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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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1. 삼대양심
3. 삼대오물이 다가 아니다
4. 여담



1. 개요[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구 일본군의 패망을 앞당긴 일본군 장성들 3명을 묶어서 현대 일본에서 일컫는 말이다. 셋 모두 규슈 출신이다.[1]

다만 개요의 맨 첫줄에 '현대 일본에서 일컫는 말'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전후 당시에 언급된 단어가 아니며, 매체나 서적 등에서 삼간사우를 언급한 사례는 있지만 삼대오물을 언급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구글 고급검색 기준으로 '三大汚物' 을 검색하면 3천여 건 정도만 검색되며, 그나마도 한국어 자료, 중국어 자료, 혹은 다른 의미의 삼대오물[2]이 절반 가량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어 자체는 일본에서 만들어졌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도 그다지 유행하는 단어로 보기 어려움이 있으며, 당연히 이들의 존재를 아는 소수를 제외하면 이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일본 국민이 더 많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태평양 전쟁이라고 하는 거대한 전쟁을 말아먹는데 일조하였다는 점, 그리고 그 덕분에 독립과 승전을 맞이한 한국중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어둠의 독립군들 같은 '유머용 자료'로서 삼대오물이라는 단어가 활용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무타구치 렌야를 '모전구렴야'라고 하듯이 이들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꿔서 부르기도 할 지경이다.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는 극우들도 버릴 만큼의 업적을 남겼다. 이 밖에도 일본군을 패전으로 이끈 도조 히데키의 측근 7명이 '삼간사우(三奸四愚)'라는 이름으로 까이기도 하니 그쪽도 참고. 참고로 삼간사우보다 삼대오물이 더 무능하다.

일본 육군의 최대 파벌이던 일본육군사관학교 - 육군대학 출신이고, 도조 히데키가 내각을 뒤엎어 전시 수상에 취임한 뒤 능력과 관계 없이 코드인사로 요직에 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연, 지연이 조직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

하지만 의외로 이 삼대오물 일원들은 모두 일본군의 야만성과 비인도적 광기만은 극한으로 배척하여, 최소한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전쟁범죄와는 무관한 자들이었다. 그저 정말로 놀라우리만치 무능한 군인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전쟁범죄와 관련된 쪽으로는 상식적인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는 될지언정 진심 어린 증오는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3]

독일군에서도 헤르만 괴링, 빌헬름 카이텔, 페르디난트 쇠르너가 삼대오물과 거의 유사한 포지션이라 평가받는다.[4] 그러나 최소한 전쟁범죄에 관해선 나름 엄격했던 삼대오물들과 달리 독일군의 삼대오물은 셋 모두 소련군, 정치장교, 민간인, 심지어 같은 독일군을 향해서도 행한 조직적인 전쟁범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2. 업적[편집]


무능한 지휘관은 적군보다 무섭다.

오자병법

세 명 모두 위에서 언급한 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장도로 무능한 지휘관이 조직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세히 따지면 굉장히 많으나,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 무타구치 렌야 - 결과적으로 보면 이 사람이 아니었어도 벌어졌을 전쟁이었지만, 중일전쟁일으킨 원흉이며, 수만 명의 병사를 굶어 죽게 만든[5][6] 그 유명한 임팔 전투의 지휘관이다. 그것도 모자라, 전후 자신의 책임을 "나는 잘못 없어, 부하들이 못한 거야"라며 회피하는 추태까지 보였다.


  • 도미나가 교지 - 위에 적힌 스기야마 하지메조차 포기한 무능 끝판왕. 능력은 없는데 뒤를 봐주는 세력이 워낙 거대해서 이 인간을 어디에 써먹을지 상당히 고심했다고 하며, 남방 작전 전역에 부임시키고 나서는 드디어 저 딱다구리를 내 눈 앞에서 치웠다.라 말하기도 했다. 1944년 남방 전선에서 필리핀의 제4항공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뒤, 62회 카미카제를 시도하여 별 소득 없이 400여 기의 전투기를 잃었다. 그리고 1945년 1월 미군이 필리핀 공략을 시작하자마자 항공군 총사령관 주제에 적전도주했다. 단순 도주가 아니라 그야말로 탈영의 신 역사를 열었다. 무능한데 그나마 뭐라도 하려는 의지라도 있던 무타구치와 달리 무능하고 행동력조차 없는 무능함의 상징. 하지만 이성은 남아 있던지라 전쟁 범죄는 앞장서서 막았다.

2.1. 삼대양심[편집]


뜻밖이라면 뜻밖이겠지만, 세 명 모두 전쟁범죄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일본군이 중국에서는 난징 대학살을 비롯해 수 차례에 걸쳐 사람들을 십여 만씩 죽여댔으며,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폭행하는 등 악행을 일삼던 일본군에서, 이 삼대오물은 특이하게도 전쟁범죄 쪽에 거의 손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광기에 미쳐 시도하려던 부하들과 다른 부대를 아군과의 전투까지 불사하겠다며 뜯어말리기까지 했다.

