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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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Balkan Peninsula




파일:발칸 반도 위치.jpg
파일:발칸 반도 위치 파란색.png
파일:발칸 반도 지형.jpg

Balkan Peninsula

1. 개요
2. 명칭
3. 국가
4. 기후
5. 역사
5.1. 고대
5.2. 중세
5.2.2. 십자군 전쟁
5.2.3. 오스만 제국
5.2.4. 동로마 제국의 멸망(1453)
5.3. 근세
5.3.1. 종교, 통치제도: 밀레트 제도
5.4. 근현대
5.4.1. 내셔널리즘: 독립
5.4.2. 세계대전
5.4.3. 공산화: 냉전
5.4.4. 내셔널리즘: 유고내전
5.6. 현대
6. 종교
7. 경제
8. 창작물



1. 개요[편집]


조밀한 산지와 온화한 기후가 특징인 유럽 남동부, 또는 남유럽 동부의 지중해(아드리아해에게 해)와 흑해와 면한 사다리꼴 형태의 지역이자 고대의 로마 제국 시절부터 현대의 코소보 내전까지 이어진 강대국들의 전장이다.

반 정도는 남유럽의 한 부분이고 나머지 반은 중부유럽동유럽의 한 부분이다. 다만 애초에 이곳은 발칸 반도로 따로 부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유럽의 어디에 속하냐가 큰 의미는 없다.[1]

엄밀하게 따지면 반도라기보다 대륙의 한 귀퉁이에 가깝지만 반도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어 있다. 사실 반도라면 반도이기도 하다.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일부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스 문명이 탄생한 오늘날 현대문명의 요람이자, 시대까지는 로마 제국, 근세에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며 두 제국을 지탱해온 번영했던 땅이였다.

하지만 현재는 별로 영예롭지 못한 "유럽의 화약고"라는 이명으로 통한다. '서로 적대하는 작은 세력으로 분열시키다'라는 뜻의 단어인 발칸화(Balkanize) 또는 Balkanization의 어원이다.


2. 명칭[편집]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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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발칸 반도
일본어
バルカン半島(はんとう
중국어
巴尔干半岛 (간체자)
巴爾幹半島 (정체자)
영어
Balkan Peninsula
프랑스어
Péninsule des Balkans
독일어
Balkanhalbinsel
이탈리아어
Penisola Balcanica
러시아어
Балкан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그리스어
Βαλκανική Χερσόνησος
튀르키예어
Balkan Yarımadası
우크라이나어
Балканський Півострів
루신어
Балканскый Полуостров
헝가리어
Balkán-félsziget
루마니아어
Peninsula Balcanică
불가리아어
Балкански Полуостров
마케도니아어
알바니아어
Gadishulli Ballkanik
세르비아어
Балканско Полуострво
보스니아어
Balkansko Poluostrvo
크로아티아어
Balkanski Poluotok
슬로베니아어
Balkanski Polotok

명칭은 튀르키예어로 '거칠고 숲이 많은 산악지대'를 뜻하는 발칸에서 비롯되었다. 위의 지형도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부분이 산악지역이다. 원래는 반도 북동부의 한 산맥을 지칭했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 이후 반도 전체를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 튀르키예어에서 그 단어는 사어가 되었기에 오늘날에는 발칸반도만을 의미한다. 그래서 발칸산맥, 발칸 국가(민족)들, 발칸반도라고 말할 때는 Balkan dağlar, Balkanlar, Balkan Yarımadası 식으로 쓴다.

