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요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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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요
SAN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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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명
정식명: 三洋電機株式会社
영문명: SANYO Electric Co., Ltd.
한국명: 산요전기 주식회사
국가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업종명
디스플레이, 반도체 제조, 생활가전 등
설립일
1947년
해체일
2013년
대표자
이와마 마사토
모기업
파일:파나소닉 로고.svg[[파일:파나소닉 로고 화이트.svg

파일:external/panasonic.co.jp/brand_logo-his-02.gif
サンヨー電機(三洋電機)

1. 개요
2. 역사
3. 한국 관련
4. 여담


1. 개요[편집]


SANYO(三洋).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3개 대양에서 딴 이름이라 三洋이라 하며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는 삼양전기이다. 에네루프 충전지와 Xacti 캠코더로 유명했다.


2. 역사[편집]


마쓰시타 전기를 설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처남인 이우에 토시오[1]가 1947년에 세운 기업. 이우에 토시오는 선장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선원이 되는게 꿈이었으나 도쿄 창고 폭발 사건 때 강물에 뛰어들어 간신히 살아남았고, 그와중에 마침 누나와 매형 부부의 연락을 받아 1917년 마쓰시타 전기 제작소 창업을 도왔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이후, 1947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공직추방령[2]으로 인해 매형을 위해 처남인 이우에 토시오가 대신 마쓰시타 전기를 떠나며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산요전기이다. 매형이었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마쓰시타를 떠나는 처남 이우에 토시오에게 자전거 발전 램프 특허를 양도하고, 내쇼날 브랜드와 생산 공장을 저렴하게 임대했다. 산요전기는 자전거 발전 램프 판매로 시작했다. 산요 설립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처남 이우에가 회사를 설립할 무렵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다른 것은 다 해도 전지산업은 하지 마라. 리스크가 너무 크다'라고 말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이우에가 회사 설립 이후 중점적으로 해 온 산업이 바로 전지 산업, 그것도 이차 전지. 파나소닉이 적자 투성이에, 가전 분야에서 브랜드 가치도 바닥을 기고 반도체 분야에서도 한물 간 산요를 인수한 이유 또한 산요가 2차전지 및 태양전지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혈연 관계로 인한 인정이 아니다. 그리고 파나소닉은 2017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점유했었다.

1977년부터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고판에 본사 로고를 박았고, 1980년대에는 일본듀라셀의 전지를 라이선스 생산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찍이 듀라셀 토끼를 광고에 내세우고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산요의 입김 때문인지 전혀 다른 콘셉트의 광고를 선보였는데 1984년판 광고는 바리캉으로 40명 중 32명분의 머리를 동자승처럼 밀어버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야 듀라셀의 상징인 토끼가 등장했다.

2004년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으로 산요전기의 아날로그 IC 반도체 공장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회계연도 기준 2005년(2004년 4월~2005년 3월) 산요전기는 무려 2500억엔의 손실을 입었다. 이듬해인 2006년, 2000~2003년 4년간 회계 부정이 들통나면서 자발적으로 실적 결과를 수정해 공시했고, 노나카 도모요 회장과 이우에 도시마사 사장은 이를 책임지고 사임하면서 1947년 창업부터 이우에 가문의 산요전기 경영은 끝났다. 회계연도 기준 2007년(2006년 4월~2007년 3월)에도 500억엔의 손실을 입고 2200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 대규모 손실 이후 산요는 주요 사업 부문을 하나하나 매각하기 시작한다. 2008년에는 모바일 핸드폰 부문을 교세라에 매각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회사 전체를 마쓰시타 전기에 매각하기로 하고 다음 해 12월 마쓰시타의 자회사가 된다.

2008년 이후 마쓰시타 전기가 사명을 파나소닉으로 변경한 것을 시작으로 산하 브랜드들의 교체 작업도 시작되었다. 거기다가 산요 인수와 같은 시기에 진행중이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문에 3년 연달아 그룹 실적이 죽을 쑤면서 산요의 사업부 매각은 빨라지고 흔적도 더 빨리 없어지게 되었다. 2010년에는 반도체 부문을 미국의 온 세미컨덕터에 매각하고 2011년에는 백색가전 부문을 중국하이얼에 매각했으며 피카딜리 광고판마저 한국 현대자동차에게 내줬다. 결국 2013년 회사를 합병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 편 파나소닉은 2012년 산요 브랜드의 종말을 예고하면서 여전히 소비자에게 산요라는 브랜드가 먹히는 부문은 존치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중 하나였던 산요 TV는 2014년 일본 기업인 후나이(船井)[3]에 매각된다.

상당한 인지도가 있던 제품중 하나인 업소용 세탁기 브랜드 '산요 아쿠아' 'SANYO AQUA'는 중국기업 하이얼에 인수되어 분사 되어 'AQUA'로 사명 및 제품명을 변경했다.[4]

3. 한국 관련[편집]


일본 전자 회사 중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에 우호적인 기업이었다. 대부분의 일본 전자 회사들이 1970~80년대 당시 대만에 주로 투자한 것에 비해 산요는 한국에 주로 투자했다. 물론 대만에도 진출하였으며 대만에서의 산요는 1963년에 설립. 2013년 'SANLUX'로 변경되었다. 기술 이전도 제법 했고 한국에 투자도 기업 규모에 비해 많이한 편이다.

