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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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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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撒拉族(Sālāzú), 撒拉尔(Sālār)
영어
Salar People
살라르어
Salırlar, Salorlar / سالار
한국어
살라르족, 살납족


1. 개요
2. 인구와 분포
3. 역사
4. 언어
5. 종교
6. 복식
7. 생활
8. 음악
9.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파일:SalarTurkmensXian.jpg
중국 시안시에서 사반투이(Сабантуй)[1]를 기리는 살라르족.
살라르족은 중국 서북부의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튀르크어족 계통의 살라르어를 사용하며 다른 튀르크계 민족과 마찬가지로 순니파 이슬람을 믿고, 하나피파에 속한다.

투르크멘이나 아제르바이잔인, 터키인가가우즈인과 같은 오구즈 튀르크 계열이지만 각자가 각자 지역 선주민과 통혼을 하며 피가 섞이다 보니 유전 형질이 다르다. 오늘날 살라르족들의 하플로그룹 조사 결과 모계 유전자는 거의 동아시아계로 나오는 반면 부계 유전자의 상당부분은 유라시아 서부의 민족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나왔다. 살라르족은 후이족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나온다.


2. 인구와 분포[편집]


인구는 2010년 기준 13만 여명이며, 그 중 대부분인 10만여 명이 칭하이성에 산다. 간쑤성에 1만 3천여명 그리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4천여 명이 산다. 민족 자치 행정 구역으로는 칭하이성 하이둥시의 쉰화 살라르족 자치현(循化撒拉族自治县)과 간쑤성 내 지스산 보안족·동향족·살라르족 자치현(积石山保安族东乡族撒拉族自治县)이 있다.


3. 역사[편집]


서돌궐 제국의 살루르 족에 기원을 둔 부족으로, 1370년대 중앙아시아 차가타이 칸국티무르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할 때, 사마르칸트 지역의 튀르크인 일부가 명나라에 귀순한 것이 그 시초이다. 명나라에 귀순한 튀르크인 병사들은 간쑤성 국경지역에 정착하여 티베트인 여성들을 아내로 취하는데 이들이 살라르족의 기원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살라르족은 동쪽으로 이웃한 후이족 및 서쪽으로 이웃한 티베트인들과 밀접한 관계였는데 살라르족 남성들은 티베트인 여성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결혼하는 일이 많았고, 반대로 살라르족 여성들은 살라르족보다 비교적 돈이 더 많았던 후이족 남성에게로 시집가는 일이 흔했다 한다.

살라르족들은 조세와 군역을 제공하는 대신에 자치를 누렸으며, 둥샹족, 다우르족과 마찬가지로 둔전을 경작하였다. 당시 명나라 변경 지역이었던 간쑤성 남부 변경(오늘날의 칭하이성 동부)에 주둔하면서 티베트계 부족들을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명나라 치세 동안 17차례, 청나라 치세 동안 5차례 군사 작전에 동원되었다.


4. 언어[편집]


튀르크어족살라르어를 쓰며, 과거에는 아랍 문자로 표기했으나 현재는 로마자가 사용된다. 칭하이성의 살라르족은 티베트어와 표준 중국어 또한 할 줄 안다. 차가타이 계통의 위구르인과는 달리 정 반대방향에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인, 터키인과 같은 오구즈어파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은근히 투르크멘어와 비슷하다. 터키인에게 들려줘도 중국식 억양이 심하지 않으면 간단한 내용은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5. 종교[편집]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다. 하나피파에 속한다. 같은 이슬람교를 믿는 후이족과 풍속이 유사하다. 살라르족에게 영향을 준 낙슈반디야 수피 교단은 티베트 불교의 겔룩파의 영향을 받은 종파로, 한편으로는 티베트 불교와의 유사점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는 살라르족의 이웃 티베트계 주민들을 이슬람교로 빠른 속도로 개종시킬 수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수피 성직자들이 지나치게 재산을 탐해도 평신도들이 견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명나라 치세 당시 둔전병이던 살라르족들은 청나라 치세 영토가 확장되면서 그냥 평범한 소수민족 집단으로 전락하였고 상당수가 후이족 지주들의 땅을 부쳐먹고 사는 소작농들이 되었는데, 후이족 지주들은 대개 율법학자들을 겸했다. 1761년 회족 마명심은 기존 낙슈반디야 교단과 다르게 율법학자들에게 청빈한 생활을 강조하면서 회족 사회 내에서 여러 논란을 일으켰는데, 살라르족 소작농들 눈에서 성직자들에게 청빈한 생활을 강조하는 자흐리야 교단이야말로 진정한 이슬람 교단으로 비춰져보이기 시작했다.

간쑤성의 후이족 상당수가 마명심이 새로 도입한 자흐리야 수피 교단을 따르자, 기존 낙슈반디야 교단(쿠피야 교단)[2]에서는 자흐리야 수피 교단의 예배법이 이단이라고 공격하며 잦은 패싸움이 벌어졌다. 살라르족들은 마명심의 자흐리야 교단 편에 서서 쿠피야 교단과 대치하였다. 1781년 마명심이 투옥당하자 살라르족들이 마명심의 석방을 요청하며 폭동을 일으켰는데, 이를 보고 당황한 청나라 관리들이 마명심을 성벽에서 밀어떨어트려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교단주가 죽자 충격을 받은 살라르족들은 대놓고 청나라 조정에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을 진압한 청나라 조정은 3년 후에 살라르족들이 또 한 번 반란을 일으키자 살라르족 상당수를 천산북로로 귀양보낸다. 이렇게 귀양을 간 살라르족들은 대개 후이족과 동화되었지만 일부는 아직도 살라르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오늘날 일리 카자흐 자치주에 거주하는 살라르족 인구 4천여 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6. 복식[편집]


파일:external/www.teacher.aedocenter.com/kd23-20.jpg
색상이 선명한 옷을 주로 입으며, 여성들은 베일을 쓴다.


7. 생활[편집]


전통적으로 살라르족들은 우즈베크인과 마찬가지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수렵과 목축을 하기도 한다.


8. 음악[편집]








9. 같이 보기[편집]



[1] 불가르 칸국에서 시작된 하절기 축제이다. 타타르어로 “사반(Сабан)”은 “쟁기” 혹은 “”, “투이(Туе)”는 “결혼” 혹은 “축제”를 의미한다는 것을 통하여 봄 파종기를 기념하는 축제임을 알 수 있다. 러시아(타타르스탄 공화국,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추바시야 공화국)와 카자흐스탄에서도 공휴일로써 이를 기념한다.[2] 조용히 지크르를 암송하는 교단이라는 뜻이다. 크게 소리내어 지크르를 하는 교단이라는 뜻의 자흐리야 교단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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