이것이 어찌 보면 지금까지도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7] 이렇게 무능하고 어리석은 지휘관들이 본질적으로 악독한 놈들이었다면 농담거리로도 쓰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8] 이들은 점령지에서 자체적으로 전쟁범죄를 자제했고[9], 그 덕분에 이 세 사람이 "멍청이"로 기억될 뿐 "개새끼"로 역사에 남지는 않았기에 각종 농담의 주제로 잘 써먹히게 된 것. 또한 이들이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점을 참작하여 결국 연합국 측에서도 가벼운 처벌만 내리고 끝냄으로써 본인들의 삶까지 유지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전쟁범죄 관련으로는 대단히 깨끗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3. 삼대오물이 다가 아니다[편집]


사실 이 세 명에게 오물이자 멍청이라고 패전 책임을 떠넘길 만큼 일본군의 다른 작자들이 훌륭했던 건 절대로 아니었다. 일본이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가 대실패하였고, 마침내는 핵공격을 당하는 지경까지 가서 참패한 것은 일본군 자체의 문제이다. 되려 삼대오물이나 삼간사우는 최소한 포로나 점령지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나 약탈은 금하기라도 했지 다른 일본군 장성들은 "약탈과 학살에는 귀신, 전쟁에는 등신"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무능한 주제에 범죄라는 범죄는 다 저질렀고, 이는 일본군 패망에 크게 기여했다.[10]

따라서 그 일본군의 수뇌들인 고위 장교진과 정치인들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로써, '삼대오물'과 '삼간사우'는 마치 '특정 집단 내에서 꼬투리를 잡아서 처참하게 패전한' 자국 내의 일부 소수에게만 멸칭을 붙이고 조롱함으로서 일본군 전체적으로 비판 받아야 할 점을 가리는, 일종의 책임 회피용 단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삼대오물로 꼽힌 이 3명 모두 군인으로서 계급장을 단 뒤의 행보가 너무 개막장이라서 그렇지, 전후 도조 히데키는 자살쇼를 벌이고 재판 내내 천황 핑계나 대는 등 최고 책임자로 책임을 지기는커녕[11], 무타구치 렌야 못지않게 남 탓을 엄청나게 많이 하였고, 그 외 다른 전범들도 자신의 악행을 부하들에게 뒤집어씌우고 혼자만 살아남는 등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

4. 여담[편집]


일본군에는 오카무라 야스지처럼 유능하다 하더라도 도덕성이나 인격은 개막장인 자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무능하기는 삼대오물 못지않게 무능한 주제에 인격마저도 그들 못지 않을 정도로 개차반인간 말종이면서 이미 이 삼대오물을 가뿐히 넘어서는 무능함을 지녔다는 악평을 들을 수도 있는 사람들도 숱하게 많았다. 그저 정치적 이유 때문에 취사선택되어 덜 욕 먹거나 더 욕 먹는 차이일 뿐이다.

