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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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투표 아이콘(흰 테두리).svg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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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한나라당
이회창

2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당선
3
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

4
민주노동당
권영길

5
사회당
김영규

6
국태민안호국당
김길수

7
무소속
장세동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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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bulsim.jpg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 포스터
성명
김길수(金吉洙)
법명
법륜(法崙)
출생
1948년 8월 8일 (75세)
서울특별시
학력
필리핀 콘티넨탈 대학교 (경영학 84 / 학사)
병역
육군 제7보병사단 하사 전역

1. 개요
2.1. 불심으로 대동단결
2.2. 선거 결과, 그리고 그 후
3. 비슷한 행적을 보인 정치인들
4. 그 외
5. 선거 이력



1. 개요[편집]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후보들 중 하나.

1948년 8월 8일 서울특별시 출신. 법명은 법륜(法崙)이며,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인 법륜사의 주지를 역임했다. 1970년 육군 제7보병사단 하사로 전역했다. 1988년 필리핀 콘티넨탈 대학교 경영학과졸업했다.[1]


2. 제16대 대통령 선거[편집]



2.1. 불심으로 대동단결[편집]


슬로건이 큰 이목을 끌어 모았다. 보통 '불심으로 대동단결!' 내지는 '불심으로 대동단결'같이 사용하지만, 원문의 포스터에도 나오듯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라고 느낌표를 앞뒤 모두 넣어야 맞다.

흔치 않은 승려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 특이점이었다. 그리고 포스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색 가사와 어딘가 피곤하면서도 몽롱한 표정을 동반한 포스 때문에 여러가지 패러디 짤방들이 많이 양산되었다. 대표적으로 옥동자 버전[2]과 마침 전국민적 인기였던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이 종영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궁예로 제일 많이 마개조되었다.

이 때가 디시인사이드에서 한창 아햏햏이 나돌던 때라 필수요소 중 하나인 초난강을 합성하고 햏심으로 폐인 단결이라는 문구를 넣은 포스터도 있었고, 심지어 당시 안티의 제왕으로 등극했던 문희준 역시 합성 대상이 되었다. 후에는 또 '김수'라고 해서 을 가지고 길드립을 치기도 했다. 이 외에도 GTA 2러시아 마피아닮은꼴로도 유명했다. 그 외에도 이 곳에서 당시 여러 합성물들을 볼 수가 있다.

문제는 온라인에서만 끝난 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미성년자들에 의해 실제 선거 포스터에다가 낙서를 하는 사태도 발생했다는 것. 특히 매직 펜으로 안대를 그려놓는 경우가 많았다. 하필 그 시기는 태조 왕건 광풍이 불고 있었고 극 중 유명 캐릭터가 궁예였다. 궁예 외에도 천진반처럼 눈을 그려주거나 크리링, 소림사 승려 스타일로 머리에 계인을 찍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마개조되었다. 비록 선거에선 참패했지만, 당시 초딩[3] 사이에서의 인지도는 후보들 중에선 단연 No.1. 다른 후보들도 물론 수모를 아예 당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김길수의 경우에는 스님 특유의 스킨헤드가 유독 초딩들의 낙서 흥미를 자극한 듯하다.

참고로, 길거리에 부착된 선거 포스터를 훼손하는 행위는 선거법에서 규정하는 범죄로, 훼손 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한 선관위 직원 등 선거 사무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나 경찰 공무원이 선거 포스터를 훼손했을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 처벌이 적용된다. 다만 다른 대선 때와는 달리 이 시기만큼은 훼손 사례는 많은 반면 실질적인 처벌 사례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역시 범인을 못 잡았거나 잡더라도 대다수 경우가 저연령층 아동이 저지른 일이다보니 기소를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만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의 경우는 형법상 처분이 보호처분에 그치며 10세 미만의 아동은 보호처분도 불가능하니, 어쩌다 잡혀도 훈계방면, 잘 해야 부모에게 알리는 수준에서 끝났을 것이다. 보호자에게 민법상 보상 의무를 지우는 방법은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 경우엔 몇 푼도 안하는 선거 공보 훼손이라 일일이 해봤자 별 의미 없다. 게다가 해당 후보가 당선권이었다면 모를까 어차피 군소후보라서 하위권 낙선은 안 봐도 비디오였기 때문에 이 낙서가 선거에 별 영향이 없어서 정치권은 신경조차 안 썼다.[4]

참고로, 당시 불교 쪽에선 김길수를 "출마를 통해 교세를 확장하려는 이단"이라고 규정하면서 철저하게 외면하였고, "이 사람은 불교와 연관 없으니 크게 연관 짓지 말라!"라며 부정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또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상임이사인 미산스님조차도 "김길수씨는 한국 종단협의회 소속이 아닐 뿐더러, 한국 전통 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라며 선을 긋기도 하였다. 세계불교법왕청이라는 단체 소속이었다고 한다. 후일 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해당 교단 소속의 사찰이 공원부지 무단 점유 논란이 있었다는 글들도 있다. 또한, 가정으로 발송된 후보 공보물에도 김길수만이 빠져 있었고[5], 선거 운동 기간에도 6일간 동안거에 들어가는 등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행보를 보였다. 동안거를 한 이유는 "큰 일을 앞두고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덧붙여 군소 후보 TV 토론에서는 수도 없이 "제가 당선될 리가 없겠습니다만..."을 붙인 것만 봐도, 처음부터 본인한계는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게 임팩트가 커서 이후로 뭔가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는 '~(으)로 대동단결' 드립이 흥하게 됐다.


