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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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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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집때까지의 라인업. 역시계 방향으로 몽키(베이스), TOP(리드기타,백킹보컬), 서태지(리드보컬), 헤프(드럼), (백킹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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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집때의 라인업. 왼쪽부터 강준형(베이스), TOP(리드기타,백보컬), 서태지(리드보컬), 김석중(키보드,신시사이저,MIDI,코러스), 최현진(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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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9집) 라인업. 왼쪽부터 최현진(드럼, 퍼커션), 강준형(베이스), 서태지(리드보컬), 닥스킴(키보드, 신시사이저, MIDI, 코러스), TOP(리드기타, 백보컬)

1. 개요
2. 역사
2.1.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2.2. 솔로 활동 이후
3. 멤버
3.1. 현 멤버
3.1.3. 강준형
3.1.4. 최현진
3.1.5. 사무엘 킴(닥스킴)
3.2. 전 멤버
3.2.1. 헤프 홀터
3.2.2. 박상욱
3.2.3. 최창록
4. 현재까지 참여했던 앨범들



1. 개요[편집]


서태지의 공연 때마다 참여하는 세션 밴드. 주로 "서태지 밴드"라고 불린다. 2000년에 결성 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활동기에 비해 휴식기가 엄청나게(...) 기나긴 서태지이기에[1] 활동 기간도 짧고 자주 볼 수도 없다. 비슷한 사례로는 일본비주얼계 아티스트 각트의 세션 밴드인 GACKT JOB등이 있다.


2. 역사[편집]



2.1.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편집]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고 1집을 내던 시절부터 기타에 서태지 본인(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Blind Love)과 손무현(내 모든 것), 신대철(락앤롤 댄스) 그리고 이태섭(락앤롤 댄스 메탈 버전), 백코러스에 김종서(환상속의 그대), 색소폰에 이정식 등 서태지 음반의 세션들은 꽤 화려했다. 다만 이것은 서태지가 당대 최고의 메탈밴드 중 하나였던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출신인지라 그냥 인맥으로 엮다 보니 자연히 국가대표급 라인업이 되어버린 것에 가깝긴 했다. 베이스는 서태지가 직접 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외에도 K2의 초기 멤버였던 이태섭이 기타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태섭이 2집 하여가의 기타 애드립 부분에서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서태지가 하여가 간주 부분의 기타솔로를 이태섭에게 맡겼는데 유럽 밴드 테스타먼트의 기타 속주를 카피해서 실어버린 것. 물론 테스타먼트도 스코틀랜드 민요를 메탈로 편곡한거라 완전히 표절로 단정짓기에는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어쨌거나 편곡을 베낀 의도가 담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서태지 또한 전체 음반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작업물에 대한 감독책임은 일정 부분 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3집부터 세션이 더욱 화려하게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3집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날아가 은거하며 살았던 서태지는 이번에는 아예 세션을 외국인들로 도배해버렸다. 당시 전미 세션 콘테스트에서 1위를 수상했던 팀 피어스라든가('발해를 꿈꾸며'와 '널 지우려 해'의 기타 속주), 존 피어스[2](베이스), 케빈 스코트(리드 기타), 조시 프리즈(드럼) 같은 당시 LA쪽에서 잘 나가던 세션들이 참여했다. 심지어 교실 이데아라든가 내 맘이야에서는 당시 떠오르던 신예이던 큐버트가 판을 비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DJ 큐버트와 서태지가 녹음실에서 작업하는 영상

2.2. 솔로 활동 이후[편집]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세상 시선을 피해 미국으로 날아가 은거하며 살았던 서태지는 은거 중 원맨밴드에 가까운 작업을 거친 5집을 공개했다.

2000년 8월 11일 오후 3시,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 등 인터넷 팬덤에선 서태지의 컴백 편지가 올려지면서 컴백을 예고했고, 음성사서함 '0811'을 만들어 밑밥을 깐 뒤 8월 29일 김포공항에서 경호원 및 경찰들의 경비 속에 귀국했다. 이후 철통같은 보안 속에 리허설 등 준비 작업을 거쳐 9월 8일, 6집 <태지>를 내고 컴백쇼를 열었다.

