑婆訶(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18]
揭諦(아제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揭諦(바라승아제 菩提(모지 娑婆訶(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19]
揭諦(아제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揭諦(바라승아제 菩提(모지 娑婆訶(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20]


【 산스크리트어 원문 펼치기 · 접기 】
(퍼온것으로 정확하지 않다!)
प्रज्ञापारमिताहृदयसूत्रं
prajñāpāramitā-hṛdaya-sūtraṃ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일체를 초월하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가장 핵심되는 부처님의 말씀
आर्यावलोकितेश्वरो बोधिसत्त्वो गंभीरायां प्रज्ञापारमितायां चर्यां चरमाणो
ārya avalokiteśvaro bodhisattvo gaṃbhīrāyāṃ prajñāpāramitāyāṃ caryāṃ caramāṇo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व्यवलोकयति स्म पंचस्कन्धाः तांश्च स्वभावशून्यान्पश्यति स्म
vyavalokayati sma pañca-skandhāḥ tāṃśca svabhāva-śūnyān paśyati sma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
इह शारिपुत्र रूपं शून्यता शून्यतैव रूपं रूपान्न पृथक्शून्यता शून्यताया न पृथग्रूपं
iha śāriputra rūpaṃ śūnyatā śūnyatā-eva rūpaṃ rūpān-na pṛthak śūnyatā śūnyatāyā na pṛthag rūpaṃ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यद्रूपं सा शून्यता या शून्यता तद्रूपं एवमेव वेदनासंज्ञासंस्कारविज्ञानानि
yad rūpaṃ sā śūnyatā yā śunyatā tadrūpaṃ evameva vedanā saṃjña saṃskāra vijñānāni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생각·행동·의식도 그러하니라.
इह शारिपुत्र सर्वधर्माः शून्यतालक्षणा अनुत्पन्ना अनिरुद्धा अमला न विमला नोना न परिपूर्णाः
iha śāriputra sarva-dharmāḥ śūnyatā-lakṣaṇā anutpannā aniruddhā amalā na vimalā anonā na paripūrṇāḥ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형태는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तस्माच्छारिपुत्र शून्यतायां न रूपं न वेदना न संज्ञा न संस्कारा न विज्ञानानि
tasmācchāriputra śūnyatāyāṃ na rūpaṃ na vedanā na saṃjñā na saṃskārā na vijñānāni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생각·행동·의식도 없으며,
न चश्रुःश्रोत्रघ्राणजिह्वाकायमनांसि न रूपशब्दगंधरसस्प्रष्टव्यधर्माः
na chakṣuḥ śrotra ghrāṇa jihvā kāya manāṃsi na rūpa śabda gandha rasa spraṣṭavya dharmāḥ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없으며,
न चक्षुर्धातु र्यावन्न मनोविज्ञानधातुः
na cakṣur dhātur yāvan na mano vijñāna dhātuḥ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न विद्य नाविद्य न विद्याक्षयो नाविद्याक्षयो यावन्न जरामरणं न जरामरणक्षयो
na vidyā na avidyā na vidyā-kṣayo na avidyā-kṣayo yāvan na jarā-maraṇaṃ na jarā-maraṇa-kṣayo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न दुःखसमुदयनिरोधमार्गा न ज्ञानं न प्राप्तिर्नाप्राप्तिः
na duḥkha-samudaya-nirodha-mārgā na jñānaṃ na prāptir na aprāptiḥ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तस्मादप्राप्तित्वाद्बोधिसत्त्वाणां प्रज्ञापारमितामाश्रित्य विहरत्यचित्तावरणः
tasmāda prāptitvād bodhisattvaṇāṃ prajñā-pāramitām āśritya viharatyacitta-āvaraṇaḥ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चित्तावरणनास्तित्वादत्रस्तो विपार्यासातिक्रान्तो निष्ठनिर्वाणः
citta-āvaraṇa-nāstitvād atrasto vipāryāsa-atikrānto niṣṭhā-nirvāṇaḥ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त्र्यध्वव्यवस्थिताः सर्वबुद्धाः प्रज्ञापारमितामाश्रित्यानुत्तरां सम्यक्सम्बोधिमभिसंबुद्धाः
tryadhva-vyavasthitāḥ sarva-buddhāḥ prajñāpāramitām āśritya anuttarāṃ samyak sambodhim abhisaṃbuddhāḥ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तस्माज्ज्ञातव्यं प्रज्ञापारमिता महामन्त्रो महाविद्यामन्त्रो ऽनुत्तरमन्त्रो ऽसमसममन्त्रः सर्वदुःखप्रशमनः सत्यममिथ्यत्वात्
tasmāj jñātavyaṃ prajñāpāramitā mahā-mantro mahā-vidyā-mantro 'nuttara-mantro 'samasama-mantraḥ sarva-duḥkha-praśamanaḥ satyam amithyatvāt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प्रज्ञपारमितायामुक्तो मन्त्रः तद्यथा
prajñapāramitāyām ukto mantraḥ tadyathā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गते गते पारगते पारसंगते बोधि स्वाहा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गते गते पारगते पारसंगते बोधि स्वाहा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गते गते पारगते पारसंगते बोधि स्वाहा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산스크리트어 원본 및 영어 번역본[21]