삼대오물은 인간성 면으로는 낫기에 인간 대접을 받는 거지만,[12] 휘하 장병을 극심하게 학대한 탓에 졸장을 넘어서 혹장(酷將)으로까지 불리는 하나야 타다시[13], 그리고 버마에서 적전도주를 감행했던 기무라 헤이타로,[14] 치치시마의 식인귀 다치바나 요시오, 마루타로 유명한 수많은 포로들과 민간인들을 동원해 생체실험을 자행한 전쟁범죄의 끝을 보여준 731 부대의 부대장 이시이 시로 등은 악마 그 자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애초에 그냥 절대로 군인 계급장을 달아서는 안 되었던 무능한 잉여들이었을 뿐이다. 이들은 사람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자신들의 그릇에 맞지도 않는 엄청난 중책을 맡아버린 바람에 인생이 꼬어버렸을 뿐이다. 이 당시 전체주의 일제가 얼마나 막 나가고 상부에서도 이런 정신 나간 파시스트스런 잔인함을 오히려 장려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두가 잔혹하고 악한 일을 당연하게 여길 때 이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이 3명은 군인으로 봤을 때는 실격이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도덕적 용기와 양심은 오히려 평범한 이들보다 뛰어난 편이라 좋게 평가해 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본업인 '군인'으로는 처참하게 실패한 작자들인데, 막상 군인임을 배제하고 '인간'으로서 평가하면 오히려 좋게 평가해 줄 여지가 있는 양반들이라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대단히 복합적인 역사의 모습이다.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었는데, 아돌프 히틀러의 주치의였던 테오도어 모렐이 바로 그 예시. 의사로서는 그야말로 돌팔이에 나치 신봉자였지만, 뇌물 수수 정도의 소소한(?) 비리 외엔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각종 반인륜 전쟁 범죄에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히틀러의 개인 주치의로서 그의 건강 관리만 담당했다. 체포될 당시 합병증으로 인해 법정에 세우기 힘들 만큼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 점도 있지만, 반인륜적인 정신나간 짓거리는 저지르지 않은 덕분에 히틀러의 최측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풀려나 자택에서 편히 누워 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빌헬름 카이텔군인으로서는 무능한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성격은 좋았다. 다만 삼대오물은 전범 행위가 거의 없어 금방 풀려난 반면, 이 쪽은 독일군의 전범 행위를 방기한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츠지 마사노부한국에서 무타구치와 쌍으로 조롱 받지만, 일본 기준으로는 삼간사우보다는 개념인 취급이다. 그러나 해당 문서에 보다시피 일본에서 츠지의 그런 취급은 그저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해서 그런 것 뿐이지 아주 간사하고 흉악했지만 삼대오물은 걍 멍청하고 무능하며 책임감 없는 전형적인 높으신 분들일 뿐이다. 여담으로, 츠지 마사노부는 도미나가 교지와 호형호제할 만큼 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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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미나가는 나가사키현, 무타구치는 사가현, 스기야마는 후쿠오카현이다. 게다가 셋 다 서로 붙어있는 이웃현들이다.[2] 예를 들어서 헤이세이 게임 3대 오물.[3] 그나마 이 셋 중에서 진심 어린 증오를 받아본 인물은 삼대오물의 본좌격인 무타구치 렌야로, 휘하 부하들에게 무지막지한 증오를 받았다. 그나마 이 쪽도 이 짓거리는 안 했다.[4] 다만 이 셋은 어느 정도 실적과 능력은 있었다. 사실 헤르만 괴링은 애매한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나치 독일의 공식 2인자이자 제국원수의 자리에 올라간 인물이었으며, 독일 공군인 루프트바페의 창설 주역이었다. 전쟁 후반에 워낙 트롤짓을 많이 해서 그렇지, 분명히 군사적인 재능과 이를 받혀줄 능력 또한 있었다.[5] 다만 그 와중에도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인육은 절대로 먹지 못하도록 해서 렌야가 전쟁범죄자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에 한 몫했다.[6] 오죽했으면 임팔 작전에서 굶어죽을 뻔한 장교가 무타구치의 장례식장에 찾아봐서 지휘관이고 나발이고 깽판을 부렸다.[7] 당장에 한국에서 이들을 칭할 때 '어둠의 독립군'이라고까지 하는데 한국에서 독립군이 의미하는 바를 감안하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8] 물론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희화화 같은 예외도 있지만.[9] 다만 자리를 비운 사이 병사들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전쟁범죄까지는 본인들도 능력 밖의 일인지라 막지 못했다. 그래도 이들은 전부터 최대한 병사들에게 전쟁범죄를 자제하라고 당부했고, 무타구치 렌야는 복귀해서 전쟁범죄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그 즉시 주동자를 끌어내 그 자리에서 총살시켰다.[10] 일본군의 학살에 점령지 원주민을 포함한 민간인들은 연합군의 정보원 역할을 하거나 자체적으로 게릴라를 조직해 저항하였고, 일부 원주민들은 일본군을 골탕먹일 요량으로 지름길이라고 속이고 독충이나 독초 등이 많거나 혹은 늪지대로 길안내를 하였으며, 의도적으로 풍토병 치료법을 안 알려주는 등 저항했다.[11] 실제로 미국이나 다른 연합국에서도 당시 쇼와 천황도 전범으로 사형을 때리고 천황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맥아더가 일본 통제에 천황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해서 도조의 주장은 무시되었다.[12] 사실 일본군에 있어 전설적인 존재로 천수를 누린 이시이 시로를 생각한다면 삼대오물이라고 불리는 3명이 당연히 일본군 엘리트들에 비해 낫다.[13] 다만 하나야 타다시 역시 민간인 및 포로 학살 같은 인간 말종이나 하는 짓은 일절 안 했기에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영부조리의 화신인지라 당연히 부하들의 거센 증오를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무타구치가 형편없는 졸전으로 부하들을 거하게 날려먹어 생존한 부하들이 무타구치의 장례식에 '거의' (물론 온 사람이 있긴 했는데, 무타구치를 추모하러 온 게 아니라 그의 위패를 때려부수려고 온 것이었다.) 오지 않았듯 이 사람의 장례식에도 어떤 부하들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아먹은 정도는 작아서 당시 일본 수상이던 기시 노부스케(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가 성대하게 장례식을 열어주었다.[14] 이 사람도 도미나가 교지처럼 적전도주로 전선 하나를 말아먹어서 도미나가 교지가 처벌 받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다. 다만 기무라 헤이타로가 버마에 부임했을 당시에는 이미 임팔 전투 패배로 전황이 기운 뒤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