6집도 미국에서 대부분 직접 연주[3]하여 완성하고, 한국에 컴백하였다. 컴백 이후 오프라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명색이 하드코어 메탈 음반인데 이걸 AR 틀고(...) 방송활동을 할 수는 없었을 터인지라, 자신의 음악을 연주해줄 세션들이 필요했던 서태지는 인디씬에 있던 연주자들을 불러모은다. [4] 그렇게 처음으로 서태지밴드[5]가 탄생한다.

당시 라인업은 기타에 답십리안(TOP, 안성훈)과 락(최창록), 베이스의 몽키, 드럼의 헤프였고 이 라인업으로 2000년도 6집[6]과 2004년 7집 활동까지 함께하게 된다.

참고로 2000년 당시 서태지밴드를 결성하자 인디 씬의 일부 연주자들이나 리스너들은 서태지를 댄스가수로 변절한 인간(...)으로 보고 있었는지라 PC통신 게시판과 초창기 인터넷판에서는 팬덤과 리스너, 그리고 뮤지션들까지 온데 얽혀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울트라맨이야 PV에 출연한 사람들은 홍대바닥을 떠나라고 글 올리며 락부심 부리던 모 클럽 주인양반의 행동을 17년이 지나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는 짓이다.

이후 3년동안의 휴식기를 거친 후 다시 활동 준비를 함과 동시에 드럼과 베이스를 최현진강준형으로 교체한뒤, 유망한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자 오랫동안 자신과 일해왔던 김석중을 영입해 믹스쳐 록을 주축으로 한 앨범인 Atomos를 발매, 1년(...)동안 기나긴 8집 활동을 진행한다.

활동이 끝나고 6년동안의 긴 휴식기를 거치는 도중에 석중이 밴드를 탈퇴하고 리더인 서태지가 이혼문제와 결혼으로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져 활동이 매우 어려울것으로 예상됐으나, 결국 새 멤버인 닥스킴을 영입한후 9집을 내고 과감히 활동을 개시. 부정적이던 여론을 서태지의 방송 출연으로 뒤집는데 성공하고[7] 성황리에 앨범 투어를 도는 등 거의 기적에 가깝게 부활했다. 예전에 여론, 특히 네티즌들에게 호되게 당한 수없이 많은 연예인들을 생각하면 꽤나 놀라운 일.멘탈甲?[8] 현재는 9집 활동을 모두 마치고 다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2017년 25주년 콘서트를 통해 다시 한 번 팬들을 만났다. 콘서트를 마친 이후에는 다시 10집 앨범 제작으로 돌아갈 예정.다시 평창동 왕릉에 잠들었다


3. 멤버[편집]


역시 세션들이다 보니 기타의 TOP을 제외하고 멤버들이 전부 정규직이 아니다. 활동을 시작할 때마다 재계약하는 형식.
여담으로 서태지[9]김석중[10]을 제외한 멤버 전원이 모두 골초다(...) 합주 시간이 많을 때는 12시간[11]이라는 이른바 감금 생활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현재 드럼은 최현진이 맡지만 8집 드럼을 녹음했던 것은 피아 드러머 혜승인데, 녹음 당시 늘어난 것은 실력과 더불어 욕과 담배밖에 없었다고 한다(...)


3.1. 현 멤버[편집]


멤버 명칭은 본명 위주로 작성한다.

3.1.1. 서태지[편집]


서태지 : 보컬, 작사, 작곡, 프로듀싱, 레코딩 외 다수 (2000~)

서태지 밴드의 리더. 보컬이나 프론트맨 외에도 작사/작곡, 프로듀싱, 레코딩, 컨셉, 공연 계획 등 밴드의 뿌리를 담당하고 있다. 항목 참조.

3.1.2. TOP[편집]


TOP, 답십리안, BUXX.[12] : 리드기타, 백보컬 (2000~)

항목 참조. 경력과 실력으로 봐선 사실상 밴드의 부리더를 담당하고 있다.

