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계역

최근 편집일시 :

石溪 / Seokgye

석 계
파일:Seoulmetro1_icon.svg 파일:Seoulmetro6_icon.svg
소요산 방면광운대
← 1.1 ㎞
1호선
(120)

인천·서동탄·신창 방면신이문
1.4 ㎞ →
응암순환돌곶이
← 0.8 ㎞
6호선
(644)

신내 방면태릉입구
1.0 ㎞ →




다국어 표기
영어
Seokgye
한자
石溪
중국어
일본어
石渓(ソッケ
주소
경원선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341 (월계동 36-4번지)
6호선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 지하 347-1 (석관동 375-14번지)
관리역 등급
배치간이역
(광운대역 관리 /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
운영 기관
경원선
파일:코레일_기본_로고.svg
6호선
파일:서울교통공사_Logo.svg
개업일
경원선
1985년 1월 14일
1호선
6호선
2000년 8월 7일
역사 구조
지상 2층 (1호선)
지하 3층 (6호선)
승강장 구조
복선 섬식 승강장 (1호선)
복선 상대식 승강장 (6호선)
노선거리표
[[용산역|

용산 방면
]]신이문
← 1.4 ㎞
경원선
석 계
[[백마고지역|

백마고지 방면
]]광운대
1.1 ㎞ →

1. 개요
2. 역 정보
2.1. 역명 분쟁
2.2. 환승
3. 역 주변 정보
4. 일평균 이용객
5. 승강장
6. 연계 교통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2. 역 정보[편집]


파일:attachment/seokgyae1.png
수도권 전철 1호선 석계역사.

파일:석계역 안내도.jpg
역 안내도[1]

경원선(수도권 전철 1호선) 석계역은 1985년에 석관동 주민들의 청원으로 신설된 역이다. 1호선의 승강장이 지상 2층에 있는 반면 대합실은 반지하로 되어있다. 그래서 게이트로 들어가려면 1번출구 쪽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1997년 6호선 환승이 기획되자 출구개선공사를 위해 반지하 대합실을 임시 폐쇄하고 광운대역 방면에 지상 3층의 임시역사를 지어 영업을 했었다. 2000년 여름 6호선이 개통되자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개선되었고 이 후 임시역사는 철거되었다.

2004년에 1호선 승강장의 확장 공사가 완료되었다. 1호선 승강장은 섬식 승강장인데, 일반적으로 섬식 승강장은 확장하기가 힘들지만 이 역은 지상역인데다가 유휴 부지가 있어 확장이 가능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1. 인천행 임시 승강장을 개설
2. 인천행 승강장 폐쇄 후 1호선 하행 열차를 망우선으로 우회
3. 1호선 하행 선로를 걷어내고 그 폭만큼 승강장을 확장
4. 확장 공사 완료 후 다시 인천행 승강장을 원상 복귀

파일:Seokgye9_1.jpg

임시로 사용되던 인천행 승강장의 위치는 석계역 남쪽이었으며, 석계역 위성사진을 보면 석계역 남쪽에 초록색으로 된 방음 구조물이 있는데 여기가 임시 승강장의 위치였다. 석계역의 인천 방면 승강장 바닥 타일을 보면 세로로 줄이 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폭만큼 승강장이 확장된 것이다.

1호선이 다니는 경원선 선로와 나란히 망우선이 놓여 있지만 선로가 떨어져 있는 관계로 석계역은 망우선의 역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광운대역까지 1일 2회 운행하는 일부 경춘선 전동차는 석계역에 정차할 수 없다.

광운대행 열차에서 이 역을 안내방송할 때 의정부와 소요산 방면으로 가는 승객은 여기서 내려서 소요산 방면 열차로 환승하라고 권유한다. 왜냐하면 소요산 방면 열차들은 광운대역 1번홈에 정차하지만, 광운대행 열차는 오리카에시를 하여 대부분 광운대역 2번 홈에 정차하고 거기서 서동탄/천안/신창행으로 행선지만 바꾸고 그대로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계단을 이용해야 해서 환승할 때 석계역보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간혹 광운대역 1번홈에 종착하는 열차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 열차들은 2번 홈에 종착한다.

2015년 11월에 드디어 승강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두 곳 중 한 곳에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다.