3.1. 오역?[편집]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교수는 2019년 《인도철학》(인도철학회 간행) 제54집에 발표한 <대·소본 《반야심경》의 비교를 통한 반야바라밀다주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현존하는 대·소본 반야심경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반야심경의 한역(漢譯) 과정에서 오역이 있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 교수가 오역으로 지목하는 부분이 바로 본경의 말미에 붙은 반야바라밀다에 대한 부분이다.

현재 통용되는 반야심경 번역본은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세 번 반복)


라고 하였다. 이 교수는 이 부분에서 한역 반야심경에서 '반야바라밀다 주문' 즉 '반야바라밀다'를 '주문'으로 번역한 부분 자체가 범본(산스크리트어본)을 한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역이라는 것이다. 해당 부분은 범본에는 'prajñāpāramitāyām ukto mantraḥ'로 나오는데, 이는 '반야바라밀다의 상태에서(prajñāpāramitāyām)[22] 설해진(ukto[=uktaḥ])' '만트라(mantraḥ)'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 언급되는 '반야바라밀다'가 그 자체로 주문이라는 것이 아니라 반야바라밀다라는 경지와 상태 속에서 설해진 주문으로서 그 주문의 구체적인 내용이 뒤에 언급되는 '아제아제…사바하'라는 것이다. 대다수 한역자가 잘못 이해했거나 구마라집이나 현장 번역을 그대로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 교수의 주장을 따라 해당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그러므로 알아야 할지니 반야바라밀다의 대주(大呪), 대명주(大明呪), 무등등주(無等等呪)는 일체의 고통을 없애는 주이며, 진실이며 허망하지 않은 까닭에 반야바라밀다에서 그 주가 설해졌으니, 바로 이것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세 번 반복)


또한 이 교수는 반야바라밀다주에 해당하는 유명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주문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당 부분의 산스크리트어 본문은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ṁgate bodhi svāhā'이며, 이 부분도 현행 번역본처럼 '가자 가자 넘어가자, 모두 넘어가서 깨달음을 이루자.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보다 '가신 분이여, 가신 분이여, 피안에 가신 분이여, 피안에 온전히 가신 분이여, 깨달음이여, 행운이 있으라.'로 번역할 수 있다. gate는 '갔을 때', '간 사람', '넘어간'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영어로 치면 gone에 대응한다. 이는 반야바라밀다 즉 제법공상(諸法空相)을 통찰하는 지혜의 경지를 얻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 내지는 찬양을 위한 캐치프레이즈 성격이 짙은 구절이라는 것이다. ##


4. 다른 동영상[편집]


산스크리트로 부른 것


4.1. 커버[편집]



해당 커버에 대해 한국 기준 2000년대만 해도 경전을 리믹스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23] 하지만 실제 불교계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서는 이러한 작품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다. 고려 광종 시기 때 균여보현십원가[24]와 같은 향가의 형태로 만들어 포교했던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는 만큼[25] 상당히 유서깊은 방식이라 호의적일 수밖에 없다.