3.1.3. 강준형[편집]


베이스 (2008~)

헤비메탈 밴드 디아블로 멤버. 서태지 밴드에 들어오기 전엔 "에이첼 인 어 스토리"라는 밴드에서 활동했으며[13] 3차례의 오디션 끝에 서태지 밴드에 합류했다. 멤버 중에선 부산사람이라 사투리억양 으로 말하는게 특징. 8집이후 공백기 기간동안 꽤 고달프게 살았는지 하루에 1끼만 먹는 버릇이 생겨서 강제 다이어트에 성공해 매우 잘생겨졌다(...). 취미는 건프라 조립. 하지만 공백기 때 생활고 때문인지 꽤 팔아치워서 실제 수중에 있는 건프라는 많이 없다고 한다. 베이스는 기타의 TOP과 똑같이 아이바네즈쉑터 재팬의 것을 주력으로 사용. 8집까지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 미정씨라고 불렸으나 9집에서 이미지 변신으로 킬러강이라는 별명을 시작으로 강준마이, 문대뿌,[14] 강무스 등등 여러 별명이 생겨났다. 서태지를 비롯한 주변인들 말로는 연습 시 거의 틀리지 않을 정도의 깔끔함을 보여준다고 한다.

3.1.4. 최현진[편집]


Alice : 드럼, 퍼커션 (2008~)

메탈코어 밴드 바세린 멤버. 8집Pia의 드러머 혜승이 레코딩[15]한 이후 피아의 활동 때문에 혜승의 대체자로 영입되었다. 나이는 어린편에 속하나 밴드가 밴드인지라 실력은 뛰어나 재즈밴드의 드러머로도 활동중. 기계 만지는 솜씨도 뛰어나 소격동때 사용하는 미디장치(일명 소격동 악기)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서태지의 요구로 드럼셋이 꽤나 특이한데, 베이스 드럼과 스네어, 그리고 심벌들을 제외하곤 모두 전자드럼 패드를 쓴다.[16] 라이브 공연시 가장 빠르게 체력이 고갈되는게 눈에 보이는 멤버로, 잔인할 정도로 비트를 쪼개고 부숴놓은 8집과 9집 수록곡을 연주할 때 인상이 팍팍 찡그려지는걸 볼 수 있다. 최근에 손목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회복했고, 바세린을 탈퇴하고 전문 세션으로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2016년부터 루디스텔로(LudiSTELO)라는 일렉트로닉 스페이스 록밴드의 드럼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3.1.5. 사무엘 킴(닥스킴)[편집]


Samuel Kim, Docs kim : 키보드, 신디사이저, MIDI, 코러스 (2014~)
서태지밴드의 노ㅇ...아 아니 막내

명문 버클리 음악대학 출신의 재미교포 재즈 피아니스트. 멤버들 중 가장 젊다. 재즈 피아노를 베이스로 한 다양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보여주며, 다양한 키보드를 배치해놓는다. 한국에 오기전의 경력도 꽤나 출중해서 인디씬에서 여러가수들과 밴드의 세션을 뛰었고,[17] 후에 서태지의 눈에 띄어 스카웃 된다. 속칭 눈깔 굴리기 퍼포먼스로 상당히 눈에 띄는 멤버.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팬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은 눈깔요정(...) 또 배우 김민교랑 많이 닮았다.(...)

현재는 서태지밴드가 활동을 쉬고 있기 때문에 박효신 등 여러 가수와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놀면 뭐하니?의 유플래쉬 코너에도 출연해서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뭔가 하정우처럼 나왔다 유플래쉬에서 닥스킴을 처음 소개할 때 나오던 자료화면이 바로 Watch Out(The Quiet Night 투어 당시)의 간주부분에서 키보드 치는 영상.
2020년 9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NPR 주관 Tiny Desk 라이브 공연과 MTV 언플러그드에서 키보드를 맡기도 하였다.

3.2. 전 멤버[편집]



3.2.1. 헤프 홀터[편집]


Heff Holter : 드럼 (2000~2004)

외국인 멤버, 멤버들중 나이가 제일 많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드럼 레코딩에 참여한 테크니션 "조쉬 프리즈"의 추천으로 들어오게 된다. 6집에서 7집까지 드럼을 맡고 있다가 본래 앓고있던 디스크가 악화되어 건강상 탈퇴했으며, 현재는 완치됐는지 음악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특징적인 퍼포먼스로 스네어를 치기 전에 드럼스틱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는 모습이 있다.