1호선 하행의 경우 막차는 23시 25분에 출발하는 구로행으로, 다른 서울 시내 역에 비해 일찍 끊기는 편이다. 만약 11시 25분 이후 1호선 인천•신창 방면으로 갈 경우, 6호선을 타서 동묘앞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역으로 서울 지하철 1호선 인근에서 이 시간 이후로 석계역에 오고자 한다면 동묘앞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오면 된다. 6호선 봉화산 방면 막차시간은 평일 기준 24시 55분이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지금은 칼질당한 상황.

평일과 휴일 모두 경인선 막차는 23시 09분(인천행), 경부선 막차는 22시 51분(병점행), 전체 막차는 23시 25분(구로행)이다.


2.1. 역명 분쟁[편집]


역명은 역이 위치한 행정구역인 관과 월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지었다. 역 이름이 이렇게 된 이유는 1호선의 역 건물이 성북구 석관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 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건설 당시는 성북구와 도봉구[2]의 경계선이 지나갔다는 얘기. 현재도 1호선 역사는 노원구와 성북구의 경계선에 거의 반반으로 걸쳐 있고, 역무실 위치에 따라 역사 주소는 노원구 월계동이다. 6호선 역사의 경우는 2, 3번 출구만 월계동 땅에 삐죽 나와 있고, 플랫폼을 비롯한 지하 구조물은 죄다 성북구 땅에 위치해 있고 주소는 성북구 석관동이다.

1984년 당시 석관동 주민들은 석관동이 인구밀집지역인데도 전철역이 하나도 없다며 석관동을 지나가는 경원선에 역을 신설해달라고 요청했다. 본래 철도청은 역 신설에 부정적이었으나 석관동 주민들과 당시 성북구 갑 국회의원 김정례의 역 신설 청원 노력으로 국회에서 교통부에 역 신설을 건의함으로써 역 신설이 결정되었다. 이 때 제안된 역 위치는 현재의 석계역 5번 출구 인근이었으나, 이 위치는 연탄 조달용 화물역 이문역과 연탄공장(현 석관동 동아아파트 부지)의 존재로 인해 수많은 분기선이 존재해 역 설치에 부적합했고, 이에 김정례 국회의원은 역 위치를 화랑로와의 교차점으로 옮겨서 지을 것을 제안하여 공사에 들어갔다. 이로써 석관동 주민들이 요청해 만든 경원선 역사는 도봉구(현 노원구) 월계동에 많은 부분을 위치시키는 형태가 되었지만, 이름은 '석관역'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통이 임박한 1984년 7월에 도봉구 월계동의 일부 주민들이 월계동에 있는 역 이름을 월계역으로 해야 한다고 진정서를 내어 분쟁이 발생했다. 때마침 1985년 4월에 제1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서, 당시 도봉구 국회의원 홍성우는 진정서를 근거로 "역사 건물이 (도봉구의) 월계동 쪽에 위치해 있는데 왜 역이름이 (성북구의) 석관역입니까, 제가 당선되면 도봉구와 월계동의 명예를 걸고 역이름을 월계역으로 바꾸겠습니다" 라고 공약했다.[3] 이에 석관동 주민들은 자기들이 고생해서 만든 역 이름을 월계동에 뺏긴다며 분노했고, 역시 총선을 앞두고 있던 성북구 갑 국회의원 김정례도 "원래 석관역으로 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는데 왜 이제와서 뒷북? 내가 당선되면 성북구와 석관동의 자존심을 걸고 절대 역이름이 바뀌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역시 석관동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둘은 같은 민주정의당임에도 역 이름 문제로 싸운 것이다. 결국 철도청은 타협책으로 '석관'의 '석'과 '월계'의 '계'를 떼어 '석계역'이라고 할 것을 제안했고 이것이 수용되어 '석계역'이라는 이름으로 개통되었다. 신설된 電鐵驛 開通 앞두고 두 동네住民"驛名 줄다리기"(조선일보)

반년쯤 지나서 국철의 노선이 서울 지하철 4호선 환승을 위해 창동역으로 연장되었고 성북역을 지나서 월계역이 따로 생겼으니, 석관동 주민들이 석계역을 석관역으로 바꿔달라고 할 수도 있었겠으나 사람들이 이 사건을 잊어버렸는지(...) 이 역은 석계역으로 굳어졌고, 이 역 일대를 대표하는 지명 중 하나로 굳어지며 지금까지 역 이름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래서 석계역 주변에 석계치과, 석계호프, 000 석계점이라든지 석계라는 단어를 단 상호를 쓰는 점포들이 꽤 많다. 한편 2000년에 서울 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이 생기면서 결과적으로는 석관동 역시 자기 동네 이름을 딴 역을 갖게 되었다.


