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류이치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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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
坂本龍一| Sakamoto Ryūichi

파일:sakamoto_02.jpg
본명
사카모토 류이치 (坂本龍一(さかもとりゅういち, Ryuichi Sakamoto)
출생
1952년 1월 17일 (만 68세)
일본 도쿄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Tokyo_Prefecture.svg.png 나카노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00px-Flag_of_Nakano%2C_Tokyo.svg.png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png
직업
음악가 ,작곡가, 편곡가, 음악 프로듀서, 피아니스트, 키보디스트
학력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석사
레이블
일본 콜럼비아 (1978 - 1979)
알파 레코드(1978 - 1983)
MIDI / SCHOOL (1984 - 1986)
CBS 소니 / TERRAPIN (1987)
버진 레코드 (1989 - 1991)
토시바 EMI (1993)
포 라이프 레코드 / güt (1994 - 1997)
워너 뮤직 재팬 (1998 - 2006)
commmons (2006 -)
공식 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external/blogs-images.forbes.com/Oscar_icon.png
음악상 수상자
제59회
(1986년)


제60회
(1987년)


제61회
(1988년)

허비 행콕
(라운드 미드나잇)

사카모토 류이치, 데이비드 번, 콩 수
(마지막 황제)

데이브 그루신
(반항의 계절)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활동
3. 음악 스타일
4. 디스코그래피
4.1. 정규 앨범
5. 필모그래피
6. 여담


1. 개요


일본작곡가이자 뮤지션.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영화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골든글로브상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인물이자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다.
坂本龍一는 동양권의 이름이므로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읽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양식인 '류이치 사카모토'로 성과 이름을 도치해서 부른다. 아무래도 한국보다 서구권에서 이름이 먼저 알려졌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서양식 표기가 먼저 대중적으로 자리잡게 된 듯하다. [1]

2. 생애



2.1. 어린 시절


1952년 1월 17일 도쿄 나카노구 출생. 아버지는 출판사의 편집자였으며, 장서와 클래식 LP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다녔던 유치원에서 피아노를 배웠고, 이것이 즐거워서 이후에도 계속해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11세 때인 1963년 도쿄예술대학의 음악 교수에게 클래식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중학교 때 우연히 포스트모던 연주회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는 당시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받았었다고 하며[2] 백남준의 작품 등 다양한 포스트 모던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1971년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작곡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주어진 조건대로 곡 하나를 작곡해야 하는 시험을 고작 1시간 만에 끝내고 나가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입학한 후 작곡과는 전형적인 클래식 분위기 일색이라 어울리지 못하였고 미술학부 친구들과 어울렸다고 한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놀아다니기 시작해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며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넓히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흔적으로 전위파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타카하시 유지(高橋悠治)가 쇤베르크베르크, 베베른의 피아노곡 전곡을 1977년에 일본 콜럼비아에서 녹음할 때 쇤베르크의 초기 습작인 '여섯 곡의 피아노 연탄곡집'에서 타카하시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한 것이 있다.

