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럼알렉산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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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네덜란드 왕국 오라녀나사우 왕조의 제7대 국왕이자, 고조부인 빌럼 3세 이후 123년 만에 즉위한 남성 군주. 아버지의 가문인 암스베르크 가문의 종주이기도 하다.
2013년 어머니 베아트릭스 여왕으로부터 양위받아 즉위했다. 국왕으로서 사용할 존호를 정할 때 고조부의 뒤를 이어 빌럼 4세로 하지 않고[1] 왕세자 시절의 이름인 '빌럼알렉산더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름에 숫자가 붙는 게 싫어서라고 한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존호를 사용했기 때문에 유럽의 존호에 따른 규칙에 따르면 빌럼알렉산더르 1세가 아니고 그냥 빌럼알렉산더르가 올바른 표현이다.[2] 훗날 또다른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이 등장하여 빌럼알렉산더르 2세가 된다면 그때서야 빌럼알렉산더르 1세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2. 생애[편집]
1967년 4월 27일, 율리아나 여왕 재위기간에 베아트릭스 공주와 부군 클라우스 폰 암스베르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규 교육 과정을 마친 뒤 네덜란드 해군에서 1985~1987년까지 복무했으며, 그 사이에 1980년 4월 30일 외조모 율리아나 여왕이 베아트릭스 공주에게 양위함에 따라 오라녀 공(Prins van Oranje, 왕세자)이 되었다.
2006년 국제연합 사무총장 산하 물과 위생 자문위원회(UNSGAB)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으며, 2013년 4월 30일 베아트릭스 여왕이 외조모와 모친의 전례를 따라 아들 빌럼알렉산더르에게 양위하고 여대공으로 물러나면서 네덜란드의 국왕이 되었다.
왕세자 시절에는 자유분방한 행동 때문에 영 인기가 좋지 않았고, 대다수 국민 여론도 베아트릭스 여왕이 승하할 때까지 장기 재위하기를 희망했었다. 심지어 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그의 전공인 역사학 강의실에 누가 "빌럼알렉산더르 아웃! 군주제 폐지!"라고 몰래 써놓은 사건도 있었다 한다. 이후 아내 막시마 소레기에타와의 결혼과 장인의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정권 시절의 부역 논란까지 겹치면서, 그의 인기는 외외외고조할아버지 뒤 133년 이후 남성 군주가 된 뒤에도 어머니 베아트릭스 전 여왕에 비하면 영 못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래에 하술된 것처럼 아내 다이애나 스펜서를 내쳐버리고 사실상 죽음으로 내몰다시피하며 사생활 문제에서 큰 지탄을 받고 있는 바다 건너 영국의 찰스 3세와 달리, 아내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내 막시마와의 결혼을 지키고 있는 애처가라는 점에서 빌럼알렉산더르에 대해 네덜란드 국내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3. 가족관계[편집]
아르헨티나 출신의 막시마 소레기에타와 왕세자 시절인 2002년 2월 2일에 결혼해 슬하에 카타리나아말리아 왕세녀, 알렉시아 공주, 아리아네 공주 등 딸 셋을 두었다. 이 때문에 빌럼알렉산더르가 후에 사망 혹은 양위를 할 경우, 네덜란드는 다시 여왕이 즉위하게 될것이다.
장인인 호르헤 소레기에타가 아르헨티나 호르헤 비델라 군사독재정권[3] 에서 농업부 장관을 지낸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왕세자의 결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결혼식에 장모, 장인어른인 소레기에타 부부가 불참하는 것으로 여론이 무마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10년 뒤에 빌럼알렉산더르가 즉위할 때도 그대로 재현되어, 소레기에타 부부는 사위 부부의 대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일본의 나루히토 못지않게 어마어마한 애처가이다. 장인, 장모에 대한 험담이나 장인 어른의 죄상으로 인해 아내를 험담하거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공격하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강력한 법의 심판까지 동원해가면서 막고 있다.[4] 그걸로 끝도 아니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4강에서 네덜란드가 다름아닌 아내의 조국인 아르헨티나와 맞붙게 되자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아무도 응원하지 않았다.[5] 결과는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물론 이건 한 명의 남편이자 가장으로선 분명히 훌륭한 행위이다. 특히 옆 나라 영국의 찰스 3세와 비교되는 점 때문에 일각에선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입헌군주국에 있어서 상징적 존재인 군주가 비공식 권력을 동원해서 저러는 건 다른 각도에서 안좋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막시마 왕비 항목에 들어가면 나오지만 빌럼알렉산더르의 장인인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아르헨티나의 비델라 정권의 농업부 장관으로 부임하던 시절, 직접적으로 반인륜 범죄에 가담하지는 않았어도[6] 높은 위계에 있던 특성상 비델라 정권에 반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산하 직원들이 실종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으며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방치한 자였다.