1957년에 산요와 합작한 한국 법인 '삼양전기'가 설립하면서 한국에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영문 표기는 일본과 동일한 'SANYO'가 아닌 한글 독음으로 'SAMYANG'이었다. 선풍기와 전기 난로를 주력으로 생산했으며, 1960년대 초반에는 합작으로 TV도 생산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삼양전기는 삼성전자가 설립된 이후로 자금난을 겪다가 결국 1975년에 최종 부도 처리되었다.

한국 마산자유무역지역에 '한국동경시리콘'이라는 이름의 반도체 생산 공장이 있었으나, 모기업의 실적 악화로 2008년에 문을 닫았다. 이 때 임직원 300명에게 5년치 임금을 일시불로 지급했다고 한다. 1986년 구미전자공단에서 한국동경전자에서 라이선스로 산요 소형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만들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산요전기와 한일 자동 펌프로 유명한 한일전기가 기술 제휴를 맺어 환풍기를 생산 했었다.[5]선풍기도 산요와 같이 EF로 시작하는 모델명을 사용했으며, 한일의 레드모터 브랜드도 사실 산요에서 1969년부터 선풍기에 쓰던 브랜드였다.# 한일전기는 사명 HANIL을 산요의 위 1960~70년대 로고 글꼴과 비슷한 글꼴을 썼다. 산요가 1986년 로고 글꼴을 바꾼 후에도 한일전기는 한참동안 로고를 바꾸지 않다가 2000년대 와서야 바꿨다. 이후 고딕체 형식의 글꼴을 거쳐 현재는 필기체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한일전기는 산요라는 상표를 달고 오디오를 한국에서 만들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쓰여진 제품도 팔았다. 물론 한국에 정식 판매하지는 않고 100% 수출했다. 한국샤프가 이런식으로 만든 오디오를 한국 시장에서도 출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일전기와의 제휴관계는 2007년에 종료되었다.

삼성전자도 설립 초기였던 1969년 한국 삼성전자공업과 일본 산요전기의 합작사인 '삼성-산요전기' 설립하여 TV 제품을 만들기도 했으며 이후 1975년 삼성산요가 '삼성전기'[6] 로 바꿨다가 1977년 삼성전자에 흡수합병되었다. 일본 언론들도 한국 전자업체의 성공과 자국 전자업체들의 몰락을 보도하며 항상 언급하는 일화다. 현재 삼성전자와 산요의 위상을 생각하면 참으로 상전벽해와도 같다.

한국에서 피처폰도 판매했다. 산요 이름으로 판매했던 기종은 C111SA, SMP-A017, SCP-B017, SCP-A011이 있었으며 통신사는 신세기통신이었다. 이후 휴대전화 사업이 카시오&히타치로 합쳐지며, 카시오 지즈원 CA201L이 한국에 마지막으로 판매된 휴대전화다. 통신사는 LGU+. C111SA의 경우 전형적인 바 타입 디자인에 로밍폰[7]으로 꽤 화제를 불렀으며 출시가 65만원. SMP-A017 휴대폰은 배터리가 길어야 1-2일 정도 가던 시절에 이 배터리가 2주 가는 16박 17일 폰으로 홍보했으며 대용량 배터리 기준 신민아가 양민아 시절에 광고했었다.


4. 여담[편집]


1965년 <밀림의 왕 레오>의 TV 애니판 스폰서를 맡았고, 시마 과장 시리즈 속 고요전기의 모델이 된 회사이다. 셰프 9권에 나오는 야요산업도 이 회사가 모델인 듯하다.

휴대용 라디오와 탁상용 카세트를 생산, 판매한 적이 있으나 산요 브랜드 자체가 명맥이 끊기면서 라디오, 카세트 시장에서 손 뗀 것으로 보인다.[8]

란마 1/2에서 텐도 도장에 설치된 TV가 산요전기 제품이다.[9]

90년대 아시아 축구 연맹(AFC)의 스폰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90년대 아시아 축구 연맹이 주관하는 각종 대회나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에서 산요의 광고판을 볼 수 있었으며 대회 MVP 선수에게는 산요 전자제품을 부상으로 주기도 했다.