2.2. 활동


1978년 첫 솔로 앨범인 Thousand Knives[3][4]를 발표하고, 호소노 하루오미와 타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3인조 테크노 팝 그룹인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 약칭 YMO)를 결성하여 컬트적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당시 이미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유명세를 쌓고 있던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5] 타카하시 유키히로(高橋幸宏)[6]와 알게 되었을 때, 사카모토 본인은 팝[7]에 문외한이라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왜 그들이 유명한지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원래 친했던 둘의 앨범에 참여를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오가다 우연히 앨범을 만들자고 이야기가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들게 되니 그게 Yellow Magic Orchestra였다.
사실 일본에서는 큰 반향이 없었으나, 레코드 회사에서 이들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밀어주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영국 등 서구 각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로써는 매우 진보적인이라 쓰고도 비싼 음악이라 말하는(…) 전자음악이었고, 음악 전반에 깔린 팝과 락큰롤의 느낌, 동양인이 하는 최신 현대 음악에 대한 신비감이 섞여있었기 때문인지 서구에서 대히트를 치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소식을 계속해서 자국민에게 전했고, 몇 달 후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들은 국민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때 느닷없이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된 탓에 인기에 대해 아무 면역(?)이 없던 YMO 멤버들은 집 밖에만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엄청 시달렸고, 특히 사카모토 류이치는 대인기피증까지 앓았었다고 한다. 호소노나 타카하시야 YMO 이전에도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편이였으니 그렇다쳐도 Technopolis를 작곡하며 YMO 데뷔를 성사하였던 사카모토는 YMO로 갑자기 유명해졌으니…[8]
당시 가장 큰 히트를 친 곡은 단연 Behind the MaskRydeen[9], Tong Poo. Behind the Mask는 마이클 잭슨이 가사를 덧붙여서 앨범에 리메이크되어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하나 모종의 이유로 빠졌고[10] 이후 에릭 클랩튼이 락버젼으로 리메이크한 것이 널리 알려졌다. 마이클 잭슨 사망 후 유작으로 발매된 앨범에 댄스풍으로 어레인지된 버젼이 들어갔다. 전자음악과 마찬가지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전자게임을 뮤직비디오로 활용한 Computer Game도 유명하다.
YMO 막바지에는 J-pop 분위기의 가벼운 곡들을 많이 냈으며 보컬로도 활동하여 당시 일본에서 요즘 가장 귀여운 아저씨들로 불렸다고 한다. 다양한 리메이크가 된 君に、胸キュン의 오리지널 뮤직비디오를 보면 상당히 맛간 느낌으로 역시 천재는 범상치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노래 자체가 흥겹고 귀엽기에 이후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된다. 이 곡 외에도 YMO 뮤직비디오 대부분이 말 그대로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준다. 물론 당시로써는 시대를 앞서간 부분들이었으나 지금은 촌스러운...
YMO 활동으로 유명해지자 영화배우, 광고 모델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 작품 <전장의 크리스마스(戦場のメリークリスマス/ 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서 주연과 OST를 맡았다. 영국의 뮤지션 데이빗 보위와 공동으로 주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일본군 장교로 나오는데, 데이빗 보위와의 격렬한 키스신(!)도 등장한다. 이 영화의 주 테마곡인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영화보다 유명해져서 사카모토나 영화를 몰라도 이 노래만큼은 모두가 알 정도다[11].
화룡점정으로, <마지막 황제>의 OST를 통해 오스카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마지막 황제>에서도 직접 극중 인물을 연기했다[12]. 배역은 푸이만주국을 배후 조종한 예비역 육군대위 아마카스 마사히코로 분했다. 테마곡 Last Emperor와, Rain이 유명하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테마곡을 맡기도 했다. 말 그대로 월드 클래스 뮤지션. 근데 의외로 게임 음악에 여러차례 참여 했는데, 89년도 PC엔진판 천외마경을 비롯한 여러 게임 음악을 맡았고, 드림캐스트를 처음 구동하면 골뱅이 로고와 함께 흘러나오는 오프닝 콘솔 뮤직도 그의 작품이다. 'L.O.L.: Lack of Love'에서는 OST와 함께 시나리오 라이터도 맡았다고 한다. 헐;;. 애니메이션에 참여한 일은 거의 없으나, 단 하나 왕립우주군에서만 참여해 음악을 맡았다. 위에서 설명한 YMO 시절 '君に、胸キュン'의 수많은 리메이크 곡 중 하나는 마리아 홀릭 1기 엔딩에도 쓰였고, 이로 인해 오덕계에서도 YMO가 주목을 받게 된다. 이외에도 그나 YMO의 곡들이 리메이크된 경우는 많다.
2013년 5월에는 도쿄 필하모닉 교향악단과 함께 16년 만에 오케스트라 협업 공연을 선보였다. 약 1년 뒤인 2014년 4월 역시 Playing the Orchestra 2014를 성황리에 마쳤지만, 같은 해 7월 10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인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며 당분간 음악활동을 중지할 것을 밝혔다.
2015년 암 투병 이후 첫 복귀작을 발표했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어머니와 살면'의 OST라고 한다.
2015년 8월 30일 일본 국회 앞에서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 중인 안보법안 반대 시위에 참가하며 오랜만에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설을 통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격려하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아주 중요한 시기에 함께 행동하겠다고 했다. #
일본 지지통신 11일 보도에 따르면 사카모토 류이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 2015)'에서 음악을 담당해 골든글로브상 최우수작곡상 후보에 올랐으며 독일의 음악가 알바 노토와 수상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고 한다. 알바 노토와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전부터 공동으로 앰비언트 뮤직을 작업하며 앨범도 여러 장을 발표할 만큼 음악적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3. 음악 스타일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드뷔시와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시에 많은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바흐의 곡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의 기악곡 여러 곳에 바흐와 드뷔시의 음악적 구조가 발견된다.
이 외에도 전통적인 고전음악을 통한 교육을 받은 음악학도 답게 많은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재즈, 탱고, 보사노바, 영화음악을 비롯해 일렉트로니카월드뮤직[13] , 뉴에이지, 힙합까지 아우르는 음악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화음악에서 대표곡이 많은데, 영화 'The Sheltering Sky'의 동명 테마곡 The Sheltering Sky, 영화 '철도원'의 테마곡 Popoya, 영화 '바벨' 중에 나오는 Bibo No Aozora[14] 등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YMO 곡들의 실질적인 작곡가여서, 대표곡들은 YMO 시절부터 엄청나게 많다. YMO 시절 곡들을 피아노로 편곡해서 연주한 곡들의 느낌도 각별하니 꼭 따로 들어봐야 한다. 인기있는 필수적인 몇 곡만 들어보고 싶다면 Self-Portrait(페이지 상단의 곡), Technopolis, Tong Poo, Energy Flow, Tibetan Dance,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등... 아마도 그의 곡 중에 제목을 몰라도 어느 한곡 정도는 들어봤다 싶을 것이다. 은근히 한국의 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그가 최근에 가장 관심있어 하고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는 건 전자음악, 환경음악 쪽이다. 최근에 나온 [Async]를 꼭 들어보길 바라며, 영화음악 작품들 역시 명성이 높기 때문에 하나씩 다 필청 음반으로 꼽히지만 그 중에서 베스트를 추려 3인조 실내악 편성으로 편곡한 [1996] 앨범을 들어보길 바란다.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며 그의 경이로우면서 아름다운 앙상블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솔로 연주는 [BTTB]나 [Playing The piano]가 유명하다.