그러나 발칸이란 지명은 튀르키예를 제외한 해당 지역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는 표현이다. 어원이 튀르키예에서 왔는데 이 지역이 튀르키예에 종속당했다는 것(혹은 종속 당하지 않았는데도 튀르키예식 명칭으로 불린다는 것)은 지우고 싶은 역사이다. 오랫동안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그리스도교권이던 지역이었지만, 1453년 오스만 제국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자 오스만의 영토가 되어 발칸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2]

발칸이란 단어 자체는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야 등장한 단어로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의 이름 하이모스에서 유래된 '하이모니아' 반도(Χερσόνησος τοῦ Αἵμου)라고 불렸다. 15세기에 이 지역을 장악한 오스만 제국은 로마의 땅이란 뜻인 '루멜리(아)'(روم ايلى, Rūm-ėli(a))란 표현을, 서유럽에선 각각의 지방인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다키아, 에피루스, 모이시아, 달마티아, 일리리아 등의 고대 명칭들 혹은 '유럽의 터키(Turkey in Europe)'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발칸'이라는 단어는 불가리아를 가로지르는 산맥인 발칸산맥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 이 산맥의 이름은 하이모스산맥이다. 훗날 불가리아를 정복한 오스만 제국이 '숲이 울창하다.'는 뜻에서 '발칸'이라는 이름을 이 산맥에다 붙이면서 발칸산맥이라는 이름이 확정되었다.

발칸산맥은 고대부터 이베리아피레네산맥처럼 발칸반도와 다른 유럽을 구분하는 자연경계로 인식되었고 그 의미가 확장되어 발칸산맥을 넘어야 나오는 지역 전체를 '발칸'이라고 불렀다. 발칸반도라는 단어는 19세기까지만 해도 굉장히 희귀한 표현이었으나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쇠락한 오스만 제국이 이 반도에서 내쫓기고 새로 등장한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국가들이 각축을 벌이자 '발칸반도'란 용어도 보편화되었다. 그리고 그 발칸이란 이름에는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가 있었다. 서유럽인들은 발칸반도를 사실상 동로마가 멸망하고 오스만의 영토가 되고 나선 야만적인 유럽 내지는 아시아라고 경멸했고, 그곳을 시간이 멈춰서 성 바울로 시대로부터 진보되지 않은 곳이라고 폄하했다. 발칸반도의 인식은 후진적 무법지대 정도였고 발칸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내전, 학살, 암살, 정쟁은 그런 인식을 확고히 만들었다. 이 지역이 번성했을 때는 발칸이라고 불리지 않다가, 상황이 나빠진 이후부터 발칸반도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흡사하게 오래도록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따르던 조선이 17세기에 명나라가 무너지고 중국 대륙이 만주족 청나라의 지배하에 들자 대륙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놓고 보면 인식할수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보스니아 지방은 '아시아'라고 불리며 차별을 받았다. 이 때문에 보스니아 서북쪽에 있고 구 오-헝 제국의 영토이기도 했으며 카톨릭이라서 이탈리아와도 여러 모로 가까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서유럽 내지는 중앙유럽에 발을 걸치려고 하며 종종 다른 발칸 국가들과 엮이는 걸 영 싫어할 때가 있기도 하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무슬림 비중이 높고, 하도 주변 지역 맹주급 두 국가(크로아티아 - 세르비아)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고생을 많이 했던 지역이라 내셔널리즘이 좀 덜하지만, 세르비아의 경우 동로마제국의 정교회 문명의 보루라는 자부심이 있으며, 언어가 같음에도 사용하는 문자(키릴 문자)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크로아티아와 구별된다.[3] 여하간 발칸반도란 말은 이 지역에서 좋아하지 않는다.

오스만 제국에게 오래 지배당한 그리스도 발칸반도라는 표현을 영 좋아하지 않고 헬라스반도라는 이름을 밀고 불가리아와 알바니아 역시 발칸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유럽 연합 등에서는 발칸반도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고 '남동유럽(Southeastern Europe)'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중립적인 표현을 쓰기로 한 것.[4]

3. 국가[편집]


전체 면적은 50만 5000 ㎢로, 프랑스우크라이나 1개국 면적보다도 작은 지역이지만 수많은 국가들이 속해있기에 지도는 대단히 복잡하다. 발칸반도에 속한 국가는 10개국이나 된다. 몰도바터키(보스포루스 해협 서쪽 유럽 지역 한정)가 포함되기도 하며, 발칸반도를 최대로 확장하면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슬로베니아 국경 근처에 위치) 지역까지 발칸반도에 포함된다. 지형도를 참고하자.