2.2. 선거 결과, 그리고 그 후[편집]


결과적으로 김길수 후보는 고작 51,104표(0.2%)를 득표해 전체 5위에 그쳤다. 그래도 흔히 '거품후보'라고 조롱당하는 군소후보들의 평균적인 득표를 생각한다면 5만 표 이상의 득표는 생각보다 훨씬 선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당장 20대 대선에서 옥은호 후보는 대선인데도 5천 표조차 받지 못했다. 그 외로 같은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김영규 후보는 당세야 어찌됐건 일단 역사만은 19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당인 사회당 후보로써 약간의 조직력[6]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22,000여 표 득표에 그쳤고, 국무총리&자유민주연합 총재&6선 의원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가졌던 이한동 후보마저 김길수의 1.5배 정도인 74,027표(0.3%)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하물며 특정 종교 집단의 정치세력화에 반감이 매우 큰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 표는 싸그리 포기하고 시작한 상태로 50,000표 이상 득표했다는 것은 쾌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대 이상의 고득표다. 다음 17대 대선에서 허경영이 98,000여 표 이상 득표하여 0.4%라는 군소후보로써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보인 것까지 생각하면, 제대로 된 노선과 정책, 정치적 기반 세력도 없이 출마에만 의의를 둔 군소후보는 차라리 엽기코드로 사람들을 웃겨주는 쪽이 가장 효과적인 선거운동 전략인 듯 하다.

2003년 8월 2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 요약하자면 "부처님 뜻으로 대통령 100% 된다."라고 대선 출마/당선을 미끼로 총리 시켜주겠다며 주변인을 상대로 6억 원, 이전에도 복지 사업한다며 세계법왕청 건립 명목으로 74억 원을 뜯어낸 것을 포함해서 모두 88억 원 상당의 돈을 챙기는 등 사기 행각을 벌였다. 기사 바로가기. 선술했듯이, 불교계에서까지도 철저히 외면받고 있었으니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를 챘어야 했다. 결국 구속 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았는데,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가 대표로 있던 국태민안호국당도 이후로는 별다른 활약이 없다가, 최종적으로 2004년 9월 13일을 기해 해산되었다.[7]


3. 비슷한 행적을 보인 정치인들[편집]


원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김길수, 허경영 이전에도 이러한 황당 공약을 내걸었던 후보가 제법 있었다.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진복기허경영보다 더한 공약으로 3위로 낙선했다. 예를 들어 북진 통일.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071018183339.jpg

게다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남장여자 정치인으로 유명한 김옥선[8]은 지키지 못할 바에야 안 하는 것이 낫다는 취지를 내세워 무공약이 공약이라는 공약을 내걸며 86,292표(0.4%)를 득표해 전체 6위로 낙선한 바 있다.

김길수 외에도 당시 대선에 출마한 뒷번호 군소후보였던 사회당 김영규 후보의 구호인 돈세상을 뒤엎어라!, 12.12 군사반란5.17 내란 등의 주역인 무소속 장세동의 구호인 가자 으뜸의 나라로를 전부 합쳐서 "돈 세상을 뒤엎고 불심으로 대동단결해 으뜸의 나라로 가자."라는 드립도 있었다고 한다. 장세동은 중도에 사퇴했고, 김영규는 김길수만도 못한 2만 2천표를 얻었다.

개신교제17대 국회의원 선거한국기독당,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기독사랑실천당,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기독자유민주당, 한국기독당이 참가한 적이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기독자유당[9], 기독민주당 2개 정당을 창당해 출마했지만 실패했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기독자유당만이 기독자유통일당[10]으로 이름을 바꿔 참가하였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한편 통일교에서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통일가정당을 창당하여 꽤 많은 후보가 출마하였으나, 후보자 전원이 낙선하였다.

허경영의 하늘궁 또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출마한다면 하늘궁(극락) 간다는 통일교보다 더한 방법으로 거의 전 지역에 후보자를 출마시켰으나, 역시 전원 낙선.

파일:external/www.jejudomin.co.kr/46505_32711_09.jpg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국민의당 소속[11]으로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속명 주종근, 일명 진아스님 또한 화제가 되었다.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범죄 경력에 집어넣은 분묘도굴이었단 건데, 이에 대한 소명도 하지 않았다. 공약 또한 괴이해서, 제주도에 원한 있는 영혼들이 한라산에 많이 모여 있다면서 한라산 개발 최소화와 자신이 직접 거행하는 7일간의 초대형 천도제, 풍수지리적으로 바람직한 건설+문화 사업인 연꽃모리방에 8조원을 투자해서 4만명의 일자리를 늘리고, 제주도에 관광객 2,000만 거주인구 100만을 달성하겠다, 도민대상 항공료인하 공약 등이 있었다. 일명 지상낙원 공약. 결과는 해당 후보를 포함하여 새정치국민의당 소속 후보 전원이 낙선하였다.