4. 디스코그래피



4.1. 정규 앨범


  • Thousand Knives (1978)
  • B-2 Unit (1980)
  • Left Handed Dream (1981)
  • Coda (1983)
  • Ongakuzukan (1984)
  • Esperanto (1985)
  • Futurista (1986)
  • Neo Geo (1987)
  • Beauty (1989)
  • Heartbeat (1991)
  • Sweet Revenge (1994)
  • Smoochy (1995)
  • Discord (1997)
  • BTTB (1998)
  • LIFE IN PROGRESS (1999)
  • Comica (2002)
  • (2002)
  • Chasm (2004)
  • Out of Noise (2009)
  • async (2017)

5. 필모그래피



6. 여담


  • 별명으로는 교수(教授)가 대표적.#. 세계의 사카모토(世界のサカモト)도 있다.
  • 일본 우익을 싫어하는 친한이기 때문에 한국 팬들이 많다. 일단 2ch에서 재일이라고 비하하는 것만 보더라도, 일종의 판독기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애칭으로는 판본용일 혹은 용일이 형이 있다. [15]
  • 한국에서 사카모토 류이치하면 장난은 전혀 칠 것 같지 않은 전형적인 클래식 음악인이라는 진지한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은근히 허당이고 재밌는 면이 있다. 말하자면 살짝 나사가 빠지는 느낌이다. 유명한 일화는 첫 개인 투어 당시 라디오에서 키타(Keytar)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엔딩 무대 때 사용해서 팬들에게 고소당한 일화가 있다. 그리고 밑에 있는 영상과 사진을 보면 사카모토 류이치가 얼마나 이런 성격을 가졌는지 더욱 더 이해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겐 충격과 공포 사실 YMO 자체도 파고들면 코믹한 면이 꽤 있다.
  • 의외로(?) 예능에도 일가견이 있다. 90년대 초 일본의 유명 콩트 프로그램인 '곳츠에에칸지'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아호아호맨'이라는 코미디 연기를 펼친 적이 있으며 몰카 콩트도 존재한다. 또한 2004년에는 우타방에 출연하여 좌중을 압도하는 입담을 선보였다. 여기서는 MC 스나이퍼와 콜라보한 undercooled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 모델, 배우, 예능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뉴욕과 도쿄 양 쪽에 집을 가지고 있지만 2000년대 이후는 뉴욕 맨해튼의 집과 스튜디오가 주거지이다. 뉴욕에서 애용하는 단골 일식당의 BGM이 도저히 못들어줄 수준이어서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짜준 일화가 있다. NY타임즈 기사
  • SNS에도 매우 개방적이며 근황을 자주 전하고 팬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 여러 매체를 통한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음악을 뉴에이지에만 한정짓지 말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 한국의 작곡가 및 뮤지션들(특히 윤상, 유희열, 이현도 등)이 존경하거나 영향을 받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 작곡 외에도 악기(신디사이저, 시퀀싱, 샘플러) 및 장비 다루는 능력이 수준급이라서 일본전자음악잡지에 종종 거론되는 인물이다.