그리스, 불가리아,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해당하며, 루마니아도 동남부 흑해에 닿아 있는 도브루자(Dobruja) 지방을 통해 발칸반도에 한 다리 걸쳤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의 5국이 이 지역과 국경을 맞대었다. 바다로는 지중해, 흑해, 에게해, 아드리아해, 크레타 해에 면한다.

소차(Soca)강[5], 비파바 계곡, 크르카, 사바(Sava)[6], 다뉴브 강(도나우 강) 등의 수많은 산맥과 강이 대륙과 발칸을 구별지으며 지역 내에서 경계선 노릇을 하고, 내륙은 건조하며 척박하다. 민족적으로는 그리스인, 알바니아인, 슬라브인, 라틴인, 투르크인 등 여러 민족, 그리고 그 혼혈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각 국가의 민족성은 민족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두드러졌다.

4. 기후[편집]


해안 지역들은 대체로 지중해성 기후를 띄나, 내륙은 한겨울 외에 4~6월에도 폭우가 자주 쏟아지므로(출처)[7] 1년 내내 강수량이 균등한 편이다.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포함한 고산지대는 냉대 습윤 기후를 띄기도 한다.

아드리아해를 접한 해안가는 보라 현상(Bora wind)으로 유명하다. 디나르 알프스 지역에서 바닷가 쪽으로 부는 매우 강한 활강풍으로 프랑스 남부의 미스트랄과 유사하다.


5. 역사[편집]




5.1. 고대[편집]


남쪽의 고대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가장 일찍 문명이 만개한 땅이기도 하다. 당시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발칸반도 남쪽에 자리잡아 왕성한 교역과 문화 전파를 벌였고, 바다 건너 이탈리아반도아나톨리아, 심지어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식민지를 수립하기도 했다. 동쪽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침공을 겪기도 했지만 트라키아를 비롯한 일부 제역을 제외하곤 잘 버텨냈다.

그러나 필리포스 2세마케도니아군이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정복하면서부터는 역사의 전면에서 뒤로 물러선다. 기원전 168년 로마에게 점령당한 이후로는 제국의 변방이 되었고, 로마의 동서 분할통치로, 동로마 지역의 서쪽 중심지가 되었지만 많은 고난을 겪었다.

5.2. 중세[편집]


6~8세기 경 북쪽에서 슬라브 인들이 남하하여 발칸 반도에 대한 동로마 제국의 지배권이 위협받은 적도 있었다.


5.2.1. 불가리아 제국[편집]


한편, 불가리아 왕국이 성립되고 난 후 9세기 초에는 동로마 제국 황제 니케포루스 1세가 이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여 그의 두개골이 은을 입힌 술잔으로 만들어진 적도 있었다. 불가리아 군주는 이로 인하여 한풀 꺾인 제국으로부터 바실레우스(황제)라는 칭호를 인정받아 서로마의 카롤루스 대제 다음으로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황제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수도 오흐리드는 총대주교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다만 동로마가 바실레우스란 호칭을 인정한 대상은 니케포루스 1세를 패사시킨 불가리아의 칸 크룸이 아니라, 10세기 불가리아의 차르인 시메온이었다.

불가리아 제1제국의 위세는 10세기 초에 절정에 이르러 발칸반도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요안니스 1세바실리오스 2세의 잇따른 출현은 불가리아 제국에게 재앙이었고, 특히 바실리오스 2세는 아예 불가리아 군대를 학살하고 제국을 완전히 병탄하여(항목 참조) 멸망시키고, 오흐리드 총대주교구는 대주교구로 격하되게 된다. 이후 제국이 쇠락하는 와중에도 동방에 비하면 발칸반도를 비롯한 서부의 피해는 비교적 적었다.