2.2. 환승[편집]


환승하기 힘들다. 1호선은 지상 2층, 6호선은 지하 3층이라 환승할 때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많이 오르내려가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대략 이수역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고가-지하역 환승 특성상 고저차가 있고, 환승통로 무빙워크 쪽은 우이천 밑을 지나는 하저터널인 관계로 경사까지 있다.

사실 두 역은 X자로 교차하기 때문에 막장환승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구조지만 인근 도로 사정 때문에 이렇게 된 듯하다. 1호선 대합실에서 1번출구로 나온 후 게이트를 통과한 뒤 그대로 직진하여 6호선 출구로 들어가 6호선 게이트를 거쳐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방법으로 환승 동선을 줄일 수는 있지만, 당연히 환승 할인이 안 되고 추가 요금이 지불되는 것이 문제. 1호선과 6호선 게이트 간 소프트환승이 되도록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모를까.


3. 역 주변 정보[편집]


파일:attachment/sk.png
인근 지역의 도로가 상당히 복잡하다. 속칭 '말로도 지도로도 설명못하는 기기묘묘한 도로'

성북동이 개발되고 1960년대에 화랑로가 개설되었고, 1984년 화랑고가차도 개통, 1997년 북부간선도로 개통으로 석계역 위로는 2개의 고가도로가 지난다. 석계로 같은 길등은 당연히 옛날부터 있던 길이다.

석계로 방면의 역 북쪽과 역 남쪽의 5번출구 쪽에는 문화공원과 노래방, 음식점 등 유흥시설이 밀집해 있고, 1번출구 앞 버스정류장에는 주로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주르륵 널려 있다. 그리고 역 동쪽에는 화랑로와 아파트가 있고, 역 서쪽은 비교적 층수가 낮은 빌라들이 다닥다닥 위치해 있다.

또한 1번 출구 바로 앞에는 노점상을 철거하고 문화공원이 위치해 있었으나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사실상 이 일대 노숙자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렸다. 대낮에도 공원 의자에 짐을 깔고 숙면을 취하는 노숙자가 상당히 많았으나, 노원구에서 이를 의식하고 공원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2021년 초에 공사를 시작해서 6개월 뒤인 2021년 7월 초에 리모델링이 완료되었다.

석계역 앞은 늘 혼잡하다. 특히 출퇴근시간대에는 역과 역 앞의 버스 정류장 모두 헬게이트가 열린다. 원인 중 하나로는 바로 도로 구조의 문제점. 도로 자체가 심히 꼬불꼬불하고, 일방통행 투성이다. 노원구 지역은 대체로 도시계획에 의한 일괄 개발이 이뤄진 덕분에 도로망은 반듯반듯한 경우가 많은데, 석계역은 석관동이나 성북동처럼 1960~1970년대부터 대단위 주택지구였던 곳과 인접한 관계로 주변을 싹 밀어버리고 구획을 새로 짜는 게 불가능해 도로망이 좀 심하게 복잡하다.[4]

또 다른 원인으로는 신호등도 어정쩡한 곳에 걸려 있고, 덕분에 자잘한 보행신호[5]는 전혀 준수되지 않기에 도로 상황 자체가 24/7 노상 개판인 것이 있지만... 무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굴다리(제2기우천철교)를 그대로 두고 하부도로 확장을 안 한 상태[6]에서 고가차도를 위로 올리면서 석계역 진입은 더욱 꼬이게 되었고, 여기에 1998년에 지어진 두산아파트와 진입로가 복잡하게 꼬이면서 이런 기이한 형태가 만들어졌다.[7] 또한 이 구간에 경사진 도로가 있는 이유도 우이천 복개 구조물이 있기 때문이다.[8]

무엇보다 10가지가 넘는 버스노선들이 이 지점을 종점이나 경유지, 주요 환승지역으로 삼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시로,석계역에서 월계동 쪽으로 2km 가량 들어가면 나오는 노원구 시내버스 회사인 진아교통 차고지가 있다.[9] 차량 동선상 진아교통 소속 시내버스는 147번 빼고 전부 다 석계역 앞을 지나간다.[10] 또한 진아교통 외에도 태릉교통, 보광운수 소속 노선이나 그 외 각종 마을버스, 경기도버스 등도 이 역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이 버스들이 4대 넘게 단체로 몰려올 경우에는 정체가 안 날 수가 없다.