  • 나름 친한(親韓) 아티스트로 YMO 시절 Seoul Music이란 곡을 앨범에 담기도 했다[16]. 이는 사카모토가 5.18 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만든 음악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점이 사실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암울한 분위기의 이 음악을 들으면 당시 독재 정권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을 음악으로 표현해냈으리란 점은 예상할 수 있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전위예술가 백남준 선생의 영향을 받아 그를 위한 곡 'A Tribute to N.J.P.' 를 내기도 했다. 2004년 발매한 개인 앨범 'Chasm'에 MC 스나이퍼가 한국어로 랩을 한 곡 Undercooled가 1번 트랙으로 포함되었는데, 전세계로 판매되는 해외 아티스트의 공식 앨범에 한국 래퍼가 한국어로 랩을 한 것은 유래없는 일이다. 오오 가문의 영광이어라. 이는 MC 스나이퍼가 그의 곡 'Baby don't cry'에서 사카모토의 The Sheltering Sky의 피아노 샘플을 사용하기 위해 연락을 하고 가사의 의미나 주제를 설명하며 교류를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사카모토는 9.11테러에 꽂혀 이 곡을 작업하였고 '반전'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적당한 래퍼를 섭외하려고 했는데,[17] 마침 교류중이었던 MC 스나이퍼가 표현하는 가사의 주제 등에 호감을 가져서 그를 참여시킨 것이라고 한다[18]. 2011년 1월 자서전인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한국에 출간했으며, 2011년 1월 8, 9일 서울에서 10년만의 내한 연주회를 하였는데, 이는 한국 팬들이 트위터로 공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안 그래도 그런 고려를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가 나온 뒤 공연이 확정된 것이었기에 팬들의 기대를 들어주는 아티스트로 공인되었다. 오오오! 대인배 용일이 형! 스스로도 한국을 친하게 느끼며 이후에도 가능한 한 자주 들르고 싶다고 이야기하였다[19]. 그러나 10년만의 내한 공연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그냥 그의 해외공연을 쫓아가서 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1년 이후로는 약 1년마다 한국에 오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듯. 그러던게 12월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트리오 공연이 확정. 이미 공연 예매는 여름쯤에 완료된 상황이다. 2018년 10월 4일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하여 2019년 개봉하는 영화 '안녕, 티라노'의 OST를 피아노 독주로 연주한다고 한다. 사카모토는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을 맡았다.#
  • 2000년도 들어서 특이하게 Alva Noto라는 앰비언트 뮤지션과 자주 합작을 하곤 했는데, 굉장히 실험적인 성향이 강했다. 잔잔한 피아노와 함께 펼쳐지는 노이즈의 향연 심지어 몇 차례 공연도 했던 모양(...). 앰비언트에 내성이 없는 사람들은 엄청난 아스트랄함을 느낄 수 있다. http://youtu.be/8ggEYoVKX_M 그 외 Fennesz라는 앰비언트 뮤지션하고도 자주 합작하는 편이라고 한다.
  • 가족관계로는 YMO 키보드 세션으로 활동했던 야노 아키코(矢野顕子)[20]와 1982년에 결혼하여 2006년에 이혼했는데, 별거는 1992년부터였다고 한다… 슬하에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둘째딸 사카모토 미우(坂本美雨)가 있다. 이 외에도 1998년 12월 SMAPXSMAP 출연 당시에 밝힌 바로는 당시 슬하에 자식은 4명이며 딸은 둘. 이혼 후에 나온 보그 코리아 인터뷰 기사에서도 역시 자녀를 2남 2녀라고 소개했다. 참고로 큰 아들은 원래 야노 아키코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전 남편이던 야노 마코토(矢野誠)도 뮤지션으로 활동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자서전에 언급되는데 괴짜로 유명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1999년엔 한 방송에서 7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밝혔다. 물론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아이이다. 후덜덜덜 일본 인터넷상에서 나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호와의 증인 문서를 참조할 것. 현재 동거인은 소라 노리카라는 미술가로 알려졌는데, 앞서 언급된 막내 아들의 친모이다.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사실상의 안주인으로 여겨지는 듯.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지만, 오래 전부터 사카모토 류이치의 매니저 역할을 해 왔으며, 공연에 쓰이는 비디오 아트도 담당했다고 한다.
  • 90년대 시절에 일본 비디오를 볼때마다 간간히 나오곤 했던 반다이 비주얼 이모션 로고송이 바로 사카모토 류이치의 작품이다[21].
  • 2017년 10월 3일 개봉된 남한산성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국 영화음악은 처음 참여한 것이다. 결국 <남한산성> 음악감독으로 2017년 11월 9일에 영평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류이치를 몰랐었다는 트로트 가수 한사랑이 그와 김지연 대표(싸이런 픽쳐스)를 대신하여 대리수상을 하였다. 자세한건 링크 참조 그런데 작품과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 대리수상했다는 논란이 커져 영화제의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