5.2.2. 십자군 전쟁[편집]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동쪽과 북쪽뿐만 아니라 서쪽에서 온 유럽의 가톨릭 교도들에까지 시달리며 완벽한 각축장이 되었다. 1180년 마누일 1세가 죽고 그의 어린 아들 알렉시오스 2세와 모후 안티오키아의 마리아가 제국민의 반발을 사자, 숙부 안드로니코스 1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제위를 찬탈하고 공포정치를 실시하여 제국이 분열되기 시작했을 때 극심해져 불가리아 제2제국이 부활하기에 이르렀다. 4차 십자군 때에는 그나마 제국령으로 귀속되어 있던 발칸반도의 대부분이 아예 라틴 제국의 봉건 영지, 로마계군주국과 독립령, 베네치아령으로 갈가리 찢어졌다. 13세기 중반 니케아 제국라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고 난 후에도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이후 스테판 두샨 치하에서 세르비아 제국이 흥기하여 발칸반도는 동로마, 불가리아, 세르비아 및 십자군 국가 간에 수라장이 벌어졌다. 그때를 틈타서 소아시아에서 발흥한 오스만 제국이 발칸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5.2.3. 오스만 제국[편집]


14세기부터 강성해진 오스만 제국은 1366년 불가리아를 집어삼키고 1389년에는 코소보 전투를 통해 반도 서부에 위치한 세르비아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입히면서 발칸반도의 패권을 장악한다. 불가리아와 세르비아가 패망한 후로는 발칸반도는 잔존 라틴 군소 영주령과 동로마 황실의 종친들이 다스리는 몇몇 군주국, 베네치아 인들이 접수한 무역 거점들과 황제의 통치력이 미치는 펠로폰네소스 남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발칸반도 전역이 오스만 제국령으로 문제 없이 편입, 동로마는 사방이 이슬람 세력으로 고립되고 말았다.


5.2.4. 동로마 제국의 멸망(1453)[편집]


그러다 1453년 메흐메트 2세에게 끝내 버티던 동로마까지 멸망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그리스도교 계통 발칸 군소 국가군이 쓸려나갔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동로마의 종친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와 토마스 팔레올로고스(마지막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형제들) 형제는 끝까지 반목하다 오스만 술탄 메흐메트 2세에게 멸망하였다. 그로 인하여 달마티아 등 일부 베네치아 령과 매우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한 몬테네그로 주교국을 제외한 발칸 반도 전역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5.3. 근세[편집]



5.3.1. 종교, 통치제도: 밀레트 제도[편집]


오스만 제국은 제국 내 종교에 대해 밀레트(Millet)라는 특유의 종교 공동체를 조직하여 자체적으로 관리하게 만드는 등 비교적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푼 편이어서, 발칸반도의 대부분 주민들은 룸 밀레트(Millet-i-Rûm) 소속 하에 로마 이래로 꾸준히 동방정교 신앙을 지켰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의 종교의 자유 같은 개인의 권리라 그랬던 것은 아니고, 이교도에 세금을 걷어 재정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또 동방정교를 믿는 것은 허락되었으나 많은 차별과 압제, 탄압이 있었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당연히 동방정교 신자보다 우대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알바니아보슈냐크인, 포마크인이 이슬람화되었고, 오스만 제국의 핵심 전력인 예니체리들은 초기에는 발칸반도의 동방정교를 믿는 주민들 중에서 징발되었다.

토착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하고 차별한 것과는 별개로, 오스만 제국의 국가 운영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동로마 제국의 체제를 흡수한 부분이 많았다. 15~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국운상승도 동로마가 망한 이후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종교는 달라도 어쨌든 지정학적 안정성과 치안을 위해 오스만 제국과 타협하고 신속하게 재정착하면서 세수가 확보되었던 점이 컸다.