6호선이 개통되기 전에는 공사 때문에 더욱 심했으나, 6호선 완공으로 그나마 환승 필요성이 줄어든 상태이다. 그래도 출퇴근 시간대면 언제나 카오스. 신호가 아슬아슬할 것 같으면 그냥 달려서 결국 정체가 발생한다. 노선버스 우선이고 뭐고 없다. 닥돌이다. 너무 심하면 석계역에서 태릉입구역 방향으로 난 월릉교를 건너는데만 10분을 넘긴다. 더구나, 태릉입구역이나 화랑대역 주변은 노원구에서 북부간선도로를 타고 구리시로 빠져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구리IC를 통해 중부고속도로를 타는 길목이기도 해서, 서울특별시 바깥으로 나가려는 차가 많을 때는 걷는 것보다 확실히 더 느려진다. 차라리 걸어가거나, 6호선 타는 게 더 편하다.

광운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의 스쿨버스가 이 곳을 지나간다. 이 3개 대학 덕분에 석계역 상권은 엄청나게 발달했다. 공통적으로 이 3개 대학 모두 다 근처에 제대로 놀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석계역의 상권을 공유하는 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월계역의 인덕대학교 앞은 2016년부터 재개발로 인해 상권이 아예 없다시피 해서, 인덕대 학생들도 신입생 환영회나 개강파티 등 단체 술자리를 가질 때 석계까지 오는 일이 많다.

공릉동과 공릉역을 필두로 상권이 발달되어 있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1호선과 6호선을 이용하여 통학하는 학생들은 노원03, 노원04, 노원13, 1136번 버스를 이용해 통학한다.[11]

인근 군부대 장병들에게 핫플레이스라고 한다. 71사단이 해체되고 6군수지원단이 후적지에 들어온 지금도 유효하다.

7번 출구에서 남서쪽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집들이 이어져 있는데 1971년까지 제기동역 앞에 있던 경춘선 성동역으로 가던 철도 부지이다. 골목 시작점에는 벽화거리, 반대편에는 석계역 음식문화거리라는 홍보물이 있지만 과거 철도였다는 안내는 전혀 없다. 40년 후 폐선되고 숲길이 조성된 광운대역 반대편 구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정확히는 석계역 구간이 과거에 성동역 분기지점 이였다. 지금은 분기 지점이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우이천 일부 복개구간에 경춘선 철교도 존재 했었다.

1호선 석계역 플랫폼이 우이천에 걸친 부분에 1910년대 경원선 부설 당시 조적식 철교 교각이 남아있다. 석계역 승강장 확장 과정에서 철로 대신 승강장을 받치도록 개조되었지만, 그 대신 깨끗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시기 지어진 철교들이 소음 문제로 인한 개량 공사로 사라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

1,6,7번 출구
나가는 곳 Exit 出口
파일:지하철 출구_1.png
광운대학교
석계역문화공원
월계1동
파일:지하철 출구_6.png
석관초등학교
파일:지하철 출구_7.png
석관동주민센터
장위사거리

2,3,4,5번 출구
나가는 곳 Exit 出口
파일:지하철 출구_2.png
월계1 · 3동
성북 방면
파일:지하철 출구_3.png
한진한화그랑빌아파트
한천초등학교
월릉교
파일:지하철 출구_4.png
서울특별시태릉민방위교육장
중랑천
두산아파트
파일:지하철 출구_5.png
석관동
석관중·고등학교
석관동미리내도서관
중앙하이츠아파트


4. 일평균 이용객[편집]


