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요크

덤프버전 :

분류

비요크의 주요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역대 칸 영화제
파일:칸 영화제 로고.svg
여우주연상
제52회
(1999년)


제53회
(2000년)


제54회
(2001년)

세브린 카닐, 에밀리 드켄
(휴머니티), (로제타)

비요크
(어둠 속의 댄서)


이자벨 위페르
(피아니스트)


Björk
비요크


파일:비요크2020.webp

본명
비요크 그뷔드뮌즈도티르
Björk Guðmundsdóttir[1]
출생
1965년 11월 21일 (58세)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국적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display: none; display: 아이슬란드"
행정구
]]

직업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음반 프로듀서, 배우
장르
일렉트로니카, 아트 팝, 트립 합
레이블
엘렉트라 레코드
활동
1975년 – 현재
신체
163cm
배우자
소르 엘돈 (1986년 – 1987년, 이혼)
파트너
매튜 바니 (2000년 – 2013년)
자녀
2명
종교
무종교(무신론) → 자연[2]
링크
파일:비요크홈페이지로고.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사운드클라우드 아이콘.svg
서명
파일:Björk_signature_(don’t_crop_its_composition).svg

1. 개요
2. 음악성
3. 생애
5. 필모그래피
6. 비요크에게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7. 여담



1. 개요[편집]



파일:비요크 Vulnicura 활동.jpg


파일:비요크 Swan Dress.jpg

Vulnicura 발매 당시.
유명한 Swan Dress 의상.[3]

아이슬란드가수. 아이슬란드의 국민가수이며 천재 아티스트로 불리는 일렉트로니카의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받는다. 배우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비요크의 삶과 커리어 요약 유튜브


2. 음악성[편집]


기괴하고 난해한 컨셉, 약이라도 빤 듯 시대를 한참 앞서간 혁신적인 뮤직비디오들, 순수함과 야생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독창적인 창법까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 가수로 남는 게 아닌, 음악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아방가르드계의 거장.



3집 Homogenic의 1번째 트랙 《Hunter》


3집 Homogenic의 마지막 트랙 《All Is Full of Love》
뮤직비디오 출시 년도가 1990년대인 걸 감안하면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1997년 곡인 《Hunter》의 기묘하면서도 다소 기괴한 듯한 분위기를 느껴보자. 20년이 훌쩍 지난 2018년에 들어도 범상치 않은 포스의 뮤비이며, 비요크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요크 특유의 천 가지의 표정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뮤비로 평가받는다. 이외에도 때로는 난해하고 기괴하지만, 몽환적이고 예술적인 뮤직비디오가 엄청나게 많다.



《Big Time Sensuality》

2001년 작품인 톰 크루즈 주연의 바닐라 스카이에서도 나온 뮤비이다. 꿈과 환상이 뒤섞이고 시공을 초월한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진실을 깨달은 뒤 잠재의식 속에 기록된 70–90년대의 영화나 뮤비 등이 빠르게 주마등처럼 훑어 지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93년에 발표한 비요크의 Big Time Sensuality가 3초 정도[4]잠깐 나오는데, 지금 들어도 촌티가 나기는커녕 꽤 세련된 음악과 독특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All Is Full of Love의 라이브. 2분 28초에서 높은 고음을 쭉 뽑아내는 비요크의 가창력을 볼 수 있다.

동시에 목소리가 굉장히 유니크하다고 평가 받는다. 음악 역사 통틀어 여성 가수의 유니크한 목소리 순위를 매기면 비요크가 꼭 순위권 안에 들거나, 썸네일에 있을 정도로 목소리의 개성이 강한 걸로 유명하다. 터뜨리는 듯이 낸[5] 고음을 굴리듯 강렬히 울려 퍼뜨리는 것이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들린다. 동시에 위 라이브 영상을 볼 수 있듯 가창력이 엄청나다. 그냥 비요크 노래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어봐도 따라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할 것이다.


3. 생애[편집]


레이캬비크에 위치한 공동체에서 생활하던 히피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6] 6세 때 레이캬비크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서양 고전 음악 교육을 받았다.

11세에 티나 찰스의 노래 "I Love to Love"를 부른 것이 라디오에서 방송된 것이 계기가 되어 레이블 파울킨과 계약하게 되고 이듬해인 1977년에 데뷔작 《Björk》을 발매한다. 이 앨범은 LP 형식으로만 발매되었는데 비틀즈의 "The Fool on the Hill"이나 스티비 원더의 "Your Kiss Is Sweet"등을 아이슬란드어로 부른 것, 요한네스 캬르발이라는 아이슬란드 화가를 위해 비외르크 자신이 직접 작곡하고 연주한 플루트 곡 등이 들어있다. 그 후 1986년에는 "Sugarcubes"[7]라는 펑크 록 밴드를 결성하였고 1987년에 타이틀곡 《Birthday》가 크게 히트를 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0년 Sugarcubes가 해체된 이후 《Debut》 앨범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나섰다.