오스만은 자신들이 정복한 발칸반도 지역을 루멜리(روم ايلى, Rūm-ėli)라고 불렀다. 해석을 하자면 로마인들의 땅. 오스만이 루멜리 전역을 평정하면서 루멜리는 수도 코스탄티니예 그 자체와 일대의 부르사, 이즈미르 같은 서부 아나톨리아의 도시들과 연계되어 오스만 제국의 국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하는 핵심 지방이 되어, 셀라니크[8], 벨그라드[9], 소피아, 이슈코드라[10], 마나스트르[11], 위스퀴프[12], 사라이보스나[13] 같은 많은 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안정적인 번영을 누렸다. 이 중에서 훗날 독립국가의 수도가 된 도시만 해도 4곳이다. 그나마 베오그라드나 소피아는 오스만 제국 이전에도 비록 한미한 지방이어도 나름대로 역사가 있었지만, '사라이보스나', '위스퀴프' 같은 곳은 오스만 시절 이전에는 그냥 시골 마을이었다. 민족주의적 감정은 별개로 훗날 발칸 독립 민족 국가들 또한 오스만 제국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시절만 해도, 현대 발칸반도에 멍에를 지운 경제적 후진성, 정치적 불안정, 고질적인 저개발과 가난 같은 문제는 전혀 다른 동네 문제로 보였다. 물론 오스만 제국이 전성기를 맞아 영화를 누리던 시절에도, 라이벌 합스부르크 제국 영토인 크로아티아와 접경한 지대나 산이 많은 발칸에서도 가장 험준한 산지인 몬테네그로 지방은 오스만의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아 굉장히 불안정했다.

5.4. 근현대[편집]



5.4.1. 내셔널리즘: 독립[편집]


이렇게 4세기가량을 지내다 오스만 제국의 국력이 쇠퇴하고 내셔널리즘이 유럽을 휩쓸면서 남쪽의 그리스부터 국민국가 독립을 시작했다. 이 틈을 노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러시아 제국이 얼씬대기도 했으나, 꾸준히 독립이 이루어지는 한편 발칸 전쟁을 통해 반도 내의 질서도 재편되었다. 발칸 전쟁이 끝나면서는 이스탄불을 제외한 발칸반도 전역이 독립된 국민국가로 들어찬다.

5.4.2. 세계대전[편집]


제1차 세계대전으로 발칸반도는 다시 한번 배틀필드가 열렸다. 세르비아의 가브릴로 프린치프라는 극단주의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암살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1차대전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 왕국은 오스트리아와 전쟁에서는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선전했으나 불가리아가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오스트리아와 불가리아가 세르비아를 협공하면서, 세르비아는 순식간에 멸망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몬테네그로까지 점령하였다. 이후 오스트리아와 불가리아는 루마니아까지 침공하여 배틀필드를 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북마케도니아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통합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자, 그리스는 이틈에 동서트라키아를 얻고 내친김에 아나톨리아도 점령하려다가 아타튀르크에게 패배하여 기존에 획득한 이즈미르 지역까지 잃고 축출되었다. 알바니아 왕국오스만 제국에서 완전히 독립했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베니토 무솔리니한테 점령당해 이탈리아 왕국식민지로 전락한다.

이후 소련과 독일이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발칸반도는 다시 시련을 겪는다. 때마침 나치 독일이 발흥하면서 그리스를 제외한 발칸 전역이 친나치 반소련 기조에 의해 추축국 편에 붙었고, 여기에 더해 독일과 동맹인 이탈리아헝가리도 발칸 반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추축국에 붙을까 저울질하며 애매하게 굴던 유고슬라비아가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에 의해 점령당하고, 땅 욕심에 눈이 먼 이탈리아 덕분에 그리스마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해 발칸반도 전체가 나치의 판도에 묶였다.