정식 사명은 산요전기(三洋電機)였으나 サンヨー라는 가타가나 표기를 더 좋아하는지 제품 광고 등에는 サンヨー로 썼다. 반드시 한자로 썼던 東芝(도시바), 日立(히타치) 등과 대조적이다. 심지어 京セラ(교세라), 東レ(도레이) 같이 한자와 가나가 섞인 기업도 한자부분을 꼭 한자로 쓰는 기업도 있다. 東芝(도시바), 日立(히타치) 같은 경우는 차라리 로마자인 TOSHIBA, HITACHI로 쓰면 썼지 가나표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일본어 특유의 발음 특성 탓에 외국인 입장에서는 의외로 제대로 읽기 어려운 회사명이기도 했다. 로마자로 'SANYO'라 썼기에 한국인은 물론, 미국 등 영어권 국가 사람들도 '사뇨' 혹은 '싸뇨'로 읽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인들이 하는 발음을 IPA로 옮기면 [sãjo˸\]인데 한국인 귀에는 '상요'처럼 들린다.

북미(미국,캐나다), 멕시코,아르헨티나에서는 상표의 인지도가 높아 아직 생산된 제품을 볼 수 있다. (2021년 현재) 아르헨티나의 '뉴산그룹(GRUPO NEWSAN S.A)' 이라는 중국계 기업이 모기업 파나소닉에게서 상표권을 라이선스 받아 TV, 오디오, 전자렌지, 에어컨에 상표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도메인은 있으나 접속이 안되고 있다. '뉴산' 홈페이지에서도 '산요' 상표,제품은 지워져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30년 이상 피아트, 이스즈 등에 납품용 정품 카오디오 및 사제용 카스테레오를 생산한 적이 있다. 2010년대 이후, 카오디오가 음향을 재생하는 수준을 넘어 디지털 컨텐츠를 통합한 주행정보 시스템으로 진화하자 사업을 접었다.

이 산요전기 말고 다른 산요전기가 또 있다. 다른 산요전기는 山洋電気로, 여기에서 설명하는 산요전기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에 상장되어있는 나름 건실한 규모의 회사.

7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가 산요의 기술을 배우며 하청 생산하였지만, 2000년대엔 산요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삼성전자의 캠코더 제품을 하청 생산하기도 했다.

브랜드가 살아있을 당시 일본에서 백색 가전 중 가장 저가 브랜드였다. 가전 제품을 사러갔는데 돈이 좀 있으면 무조건 나쇼날, 좀 모자르면 도시바, 히타치, 조지루시, 타이거 등 중견기업 브랜드, 돈 없으면 결국 산요였다.[10]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리부트 시리즈에 등장하는 'TANTO'라는 가상의 방위산업체의 모티브가 된 회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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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과 와세다 대학 동문이며 절친이다. 1966년 이병철이 사카린 밀수사건 이후 삼성그룹의 경영에 손을 떼고 일본에 머물때 처음 전자사업을 조언하였고 삼성전자를 만들수 있게 도와준 인물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세상에 나왔을때 이미 세상을 떠났다.[2]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압박으로 전범과 이에 협력한 사람들을 공직과 일자리에서 추방하는 쇼와 천황의 칙령. 1946년 칙령에는 그 범위가 한정되었으나 1947년 개정 칙령에 20만 명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 폐지되었다.[3] 이 회사의 미국 자회사는 월마트와 샘스클럽의 주요 전자제품 납품처로, 산요를 비롯해 마그나복스, 필립스 등의 유명 상호를 사용한 제품을 만든다.[4] 산요의 상표로 제조된 2013년 마지막 모델이 2022년~2023년 경에 서비스 기간이 종료되었다.[5] 한일 환풍기의 부품은 산요전기의 부품을 사용했으며 2007년 한일전기와 기술제휴가 종료되어 산요전기의 부품을 쓸 수 없자 환풍기 틀을 플라스틱으로 만들거나 모터의 콘덴서를 없애버리는 등 한일의 환풍기가 초심을 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6] 현재의 삼성전기의 전신은 '삼성산요파츠'로 지금의 삼성전기와는 별개의 회사이다.[7] IDO의 글로벌 패스포트 지원 단말기였다.[8] 산요의 전성기 시절, 일명 라지카세라고 부르는 탁상용 카세트 시장에서 나름 강자였다. 반면에 그시절 나쇼날(파나소닉)은 테크닉스라는 브랜드로 좀 더 가격대가 있는 홈 오디오에 주력했지 탁상용 카세트 시장은 그저 우리도 만들긴 한다 정도로 무관심했다. 그러나 산요가 파나소닉에 합병될 무렵에는 1980년대와는 달리 탁상용 카세트 시장은 생산은 물론 브랜드까지도 중국산이 판치는, 대형 전자기업들은 하나 둘씩 버리는 시장이 된 탓에 파나소닉 브랜드로 카세트를 판매하기 보다는 아예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9] 에피소드마다 다르기 때문에 가끔씩 소니TV가 등장할때도 있다.[10] 백색가전 중 전기밥통, 믹서기 등 소형가전 한정. 조지루시, 타이거 등은 소형가전 중심이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을 만드는 회사는 아니다. 냉장고, 세탁기 등 대형 백색가전에서는 나름 잘 팔려서 점유율 1,2위를 다퉜다. 물론 이유는 역시 저렴해서. 대형 백색가전도 돈이 좀 있으면 무조건 나쇼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