기본적으로 일렉트로니카로 분류되긴 하지만, 한 가지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굉장히 독특한 음악 스타일과 예술적이고 인상적인 뮤직 비디오로 인해 한국에서도 광팬이 많으며, 2008년 2월 내한 공연에서 그 저력을 발휘했다.

2000년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뮤지컬 영화 《어둠 속의 댄서》로, 연기 경력이 거의 없다시피함에도 불구하고[8] 그 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역할 자체가 정신적으로 꽤나 고된 역할이었기도 하고, '영화를 위해선 죽을 수 없지만 음악을 위해선 죽을 수 있다'고 말하며 더 이상은 연기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 폰 트리에하고 충돌도 심각한 수준이였기도 했고. 이 탓에 촬영중 스탭들이 고생 깨나 했다.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사라져 버려서 대역을 고용하기도 했다고. 그러다가 2017년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 이후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속에서 비요크가 당시 상황에 대하여 입을 열었는데, 폰 트리에가 비요크를 성추행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9] 정확히는 비요크랑 영화를 찍은 덴마크 감독이 "폰 트리에 외에 누가 있을 리가 없다"고 한다.

그 말 그대로 오랫동안 음악에만 집중했다가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노스맨》에 딸과 함께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노스맨의 각본에 아이슬란드 시인 숀Sjon이 참여했는데, 이 숀이 비요크 곡 작사가로도 인연이 있어서 섭외된 것으로 보인다.

예술계에서는 하나의 커다란 아이콘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나, 워낙에 파격적인 스타일의 사람이라 일반적으로는 "워스트 드레서"로서 더 잘 기억되는 편이다. 가장 유명한 이유는 위의 사진의 드레스 때문인데 아카데미 시상식 때 입고 나간 옷으로, 레드카펫을 걸어갈 때 뒤에서 백조 알을 굴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도 세간의 평가 따윈 신경쓰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대인배. 평소때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에서도 범상한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없다. 이를 보듯 음악내외적으로 파격적인 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광기로 가득찬 디바[10]라는 말이 딱 알맞는 인물이다.

2003년, 소속 레코드 회사인 One Little Indian은 비요크의 공식 앨범 판매 누적수가 1,500만을 돌파했다고 밝혔으며 2007년 IFPI 통계에서는 누적수 5,000만을 넘겨 전 세계 음반판매량 순위에서 118위를 기록했다. 여러모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가수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음악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폴라 음악상을 받았다.[11]

그녀는 음악적으로도 엄청난 평가를 받는데

롤링스톤지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60위
VH1선정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가수 29위
MTV 선정 음악 역사상 최고의 목소리 부문 8위
Acclaimed Music 산정 여자 아티스트 5위[12]

이와 같이 많은 부문에 순위가 올려진 것을 볼수 있다. 특히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롤링스톤지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부문에도 순위를 올려진 걸 볼 수 있다.

앨범 평가도 매우 좋다. 비요크 초기 걸작인 Debut, Post를 비롯해 가장 위대한 일렉트로니카 앨범으로 평가받는 Homogenic이 있으며, 2000년대 이후의 앨범들도 대부분 메타크리틱 70점[13]은 가뿐히 넘긴다.

그리고 여담으로 몇몇 뮤비들이 성적인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후방을 조금 주의하자.


4. 음반[편집]



파일:björk logo.svg
Discography

[ 펼치기 · 접기 ]

파일:bjork_debut.jpg


파일:bjork_post.jpg


파일:bjork_homogenic.jpg


파일:bjork_vespertine.jpg


파일:bjork_medulla.jpg

Debut
(1993)
Post
(1995)
Homogenic
(1997)
Vespertine
(2001)
Medúlla
(2004)

파일:bjork_volta.jpg


파일:bjork_biophilia.jpg


파일:bjork_vulnicura.jpg


파일:bjork_utopia.jpg


Volta
(2007)
Biophilia
(2011)
Vulnicura
(2015)
Utopia
(2017)





5. 필모그래피[편집]


  • Glerbrot(1987)
  • The Juniper Tree(1990)
  • 어둠 속의 댄서(2000)
  • Drawing Restraint 9(2005)
  • Anna and the Moods(2007)
  • Bjork : Biophilia Live(2014) - 콘서트 실황으로, 2014년 몇몇 국가에서 상영되었다.
  • 노스맨 (2022)


6. 비요크에게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편집]




7. 여담[편집]


  • 그녀의 곡 중 Storm이라는 곡은 반전주의 게임인 스펙 옵스: 더 라인의 트레일러, 삽입곡으로 사용되었다. 게임 내내 전쟁의 광기와 정신적인 공포를 표현하는데 적절한 곡.