3.2.2. 박상욱[편집]


몽키 : 베이스 (2000~2004)

하드코어 밴드인 코어매거진[18] 출신. 코어매거진에선 기타리스트였다.
밴드 탈퇴후 여러 음악활동을 하다 결국 접고 현재는 제세동기 판매등의 의료기기 사업을 하고 있다.
여담으로 밴드 활동중에 배우 류현경과 연애한 적이 있는데, 얼마 못가서 헤어졌다. 락의 언급에 의하면 다른 여자 만나고 장가가서 잘 살고 있다고.

3.2.3. 최창록[편집]


락 : 백킹기타 (2000~2004)

뉴메탈 밴드 크로우 출신. 원래는 8집까지 남아있을 생각이였으나, 음악 성향이 안맞아 탈퇴.
위에 세 멤버들과는 달리 강준형과 같이 디아블로 멤버로써 현재까지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탈퇴 이후 서태지의 공연에도 계속해서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서태지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잘 이어가고 있다.[19][20] 참고로 멤버중 비주얼이 뛰어나서 활동중 화보와 커피광고도 찍은적이 있다.

3.2.4. 김석중[편집]


키보드, 신디사이저, MIDI 장치, 코러스 (2008~2009)

미디음악 불모지인 전라도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유망주로 발탁되었다. 나인인치네일스에 영향받은 미니멀 키보드를 기반으로 서태지밴드 활동을 이어나간다. 이후 서태지컴퍼니 산하 스포트라이트에서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한 인디앨범 1집 은하연합을 발매한다. 마스터링 실패에 대한 좌절감과 판매량 부진으로 인해 아쉽지만 과감하게 해산하였다.
이후 음악을 접고 귀농했다는 설이 돌고 있다.

4. 현재까지 참여했던 앨범들[편집]



  • 5집 Seo Tai Ji의 경우는 작사, 작곡, 편곡, 연주를 서태지 혼자 소화한 원맨밴드 앨범이다. 게다가 5집은 미국에서 지내던 시기 제작했고 발매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으니 당시 밴드가 있었을리가 없다. 따라서 5집의 경우 서태지 개인의 작품으로 취급된다. 타이틀 곡은 Take Two, 대표곡은 Take One, Take Three, Take Five 정도.

  • 6집 Tai Ji 발매일 : 2000년 09월 09일
    • 5집과 마찬가지로 작사, 작곡, 편곡, 연주(드럼, 디제잉을 제외) 모두 서태지 혼자 다 했기 때문에 서태지 밴드의 앨범으로 보기 힘들지만, 이 시기부터 서태지 밴드의 라인업이 형성되고 공연활동도 밴드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서태지 밴드의 '활동' 디스코그라피에는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후 Re-recording(리마스터링이 아닌 말그대로 재녹음) 앨범을 통해 서태지밴드 세션으로 녹음한 재녹음반을 선보여서 디스코그라피에 사실상 편입됐다.
타이틀 곡은 울트라맨이야, 대표곡은 인터넷 전쟁, 대경성

