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스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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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역사
ההיסטוריה של פלסטין ・ تاريخ فلسطي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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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30년경 가나안 지역
필리스티아

언어별 명칭
페니키아 문자
𐤐𐤋𐤔𐤕 [p.l.ʃ.t]
현대 히브리어
פְּלֶשֶׁת [p'léshet] / פְּלִשְׁתִּים [p'lishtím]
영어
Philistia / Philistine
한국어
개신교
블레셋
공동번역
불레셋
가톨릭
필리스티아

1. 개요
2. 민족
3. 성경 속 묘사 및 역사
4. 현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5. 기타



1. 개요[편집]


고대 가나안 지역 서부 지중해 연안(현대 가자 지구 일대)과 그곳에 살았던 민족을 가리킨다. '필리스티아'라는 단어는 코이네 그리스어 '퓔리스티노이(Φυλιστῖνοι)'에서 파생된 라틴어 단어 '필리스티누스(Philistinus)'에서 유래했다.


2. 민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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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주님께서는 캅토르 섬의 남은 자들인 필리스티아인들을 전멸시키시리라(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크레타 섬에서 살아 남은 블레셋 사람들을 나 주가 멸망시키겠다(개신교 새번역)

예레미야서 47장 4절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왔듯이 필리스티아인들도 캅토르에서, 아람도 키르에서 데리고 올라오지 않았느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블레셋 족속을 크레테에서, 시리아 족속을 기르에서, 이끌어 내지 않았느냐?(개신교 새번역)

-아모스서 9장 7절

바다 민족 중 하나로 원래 크레타[1] 살던 인도유럽어족 구사자들이 이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하여 나중에 필리스티아인들의 하플로그룹을 검사해 본 결과에 따르면 남유럽인들, 특히 그리스인들과 동계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필리스티아어는 그리스어와 동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2]. 때문에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주위 민족들과는 다르게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리스티아인들은 가자, 아슈켈론, 가트, 아슈도드, 에크론의 다섯 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연맹 국가를 이루었다. 이들 역시 다른 가나안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다곤, 이슈타르, 바알 등 메소포타미아 신들을 섬겼다. 이는 전근대의 유이민들의 특징으로, 현지인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현지의 문화나 종교를 받아들인 결과다.[3]


3. 성경 속 묘사 및 역사[편집]


창세기부터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민족 중 하나로,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철천지 원수나 다름없었다.


3.1. 관련인물[편집]


  • 아비멜렉(Abimelech) -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블레셋 왕.
  • 데릴라 - 삼손을 유혹한 블레셋 창녀.
  • 골리앗 - 블레셋의 장수.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다.
  • 라흐미 - 블레셋의 장수이자 골리앗의 동생. 엘하난이 처치했다.
  • 이스비놉 - 골리앗의 아들이자 블레셋 장수. 아비새가 처치했다.
  • 삽 - 골리앗의 아들이자 블레셋 장수. 십브개가 처치했다.
  • 아기스 - 가드를 다스리는 블레셋 왕.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해올 때 그를 보호해준 인물이다. 이 때문에 블레셋 내부에서 반발이 심했다.


3.2. 창세기[편집]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 필리스티아 도시 그랄의 군주인 아비멜렉[4]과 언약을 맺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비멜렉이 자신의 아내 사라에게 반하자 아브라함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라를 자신의 누이로 속이고 결혼에 동의했다. 야훼는 사라와 결혼하려는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그 결혼을 막으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왜 숨겼냐고 불평하며 배상금을 주었다. (창세기 20장)

이후 아비멜렉과 그의 군사령관 비골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아브라함을 찾아왔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신의 우물을 빼앗은 것을 책망하며 조약을 받아들였다. 브엘세바에서 조약을 맺은 후 아비멜렉과 비골은 필리스티아 땅으로 돌아갔다. (창세기 21장 22-34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대에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뺏길 뻔한 사건과 우물로 인한 분쟁이 또 일어난다. (창세기 26장)[5]


3.3. 출애굽기/여호수아[편집]


일찍이 철기 시대에 돌입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그때문에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필리스티아 땅이 아닌 다른 길로 우회해야 했다. 신명기에서는 필리스티아의 주요 방백인 가자의 기원을 갑돌(크레테)로 설명한다. 본래 가자에는 아위 인들이 살고 있었으나 갑돌에서 온 갑돌 인들이 아위 인들을 정복하고 그 땅에 거주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학계에서 필리스티아인의 근원을 남유럽인으로 추정하는 것과도 비교해볼 만하다.

여호수아 시대부터는 이스라엘의 정복 목표에 들어갔지만 이스라엘은 끝끝내 필리스티아를 정복하지 못하였다.


3.4. 판관기[편집]


판관기부터는 필리스티아가 본격적인 적대 세력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중 삼손데릴라 이야기가 유명하다.