연도
파일:Seoulmetro1_icon.svg
파일:Seoulmetro6_icon.svg
총합
비고

[ 1985년~2009년 ]
1985년
19,955명


1986년
34,382명

1987년
40,210명

1988년
50,020명

1989년
50,387명

1990년
51,827명

1991년
61,283명

1992년
64,790명

1993년
67,644명

1994년
69,687명

1995년
77,504명

1996년
78,597명

1997년
61,183명

1998년
55,073명

1999년
50,336명

2000년
37,182명
11,674명
48,856명

2001년
36,904명
20,617명
57,521명
비고
2002년
36,272명
25,517명
61,789명

2003년
37,695명
28,568명
66,263명

2004년
36,892명
28,466명
65,358명

2005년
41,229명
29,228명
70,457명

2006년
38,775명
30,194명
68,969명

2007년
38,315명
29,547명
67,862명

2008년
37,965명
29,322명
67,287명

2009년
37,805명
28,644명
66,449명


2010년
37,067명
28,637명
65,704명

2011년
37,416명
28,762명
66,178명

2012년
37,157명
28,520명
65,677명

2013년
38,027명
28,548명
66,575명

2014년
37,669명
28,415명
66,084명

2015년
36,804명
27,784명
64,588명

2016년
35,822명
27,017명
62,839명

2017년
34,558명
26,696명
61,254명

2018년
32,919명
26,848명
59,767명

2019년
32,755명
27,141명
59,896명

2020년
24,386명
20,882명
45,268명

2021년
23,763명
20,737명
44,500명



  • 2019년 기준 석계역의 승하차객은 두 노선을 합하여 59,896명으로 6만 명에 달한다. 역세권 규모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 양 노선 모두 이용객이 감소 추세이지만 극적인 수준으로 폭락하지는 않고 아주 조금씩 내려가는 현상을 보인다. 석계역과 가까운 곳에 장위뉴타운 재개발이 있어 근처의 인구가 줄어든 것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 두 노선의 환승역이라는 이점에다가 노원구/성북구, 월계동석관동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고[12] 화랑로, 석계로와 같은 주요 도로가 만나는 곳이라 버스-지하철 사이의 환승 수요가 많은 편이다. 특히, 역세권인 석관동과 월계동뿐만이 아니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육군사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태릉선수촌구리시 갈매동, 남양주시 별내신도시, 퇴계원읍, 진접읍, 진건읍, 오남읍 등지에서 넘어오는 환승객들이 종로, 청량리, 서울역, 의정부시 등으로 갈 때 주로 환승하는 교통 거점이다.[13]

  • 그뿐만 아니라 중랑천 건너 7호선 연선에서 넘어오는 승객들도 제법 있다. 7호선이 강남으로는 빠르게 연결해주지만 서울 원도심으로 가기에는 6호선보다도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통 거점 역할을 해왔던 곳이라 역 앞의 상권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어 석계역의 이용률을 높이는 데에 한몫한다.

  • 2006년까지는 6호선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역이었다. 현재는 응암, 디엠시, 합정, 공덕 등 굵직굵직한 역들에 밀려 7위까지 떨어졌지만, 그래도 6호선 동부 구간에서는 이용객이 가장 많다. 퇴근 시간 신내 방향 열차를 타 보면 돌곶이역까지만 해도 혼잡했던 열차가 이 역을 지난 뒤 한산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5. 승강장[편집]



5.1. 수도권 전철 1호선[편집]



파일:석계역1-2.jpg


파일:석계역 역명판(수도권 전철 1호선).jpg


1호선 승강장은 1면 2선의 섬식 승강장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광운대

1
2



신이문
이문기지


노선 및 방면
빠른 환승 위치
파일:Seoulmetro1_icon.svg 1호선 (소요산, 광운대 방면) → 파일:Seoulmetro6_icon.svg 6호선
10-4
파일:Seoulmetro1_icon.svg 1호선 (인천, 서동탄 방면) → 파일:Seoulmetro6_icon.svg 6호선
1-1


5.2. 서울 지하철 6호선[편집]


파일:attachment/seokgyae6.jpg
승강장

파일:6호선석계상행역명판.jpg파일:6호선석계하행역명판.jpg
역명판

6호선 승강장은 2면 2선의 상대식 승강장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도어가 닫힐 때 경고음이 추가되었다.