특히 루마니아크로아티아의 경우는 대놓고 나치의 앞잡이 노릇을 했으며,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이온 안토네스쿠가 주도적으로 앞잡이 짓을 했고, 크로아티아에서는 안테 파벨리치 하 나치 부역 정권인 우스타샤가 세르비아인을 대거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

한편 불가리아는 나치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끌려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에게 유리해지자 나치 독일과의 국교, 동맹 조약을 끊고 소련 등 연합국 세력과 합세하여 나치를 공격했다. 바르바로사 작전에도 싫다고 자국의 뜻을 명백히 밝혔고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한창일 때도 불가리아 외교관이 소련 정부에 우린 당신들과 싸우기 싫다고 타전을 했으며 아예 나치 독일의 인종 대량 학살 홀로코스트에도 동참하지 않으며 자국내 유대인과 집시족들을 아우슈비츠나 다하우 수용소로 보내지 않고 적극 보호했을 정도였다.[14] 여러모로 독자적인 외교 행보로 결국 독일에게 밉보인 탓에 보리스 3세도 히틀러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 유력하며, 많은 현지인들이 주둔 독일군에게 많은 모욕을 당했다. 오죽하면 전쟁 말기 독일군이 밀리고 소련군이 진격하자 수많은 불가리아의 국민들이 사람 취급도 안하는 학살자 나치보다는 그래도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이라도 시켜준 러시아가 더 낫다고 소련을 환호했다.


5.4.3. 공산화: 냉전[편집]


전쟁이 끝나고 나치 세력이 패망하자 이번엔 소련군이 들이닥쳤다. 다시 그리스제외한 발칸반도의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의 왕정이 무너지고 반강제적으로 공산화되었다. 1980년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라는 강한 구심점이 사라지고, 1980년대 말부터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내셔널리즘이 다시 대두되면서 드디어 후폭풍이 시작되었다.


5.4.4. 내셔널리즘: 유고내전[편집]


유고 내전코소보 사태의 상흔으로 발칸은 유럽의 화약고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1990년대 발칸반도는 소말리아, 르완다, 부룬디 등과 더불어 지구 그 어느 지역보다 극심한 분쟁을 겪었다.

이 전쟁통에 동원된 외부세계의 군인들이 귀국 후 두통과 불면증을 겪고, 심지어 백혈병, 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비재하자,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질환에 '발칸반도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5.5. 유럽의 화약고[편집]


상기했듯 이 지역은 그 자체에서도 각종 전쟁과 내전 등의 유혈 분쟁이 숱하게 발생했고, 크게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도화선이 될 정도로 전쟁의 위험도가 큰 곳이다. 이렇게 위험도가 큰 근본적인 이유는 발칸반도의 지정학 특성에 있다. 중부 유럽과 동유럽, 남유럽, 그리고 서아시아 문화권이 한번에 접촉할 수 있는 요충지라서 각 문화권의 열강마다 이 지역에 영향력을 투사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민족과 종교, 문화 등이 매우 복잡하게 얽혔고, 이 문제를 각 국가들이 자국을 위해 이용하면서 그 대립이 극에 달했다. 개요 항목에 나온 Balkanize 또는 Balkanization란 의미가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코소보 내전, 보스니아 전쟁, 인종 청소 등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한가득이다.


5.6. 현대[편집]


과거 유고슬라비아의 영광과 요시프 티토의 야망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서로가 반목하는 발칸반도만 남아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 동부 발칸반도 국가들과는 달리 서부 발칸반도 국가들은 유럽연합에 자격 미달로 인하여 가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크로아티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하였고, 세르비아가 유럽연합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가입후보국이다. 그 외에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코소보,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아직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못한 예비 후보국들이다.

발칸반도에 위치한 국가들은 튀르키예를 포함해서 남동유럽 협력 프로세스, 유럽 평의회에 가입돼 있다.