  • 독특하고 이국적인 외모로 동양계가 아니냐는 말도 있고 실제로 동양인이나 유라시아인 같은 느낌이 많이 나서 토종 아이슬란드인처럼 안 보이긴 하다. 눈에 몽고주름이 있긴 하나 백인 특유의 짙은 쌍꺼풀에 큰 눈을 가지고 있으며 눈화장까지 하면 눈은 확실히 서구적이지만 눈만 빼고는 얼굴 전체적으로 동양인처럼 생겼다. 본인도 어렸을 적 자신이 중국인이라 생각한 적이 있으며,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조차도 자신을 동양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때문에 10대 때부터 동양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14] 아이슬란드에서 바다 건너편 그린란드의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은 동아시아계 황인종으로, 한국인과 구별하기 힘든 정도로 닮은 사람들도 있는데, 북유럽계 백인과의 혼혈인들 중에는 비요크와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사이에는 인적 교류가 제법 있어 왔기 때문에, 확증할 길은 없지만 조상 중 이누이트 출신이 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 2008년 중국 내 활동 및 중국[15] 입국이 영구 금지되었다. 그 이유는 중국 공연 중 대놓고 "티베트!"라고 외쳤기 때문이다.[16][17] 같은 해 건스 앤 로지스또한 Chinese Democracy 앨범 발매로 인하여 중국 입국 영구금지되었댜.

  • 전 남편 쏘르 엘든과의 사이에 1986년에 태어난 아들이 한 명 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는 남자친구매튜 바니와 함께 뉴욕에 살고 있었으며, 슬하에 2002년에 태어난 딸이 한 명 있다.[18] 둘이 함께 《구속의 드로잉 9》이라는 예술 영화까지 제작했을 정도였지만, 매튜의 바람기 때문에 2013년에 둘은 헤어졌다. 이러한 이별의 아픔을 통해서 만들어진 앨범이 바로 Vulnicura이다. 이후 오랫동안 별 얘기가 없다가 2020년 인터뷰에서 이란-독일계 새 남친이 생겼다고 공개했다.

  • 1996년에는 우루과이미국인인 리카르도 로페스(Ricardo López)라는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앓고 있던 해충구제 직업인 스토커가 비요크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협박 편지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폭발물도 보낸 다음 1996년 9월 12일 자살했다.[19] 여담으로 그 정신병자는 자기의 모습과 감정을 표현한 영상 일기를 캠코더로 촬영하여 보관했고 자살 동영상도 남겨놨는데, 삭발을 한 뒤 얼굴 전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비요크의 곡 i remember you 가 끝나는 순간 입에 권총을 처박고 쏴서 자살했다. 이 영상들은 "리카르도 로페즈의 영상 일기"(The Video Diary of Ricardo Lopez)라는 다큐멘터리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다행히 그의 시신은 부패 악취에 의해 인근 주민의 신고로 예상보다 빨리 발견되었고 비디오를 본 경찰이 심각성을 느끼고 배송 중인 폭발물을 영국에서 회수했다. 해외에서는 비요크 스토커라는 이명으로도 널리 알려졌었다. 한때 인터넷에도 이 영상이 이 영상이 있었던적이 많다.



파일:attachment/비요크/a0045502_4c2222c859f79.jpg


파일:external/huckberry-staging.s3.amazonaws.com/hero_Bjorkhouse1.jpg

  • 아이슬란드 정부에서 국가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공로로 그녀에게 아이슬란드 남단의 섬과 저택을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광경이 굉장히 특이해서 인터넷상에서 한때 이슈가 된 적이 있지만 이는 루머로, 아마도 해당 섬과 저택의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비요크의 이미지가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바람에 생겨난 듯. 실제로는 한 퍼핀 사냥 협회에서 사용하는 별장이라고 한다.



  • 리포터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1996년 아들 신드리와 함께 태국 방콕돈므앙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때 한 여성 리포터가 "Welcome to Bangkok"이라면서 반기자, 말이 끝나자마자 머리채를 휘잡으면서 때리고 나뒹굴었다. 저 리포터가 4일 동안 그녀를 스토킹하며 아이에 대해 물어보았기 때문이라고. 후에 그 리포터에겐 사과했다. 실제로 그녀는 상당한 아들바보로 명성이 자자하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아들이랑 찍은 사진도 많고 아들의 얼굴도 엄청 붕어빵이다. 여담으로 이 영상의 별명이 Bjork's greatest hits 이다. 히트곡과 때리다 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hit란 단어를 이용한 언어유희.