타이틀곡은 Live Wire, 로보트, 대표곡은 Heffy End

타이틀 곡은 아침의 눈, 대표곡은 Moai, T'ik T'ak

타이틀곡은 Christmalo.win, 대표곡은 소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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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집 2000~2001(약 7개월), 7집 2004(약 8개월), 8집 2008~2009(약 1년 1개월), 9집 2014(...)~2015(약 10개월) 갈수록 공백기가 늘어나고 있다[2] 팀 피어스의 동생.[3] 드럼은 미디 비슷하게 찍었다. 국내 평론가들이나 리스너들은 하이햇을 좀 조여서 쳤구나.. 하고 리뷰했지 이게 프로그래밍이란 걸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다.(...)[4] 각각 Dr.Core 911(탑), 디아블로(락), 코어매거진(몽키)의 초창기 멤버 내지는 창시자이다. 예외로 Heff는 5~6집의 드럼 프로그래밍을 도왔던 조쉬 프리즈(3집에서 "발해를 꿈꾸며" 등의 드럼 세션 참여)의 소개로 영입하였다.[5] 6~7집 세션들[6] 참고로 6, 7집의 기타와 베이스는 서태지가 녹음한 것이다. 8집에서도 베이스는 서태지가 녹음했으며 9집에 와서야 모든 멤버들이 각자의 파트를 녹음하게 된다.[7] 중장년층에게는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룸 출연이, 젊은 층에게는 해피투게더유희열의 스케치북, 무한도전 출연이 여론을 호의적으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8] 사실 서태지야말로 나훈아와 함께 그 시절 기레기들이랑 아마게돈(...)을 벌이고도 살아남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뮤지션이다. 이 양반한테 붙었던 루머만 봐도 사망설은 애교고, 서태지 본인이 임신했다는(...) 임신설, 게이설, 사탄설, 외계인설 등등 황당무계한 것들로 나훈아 고자설은 댈 것도 못된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도 서태지 콘서트에서 시대유감만 했다 하면 괜히 신문지 찢는 퍼포먼스가 나온 게 아니다. 물론 서태지 팬덤도 많게는 그런 기레기들의 꼴을 거의 30년 넘게 봐 왔기 때문에 웬만한 거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강철 멘탈의 소유자들이다.[9] 중2때부터 시작했으나(...) 지금은 완벽히 끊었다고 언급했다. 참고로 서태지는 학창시절때 동네에서 알아주는 노는 애였다.[10] 체질상 술, 담배를 못하며 커피도 잘 안 받는다고 한다. 8집 당시 서태지, TOP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커피에 설탕을 밥숟갈로 두 번을 넣었다고 한다.[11] 신해철도 서태지 밴드 연습시간이 10시간이 넘는다는 것을 들었을 때 피아에게 같은 팀이 아닌게 다행이라고 말했다.[12] 벌레같은 인생이란 뜻의 예명이다. 전에 활동했던 닥터코어911시절 초반에는 답십리안과 같이 이런 예명을 달고 활동했다.[13] 이후 본인 입으로 전설적인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4년 연습하고 1번 공연하고 해체한 밴드라고(...)[14] 건프라를 제작 도중 부품들을 사포로 문지르면서 문대뿌라 본인이 직접 표현했는데 이 장면이 인간 관악기로 개조당했다.(...)[15] 여담으로 8집의 드럼 연주는 영화 위플래쉬를 떠올리게 할 만큼의 무시무시한 속도와 칼박자를 자랑한다. 일렉트로닉 드럼 비트를 어쿠스틱 드럼셋으로 그대로 치기 때문.(...) 근데 그걸 또 레코딩한게 바로 이 인간 작품. 유튜브에 저 사람 이름을 치고 좀 찾아보면 그 무시무시한 8집 연주를 볼 수 있다(...) 어떤 팬이 말하길 8집 연주는 오직 현진과 이 사람이 할 수 밖에 없겠다고...[16] 그외에 소격동 연주시엔 자기가 직접 조립한 그 미디 장치를 쓴다. 때문에 엠카운트다운 당시 소격동이 끝나자 어두워진 무대 사이로 뛰어가는 최현진의 모습을 본 팬들이 많다. 소격동 전주 부분 멜로디를 키보드로 연주하는 줄 알았던 팬들은 공연 가서 저게 드럼소리였구나 하고 많이들 놀랐다는 후문.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드럼 소리라기보다는 드럼과 연결된 컴퓨터의 소리라고 하는게 적절하다.[17] 대표적으로 이상민 그룹(이적과 같이 긱스했던 그 드러머 이상민 맞다.)의 세션활동 등.[18] 현재는 댄서블한 음악쪽으로 방향을 바꿨다.[19] 08/09 ETP, Mobius 투어, Quiet Night 투어 앵콜과 일겅,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Take 2, 25th ANNIVERSARY 등의 공연에도 게스트로 참여했다. 사실상 Quiet Night 지역별 투어 때를 제외하고는 밴드 탈퇴 이후에도 모든 공연에 참여했다. 이유는 6집 곡들이 TOP & ROCK 트윈기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기타리스트가 두명이 아니면 연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펜타포트때는 시나위+좌닥코+우디아블로의 드립을 서태지 본인이 치며 락을 서태지밴드의 멤버라고 소개하였다![20] 그리고 락이 기타 교습소를 열자 서태지가 연락해 뭐 필요한것 없냐고 묻더니 자신의 사진과 싸인, 추천사가 담긴 액자를 보내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