  • 마지막으로 충격의 영상#1 #2[22]이런 것도 뒤집어 쓰는 아저씨니까. # [23]
  • Piknic에서 2018년 10월 14일까지 내한 전시회 LIFE, L I F E를 가졌다.
  • 2012년부터 탈원전을 테마로 하는 'No Nukes'란 이름의 음악 페스티벌의 개최와 기획을 맡고 있다. 호소미 타케시[24]와 고토 마사후미[25] 등이 단골손님이며, 사카모토 류이치 본인도 인두암 투병을 하던 2014년을 제외하고선 전부 참가했다.
  • 대한민국 밴드 새소년의 열혈 팬이다. 멤버 중 특히 황소윤을 좋아한다.
  • 의외로 80년대에 아이돌 곡을 제작한 적도 있다. 그 중 대표작은 오카다 유키코입술 Network. 참고로 작사는 마츠다 세이코. 화려한 작곡진과 절정에 이른 유키코의 인기로 커리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나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극단적인 선택을 해 동시에 마지막 1위 곡이기도 하다.
  •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영어실력이 안좋은 편이고, 드물게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도 발음이 매우 기괴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류이치 사카모토는 영어 실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며, 발음 또한 꽤 좋은 편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일본인과 친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해서는 친근하게 생각하고 호감을 갖는 경향이 많다. 실제로도 류이치 사카모토는 외국의 행사나 외국인들과 교류가 많은편이다. 사는곳도 일본이 아닌 미국 뉴욕에 있는 맨해튼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것은 아니다. 맨해튼에서도 종종 일식당을 찾아 먹는다고 말했다.