5.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반야심경[편집]


  • 달마야, 서울가자: 배우 유해진이 반야심경을 코믹하게 개사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유명하다. 영상
  • 명량: 이순신(최민식 분)이 자신의 장검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 자리 뒤편의 병풍에 반야심경이 적혀 있다. 영상. 이순신 본인이 불교 신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뜬금 없는 부분. 한편으론 실제 역사에서 이순신 휘하에서 활약한 자운, 옥형 등의 의승수군 소속 승병들이 이순신 사후 그를 위해 재를 올렸으며, 영화에서도 혜희 등 승병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다.
이 장면은 감독의 종교(불교)가 반영된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한민 감독은 법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려면 불가에서 이야기하듯 아상(我相)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견(正見)을 가져야 하고, 정견은 세상이 끝없이 변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 즉 삼법인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시작된다. 삼법인에 대해 바르게 인식한다면 정견을 통한 자기극복도 가능하다. 정견을 통해서만 자기 아상을 극복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이순신은 불교적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특히 그가 공직에 나선 이후 보여준 삶의 모습과 생사관에 대한 인식은 그가 분명 자신의 아상을 극복한 인물임을 보여준다."라고 평하였다. 기사
명량이 어느 정도 참조했음직한 김훈칼의 노래[26]의 경우 허무주의라고까지 해석되지만 동시에 "삶의 조건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현실을 적극 비판하고 부정한다는 점에서 체념적 허무주의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오온이 모두 공(空)"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그저 세상의 만사가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무 속에서도 긍정과 희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로써 해석되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모두가 포기한 전쟁, 두려움에 맞서는 자, 역사를 바꿀 것이다)와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부분도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1] 로마자 표기는 Bhagavatī prajñāpāramitā hṛdaya Sūtra[2] 와일리식 로마자 전사로는 bcom ldan 'das ma shes rab kyi pha rol tu phyin pa'i snying po이다. '모든 박가범(붓다)의 어머니가 되는 반야바라밀의 정수'라는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붓다는 석가모니 부처 한 사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붓다가 아니라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진리'를 인식하는 깨달음의 지혜를 얻은 모든 이들''' 즉 넓은 의미의 붓다를 가리킨다. 티베트어 한글표기안을 따름.[3] 불교에서도 이나 지방마다 음이나 속도가 조금씩 다른데 가장 빠르기로 유명한 곳이 송광사해인사. 실제 송광사 예불에서는 더 빠르다. 그래서 지방의 불자가 서울에 와서 반야심경을 봉독할 때 가끔 삑사리 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한 2022년 현재, 송광사 유튜브 채널의 예불영상들을 보면 녹음 당시와는 달리 반야바라밀다주 부분을 공식 번역에서의 한자 음역이 아닌 원어에 가까운 발음을 사용한다.[4] 풀버전. 분량은 현장역본의 약 두배 정도가 된다. 반대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현장역본을 학계에서 (대조의 의미를 담아) 소본小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5] 조계종 측에서 이렇게 발표했는데, 개념적으로는 한국어(국어, 국문) 반야심경이라고 해야 옳다.[6] '5가지 쌓임'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색ㆍ수ㆍ상ㆍ행ㆍ식, 즉 물질ㆍ감수작용ㆍ지각작용ㆍ의지작용ㆍ인식작용을 말한다. 쉽게는 존재하는 모든 실체, 감각과 생각과 행함과 의식이라 하기도 한다.[7] 불교의 근본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오온은 물질ㆍ감각ㆍ지각ㆍ행동ㆍ의지를 뜻하는데, 부처의 모든 가르침은 이것을 전제하고 근거해서 모든 개념을 설명한다. 즉 초자연적 존재와 초능력, 기적 등을 근거하지 않는다.[8] 이전 한글 반야심경에는 "온갖 고통에서 건지느니라."라고 했는데 오역이다. ‘度’는 ‘건너다(渡)’는 뜻으로,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온갖 고통을 초월하다.’는 뜻으로 풀어야 한다. # 이는 라는 한자가 불교에서 '(부처나 보살이) 지옥도나 아귀도 등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건진다'거나, 기도 혹은 천도재를 통해 이런 중생들을 천도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된 적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 오역이다. 