3.5. 사무엘기/열왕기[편집]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 왕국과 전쟁 중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성하게 생각하여 전쟁터에 들고 온 언약궤를 빼앗아갔다. 그러나 야훼의 천벌과 언약궤를 지키는 간수들의 부주의로 인해 오히려 수많은 희생이 생겼다.

사울이 새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후로도 한동안 승기를 타고 있었지만, 다윗골리앗을 쓰러트린 통에 다시 쇠락해 버리고 말았다. (사무엘상 17장)

다윗이 사울 왕에게 위협을 받아 망명을 오자 당연히 필리스티아의 많은 장수들이 이에 반발했다. (사무엘상 29장)

다윗이 없는 동안에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과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사울 왕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해 버리고 요나단을 비롯한 사울의 아들들도 필리스티아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무엘상 24장)

사울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른 다윗에게 참패를 당해 세력이 약화되었다. (사무엘하 5장 17-25절, 21장 15-22절)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 왕국에 조공을 바쳤다. (열왕기상 4장 21절)

이스라엘 왕국은 이후 분열된 유다 왕국과 함께 필리스티아를 견제하였다. 후대의 많은 선지자들과 예언서들이 필리스티아에 대한 야훼의 징벌과 멸망을 이야기하였다.

이후 필리스티아의 주요 도시들은 아시리아, 고대 이집트 등의 강대국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남유다 왕국 및 다른 고대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흡수되었다.


3.6. 고대 로마[편집]


로마 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유대인들의 반란에 분노하여 유다이아 속주의 명칭을 고대 그리스어식 지명 '팔라이스티네(Παλαιστίνη / Palaistínē)'에서 유래한 '팔라이스티나(Palaestina, 중세 라틴어식으로 팔레스티나·Palæstina)'로 바꾸었다.


4. 현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편집]


라틴어 팔라이스티나는 로마의 유대 반란 진압 후 속주의 이름으로 정착되었고 이슬람 제국기에도 유지된 끝에 '팔레스타인'의 어원이 되었다. 현대 팔레스타인의 어원인 데다 고대 이스라엘과 대치한 만큼 팔레스타인인들한테 재조명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도유럽인 계통의 고대 필리스티아인과 아랍인의 일파인 현대 팔레스타인인과의 관계는 비교적 희박하며 오히려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히브리인'이야말로 셈어계 근친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갑자기 다 소멸된 것은 아니고 일단 이스라엘과 통혼이 잦았으며 팔레스타인인들도 유전적으로 본다면 동유럽이나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보다 더 원래 혈통의 유대인에 근접한 만큼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는 할 수 있다. 언어적인 부분에서도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쓰이는 아랍어, 고대 히브리어/ 페니키아어는 같은 셈어군에 속하며 셈어군에 속하는 종족들을 묶어서 셈족이라고 부른다.


5. 기타[편집]


고대 그리스에서 이민족들을 바바리안으로 부르던 것과 일맥상통하게 philistine은 '속물', '교양없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블레셋에는 다곤 신상이라는 반인반어신인 우상이 있었고 다곤신은 신상으로 만들어져 사사 삼손을 붙잡고 연회장에 불렀을 때 블레셋의 왕이 삼손에게 다곤신께 경배하라고 명령하고 사무엘상에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뺏은 언약궤[6]를 가지고 다곤신상과 냅뒀는데 그 다음날 아스돗[7] 사람이 다곤신상이 언약궤 앞에 얼굴을 땅에 박힌 채 쓰러졌고 그들은 다시 다곤신상을 세웠으나 다음날 아침에 다곤신상이 아예 머리와 두손이 부러져 몸통만 남은 채 문지방에 엎드러 있었다. 이 다곤신은 훗날 그리스 로마 신화사이렌의 모티브가 된다.

[1] 히브리어론 '캅토르'라고 한다.[2] 대표적인 증거가 되는 단어로는 골리앗이 있다.[3] 필리스티아인 이외에는 9세기 경에 카르파티아 산맥 일대를 정복했던 헝가리인들의 사례가 있다. 당시의 서유럽인들이 가톨릭을 믿던 걸 따라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이다. 또 필리스티아 외에도 그리스인들은 알렉산드로스 3세이집트힌두스탄 정복으로 인해 이집트와 인도 아대륙 북부에 대거 이주한 뒤 각각 현지인들의 영향으로 이집트 신화불교로 개종한 바 있다.[4] אבימלך. "내 아버지(아비)는 왕(멜레크)"이라는 뜻이다. 아들인 이사악 때에도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파라오나 '벤하닷'(아람 군주의 칭호, 하다드 신의 아들이란 뜻이다)과 같은 군주의 칭호로 보기도 한다.[5] 이것은 사실 아브라함 대에 한번 일어난 사건을 창세기 정리 과정에서 혼동이 일어나 이사악 때도 일어난 것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6] 이때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도 블레셋에 의해 사라졌다.[7]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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