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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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파일:Portrait_of_Võ_Thị_Sáu.jpg
보티사우(Võ Thị Sáu, 1933~1952.01.23)는 베트남의 여성 독립운동가다.[1]


2. 상세[편집]




보티사우는 1933년 바리어붕따우성의 덧도현에서 태어났다.[2] 그녀가 태어났던 당시 베트남으 프랑스 식민지였고, 13살이던 1946년부터 오빠들을 따라 프랑스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보티사우가 독립운동에 참여하던 시점은 항불전쟁이 발발하던 시점이었고, 1947년 14살의 나이에 베트민이 만든 지역 항불조직에 가입했다. 당시 보티사우가 이 조직에서 맡았던 임무는 공안팀에 가입해 식량공급과 연락업무였다.[3]

심지어 사우는 덧더 시장에서 수류탄을 던저 프랑스군 한 명을 사살하고 12~20명을 부상시켰으며, 그로부터 2년 뒤인 1949년 베트민 처형에 책임이 있는 친불성향의 지역 관리 수류탄을 던졌다. 비록 이 거사는 폭탄이 터지지 않아 실패했다고 하지만, 반면 베트남 쪽에선 1950년 수류탄을 투척하여 프랑스에 부역한 베트남 지역 관리 2명을 죽인 후 체포되었다고 한다. 결국 사우는 1950년 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2~3차례 폭탄을 던진 혐의에 따라 1951년 4월 사형을 선고 받았다.

사우를 체포한 프랑스 당국은 즉각적으로 사형시키고 싶어했지만, 당시 민중의 소요를 우려한 당국은 바로 사형시키지 못했다. 거기다 미성년의 나이여서 사형을 쉽게 진행하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프랑스 당국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꼰다오섬으로 그녀를 이송했고, 1952년 꼰다오 섬에서 수많은 인파들이 보는 가운데 총살했다. 그녀의 나이 19살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총살 당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사형 집행인의 말에 눈가리개를 풀어라. 내 조국을 보며 죽겠다라는 말을 남긴 뒤, 눈을 가리던 검은 천을 풀고 의연한 모습으로 죽었다고 한다.

보티사우 무덤은 꼰다오섬 황영 열사 묘지에 있으며 1993년 통일 베트남 정부는 보티사우에게 인민무장세력영웅 명칭을 수여했다. 또한 1995년 호치민시에선 그녀의 삶을 재현한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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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으로 치자면 베트남에서 유관순 열사 수준의 대우를 받는 인물이다.[2] 베트남 남부 지역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은 코친 차이나라 불리던 곳이다.[3] 그녀가 베트민에 가입한 것은 단순히 단독으로 가입한 것은 아니었다. 보티사우의 친구와 가족들 또한 베트민에 가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