파일:불교당.png

한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간만에 불교계에서 '그린불교연합당(약칭 불교당)'을 창당해서 출마했는데, 대표인 장주 스님(속명 이대마)이 김길수를 연상케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12]. 장주 스님 본인이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며, 이 쪽 역시 단 1석도 얻지 못하고 낙선.

한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상술한 허경영이 국가혁명배당금당을 창당하여 제법 많은 후보를 냈고 본인 역시 비례대표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중에는 스님 출신 후보도 있었다[13].

일본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 2015년도쿄 다이토구 의회 의원 후보로 출마한 것. 이름은 시모무라 텐코라고 한다[14].


4. 그 외[편집]


어찌 되었든 포스터 슬로건은 필수요소로도 쓰였으니 어찌 보면 원조 허경영급[15]이라고 볼 수 있으며, 현재는 워낙 오래된 터라 사실상 잊힌 인물이다. 하지만 요즘도 "~(으)로 대동단결"이라는 표현은 가끔씩 사용되기도 하며,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에서 추가된 화염기갑병의 온갖 개그 패러디 대사들 중 이것을 패러디한 드립이 나온다. 이후 오버워치에서 젠야타업적명으로도 써먹었다. 2002 대선이 끝나고 20년 뒤 2022년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김포 FC 대표로 등장한[16] 포수의 포스터로 패러디되었다. #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02
제16대 대통령 선거

[[국민대통합당|
]]

51,104표 (0.2%)
낙선 (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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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선 D-30] "불심으로! 대동단결!" 역대 이색 대선 후보들, 서울신문, 2017. 4. 9.[2] 이 쪽은 아예 개그콘서트봉숭아 학당에 나오기도 했다.[3] 현재 28~34세[4] 다만 일종의 깨진 유리창 이론 비슷하게 다른 후보들 얼굴도 낙서가 되는 경우 역시 있었다. 시작은 당연히 김길수인데, 어차피 이미 하나 낙서한 마당에 양 옆에 일렬로 붙어있는 다른 후보들 포스터라고 가만히 놔둘리가... 실제로 김길수한테 안대를 그려넣은 다음엔 누구는 이빨에 김칠을 하고 누구는 뺨에 흉터를 새기고 그런 식으로 죄다 건드려놓거나, 김길수를 천진반으로 바꿔놓은 다음 다른 후보들도 헤어스타일을 바꿔서 손오공, 베지터, 야무치... 등으로 마개조하는 사례도 있었다.[5] 가끔 특정 후보의 공보물이 투표 안내문 등에 동봉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해당 후보자가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보물을 제출하지 않으면 후보 등록이 무효가 된다.[6]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내에서도 민주노동당에 크게 밀린 사회당이었지만, 어쨌건 당을 13년간 유지할 정도의 조직력은 있었다.[7]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무렵에 지구당 제도가 시도당 제도로 개편되면서 일정한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데, 이를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유로 해체된 대표적인 정당은 개혁국민정당, 국민통합21 등이 있다.[8] 이 사람은 비슷한 기행을 벌였던 정치인과 달리 3선 국회의원 출신이었다.[9] 이 곳은 선거 직전 이윤석이 잠시 이 당에 들어가 원내정당이 되었으나, 이후 실패하면서 탈당하였다.[10] 이때는 선거 직전에 이은재가 잠시 이 당에 들어가 원내정당이 되었으나, 종교 논란으로 인해 탈당하여 한국경제당으로 가는 바람에 원외정당으로 참가했다.[11] 원래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으나, 컷오프되면서 탈당해서 새정치국민의당으로 입당했다. 참고로, 새정치국민의당의 이전 예비후보도 2개월 동안 타 정당 컷오프, 새정치국민의당 입당, 다시 재탈당해서 공화당에 입당한 괴랄한 전력이 있다.[12] 참고로 이 스님은 이전에도 1991년 지방선거에서 꼬마민주당 소속으로 경상북도의원 영일군 선거구,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정치개혁당 소속으로 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참가한 적이 있으며, 이전 총선에서도 불교정도화합통일연합당을 창당하여 비례대표로 출마한 적이 있다. 그린불교연합당은 이 정당이 해산되면서 다시 만든 것이다.[13] 여담이지만, 위의 장주 스님 페이스북에는 허경영과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14] 【台東区、お前もか】草食ならぬ「僧職系男子」が選挙に出馬!(【다이토구, 너도?】초식하는 '승려계 남자'가 선거에 출마!), virates, 2015. 4. 21.[15] 근데 사실 허경영1997년 대선에도 출마한 적이 있다. 다만, 그때는 부족한 똘끼로 인해 묻혔을 뿐이다.[16] 마스코트가 확정되지 않아 연고지인 김포시의 마스코트를 임대 영입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