빌럼알렉산더르의 왕비인 막시마 소레기에타도 처신을 딱히 잘한다고 할 수 없다. 그나마 막시마 왕비도 호르헤 소레기에타의 전적이 하도 세간에서 말이 많으니, 결혼식과 즉위식에 부모님을 참석하지 못하게 하긴 했다. 하지만 자녀들의 세례식 같은 조금이라도 덜 주목받는 네덜란드 왕실의 행사에서는 자신의 부모님을 참석시켰고, 당연히 그럴 때마다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양국 모두에서 논란이 터졌다. 이렇게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독재정권의 훌륭한 부역자로서 다른 집안의 수많은 딸들이 감옥에서 강간당하거나 강제로 입양보내져도 눈 하나도 꿈뻑하지 않았으나, 정작 자신은 딸 하나 잘 키워서 왕비가 된 덕분에 죄질에 대한 참회나 반성은 커녕 대가조차 제대로 받지 않고[7] 2009년까지 여러 식품 관련 단체의 회장으로 활동해오며 편하게 살다가 2017년 8월 8일에 향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상관 호르헤 비델라가 2012년에 반정부 인사들의 어린 자식들 400~500명을 유괴해 친정부 인사들에게 강제로 입양시킨 것이 인정되어 징역 50년을 선고받고 2013년에 초라하게 옥사한 것과는 완벽히 대조되는 결말인 셈.
네덜란드는 당장 국체 자체가 먼 옛날 16세기 스페인 펠리페 2세의 가톨릭 강권 군주권력에 반대하며, 독립 전쟁을 일으켜 처음부터 공화국으로 건국되었다가 나중에 군주국이 되었던 나라이다. 이러한 과거 때문에 근대 이전부터 자유주의적 풍토와 사상의 자유로 유명했으며, 지금도 국제사법재판소가 소재한 헤이그 같은 인권 선진국이란 자국 브랜드와 역사적 유산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나라이다. 현대 네덜란드가 막시마 소레기에타가 자란 80년대 군사독재 아르헨티나도 아닌 상황에서, 국왕이 사적 권력을 동원해서 장인의 뒷배경에 대한 언론통제를 시도했으니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신빙성 있는 폭로라도 나오지 않는 한, 무슨 법의 심판을 동원해 막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 초기에 막시마 왕비에 대한 여론이 나쁘기만 한 것 아니였다. 여기에는 막시마 왕비가 몇몇 공식행사에서 친정 가족들을 참석시키는 것만 제외하면 별다른 논란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양권에서는 막시마 왕비에게까지 독재 정권 부역 혐의를 씌우는 연좌제적 발상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빌럼알렉산더르가 필사적으로 왕실 주변과 언론을 통제했음에도, 막시마 왕비와 그 친정과 관련된 논란을 꺼트리는 건 한계가 있었다. 막시마 왕비의 친정 문제와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며, 호르헤 소레기에타에 의한 피해국인 아르헨티나에서도 여전히 말이 많다. 그나마 이후 빌럼알렉산더르와 막시마 왕비가 자선단체와 봉사활동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본인들과 네덜란드 왕실의 이미지를 회복시켰기 때문에 유야무야 넘어간 것에 가깝다.
3.1. 조상[편집]
3.2. 자녀[편집]
4. 여담[편집]
네덜란드의 현 국왕이라는 신분에도[8] 타 국가의 군주들과는 달리 참 자유로운 스타일이다. 특히 국민들과의 친화력이 대단한 것으로 보이는데 암스테르담 지하철을 이용해 시내 산책을 하며 시민들과 어울리거나 셀카를 찍기도 하고, 시민들과 함께 공원에서 산책을 하거나 시내의 평범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는 등, 국민들과 많이 어울리는 편이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인싸기질이 많다. 또한 그의 옷차림 역시 평상시엔 평범한 정장을 입고 있으며 공원에서 산책할 때에는 져지를 입거나 패딩을 입는 등, 스타일도 자유롭다. 2022년 왕의 날 행사에서는 Lucas & Steve의 디제잉에 맞춰 국민들과 떼창을 하며 춤을 추기도 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엄격하고 근엄한 일본 황실이나 영국 왕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
- 독일 순방 당시 수행원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빌럼알렉산더르에게 씌워줄 우산이 고장나 잠깐동안 국왕과 왕비가 비를 홀딱 맞는 일도 있었다.# 이때 우산을 보고 놀라는 빌럼알렉산더르의 표정이 압권이다.
- 왕세자 시절에는 간간히 'prins pils'란 별명으로 불렀는데 레이던 대학교 재학 시절 맥주를 마시고 주사를 유난히 부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당연하지만 본인은 이 별명을 매우 싫어한다.
- 베아트릭스 여왕이 33년간의 재위 끝에 양위를 결정하자 영국 신문 데일리 미러[9] 에선 '여왕,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다'란 헤드라인을 띄우고, 이내 '진정해 찰스, 네덜란드 이야기야'라고 덧붙이면서 당시 왕세자였던 영국의 찰스 3세를 능욕했다.
-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네덜란드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양위 결정 이후 실시된 여왕의 날 행사를 촬영하며 그의 모습이 담겼다. 왕위 승계의 모습도 담겨있다.
- 역대 네덜란드 국왕으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왕이다. 2014년 11월 초에 국빈 방문하였는데,[10] 왕세자 시절에도 이미 4번 방한한 적이 있다. 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고, 강릉에서 열린 빙상 종목 경기를 관람하고 안목해변 커피거리 등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