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니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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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 우승자
파일:오륜기(여백X).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헤라르트 판 펠더
(2002)

파일:미국 국기.svg 샤니 데이비스
(2006, 2010)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스테판 흐로트하위스
(2014)


샤니 데이비스
Shani Davis

출생
1982년 8월 13일 (41세)
일리노이 주 시카고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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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88cm, 86kg
학력
마켓 고등학교
노던 미시건 대학교
종목
스피드 스케이팅(1999~2019)
주종목: 1000m, 1500m, 팀추월

쇼트트랙(1999~2005)
주종목: 1000m, 1500m
가족
부모님, 아들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1999-00~2005-06 시즌
2.2. 2006-07~2009-10 시즌
2.3. 2010-11~2017-18 시즌
2.4. 은퇴
3. 수상 기록
4.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의 前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선수이며,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전설 중 한명이다. 2000년대 미국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에서 쇼트트랙에 아폴로 안톤 오노가 있었다면 롱트랙은 샤니 데이비스가 있었다.[1]


2. 선수 경력[편집]



2.1. 1999-00~2005-06 시즌[편집]


주니어 시절부터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을 겸업하던 선수였으나 두각을 보이던 롱트랙과는 다르게 쇼트트랙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또한 190cm 가까이 되는 신체 조건 때문에 쇼트트랙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다.[2][3] 2001-02 시즌 이후 스피드 스케이팅에 조금 더 집중하기 시작했고, 2003-04 시즌부터 제대로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하며 세계선수권(종목별) 대회 1500m를 우승하며 자신의 첫 메이저 대회 금메달을 따냄과 동시에 종합 대회에도 출전에 성공하며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이 상승세를 계속 이어가며 2004-05 시즌에는 종합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 시즌 준우승의 아쉬움을 털어버렸다. 같은 시즌 2005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 참가해 50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딴다. 하지만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쇼트트랙을 은퇴하고 롱트랙에 전념하기로 결정한다.


2.1.1.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편집]


1000m에서 금메달,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스피드 스케이팅 중장거리 최강자 중 한명임을 증명했다.[4] 주종목이 아니었던 5000m에서는 7위를 기록하며 나름 선전했다. 하지만 그가 따낸 메달보다 후술할 논란 때문에 빛이 바랜 경향이 있다.


2.1.1.1. 팀추월 불참 논란[편집]

본격적인 대회 시작도 전에 팀추월 종목과 관련해서 코치진 및 동료들과 갈등을 빚었다. 데이비스는 애초부터 팀추월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당시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었던 데이비스의 팀추월 출전에 미련이 남았던 대표팀 코치 톰 쿠시맨과 미국 빙상연맹이 독단적으로 '나중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선수 명단에 데이비스를 교체 선수로 포함 시킨 채 IOC제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와전되어 원래 데이비스가 팀추월에 출전할 예정이었는데 개인전에만 집중하기 위해 미국 빙연에 자신을 팀추월 주전 명단에서 교체 명단으로 내려달라 부탁했다고 관계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5] 이를 전해 들은 팀동료 채드 헤드릭은 팀추월에 출전하지 않는 것은 데이비스의 결정이니 그를 존중해야 한다 말했으나 넌지시 서운함을 표하기도 했다. 결국 데이비스는 팀추월에 불참했고 미국 남자 대표팀은 준준결승에서 이탈리아에게 패배하며 최종 7위를 기록한다.

이렇게 일단락되는듯 했으나 2일뒤 데이비스는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7위를 기록했던 헤드릭이 데이비스의 악수를 거절하면서 다시 논란이 수면위로 올라온다.[6] 거기다 또 다른 대표팀 코치이자 팀닥터였던 에릭 하이든[7]을 포함한 몇 코치들이 데이비스를 '이기적인 선수'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논란이 더욱 커지게되었고 이것이 미국 언론에 까지 퍼지게 되며 데이비스에 대한 여론 악화와 비난이 지속된다. 하지만 데이비스 측이나 미국 빙상연맹에서 이에 대해 제대로 된 공식 해명을 내놓지 않으면서 한동안 이미지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이 되어서야 쿠시맨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팀추월 사건은 데이비스가 아닌 본인과 빙상연맹의 책임이라고 해명했으며 당시 개인전에 집중하겠다는 그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밝혔다. 다른 빙상연맹 관계자들도 교체 명단에 데이비스를 포함시켰던 것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팀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며 데이비스의 잘못은 없었다고 언급했다. 한편 악수거부 사건 당사자였던 채드 헤드릭은 데이비스에 대한 악감정은 없지만 팀추월에서 금메달을 딸 절호의 기회를 날린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쉽다는 말을 남겼다.[8]


2.2. 2006-07~2009-10 시즌[편집]


계속해서 폼을 이어나갔으며 2007, 2008년에 세계선수권(종목별)에서 1000m 2연패, 2009년에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스프린트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에릭 하이든 이후로 모든 스피드 스케이팅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해본 두번째 선수가 되었다.[9]


2.2.1.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편집]


토리노 올림픽때와는 달리 500m에도 참가하게 되어 총 4개의 종목에 참가한다. 1000m에서 우승하며[10]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2연패 기록을 달성한다. 1500m에서도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언더도그였던 마르크 타위터르트에게 패배하며 다시 한번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5000m를 12위로 마무리 했으며, 올림픽 첫 출전이었던 500m에서는 첫 레이스를 망치고 기권했다.


