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켄바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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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설명
3. 매체에서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Beckenbach's Paradox
에드윈 베켄바흐(Edwin F. Beckenbach)가 1945년 4월에 《American Mathematical Monthly》에 발표한 언어철학역설이다.


2. 설명[편집]


'흥미로움'의 기준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배중률()에 따라 모든 사람은 흥미롭거나 흥미롭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흥미로운 사람'의 범주와 '흥미롭지 않은 사람'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지 않은 사람'의 범주에 속한 사람 중 가장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가장 흥미롭지 않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야말로 흥미로운 사람이 된다. 이제 이 사람을 '흥미로운 사람'의 범주로 옮기자. 그러면 '흥미롭지 않은 사람'의 범주에서 원래 둘째로 흥미롭지 않던 사람이 가장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 된다. 이제 이 사람 역시 가장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흥미로운 사람이 된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도 '흥미로운 사람'의 범주로 옮기자.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 결국 '흥미롭지 않은 사람'의 범주에는 최후의 한 명이 남을 것이며, 이 사람 역시 '유일하게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흥미로운 사람이 된다. 이 사람마저 '흥미로운 사람'의 범주로 옮기면 결국 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란 없다. '흥미롭지 않은 개그', '흥미롭지 않은 게임', '흥미롭지 않은 음악'과 같이, '사람'이 아닌 대상에도 얼마든지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흥미롭지 않다'라는 말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도대체 '흥미롭다', '흥미롭지 않다'라는 말의 의미란 무엇인가? 그것을 분명하게 정할 수 있는가? 이는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언어철학의 주요한 물음과 맞닿아 있는데, 평범한 삼각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톰 랜섬의 Ood one out도 비슷한 문제이다.


3. 매체에서[편집]


시 「재미없는 대통령」에서 이 베켄바흐의 역설을 소재로 삼았다.

'세상에서 가장 2등다운 사람을 뽑는 대회에서 홍진호는 1등을 할 것인가 2등을 할 것인가'라는, 베켄바흐의 역설과 매우 유사한 논제가 인터넷에서 돌아다닌 바가 있다. 베켄바흐의 역설과 다른 점은, 모순을 피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홍진호가 아무리 '2등'이라는 특징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누군가가 홍진호보다 더욱 2등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얘기를 꺼내는 거 자체가 홍진호가 다른 누구보다 가장 2등다운 사람일 것을 가정하고 하는 얘기이므로 홍진호는 가장 2등으로 유명하지 않다는 진지함을 배제한다면 당연하게도 모순이 발생하므로 흥미로울 수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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