[1] 한국인이나 중국인도 서양인에게 이름을 소개할 때 이름+성 순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이름을 로마자 등 서양 문자로 표기하더라도 성을 먼저 표기한다.(올림픽 중계 등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이런 경우에도 이름을 먼저 표기한다. 그렇다보니 서양에서 먼저 유명해진 일본인은 한국에서도 이름+성 순으로 알려지기 쉽다.[2] 도쿄도립 신주쿠 고등학교 재학 당시 고등학교 전공투를 결성했고, 무려 바리케이트 봉쇄를 단행한 바 있다.[3] 앨범 풀네임이 'Thousand Knives Of Ryuichi Sakamoto'라서, 일부 웹사이트에서는 이 앨범을 'Thousand Knives Of'로 소개하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한다.[4] 이 앨범의 타이틀곡 첫머리에서 사카모토가 읊는 음성변조된 한시는 마오쩌둥정강산 투쟁을 두고 지은 시 《정강산》이다. 이 외에도 마지막 트랙에서는 동방홍의 선율이 어레인지되어 활용되는 등, 앨범 전반에 걸쳐 당시 사카모토가 품고 있던 중국 문화에 관한 관심이 녹아있다.[5] 포크락 밴드 핫피 엔도 베이스 출신.[6] 프로그레시브락 밴드 사디스틱 미카 밴드 드러머 출신.[7] J-Pop을 비롯한 영미권 팝음악 전반[8] 이상의 개인력은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서 참고하였다. 흥미로운 내용이 더 많이 담겨있으니 천재의 삶을 알고 싶다면 자세한 것은 자서전을 참고할 것.[9] 엄밀히 말하자면 이 곡은 YMO의 다른 멤버인 타카하시 유키히로의 곡이다. 사카모토의 곡이 아니다.[10] 사카모토 본인 말에 의하면 마이클 잭슨에 대해 잘 모르고(당시의 MJ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탑스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직후에 낸 Thriller 앨범으로 팝의 황제가 되는데...) 딱히 팔고 싶은 생각이 크질 않아서 생각없이 라이센스 비용을 크게 불렀더니 그냥 포기했더란 말이 있다. 곡이 들어갈 뻔했던 MJ 앨범이 그 Thriller였으니 이후 그냥 제발 넣어달라고 할 걸 많이 후회했다고 농담삼아 한 이야기. 다른 썰로는 앨범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가 앨범이 너무 댄스곡 투성이라 완성도를 위해 반대했다는 설도 있다.[11] Croatian Rhapsody로 유명한 막심 므라비차가 이 곡을 커버한 것도 매우 유명하다. 그 외에도 로튼 그래프티, 우타다 히카루, FACT 등의 아티스트들이 커버를 하기도 했으나 원곡만큼은...[12] OST를 맡기려는 감독에게 무슨 호기였는지 배역을 맡겨주면 한다고 했다고. 나중에 연기도 너무 어렵고 곡도 잘 안나와서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13] 특히, 대학시절부터 민속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학위를 받은만큼 전 세계에 민속음악들과 최첨단(전자음악)과 결합한 실험적인 음악들이 많다. 인터뷰 때마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은 뉴욕 바로 옆에 있는 것 같고, 일본팝음악은 마치 아랍억양처럼 들리는 거 같다고한 거처럼 두 문화사이에 이질감이 없이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거 같다 특히, 한국에 국악에도 엄청 관심이 많다. 최근 윤상 음악에도 영향을 받아서 이러한 시도가 많다.[14] 영화 속에 포함된 건 피아노 & 바이올린 어레인지 버젼. 원곡은 힙합 느낌이고 스스로 노래도 불렀다. 또한 Trey Songz가 부른 Can't Be Friends의 샘플 원곡이기도 하다[15] 한일 양국과의 관계개선을 누구보다도 바라는 인물이기도 하다. "양국 국민들이 여권없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기를 꿈꾼다"고 할 정도로 양국 관계가 친밀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다.[16] 2017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이 EU와 같이 여권이 없이 자유로이 왕래하는 사이가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17] 원래는 m-flo의 Verbal과 작업을 하려고 했었다고 한다.[18] 한국 공연시 특별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유희열이 피아노 연주를 대신하여 공중파에서 공연한 버젼도 있다. 유희열도 사카모토를 매우 좋아하기에 이뤄진 퍼포먼스라고 함. 실제로 내한 공연에 유희열을 포함한 여러 아티스트가 다녀갔다.[19] 일본이나 영미권에서는 주로 40~50대의 중년 남성들이 그의 팬인데, 한국에 와서 봤더니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젊은 사람들이 싸인회에 와 줄 서있는 걸 보고 여러 가지 의미로 감격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90년대 말에 개방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중년들은 이 사람을 모를 수밖에 없다.[20] 참고로 야노 역시 일본 팝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으로 꼽힌다. 첫 앨범 Japanese Girl은 후덜덜한 뮤지션들을 데리고 만든 걸작으로 꼽히기도.[21] 이후에 반다이 이모션 로고송을 맡은 사람은 공각기동대 OST로 유명한 '카와이 켄지(川井憲次)'로 바뀌었다.[22] 실제로 보고 충격받을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요약하자면 여장하고 아카시야 산마를 덮치는 그런 내용이다(…).[23] 심지어는 데뷔 초기 시절에도 이런 기질이 있는 모양이다. 2분 14초 참고[24] ELLEGARDEN, the HIATUS, MONOEYES[25] ASIAN KUNG-FU GENERATION의 보컬/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