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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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병장, 서정만
2. 익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서정만


1. 의병장, 서정만[편집]



성명
서정만(徐貞萬)
생몰
1880년 ~ 1909년 3월 18일
출생지
미상
사망지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원원리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서정만은 1880년생으로 추정되지만 태어난 장소와 의병에 가담하기 전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는 1908년 음력 2월 6일에 대한제국군 정교(正校) 출신인 정용대(鄭用大) 의병장의 의병에 가담하여 경기도 적성, 양주, 풍덕, 교하, 통진 등지에서 일본군과 수차례 접전을 치렀다. 그러다가 1909년 3월 5일 자택으로 돌아갔다가 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암면 조미현에서 일본군 제2토벌대 및 제2정찰대 연합대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일경에게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원원리 산중에 총기를 은닉했다고 말한 뒤 3월 18일에 그곳에 인도되었다가 도중에 탈출을 시도했으나 결국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서정만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익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서정만[편집]



성명
서정만(徐廷萬)
이명
서공유(徐公有)
본관
달성 서씨
생몰
1889년 6월 13일 ~ 1919년 4월 4일
출생지
전라도 익산군 북일면 현영리
(현 전라북도 익산시 현영동)[1]
사망지
전라북도 익산군 이리 장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서정만은 1889년 6월 13일 전라도 익산군 북일면 현영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현영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4일 문용기(文鏞祺), 박도현(朴道賢), 장경춘(張京春)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이리 장터에서 시위대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일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서정만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1994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1] 달성 서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