돌곶이




태릉입구


노선 및 방면
빠른 환승 위치
파일:Seoulmetro6_icon.svg 6호선 (신내 방면) → 파일:Seoulmetro1_icon.svg 1호선
5-2
파일:Seoulmetro6_icon.svg 6호선 (응암순환) → 파일:Seoulmetro1_icon.svg 1호선
4-3


6. 연계 교통[편집]


대부분의 노선이 각 방향에서 석계역을 회차점으로 삼아 돌아가고, 석계역을 중간에 끼워 가로지르는 노선은 많지 않다.
서울 버스 173
서울 버스 261
서울 버스 N13
서울 버스 1132
서울 버스 1135
서울 버스 1136
서울 버스 2113
서울 버스 2114
서울 버스 1131
서울 버스 1141
서울 버스 1130
서울 버스 1133
서울 버스 1222
서울 버스 1155
서울 버스 1156
서울 버스 노원03
서울 버스 노원04
서울 버스 노원09
서울 버스 노원13
서울 버스 성북12
서울 버스 성북13
서울 버스 성북14
구리 버스 75
남양주 버스 65-1
남양주 버스 73
남양주 버스 76
포천 버스 3100[14]
포천 버스 3500[15]
포천 버스 36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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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호선 대합실과 승강장을 잇는 에스컬레이터와 1호선 측 화장실이 빠져 있다.[2] 노원구는 도봉구에서 1988년에 분구되었다.[3] 당시에는 1호선이 창동역으로 연장되지 않은 상태라 현재의 월계역이 없었다.[4] 태릉역 쪽에서 장위동 쪽을 자가용으로 가려면 화랑고가차도를 이용하는 게 훨씬 편하다.[5] 버스정류장 앞에 5~10m 내지의 작은 횡단보도가 있다.[6] 물론 철도운행이 꼬이는건 여전하겠지만 교통량이 덜 혼잡했고 석계역이 없었던 그 시대라면 지금보다는 충분히 도로확장이 더 쉬웠다.[7] 즉, 석계역으로 진입하는 굴다리 쪽 도로에서 접촉사고 하나라도 나면 그 일대 도로는 완전 헬게이트가 되어버린다는 소리. 실제로 사고가 난 적도 빈번하고, 사고가 날 때마다 이 일대 교통은 마비되었다. 이 여파가 얼마나 심하냐면, 일단 기본적으로 출퇴근 시간대만 하더라도 석계역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심하면 태릉입구역, 화랑대역까지 정체가 심하다. 또한 석계역에서 400m 거리에 떨어진 월릉교 앞 사거리에서는 마들로와 접속하는데, 마들로에서도 적지 않은 차량들이 석계역 쪽으로 통행하고 광운대역 쪽의 석계로에서도 이 역에 접속한다. 상술했듯이 석계역은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인데, 이곳에서 사고가 나면 러시아워 시간대는 물론이고 평시에도 헬게이트가 열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도로 구조까지 복잡한 상태니 더욱 답이 없어진다.[8] 우이천 중 석계역 문화공원~석계역 교차로 구간이 'ㄱ,ㄴ' 모양으로 급커브 처럼 꺾였다.[9] 원래는 현재 6호선 석계역 인근 현 한진한화그랑빌 상가자리 자리에 진아교통 차고지가 있었고 1985년 이후에 월계시영아파트단지(월계삼호, 미성, 미륭아파트) 건설 완료 이후 현재의 이마트 월계점 앞으로 차고지를 이전했다.[10] 진아교통 소속 버스 중 유일하게 석계역으로 가지 않는 147번도 개편 전 38-2번 시절에는 석계역 경유 노선이었다.[11] 예전에는 스쿨버스가 운행했지만 마을버스 노원13번이 신설되면서 유지비로 매년 지출되던 1억원의 예산을 장학금으로 돌려버렸다.[12] 사실상 역명이 석계역이 된 이유이다.[13] 그러나 거기에 종착하는 경기도 시내버스가 적고, 그리고 거기에 다니는 서울시 시내버스도 간선버스보다 지선버스가 더 많기 때문에 실제로 환승 범위가 좁고 환승 인구도 많지 않아 역시 구리, 남양주의 버스들이 종착·경유하고, 교통 거점인 청량리역, 회기역에 비해 가치와 중요도는 떨어진다.[14] 양재역 방향[15] 건대입구역 방향[16] 강남역 방향