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르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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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affarid_dynasty_861-1003.png
사파르 왕조(Ṣaffārid Dynasty : 861~1003)

1. 개요
2. 건국
3. 전성기(9세기 말)
4. 쇠퇴와 멸망(10세기)
5. 그 후



1. 개요[편집]


9세기 이란 고원에 세워졌던 중세 이란계 수니파 이슬람 왕조이며 건국 군주는 라이스의 아들 야쿠브[1]였다. 야쿠브는 소위 알 사파르라 불렸는데 '사파르'는 '금속 세공인', '대장장이'라는 의미이다. 수도는 자란즈였다.


2. 건국[편집]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 속하는 보스트 인근의 작은 마을의 대장장이 집안(구리 세공 장인, Saffar)에서 태어난 야쿠브 이븐 라이스 알 사파르는 젊은 나이에 시스탄(오늘날 이란 동남부) 지역에서 자경단 노릇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를 시작으로 자신의 동생들인 아므르 이븐 라이스, 알리 이븐 라이스와 함께 동지들을 끌어모아 봉기했다. 당시 중동의 패자였던 아바스 왕조는 후계 분쟁으로 인한 내전, 카와리즈파, 쉬아파 등의 봉기, 이미 아바스 조 패권 확립 초기부터 떨어져나왔던 후우마이야 왕조는 둘째치고 북아프리카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한 쉬아파 이드리스 왕조, 수니파 아글라브 왕조로 인해 이집트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전역에 대한 지배권 상실[2], 아샤리파와 무타질리파 간의 교리적 대립 등으로 급속도로 쇠락하고 있었고, 거기에 구 페르시아계 관료들이나 지역 토후들이 이를 기회삼아 이란 고원과 트란스옥시아나 일대에서 세력을 확립함으로써 수니파 타히르 왕조, 수니파 사만 왕조 등이 출범하여 이란 지역은 사실상 아바스 칼리파조의 영향권에서 떠나버렸다. 비단 이란 고원 뿐만이 아니라 동부 아르메니아, 타브리즈 등지에서도 이란계 토후들이 형식적으로만 아바스 조의 이슬람 종교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인정할 뿐, 실질적으로는 독립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3. 전성기(9세기 말)[편집]


이런 상황에서 야쿠브 이븐 라이스 알 사파르의 확장을 저지할 거대 세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야쿠브는 한 줌의 병력으로 각지에서 아랍계 총독들이나 이란계 토후들을 쳐부수면서 발루치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순식간에 장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군사력을 끌어모아 이란 본토로 진출, 당시 이란 고원의 실질적인 중심지였던 호라산 지역을 지배하던 타히르 왕조를 공격하여 사실상 멸망시켰으며, 북으로는 사만 왕조를 압박하면서 최전성기에는 동쪽으로는 파키스탄에 이르는 지역까지, 서쪽으로는 타브리즈, 아르메니아 지역을 제외한 자그로스 산맥의 대부분을 지배하면서 오늘날 이란 강역의 거의 2배에 달하는 광활한 영역을 차지했다. 또한 구페르시아계 문인들이나 사산 왕조 시절의 제국 제도를 어느 정도 차용한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구리 세공자 출신 야쿠브는 평민과 군인들 사이에서 폭넓은 인기를 누렸는데, 그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아바스 왕조 칼리파의 사절이 그에게 당장 항복하고 바그다드로 올 것을 명령하자 야쿠브는 사절에게 부추와 보리빵을 먹인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가서 칼리파에게 전하시오. 나는 구리 세공인으로 태어났소. 내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통치권과 금은보화는 나 자신의 진취성과 대담함을 통해 얻은 것이오. 나는 그것을 아버지에게 유산으로 받지 않았고, 당신으로부터 받은 것도 아니오


4. 쇠퇴와 멸망(10세기)[편집]


그러나 이러한 면모에도 불구하고 사파르 왕조는 근본적으로 야쿠브 이븐 라이스 개인의 전투 능력과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기대어 세워진 국가였고, 내부적으로 수많은 허점을 떠안고 있었다. 이란 고원을 장악하면서 아바스 조와 빚어진 마찰 상황에서 이를 정당화할 명분적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으며[3] 바반드나 카렌, 사만 왕조와 같은 구 페르시안 명문가[4]들과는 달리 완전히 평민 출신[5]이 건립한 국가였기에 지역을 지배할 혈통적 정당성을 주장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이를 정당화할 사상적 토대도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 산하에 끌어넣은 토후들은 하나같이 사파르 왕조의 지배에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야쿠브는 메소포타미아로 쳐들어갔으나 아바스 조 칼리파 알 무타미드의 군대에게 다이르 알 아쿨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그 성장에 큰 제동이 걸렸으며, 얼마 안가 야쿠브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급사해버렸다. 동생인 아므르 이븐 라이스가 뒤를 이었으나 내부적인 동요가 심각했고 이를 억제할 겸, 자신들의 후방에 도사리고 있었던 사만 왕조를 굴복시키고자 대군을 일으켜 트란스옥시아나로 진격했으나 발흐 전투에서 사만 조의 시조인 이스마일 1세에게 참패하면서(901년) 완전히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이후 호라산을 비롯한 이란 고원의 대부분을 사만 조에게 빼앗기고, 파키스탄에 이르던 힌두쿠시쪽 영지는 완전히 상실해버렸으며 그 영역은 시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으로 쪼그라들었다. 뒤이어 이란 고원에서 패권을 확립한 쉬아파 부와이 왕조의 공격으로 더더욱 쇠락했다. 1002년경에 사만 왕조가 쇠퇴하면서 그 틈을 타 흥기했던 튀르크계 가즈나 왕조가 아프가니스탄 지역으로 침입하면서 연전연패를 당한 사파르 왕조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상실하고, 왕조의 본거지인 시스탄 지역까지 군세를 이끌고 진격한 마흐무드 가즈나비드에 의해 마지막 군주인 칼라프 1세가 붙잡혀 폐위당하면서 완전히 멸망했다.


5. 그 후[편집]


이후 사파르 왕실의 후손들이 16세기까지 시스탄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혼란기 때마다 왕조를 재건했다. 예를 들어 '나스르 왕조' (1029 ~ 1225)는 가즈니 왕조, 셀주크 제국, 고르 왕조, 호라즘 왕조의 속국으로 존속하다가 1222년, 몽골 제국에게 타격을 입고 도망가던 호라즘 왕조의 왕자 잘랄 웃 딘 밍부르누에게 멸망했다(1225). 그 이후로도 '미라반 왕조'를 세우는 등 불굴의 의지를 보이나 쉬아 계열 12이맘파 제국인 사파비 왕조에게 완전히 복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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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쿠브 이븐 라이스. '라이스'는 '래이스'라고 발음하기도 한다.[2] 이마저도 얼마 안 가서 쉬아 계열 이스마일파(7이맘파) 국가인 파티마 왕조가 출범하면서 이집트에 대한 지배권도 상실했다.[3] 요컨대 훗날의 12이맘파 제국인 사파비 왕조 이란처럼 쉬아파를 기반으로 한 이란 민족성 구축과 같은 것이다.[4] 카렌, 사만 등은 파르티안계였다.[5] 말이 평민 출신이지 할아버지 대에 그의 집안은 난민이었으며, 난리를 피해 이주한 뒤 아버지와 그가 구리 세공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겨우 가난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