혹은 관세음보살이 지닌 '구원자'의 이미지로부터 비롯된 오역일 수도 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배가 뒤집혀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읊는다면 죽음을 피할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의 영향으로 관세음보살이 해상무역을 하던 상인들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역사도 있으니만큼. 이런 이유로 바닷가에 세워둔 관세음보살상을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 부른다.[9] 여기서의 색(rupa)이 말하는 건 물질을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 비어있다는 뜻의 공과 일반적인 의미에서 대립하는 개념이라 생각하면 된다.[10] 산스크리트 원본에서는 '색과 구별되는 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공과 구별되는 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11] 산스크리트 원문에서는 '외부 자극을 받아들임', '대상에 대한 분석적 앎', '습관과 지어가는 행위에 의해 길들여지거나 훈습되는 것', '판단력 혹은 식별력'에 각각 해당한다.[12] 산스크리트 원문에서는 이 부분이 '접촉'에 해당한다.[13] 산스크리트 원문에 따르면 '인식 대상'에 해당한다.[14] '오근의 인식을 종합하는' 기관이나 기능에 해당한다.[15] 6근과 6식(이를 합쳐서 12처라고 한다.), 그리고 6계, 즉 안식계, 이식계, 비식계, 설식계, 신식계, 의식계가 모두 없다는 뜻. 이를 모두 합치면 18계가 된다.[16] 12연기, 즉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모두 없다는 뜻.[17] '괘애'를 '가애'로 읽는 경우도 많다. 한자사전에는 '罣'를 '괘'로만 표기한다 되어있으나, 예로부터 '가' 발음이 굳어져 전해진 것으로 본다.이는 불교식 한자발음인 '가애'로 하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찰과 불자들은 '가애'로 발음한다.[18] 이 부분은 범어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으로, 우리말로 원어에 가깝게 새기자면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쓰와하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산스크리트어를 해석하자면 '가자 가자, 피안(彼岸; 저 '언덕')으로 가자, 피안으로 (완전히) 넘어가자, 영원한 깨달음이여.' 여기서 넘어간다는 비유는, 앞서 서술된 '일체고액'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건넌다는 뜻이다. 최근의 해석 중에서는 '가떼'를 계, '빠라가떼'를 정, '빠라상가떼'를 혜, '보디'를 해탈, '쓰와하'를 해탈지견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19] 저 '가떼' 부분은 동사 gam(가다)의 피동분사이기 때문에, 원문 기준으로 보면 청유형으로 직역되지는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설명 참조.[20] 조계종 표준 한글반야심경은 관례에 따라 진언은 번역하지 않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하는 한문 음사로 되어 있다. 참고로 菩提의 실제 한자 발음은 보제이며, 불교 용어라면 보리라고 읽어야 하나, 반야심경에서 이 구절 한정으로 모지라고 읽는다.[21] 데바나가리 문자가 아닌 IAST식 로마자 전사로 되어 있다. 참고로 pdf 파일이다.[22] 'prajñāpāramitā'는 -a 계열 여성명사이며, 이 부류에서 -yām은 처격(locative) 어미를 나타낸다.[23] 꼭 경전 내용을 리믹스하는 것뿐 아니라 리믹스나 합성물에 종교적인 내용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꽤 많다. 하지만 의외로 종교계에서는 이러한 것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라는 게 킬포.[24] 균여전, 삼국유사에 일부 전해짐.[25] 문자가 없거나 있어도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교육이 상당히 제한돼 문해율이 낮은 사회에서 종교를 전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는 직접 눈으로 보는 성상이나 성화, 그리고 말로 직접 전파되는 노래가 될 수 밖에 없다. 그 중 노래는 암송에 매우 효과적이라 특히 많은 종교에서 애용된 매개체이다. 이는 불교 뿐만이 아닌 기독교 찬송가 등 타 종교에서도 오랫동안 사용돼 온 방식이다.[26] 영화에서 이순신이 명량 해전이 끝난 뒤에 "배를 돌리거라. 마침 물살도 돌아섰으니."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미 칼의 노래에서도 똑같이 나온 대사로 명량 해전 이후 이순신이 "돌아가자. 마침 물길이 돌아섰으니."라고 군관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칼의 노래라는 작품이 이순신 관련 작품들 가운데서 갖는 영향력이나 위치를 생각하면 감독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86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86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30 00:47:47에 나무위키 반야심경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