  • MoMA에서 회고전을 열었는데 허접한 전시 기획으로 혹평을 들었다.

  • 성희롱과 성폭행 사례를 언급하는 Me Too 캠페인을 페이스북에 논할 때, 라스 폰 트리에가 저지른 성적인 학대를 밝혔다. #



  • 2018년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에서 그녀의 앨범 “Vespertine”이 오페라로 만들어져 공연되었다. #


  • 뮤직 비디오가 유명한 뮤지션이지만, 유튜브에서는 저화질 영상만 올라와서 원성이 많았다. 이 때문인지 옛날 뮤직 비디오를 HD 화질로 업스케일링해 재업로드하는 작업을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찬양하는 댓글이 추천을 받을 정도.

  • 2008년 2월 16일 올림픽 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했다.

  • 2018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2022년 앨범 Fossora는 어머니에게 바쳐졌다.

  • 익스페리멘탈 힙합 그룹인 Death Grips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20] 이 때문인지 Biophilia 수록곡 리믹스에 데스 그립스가 참여하기도 했고, Death Grips의 앨범 The Powers That B의 첫 번째 디스크인 Niggas on the Moon의 전 트랙에 보컬 샘플링으로 참여하였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1 20:04:39에 나무위키 비요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이슬란드어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pjœr̥k ˈkvʏðmʏntsˌtouhtɪr̥\]. Björk는 '자작나무'라는 뜻으로 이 문서에서 쓰이고 있는 비요크를 비롯하여, 비욕, 뷔욕, 뷰욕, 뷔요크, 뷰요크, 브욕, 브요크 등 한국어 표기가 많다. 한 때 위키백과와 엔하위키에서 비에르크라고 표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같은 북게르만 어군인 스웨덴어노르웨이어의 표기법에서 ㅚ 앞에 /j/나 /ɕ/ 이외의 자음이 오면 j는 앞의 자음과 합쳐 적고 ㅚ는 에로 적는 규정을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덴마크어와 아이슬란드어는 같은 상황에서 '이에'가 아니라 '이외'로 적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규정 용례는 '비외르크'이다.[2] #, 범신론이나 신비주의에 가깝다.[3] 영화 화이트 칙스에서 패러디 했다.[4] 3:18–21초 사이다.[5] 우리말로 들으면 ‘춰아’ 처럼 들리는 비요크 특유의 고음 스킬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다.[6] 아버지가 20살때 비요크를 낳았다. 전기 기술자이며, 아이슬란드 전기 기술 노동조합장을 지냈다고 한다.[7] 보통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아이슬란드에서는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Sykurmolarnir라는 자국식 명칭을 써야 했다.[8] 1988년 TV 영화로 연기자 데뷔하긴 했으나 당시 기준 12년전 작품이고 이후 시작한 음악 커리어가 대박이 터져 그쪽에 집중하는 바람에 연기 이미지는 거의 없었던 편이다.[9] 본인은 그냥 연기에 미련이 없다 보니 대차게 거절했고, 그 뒤에 트리에가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을 일하기 힘든 사람이니 뭐니 씹어댔어도 딱히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10] 그녀의 곡은 보기보다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한다.[11] 스웨덴 상이라 듣는 말이지 동급 위상은 아니다.[12] 1위 아레사 프랭클린, 2위 피제이 하비, 3위 조니 미첼, 4위 마돈나.[13] 대략 메타크리틱 70점 이상부터 수작으로 평가받는다.[14] 1997년 3집 Homogenic의 앨범커버는 와패니즈 색이 상당히 짙다.[15] 홍콩, 마카오 제외.[16] 티베트 독립운동과 관련된 것을 중국 정부가 검열하기 때문이며, 티베트 관련 단어는 황금방패 시스템의 금지어이다. 자세한 사항은 티베트 독립운동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문서로.[17] 참고로 그녀는 1996년에 Tibetan Freedom Concert에서 공연한 바 있다. 그리고 티벳을 외치면서 불렀던 노래도 그에 걸맞게 그녀의 앨범 'Volta'에 수록된 'Declare Independence'라는 곡이다.[18] 여담으로 이 매튜 바니라는 사람도 엄청 특이한데, 영국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가장 촉망받는 설치/행위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예일대 의대를 나와 모델에 미식축구 선수 경력까지 있다.[19] 당연하지만 권투 선수 리카르도 로페즈와는 상관이 없다.[20] 비요크는 최신 음악 동향이 빠삭한 편이다. 당장 데뷔 당시도 영국 트립합을 이끌던 넬리 후퍼가 관여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