6. 종교[편집]


이 지역은 유럽에서 정교회권과 가톨릭권이 나뉘는 지역이며 과거 오스만 제국 영토도 있었기 때문에 이슬람화된 지역도 있어서 종교 구성이 매우 복잡하다.[15]

보이보디나 자치구에 사는 헝가리인들 중에는 가끔 개신교를 믿는 경우도 있다.(위키미디어 공용)

(통계는 하나의 통계가 아니라 산출 연도가 다른 여러 통계를 단순히 모아놓은 것이므로 참고용으로만 보자.)
국가
가톨릭
정교회
이슬람
슬로베니아
59%
7%
2%
크로아티아
87%
4%
1%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4%
31%
52%
불가리아
1%
82%
12%
세르비아
5%
85%
3%
몬테네그로
3%
72%
20%
북마케도니아
1% 미만
65%
33%
알바니아
10%
6%
56%
그리스
1% 미만
98%
1%


7. 경제[편집]




8. 창작물[편집]


울트라 시리즈에는 발탄성인이라는 이름의 우주인이 등장하는데, 그 이름 또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만화 매복병 등 여러 창작물에 '동유럽 모 국가에서 분쟁 중'이라는 설정이 나올 때는 대개 유고 내전을 모티브로 한다.

워페이스의 몇몇 맵들은 이곳이 배경이다. 정확히는 코소보 지역.

태양의 후예우르크가 발칸 반도에 있다.

요르문간드에서 코코 헥마티아르가 국경 없는 이사회를 밀입국시켜준다. 도중에 대치하는 민병대 대장 별명이 발칸의 드래곤이라서 발드래이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인 안녕 요정의 주인공인 마리야의 고향이기도 하다. [16]

소녀전선에서 11지역과 이성질체의 무대이다.

라이트노벨캄피오네!에 나오는 캄피오네 중 한명인 보번 후작의 본거지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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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족도 약간 이질적인 느낌이 있고 기후도 다른 남/동유럽과 좀 다르다.[2] 반도라는 말도 발칸 지역 국가들이 각기 독립하고 난 뒤 그 국가들이 속해있는 영토가 반도 모양이라서 발칸반도라고 자주 쓰였다.[3] 사실 슬로베니아를 제외하면 언어로 민족을 구분하는 초기 민족주의자들의 기준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은 모두 같은 민족이 된다. 부크 카라지치(Vuk Karadžic, 1787-1864)는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 '슈토(Što)'를 쓰는 민족은 모두 세르비아인이라고 봤는데, 이것이 '대세르비아 주의'의 근원이 되었다.[4] 그런데 남동유럽의 범위를 발칸반도에만 국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넓은 의미로는 발칸과 가까이 접한 헝가리 절반,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북캅카스 일대와 흑해 연안) 및 캅카스도 유럽 동남부에 있기에 여기들 역시 남동유럽으로 보기도 한다.[5] 이탈리아어로는 이손조(Isonzo)강.[6] 구 유고슬라비아의 중심을 흘렀다.[7] 2014년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내륙에서 일어난 홍수 사태도 5월에 일어났다.[8] 오늘날의 테살로니키.[9] 오늘날의 베오그라드.[10] 오늘날의 슈코더르.[11] 오늘날의 비톨라.[12] 오늘날의 스코페.[13] 오늘날의 사라예보.[14] 제2차 세계 대전 초반기까지 불가리아는 유대인들을 나치 독일군에게 인도하여 사실상 홀로코스트에 간접적으로 참여했지만 당시 디미타르 페셰프 의원이 유대인들을 보호할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보리스 3세 국왕에게 전하면서 이후에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나 다하우, 트레블링카 같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절멸수용소에 인도하지 않고 보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15] 대표적으로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남서부 지역과 코소보.[16] 정확한 위치는 스포일러인데,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시작된 후 고향으로 귀국한 마야의 행방을 추측하는 것이 소설의 주요 전개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