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로시 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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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前 축구인


파일:Sárosi Béla.jpg

이름
샤로시 벨러[1]
Sárosi Béla
출생
1919년 5월 1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부다페스트
사망
1993년 6월 15일 (향년 74세)
스페인 사라고사
국적
[[헝가리|

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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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92cm | 체중 88kg
직업
축구선수 (하프백 / 은퇴)
축구감독 은퇴
소속
선수
페렌츠바로시 TC (1937~1946)
볼로냐 FC 1909 (1946~1949)
SSC 바리 (1949~1950)
후니오르 바란킬라 (1950~1951)
FC 포르투 (1951)
레알 사라고사 (1952)
FC 루가노 (1953~1955)
미요나리오스 FC (1955)
감독
FC 루가노 (1953~1955)
FC 바젤 (1955~1957)
SSV 얀 레겐스부르크 (1957~1958)
알레마니아 아헨 (1958~1959)
K 베이르스홋 VAC (1960~1961)
국가대표
파일: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5경기 3골 (헝가리 / 1939~1945)
가족
샤로시 죄르지

1. 개요
2. 생애[2]
2.1. 선수 생활
2.2.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4. 수상
4.1. 대회 기록



1. 개요[편집]


헝가리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3][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샤로시 벨러는 1937년부터 형 샤로시 죄르지가 뛰고 있던 헝가리의 명문 페렌츠바로시 TC에서 뛰기 시작했다.

페렌츠바로시는 샤로시의 데뷔 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다음 시즌인 1938-39 시즌에는 우이페슈트 FC에 밀려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1939-40 시즌과 그 다음시즌까지 페렌츠바로시는 리그 2연패를 거두었고 그 이후 샤로시의 커리어에서 다신 리그 우승은 없었다.

1946년에 샤로시는 헝가리를 떠나 이탈리아볼로냐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당시 볼로냐에도 아메데오 비아바티같은 유명 선수가 있었지만 볼로냐는 5위 정도의 성적에 계속 머물렀다.

그 이후의 샤로시는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저니맨 커리어를 이어가다가 1955년에 축구화를 벗었다.


2.1.2. 국가대표[편집]


샤로시는 1938년 월드컵 당시 헝가리 대표팀에 선발은 되었지만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선배들이 월드컵 준우승의 결과를 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샤로시의 공식적인 A매치 데뷔전은 1939년 3월 16일에 있었던 프랑스전이었고 헝가리는 프랑스와 2대2로 비겼다.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샤로시는 헝가리 대표팀에서 주전 하프백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1945년, 샤로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펼쳐진 2번의 A매치에 모두 참가했고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에 2대0, 루마니아에 7대2로 승리했다. 루마니아전이 샤로시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이다.


2.2. 이후[편집]


샤로시는 FC 루가노에서의 선수 겸 감독 커리어를 시작으로 FC 바젤, SSV 얀 레겐스부르크, 알레마니아 아헨, K 베이르스홋 VAC 등에서 감독직을 맡았지만 우승 등의 굵직한 커리어는 추가하지 못했다.

감독직에서 은퇴한 이후엔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여생을 보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샤로시는 체격이 커서 속도와 민첩성에 약점을 보였지만 연계와 공중볼 경합에 능했다.


4. 수상[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1] 헝가리의 주 민족인 마자르족은 동양에서 왔기 때문에 사람의 이름을 쓸 때 서양식 배치인 이름과 성의 순서가 아닌 동양식 배치인 성과 이름의 순서를 사용한다. 따라서 헝가리식 이름은 샤로시 벨러(Sárosi Béla)가 된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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