2.3. 2010-11~2017-18 시즌[편집]


2011 세계선수권(종목별)에서 처음으로 팀추월 종목에 참가했으며, 본 종목 최강자인 네덜란드의 5연패를 막고 우승하게 되어 더욱 값지게 되었다. 참고로 이 이후로 네덜란드는 세계선수권 팀추월 8연패를 기록중이다. 운이 따라주기는 했지만 샤니 데이비스의 팀추월 참가가 엄청난 전력상승을 일으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셈이다. 괜히 미국 빙상 관계자들이 예전부터 데이비스가 팀추월에도 참가하도록 압박을 넣은 것이 아니다.

2010-11 시즌 이후로 에이징 커브가 오며 서서히 기량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고 더 이상 예전처럼 종합이나 스프린트 대회에서 활약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2015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한번 1000m 우승을 거머쥐며 건재를 과시했다. 당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금메달이었을 정도로 이변이었다.

2.3.1. 2014 소치 동계올림픽[편집]


1000m에서 8위, 500m에서 24위, 1500m에서 11위를 기록하며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올림픽 팀추월에도 첫 출전을 하게됐지만 준준결승에서 캐나다를 만나 탈락한다. 이전 두 올림픽에서 모두 참가했었던 5000m는 참가하지 않았다.


2.3.2. 2018 평창 동계올림픽[편집]


1500m에서 19위, 1000m에서 7위로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을 마무리 지었다.


2.3.2.1. 개회식 기수 논란[편집]

평창 올림픽 개회식 하루 전날 트위터로 자신이 미국 올림픽 대표팀 기수로 선택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기수 후보로 뽑혔던 선수들은 샤니 데이비스와 여자 루지 선수 에린 햄린이었는데, 각각 4표를 받아 동점이 되자 동전 던지기로 기수를 결정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햄린이 기수를 맡게되자 불명예스러운 결정이었다 발언한다. 거기에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월이 '흑인 역사의 달'인것을 감안해 #BlackHistoryMonth2018를 트윗에 태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회식 하루 전날 미국 대표팀의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는 행동을[11] 한 것과 인종을 이용해 여론몰이를 시도했던 것 때문에 미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결국 자신의 트위터를 팔로워 공개로 전환했다.

샤니 데이비스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둘을 비교했을때 훨씬 더 뛰어난 업적을 남긴 샤니 데이비스가 기수로 선택되는게 마땅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비록 햄린이 유럽의 전유물인 루지에서 비유럽 국적 여자 선수 최초로 올림픽 메달[12]을 따낸 선수일지라도 2000년대 스피드 스케이팅을 주름잡던 데이비스의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경력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 팀동료이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마찰을 빚었던 채드 헤드릭은 '대표팀 기수이든 아니든 미국 역사상 최고의 동계올림픽 선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거야'라고 트윗을 남기며 데이비스를 지지했다.


2.4. 은퇴[편집]


2018-19시즌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은퇴가 기정사실화가 되었고 2019년 11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3. 수상 기록[편집]


파일:스피드 스케이팅 픽토그램.svg 롱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06 토리노
1000m
금메달
2010 밴쿠버
1000m
은메달
2006 토리노
1500m
은메달
2010 밴쿠버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종합)
금메달
2005 모스크바
종합
금메달
2006 캘거리
종합
은메달
2004 하마르
종합
동메달
2008 베를린
종합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스프린트)
금메달
2009 모스크바
스프린트
은메달
2014 나가노
스프린트
동메달
2007 하마르
스프린트
동메달
2011 헤이렌베인
스프린트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종목별)
금메달
2004 서울
1500m
금메달
2007 솔트레이크시티
1000m
금메달
2007 솔트레이크시티
1500m
금메달
2008 나가노
1000m
금메달
2009 밴쿠버
1500m
금메달
2011 인첼
1000m
금메달
2011 인첼
팀추월
금메달
2015 헤이렌베인
1000m
은메달
2008 나가노
1500m
은메달
2011 인첼
1500m
은메달
2012 헤이렌베인
팀추월
은메달
2013 소치
1500m
동메달
2009 밴쿠버
1000m
동메달
2012 헤이렌베인
1000m
동메달
2013 소치
1000m
파일: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픽토그램.svg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동메달
2005 베이징
5000m 계주


4. 여담[편집]



[1] 종목별 영향력으로 따진다면 데이비스가 더 대단한 선수다.[2] 쇼트트랙에서 190cm 가까이 되는 키를 가지고도 경쟁력을 갖췄던 선수는 올리비에 쟝이 있다.[3] 엄청난 업적을 쌓은 롱트랙에서와는 다르게 쇼트트랙에서는 국제무대에서 세계선수권 계주 동메달 1개, 월드컵 계주 은메달 1개 밖에 없을 정도로 하위권의 기량이었다.[4] 1500m에서도 우승후보였으나 다크호스이자 홈버프를 받았던 이탈리아의 엔리코 파브리스에게 뒤쳐지며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5] 참고로 교체 명단에 포함된 선수는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참가할 수 없을 시에만 출전이 가능해 예선에도 참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참이나 다름없다.[6] 약 한달 뒤 열린 세계선수권(종합)에서는 레이스가 끝나고 헤드릭과 어깨동무를 하는등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7] 스피드 스케이팅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 미국의 레전드다.[8] 실제로 팀추월은 해당 올림픽에서 처음 도입되었던 종목이었으며, 바로 이전해 세계선수권에서 네덜란드가 최초로 우승하기는 했지만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종목이었기 때문에 다른 팀들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데이비스가 2011 세계선수권 팀추월에 첫 출전과 동시에 팀에 우승을 가져다줬기 때문에 2006 토리노 올림픽 당시 전성기를 맞이하던 데이비스가 팀추월에 출전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던게 아니다.[9] 세번째는 일본 여자 선수 타카기 미호.[10] 대한민국의 모태범을 단 100분의 18초의 차이로 누르고 우승한 것이다.[11] 사소해 보이지만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는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으며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12]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동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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